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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0화 〉암투(暗鬪) (60/164)



〈 60화 〉암투(暗鬪)

"감사합니다. 정장같은 건 입어본 적이 없어서..."
핀은 그렇게 말하며 자조적으로 웃었다. 그는 보통 펑퍼짐한 로브를 입거나 단추가 필요 없는 케이프, 티셔츠류를 입고 다니고는 했다. 시각보다 많은 것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그였지만, 시각만이 감지 가능한 것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평소에 장비 내구도 알려주는 거에 비하면 싸게 갚는 거지. 자, 다 됐다. 원래 이렇게 다 입혀주고 나면 거울에 딱 비춰줘야 되는데.."
륑게는 그렇게 말하며 핀의 등을 토닥였다. 핀은 손가락으로 입은 옷을 느껴보며 말했다.


"아니, 우리 옷은 영주님이 직접 고르신 거니까 뭐... 어떻게 입어도 못나지는 않겠죠."
핀은 그렇게 말하고 웃었다. 륑게도 그의 말에 웃었다.

"맞아. 옷이 날개야. 이제 나가자. 다들 기다린다."
핀과 륑게는 그렇게 방을 나왔다. 여관 홀에 소금부대원 전원이 서있었다. 하나같이 정장을 입고 서 있었다. 전날부터 급하게 치수를 재며 벨카의 모든 봉재사를 동원하여 꼬박 하루 밤을 새서 만들어진, 최고급의 정장들이다.


"야, 륑게! 옷 좀 폼 난다?"
"고맙다? 항상 나더러 못생겼다느니 해서 난 너도 핀같은 장님인줄 알았는데."
"난 네가 항상 털 빠진 망토이라고 생각했는데, 옷 입은 거 제대로 보니까 사람은 맞네?"
륑게는 릴로와 농담을 던지며 계단을 내려온다. 핀은 왕궁에 들어갈 때 사용하기 위해 하사 받은 특수한 지팡이의 소리를 즐기듯 리듬감 있게 그것을 튕기며 내려오고 있었다.

"야, 소니아.  그 정장 가슴이 너무 큰 거 아니냐?"
"뽕넣었어. 뭐, 씨팔."
"아니, 뭐 시비  거는 아니고..."
갤러한은 바로 신경질적이 된 소니아에게서 눈을 돌렸다. 눈 앞에서 아스타와 도르베가 서로 머뭇거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저 둘, 느낌 좋지 않냐?"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작은 농담식으로 던진 갤러한의 말에 소니아가 눈을 두배정도로 크게 떴다.

"...지랄 염병, 지 여친 생겼다고 바로 사랑의 큐피트짓 하는  좀 봐, 너 진짜 뒤진다?"
"...자자, 왜 또 그렇게 화났어."
갤러한은 지금 소니아가 농담 칠 분위기가 아니라는 것을 눈치챘다. 그래, 그녀는 또 떨고 있었다.


"아, 씻팔! 이번  사실 마법사 나부랭이보다 훨씬 중요한 자리 아니냐? 왜 다들 그렇게 멀쩡하냐? 나만 정신 나갈 것 같냐? 야, 륑게! 나만 정신 나갈 것 같냐?"
"소니아, 일단 진정하고 물이라도 마셔..."
륑게마저 기세를 한 풀 꺾고 소니아에게 물을 건내 주었다.


"아아! 미칠 것 같아! 귀족들한테 밉보이거나 추녀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하면 어쩌지? 나 이쁘냐? 핀, 저 이뻐요?"
"소니아씨, 저는 장님이예요..."
"좆됐어! 진짜 좆됐다! 분명 빈유에 키작고 못생긴년이라는 소문이 퍼질꺼야!"
발작적으로 자학하며 다시 방으로 돌아가 뽕을  집어넣으려는 소니아의 앞길을 누군가가 막았다.

"아앙-?"
거칠게 눈가를 찡그리며 그런 소리를 냈던 소니아는, 곧 입안에 뭔가 들어온 것을 느꼈다. 달콤한 것이었다.


"꿀을 얇게 펴서 말아낸 후에 굳힌 거야. 안에는 레몬즙이 들어있지. 좀 진정될 거다."
그녀를 막은 것은 라드였다. 그는 사탕을 감쌌던 종이를 꾸겨서 주머니에 대충 집어넣고 소니아를 향해 웃었다.


"이뻐. 걱정하지 말라고."
소니아는 약간 얼굴이 상기되며 조용해졌다. 륑게는 그런 소니아를 뒤로 잡아 끌며 라드를 향해 중지를 세웠다.

"이뿨~ 이 지랄, 입만 열면 그짓말이예요, 그냥. 진짜 뒤질라고. 소니아, 그 사탕 뱉어."
륑게는 그렇게 말하며 소니아의 입에 손가락을 넣으려다가 강하게 배를 맞고 무너졌다. 라드는 그런 그들을 보며 웃었다.


"야, 칼린이란 이리하는 어디 있냐? 걔네랑 도르베가 우리 부대 간판들 아니야?"
"칼린은 성에서 먼저 마차 타고 여기로 올 거야."
릴로의 질문에는 갤러한이 대답했다.

"어제 걔가 전해달라고 했었는데 깜빡했었네. 미안하다."
"느무 알콩달콩해서 그런 거 아닙니까? '무색무취'갤러한씨?"
릴로가 혀를 꼬며 그렇게  올리자, 갤러한은 대답조차 하지 않으며 그녀의 머리를 밀어냈다.

"그래서 이리하는?"
"그건... 나도 잘 몰라. 걔는 워낙 신출귀몰하니까..."
사실 이리하는 부대원 안에서도 약간 특수한 취급을 받고 있었다. 여행 뼈가 굵은 떠돌이들은 절대 '미망인'들과 가까이 지내지 않는다. 겪고 있는 저주가   모른다면 더더욱. 여러가지로 엮이게 된 갤러한, 아무 생각 없는 릴로, 칼린.  셋정도만이 이리하와 그나마 교류가 있는 부대원이었다.


"슬슬 나와야 할 텐데... 영주의 마차가 10분내로 도착할거야."
도르베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회중시계를 꺼냈다.


"그래서 지금 나왔다."
무감각하게 말하는 목소리. 일행들은 고개를 들어 계단 쪽을 보았다. 이리하가 내려오고 있었다. 그녀의 정장만큼이나 매끄러운 흑발을 찰랑이면서.

"야, 이리하, 너-."
"그만. 아무 말도 하지 마."
흑발에 갑옷까지 벗으니 그녀는 평범한 미녀였다. 아니, 달라진 분위기 때문인지 평소보다는 더 말을 걸기 쉬워보이는 미녀가 되어 있었다.


"아무리 내 머리에 부끄러움이 없어도 사교파티에서도 은발로 가면 여기저기 뒷담화가 들릴 것 같아서 말이야."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길게 내려온 흑발을 손가락으로 몇 바퀴 말아보았다.


"귀족은 때리면 안 되잖아?"
"...이리하가 맞긴 하네."
아스타는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칼린은?"
"바로 물어볼 줄 알았다. 곧 우리를 태우러 올 마차에 먼저 타고 있을 거야."
내려오자마자 주변을 둘러보고 그렇게 묻는 이리하에게 예상했다는  갤러한이 대답했다. 이리하는 머리가 풀린 것이 적응이 안된다는 듯 계속 흔들어 대다가 물었다.

"머리를 묶는 건 안되는 건가?"
"당연히 안되지,  씹빡대가리년ㅇ-"
같은 긴 생머리를 하고 있으면서도 차이나는 머릿결에 분노한 소니아의 입을 릴로가 막아냈다.

"지금부터 땋아 올릴 게 아니면 그냥 풀어 두고 있어. 포니테일은 예의가 아니야."
"그런가. 고맙군."
도르베의 조언에 따라 이리하는 그냥 머리를 내버려 두었다. 그리고 곧, 문 밖에서 말 발굽이 멈추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 씨, 이젠 나도 좀 떨린다 야."
갤러한은 웃으며 넥타이를 고쳐 매고 문을 열었다. 찬란히 쏟아지는 아침햇살 아래로, 기분 좋은 바람이 그들을 향해 불어왔다. 딱 좋은 정도의 청량한 날씨,  아래에 빛을 받으며 반짝이는 마차가 서있었다.


검정색 기반에 금색의 장식이 화려하게 수 놓인 아름다운 마차였다. 평소에 그들이 임무를 수행할  타던 마차의 두배정도 크기였다. 마차를 끄는 말들도 확연히 다른 품종이었다.

매끄럽게 떨어지는 칠흑에 비견될 검정색 말이  마리, 대리석같은 피부색의 사이로 그림자층을 지며 섬세한 근육이 층마다 구분되어 보이는 흰색의 말이 두 마리. 총 네 마리가 체스판처럼 배색을 나눠 배치되어 있었다.

마부는  명이었는데,  다 정복을 입고 화려하게 수 놓인 모자를 쓴 왕실에서 파견된 마부였다. 마차에는 마부들을 가려줄 지붕까지 멋들어지게 설치되어 있었다.


"이...이건 감동인데.."

갤러한은 그렇게 말하며 발을 땠다.


"체, 10명타는 마차에 말이  마리? 이건 사치야."
"누, 누가 마차 색감같은 것 좀 묘사해 주지 않을래요? 엄청 큰 건 알겠는데..."
"햐, 황금마차는 동화에만 있는 줄 알았더니..."
"왜 이런 마차가 있으면서 일할 때는 그런 구식 마차에 태운 거지?"
모두는 각자의 감상을 말하며 마차에 다가갔다. 갤러한이 마차 문에 손을 대려 할 때였다.


"그-만!"
갑자기 크게 호령하는 마부 때문에 갤러한은 놀라서 손을 땠다. 놀랍게도 말은 흥분조차 하지 않았다.

"뭐, 뭐야..."
당황해서 문에 대려고 한 손을 흔들고 있는 갤러한에게는 신경도 쓰지 않으며, 마부는 앉은 자리에서 절도 있게 일어났다. 그리고 정확하게 각을 잡고 문 앞으로 다가가 그들을 위해 문을 열어 주었다.


"들어가시죠!"
또 한번 우렁차게 호령한 뒤, 마부는 문을 잡고 얼어붙은  굳었다. 갤러한은 그런 그를 부담스럽게 보며 마차의 안으로 들어갔다.

"어차피 들여보내 줄 거면서 지랄이야, 지랄은."
"아스타, 이게 저들의 일이고 전통이다. 말을 삼가거라."
"어디까지 참으려나, 형씨. 국가영웅이랑 놀아 볼래요?"
"갈!"
릴로는 생각보다 훨씬 딱딱한 마부의 반응에 실망해서 마차에 들어갔다. 마차에 전원이 타자, 문은 다시 절도있게 닫혔다.

"제자리!"
문 밖에서 그런 호령이 들리고, 과장된 부츠의 소리가 들려왔다. 곧 마차가 기울어지며 그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하, 역시 혼나실  알았어요!"
칼린이 대소하며 모두를 돌아보았다. 그가 입고 있는 정장은 평소의 것과 달랐다. 하지만 이제 와서 그의 옷가지고 놀라는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워낙 잘 뻗은 몸 덕분에 그는 거적대기를 걸쳐도 그림 같았다. 문제는 얼굴이었다.

"뭐야, 왜 가면을 ㅆ-"
릴로는 아무 생각없이 그렇게 말하다가 칼린의 바로 옆에서 서슬 푸르게 팔짱을 끼며 앉아있는 영주를 보았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릴로는 커브를 돌았다.


"ㅓ도 평소랑 같은 거를 썼어... 왕국인데  더 화려한 걸로 쓰지!"
요나는 그런 릴로를 조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걱정마라, 칼린은 파티 중간에 나와 같이 귀족 회의에 참가할 예정이다. 어차피 거기에서는 가면을 벗어야 해."
"아, 아하! 아하하! 글쿠나! 몰랐네요! 못들었었거든요!"
"네? 제가 말해주지 않았던가요?"
"아니! 난 처음듣는데! 갤러한, 들었냐!"
"나! 나도 처음듣네!"
릴로의 분위기에 편승해 갤러한도 조금 당황해서 목소리가 커졌다. 그제서야 칼린은 자신이 일상감에 속아 넘어가 저지를 실수를 깨달았다.

"아, 분명 말했었던 것 같은데, 누구한테 말했나 생각해 보니까 라드씨에게만 말했었네요! 그쵸? 라드씨는 들었었죠?"
애처롭게 돌아가는 폭탄 돌리기의 마지막 주자는 라드였다. 라드는 그 말에 영주를 한번 바라보았다. 그리고 입가를 들어 올렸다.

"칼린, 나랑 릴로를 헷갈린거야? 멀쩡해 보였는데 사실  취해있었나보네."
"하, 하하! 아무래도 그날 꽤 많이 마셨으니까요!"
라드는 성공적으로 폭탄의 불을 껐다. 요나는 라드를 바라보며 웃었다. 라드도 웃었다.


"뭐, 다들 그렇게 굳어 있을 것 없다. 우리가 가는 자리는 어디까지나 너희들의 환영식이야. 너네들의 사소한 무례까지는 용인이 되는 자리이지."
"그, 그런가요.."
"그래도 다들 정신은 똑바로 차리라고. 귀족들의 화법에 넘어가지 마. 언제 그들과 '친구'가 되어 있을지 모르니까."
요나는 그렇게 말하고 창문을 열었다. 그리고 담배를 꺼냈다.


"여기서 담배를 피워도 되는 겁니까?"
"안될 건 뭐 있나. 재떨이도 있거늘."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천장에 작게 난 틈새에 손을 끼워 넣고 그대로 잡아 내렸다. 내려온 미니 테이블 위에 도자기 주전자가 있었다. 요나는 비어 있는 주전자의 뚜껑을 열고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거, 재떨이 맞습니까?"
조금 부담스러워하는 갤러한을 요나는 한심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그리고 마부와 연결되는 작은 창을 밀어 열었다.

"이봐, 차 주전자를 재떨이로 써도 괜찮은가?"
"방금 차 주전자라고..."
"문제 없습니다!!"
내장까지 울리는 강한 호령을 들려주고서 요나는 다시 창을 닫고 담배에 불을 붙였다.


"어쩄든 난 필 것이다. 다들 피고 싶다면 마음대로 하도록."
그런 요나를 보며, 각자 챙겨온 담배를 꺼냈다. 곧 마차의 창 밖으로 회색의 짙은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래서 영주님, 정확히 왕도에서 뭘합니까?"
담배연기로 눈까지 붉어진 륑게의 질문에 요나는 시가를 커터로 잘라내며 대답했다.


"그러고 보니 단순한 축하파티가 될 것이라 자세한 설명을  했었구나. 미안하군."
"아뇨, 미안할 일은 아니고..."
"도착하면 퍼레이드가 있을 것이다. 왕도에 도달하면 탈것을 바꿀 거야. 2인 1조로 나뉘어서 한 명이  대를 혼자 타는 걸로 총 6대. 조는 내가 이미 나눴다.


퍼레이드를 지나면 왕국에 도착할 것이다. 그러면 준비된 공연을 감상하며 점심을 먹게 될 거야. 공연은 마레가 직접 각본을  것이다. 뭐, 사람은 그래도 훌륭한 각본가이다. 다들 얼굴을 피도록.

 다음은 밤 늦은 시간이 될 때까지 왕궁에서 파티를 하게 될 것이다. 나와 칼린은  중간에 귀족회의로 빠지는 것이고. 화려할 것이다. 불꽃놀이도 할 거고 뭐, 잡다하게 바쁠거야.


다음날 아침 너네 들이 직접 왕국의 신병들을 평가  교정해준다. 그리고 퍼레이드를 받으며 떠난다. 이게 끝이야."
마지막에 한 말은 칼린조차 처음 듣는 것이었다. 칼린이 요나를 쳐다보자, 요나는 예상했다는  웃었다.


"걱정마라. 교정 평가라고 해도 진짜 할 필요는 없어. 그냥 영웅으로서 신병들에게 용기를 불어주는 말같은 거나 대충 읊어주며 다니면 돼. 나도 해봐서 알고 있다."
"...그래도 조금 부담되긴 하는데..."
칼린이 작게 그렇게 혼잣말했다. 그러나 문제는 칼린이 아니었다. 이리하가 요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왜 그러나, 이리하."
"조편성은 어떻게 하신 겁니까?"
다들 딱히 궁금해하지 않던 것이었다. 요나는  질문의 의도를 바로 읽었다. 저 좀벌레같은 년은 칼린을 노리고 있다. 어떤 쪽으로 노리는 지는 알  없지만, 노리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내가 임의로 골라 편성했다."
"혹시 어떻게 편성했는지  수 있습니까?"
"...내가 알려주고 싶지 않다고 한다면..."
요나가 목소리를 깔았다. 그리고 고개를 조금 치켜 들며 이리하를 내려보았다.

"그때는 나에게 불만이라도 제의할 생각인가, 이리하양?"
마차의 일부는 요나의 검은 속을 알고 있다. 그걸 아는 사람 중 하나가 분명 이리하였다. 갤러한과 소니아는 그 상황에 숨을 죽였다.

"...아닙니다. 그저 궁금했을 뿐입니다."
"그런가. 다행이군."
이리하도 여기서는 깔끔하게 포기했다. 고개를 꾸벅 숙이는 이리하를 보며, 요나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이건 말 해줘야겠군, 이리하양."
요나는 칼린의 목에 팔을 둘렀다. 그리고 자신의 쪽으로 끌어당겨 비웃음을 머금은 표정으로 이리하를 내려보았다.


"흑발이 정말  어울려."
칼린은 또다시 갑작스럽게 진행된 영주의 끈적한 스킨쉽에 어색하게 손을 밀어 내보려 했다. 그러나 영주가 워낙 단단히 잡고 있었던 지라, 칼린은 그냥 포기하고 요나의 팔 안에 잠깐동안 기대고 있었다.



"제, 제리코씨! 제발 멈춰주세요! 퍼레이드가 망가집니다!"
근위병들은 들고 있던 창까지 버리며 눈앞의 거구를 잡아내고 있었다. 무기를 들어서 막을 수 있는 사내가 아니었다.

"아, 내가 부수겠다는 것도 아니고... 국가 영웅님이랑 같이 차나 한번 타보고 싶다는데 왜 이리 호들갑들이야?"
"제리코씨도 영웅이십니다! 제발 발걸음 좀 멈춰주세요!"
"고마워. 듣기 좋네."
제리코는 그렇게 말하며, 그를 잡게 된 운 나쁜 근위병들을 가볍게 옆으로 쳐냈다. 불쌍한 근위병들이 맥없이 양 옆으로 날아갔다. 마치 옷에 붙은 꽃의 씨앗을 털어내는 정도의 일로 보였다.


"아무튼 난 여기 누워서 기다릴라니까, 치울 자신 있는 놈부터 들어오던가."
그는 거만한 폭군 그 자체였다. 그런 호언까지 했는데도, 근위병중 그 누구도 다시 창을 들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앞길을 치운 그는 깔끔하게 광을 낸 새 자동차에 흙 발을 들이밀며, 좌석에 몸을 끼우듯 억지로 들어가 누웠다. 기술부장관은 그 모습을 보며 짧게 탄식했다. 그리고 근위병들을 옆으로 밀어내며 그에게 다가갔다.


"...이봐요, 제리코씨. 자동차를 타보고 싶으신 거라면 이번 퍼레이드가 끝나고 한 대를 가택으로 보내 드리겠습니다. 그걸로 봐주시면 안될까요?"
"누가 30분도 못 달리는 철덩어리를 갖고 싶어하냐, 멍청아."
자존심을 건드리는 제리코의 말에 기술부 장관의 얼굴이 한순간 붉어졌다. 허나 눈 앞의 상대가 누구인지 다시 떠올리며 어떻게든 분노를 참아냈다.


"그...러시다면 왜 거기에서 비키지 않으시는 건가요..."
제리코는 그 말에 귀찮다는 듯 상체를 일으켰다.

"그러니까, 아까부터 계속 말하잖아."
기술부장관은 그가 짓고 있는, 어이가 없다는 듯한 표정을 믿을 수가 없었다. 지금  표정을 지어야 할  누군데.

"국가 영웅님이랑 같이 타보고 싶다고 말야. 축제고 뭐고 시작하기 전에 할 이야기가 있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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