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화 〉아버지와 아들
아침은 누구에게나 평등히 찾아온다. 시리게 내려앉은 푸른 빛 아래에 그들은 가만히 대기하고 있었다. 이제 그들이 할 일은 다가오는 마법사를 기다리는 것뿐이다.
약 40분 전 정찰대의 보고가 있었다. 그는 눈앞의 숲 길을 지나 이곳으로 올 것이다. 예상보다도 약 하루 가량 빠른 도착이었지만, 어찌되었든 상관없었다.
반정도는 감으로 승부하며 살아 먹는 그들이다. 뼈가 진동하는 듯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무장하지 않은 상태에서 맹수를 만난 듯한 기분. 그들은 불안함에 움츠리기 보다 한발을 내딛는 것을 선택했다.
"살자, 얘들아."
갤러한은 그렇게 말하며 검을 꺼냈다. 뒤이어 하나 둘 씩 자신의 무기를 꺼내 들었다. 영주의 사병들도 양 옆에서 준비한 함정들을 기동하기 위해 밧줄을 더 단단히 쥐었다.
그들의 시야 끝에서, 바람처럼 흘러오는 노인이 보이기 시작했다. 펑퍼짐한 로브와 수염이 자유롭게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한마리 새 같기도 했고, 신기루 같아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뒤로 거대한 그림자들이 따라오고 있었다. 푸르른 풍경이 걷어지며, 해가 세상을 비추기 시작하자, 그들은 그제서야 뒤에 있던 모든 것들이 동물의 언데드임을 알 수 있었다.
노인은 아무 말도 없이 조용히 발을 옮겼다. 살아있는 것들의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죽은 것들의 신음소리만이 퍼져가고 있었다. 마침내 노인이 발걸음을 멈춘 것은, 함정이 설치된 전장 땅을 밟기 직전이었다. 갤러한은 발걸음을 멈춘 노인을 향해 검을 들어 올렸다.
"얌전히 투항하라! 네놈에 대한 대책은 벌써 다 세워 두었다!"
노인은 그 말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가만히 그의 지팡이를 들어 올렸다가 바닥으로 조용히, 통, 하고 한번 찍었다. 하얀색의 빛이 바닥을 타고 흐르며 파동처럼 퍼져 나갔다.
"이 땅에 시체는 없다! 네가 찾는 것도 없다! 투항하라!"
갤러한은 다시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노인은 들은 척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다.
"...오케이. 준비해라, 얘들아."
갤러한은 검을 고쳐 잡고 자세를 낮추었다. 침묵속에서 땅바닥을 뚫으며 인골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번 전쟁에서 죽은 것이 아니었다.
"시체가 없는 땅이 이 세상 어디에 있겠습니까."
노인은 나즈막히 말하며 올라오려는 시체들을 반정도 묻어 두었다. 전부 팔만을 뽑아 두고 있는 형태였다.
"가거라."
숨소리만큼 가볍게 전달된 그 말에 그의 뒤에 있던 모든 짐승의 시체들이 일제히 달리기 시작했다.
갤러한은 가만히 있었다. 자리를 유지하며 그것들이 달려오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한순간 팔을 번쩍 들어 올리며 외쳤다.
"지금!"
그의 신호와 동시에 양 옆에 대기하던 영주의 사병들이 밧줄을 당겼다. 앞줄에 있던 언데드들을 따라 동물들이 서로를 깔아 뭉개며 넘어지기 시작했다. 부서지고 마구 섞이는 시체들은 서로 얽혀서 움직이는 것조차 해낼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돌격!"
그리고 그걸 신호로 소금부대는 달려갔다. 언데드들도 곧 앞에 넘어진 시체들을 밟으며, 비교적 멀쩡한 것들끼리 진군을 시작했다. 노인은 천천히 그 사이에 섞여 움직였다.
전장에 튀어나와 있는 팔의 개수는 척 봐도 50은 넘어 보였다. 그것 들에게 잡히기라도 한다면 분명 수습할 수 없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너무 낮은 위치였기에 일일이 베면서 지나가기도 무리가 있었다. 그들은 그 팔들을 밟아내며, 차내며 걸음을 옮겼다.
"2번! 지금!"
갤러한은 언데드들과 조우가 가까워지자 다시 팔을 올리며 그렇게 말했다. 다음 함정은 언데드의 후미 쪽으로 준비되어 있었다. 노인은 그걸 피해냈지만, 다른 언데드들은 그러지 못했다.
바닥이 무너지며, 아래에 있던 죽창에 언데드들이 꽂혔다. 죽창에는 검게 기름칠이 되어 있었다.
"불!"
영주의 사병이 거기에 횃불을 던져 넣었다. 불이 높게 타올랐다. 이걸로 노인의 퇴로도 확실하게 봉인하였다.
거기까지 해낸 영주의 사병들은 빠르게 전장을 벗어났다. 시체의 수를 늘려서 좋을 것이 없기 때문이었다.
노인은 잠깐 등을 돌려 불기둥으로 막힌 퇴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전면의 적들을 다시 바라 보았다. 드디어, 소금부대원들과 언데드들이 전투를 시작했다.
동물의 언데드는 상대가 훨씬 까다로웠다. 사람보다 한 부위 한 부위가 전부 치명적이었기에, 잘라낸 어떤 부위도 가볍게 넘겨서는 안되었다. 거기에 바닥에 솟아 있는 언데드의 팔들도 견제해야만 했다.
다행인 것은 전장이 넓다는 것과 그들에게 전략이 있다는 것이었다.
"핀!"
갤러한의 신호를 따라 핀은 활을 쏘았다. 마법사를 향해 일직선으로 날아오는 그 화살은 그의 앞에서 곰의 언데드에게 막혔다. 핀은 당황하지 않고 다음 발을 장전했다. 동물의 언데드는 핀에게는 오히려 식별이 쉬웠기에 이득이었다.
도르베는 그의 방어막을 발판모양으로 여러 개를 만들어 낸 후, 앞을 향해 나선형으로 전개했다. 동물들을 뛰어 넘어 마법사에게 바로 향할 수 있도록 만든 지름길이었다.
칼린은 그 발판을 딛으며 원방향으로 발을 내딛었다. 그리고 고지에서, 그는 손목을 그었다. 아스타도 동시에 팔을 단검으로 긁어낸 뒤, 륑게를 발판으로 도약해서 칼린이 밟았던 발판을 향해 흩뿌렸다.
도르베는 그 방어막들을 바닥에 세게 내 꽃았다. 그리고 그걸 아스타가 폭파했다. 동시에 칼린은 팔에서 흐른 피로 방패를 만들어 냈다.
그를 향해 도약하며 날아오던 언데드 하나가 밧줄에 잡혀 땅바닥에 내동댕이 쳐졌다. 칼린은 라드쪽으로 가볍게 목례한 뒤 마법사가 있는 방향으로 달렸다. 라드도 그를 향해 가볍게 손을 흔들며 잡혀 있는 언데드의 관절들을 밟아 대기 시작했다.
"합류한다!"
비슷한 위도에 이리하도 앞을 막고 있는 언데드들을 베어내며 그를 따라오고 있었다. 칼린은 그녀와 맞춰서 속도를 늦추었다. 이리하는 플레이트 아머로 말 그대로 적들을 뭉개며 쾌속으로 전진했다. 그 둘의 길 사이에는 노인이 있었다.
노인은 지팡이를 들어 올려 계속해서 화살을 쏘아 대는 핀을 견제하기 위해 언데드를 꺼내려 했다. 그러나 그는 곧 팔에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느끼며 지팡이를 떨어뜨렸다. 보이지도 않는, 궤도가 없는 공격이었다.
"맞췄다!"
소니아와 릴로의 발판을 받고 점프해서 마법을 쏜 륑게는 그렇게 보고하며 도르베의 발판으로 착지했다. 핀은 지팡이를 되찾으려는 노인을 견제하며 계속 활을 쏘았다.
그리고 그 사이에도, 이리하와 칼린은 계속해서 달리고 있었다. 서서히 노인을 접점 기준으로 맞춘 듯 사이를 좁혀 나가고 있었다. 노인은 주변의 언데드들을 방패벽처럼 원형으로 둘러 모은 뒤, 핀의 화살을 막아내며 급하게 지팡이를 주웠다.
"흡!"
그리고 노인은 양 팔로 지팡이를 잡고, 높이 들어 올린 후 바닥을 향해 내리 찍었다. 찬란한 빛이 그를 숨기고 있던 좀비들 사이로 새어 나왔다. 잠깐 새나온 강렬한 빛에 이리하와 칼린 모두 시야를 가렸다.
그리고 번개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부대원들은 조준되어 떨어지는 듯한 낙뢰를 이리저리 흩어지며 피해냈다.
"이런 씨발, 이면마법사라고?"
갤러한은 뒤로 빠져나오며 눈 앞에서 잿더미로 변해버린 언데드를 보았다. 그리고 근처의 륑게에게 시선을 돌렸다.
"게다가 나머지 공격 하나는 속성 방출계네! 어쩔꺼야!"
저 낙뢰를 맞으면 버텨낼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낙뢰에는 어떤 준비자세조차 없었다.
"릴로! 륑게! 핀이 움직이는 걸 도와줘! 부대원은 서로 서로 거리를 벌린다! 전장은 넓으니까 최대한 공간을 많이 활용해! 감전은 전염된다!"
륑게에게 그렇게 말한 갤러한은 도르베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도르베! 네 방어막에 뭔가를 꽂아 놓을 수는 있나?"
"응! 가능하다!"
"대기해! 소니아! 핀한테서 화살 좀 가져다줘!"
낙뢰는 그들의 활동을 제한하려는 목적인지 계속해서 그들의 근처로 내리 찍어 졌다. 소니아는 그런 낙뢰를 비명을 지르며 어찌저찌 피하면서 달려갔다.
갤러한은 소니아에게 받은 화살 5발을 가지고 도르베에게 다가갔다. 아스타가 그들을 엄호하고 있었다.
"도르베! 네 방어막에 이 화살의 촉이 위로 향하도록 꽂아둬!"
"무슨...아!"
도르베는 그 말에 감탄하며 방어막을 여러 개 꺼내 화살을 박아 넣었다.
"최대한 높이 띄우고, 오각형으로 배치해서 띄워둬!"
"알겠다!"
"아스타! 이거 받아!"
갤러한은 가지고 있던 물통을 꺼냈다.
"네 물통까지 같이 저 마법사에게 던져서 터트려!"
"...오케이!"
노인은 낙뢰를 떨구다가 그들이 피뢰침을 세운 것을 알게 되었다. 사전에 자신의 마법 정보가 유출되었을 지 의심하게 될 정도로 빠르고 유연한 대처였다.
그러나 상대가 예상하지 못한 것도 있는 듯했다.
"이런 씨팔!"
다시 정신을 차리고 다가오던 칼린과 이리하에게, 수평으로 전기가 쏘아져 나아갔다. 마법사의 손을 기준으로, 마치 바닥에서 실이 잡아당겨지는 듯한 이미지로 전기가 퍼져 나오고 있었다. 전신에서 뻗어져 나오기 시작하는 그 전기는 그를 하나의 테슬라코일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야! 이건 반칙이지!"
아스타는 그렇게 소리치며 몸을 최대한 웅크리고 앞으로 굴렀다. 그 전기의 장막은 모든 부대원을 아슬아슬하게 비껴 나갔다. 문제는 그의 언데드들이었다. 그의 거대한 전격이 그의 군세마저 다시 불사르고 있었다.
아스타는 갤러한의 수통에 손바닥을 내리 찍었다. 그리고 그만큼 피가 묻은 것을 확인하고, 자신의 수통에 달린 가죽 끈으로 둘을 같이 묶은 뒤 이리하를 향해 던졌다. 이리하는 혼란한 와중에 그걸 어떻게든 잡아냈다.
"이리하! 그걸 저 노땅한테 던져!"
이리하는 그 말을 듣고 노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강한 완력으로 그를 향해 일직선으로 던졌다. 노인에게 총알처럼 날아가는 그것에, 그를 둘러싼 언데드가 반응하고 움직였다. 그러나 의미는 없었다.
"지금!"
아스타는 외마디 비명처럼 소리지르고 그 수통을 폭파시켰다. 수통을 막으려던 좀비의 몸뚱아리와 같이, 그 안에 있던 물이 네크로맨서를 덮었다.
"이제 저놈은 자기 근처에서 전기마법은 못써! 달라붙어라!"
"맡겨둬!"
노인도 그들이 노리는 바를 알았다. 견제를 더 강하게 할 필요가 있었다. 그는 지팡이를 휘둘렀다. 지팡이의 궤도를 따라, 전기가 마치 장벽처럼 일어나며 세워지기 시작했다.
도르베는 장벽을 발판으로 언데드들을 뛰어넘어, 전기의 수평궤도를 넘어서 달려나갔다. 마침내 도르베는 그의 상단까지 도달했다.
"먹어라!"
도르베는 그 말과 함께 들고 있던 세검을 수직으로 들었다. 그리고 발판을 차내며 활공하듯 그에게 떨어졌다. 노인은 무너진 좀비의 대현 사이에서 지팡이를 들어 올렸다.
도르베의 검이 노인의 지팡이를 쳐냈다. 노인이 크게 휘청거렸다. 그의 장벽 안쪽에 있던 칼린과 이리하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간다!"
칼린의 검이 그를 가리던 언데드의 척추와 같이, 그를 갈라내기 위해 뻗어져 나왔다. 노인은 그 긴날을 피하기 위해 무리하게 허리를 뒤로 넘겼다. 이리하는 노인의 방어벽에 비어 있는 부분으로 파고들어간 뒤, 검을 수직으로 내리 찍었다.
"...!"
노인은 그 상태에서 양 손으로 무엇인가를 꺼냈다. 한쪽 손에 든 것은 수정같이 생긴 것이었다. 그가 그 수정을 꽉 쥐자, 그의 주먹에서 빛이 세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모두의 혼란을 일으킬 만한 지옥같은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끼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액!!!!!"
이리하는 정면으로 강한 빛과 굉음을 받았다. 그녀는 고통에 검을 놓치고 뒷걸음질 쳤다. 노인은 그 때를 놓치지 않고 도르베의 발을 걸었다.
도르베도 소리를 접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즉각적인 반응을 하지 못하고 혼란해하던 그는 곧 옆으로 넘어졌다. 그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검을 뽑아 바닥을 훑으며 낮은 검궤를 그렸지만, 노인은 가볍게 발로 그것을 붙잡고 그를 향해 한 손을 들이 밀었다.
그리고 그는 칼린의 방향을 돌아보았다. 지근 거리에서 그걸 버틸 수 있는 생명체 같은 것은 없다고,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미 그의 시선 안에 칼린은 존재하지 않았다.
"무슨..."
그렇게 말하던 노인은 수염을 휘날리며 급하게 뒤를 돌아보았다. 갑작스레 날라오는 검에, 노인은 반응보다 빠르게 움직였다. 길게 뻗은 수염이 엉망으로 잘려 떨어져 나갔다. 칼린은 그가 다시 상황에 적응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하아!!"
그의 검이 다시 노인에게 다가갔다. 노인은 지팡이로 그의 검격을 막아내며 혼란스러운 머릿속을 진정시키려 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그가 이렇게 멀쩡히 저항할 수 있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노인은 지팡이를 반정도 꺾어 칼린의 검을 쳐내고 그대로 칼린을 밀치려고 했다. 그러나 노인의 지팡이는 칼린의 명치에 도달하지 못했다. 그의 팔 안쪽에서 검붉은 색의 낫같은 것이 노인의 지팡이를 막아냈다. 그리고 그것은 다시 순식간에 사라지면서, 칼린의 검의 궤도를 숨겨냈다.
흩어지는 피의 사이에서 노인은 다급하게 지팡이를 세워 보았다. 칼린은 수평 궤도로 검을 박았다. 겨우 막아낸 그 검격에 노인의 지팡이가 결국 부셔져 나갔다. 그대로, 칼린은 한걸음 더 다가갔다.
노인은 지팡이의 부서진 부분으로 칼린의 검을 잡은 손을 찍어냈다. 달려가던 칼린은 그걸로 검을 놓치며 자세가 낮아졌다. 노인은 그를 타고 구르며 자리를 벗어나기 위해, 그의 위쪽으로 올라 타듯 등을 가져다 댔다. 그리고 품 속에서 문고리같이 생긴 것을 꺼냈다.
그것이 실수였다.
칼린은 그대로 자신을 올라탄 노인의 팔을 팔꿈치로 붙잡았다. 노인이 당황해서 옆으로 몸을 빼려고 하는 것을, 칼린은 그대로 팔을 뒤로 돌리며 그의 행동을 제한시켰다. 그리고 노인은 칼린의 등에 짊어져 진 듯한 자세가 되었다.
"하-압!"
한판 매치기, 칼린의 양 팔이 그를 집어 던질 듯한 기세로 바닥으로 꽂혀 나갔다. 노인은 바닥에 내다 꽂히며 고통스러운 듯 숨을 크게 뱉어 냈다. 칼린은 그대로 멈추지 않았다. 그는 아직 잡고 있는 그의 팔을 기점으로 넘어진 그에게 올라타기 시작했다.
"기다려, 칼린! 그가 또 뭔가를 쓰려고 한다!"
뒤늦게 완전히 정신을 차린 도르베가, 그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을 확인하고 칼린에게 달려나갔다. 그러나 칼린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지금 그를 지배하는 것은 투쟁심이었다.
칼린은 그대로 노인의 목까지 감아냈다. 그리고 다리를 최대한 넒게 펼치며 그를 구기듯이 압박하기 시작했다. 노인은 그 고통속에서도 정신을 유지해내려 노력하면서, 그의 문고리를 바닥에 내리 꽂듯 박아버렸다.
"칼린!"
도르베는 이미 그들의 근처까지 다가왔었다. 그는 세검으로 노인의 손을 찍어 버리기 위해 준비자세를 취했다.
노인은 문고리에서 손을 떼고, 급하게 그것을 돌려서 문을 열 듯 밀어냈다. 그가 누워있던 바닥에 마치 문이 열리며 다른 공간이 열리듯 빛이 세어 나왔다. 그리고 천천히 그 곳으로 떨어지듯 들어가기 시작했다.
"칼린! 놔!"
"죽어도 못 놔요!"
칼린은 지금 벌어지는 일 같은 것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저 자신이 잡은 상대를 탭 전에는 풀어주지 않는다는, 가장 기본적인 수칙만을 적용하고 있었다. 이 노인은 여기에서 제압해야 했다. 어디에도 갈 수 없다.
도르베는 아랑곳하지 않고 칼린을 뒤에서 붙잡았으나, 꼼짝도 하지 못하고 같이 끌려 들어가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도르베도 놓을 수 없었다. 다리 힘으로 어거지로 버티던 그는, 다리통증때문에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입술을 깨물며 버텨내고 있었다. 꽉 깨문 아래입술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절대 놓치지 않을 거다, 칼린!!!"
도르베는 그렇게 말하며 이미 안쪽으로 떨어져 들어가려고 하는 네크로맨서까지 끌어당길 기세로 조금씩 발을 옮겼다.
"전부! 네크로맨서가 도주하려고 한다!"
이리하는 뒤의 언데드들을 처리하던, 장막 밖에 있던 동료들에게 소리를 질렀다. 네크로맨서의 마력도 한계에 다다른 것인지 장막도 사라져 가고 있는 딱 좋을 때였다.
"도우러 가자!"
모두가 그 방향으로 달려 나갔다. 이젠 일어나지도 못할 정도로 분쇄되어버린 언데드들을 밟으며, 같이 끌려 들어가기 시작하는 도르베를 향해 달렸다.
"아."
그러나 그들의 도착까지 버티지 못했다. 도르베의 다리에서 툭,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의 보정장치가 끊어지는 소리였다. 도르베는 그 소리에 달려오는 동료들을 보았다. 그리고 이 앞에 무엇이 있든, 그것은 자신이 전에 벌였던 배신의 대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설령 죽는다고 해도, 적어도 동료를 돕다가 죽는 것이 되리라.
"아스타, 고마웠다."
짧게 그렇게 말한 도르베는, 이윽고 칼린과 함께 그 문으로 넘어갔다. 땅바닥은 그들이 들어가자 마치 처음부터 그랬다는 듯 다시 맨땅으로 바뀌었다. 천연덕스럽게 닫혀버린 땅은 남은 자들의 표정만큼이나 엄숙하게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