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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7화 〉병(충)해 (77/164)



〈 77화 〉병(충)해

적을 전부 살해하자마자 이리하는 칼린을 찾아보았다. 멀리에 말에서 내리고 있는 칼린이 보였고, 이리하는 곧바로 발을 움직이려 했다.

"용맹했었다, 이리하. 움직임을 보니 대검보다 작은 검 쪽이 더 나아 보이더군."
그녀의 앞을 가로막은 것은 요나였다. 이리하는 발을 멈추고 그녀와 눈을 마주했다.


"...봐주셨다면 영광이고요."
"그래. 지쳤을텐데, 바로 초소로 돌아가지."
그녀의 권유의 탈을 뒤집어쓴 강요였다. 평소의 이리하였다면 여기서 물러났겠지만, 지금은 그녀도 물러설 수 없었다.


"잠깐 동료와 대화를 좀-"
"칼린이 걱정되나 보군. 그는 주인인 내가 위로하겠다. 네가 아닌 내가."
요나도 평소보다 강하게 나온다. 이리하는 주먹을 쥐고 그녀를 노려보다가, 곧 힘을 풀고 눈을 감았다. 그래. 칼린은 지금 누구의 도움이든 받아야 한다. 원흉이 자신일지는 몰라도, 위로하는 사람은 타인이  수도 있는 것이다. 여기서 자신의 욕심을 내세워서는 안된다. 일단 요나도 칼린을 아끼기는 한다. 그게 어떤 방향이든.


"...그렇다면야."
이리하는 얼굴을 찌푸리며 등을 돌리고 큰 동작으로 걸어 나갔다. 요나는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계속 바라보다가 칼린에게 다가갔다.



칼린은 말에서 내리고도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안개속에 갇힌 느낌, 아니, 오히려 너무 쌩쌩한건가. 초점이 풀린 것인지 시야가 넓어진 것인지 분간할  없었다. 어지러운 머리를 붙잡고 비틀거리던 그는 멀리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갤러한과 눈이 마주쳤다.


"갤러한... 저..."
칼린은 말을 멈췄다. 무슨 말을 해야 될까? 보통 사람은 사람을 죽인 후에 무슨 말을 하더라? 내가 아니라고?

"...수고했다."
몇번인가 웅얼대며 말을 못 잇는 칼린을 바라보던 갤러한은 영주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 짧게 말했다. 그리고 칼린을 등지고 걸어가기 시작했다. 칼린은 알 수 없었다. 갤러한이 자신에게 지금 느끼고 있는 감정이 무엇인지 읽어낼 수 없었다.

"저, 사람을 죽였는데..."
뭐라도 말해주기를 바럤다. 언제나처럼 자신에게 도움이  말을 해주었으면 했다. 자신보다 어린데도 형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갤러한은 이제 아무 말도 해주지 않는다. 왜냐, 왜일까.


"헤, 헤헤. 생각해 보면 처음은 아니겠구나, 갤러한에게는."
그래. 생각해보면 네크로맨서를 죽인 것이 첫 살인이었을 테니까. 적어도 갤러한에게는 그렇게 보였을 테니까. 그리고 이세계에서 전쟁으로 사람을 죽이는 건 너무 당연한 거니까. 무슨 말이 필요하냐, 그런 거다.

"당연한거네요, 네."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은 칼린에게 요나가 다가왔다. 칼린은 힘없이 그녀를 올려다본다. 그녀의 손에는 칼린이 떨어트렸던 가면의 반쪽이 들려 있다.

"칼린."
"아..."
칼린은 그제서야 자신의 가면이 반정도 없어져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요나는 칼린의 이마에  상처를 가볍게 소독하고 가져온 붕대로 감아주었다. 그리고 들고 온 반쪽과 칼린의 반쪽을 다시 맞춘 후, 눈구멍을 통해 대충 붕대로 얽었다.

"가면은 쓰고 있어야지."
"그러네요."
칼린은  가면을 다시 받아 들었다. 억지로 이어 붙인 가면이 헐렁거렸지만, 스트랩을 꽉 조이면 어찌저찌 얼굴은 가릴  있을 것 같았다.


요나는 이마에 붕대가 감긴 칼린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를 끌어안았다.


"수고 많았다, 칼린. 수고 많았어."
"영주님, 저..."
"아무 말도 할 필요 없다. 아주 잘 해줬어."
그래, 칼린. 넌 잘한 것이다. 네 부대의 적, 네 주인의 적을 죽인 것은 잘한 것이다. 그 어떤 가책도 가질 필요 없다. 죽고 싶다며 목을 들이민 네크로맨서와는 다른 감각이었겠지. 살고 싶어 발악하며 반항하는 사람들을 베어낸 것은 훨씬 불쾌할 지도 모르지.

익숙해지거라.
요나는  마지막 말만은 소리내서 칼린에게 전했다.


이리하는 아무래도 오늘 내로 한번정도는 칼린을 봐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말을 잘못한 것이라고 사과해야 했다. 그러나 그는 이상하게도 진영으로 돌아오지를 않았다.

그가 망가진 가면을 붕대로 대충 감고 돌아온 것은 전투가 끝난 지 3시간정도 후였다. 이리하는 그에게 곧잘 달려갔다.


"칼린!"
"아, 이리하! 왜 그러세요?"
마치 이리하가 한순간 봤던 그의 표정이 환각이었다는 듯, 그는 발랄하게 대답했다. 이리하는 그런 밝은 톤에 조금 당황해서 한걸음 물러섰다.


"괜...찮은 거야?"
"? 무슨 말 하시는 거예요?"
"전장은 처음이었잖아..."
그 말에 칼린은 이제야 떠올랐다는 듯 손뼉을 치며 대답했다.


"아, 아하! 걱정해 주셔서 고마워요! 역시 동료네요, 우리!"
"그렇지..."
"뭐, 동료를 지키려면 싸워야죠.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지만… 사실 당연한 거잖아요! 이리하씨도 그렇게 말씀하셨었고. 이제 괜찮아요!"
"칼린, 나는-"
"이리하씨, 저 지금은 화장실에 좀 가봐야 할 것 같아서..."
칼린은 이리하의 말을 끊어내며 자신의 양 손을 들어 올렸다.


"피가 너무 많이 묻었거든요. 이러면 손이 미끄러워서 검을 잡기 힘들어 지잖아요. 맞죠?"
이리하는 지금 그의 표정을 볼  없는 것이 너무 무서웠다. 그는 확실히 좋아지고 있었다. 좋아지고 있었을 터였다. 그걸 무너뜨린 것이 자신의 말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녀의 가슴을 아리게 했다.


아니, 일단 지금 그가 무너진 것인지 확신도 서지 않았다. 어쩌면 의외로 버틸만 했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지금 그는 상당히 진정된  같았다.

"손만 씻고 돌아올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돌아와서 다시 이야기하죠!"
칼린은 그렇게 말하고서 손을 흔들었다. 이리하는  말을 잇지 못하고 그를 보내주었다.


그녀가 돌아오지 않는 칼린을 찾으러 화장실에  것은 6시간 뒤였다.


이리하도 6시간 동안이나 돌아오지 않는 칼린이 진짜 화장실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다. 다만, 만일의 가능성에 걸었던 것뿐이다. 그리고 그 가능성은 최악의 결과로 이뤄져 있었다.


칼린은 손을 씻고 있었다. 물통에 물을 담아두고 쪼그려 앉아서 계속해서 손을 씻고 있었다. 붉은색 물이 계속해서 물통에서 넘쳐 흘렀다.


"...칼린?"
그녀는 천천히 칼린에게 다가갔다. 칼린은 이리하가 다가오는 것도 눈치채지 못한  계속해서 손을 닦고 있었다. 천천히 비비고 있는 양 손은 완전히 부르트고 찢어져서 완전히 망가져 있었다.

"너, 너 지금..."
이리하는 세어 나오는 비명을 틀어 막았다. 칼린은 그제서야 이리하를 돌아보았다.

"이리하! 그 잠깐을  기다리시고 들어 오시다뇨! 여기는 남자 화장실이에요!"
전쟁중에 화장실을 성별 구분해가며 쓸 여유가 있을 리 없다.

"잠시만 기다려요, 피가 잘  닦여서... 이야, 많이도 닦여 나가네요, 6명분의 피라서 그런가 봐요."
지금 그 물로 닦아내는 피는 그의 불어터진 손에서 새어 나오는 것이었다.


"이 피를 전부 닦아내면 다시 검을 잡아야죠. 아직 죽일 적이 많으니까."
왜 그렇게 발랄한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거야. 억지부리지 말란 말이야.


이리하는 칼린의 등을 잡았다. 그리고 잡아당겨 보았지만, 마치 땅에 박힌  꼼짝도 하지 않았다.

"칼린, 그만둬."
그녀의 목소리도 떨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 예상밖의 상황에 겁먹고 압도당한 것은 아니었다.


"이거 놔요, 이리하. 손을 닦아야 해."
"이게, 이런 걸 바라고 한 말이 아니었어...!"
이리하는 계속해서 그를 물통에서 떨어트리려고 했지만, 도저히 불가능 했다. 그러나 칼린이 그렇게 강한 것에 의문을 가질 여유조차 없었다. 그녀는 결국 지쳐서 칼린을 뒤에서 안은 상태로 고개를 떨구었다.

"미안... 미안해...!"
칼린은 자신의 등가가 젖어가는 것을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 이리하가 울고 있다. 왜 우는 지 모르겠다. 아직 너무 멍하다.

"이건 당연한 게 아니야...! 칼린! 당연한 게 아니야!"
소리지르지 말아줘요. 머릿속이 너무 울리네요. 이리하, 소리가 너무 커요. 울지 말아요.

"언젠가... 언젠가 너를 구해 줄게...!"
이리하는 칼린을 끌어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칼린은 그저 닦던 손을 멈추고, 이리하의 흐느낌이 멈출 때까지 가만히 앉아 있었다.



"돌아오지 않는다."
차다레마는 이제 확실히 말할 수 있었다.

"쿠탕카의 돌격대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럼 전부 죽었다는 건가?"
"그건 모른다. 하지만..."
차다레마는 말을 아꼈다. 그리고 입을 다시 열었다.

"생포된 동료들이 있을 수도 있다. 내일 아침 내가 직접 참전하여 상황을 보겠다."
"만약 생포된 동료들로 협상을 요구한다면?"
고령의 노인, 쿠탕카의 아버지이다. 다음주까지 아무것도 얻어내지 못한다면 그도 죽으리라.


"...바람은 협상하지 않는다. 그 때는 전부 죽일 뿐이다."
차다레마는 그렇게 말하고 곰방대를 꺼냈다.  작은 마을에서 쿠탕카를 이겼을 리는 없다. 새로운 전략들을 꺼내기는 했지만, 오래갈 전략은 아니었다. 애초에 훈족이 공포로 길들였던 마을이다. 이제 와서 쉽사리 저항할  있는 두려움이 아니다.


차다레마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만월이 가까워지고 있다. 더 오래 끌어서 좋을 것은 없다.






갤러한은 누워있었다. 리쿠르트의 편지를 읽어야 했지만 글이  안에 들어오지가 않았다. 그의 머리속은 계속해서 전장에서 칼린을 만났던 그 때를 재생하고 있었다.


반토막난 가면사이로 보이는 그의 얼굴. 혐오감과 고통으로 일그러진 눈가에 비해, 진심으로 다행이라는 듯 웃고 있는 입가. 반 토막으로 잠깐  얼굴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얼굴을 지워낼 수 없었다.


그 얼굴을 갤러한은 많이 보았다. 최근에도 보았었다.  때는


'해롤드.'
그래. 라무르 마을의 자경단원이었던. 그자도 비슷한 표정을 지었었다.

"하, 씨발..."
갤러한은 씹는 담배를 꺼넀다. 칼린의 그 반응은 많은 것을 알려준다. 네크로맨서 때와 반응이 달랐다. 죽고 싶어하던 노인네를 죽인 것과는 조금 다른 감각일 수도 있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한번 사람을 죽여 본 놈이 그렇게까지 정신을 놓아버릴 일은 아닌 것 같았다. 어쩌면 자신만 이해 못하는 섬세한 감성에 관한 문제일지도 모르고, 어쩌면 갤러한이 그러길 바라고 있어서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일 수도 있다.


갤러한이 원하는 것. 그것은 칼린이 어쩌면 네크로맨서를 죽이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것.


그렇다면 칼린은 이번이 첫 살인이 된다. 설령 그렇다고 해도 과도한 반응처럼 보였지만, 어쨌든 조금 더 말이 된다.

그가  정답을 원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만약 그렇다면 칼린은 영주에게도 숨기는 것들이 있다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갤러한은 기꺼이 칼린에게 손을 뻗을 것이다.


갤러한은 머리를 비우기 위해서 리쿠르트의 편지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더 머리가 복잡해질 만한 편지 내용에 씹는 담배를 삼킬 뻔했다.

'8영주 미쉘이 네르바로 보낸 자신의 사병들에게 연락이 오지 않는다고 했대요. 그거 괜찮은 거예요?'
전혀, 전혀 괜찮지 않다. 그는 바로 요나에게 달려갔다.

"지휘관님!"
"뭐냐."
요나는 평소와 같이 경계선에 서있다. 그녀는 황량한 벌판 곳곳에 허수아비처럼 꽂혀 있는 막대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막대들이 무엇인지는 갤러한도 알고 있었기에 조용히 넘어갔다.


"여기..."
갤러한은 리쿠르트의 편지를 요나에게 건내 주었다. 연애편지부분은 되도록 보여주고 싶지 않았지만, 급한 내용이었던 지라 어쩔 수 없었다. 요나는 가만히 그 편지를 바라보고서 갤러한에게 돌려주었다.


"어쩔 겁니까? 후퇴인가요?"
"후퇴할 이유가 어디에 있지?"
"하지만 지원병력에게 연락이 오지 않는다고-"
"8영주중 단 한명이다. 나머지 70도 오지 않는다고 확신하나?"
갤러한은 그 말에 입을 다물었다.


"미쉘의 병력이 도착하지 못한 게 아닐 수도 있어. 단순히 피차 못할 사정으로 연락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일수도 있지."
"하지만... 그건 모르는  아닙니까?"
"그래. 모르는 정보때문에  영지를 버리고 도망치려는 것인가?"
그 말은 확실히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군인인 요나는 납득할  있는 말일지 몰라도, 떠돌이인 갤러한은 납득하기 힘든 말이었다.

"이대로 계속 버틸 수 있는 것도 아니잖습니까..."
"앞으로 6일이다, 갤러한. 6일만 더 버티고 어떤 지원병도 오지 않는다면 그때 부터가 진짜 농성전이 되겠지."
요나는 그렇게 말하고 그 막대들을 바라보았다.


"이 소식은 비밀로 하거라. 아군 내에 동요가 퍼지면 겉잡을 수 없어.  그래도 부상자와 쇼크자의 수가 많다."
갤러한은 뭔가 더 말하려고 했지만 지금 자신의 신분이 군인이라는 것을 떠올리고 입을 다물었다. 그가 돌아가려 할 때, 요나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아, 그리고 갤러한."
"...네?"
"실제로   실력은 어떻던가?"
그 난전 사이에서 자신의 시선까지 눈치챘던 것인가. 갤러한은 등골에 소름이 올라왔다.

"...전차라는 별명은 괜히 지어진 게 아니더군요."
"하하, 부끄럽군."
호탕하게 웃은 요나는 다시 정면을 돌아보았다. 기분 탓일까, 요나는 오늘 상당히 기분이 좋아 보였다. 기마부대가 압승을 거뒀으니 당연한 일이라고, 갤러한은 그렇게 납득하고 등을 돌렸다.


아침해가 뜨고 충족은 태양과 함께 말을 움직였다. 30명의 소규모 부대가 재빠르게 황야를 파고 들어갔다. 그리고 평야에 설치물이 걸려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저, 저건..."
막대들이 꽂혀 있다. 그냥 막대에 끝은 둥그런 완드와도 같이 생긴 것이다. 아직 해가 다 뜨지 않아 실루엣밖에 보이지 않는다.

"저게 뭡니까...?"
차다레마도 대답할 수 없었다. 지금은 그저 자리를 유지하며 해가 뜨기를 기다릴 뿐이었다. 이윽고 등지고 있던 태양이 솟아오르며 그들의 시야를 밝혀갔다.


맨 앞에 꽂혀 있는 막대가 선명하게 차다레마의 시선을 빼앗았다. 그 막대에는 쿠탕카가 있었다. 굳이 정확히 말하자면, 쿠탕카의 머리만 꽂혀 매달려 있었다.

연분홍색으로 덩굴 식물 마냥 막대를 감싸고 오르며 머리에 얹어져 있는 것은 창자였다. 차다레마는 참담한 심정으로 말을 조금  가까이 끌고 갔다.


가까이에서 본 쿠탕카의 얼굴은, 그것 마저도 유린당한 상태였다. 이빨이 전부 뽑혀서  빈 입 안에는 그의 머리를 관통한 막대가 보이고 있었고, 그녀와 결혼한 뒤 땋았던 자랑스러운 흑발은 전부 뽑혀 있었다. 강제로 쥐어 뜯긴 것인지 두피가 찢어져 붉게 벗겨져 있었다.


눈구덩이는 살색으로 매워져 있었다. 그 자리에 있던 것은 눈알이 아닌 고환이었다.


막대들은 하나하나가 그런 것들 뿐이었다. 어제 공격을 나섰던 26의 공격대 전원이  꼴로 안식을 취하지 못하고 있었다. 차다레마는 적의 견제조차 잊고서 말에서 내려 쿠탕카의 말로에 다가갔다. 그 막대의 아래에는 윌레인 글자로 붉게 글이 적혀 있었다. 차다레마는 곁눈으로 배웠던 모자란 윌레인어 실력으로 떠듬떠듬 그것을 해석해 보았다.

'태양을 사랑하는 자, 윌레인에 저항하지 마라.'
당했다. 크게 당했다. 차다레마는 분노와 슬픔에 몸을 떨었다. 뒤에서 대기하는 그녀의 전사들도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바로 가자, 차다레마...! 저들이 삶을 후회하게 만들자!"
"안돼. 일단 돌아간다...!"
그 광경을 보고도 차다레마는 그런 판단을 내렸다. 전사들의 반발이 시작되었다.

"이걸 보고도 그냥 지나친다는 말이냐?"
"진정해라. 저들은 우리와 똑같은 수를 썼을 뿐이다."
차다레마는 자신의 말로 돌아와 다시 말에 올라탔다.


"처음보는 일이지. 묘하게 충족된 자신감과 사기, 소수였다고는 하나 쿠탕카가 지휘하던 공격대를 전멸시킬 정도의 전투력. 놈들도 변화를 겪고 있어. 그리고 이정도로 급진적인 변화가 필요한 것은... 놈들도 위기라는 것이다."
차다레마의 꽉 깨문 아래입술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쿠탕카가 어떤 전략에 당했는지 모르는 지금 이정도의 병력으로는 위험하다. 돌아가서 진형을 다시 짠다."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충족의 전사들은 흐르는 눈물을 닦아냈다. 그리고 심장에 손을 대며 눈을 감았다. 그들 만의 추모방식이다.


"맹세컨데, 저들의 땅에 풀 한포기조차 자라지 못하게 하리라!"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눈을 부릅 떴다. 그리고 왔을 때만큼 빠르게 전장을 벗어났다.

진정한 의미의 총력전이 시작되려 할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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