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4화 〉아버지와 아들 (44/164)



〈 44화 〉아버지와 아들

마차가 이데에서 출발한 지 4일째 점심에 일어난 일이었다.


"아...   안 일어나냐..."
릴로는 퍼질러 누워 그런 소리를 했다. 갤러한은 그런 릴로에게 눈치를 주며 말했다

"아무 일도 없으면 행운인거지. 철없는 소리 하지마."
그 말에 릴로는 고개만 조금 돌리고 무슨 말을 하려다가, 한 층 더 퍼질러 지며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예상보다 너무 순조롭긴 하군."
라드의 말에 릴로가 튕겨나는 듯 일어나며 소리쳤다.


"그래! 너무 순조롭다고! A급 마법사에, 국가단위로 토벌중인 네크로맨서를 잡으러 가는 길인데! 이러다가 진짜 팔에 이끼가 자랄  같단 말이야!"
그렇게 말하고서 릴로는 이리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여기서 이번 일이 이렇게 쉽게 쉽게 넘어갈 거라고 예상한 애 있냐? 하루하루 생존에 쫓기면서, 서로서로 등을 맞대고 사방을 경계하는, 그런 그림을 기대하고  거 아냐 다들?"
"넌 편하게 가고 있는 데 뭐가 그렇게 불만인거야?"
"불만이 아니라! 이정도면 되려 불안해진다고!"
릴로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마차 안에서 소란부리지 말고 앉아. 그리고 지금 하는  되게 징크스같은 거 알아?"
갤러한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마차가 급정거했다. 릴로는 균형을 잃고 앞으로 굴렀다.

"....이런 느낌으로, 씨발."
갤러한은 넘어진 릴로를 보며 나즈막히 말한 뒤 마부석과 이어진 창을 열었다.

"무슨 일이요?"
"아, 잠깐 사람이 끼어들었습니다. 곧 쫓아내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다시 닫히는 창에 릴로가 손을 끼워 넣었다. 그리고 천천히 일어나며 말했다.


"우리가 나가서 대화해 볼 게요!"

#


마차를 막은 것은 폭발하듯 헝클어진 흑발에, 얇은 눈을 가진 남성이었다. 여기저기 구겨진 대충 입은 흰 색 셔츠에는 잉크가 정신없이 튀어 있었고, 헐렁한 바지는 밑단이 바닥에 쓸리고 있었다. 등에는  가방을 매고 있었는데, 여기저기에 줄로 이것저것 매달려 있었다. 가만히 있어도 시끄러운 것 같은 사람이었다.

"아니, 당신 짬밥으로 이야기할 게 아니니까 부대원들과 이야기를-"
그는 자신을 막은 마부에게 그렇게 말하다가 잠깐 빠져나온 릴로와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줄줄이 나오는 부대원들을 보며, 가방을 마부에게 던져주고 셔츠에 손바닥을 닦으며 릴로 쪽으로 다가왔다.


"여, 무슨 일이-"
"반갑습니다! 조금 구름이 끼기는 했지만, 서로의 첫만남을 기념하기에는 손색이 없는 날이군요! 제 첫인상은 어땠나요? 첫인상은 중요하지 않아요. 앞으로 오래 만날 사이가 될 테니까! 말은 이래도 첫인상은 꽤 중요하긴 하죠. 그 인상을 바꾸는 건 어려운 일이거든. 아 궁금하실까봐 말씀해 드리는 거지만, 제가 본 여러분의 첫인상은 정말 좋아요! 전부 하나같이 동화  용사님들 같군요! 미남 미녀만 모여 있으니 혹시 부대는 얼굴도 심사 기준에 있었나요? 저쪽 가면 쓰신 분은 이야기가 많을 것 같은데, 따로 대화해 보고 싶네요. 아, 마부분들과는 최악의 첫인상이었습니다. 저 분들은 자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길잡이라면 자고로 유연함과 융통성이 생명인데, 그걸 키우지 않은 자는 표지판과 다를 게 없는 거겠지요. 그러면, 여러분과 우유를 훔쳐 마신 고양이의 수염만큼 젖어 있는 하늘과 방금 전부터 우리 사이를 맴도는 맵시 없는 금파리와 제 길을 막으며 어깨동무를 하고 있던 거목들 모두에게 인사를 드리고자 합니다! 듀블린 반 마레에요! 여러분이 가고 계시는 카마인 영지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기다릴 수  없어 이렇게 뛰어와 버렸습니다! 그리고 맙소사, 후회할 수가 없는 선택이었네요!"
덤벼드는 듯 말하는 그의 말에 릴로는 조금 질색하며 한 걸음 물러났다.


"-런 씨발...."
"말을 끊어서 죄송하네요! 하지만 너무 신나서 성급했던 나머지 이게 실례라는 것도 잊고 있었습니다! 한분 한분 전부 악수를 돌리고 싶은데 혹시 여기 악수가 불편하시거나 의수이시거나 손이 없거나 갈고리 손이거나 손이 세개라서 어떤 손으로 악수해야 할 지 헷갈리시는 분은 안계시나요? 저는 몰라도 여러분은 험한 일을 하시는 분이니 혹시 몰라서 질문 드리는 건데,  대충 보니 저쪽 붉은 머리 숙녀분 손가락 여섯개인 것 밖에는 안 보이네요!  혹시 신경 쓰시던 것이었으면 정말 죄송합니다만-"
"잠깐 닥쳐봐."
갤러한은 머리를 싸매며 그의 말을 막아냈다.


"미안한데, 나랏님 일하고 있는 부대의 마차거든. 그리고 솔직히  말은 첫만남을 기념한다느니 뭐라느니  때부터 무시하고 있었어. 할말 있으면 짧게 부탁하지."
갤러한의 말에 그는 조금 실망스러운 듯 입맛을 다시며, 모두에게서 떨어졌다. 그리고 입가에 웃음을 걸치며 과장되게 허리를 숙였다.

"그러면 앞  각설하고, 빠르고 짧게 자기소개만 하겠습니다. 가난한 시민이자 펜촉 끝에 만들어 진 것이 제 땅이요 영지니 저는 영주이고, 허상을 진실로 보이게 하니 기예꾼이고, 세련된 아름다움을 탐미하기에 에술가이며, 이 모든 수식어 이전에 듀블린 반 마레라는 이름을 달고 있습니다. 만나게 되어 영광입니다."
대부분의 일행들은 눈살을 찡그리며 싫어 했지만, 소니아는 조금 신났었다.

"예술가인가봐! 나 지금 괜찮냐? 자다가 깼는데-"
그렇게 말하며 머리를 다듬기 시작한 그녀에게 릴로가 다가와 팔을 걸쳤다.

"저건 아니지."
"왜! 멋있잖아!"
"꾀죄죄한 꼬라지에, 머리 덥수룩 하고,  구겨진 셔츠 좀 봐. 내가 아는데, 저런 놈들은 먹버하면 지옥 끝까지 쫓아오는 타입이야..."
"..너 가끔 진짜 역겨운 거 알아?"
진지하게 그렇게 조언하는 릴로를 떠밀어내며 소니아는 그에게 다가갔다.


"그, 마레씨는 무슨 일로, 우리 마차를 세우셨나요?"
여기저기 정돈하며 그렇게 묻는 소니아를 잠깐 바라보던 마레는 허리를 숙여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히어리 꽃처럼 찬란하게 늘어진 금발의 아가씨, 전 '벨카의 전차', 요나씨의 아래에서 일하기 위해 여기에 왔답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카마인 영지를 찾아가고 있는 왕국 직설 전후 복구 소금 부대원 분들이 맞으시고요?"
소니아는 그의 찬사에 기분이 좋아져서, 허리를 쭉 피고 고개를 들어 올리며 손을 가슴에 갖다 댔다.

"네, 맞아요. 우리가 바로 소금부대-"
"역시! 마차에서부터 느껴지는 기품과 용기가  멀리 떡갈나무 숲의 올빼미집 아래에서부터 느껴졌습니다! 카마인의 영주님에게 추천서를 받아 요나님을 만나 뵈려고 했는데, 이야, 그런데 요나님의 부대가 우리 영지로 오고 있다지 뭡니까! 그래서 이건 죽어도 봐야겠다는 생각에 바로 집에 있는 모든 생필품을 챙겨 들고 바리바리 달려와서 쉬지 않고 가고 있었습니다! 왜냐면 그, 영주님 가라사대 부대원 분들이 여기까지 오려면 막 4일은 걸린다는 겁니다! 매분 매초 늙어가는 저에게 4일이나 기다리는 것은 인생의 낭비라 생각해서 바로 달려 나왔습니다만, 정말 유사표현 없이 죽을 뻔 했었죠. 하하, 그래도 이렇게 빨리 만날 수 있게 된 것이 어디죠?"
"아니, 요나 아래에서 일할 거면  우리한테 온거야. 적당히 마차타고 꺼져.  짜증난단 말이야."
륑게는 그의 수다에 질려서 짜증을 내며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그는 고개를 돌려 륑게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아무리 륑게라도 그가 다음 타겟이 된 것은 눈치 챘다.


"그 악센트! 이 나라 분이 아니시군요! 이야, 멋진 발음이네요. 이성이든 동성이든 윌레인 왕국 내의 동물이든 한번은 멈춰서 두  듣고 가려는 섹시한 악센트네요!"
"으아! 저리 꺼져!"
륑게는 질색을 하며 마차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따라 들어가려는 그를 갤러한이 검을 뽑으며 막았다.


"나 진짜 촌극은 싫어하거든... 이제부터 접미사 접두사 없이 네 용건만 말하고 볼일 없으면 지금 뒤로 꺼진다, 실시야. 알겠어?"
마레는 목에 다가온 갤러한의 검날을 내려보며 입가를 일그러뜨리면서 웃었다. 그리고 허리를 곧게  뒤  검을 손가락으로 밀어내며 말했다.


"진정하세요, 입가의 상처가 왜 생겼는지 궁금해서 돌아 버릴 것 같은 외모를 가지신 용맹한 전사분. 제가 요나님에게 바로 가지 않고 이쪽 부터 들른 이유는, 제가 지원한 직책의 특수성과도 관계가 있답니다."
"설명해."
"전 말이죠, 요나님의 '홍보'를 위해서 왔답니다."
생소한 단어에 갤러한이 고개를 약간 기울였다.


"요나님이 하신 선행, 정책, 그녀의 영지가 얼마나 멋진 곳인지 널리널리 알리는 거죠. 왕국 구석구석에 요나님의 이름을 퍼뜨린 후, 그녀를 강하고 위대하게 만들 겁니다! 아아, 마치 별처럼 말이죠! 그리고 제가 그녀를 고른 이유는, 바로 여러분 때문입니다!"
갤러한은 아직 검을 내리지 않고 있었다. 그가 보기에는 이 마레라는 자는 일반적인 또라이가 아니었다. 아주 단단히 미친 자식처럼 보였다. 전쟁의 영향같은 걸 받지 않은, 태생적인 미친놈이다.


"라무르 마을에서 기적을 일으키셨다는 걸 알아요! 아아,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멍청한 글을 쓰고 있던 제 자신이 얼마나 부끄러워 지던지..! 여러분의 활약상을 퍼뜨려야 겠지요. 그리고  주축인 요나님을 널리 퍼뜨려야 겠지요. 그게 제가 앞으로 할 일입니다. 요나님의 덕을 홍보할 거예요."
갤러한은 눈쌀을 찌푸렸다. 그에게는 자신들이 재주 넘으면 요나가 덕을 챙기게 만들겠다는 말로만 들렸다.


"물론, 영웅님들의 이야기가 주가 되겠지만 말이죠. 그래서 이번 임무에 동승해서 일하시는 모습을 봐 두고,  유능함을 퍼뜨리고 싶다는 겁니다!"
"...우리는 지금 A등급 마법사를 사냥하러 가는 길이야.  마을에도 들러서 그가 만들어 놓은 언데드들도 죽일 꺼고. 일반인의 비위로는 바라보기도 힘든 것들이지."
"하하! 실례지만 신사분 눈에는 제가 일반적으로 보이시는 겁니까?"
유쾌하게 웃어 재끼는 그를 보며, 마차 밖에 나와있던 부대원들은 서로 시선을 돌렸다.


"...영주님에게 지금 연락해  게요."
칼린은 그렇게 말하며 전화기를 꺼냈다.


'무슨 일이냐.'
"아 영주님, 지금 한 남성분이..."




'그 자를 바꿔라.'
칼린의 설명을 전부 들은 요나는 칼린에게 그렇게 명령했다. 칼린은 그 전화기를 마레에게 건내 주었다.


"여기는 귀에 대고, 여기에 대고 말하세요."
간단히 설명을 끝내자, 마레는 전화기를 받고 귀에  뒤 입을 열었다.


"영주님! 아직 초상화와 무훈으로 밖에 접한 적 없는 분이시지만 태양 같으신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찬란함이 적을 녹이고-"
'각설하고 본론만 말해 주십시요. 우리 부대원이 일하는 것을 어떻게든 직접 보셔야 겠습니까?'
말이 끊긴 마레는 잠깐 입을 벌리고 멍하니 있다가 대답했다.


"네."
'.. 카마인 영주의 추천서는 칼린... 가면 쓴 자에게 보여주시면 됩니다. 세부 사항은 부대원들과 결정하고, 그들에게서 쫓겨나지 않는 것을 당신의 첫번째 시험이라고 생각해 주세요. 그리고 모쪼록 임무에 방해는 안되도록 떨어져 주시길."
"당연하죠! 후회 없는 선택일 겁니다!"
마레의 반응에서, 그가 이제 마차를 같이 쓰게  것을 모두 알 수 있었다. 갤러한은 급하게 마레에게로 달려가 전화기를 빼앗았다.

"영주님, 지휘관 명령에 불복종 하는 게 아니라, 이 새끼는 진짜 또라이 같은데요.. 우리끼리 어디 중간에 갖다 버리라고 태우시는 겁니까?"
"갤러한. 그는 믿을 만하다."
"아니,  믿을  같은데요?"
즉답하는 갤러한은 전화기 너머로 영주의 한숨소리를 들었다.

"..만약 그가 진짜로 '듀블린  마레'라면, 그는 지금 윌레인에서 가장 잘나가는 극작가이다. 그리고 일단 현역 귀족이니 너도 예의를 갖추도록."
요나는   있었다. 상회이라는 집단의 악평을 막아낸 것은 그 개인이었다. 놓칠 수 없는 인재임은 틀림없으리라.

"...진짭니까.."
갤러한은 흥분해서 칼린에게 영주의 추천서를 꺼내 보여주고 이곳 저곳을 더듬기 시작한 마레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씹는 담배를 꺼냈다.

"얘들아..  분을 모셔드리자꾸나."
"뭐? 진짜?"
마차 안에서 대기하던 륑게가 문을 박차며 그렇게 소리 지르자, 갤러한은 손을 흔들어 모두를 모이게 했다.

"잘나가는 글쟁이에 귀족이시란다. 뭐, 똥 밟았다 생각하고 데리고 다녀 보자고. 떠돌이랑 3일정도만 있으면 지쳐 나가 떨어질 테니까. 귀족 변덕 맞춰주는  일 아니겠냐..."
"그럼 방금 말한 이름이 진짜라고? 진짜 성(姓)씨까지 딸려 있는 귀족이야?"
"그렇댄다... 륑게  싹싹 빌고, 일단 어느 마차에 태울 지 정하자..."
"야! 우리마차! 우리마차에 태우자!"
신나서 그렇게 말한 것은 소니아였다.

"미쳤냐? 저걸 우리 마차에 태우자고?"
"야, 나 극장에 로망 있는 거 알잖아! 한번만 해 주라! 제발!"
륑게도 알고는 있다. 소니아는 극장이나 문학글 같은 귀족들의 전유물에 관심이 아주 컸다.


"하.. 시팔, 나한테 불똥 안 튀게 해라.."
륑게는 그렇게 말하고서 같이 반대하던 아스타를 잡아 끌고 마차로 돌아갔다. 도르베도 어찌되든 상관없다는 말을 남기고 들어갔다.

"저도 궁금한 게 많으니까.. 그냥  몸 좀 그만 더듬으라고 말만 해주시면 돼요"
칼린의 허락까지 떨어졌기에, 그는 소니아의 마차를 타기로 했다. 조용했던 그들의 마차가 앞으로 다시 즐거워질 것이라고, 소니아는 확신에 차서 그를 부르러 달려갔다.






"시프트제로 해."
야영준비를 하기 위해 마차를 나온 소니아는 여지껏 잡아온 언데드랑 비슷해 보였다. 라드가 마차  쪽을 돌아보니, 같은 마차에 있던, 마레를 제외한 전원이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반면 마레는 그들의 생기를 빨아먹기라도 한 듯 생기가 넘쳐 흐르고 있었다.

"저새끼 태우는 마차는 시프트제로. 아니면 지금 쫓아내. 짐승 밥이든 뭐든 그냥 쫓아내."
중얼거리듯 말하는 소니아가 조금 소름 끼쳐서, 갤러한은 칼린에게 다가갔다.


"저, 칼린, 마레님에 대해서 말인데-"
"-시프트제로 하죠, 우리.."
칼린도 갤러한의 말을 끊고 그렇게 말했다. 뒤에서는 발을 질질 끌며 아스타가 기절한 것처럼 보이는 도르베를 업고 마차를 나오고 있었다.

그는 그 참사속에서 륑게를 찾아보았다. 그러나 륑게는 꽤나 멀쩡한 상태였다.


"넌 어떻게 그렇게 멀쩡하냐? 네가 제일 못 버틸  알았는데?"
"내기에서 이겨서 마부석으로 빠질 수 있었어. 운이 좋았지."
"...그렇게 심하냐?"
갤러한의 질문에 륑게는 마레가 주변에 마래가 없는지 확인하고 귓속말을 전했다.

"도르베가  놈한테 칼빵 놓을라 했어...나랑 아스타가 필사적으로 말리고 기절시킨거야."

#


야영지에 도착하자 마자 마차 안에 있던 모두가 도망치듯 튀어 나갔기에, 마레는 마차 안에서 혼자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런 마차 안에 라드가 들어왔다.

"여, 마차는 평안하셨습니까, 도련님?"
"이야, 다들 정말 친절하시던걸요, 모래사막같으신 용사님. 무슨 일이시죠?"
라드는 자리에서 일어나 마차를 나오려는 마레를 손짓으로 다시 앉히고 그 맞은편에 앉았다.

"뭐, 별게 있습니까. 유명한 극작가님이랑 대화 한 번 해보려고 그러는 거지."
마레의 눈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라드는 그가 말을 꺼내기 전에 먼저 용건을 꺼내기로 했다.


"아아, 그러고 보니 말인데.. 대화하려니까 급 떠오른 일인데 말입니다, 분명 라무르 마을의 일을 듣고 인상깊었다고 하셨었던 것 같았는데.. 제가 맞나요?"
"아, 그럼요! 여러분은 한  정도만에 왕도 포기한 땅을 되살리지 않으셨습니까?"
신나서 말하는 마레에게 라드가 몸을 낮추고 물었다.

"그.. 라무르 마을에 대한 소식, 어디서 어떻게 들으셨습니까?"
마레는 그 말에 동작을 멈추고 머리를 쓸어 올렸다. 그리고 눈을 조금 뜨며 말했다.

"뭐, 이야기라는  바람처럼 물처럼 나비처럼 불처럼 2월의 꽃향기처럼 흐름을 타며 전해지는 거 아니겠습니까? 굳이 따지자면, 그래. 다임상회 소속의 상인분에게 전해 들었지요.."
라드는 그 말에 입가를 일그러뜨리며 웃었다. 그리고 마차의 창문을 열고 담배를 찾기 위해 외투를 뒤적였다.

"..그렇다면 우리가 라무르 마을에서 그렇게 성공하지는 못했다는 것을 아셨겠군요."
마레는 입고 있던 바지의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라드에게 건내 주었다. 라드는 짧게 감사인사를 하며 그걸 얻어 받았다. 꽤 고급 담배였다.


"아뇨, 당치도 않아요! 그건 성공이지요. 암, 성공이고 말구요. 그 정도의 이야기입니다! 어디가 실패라는 거죠?"
"일가족이 죽었잖습니까."
라드는 그렇게 말하며 마레를 바라보았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알 수가 없었다.


"네, 그렇죠. 근데 그 이야기는 재미없잖아요?"
아무렇지도 않게 그렇게 말하는 마레를 보며 라드는 한번 헛웃음을 쳤다.

"그래서..  이야기만 빼고 우리 부대의 첫 임무의 영웅담을 퍼뜨린 겁니까?"
마레는 그 질문에 담배를 주머니에 다시 집어넣으며 말했다.

"대중은 일단 재밌어야 보는 거니까요.. 영웅담이 원래 그래요. 재밌고 멋진 부분만 남겨두고, 추하고 서글픈 부분은 빼내야죠. 라드씨-"
그는 다리를 꼬고 팔에 턱을 괴며 라드에게 질문했다.


"재미없는 이야기에 가치가 있습니까?"
라드는 그의 말에 웃었다. 처음에는 건조한 헛웃음이었지만, 그 웃음소리는 점점 커졌다. 마레도 같이 웃었다.

'이 자다. 이 자가 다임상회의 이야기 확산을 방해했다.'
라드는  수 있었다. 눈 앞에 있는 자는 단순한 또라이 자식이 아니었다. 그의 상회 해결사로서 임무의 가장 큰 장해물이 될 사람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결심했다.


'이 자를 요나와 같이 둬서는 안된다.'
그를 이 여행길에서 죽이기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