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2화 〉아버지와 아들 (52/164)



〈 52화 〉아버지와 아들

"잠깐, 도르베! 다미스 산이 뭔데요!!"
도르베는 눈 앞의 노인의 멱살을 쥐고 있었다. 노인도 얼굴이 파래져서 양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폭력반대를 외치고 있었다.

"다미스산이 뭐냐고? 그게 어디냐고??"
그는  말에 이성을 기어이 놓치고 만 것 같았다. 손에 쥔 노인을 이리저리 흔들면서, 그는 칼린을 돌아보고 말했다.

"여긴 그 어떤 마법도 사용할 수 없어! 그 '어떤' 마법도! 마정석도, 마법도, 무엇도 사용 불가능이야!"
그는 그렇게 외치고서 눈 앞의 노인을 잡고 거칠게 흔들어 재꼈다.

"왜! 왜 우리를 여기로 데려온 거냐!!! 아니, 진짜로 왜? 의미를 모르겠다!"
"진정, 진정 좀 하세요! 슬슬 정신이 아찔한 게 위험해요, 도르베씨! 진짜로!"
노인이 필사적으로 소리를 질러댔다. 칼린은 그제서야 지도에서 그가 찍은 곳과 하인킬의 거리를 알 수 있었다.


"맙소사-"
다미스 산은 윌레인 왕국의 끝자락, 국경 근처에 걸쳐져 있는 지역이었다. 저 산 너머는 다른 나라였다.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지, 지지, 진짜, 진짜로 큰일난 건가요, 이거? 도르베씨?"
"죽여버릴테다!"
"두, 둘다 제발 진정해주세요, 이제 진짜 천천히 설명 드릴게요!"
도르베에게 계속 흔들어진 노인은 어느새 안색이 푸른색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도르베가 멱에 손을 놓지 않고 가만히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자, 노인은 숨을 고르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 여, 여기는 제 집이자, 공방이거든요. 그리고 여러분을 무사히 보내드릴 수도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방법을 들어야겠다."
"여기로   사용했던 도구, 그걸로 돌아가면 되니까! 제발 그만 흔드세요!"
그는 그렇게 말하며 다급하게 문고리를 꺼내 들었다. 도르베는 노인을 풀어 주고  문고리를 받은  여기저기 둘러 보았다.


"이건...그냥 문고리잖아."
"주술도구예요. 언제든 어디에서든 이 문고리를 사용해서 '문'을 열면 제 집의 문으로 연결되지요. 그리고 집에서 사용하면 마지막에 썼던 장소로 다시 연결되어요."
도르베는 그걸 둘러보고 노인에게 던져서 돌려주었다.

"어떻게 사용하지?"
"그냥, 어떤 곳이든 우리가 들어갈 만한 '문'을 만들 수 있을 정도의 크기의 평지에 갖다 대면 돼요."
"그럼 우리를 빨리 하인킬로 돌려보내라. 그리고 얌전히 구속당해라."
"에? 잠시만요!"
도르베는 성가신 듯 고개를 돌렸다. 노인은 홍차를 다시 따르며 자리에 앉았다.

"전부 설명했으니까, 이야기 좀 하죠. 여기서 저는 그냥 평범한 노인이라는 게 밝혀졌으니까."
"뭐가 평범한 노인이냐. 여기가 네 공방이라면  연금술이니 주술이니 소름 끼치는 물건들 투성이라는 거 아니야."
"아, 아니 도르베씨는  그렇게 또 침착해지셨어요? 여기서 하인킬까지의 거리가 마차타고 한달은 가야할 것 같은데??"
이번엔 칼린이 가벼운 패닉이 온 상태였다. 그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칼린, 주술이라잖냐. 자세한 건 따져도 몰라."
"주술이 뭔데요?!"
"일종에 기억이 담기게 하는 연금술이지요."
칼린의 질문에 대답한 것은 노인이었다.

"에를 들어, 불이라는 원소와 물이라는 원소가 만나면 증기가 되지요. 비슷한 느낌으로, 구리와 아연을 조합하면 황동이 나와요. 이건 연금술이죠."
노인은 그렇게 말하고 그의 손잡이를 들어 보였다.

"그렇다면, 기민하고 접착성이 높은 도마뱀의 다리와, 어둠속을 꿰뚫어 보는 표범의 눈알, 땅을 기는 괴물의 날카로운 발톱과 약간의 담뱃잎을 섞으면 뭐가 나올까요?"
"...뭐가 나오는 데요?"
그 말에 노인은 한번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묘한 플라스크를 가지고 나왔다. 그리고  플라스크를 몇 번 흔들어 보이며 완전한 액체라는 것을 보여준 후, 테이블 위에 조금 부어 보았다.

"만져 보세요."
칼린이 그것을 만져보니, 그것은 이미 딱딱하게 굳은 상태였다. 처음에는 검은 색을 띄던 그것은 점점 투명해  갔다. 그리고 곧 그 액체가 있던 부분은 유리처럼 완전히 빛을 투과하게 되었다.

칼린이 가만히 그것을 보고 있자, 노인이 말을 이었다.

"방금 말했던 그 요소들에 이런 성능같은 건 없죠. 다만 그것들의 '기억'을 섞어 낸 것이예요. 그리고 그걸로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  것이랍니다. 이런 게 주술이예요. 이야기로 만들어내는 마법이죠."
"그...그러면 그 문고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거죠?"
"우연히 안팎으로 동시에 두들겨진 문의 문고리를 뜯어내서 달을 반사하는 물을  담아 다리 달린 기형 지렁이의 즙으로 코팅해내면 완성이랍니다."
기상천외한 만드는 방식에 칼린이 도르베를 바라보았다. 도르베는 뒤통수를 긁적였다.


"그래. 대부분에 주술도구는 양산이 불가능해. 그래서 주술사들만이 팔고, 독점할 수 있는 거지. 일단 방법을 모르고, 알아도 만들어 낼  없거든. 주술은 상식으로 이해할  아니야."
"그런...가요.."
칼린은 뒷통수를 긁적이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슬슬 제 이야기를 들어 주실 준비가 되셨나요? 그냥, 대화만 조금 해 주시면 미련없이 따라갈 게요. 반항하지 않아요."
"...어쩌고 싶나, 칼린."
도르베는 칼린의 의사를 물었다. 칼린은 이 기상천외한 노인에게 흥미가 생겼다. 그는 차를 한모금 마신 후에 입을 열었다.


"부탁드립니다."


"어디서 부터 이야기해야 할까... 아, 그래.  제가 다미스 산에 살고 있는지 부터 시작할까요...  분은 다미스산 뒤쪽편, 그러니까 윌레인보다 모르데룬이 가까운 쪽에 마을이 있는 것을 아시나요? 작은 마을의 이름은 파나빈이지요. 보통 유배당하는 죄인들이나 비등록 마법사들이 도망쳐서 숨는 마을이예요. 일부만이 알고 있는 땅이고, 국왕조차 관리를 포기한, 비공식적 치외법권이라고 할 수 있죠. 전 거기에서 태어나고 자라왔답니다.


 작은 마을에서는 의외로 여러가지를 배우게 된답니다. 유배를 당한 사람들은 보통 나라의 무거운 비밀들을 맡고 있던 귀족들이었기에 갖가지 교양을 알고 있었고, 강한 비등록 마법사들은 그걸 억제하기 위해 주술을 배우고는 했었죠. 저도 그런 부모님의 아래에서 자랐기에, 15살때까지는 마을 안에서 사냥, 연금술, 전투기술, 주술... 뭐 그런 것들을 배우면서 자라왔어요. 그러다가 그 때, 제 마법이 각성했죠. 먼저 각성한 마법이 시체를 살리는 것이었어요.

앞서 말했듯이, 유배당하는 죄인들은 전부 윌레인의 고위 귀족들이었죠. 그런 분들과 같이 대화하면  좁아터진 마을은 빨리 나오고 싶어진답니다. 저도 그랬었죠. 전 강하고 마법도 굉장했으니까, 귀족분들이 저는 윌레인으로 나서면 배틀메이지 자리는 따 놓은 당상이라고 하시더군요. 저는 막, 진짜요? 하면서, 부모님에게 이 마을을 나가겠다고 통보하고 세상을 보러 나왔었답니다. 40년 전이니까, 그 때는 주민등록 제도같은 것이 없어서 사회에 숨어드는 것이 상당히 편했었죠.


 떠돌이를 했어요. 여러 지역을 탐방하고 모험하면서, 보통 혼자 다니고는 했었죠. 제 마법이 환영받는 마법은 아니었거든요. 그러다가  아내, 나의 불이자 나의 꽃, 캐롤라인을 만났었죠...

그녀는 제 마법을 좋아했어요. 저와 같이 모험을 다녔죠. 그런데 그녀와 모험을 같이 다닌 지 8년만에, 전 다른 마법에 눈을 떠 버린 거예요. 그게 저의 두번째 마법, 전력 방출계 속성 마법이었어요.

그 때  아내의 표정을 보셨어야 했는데! 세상이 무너질 것 같은 표정을 지었었죠. 왜냐니, 속성 방출계잖아요."
칼린은 그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아 질문을 하려 했지만, 도르베가 그를 누르며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노인은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래서 우리 둘은 제 고향으로 같이 숨기로 했어요. 모두는 마을을  번 떠났던 저를 달갑게 보지는 않았지만, 다시 받아들여 주었죠. 조촐한 결혼식을 끝낸 우리 둘은 그렇게 마을에 정착했답니다... 그리고 듬직한 아들을 나았죠. 이름은 루벤이예요.

루벤은 활발한 아이었죠. 그리고 강했어요. 제 피를 강하게 타고난 탓인지 태생적으로 압도적인 마나량에, 진동을 증폭시키는 마법을 가지고 있었답니다. 그 아이는 누구 자식 아니랄까봐 마법을 발견하자마자 윌레인으로 떠나려고 하더군요. 배틀 메이지가 되고 싶다고 하더랍니다. 저와 제 아내는 그 아이를 보내 주었어요. 저의 부모님이 그랬듯이.

우린  아이의 소식을 들을 수 없었어요. 그저 그 아이가 잘 하고 있을 것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었죠. 그러다가.. 그러다가 제 아내가 죽었답니다.  이 소식을 루벤에게 전해주기 위해 다시 마을을 나왔어요. 그런데 제 아들은 만날 수 없는 사람이 되어 있더군요. 그 아이는 벌써 윌레인의 높은 자리를 맡게 되었나 보더라구요.

 아이는 파나빈으로 돌아갈  없었어요. 이제 자신은 윌레인의 국민이고, 범죄자들이 모인 땅으로 가는 것은 좌시할 수 없는 일이라구요. 저는... 저는 많이 화났었죠. 지 어미의 무덤도 보지 않겠다는 아들이 얼마나 야속했는지요. 얼마나 속이 쓰리던지요. 그래서 저는 크게 화를 내고 등을 돌려버렸습니다.


그렇게 몇 년이나 지났을까, 제 아내의 봉긋한 무덤에 아름다운 양모꽃이 피기 시작했을 무렵에, 그  제 아들은 마치 기대하지 않은 편지처럼 찾아왔어요.


전쟁이 났다고, 자신도 싸우러  것이라고, 여기에는 그저 주술용품을 받기 위해서 돌아왔다고. 매정하게도 말하는  아이의 말이 얼마나 시리게 제 가슴을 찔렀는지요. 저는  아이에게 줄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해버렸어요. 그랬으면 안됐는데!

그러자 그 아이는, 실망조차 하지 않고 비난조차 하지 않고 그저 뒤돌아  사라져 버렸답니다. 그 날은 눈물이 멈추지 않았어요. 정말, 울고 또 울었지요. 제 아내의 무덤에 얼굴을 박고 종일 밤낮을 울었어요.

마침내 빅센마르크와 전쟁이 끝났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저는 점을 쳤어요. 제 아들이 살아 있을  보려고 했죠. 그 결과는 만족스럽지 않았어요. 제 아들이... 제 아들이 죽었더군요. 루벤, 가여운 루벤은 전장에서 목숨을 잃었답니다.


 아이는 어디에 묻혔을까요? 양모꽃과 형형색색의 넓은 꽃밭, 아름답게 꽃향기를 실은 바람이 불어오는, 우리의 따스한 고향을 두고 어딘가 싸늘한 땅에 묻혀 아직 누군가가 찾아 주기를 기다리는 건 아닐까?  생각이 저를 미치게 만들었어요. 그래서 저는-"
그는 그렇게 말하고 자신의 부러진 지팡이를 바라보았다.


"아들이 어느 부대로 들어갔는지 정도는 알고 있었어요. 다행이라고 하기는 조금 그렇지만, 파나빈에 새로 온 주민분은 이번 전쟁에서 비리를 저질러서 도망쳐 오신 분이었거든요.  분이  아들을 알고 있었어요. 제 4부대를 통솔하는 용맹한 배틀메이지가 되었다고 했어요.

저는 제 아들이 걸었던 길을 따라 걸었어요. 제 아들이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떤 기분으로  길을 걸었을지 이해하려 했어요. 제 아들이 무슨 풍경을 봤는지 직접  눈으로 보려고 했어요. 늙은 몸에 지치는 여행이었지만,  문고리 덕분에 쉬는 것은 확실히 쉴 수 있었어요.


첫 전장, 그래. 처음으로 지나는 전장을 거닐어 보니 황량함 그 자체였어요. 꽃도, 생명도, 단지 시체만이 있는 곳이었어요.  아들이 이 사이에 갇혀서 저를 부르고 있는 것 같았어요. 아버지, 아버지! 하고.. 전 제 아들을 찾아야 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어쩌면 제 마법은 그걸 위한 것이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동북 최전방에서부터 서남으로 내려오며 전장의 시체들을 깨우고 다닌 것이냐."
도르베의 질문에 노인은 엷게 웃었다.


"얼마나 민폐인지는 알아요. 복구가 시급한 와중에 그런 짓을 하면 전장은 그 시체들이 다시 잠들 때 까지는 어떤 작업도 불가능한 죽음의 땅이 되지요. 하지만... 하지만 맹세컨데  누구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았어요."
"네가 저지른 일의 뒷처리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말해줘야 하는 것인가?"
도르베의 일갈에 노인은 대답할  없었다. 그런 도르베를 칼린이 막아냈다.


"칼린, 저자는 죽은 자를 모욕했다. 자신의 아들을 찾겠다고 우리의 조국을 위해 싸워온 용사들의 안식에 침을 뱉었어. 이걸 감싸고 돌 생각이냐?"
"아니요, 그러지 않을 겁니다."
칼린은 그렇게 말하고 노인을 바라보았다.

"당신이 하인킬까지 왔다는 것은, 아직도 당신의 아들의 시체를 찾지 못한 것이군요. 맞나요?"
"...네. 제 아들의 시체는 결국 못 찾았고, 제 소문을 들은 하인킬의 영주는 이미 시체를 전부 치워버렸었죠."
"왜 중간에 멈추시지 않으셨죠?  그런 도주수단을 가지고도, 하인킬의 영주가 시체를 치운 것을 눈치챘을 때 도주하시지 않으신거죠?"
도르베는 자신의 맹점을 깨달았다. 아들을 찾기 위해서였다면 하인킬에 시체가 사라진 것을 알았을  도주했으면 되는 일이었다.

"당신, 마법도 우리에게 일부러 적중시키지 않았었지. 누군가를 해치려고 하지 않았다는 말은 믿을 수 있어요. 그런데 그렇다면 도대체 왜 그런 고생을 하면서 하인킬로 향하는 발을 멈추지 않으셨나요?"
칼린의 질문에 답은 간단했다.


"점을 쳤으니까요."
"점?"
"네. 제가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있다고, 높은 장애물을 건너면 된다고 하더군요. 점의 결과라는  왕도적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지요. 제가 죽어서 아들과 같은 시신 안치소에 들어간다는 의미가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어찌되었건, 점은 제가 원하는 것을 얻을  있다고 답을 줬어요. 그렇다면 멈출 수 없었어요."


칼린은 그의 말에 숨을 죽였다. 감히 따질 수 없는 일이었다.

"칼린씨와 도르베씨를 만나서 이렇게 여기까지 왔음에도, 저는 이 모든  아들을 만나기 위한 길이라고 믿고 있어요. 만약 그렇다면 뜨거운 불구덩이건 차가운 공장의 시설이건 제 발로 뛰어들 겁니다. 제, 제 아들이란 말입니다..."
그의 고목같은 주름의 틈새로 눈물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늙은 아버지의 얼굴은 포기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끈기와 집념으로 점칠되어 있었다.


"제, 제 아들... 한 번 제대로 안아주지도 못했던... 제가, 제가 제대로 사랑하지도 못했던 우리 아들... 오오, 루벤.. 전  아이의,  아이의 군번줄 만이라도 가지고 돌아가야 해요...루벤...나의 작고 가여운 루벤...!"
넘을 수 없는 벽같이 보였던 그 위대한 마법사는, 어느새 작고 야윈 노인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는 흘러나오는 눈물을 여기저기 찢어지고 주름진 앙상한 손으로 쉬지 않고 닦아내고 있었다.


이다지도 늙고 앙상한 몸 어디에서 왕국을 두 다리로 횡단하는 집념이 나왔는가. 도르베는 그의 여윈 몸을 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그들이 상대한 것은 대마법사이자 최악 최흉의 네크로맨서가 아닌 늙은 아비였다.





그는 천천히 안정을 되찾아 갔다. 몇 번이고 쉼없이 눈물을 훔치면서도, 최대한 빠르게 자신의 말을 끝마치려 하고 있었다.

"제, 제가  말, 을 여러분에게 해 드린 이유는, 여러분과 저를 만나게 한 인과에 걸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루벤에게,  아들에게 저를 인도할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미안하다. 아는 것이 없어."
도르베는 무겁게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노인에게서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리고 있었다. 가문을 살리라며 소리를 지르던, 자신의 한심했던 아버지를 떠올렸다. 도르베는 그의 헌신이 부럽다고 느끼고 있었다.


"...저는 떠오르는  하나 있어요."
칼린은 고개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도르베도 노인도, 안색을 바꾸며 그에게 다가왔다.

"도르베, 기억 안 나세요? 이데에서 갤러한이 찾았던.."
"...신원 불명의 배틀메이지! 설마!"
"아, 여러분... 카마인의 시체중에 루벤은 없었어요.."
"아뇨, 이런 말 하기는 힘들지만... 언데드 하나가 돌무더기에 갇혀 있었거든요. 우리가 뒤늦게 찾았었습니다."
칼린은 정말 힘들다는 듯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다시 도르베에게 말했다.

"그 시체가 들고 있던 캔 기억하시나요?"
"...! 맙소사! 네 말이 맞다! 다행이구나!"
"무, 무슨 말씀이시죠?"
갑작스레 얼굴을 피는 도르베와 칼린을 보며, 노인도 표정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주름진 눈은 무리해서 커지고 있었고, 침울하게 늘어져 있던 얼굴이 당겨지고 있었다.


"당신의 아드님, 시체는 무리지만 유품은 가지고 있어요. 가져다 드릴 수도 있어요."
"그, 그게 정말이십니까?"
"조건만 지키신다면.."
칼린의 말에 도르베의 표정이 굳어갔다. 그래, 사정이 어찌되었던 그는 범죄자이다. 수백의 시체를 모독했으며, 미등록 마법사이다. 억제되지 않은 개인으로 있기에는 너무 강하다.

"...그 어떤 조건이든, 뭐든 하겠습니다."
노인은 표정이 전혀 바뀌지 않았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는 기쁘게 받아들이리라. 도르베는 그런 노인의 모습이 가슴 시렸다.

"칼린, 우리가... 그를 잡아 가는 것이냐?"
그래서 도르베는 용기를 냈다. 마지막 억지를 부리기로 했다. 칼린은 이제 임무에 충실한 자가 되었다. 이걸로 설득하기 힘들 것을 알지만, 그는 시도해야만 했다. 노인이 그랬던 것처럼, 그걸로 자신을 바꾸기 위해서.

"우리끼리의 일이다. 우리만 눈 감으면-"
"도르베."
칼린은 단호하게 그의 말을 끊었다.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닐 걸 알잖아요."
그의 말이, 엄숙하게  닿았다. 순전히 감정으로 몰아 붙이려던 억지였다.  할 말이 있을리 없다. 바닥을 내려보는 도르베를, 노인은 따뜻하게 쓰다듬었다.


"그의 말이 맞아요. 끝을 봐야 끝날 일이지요."
눈을 가리는 도르베를 보며, 노인은 행복을 경험한 자들만이 지을 수 있는 햇살같은 미소를 지었다.

"그럼, 바라시는 대로 하시죠."
노인은 그렇게 말하고 창 밖을 바라보았다. 푸른 하늘, 넓게 퍼진 초록, 시야의 끝에 웅장하게 퍼진 산맥에, 꽃들은 평화롭게 산들거린다. 풍차는 돌아가며 밀을 만들어 내고, 새와 들짐승들은 평소와 같이 마당에서 어울리고 있다.


이런 은혜같은 광경을 누리며 살아왔다. 이제 와서 그의 인생에 후회할 것은, 어딘가 춥고 황량한 곳에 홀로 쓸쓸하게 남아있을 아들에 대한 후회 뿐 이었다.


그것을 다시 되찾을  있다면 천수를 다한 늙은 목숨이 어디에 필요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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