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4화 〉에필로그 (54/164)



〈 54화 〉에필로그

"돌아가면 뭐부터 할 거냐?"
아스타는 도르베의 목을 두른 팔을 풀지 않고 그렇게 물었다. 마차가 출발한지 벌써 3시간째인데, 아스타는 도르베를 놓아줄 생각이 없는 듯했다.

"뭘 하고 싶냐...  진짜 그냥 한 몇일은 잠만 자고 싶어.."
륑게는 고개를  늘이며 그렇게 말했다. 그 말에 소니아는 고개를 흔들며 공감했다. 그녀는 눈물까지 찔금 고여 있었다.

"나... 나 진짜 무서웠어.. 죽기에는 잃을 게 너무 많았단 말이야.. 제발 다음 임무부터는 조금 더 쉬운걸로 하면 좋겠다..."
"뭐야, 다들 기운이 왜 이리 빠져있어!"
소니아의 늘어진 말에 아스타가 웃으며 그녀의 등을 세게 쳤다. 도르베는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아스타를 올려다보았다.


"그러는 너는 왜 그렇게 기운이 넘치는 거냐... 지치지도 않는 것이냐?"
"야, 좋아서 그렇지, 좋아서!"
그렇게 말하며 아스타는 도르베의 정수리에 주먹을 대고 돌렸다. 도르베는 그녀의 하이 텐션이 짜증났지만 이해는 갔기에 조금 죽을 맞춰 주었다.

"아무도  죽었잖냐! 예상이나 했겠어? A등급 마법사를 10명이서 사냥해낸거야! 우린 영웅이 될거야!"
신나서 소리지르는 아스타의 말에, 늘어져 있던 륑게와 소니아도 피식 하며 몸을 일으켰다.

"그런가. 확실히, 내가 생각해도 끝내 주는 업적이었지."
"이제 정말로 나만의 술집을 만드는 계획이... 구체화되는 느낌이야! 아아, 이번 임무 보상금이 얼마가 나올지 모르겠네, 술집을  3층짜리로 지을 수도 있겠어!"
소니아는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며 륑게와 양손으로 하이파이브를 반복했다. 도르베는  분위기가 좋았다. 두번째 기회는 성공했다. 정말 압도적인 성공이다. 사상자 없이 결사대의 임무를 끝마쳤다.


물론 진짜 싸워서 얻은 것은 아니게 되었지만. 도르베는 그렇게 생각하며 칼린을 돌아보았다. 칼린은 나른한 듯 마차 벽에 기대 있었다. 그는 더 이상 마차 안에서 가면을 쓰고 있지 않았다.


"칼린, 넌 무엇을 하고 싶느냐. 벨카에 돌아간다면 말이다."
도르베가 칼린에게 묻자, 칼린은 고개를 반정도만 내려 질문이 난 곳을 쳐다보았다가,  자세를 고쳐잡고 웃으며 말했다.


"요나님에게 보고해야죠. 저도 성장했다고 보여드리고 싶어요. 음... 그리고 리쿠르트씨도 바로 만나러 가야겠지요. 아, 리쿠르트씨는 제 가정교산데.."
영주의 본성을 알고 있는 소니아는 그런 칼린을 조금 불안한 듯 바라보았다. 이리하는 즐거운 듯 영주와 가정교사에 대해 이야기하는 칼린을 흘깃 바라보다가 다시 시선을 돌렸다.


"아, 그렇지! 저녁에 모여서 술파티나 할까요? 다들 다른 특별한 계획 없으시면 전부 모여요!"
칼린은 즐거운 듯 그렇게 말하며 손뼉을 쳤다. 가면을 벗은 칼린의 부탁은 평소의 칼린보다 파급력이 뛰어났다. 다시 말하자면, 거절이 힘들었다.

"아... 그게.."
도르베는 망설이며 고개를 들었다.

"난 그 술자리에 참가가 힘들 것 같구나. 미안하군."
"뭐야, 못 오냐? 너가 술자리의 주인공이야!"
아스타는 그를 흔들었다.

"다리 부상을 입고도 동료를 구하러 적의 심층부를 따라갔지! 거기서 그치지 않고 그 마법사를 족쳐서 돌아온 거야! 칼린이랑 너는 술자리 필참이라구!"
도르베는 조금 난처한 표정으로 뺨을 긁으며 입을 열었다.

"아... 비밀로 하려고 했는데 말이야.. 난 보고를 끝마치고 바로 고향을 들르려고 한다."
"고향이면.. 왕도에 있는 집? 거길 왜 가려고 하는데?"
"아니, 왕도가 아니다."
륑게의 질문에 도르베는 웃으며 대답했다. 아스타는 그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할지 눈치챘다.


"아스타, 너는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니라고 하겠지만... 난 나의 아버지를 마주하러 가려고 한다."
평온하게 웃는 도르베를 보며, 아스타는 드디어 그의 목에 감고 있던 팔을 풀었다. 그녀는 가만히 도르베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 더이상 망설임은 보이지 않았다. 설령 누군가 말리더라도, 그는 어쨌든 자신의 아버지를 만나러 가리라.

도르베는 조금의 걱정을 끌어안고 있기는 했다. 그러나 그것은 아버지를 만나는 것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아스타가 자신을 어떻게 받아들일 지에 대한  이였다. 그는 더 이상 아버지의 주박 속에서 의무처럼 만나러 가는 것이 아니었다. 아스타가 그것을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거라면 어쩔 수 없지."
아스타는 그렇게 말하며 조금 떨어졌다. 도르베는 그런 아스타에게 무슨 말을 하려고 했다. 그러나 아스타가 먼저 손을 들었다.

"제대로 대화하고 와, 도련님."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렸다. 도르베는 그게 무엇보다 용기가 되었다.

"...고맙다."
환하게 웃는 도르베를 보며, 아스타도 웃었다. 그리고 아쉬움을 숨기듯 고개를 돌리며 모두를 돌아보았다.


"그러면 이 마차에서는 도르베 빼고 전부 참가인건가?"
"아, 나도 참가하기 힘들 것 같아."
다음으로 손을 들며 말한 것은 이리하였다.

"네? 이리하씨도요?"
"응.  일이 조금.."
그녀는 평소처럼 무감각하게 이야기하다가, 칼린의 얼굴을 보고 말 끝을 웅얼댔다. 아무리 그녀라도 역시 조금 힘든 일이었다.


"...이리하씨에게는 신세를 많이 졌으니까, 꼭 같이  마시며 이야기해 보고 싶었는데..."
칼린은 그렇게 말하며 아쉬운 듯 고개를 떨구었다. 이리하는 설마 이딴 것으로 자신이 죄책감을 느끼게  줄은 몰랐기에 조금 당황하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머리를 감쌌다.


"아..아니, 아예 참가 못하는 건 아니고, 늦게 참여하게 될 텐데... 괜찮아?"
"그럼요, 이리하씨!"
칼린은 다시 얼굴을 치켜 올리며 그녀의 손을 잡았다. 이리하가 당황해서 고개를 뒤로 빼고 시선을 피했다. 칼린은 슬슬 자신의 외모를 이용하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앞으로 4시간정도면 도착할 테니까, 마차에서 내리자 마자 갤러한씨의 마차에도 물어봐요!"
"좋지! 전부 살아 돌아왔으니까, 술자리에서 한  죽여 보자!"
"아,  분위기가 그리웠어! 나도 오늘만큼은  지갑 푼다!"
"오...오우.."
모두들 텐션을 높이며, 이리하는 아직도 조금 붉은 얼굴을 하며 손을 모았다. 마차의 분위기는 최고조였다.


"하, 진짜 어떻게 되는 줄 알았었는데, 어찌저찌 정말 다 잘 풀렸구만."
갤러한은 뒤로 늘어지며 그렇게 말했다. 핀은 어깨를 들썩이며 몸을 흔들어 댔다.

"다들 정말 굉장했어요! 진짜 베테랑 다웠다고 해야 하나, 이야, 전략의 승리였어요!"
"고맙구만. 핀, 네 관측능력도 엄청 도움이 되었었어."
갤러한은 머쓱한 마음에 핀을 추켜세워 올려주며 그의 하이파이브를 받았다. 릴로는 자신의 지갑에 남은 금액을 확인해 보고 있었다.


"뭐야,  돈을 왜 그렇게 많이 챙겨왔었냐?"
갤러한이 묻자, 릴로는 기분 나쁘게 웃으며 말했다.

"사실, 네크로맨서 잡으러 가기 전에 하인킬에서 빡촌이나 갈라 했거든. 죽을 수도 있는 거잖냐? 그런데 소니아랑 핀때문에 못갔었단 말이야. 그래서 돈이 좀 남았어."
핀은 얼굴을 찡그리며 릴로에게 조금 떨어졌다.

"아니, 우리가 없었으면 혼자 빡촌을 가려고 했어요?"
"너네는 싫다고 했잖아."
"헤, 자상하기도 해라."
갤러한은 그렇게 비꼬고서 릴로의 지갑을 빼앗았다.


"야! 돌려줘!"
"오늘 저녁까지는 내가 맡는다. 분명 벨카에 도착하자 마자 그 돈으로 창촌이나 가려고 했겠지. 어림도 없어."
"임무도 끝났는데 뭔 상관이냐? 네가 내 엄마냐?!"
그렇게 소리를 지르며 지갑을 다시 가져가려는 릴로를  팔로 밀어내며, 갤러한이 설명했다.

"우리는 이제 영웅이라고. 품위 좀 지키면서 살아. 이제 책도 읽고. 그리고 아마 오늘 저녁은 전원이 모여서 술파티나 하게 될 것 같단 말이지."
"무슨, 빡촌이 불법도 아니고! 영웅이니까 디스카운트도 해주겠지!"
"릴로, 이 멍청아!"
갤러한은 그렇게 일갈하고서 잠시 덤벼드는 릴로를 멈춰 세웠다.

"이제  영웅이 된 거니까, 막 귀족 남자건 시골 남자건 너한테 몰려 들 거라고. 그런데 빡촌이나 드다니는 바람둥이라는 소문이 퍼지면, 그런 사람들이 오겠어?"
"...아, 그런가?"
"그래. 난 지금 네 미래의 투자를 도와주는 거야. 창촌의 남자들하고는 비교도 안되는 남자들을 만날 거라고."
"야, 네 말이 맞는 것 같다!"
릴로는 금방 신이 나서 갤러한에게 하이파이브를 신청했다. 갤러한은 하이파이브를 받아 치며 속으로 생각했다.


'단순하긴.'
그리고  앞에 라드를 돌아보았다.


"그래서... 만약 술파티를 한다면 너도 참여하는 건가?"
라드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가, 갤러한의 말에 느리게 고개를 돌렸다. 잠깐 무슨 말인지 생각해 보던 라드는, 웃으며 대답했다.

"오늘 저녁은 조금 힘들지도. 선약이 있어서 말이야. 오히려 내가 묻고 싶은데, 여자친구분을 만나러 가지 않아도 되는 건가?"
"ㅁ-뭐? 네가 그걸 어떻게 아냐?"
"그야, 밤마다 구겨지고 다시  편지지들을 장작으로 던져 대면 모르고 싶어도-"
"아-! 그만 말해! 젠장!"
갤러한은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고개를 숙였다. 매일 저녁 잠들기 전에 리쿠르트를 위한 편지를 썼던 것이 실수였다.


"..그래서, 너야말로 참가할 수 있냐, 이거지."
"..뭐, 아직 술자리가 있을 지도 모르는 일이고, 있더라도 난 늦게 참여할 거니까."
"뭐야, 여친 만나면 날밤해야되는 거 아니야?"
릴로가 그게 당연한 것이라는 듯 묻자, 갤러한은 조금 고개를 돌렸다.

"나... 여행 내내 제대로 못 씻었으니까... 그..."
귀까지 붉어진 갤러한은 어울리지도 않는 수줍은 반응을 하고 있었다.


"내..냄새나잖냐.. 오늘은 무리야.."
릴로는 충격이라는 듯 눈을 크게 뜨고 얼굴의 모든 근육을 일그러트리고 있었다. 핀도  말에는 눈을 번쩍 떴다.


"이...이런 개씨팔, 네가  사랑을 하다니..."
"개...갤러한 맞나요?"
"어른이 되라, 병신들아."
갤러한은 그렇게 일갈하고 담요를 깊게 덮어써서 숨었다. 릴로는 그런 갤러한을 찌르며 놀려 댔다. 핀도 자리에서 일어나 갤러한을 쿡쿡 찔러대기 시작했다.


라드는 그런 그들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성공적으로 자신이 하는 일까지 대화주제가 오지 않도록 막아낸 라드는, 가만히  밖을 고개를 돌렸다.

소금부대의 두번째 임무, 국가 재해급 위험도 A의 네크로맨서 사냥, 전원 복귀로 성공.





마차는 벨카에 약 18시쯤에 도착했다. 지난번과 같이 임무를 성공해 내고 돌아온 길이지만, 환영의 질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도시는 축제분위기에 있었다. 가로등은 전부 켜져 있고, 광대와 음유시인들이 그들의 마차를 이끌며 행진했다. 종이 꽃들이 그들의 위로 쏟아지며 돌아온 자들을 축복했다.


잠 들어있던 부대원들도 모두 눈을 뜨고 그 장면을 바라보았다. 아스타와 릴로, 핀, 륑게는 아예 창 밖으로 몸을 빼며 모두에게 손을 흔들어 댔다.


마차가 분수대에 도착하자, 거기에는 요나가 서 있었다. 요나는 정복을 입고서 검을 들고 그들이 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명씩 마차의 밖으로 내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요나에게 다른 사람은 보이지도 않았다. 그녀가 기다리고 있는 것은  중 단 한 명이었다. 마지막쯤에야, 칼린이 익숙한 가면을 덮어쓰고 마차를 나왔다.

요나는 전원이 돌아온 것을 바라보며, 자랑스럽게 웃었다. 그리고 등을 평소보다도  쭉 폈다. 그녀는 검을 바닥에 내리 꽂으며 준비했던 연설을 시작했다.

"국가의 안녕을 위해 떠났던 용사들이 다시 모였다. 모두가 살아 돌아온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
그렇게 말하고 요나는 칼린이 있는 곳을 힐끔 바라보았다. 칼린은 모인 군중들을 향해 작게 손을 흔들어 주고 있다가, 요나의 시선을 알아채고 꾸벅 고개를 숙였다.


"철의 육체로, 불같은 의협심으로, 끈끈한 전우애로, 윌레인을 위협하는 재앙을 떨쳐냈다. 이는 우리 국가의 자랑으로, 긍지로 남기며 영원히 모두의 앞길을 밝힐 교본으로 남아야 한다."
그녀는 검을 허리춤에 다시 끼워 넣은 후, 그들을 향해 다가왔다.

"부대원들은 고개를 돌리거라."
그녀의 말에 부대원들이 고개를 돌렸다. 그 뒤에는, 벨카의 시민들이 환호하며 몰려 있었다. 심지어 다른 지역에서 그들을 보기 위해 급하게  자들도 있었다.

"모두들, 고개를 들어 윌레인의 자랑을 보아라! 그대들을 지킨 것이 누구인지 마주하라! 환호하고 즐겨라! 찾아온 오늘을 축복하라!"
환호성이 광장을 가득 매웠다. 부대원들은 그 분위기에 압도당하며, 자신들이 영웅이 되었음을 전신으로 느끼고 있었다. 요나는 기운차게 웃으며 마지막 호령을 뱉었다.

"돌아온 자들에게 축복을!"
그녀의 호령이 관중의 맨 앞자리부터, 맨 뒤의 숨어있는 자들에게 까지 울려 퍼졌다. 그리고 웅장한 음악이 퍼지며, 벨카의 축제가 시작되었다.



부대원들은 요나를 따라서 성으로 들어갔다.  문 앞의 마지막 발걸음까지, 환호성이 그들을 따라왔다.

성의 마당에서, 그들은 먼저 사진을 촬영했다. 칼린은 사진기에 대해 '정교하고 빠르게 그림을 그려서 인쇄해주는 기게'라는 설명을 들었다. 사진 한 장이 찍히는 데에는 약 30분이 걸렸고, 세 장을 찍는 데에는 60생텀이 들었다.


사진을 전부 찍고 그들은 보고를 위해 성으로 들어갔다. 맨 앞에서 발걸음을 옮기던 요나는 몸을 빙글 돌리며 발을 멈추고 모두를 바라보았다.


"모두들, 정말 잘해 주었다. 굉장했어. 나의 자랑이다."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서 소니아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칼린이 실종되었을 때 내가 저질렀던 무례를, 부디 용서해 주겠나?"
소니아는 그녀가 내민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녀는 요나의 본성을 보았다. 솔직히 그녀의 악수를 받고 싶지는 않았다.


"... 물론입니다, 영주님."
그러나 소니아는 어린애가 아니다. 아니, 어린애라도 영주의 권유를 거절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알고 있다. 그녀는 최대한 표정을 밝게 하며 힘없이 악수를 받아들였다.


"무슨 일이 있었나요?"
"모르는 게 나을 거다."
라드에게 작게 물어본 칼린은 그런 짧은 대답만 돌려 받고, 다시 정자세를 유지했다. 그녀는 모두를 식탁으로 안내했다.


"미안하지만, 지금 영주실은 약간의 재정비가 있어서 말이다. 여기에서 간단하게 최종 보고를 마치고, 영수증과 네크로맨서의 수급(首級)을 넘겨 주거라."


영주는 그렇게 말하며 손가락을 튕겼다. 곧 메이드 한 명이 다가와 은쟁반을 들이 댔다. 갤러한은 가져온 수급을 그 은쟁반 위에 강보 째로 올려 두었다.

보고는 약식으로 진행되었다. 어차피 하루 밤으로 끝낼  있는 일이 아니다. 요나도 어차피 보고는 잘 들리지도 않았다. 보고가 끝나자, 그녀는 담배를 꺼내며 말했다.

"모두들 수고가 많았다. 오늘 저녁은 다들 편한대로, 축제를 즐기도록. 이제부터 네놈들 전원 눈코 뜰  없이 바빠질 테니 말이다. 뭐니뭐니해도, 이제 귀공들은 국가 영웅이다."
요나는 그렇게 말하고 모두를 해산시켰다. 그리고 도르베의 부탁에 따라 마차를 하나 준비해 주었다. 야간에도 달릴 수 있도록 만들어진, 강한 외부조명이 특징인 마차였다.

모두가 식사실을 나갔다. 칼린은 영주에게 자신의 성장을 말하고, 리쿠르트를 만나러 갔다가 술자리에 참여할 생각이었다. 칼린이 영주를 돌아보며 입을 열려는 순간, 영주는 자리를 일어나고 있었다.


"어디로..."
칼린이 말을 마치기 전에, 요나는 그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를 강하게 끌어안았다.


"...요나씨, 왜 그러시나요..?"
"걱정했다..."
칼린은 요나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그저 끌어안은 힘에서 그녀가 얼마나 걱정했는지는 알 수 있었다.

"...죄송합니다."
"돌아와줘서 고맙다, 칼린..."
그녀는 계속해서 칼린을 조여왔다. 그리고 고개를 칼린에게 돌리며 말했다.

"칼린, 화포를 풀자꾸나.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 해다오. 밤은 길다."
칼린은 그녀의 걱정이 고마웠다. 그러나 하루종일 그녀와 대화한다는 것은 조금 다른 문제였다.

"그...그게, 요나님,  사실... 이번엔 동료들이랑 술자리를 가져야  것 같아서..."
"...뭐라고?"
요나의 목소리가 급격히 낮아졌다. 칼린은 변명하듯 말을 이었다.


"아니, 지금 바로 간다는 것이 아니라..."
요나는 칼린을 잡은 팔을 풀지 않았다. 다만 방금 나온 싸늘한 반응 때문에, 칼린은 그녀의 포옹이 방금 전처럼 따뜻한 것으로 느껴지지가 않았다.

칼린은 완전히 그녀의 손 안에 있는 상태였다. 그는 자신이  긴장하는 지 이유조차 모르고 그저 분위기에 압도당해 얼어붙어 있었다.

"...그래, 동료와의 친목은 중요하지. 내가 그런 것까지 참견하겠느냐."
요나는 칼린을 서서히 풀어주며 그에게서 떨어졌다. 그리고 웃으며 자신의 자리로 돌아왔다.


"그렇다면 적어도,  주인에게 이번 임무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는 것 정도는 해줄 수 있겠지. 그것도 힘든가?"
요나는 그렇게 말하고 눈웃음을 지었다. 칼린은 금방 돌아온 분위기에 안심해 버렸다. 자신이 한순간 느꼈던 경계심을 다시 잊어버렸다. 신나서 입을 여는 그를 보며, 요나는 가만히 생각했다.


'동료인가.'
칼린은 상당히 좋아진 것 같았다. 지금은 막 복귀한 상태이니 조금 지쳐 보이기는 했지만, 말하는 것이나 하는 행동을 보면 알  있다. 칼린은 많이 건강해졌다.


그건 좋다. 그는 지금 상당히 빛나고 있다. 활기차고 아름다워서 마치 불꽃놀이같이 재잘재잘 말하고 있다. 요나는 지금 그가 상당히 귀엽다고 생각했다. 아직은 괜찮다.
문제가 되는 것은, 그가 필요 이상으로 건강해졌을 때이다.

그가 마침내 활기를 되찾고 그녀의 손아귀를 떠나 자유로워지려고 한다면- 그게 그녀가 가장 경계하는 것이었다.

'...수고를 끼치는군.'
그녀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칼린을 보고 그저 웃었다. 단 그녀가 짓고 있는 웃음은 결코 거짓은 아니었다.





"이봐, 제리코! 속보다!"
왕도의 저녁, 평소 이 시간이면 북적여야 할 술집이 쥐 죽은 듯 조용했다. 조명도 꺼져 푸르스름한 술집 안에서 뚱뚱한 남성은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살피다가, 바로 정면에 넝마짝처럼 테이블 위에 널부러져 있는 남성을 찾았다.

"이걸 보라고, 부대원들이 네크로맨서를 잡았다잖아!!"
뚱뚱한 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그를 향해 달려가려고 했다. 그러자  기절한 듯 널부러진 남성은 손바닥만 들어 펼쳐서 그가 오는 것을 막았다.

"뭔ㄷ-"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뻗어 있던 남자는 마디가 굵은 검지손가락을 펼쳐 위를 가리켰다. 뚱뚱한 남자는 위를 쳐다보았다. 천장에 내다 꽂혀 달랑거리던 여자가, 곧 힘없이 떨어졌다.


"..막 달려 왔으면 부딪힐 뻔 했어. 나한테 감사하라고."
늘어진 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불편한듯 왼팔을 다시 접으며 자세를 고쳤다. 뚱뚱한 남자는 바닥에 늘어져 있는, 얻어맞고 여기저기 꺾이고 부러져 기절한 사람들을 조심조심 피하며 그의 테이블로 갔다.


"이 멍청아. 전후복구부대가 네크로맨서를 잡았다고. 이번 내기는 내가 이겼어."
뻗어 있던 남자는 그제서야 천천히 반응하며 고개만 조금 들어 올렸다. 날카롭게 뜨인 눈은 다크서클이 가득 껴 있어도  예리함을 잃지 않았다.

"...봐 봐."
그는 그렇게 말하며 손을 뻗어 뚱뚱한 남자가 들고 있던 종이를 빼앗았다. 그리고 천천히 몸을 들어 올렸다. 약 190은 되어 보이는 키에, 덥수룩한 머리를 하고 있는 남자였다. 그는 굵은 눈썹을 치켜 올리며, 흔들리는 시야 속에서 그 종이를 잘 읽어 보았다.

"소..금부대... 네크로맨서...토벌 성공?"
그는 먼저 그 신문이 진짜인지 확인해 보기 위해 한번 뒤집어 보았다가, 거기에 기재되어 있는 사진을 보았다.  사진을 가만히 바라보던  남성은 조금씩 어깨를 흔들기 시작했다.


"왜, 분해서 눈물나냐?"
뚱뚱한 남자가 신나서 도발했지만, 자세히 보니 그는 우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웃고 있었다. 이윽고 대폭소를 터트린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요나, 이 앙칼진 년! 이런 멤버로 질 리가 없지!"
"무, 무슨.."
뚱뚱한 남성은 눈앞의 제리코라는 남자와 오랜 기간 친구였지만, 그는 가끔씩 혼자만 이상한 것을 눈치채고 폭주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가 살짝 쫄은 것도 그것 때문이었다.

"이 멤버말이야."
제리코 반 도우, 윌레인 최강의 남자는 실로 즐겁다는 듯 웃으며 헝클어진 머리를 쓸어 넘겼다.


"괴물을  마리나 기르고 있잖아!"



푸르스름한 아침, 도르베는 마차에서 내렸다. 눈 앞의 작은 오두막에서는 굴뚝을 통해 새끼 구름을 낳아 대고 있었다. 분명 자신의 아버지는 그곳에 계시며, 아직도 아침 일찍 일어나시는 것이리라.


도르베는 드디어 지급받은 목발을 마부에게 받아, 그걸 끼고 절뚝거리면서 집을 향해 다가갔다. 황토색으로 가공된 길의 양 옆으로 퍼진 초록. 그의 인생을 통틀어 과거의 영광스러웠던 집보다도 더 오래 머물었던, 아마도 몰락을 시작하게 만든 땅. 그러나 다시 밟은 그곳은 의외로 나쁘지 않았다.

자갈이 깔린 바닥을 짚고 지나가며, 도르베는  한순간 한순간을 기억하기 위해 자신이 보는 모든 것들을 머릿속으로 글로 변환해내고 있었다. 검날처럼 차갑게 깔린 채색의 아래로 보이는, 거인의 신발 코 같이 작고 둥그런 오두막집. 그리고  안에 있는 것은-


도르베는 그 앞까지 와서야 뒤늦게 망설임이 몰려왔다. 그는 너무 늦었다. 국가 영웅이 되고 아마 신문에도 나오게 될 도르베였지만, 그의 아버지에게는 그저 실패한 아들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집에서 도망쳐 나왔었으니까.


노크를 하지 못하고 망설이던 도르베는 문 뒤의 인기척을 느꼈다. 문 너머의 아버지는 누군가 온 것을 눈치채셨을까, 그게 나라는 것을 알고 있다면 무슨 반응을 보이실까, 도르베는 가슴이 너무 빠르게 뛰어 제대로  판단을  수 없었다. 그는 결국 살짝 뒷걸음질 쳤다.

"거기 누구요?"
아버지의 목소리이다. 늙었지만, 쉬었지만, 아버지의 목소리이다. 그는  수 있었다. 5년 전에 들은 것을 마지막으로 듣지 못한 사이, 그의 목소리는 많이 건조해져 있었다.

잠시 뒤, 느리게 문이 열렸다. 꽤 풍채가 좋은, 푸른 머리와 수염을 한 남성이 몸을 드러냈다. 옷은 싸구려 셔츠에 가죽 조끼를 입고 있었지만, 말끔하게 정리해 둔 머리가 그가 예전 신사였음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그는 정면에 목발을 쥐고 뒷걸음치던 도르베와 눈을 마주쳤다.


"...도르베.."
"...아버지."
도르베는 작게 그렇게 말하고서, 무엇부터 말해야 할지 몰라 우물댔다. 그의 아버지도 할 말을 잊은 것은 매한가지였다. 둘은 어색한 침묵속에서 서로의 눈을 피하며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침묵 사이에서, 도르베의 배가 자신의 아버지와 동시에 울렸다. 둘은  소리에 서로를 마주하고,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아침이나.. 아침이나 같이 먹을 수 있을까요?"
"...들어오너라."


약간의 어색함마저 향신료로 사용하며, 그들은 조촐한 아침식사를 시작했다. 양쪽 모두 서로에게 말을 꺼내기 어색한 불편한 자리였지만, 어느 쪽도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작은 오두막집 안에서 식기들이 부딫히며 나는 짤그락 소리만이 푸른 아침에 울려 퍼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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