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2화 〉아버지와 아들 (42/164)



〈 42화 〉아버지와 아들

"뭐, 공지도 끝났으면 바로 하자고."
갤러한의 뻔뻔함에 핀은 눈가를 살짝 찡그렸다. 그리고 어쩔 수 없다는 듯 화살을 꺼냈다.

"마차는 어디에서 대기중이야? 이데에 그대로 있나?"
"응."
"그럼 우리도 빠르게 불 붙이고 자리 비키자고. 영지 근처에 텐트 깔고 자자."
"좋지."
륑게는 갤러한의 말에 대충 대답하며 전장 쪽을 넘겨보았다. 멀리서 떨어져서 보고 있으면, 조명도 없는 곳에 사람들 다수가 모여 꼼짝도 않고 서있는 그림이었다. 굳이 시체라는 추가 정보를 더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소름 끼치는 장면이었다.


"...진짜 기분 나쁘네. 지금까지  마법 중에 가장 기분 나빠."
"전에 봤던 합성마법 결과물보다?"
"..그게 있었네."
릴로와 륑게는 그렇게 말하며 방독면을 썼다. 소니아는 담배를 집어 물었다.


"야, 방독면 껴."
"이것만 피고."
그렇게 말하고 소니아는 불이 붙은 화살로 담뱃불을 붙였다. 그리고 흰색 연기를 뱉어 내며 요나에게 링크를 걸었다.

'소니아. 지금 작업을 시작하는 거냐?'
"네. 현재 대강 확인한 결과는  100구, 상세보고는 힘들 것 같습니다."
'그래. 그 쪽 보고는 칼린에게 맡기도록. 마법사에 대해 알아낸 사실은?'
"아직 추가로 알아낸 사실은 없습니다."
'티본 마을에서 그의 목격담이 있었다. 마을의 여관에서 하루 숙박하고 바로 다음날 아침에 떠났다는군. 외형은 우리가 작성한 몽타주랑 다를 것이 없었다. 지금 그를 마을로 데려온 주민을 심문 중이다.  정보가 들어오면 칼린에게 전하겠다.'
"그, 영주님.. 칼린이 전보가 가능한 지금 굳이 제가 보고를 드릴 필요가 있는 겁니까? 차라리 다른 동료들과 연락할 때 사용하는  더 효율이 좋을 것 같습니다."
요나가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가 들렸다.

'...소니아, 부대에는 전부터 너와 같은 파티였던 일행이 3명이나 있다. 이건 네가 부대원 과반수의 협박에 의한 허위보고나 보고 생략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거기에 칼린의 보고가 추가된다면 서로 허위보고에 대한 경계도 되지. 서로 입을 맞춰 허위보고를 한다면 방법이 없겠지만 말이다.'
"그러면 한 명이든  명이든 똑 같은 게 아닌가요?"
'칼린은 부대 안에 일행이 없다. 나머지 과반수가 압박할 수도 있어.'
소니아는  말에 조금 눈가를 찡그렸다.


"아니, 칼린이 딱히 부대 안에서 왕따를 당하는 것도 아닌데-"
'소니아, 넌 네 파티들을 제외한 부대원 중, 정말로 '네 일행' 이라고 생각하는 대원이 있나?'
소니아는 그 말에 대답할 수 없었다. 확실히 부대 안에서도, 그들은 '팀 원생텀' 이라는 울타리를 만들어 뒀었다.

'그래서 칼린은 혼자인거다. 너네들의 일행이 아니야. 그리고 칼린은 나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아.'
지나칠 정도의 확신이었지만, 소니아도 티본 마을에서 있던 일을 들어서 알고 있다. 저것은 결코 과신은 아니었다.


'납득했나?'
소니아는 그녀의 말을 듣고 나서야 알  있었다. 칼린이 고장난 것은 요나의 짓이었다.

"..납득했습니다."
"야, 소니아! 슬슬 방독면 껴라. 불붙었다."
소니아는 갤러한의 말에 영주에게 보고를 마치고 링크를 끊었다. 이번만큼은 갤러한에게 신세를 진 것 같았다. 그녀의 몸에 식은땀이 흥건해졌다.


#


불이 옮겨붙는 것을 확인하고서, 부대는  갈래로 나누어 졌다. 갤러한, 소니아, 이리하, 핀, 륑게는 먼저 영지 근처에서 텐트를 설치하기로 했고, 나머지는 조금 더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그리고 릴로를 시작으로 감시를 맡은 인원들도 하나씩 돌아오기 시작했다. 텐트가 전부 설치되었을 무렵엔 칼린을 제외한 모두가 돌아왔다.

"칼린은.. 언데드의 수를 정확히 세고 있는 중이다. 혼자서 하겠다고 하더군. "
도르베는 그렇게 말하며 근처에 앉으려다가 오른다리가 무너지며 넘어졌다.


"야! 괜찮냐?"
아스타는 그런 도르베에게 달려가 일어나는 것을 도와줬다. 도르베는 천천히 그녀에게서 떨어지며 스스로 앉았다.

"아니, 아픈 건 아니야. 괜찮다. 보정기기가 풀어졌던 것뿐이야."
도르베는 그렇게 말하면서 바지를 걷어 올려 오른쪽 다리에 장비된 기계장치를 드러냈다.


"소니아, 거기 빨간 통에서 일자드라이버 하나만 꺼내 주겠나?"
"응."
소니아는 그에게 드라이버를 던져 주었다. 도르베는 그걸 받아 조금 서툰 솜씨로 장치의 기어를 조여갔다.


"진짜 하나도 안 아프냐?"
"무통마법은 한 2주일 간다고 했었으니까 말이다. 다음주부터는 정신력으로 버텨야 하겠지만, 아직은 정말 아무렇지도 않아."
도르베는 옆에서 구경하는 아스타에게 그렇게 대답하고 다시 묵묵히 기어를 조여갔다. 라드는 그런 둘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너네 둘이 친하게 지내는 건 의외인 걸?"
"넌 친구 없어서 부럽냐?"
갤러한의 빈정거리는 말에 라드는 코웃음을 치고 말했다.


"그냥, 내가 보기엔 둘이 너무 다르거든.. 이런 시기에 이런 곳에서 만나서 그런 건가?"
그리고 눈을 감고 턱에 손을 가져다 대며 과장된 생각하는 자세를 만들어 냈다. 그리고 잠시  실눈을 뜨며 입가를 들어 올렸다.

"한.. 14년 전이었으면 분명 저렇게 친하게는 못 지냈었을 껄?"
그 말에 갑자기 모든 소리가 멈췄다.


"뭐야? 갑자기 왜 멈춰?"
소니아는 갑자기 망치질을 멈춘 갤러한에게 그렇게 물었다. 핀도 자신과 떠들던 릴로가 갑자기 조용해져서 조금 눈치를 봤다.

"..라드, 지금 그딴 말을 꺼내는 이유는 뭐냐."
"별로?  생각 없었는데."
도르베도 뒤늦게 그 분위기를 알아 차렸다.

"뭐냐, 갑자기. 작업으로 돌아..."
드라이버질을 멈추며 아스타쪽을 올려다본 도르베는 말을  마치지 못했다.

아스타는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쥔 주먹이 붉은 색을 넘어 흰색이 되어가고 있었고, 양 어깨에는 힘이 들어가 언제든지 주먹을 날릴 준비가 되어 보였다.

아스타는 그 상태로 몸을 부르르 떨며 가만히 있다가 곧 다시 도르베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심호흡을  뒤, 바닥에 재수없다는 듯 침을 뱉었다.


"도르베, 먼저 들어간다. 수고하라고."
그렇게 말하고 그녀는 가장 먼저 완성된 텐트로 들어갔다. 그러나 그 누구도 거기에 뭐라고 하지는 않았다. 갑작스레 무거워진 분위기 안에서, 라드만이 평소와 같은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


소니아는 모닥불을 보며 오늘 보고 중에 들었던 말들을 다시 회상해 보고 있었다. 다시 생각해 봐도 소름 돋는 일이었다.


칼린은 팀 원생텀의 꽤 좋은 친구이다. 어렵지 않은 의뢰라면 무료로 받아줄 수도 있을 정도이다. 그렇다고 파티원도 아니고 비밀도 많은 그와 필요 이상으로 관여될 일은 없을 것이다.


바로 그것 때문에 소니아는 고민 중이었다. 칼린에게 요나가 그를 조종하려고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다. 이걸 말 했을 때 생겨날 리스크를 감당할 정도의 관계가 맞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런 생각에 머리를 싸매고 있는 소니아의 옆에 갤러한이 다가왔다.

"야, 넌 아스타한테 무슨 일 있었는지 모르지?"
뜬금없는 질문에 소니아는 1시간쯤 전에 있던 그 일이 떠올랐다. 그리고 조심스레 물었다.

"말해줘도 되는 거야?"
"아니, 안 말해줄 건데.. 그냥 벌써 다른 애들한테도 퍼진 건가 싶어서. 하나하나  찔러 보기는 그렇고, 너한테 가장 먼저 물어봤지."
확실히 아스타는 소니아가 파티에 들어오기 전에 모두와 잠깐 일행이었다고 했었다. 그러면 아스타도 그녀의 '일행'이 되는 것일까. 소니아는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머리가 아파왔다.

"하... 시발.."
"넌 또 뭔데."
갤러한은 늘어지게 한숨을 쉬는 소니아를 보고, 그 옆에 앉았다.


"너한테 말해도 아무 의미 없..."
아니. 생각해 보면 갤러한에게는 말하는 것이 맞을지도 모른다. 갤러한의 여자친구는  미친 영주의 성에 거주하고 있으니까.


"야, 이제부터 하는 말은 일단 내 추측성 발언이긴 한데.. 비밀로 해라?"
.
.
.
"이런 미친..."
모든 이야기를 듣고서 갤러한은 그렇게 되뇌었다.


"역시 조금 비약이 심한가?"
소니아의 말에 갤러한은 몸도 목소리도 낮추며 대답했다.

"아니,  말이 맞는 것 같아! 나도 그런 거 느낀 게 있어!"
일단 갤러한은 요나를 별로 좋게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사적인 감정을 빼고 보아도 이상했던 것은 많았다.

라무르 마을에서의 임무가 끝나고 칼린이 방 안에서 혼자 일주일을 박혀 있었다는 것을 들었을 때, 그 때도 이상한 것을 느꼈었다. 리쿠르트의 말로는  문이 잠겨 있었다고 했지만 성의 주인이 못 들어가는 방같은 것은 없으리라.


"그러고 보니 나도 이상한 걸  적이 있어.. 영주가 칼린에게 마치 스스로가 부족하다고 인정하게 만드는 듯한 장면이었는데, 내가 그걸 보고 있던 걸 눈치채더니 나한테 살기를 숨기려고 하지도 않더라."

갑작스레 둘 사이의 대화에  것은 이리하였다. 갤러한은 급하게 옆으로 자리를 피했고, 소니아는 그녀의 철퇴를 그대로 휘두를 뻔했다.


"아니, 대화에  거면  예고를 해.. 진짜 공격할 뻔했잖아."
"그랬으면 막았을 껄."
이리하는 소니아의 불평에 단답으로 대답하며 둘 사이에 앉았다.

"저기, 칼린에 대해 조금 중요한 이야기라서 그런데.."
"그런데?"
갤러한의 말에 이리하는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그런데? 가 아니라 너 칼린이랑 싸우기도 했고, 네 앞에서는 더 이상 이야기 못하지. 미안하지만 자리좀 비켜 달라고."
갤러한의 말에 이리하는 소니아가 꺼내던 담배를 하나 빼앗아 물며 말했다.

"네가 나한테 칼린을 잘 부탁한다매. 그리고 영주가 칼린을 겁쟁이로 만든 거라면 어느 정도 참작사유는 되지. 내가 고칠  있어."
모닥불에서 나뭇가지 하나를 들어 올려 담배의 불을 붙인 이리하는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갤러한이 그 담배를 빼앗으며 말했다.

"절대 안돼!  들어, 이 사실이 칼린에게 전달되면 안돼!"
"왜 안-"
"왜나면, 칼린이 지금 완전히 영주의 손 안에 있기 때문이야! 지금 칼린에게 그걸 전하면, '뭐 이런 소문이 도네요, 영주님!!'같은 느낌으로 바로 영주에게 보고할거다. 생각을 해, 밥통아!"
"바..밥통.."
"그래서, 어쩔 거야. 칼린을 도와줘야 될까?"
갤러한은 소니아의 질문에 답할  없었다. 도와주기 싫은 것은 아니었다.


"도와주고 싶고, 장기적인 계획이지만 방법도 떠올랐어. 하지만.."
"하지만?"
"기억하잖아. 전에 칼린을 탈출시켰을 때 리쿠르트가 어떤 꼴이 됐었는지. 요나가 우리가 칼린을 도우려는  알게 되면 어떤 짓을  저지를지 몰라."
갤러한은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떨궜다. 소니아도 아무말 할  없었다. 굳이 그들이 관여할 일이 아니었다.

"일단 모든 이야기는 우리들 끼리 묻어두는 걸로 하자. 우린 오늘 여기서 대화한 적 없는거다. 솔직히 이런  하기는 싫지만, 위험도A 마법사랑 대적하고 몇이나 살아남을지도 모르는 일이야. 칼린에 대해 생각할 때가 아니라고.."
그렇게 말하고 갤러한은 자리에서 일어나 소니아와 이리하 사이에 쭈그려 얼굴을 들이밀었다.

"둘 다 알겠지. 입 조심하고, 우리끼리만 알고있는 거고, 더 퍼질 일도 없는 거야.  이야기는 이번 일이 끝나고 모두가 살아있으면 다시 하자고."
"...응.."
"알겠어."
각각의 대답을 들은 갤러한은 먼저 텐트에 들어갔다. 소니아와 이리하는 가만히 불을 바라보고 있다가, 이리하가 먼저 자리를 떴다.

#

"네 두려움은 전부 과장된 거야. 진실이 아니야."
어느새 언데드의 수를 전부 세고 가만히 쪼그려 앉아 있던 칼린에게, 이리하는 그렇게 말하며 갑자기 다가왔다.

"아...이리하씨? 저한테 화가 나신 줄 알았어요."
"겁쟁이라 화가 났었지. 근데 아냐. 네 겁은 전부 영주가 만든 허상이야."
불쑥 등장해서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한다. 평소대로의 이리하다.

"저기.. 꼭 지금 해야 하는 이야기일까요? 조금 혼자 있고 싶은데."
칼린의 약간 쌀쌀맞은 말투에도 굴하지 않으며, 이리하는 그의 옆에 앉았다. 그리고 가만히 그가 보던 풍경을 바라보았다.

그 자리는 언데드가 일일이 보이는 자리는 아니었다. 그냥, 아래에서부터 올라오는 불길이 농염하게 일렁이는 것만 보였다. 다만 길게 뻗은 사람 형태의 그림자들이 무너져가는 것은 반대쪽 암벽에 비쳐 확실하게  수 있었다.


칼린은 그 벽에 그려지고 있는 그림자를 보고 있었다. 거기에서 라무르 마을에서 죽은 여주인을 그려보고 있었고, 죽은 마리를 생각하고 있었고, 자신이 요나의 피를 빨았던  날을 생각하고 있었다.


"영주에게 보고하기 위해 보고 있던 것 아니었어?"
"그렇죠."
"그러면 아직도 남은 보고거리는 뭔데?"
칼린은 거기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냥 가만히 앉아 있었다.

이리하는  반응이 별로 마음에 안 들었다. 그래서 한번 흔들어 보기로 했다.


"네 비밀을 알아.  오른팔에 부목을 대면서 눈치챘던 거야."
그 말에 칼린의 몸이 크게 한번 요동쳤다. 다만 곧 다시 평정을 유지하며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무슨 뜻인지 모르겠는데,  자세히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사실 그녀가  것은 뻔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칼린이 굳이 물어보는 이유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 그녀든 자신이든 둘 중 하나의 생사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이리하는 그 반응에 만족한듯 웃었다. 그리고 칼린의 머리를 누르며 자리에서 일어나 방독면을 벗었다. 그녀의 젖은 은발이 펼쳐지며 흩날렸다.

"겁쟁이한테는  알려주지."
그렇게 말하고 이리하는 등을 돌려 자리로 돌아갔다. 칼린은 그 시원한 대답에 얼이 빠져서 가만히  등 뒤를 보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왜 말한 건데요, 그럼!"
조금 억울한 듯 소리지르는 칼린의 목소리를 뒤로 하고, 이리하는 웃었다.

#

100명은 밤 낮으로 불탔다.  릴로와 소니아가 주변을 돌며 불똥이 튀지 않는지 감시하고, 륑게와 아스타가 주변인의 통제를 했다. 도르베와 이리하는 이데에서 음식과 잡화들을 사 모았다.


나머지 넷은 불길이 사그라 들었을 때 그 잿더미속을 탐색할 인원이 되었다. 그들 조는 16시쯤에야 작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아, 라드씨. 거기에서 멈춰서 오른쪽으로 3보에 있는 잿더미. 그 안에 아마 반지가 하나 있을 거에요. 칼린씨도 그 근처에 아마도...군번줄? 그런 게 있을 거에요."
핀의 분주한 감지에 맞춰 그들은 이것저것 주워 내고 있었다.


"전부 여기로 와봐!"
그러다가 볼일 좀 보겠다며 근처를 벗어난 갤러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갤러한이 있던 곳은 돌 무더기가 쌓여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토막나 있는 언데드의 시체도 있었다.

"무슨 일이 있던 거죠?"
칼린은 토막 쳐지고 바위에 깔려서도 꿈틀대고 있는 언데드 조각들 에게 눈을 떼지 않고 물어보았다.


"아니,  빼러 암벽 쪽으로 가까이 갔다가  좋아 보이는 돌더미가 있길래 그쪽으로 조준했는데.. 갑자기  사이에서 튀어나왔다고. 아마 전쟁 중에 암벽이 무너지면서 거기 깔려 죽은 것 같아."
"그리고 일어나고도 돌 더미 아래에서 깔려 있다가, 생자의 반응을 느끼고 튀어나왔다. 이건가?"
"그렇지. 근데 이미 토막내서 제압했으니까 이건 둘째로 치고 말이야."
갤러한은 들고 있던 옷과 허리띠를 집어 올렸다.

"멀쩡한 전리품을 얻었단 말이지. 꽉꽉 차 있어."
갤러한이 허리띠를 가볍게 노크하자, 딱딱하게 울리는 소리가 났다. 그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그것들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뭐가 있을지는 다같이 보자고."
"어... 갤러한? 실망시켜서 죄송한데.."
핀은 정말 죄송스러운 얼굴로 지팡이를 튕겼다.

"그 안에 있는 철 캔 전부 흙같은 것만 들어있는데요..?"
"뭐? 흙을 왜 들고 다녀?"
갤러한은 그 말에 허리띠를 들어 올리며, 금괴 하나 정도 되는  금속 케이스를 열어 보았다. 핀의 말 대로 흙만 꽉 차 있었다.

"이런 제기랄!"
안에 있던 흙을 부어버리고 다른 케이스를 꺼내 보았지만, 그것도 다를 것은 없었다. 그 와중 옷을 살펴보던 륑게도 그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야, 옷안에 있던 거는 군번줄이네? 걸작이로군."
주머니 안에는 군번줄이 총 14개가 있었다. 갤러한은 4개째의 케이스의 내용물을 갖다 부으며 중얼거렸다.

"아직 네개 남았어.. 아직 네개 남았다고 젠장.."
칼린은 가만히 그 장면을 보다가, 번뜩 떠오른 생각이 있어 다섯개째 케이스의 내용물을 부으려는 갤러한을 막아냈다.

"뭐야,  찾았어??"
잔뜩 기대하는 갤러한에게서 칼린은 케이스를 가져왔다. 그의 예상대로, 케이스에는 글자가 음각되어 있었다.

"갤러한! 방금 버린 케이스들 전부 갖다 주세요!"
"뭐야! 진짜 뭔가 찾았어?"
갤러한의 얼굴에 다시 화색이 돌면서 빠르게 땅바닥에 던졌던 케이스들을 칼린에게 건내 주었다. 칼린은 그 케이스들을 하나하나 확인하다가, 찾고 있던 것을 찾았다.

"우리가 여기 전에 지나친 곳이 어디었죠?"
"도나영지였지."
라드의 말에 칼린은 들고 있던 빈 케이스를 모두에게 보여주었다.


"여기, 도나영지라고 적혀있어요."
"그래서?"
"이 사람은 자신이 지나온 곳의 흙을 들고 다닌 거예요. 날짜랑 장소명이랑 같이 적어 뒀네요."
라드는 넝마짝이  시체의 옷을 훑어보고서 말했다.


"옷 보니까 윌레인의 배틀메이지였나 본데.. 군번줄은 먼저 죽은 동료들 것까지 들고 다닌 것 같고 말야. 14개나 있으면 누가 본인껀지는 알 방법이 없는데. 갤러한, 목에 달고 있던 군번줄은 없었냐?"
확 김이 새 버린 갤러한은 허리띠를 바닥에 내려놓고 자리에 앉아 건성으로 대답했다.


"그런 건 없었어."
"아니,  케이스중에 가장 오래된 게 고향일  아니예요! 그거랑 14개의 군번줄이랑 대조해서 보면 이 사람 신원은 밝힐 수 있어요!"
칼린은 그렇게 말하며 갤러한이 내던진 허리띠를 끌고 가져와 모든 케이스를 꺼내 보았다. 그리고 거기 적힌 날짜 중 가장 오래된 것을 찾아냈다.


"파나빈... 파나빈이 어딘  아시는 분 없어요?"
칼린의 그 질문에 누구도 대답하지 못했다. 정말  중 누구도 모르는 지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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