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6화 〉병(충)해
"전원! 방향 틀어!"
쿠탕카는 그렇게 소리쳤다. 옆에 있던 여성은 이해가 가지 않는 다는 듯 항변했다.
"이대로 정면으로 가는 게 더 좋다! 후방은 일곱밖에 안되니까, 차라리 정면으로 계속 달리자!"
"저 일곱이 위험해! 전원 방향 틀어라!"
그는 그렇게 말하며 말머리를 돌렸다. 화살 방향을 틀어내는 그가 말머리를 돌린다면, 어쩔 수 없다. 충족 전원이 말머리를 돌리기 시작했다.
"뒤에서 날아오는 화살은 내가 견제한다! 나머지는 저 일곱을 상대해!"
쿠탕카는 말에서 몸을 돌렸다. 즉, 말을 뒤로 타기 시작했다. 이미 인간의 기술이 아닌 수준이었다. 그 상태로 그는 뒤에서 날아오는 화살들에게서 자신의 동포들을 지키기 위해 집중했다.
칼린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기껏 땅을 밟게 되었지만 그에게는 지금부터 가 고뇌의 시작이었다. 달려오는 충족들을 마주하며, 그는 자신의 쌍수도를 더 단단히 쥐었다.
"파고들어가라!"
그 말과 함께 일곱은 전진했다. 칼린은 이십을 조금 넘어가는 적의 병력을 보며 눈을 질끈 감았다.
"눈 떠, 칼린!"
이리하가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검을 빼 들었다. 그녀가 원래 사용하는 대검이 아닌 윌레인 제식검이었다. 그녀의 대검은 말 위해서 사용하기에는 너무 크고 무거웠다.
곧 일곱은 그 병력들을 마주했다. 적들은 곡도를 휘두르며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의 눈에는 어떠한 망설임도 보이지 않았다. 하나같이 승리를 확신한 얼굴이었다.
병력이 섞인다. 퍼져 나간다. 기마부대가 성공적으로 충족과 마주하게 되었다.
난전이다. 충족은 서로 말 한 마리 분의 거리조차 남기지 않으며 그들을 감싸온다. 허점이 없는 포위처럼 보이지만, 개개인의 근접전 실력은 아무래도 요나의 부대원들이 앞선다.
"아악!"
하나 둘 씩 베이고 쓰러져가는 충족의 전사들 앞에서, 칼린은 그저 공격을 자동반사적으로 막아내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기초 근력이 다른 이 세계의 전투에서는 단순히 검만 나누고 있는데도 부상의 정도가 달랐다. 마치 싸구려만화책에서 나오는 연출처럼, 요나가 검을 한번 휘두르면 충족 전사의 목이 두 개 정도씩은 날아다니는 것 같았다.
다른 모두도 망설임없이 적의 목을 베고 있었다. 아니, 그럴 것은 알고 있었다. 살려면 죽여야 하는 세계니까. 여기서 이질적인 것이 자신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죽이려 드는 적을 죽이는 짓에 망설임이 들어갔다.
칼린은 자신에게 덤벼오는 적들을 죽일 수 없었다. 소극적으로 방어만 하던 그는 어느새 세명에게 둘러쌓여 공격당하고 있었다. 칼린에게는 벅찬 상대였다. 그렇다고 도망칠 수도 없게 된 상황이었다. 칼린은 자신을 더 몰아넣었다. 이 모든 것이 자신의 약함 때문이라는 것을 알기에 더 자신을 극한까지 밀어 넣었다.
그리고 자신을 막아 선 병사의 뒤로 갤러한이 보였다.
갤러한은 승마가 조금 어색했다. 하지만 륑게의 말을 메뉴얼 그대로 따른 덕분에 어찌저찌 무사히 목적지점에 도착은 할 수 있었다.
그는 눈앞의 적들을 베어 가르며, 간간이 자신의 도구들을 꺼내 사용하며 맞서 싸웠다. 그래, 사실 이쪽이 더 편한 일이다. 그에게 이번일은 지난 두개의 일보다 긴장감이 옅었다. 그래서 그는 요나에게 시선을 돌리며 싸웠고, 그게 그의 실수의 원인이었다.
한순간, 단 한순간이었다. 그의 뒤로 남들보다 머리 하나정도는 더 큰 남자가 검을 내리 찍었을 때, 갤러한은 우연이라고도 할 수 있는 반사적인 반응으로 내려오는 검을 막아냈다. 그리고 전신에 충격이 전달되며 협곡을 내려올 때 다친 허리에 강한 충격을 느꼈다.
갤러한은 검 째로 눌려서 뒤로 낙마했다. 그대로 내리 찍혀 오는 검을 피하기 위해 옆으로 굴렀다가 말의 발굽에 머리통이 찍힐 뻔했다. 실력을 보니 그의 상대는 간부정도는 되는 듯 하다. 위험하다. 갤러한은 그렇게 생각하며 급하게 몸을 일으켰지만, 적은 그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그의 검이 갤러한의 머리 위로 내리 찍힐 때였다.
갤러한은 눈을 질끈 감았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자, 그는 적어도 안 아프게 뒤진 것이라 생각하며 눈을 떴다. 그의 눈앞에는 목을 따라서 오른쪽 어깨까지 전부 잘려 나간 시체가 서 있었다. 그 시체는 곧 힘없이 말에서 미끄러져 내렸다. 넘어지는 시체의 사이로, 가면의 절반정도가 쪼개져 없어진 칼린이 이마에 피를 흘리고 있었다.
이리하는 능숙하게 제식검을 사용하며 적들을 척살 중이었다. 그녀는 원래 소형검이 더 익숙하다. 이 전장에서도 그녀는 실력을 조금 감출 만큼의 여유가 있었다.
그녀가 갈색 머리를 한 충족 여성의 머리를 베어 냈을 때였다. 우연히 칼린이 그녀의 시야에 들어왔다. 그는 세명에게 둘러 싸인 상태로 삼면의 검을 막아내며 어딘가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었다. 이리하가 그 시선을 따라가 보니, 갤러한이 위기였다.
그녀는 빠르게 상황판단을 해보았다. 갤러한에게 가는 것은 늦었다. 여기서는 칼린도 무너지기 전에 그를 둘러싼 세명을 베어내야 한다. 그렇게 판단하고 몸을 기울였을 때였다.
칼린은 자신의 정면을 막고 있는 자를 향해 돌격했다. 그리고 정면에서 날아오는 검날을 스쳐 보내며, 말의 옆구리를 다리로 잡고 매달려서 적을 완전히 토막내 버렸다. 가면이 갈라질 정도로 아슬아슬하게 피한 것이었지만, 그것이 칼린을 막지는 못했다. 그는 그 상태로 고삐를 당기며 자신의 몸을 다시 안장 위로 올린 뒤, 당황하고 있는 나머지 둘의 목을 베어냈다. 그리고 망설임없이 갤러한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마침내 갤러한을 무너뜨린 남자의 뒤까지 도착한 그는, 거구의 남자가 미처 대응조차 하지 못할 속도로 그의 쌍수도를 휘둘렀다. 곧 남자의 몸이 갈라지며 무너졌다. 그 장면 까지만 보았을 땐 그저 칼린이 정신을 차렸다고만 생각해서, 이리하는 등을 돌리려고 했다. 그러다가 반쪽 난 가면을 통해 그의 얼굴을 봐 버렸다.
"...안돼."
이리하는 그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던걸까. 그에게 사람을 죽이는 명분으로 동료를 뒀던 것이 잘못이었을까. 그녀는 한순간 자신이 전장이라는 것도 잊고 몸을 떨었다.
칼린이 무너지고 있었다.
한명을 죽였다. 나의 눈앞을 막았기에.
둘을 더 죽였다. 등 뒤로 나를 막으려 했기에.
거기서 한명을 더 베어 갈랐다. 갤러한을 죽이려 했기에.
이리하. 그런거였군요. 제가 안 움직이면 이 싸움이 더 길고 고되겠군요. 더 많은 사람이 죽겠군요. 전 이 자리에서도 제 나약함을 방패로 이기적으로 굴었네요.
굵은 피부를 찢어내며, 단단한 근육을 갈라내며, 핏줄과 신경들이 검날을 따라 투둑, 하고 끊어지는 것을 느끼며, 어떻게든 검이 지나가는 것을 막아보려는 이젠 의미도 없는 뼈까지 전부 베어 가르면
그 뒤로는 갤러한이 있다. 다행이야. 죽지 않으셨군요.
"괜찮아요, 갤러한?"
스스로의 목소리가 침착한 걸 알았을 때, 자신이 벌써 넷이나 죽인 것을 알았을 때, 앞으로 더 죽일 것을 아는데도 큰 동요가 느껴지지 않을 때. 이게 당신들이 보는 세상이구나, 하고 웃음밖에 나오지 않네요.
"칼린, 너..."
검이 가볍다. 원래 이렇게 가벼웠나, 왜 그렇게 무겁게 느껴져 왔을까. 이정도 무게면 천 번도 휘두를 수 있다.
"빨리 일어나세요. 아직 전장이예요."
이해가 간다. 저들의 눈에 내가 얼마나 짐덩이였을까. 이 쉬운 일을 못해서 망설이는 내가 얼마나 밉상이었을까.
그런데 왜 나를 그런 눈으로 보시나요. 난 이제서야 당신들의 시야를 가지게 되었는데.
"대장!"
쿠탕카는 눈과 코에서 피를 흘려 대고 있었다. 마나가 고갈에 가까워져서 생기는 현상이다. 그는 붉어진 눈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서로 얽혀 있는 난전이었기 때문에 적과 아군의 상황을 판별해 낼 수 없었다.
"하타와 아스라이가 죽었어!"
정면에서는 화살을 쏘는 것을 멈추었다. 후방과 전방 사이에 일종의 통신수단이 있는 건가, 하고 쿠탕카는 뒤를 돌아보았다. 더이상 정면을 경계할 필요는 없다.
"둘 다.. 둘 다 죽은 거냐?"
"허-ㅂ"
말을 하던 병사는 뒤에서 날아온 검 격에 목이 날아가 말을 끝내지 못했다. 쿠탕카는 눈도 깜빡하지 않고 자신의 피와 함께 그 병사에게서 튄 피를 닦아냈다. 시체를 밀어내며 그에게 다가온 것은 륑게였다.
"륑게... 부족을 배신하고 네 형제자매를 직접 죽인거냐."
"니미, 내 형제는 늑대밥이었수다."
륑게는 비웃듯 말하며 곡도에 묻은 피를 털어냈다. 기름기나 살점같은 것이 미묘한 소리와 함께 바닥으로 떨어져 나갔다.
쿠탕카는 눈을 감고 먼저 간 자신의 남동생과 여동생을 애도했다. 그들은 먼저 바람이 된 것이다. 그리고 그도 금방 따라갈 것이라는 확신이 왔다.
'미안하군, 차다레마. 들어가지 말았어야 했다.'
그렇다면 적어도 마지막 싸움을 강렬하게. 적어도 배신자 륑게의 목을 조공으로 가져간다. 거기까지 생각한 쿠탕카는 검을 높이 들어 올렸다.
"이게 내 마지막 싸움이 될 듯하군. 덤벼라, 륑게."
"가오부리지 마쇼. 금방끝날테니까."
둘은 무기를 부딪혔다. 서로 같은 검에 비슷한 실력이었다. 그러나 쿠탕카의 마나가 고갈된 지금, 유리한 것은 륑게였다.
"솔직히 당신이 와줬으면 했어. 당신이 온다면 그런 선택을 할거라 생각했거든."
"잘난 듯 말하기는."
둘의 검이 계속해서 교차되었다. 양쪽 다 이런 혈투속에서도 일종의 향수를 느끼고 있었다. 같은 유년기를 보냈던 자들이었기에 느껴지는 미묘한 감정. 이상하게도 적대하면서도 서로 증오에 가까운 적대심은 생겨나지 않았다.
"머리 땋은 거 보니 결혼 했구만. 상대는?"
"네가 몰라도 된다."
"딱 봐도 차다레마지. 몇 번째 신랑이냐?"
쿠탕카는 대답하지 않는다. 그저 웃음으로 답한다. 전신이 욱씬거리며 머리가 쪼개질 듯 아프다. 손가락 하나만 움직이는 것도 꽤 큰 고통이 수반된다. 그럼에도 정신력으로 어떻게든 버텨내며 륑게와 검을 맞대고 있었다.
륑게는 모두가 걱정했던 것이 완전히 헛 걱정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고 있었다. 비록 버린 고향이기는 했지만, 오랜만에 만난 고향친구는 퍽 반가웠다. 그 망설임이 륑게의 검을 느리게 하고 있었다.
"이봐, 쿠탕카..."
"아무 말 하지 마라."
단호한 대답. 그는 륑게의 검에 망설임이 생긴 것을 눈치챘다.
"도망칠 수 없는 싸움이라면 적어도 하나라도 더 베고 죽겠다. 나의 동포들과 같은 무덤에 묻혀 바람이 되겠다. 죽이지 못하겠다면 죽여라, 륑게."
륑게는 그의 눈 너머에 각오를 확인한다. 그래. 륑게는 충족의 이런 점도 참 싫었다. 싫을 정도로 죽음을 가볍게 수용한다.
"...좆같네, 진짜."
륑게는 그렇게 말하고서 곡도를 들어 올린다. 쿠탕카도 검을 들어 올렸다. 아직 그의 얼굴은 곧 죽을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더 싸울 수 있었다. 그리고 검이 마주하기 직전에
그의 목에 밧줄이 감겨 왔다.
"무슨-"
쿠탕카는 말에서 뒤로 끌어내려졌다. 뒤로 넘어진 그는 고통스러운 듯 밧줄을 잡고 얼굴을 찡그렸다.
"미안하지만, 지휘관은 죽이지 말아 보라고."
라드였다. 륑게는 이를 꽉 물며 그를 노려보았다.
"이게 무슨 짓이지?"
"말 그대로지. 지휘관은 아직 살아있어야겠거든. 요나님의 명령이다."
륑게는 비참하게 잡혀버린 쿠탕카를 바라보았다. 밧줄을 끊지는 못해도 적어도 그를 여기서 죽여주는 것이 맞는 선택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라드는 그것도 허락할 수 없다는 듯, 그 거구의 남성을 끌어당겼다.
"이자는 내가 거점으로 먼저 데리고 가지. 다이긴 싸움이다. 확실하게 전멸시키라고, 륑게."
그는 그 말을 남기고 입가를 끌어 올렸다. 늑대가 웃는 듯한 모습. 륑게는 지금 이 모습이야 말로 라드의 본질이라고 생각했다.
"DKSEHO, SKF WNRDUEKDH!"
"하하, 뭐라는 건지."
라드는 결국 소리지르며 저항하는 쿠탕카를 밧줄로 매달아 질질 끌고 갔다. 마나까지 고갈된 그는 맥없이 밧줄을 양 손으로 움켜쥐고 끌려가고 있었다. 륑게는 그런 그를 바라보다가, 애초에 향수(鄕愁)같은 환상에 빠져 있었던 자신을 탓하며 다시 검을 들어 올렸다.
요나의 기습 기마부대, 10명중 생존자 6명. 적 충족의 정찰 및 교란부대, 26명중 생존자 한 명. 완전한 승리였다.
쿠탕카는 뒤늦게 눈을 떴다. 몸을 움직일 수 없어 자신의 상태를 보니, 그는 알몸에 밧줄로 포박당해 있었다. 그의 주변에는 비쩍 마른 병사들이 눈에 불을 키고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눈 뜨셨군. 자, 봐라. 이게 우리 화살을 굴곡시킨 놈이야."
모래먼지로 쌓은 탑에 해초를 얹은 것 같은 인상의 남자는 그렇게 말했다.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아무래도 좋은 의미로 말하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륑게, 통역 부탁한다고."
그 모래먼지같은 사내의 옆에는 륑게가 있다.
"충족의 남은 병력수랑 말이 남은 수, 그리고 가진 물자 보유량을 물어봐."
"...충족에게 남은 병력, 말, 식품분량을 말해."
륑게가 담담히 그렇게 묻는다. 쿠탕카는 그 질문에 륑게에게 침을 뱉는다. 흥분해서 달려들려는 비쩍 마른 병사들을 륑게가 멈춰 세운다.
"저건 무슨 뜻이지?"
"...얼굴에 침이나 뱉겠다는 뜻이지. 설명해줘야 아냐?"
륑게는 라드에게 건내 받은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아내며 말한다. 라드는 그저 웃는다.
"그러면 다음은... 그래. 전부 불면 살려준다고 해봐."
"라드씨! 충족은 전부 죽여버린다는 거 아니었습니까!"
병사들의 반발에 라드는 눈을 반쯤 뜨며 손을 휘휘 흔들었다.
"알아, 알아. 근데 저놈은 그거 모르잖아? 쟤가 살자고 동료파는 거 보고싶지 않냐?"
지원병력이 올 때까지 일주일도 남지 않았다. 이제 와서 적의 상황을 알아 봤자 크게 바뀔 것도 없다. 이 자리는 순수한 여흥을 위해 만들어진 자리였다. 요나가 허락하고 라드가 주도하는 사적 복수의 자리였다.
"뒤에 말은 번역하지 말고. 알지?"
라드는 그렇게 말하고 윙크했다. 륑게는 올라오는 분노를 삼키며 입을 열었다.
"...넌 죽을 거다. 어떤 수를 써도 죽어. 우린 이미 니네들 정보같은 건 필요 없어. 곧 지원부대가 온다."
륑게의 말에 쿠탕카는 그를 바라본다.
"적어도 편하게 죽는 길을 골라라, 쿠탕카. 저들의 비위를 맞춰."
쿠탕카는 가만히 륑게를 바라보다가 호탕하게 웃었다. 그리고 륑게를 노려보았다.
"QKFKADMS RHROFMF TNRDLWL DKSGSMSEK. TMCUWLSKF qNSDLEK."
륑게는 그 말을 듣고서 쿠탕카와 시선을 나누었다. 그리고 조용히 담배를 꺼냈다.
"뭐라고 하던?"
라드의 질문에, 륑게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가만히 연기를 빨아들였다.
"죽이란다."
그리고 륑게는 발을 돌렸다. 뒤에서는 그 대답을 기다렸다는 듯 환호성이 들려왔다. 그는 뒤돌아보지 않으며 씁쓸한 감정까지 연기와 뱉어 내려 했다. 그리고 그 때, 뒤에서 라드가 팔을 걸어왔다.
"뭐ㅇ-"
"륑게, 번역이 서투르던데."
륑게는 열던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라드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뭐, 비난은 하지 않아. 잘 해 줬어."
라드는 그를 보며 웃은 후 륑게보다 앞서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륑게는 그 자리에 멈춰 서서 가만히 하늘을 바라보다가 담배를 비벼 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