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9화 〉병(충)해
'슬슬이라고 생각한다.'
3일이 지나고 8영주에게서 출발명령이 떨어졌다. 요나는 모든 준비를 끝마쳤다. 설령 있을 함정에도 대비가 되어있다.
'전후 복구부대의 세번째 임무, 충족 토벌 병력이 모일 때까지의 농성전. 상시대기를 하라고 했으니 준비시간을 줄 필요는 없겠지.'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내일 새벽에 바로 출발하도록. 비나흐부터 열차를 타고 네르갈에 도착하면 거기에 마차가 준비되어 있을 것이다. 2, 3일이면 가겠지.'
8귀족의 연락은 17시에야 온 것이다. 반정도는 노림수 이리라. 어떻게든 딴지를 잡으려는 거겠지. 열차 탑승을 허가한 것이 마지막 양심일 것이다. 요나는 눈을 감고 잠깐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부대원 전원 준비를 끝마친 상태입니다. 내일 05시에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무리하는 것은 아니겠지. 알겠다.'
약간 언짢음이 느껴지는 말투. 요나는 거기에서 그의 언짢음 만큼의 통쾌함을 느꼈다,
"들었나, 칼린?"
칼린은 눈을 감고 정좌중이었다. 평온한 표정에 비해 몸에는 식은 땀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네."
그는 감았던 눈을 뜨며, 묘한 호흡패턴을 유지하면서 대답했다, 요나는 그 모습을 보며 웃었다.
"다 모인 거냐?"
갤러한은 여관에 모인 인원들을 한 명씩 세어 보았다. 왠 일로 이르다면 아직 이른 시간임에도 전원이 모여 있었다.
"뭐, 상시 대기 상태였으니까."
륑게가 입을 삐죽 댄다. 그 이름도 애매한 기간때문에 술도 제대로 못 마시고 한가롭게 있었다. 그리고 그랬기에 기운 넘치는 꼬맹이의 승마선생이나 해주며 시간을 버렸다.
"뭔 일인데 다 부른게냐?"
아스타와 도르베는 땀범벅으로 갤러한을 올려다본다. 둘은 매일마다 대련을 하며 서로의 실력을 향상시키고는 했다.
"칼린이 전해달라고 해서 말이야. 내일 아침 5시에 출발하게 될 거래. 라드에게는 칼린이 말을 전하러 갔어. 다들 준비됐지?"
"잠깐, 난 아직 승마를 배우지도 못했-"
"에이씨, 활 쏘는 법 배웠으면 기마전은 끝난 거야."
륑게는 도르베의 머리를 누르며 말했다.
"애초에 지금 와서 기마술을 배워 봤자 그걸로 충족은 못 이겨. 욕심부리지 말고, 이번엔 그냥 농성전만 하면 되는 거니까,:
"그런가... 미안하다, 성가시게 만들었군."
도르베는 퍽 얌전하게 륑게의 말을 받아들였다.
"그러면 전달사항은 전했다. 나도 영주에게 직접 들은 건 아니니까 무슨 질문해도 대답 못해줘. 이번 일에는 유서는 필요 없다더라. 쓰고 싶은 애들은 쓰던가."
갤러한은 그렇게 말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는 이 전달사항 때문에 리쿠르트와 일찍 헤어진 것 때문에 썩 유쾌하지는 않았다.
"라드씨, 계세요?"
칼린은 노크하기 전에 먼저 말했다. 조용한 문 뒤로 라드가 문을 열었다. 그는 오늘도 망토를 두르고 있었다.
"왜 항상 망토를 두르고 계세요?"
"너가 가면 쓰고 있는 이유와 비슷하지."
라드는 웃으며 문을 열어 주었다. 칼린은 그대로 그의 집 안으로 들어갔다.
"매번 늦은 시간에 오는 군, 이번에는 무슨 일이지?"
라드는 묘한 긴장속에서 질문했다. 만약 요나가 또 부른 것이라면. 그런 생각이 들어서였다.
칼린도 그의 미묘한 분위기를 감지했다. 그러나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영주님께서 내일 오전 5시에 출발하기로 했다고 전달해 달래요."
"...아, 그건가."
묘하게 풀린 긴장에 칼린도 다시 호흡을 잡았다.
"항상 여기까지 오게 해서 미안하군. 고맙다."
"아뇨, 영주님 명령이니까요."
칼린은 웃으며 대답하고 '슬슬 라드씨도 여관으로 오시던가요'하고 덧붙였다. 라드는 별 말 없이 웃음으로 답했다.
"지난번처럼 술이라도 같이 마시고 싶지만, 더 늦으면 마부분도 곤란할 테니까요. 먼저 가 볼 게요."
"아무래도 오늘은 못 붙잡겠네. 아침에 보자고."
라드는 그렇게 말하고 칼린을 내보냈다. 그리고 다시 방으로 들어가 하던 것을 꺼냈다, 테이블 위에는 11개의 각자 색이 다른 조약돌이 있었다.
"자... 그러면 어떻게 손질을 해야 할까..."
라드는 그렇게 말하며 조약돌들을 훑어보았다.
아침, 이제는 익숙한 모집현장이다. 다만 달라진 것이 두가지가 있다. 마차는 그들의 달라진 대우를 뜻하는 듯 큰 것으로 지급되어서, 10명이 마침내 한 마차에 탈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요나까지 그들과 동승한다는 것이었다.
"조세핀경, 믿고 맡기겠습니다."
"좀 떨리네요. 금방 돌아오실 거죠?"
"뭐, 별 일 없을 겁니다. 휴가라고 생각하시고 편하게 기다리시죠."
요나는 늠름하게 웃으며 인사하고 마차로 발을 옮겼다. 그리고 마차가 비나흐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조금 긴장된다."
아스타가 도르베의 귀에 속삭였다. 도르베는 깜짝 놀라 그녀에게서 떨어졌다가, 곧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
"갑자기 들어오지 마라... 그리고 이번 일은 그렇게 어렵지도 않다니까. 나로서는 오히려 네크로맨서 토벌 때보다 마음이 가볍다."
"아니, 일은 뭐 유서도 필요 없다니 별 긴장 안되는데..."
아스타는 도르베의 반응에 반정도는 놀란 듯, 반정도는 우스운 듯 그를 바라보며 작게 말했다.
"우리 이번 임무는 영주랑 같이 하는 거니까. 상관이랑 같이 일하는 건 좀 쫄리지 않냐?"
도르베는 맞은 편의 요나를 바라보았다. 요나는 왜 인지 이리하를 노려보며 칼린을 가슴께로 누르고 있다.
"... 확실히, 조금 쫄릴지도 모르겠군."
"아, 쫄린다고 했다."
"안 했어."
도르베는 단호히 말하고 칼린을 바라보았다. 다시 가면을 쓰고 있는 모습. 영주의 앞에서 가면을 벗는 것은 불가능 하겠지.
이리하도 칼린을 보고 있었다. 지난 임무에서 칼린은 가면을 벗었었다. 모두와의 거리가 한 층 가까워졌었다.
하지만, 지금 그는 다시 가면을 쓰고 영주라는 벽까지 생겨 버렸다. 이리하는 영주가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분명 상회와도 말썽이 있다고 했었지. 교주가 말한 것으로 보아 상회는 디알테스트그롬과 직접 관여된 다임상회일 것이다. 가만히 지켜보면 다임상회에게 자멸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마레의 수완이 생각보다 뛰어나 그녀는 지금 상승가도에 오르고 있었다.
이리하는 가만히 기다린다. 요나는 대놓고 이리하를 경계 중이지만, 그녀는 이것이 차라리 기회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칼린과 요나 사이의 관계를 먼저 파악해 내고, 칼린의 의존을 조금씩 해소시키면 된다, 지금 칼린의 의존은 이상할 정도이다. 어차피 정상적인 관계는 아니리라.
지금은 상황을 보고 있지만, 어차피 영주라는 직책은 그들 조직의 적이다. 가난한 민중의 영웅이었을 때나 유예 대상이었지, 이렇게 계속 상승가도를 밟고 있다면 점점 그녀를 봐 줄 요소는 사라진다.
그러니 계속 지켜보자. 몰락할 귀족에게서 칼린을 꺼내자.
하루만에 마차는 비나흐에 도착했다. 마차는 조용했다. 시끌벅적하게 가기에는 영주의 존재가 너무 컸다, 부대원의 절반은 자신의 지휘관을 못 믿고 있는 상황이었으니 당연했다.
비나흐는 근대에 가까운 형태였다. 오히려 왕도보다도 건물들이 근대에 가까운 형태였다. 하지만 왕도는 칼린 전생의 지식에 빗대어 보자면, 미야자키 하야오의 세계관에 가까운 형태였다. 비나흐는 그저 중세의 양식으로 근대기술을 재현해 낼 만큼 부유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물론 그게 비나흐를 초라한 도시로 만드는 것은 아니었다. 전상민은 그에게도 익숙한 철도를 보며 한번, 아치형으로 빛이 투과되는 천장을 가지고 있는 근대적인 디자인의 역에 두 번 감탄했다. 마치 전생에 본 밀라노역과 비슷한 분위기였다. 물론 내부까지 근대적인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철로 만들어진 표지판만 보아도 그에게는 상당히 근대적으로 보였다.
"좋느냐, 칼린."
"맙소사, 정말 멋진 곳이예요!"
칼린은 신나서 웃다가 곧 벨카의 영주인 요나에게는 기분 나쁜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녀도 칼린과 마찬가지로 즐거워 보였다,
"그렇다면, 벨카의 철도역도 이런 식으로 만들자꾸나. 네가 좋아하니 말이다."
그래, 일이 잘 풀린다면 벨카에도 곧 철도가 깔린다. 그런 계약이었다. 요나도 이 철도역은 인상깊게 보일 수밖에 없다.
"아뇨, 벨카의 특색을 살려야죠!"
신나서 떠들어 대는 둘을 바라보던 이리하는 그 철도를 다시 돌아보았다.
비나흐의 열차는 빠르기로 유명하다. 그건 열차 자체의 속도도 속도지만, 철로가 최남단의 네르바까지 직통으로 이어지기 때문이었다. 사이 정류장은 단 네 개. 부유한 도시만을 지나는 귀족들의 관광용 열차. 게다가 마도 방식을 이용하는 열차이다.
설마 이 끔찍하게 일그러진 탐욕의 산물을 임무때문에 타게 되는 일이 생길 줄은 몰랐다. 그래도 타이밍은 확실히 신이 내렸다고 밖에 할 수 없다. 한달정도만이라도 더 늦었다면 이 열차를 타고 가는 짓은 못 했으리라.
이리하를 제외한 모든 부대원들은 처음 접하는 열차에 신나서 올라탔다. 8영주의 이름 아래 그들은 열차 내 개인실을 사용할 수 있었다. 네르바를 향해, 열차가 천천히 바퀴를 굴리기 시작했다. 칼린이 알고 있는 열차에 비해 지나치게 화려한 것이긴 했지만, 어차피 칼린은 창가에서 눈을 떼지 않았으므로 큰 문제는 아니었다.
"저녁 때라도 서로 얼굴을 보며 먹어야 하지 않겠나."
화려한 식탁. 설마 달리고 있는 열차 안에서 이정도의 호화상을 즐길 수 있을 줄은 예상하지 못한 칼린에 비해, 나머지는 그닥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아스타는 조금 실망도 하고 있었다.
"뭐야, 생긴 거에 비해 식탁은 좀..."
"이정도면 굉장한 거지. 왕도에서 입이 높아지다 못해 천장을 뚫었구나."
도르베는 아스타에게 쏘아붙이듯 말하고 식탁으로 다가가 상을 보았다. 놀랍게도 해산물도 있었다.
"굉장하군. 열차내에 해산물까지 보관해 둔 거냐."
"라티아의 기술력이지요."
서빙을 하던 종업원이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영주는 흐뭇한 듯 웃으며 잔을 들어 올렸다.
"술은 허락할 수 없지만, 이번은 그냥 호화상으로만 참아주도록. 이주일 후면 같은 열차에서 술과 함께 이 자리를 즐기게 될 것이다. 그럼."
그리고 식사가 시작되었다. 식탁자리는 연달아 나오는 맛있다, 정도의 말을 제외하고는 식기들끼리 부딪히며 달그락거리는 소리만이 울렸다.
"뭐야, 칼린. 이제 고기를 먹을 수 있는 거냐?"
가면을 반 정도 올리고 고기를 먹기 위해 입을 벌리고 있던 칼린은, 잠깐 고기를 내려 놓았다.
"네. 슬슬 저도 마음을 강하게 먹어야 하니까요. 이번에 상대할 것은 사람이기도 하고..."
칼린은 그렇게 말하고 조금 고개를 떨궜다. 그러나 여기서 큰 부담감을 느끼면 그가 네크로맨서를 죽인 것을 의심할 수도 있어서, 그는 굳이 무리하며 힘차게 다시 고기를 입에 집어넣었다.
요나는 그런 칼린을 보며 웃었다. 칼린이 지금 인간을 아무렇지 않게 죽일 수 있을 리 없다. 다른 부대원들은 모를까, 칼린은 분명 주저할 것이다. 물론 좋든 싫든 이번 임무에서 살인을 피할 수는 없다. 요나가 조금만 떠밀어 준다면, 그 때 부터는 전장의 고양감이 해결해 준다.
즐거워지는 것은 그 다음 부터이다. 살인의 죄책감이라는 것은 바로 찾아오는 것이 아니니까.
요나는 다음으로 시선을 라드에게 돌렸다. 라드도 그것을 눈치채고 콩을 씹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밥을 다 먹고'
그녀는 입을 뻥긋거리고 있었다. 라드는 독순술이 가능했기에 어찌 저찌 그녀가 하는 말을 해석할 수 있었다.
'식탁에 남아라.'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빙그레 웃은 뒤 다시 식사를 시작했다.
다들 해산할 때, 라드는 두고 온 것이 있다며 식탁으로 돌아갔었다. 잠시 기다리니, 요나가 들어왔다. 라드는 요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뭡니까."
"별거 없다, 라드."
요나는 라드의 맞은편에 앉아 담배를 꺼냈다.
"난 내 도발을 확실히 전했단 말이지... 다임상회는 어떻게 받아들이던가?"
"에테롬은 상당히 화가 났었죠."
"하하, 그런가."
요나는 웃으며 담배를 머금었다.
"그렇다면, 에테롬이 이번 임무에 너에게 명령한 것이 있나?"
"...딱히 없죠."
"뭐야, 그건 나에 대한 보복을 포기한 건가?"
"그런 느낌은 아니지."
라드는 즉답했다. 요나는 눈을 얇게 뜨며 라드를 바라보았다.
"그렇다면?"
"난 당신의 부대를 방해하라는 명령만 받았어. 수단과 방법은 내가 직접 고르지. 난 그냥 평소처럼, 아니... 이제는 당신의 눈치까지 보면서 타협점을 찾아 방해할 뿐이요."
라드는 주머니를 뒤져 보았다. 담배가 없었다. 그는 망토 속주머니도 뒤져보며 말했다.
"상회가 가진 공격수단이 나 밖에 없는 것도 아니고, 분명 이번 임무에서 상회는 조금 발자취가 생기더라도 댁의 성장을 막을 거라고."
"그런가."
요나는 피식 웃고서 몸을 기울였다.
"넌 무슨 수를 예상하나?"
물론 라드도 예상하고 있는 것이 있다. 가장 뻔한 방법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걸 말한다면, 아마도 자신은 요나 진영에 한 걸음 가까워지는 것이 되리라. 그 말은 위험부담이 커진다는 것이다. 자신 뿐이 아니라 그의 누이까지.
"...대답하지 않는다면?"
"상관없다. 나도 어느정도는 예상 중이니까, 그냥 상회의 해결사는 어떤 방법을 생각할 지 궁금했어"
요나는 웃었다.
"다만, 미래를 보아라, 라드. 네가 이 부대에서의 일이 끝났을 때의 미래다."
그녀는 담배를 지져 껐다.
"부대의 일이 끝나면 에테롬이 네 누이를 놓아줄 것인가... 부대의 일이 끝났을 때에도 다임상회가 나를 상회하는 상태일 것인가..."
영주가 자신의 누이의 존재를 어떻게 알았는가, 그런 것은 생각할 여유조차 생기지 않았다.
"...네가 누이와 사는 방법은 세가지지. 일을 끝내 주게 성공해서 칼린을 제외한 부대원 전원을 죽이거나, 이 나를 죽이거나, 나에게 조금 더 협조하는 걸 선택해서 공권력을 믿어보는 것이다."
꺼진 담배연기가 얇게 올라온다. 마치 모기가 나는 궤적 같다. 그래, 라드가 딱 그 위치다. 모기 따위의 목숨에 불과한 상태였다.
요나는 가만히 그를 바라보고 있다. 마치 지금 당장 여기를 떠나도 괜찮다는 듯. 그녀는 정말로 그의 이야기를 듣지 않아도 신경 쓰지 않는다. 그 정도로 자신의 예상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래서 라드는 조용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라드는 알고 있다. 끝내주는 계획이 떠오르지 않는 이상, 요나에게 더 가까운 위치를 유지해야 한다. 그의 말에 요나는 웃음을 머금고 그 이야기를 듣다가, 결국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뭐야, 생각한 그대로지 않나!"
실로 유쾌한듯,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