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1화 〉아버지와 아들 (41/164)



〈 41화 〉아버지와 아들

가장 먼저 일어났던 것은 라드였다. 그는 언데드들이 전부 탔는 지 확인하기 위해 텐트를 나왔다. 그리고 거기에서 망부석처럼 앉아 있는 칼린을 보았다.

"여."
라드가 부르는 소리에 칼린이 고개를 돌렸다.


"좋은 아침이에요, 라드씨."
언데드들이 있던 곳은 거대한 화장터 같았다.  타고 바닥에 잿더미만이 깔려 있어서, 올라오는 회색 연기는 아지랑이처럼 시야를 간지럽혔다.

라드는 칼린의 옆에 앉아 그가 보고 있던 광경을 바라보았다. 떠오르는 태양 아래로 삭막한 살풍경이 지평선을 이뤄내고 있었다.


"일찍 일어나셨네요?"
"너보다는 아니지만 말이야."
라드가 웃으며 그렇게 말하자, 칼린은 다시 고개를 잿더미로 돌렸다.


"저,  숨도 안 잤거든요. 라드씨가 일찍 일어나신 게 맞아요."
라드는 거기에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다.

"지금 저는... 라드씨가 보기에는 어떤가요?"
담배를 문 라드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가져온 등불을 열고 불을 붙였다. 그리고 연기를 빨아들이며 답했다.


"영주의 끄나풀을 맡은 거에 대해 말하는 거면, 썩 반갑지는 않지?"
칼린의 코웃음이 들려왔다. 그는 손가락을 꼼지락 대다가 말했다.

"라드씨도 제가 겁쟁이 같다고 생각하는지 물어본 거긴 한데, 일단 알겠어요."
"알면 됐고."
칼린은 희나리같이 쌓여 있는 시체들을 보며 씁쓸함을 삼켜내는 듯 침을 삼켰다.

"이봐, 칼린. 영주의 아래에 있는 이유가 뭐지?"
라드가 그렇게 물었다. 칼린에게는 어렵지 않은 질문이다.

"큰 은혜를 입었으니까요. 거기에 조금이라도 보답해야죠."
라드는 칼린과 요나, 에테롬의 관계를 대략 알고 있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고용주가 아직 칼린을 포기하지 않은 것도 알고 있다.

"은혜란 건 무겁지."
그러나 그가 입을 연 것은 그런 이유나 배경사정 때문이 아니었다.

"일방적인 구제라는 것은 폭력적인 거야. 그렇고 말고. 때로는 죽을 때까지 갚을  없을  같은 은혜도 있지."
라드는 자신의 담배갑을 칼린에게 내밀었다. 칼린은 머뭇거리며 그중 하나를 꺼냈다.

"제일 끔찍한 건.. 그 빚졌다는 감각 말이야, 그건 구해준 사람이 없애  수 있는  아니거든. 구원받은 사람이 일방적으로 느끼는 감각이지. 어떻게 보면 새로운 방식의 구속이야."
라드는 그렇게 말하고 언제나 입가에 걸어 두던 사막같은 미소를 없앴다. 그는 해가 뜨는 장면을 바라보며 무언가를 회상해내고 있었다.


"아는 사람 중에 그런 사람이 있었다. 너무 큰 빚을 져서, 그 빚을 갚아보려고 이것 저것 하다 보니까 너무 깊은 수렁까지 들어간 거야. 자신의 구원자까지 질려버릴 정도로 수렁에 들어간 거지. 이제 와서 그 은혜를 잊고 평범히 살아가기는 늦을 정도로. 그래서 계속 수렁 속을 헤치면서, 자신의 보답을 원하지도 않는 구원자에게 빚을 갚는 사람이 있었어."
"그건-"
"칼린, 그 사람은 언제부터 자신의 구원자를 수렁에 들어가게 한 원인으로 생각하게 되었을까? 언제부터  구원자의 은혜를 증오하게 되었을까?"
라드는 머리를 쓸어 넘겼다. 옷 소매 틈으로 밧줄이 그의 뺨을 스쳤다.

"넌 언제부터 그렇게 될까?"
그리고 다시 입꼬리를 밀어 올리는 듯한 삭막한 웃음을 달고, 라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영주에게 평생 동안 은혜를 갚을 것인가? 언젠가 네가 은혜를 다 갚았다고 생각하는 날이 올 것 같아? 영주는 네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을 허락할 것 같고?"
같이 일어서려는 칼린에게 손을 뻗어 제지한 후, 라드는 등을 돌렸다.

"내가 한 말들에 대해 잘 생각해라. 되도록이면 영주에게 말하는 건 피하고.  들어간다."
칼린은 발소리도 없이 걸어가는 라드를 그저 바라보고 있었다. 가만히  모습을 보던 그는 방독면을 들어 올리고 라드가 준 담배를 물었다.


#


다음으로 일어난 것은 갤러한이었다. 그는 칼린과 함께 잿빛 화장터에 들어갔다.
바싹 타버린 시체들 사이에서 형태가 남아있는 것을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묵묵히 그 참사속을 뒤지던 그들은 납덩이로 변해버린 금니와 일그러지고 바래서 식별이 불가능해진 군번줄 6개, 그리고 마정석으로 만들어진 가짜 손가락을 주웠다.

"이름이 적혀 있네."
갤러한은 그 글자를 확인하고서 눈을 살짝 찡그렸다.


"빅센마르크 놈 꺼로군."
그리고 그는 그 손가락을 주머니에 넣었다. 이후 하나 둘 씩 참여 인원이 늘었지만, 특별히 더 찾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리고 오전 11시쯤이 돼서야 그들은 회색 구름을 뿜어내고 있는 듯한 그 거대한 화장터에서 발을 옮겼다. 마차는 다섯명씩 나눠서 탔다.


"네. 군번줄 6개에 금니...였던것 4개, 이름이 세겨져 있는 강철 아대, 운좋게 거의 멀쩡한 상태로 남아있던 담배케이스... 이 정도밖에  찾았어요. 빅센마르크병사에게서 나온것도 말씀 드려야 할까요?"
륑게가 그 말에 눈이 둥그래져 칼린을 바라보았다.

'뭐, 그 정도는 부대의 전리품으로 간직해도 좋다. 금니는 전부 버려도 되고, 나머지는 식별용으로 사용할 수도 있으니 가져오도록.'
"네, 영주님."
칼린은 그걸로 통신을 마쳤다. 륑게는 칼린을 돌아보며 불만스러운 듯 말했다.


"야, 그런 거 일일이 묻지 말라고.. 전리품 정도는 챙길 수  있는 거 아니냐?"
"직통 보고가 제 일이니까요... 죄송해요."
"아니, 죄송하다가 아니라 앞으로 안 그러겠다고 해 주지.. 뭐 됐다."
륑게도 칼린에게 그걸로 너무 따질 수는 없었다. 그는 다시 창 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마차 안이 조용했다.

"칼린..."
도르베는 천천히 몸을 숙이며 몇  말을 우물대다가 말했다.

"네가 내렸던 결정, 그건 네 독단으로 이뤄졌던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찬성했기에 이뤄졌던 계획이었고, 우리 모두의 실수였어. 우리는 동료지 않느냐."
그는 힘든 표정으로 웃었다. 도르베도 지금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러나 자신보다 힘들어 보이는 칼린을 위해 조금 무리하고 있었다.

"....우린 동료지?"
도르베는 그런 웃음을 걸고 칼린에게 손을 내밀었다. 아스타가 보기에는 양쪽 다 위태로워 보였다.

"...물론이죠, 도르베씨. 우리 모두 동료예요."
그렇게 말하는 칼린은 도르베의 악수를 받지는 않았다. 그저  이상 표정이 보이지 않는 가면 뒤에서 가만히 앉아 있을 뿐이었다.

도르베는 그런 칼린을 보고 한순간 얼굴이 무너졌다. 그러나  본래 표정을 찾고 다시 힘겨운 웃음을 지으며 손을 빼냈다.


"..그래. 괜한  물어봤구나."
평정을 가장하며 웃는 도르베를 보며, 칼린은 피곤함이 몰려왔다. 그는 눈을 감았지만 마차가 삐걱이는 소리가 너무 크게 울려서 잠들 수 없었다.

#

늦은 밤이 되어 야영을 준비하고 있을 때였다. 도르베는 텐트를 치면서 조금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계속 그의 주변을 어슬렁대고 있는 아스타 때문이었다.

"...내 주변에서 얼쩡거리는 이유가 뭐냐, 아스타."
"아니? 딱히 그러는 건 아닌데."
"그런가, 미안하군."
도르베는 그렇게 말하며 완성한 텐트 안으로 들어 갔다. 아스타도 따라 들어갔다.

"할말이라도 있나?"
"뭐가?"
천연덕스럽게 대답하는 아스타에게 도르베는 귀찮다는 듯 대충 침낭을 꺼냈다.


"특별히 할 말도 없다면 나가라. 내 텐트다."
아스타는 그렇게 말하며 누워 버린 도르베를 보며 구석에 쪼그려 앉았다.


"..너 무슨 일 있냐?"
"아무일 없었는데, 지금은 조금 귀찮은 일이 생긴  같군."
"아니, 진짜로."
그녀의 목소리가 사뭇 진지하게 들려서 도르베는 어쩔 수 없이 침낭에서 일어났다.

"뭐 때문에 그러는 지는 모르겠다만, 지금 걱정할 사람은 내가 아닐 거다. 동료를 위로해 주고 싶은 것이라면 칼린을 찾아가라."
"아... 걔는 아직 이런 일들이 익숙하지 않은 애잖아. 난 그게 걔 나름의 적응이라고 봐."
"낙천적이로군."
"근데 넌 군인 출신이라면서? 요즘 네가 이상한 게 라무르에서 있었던 일 때문은 아니잖아?"
도르베는 조금 생각하다가 물었다.


"내가 요즘 이상했나?"
"존나게. "
확실히 도르베는 이상했었다. 졸리다고 끼니를 넘기는 것은 기본이고,  특유의 날 선 성격을 잃은 듯 아스타의 시비에도 귀찮다고 넘어가고 있었다. 동료들의 말을 제대로 못 듣는 경우도 자주 생기고 있었고, 칼린의 망가진 모습을  이후로는 혼자 허공을 보기 시작했다.


"...되돌아 보면 이상하긴 했었군. 미안하다."
"그래, 그런 거! 존나 어색하다고!"
학을 떼는 듯한 아스타를 보며, 도르베는 화난  아니라 지쳐서 눈을 감았다.


"이봐, 별일 아니다. 걱정하지 않아도 네크로맨서와 직접 싸울 때에는 최대한 정신을 차릴 거니까. 네 텐트로 돌아가."
"아니, 그러면 버려진 개같은 표정을 짓지 말던가.. 신경쓰이게 해놓고 그러면 어쩌라는 거냐? 칼린 들어오기 전 까지만 여기 있을테니까 말해봐."
그녀는 그냥 나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도르베는 그런 아스타를 보며 앉은 자세를 고쳤다.

"어떻게든 들어야 나가겠다 이거냐?"
"그런거지."
아스타도 그를 마주하며 앉은 다리를 펼쳤다. 잠깐 생각하던 그는 머리를 한번 쓸어 넘기고 말했다.

"...내 떠돌이 별명이 뭔지 아나?"
"아... 모르는데."
"'겁쟁이'도르베다. 4년 전 전쟁에서 선발대로서 빅센마르크의 최전방에 잠입했었지."
도르베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짐 가방 속에서 작은 동전을 하나 꺼냈다.


"팀원 중에는 조각이 취미인 애가 있었어. 손이 얼마나 섬세했는지, 부대원 14명의 이름을 동전 하나에 적을 수 있을 정도였지.  동전이 그거야."
아스타는 그 동전을 받아 살펴보았다. 확실히 작게 이름들이 적혀 있었다.

"그  우리 부대도 결사대였다.  혼자만이 살아 돌아왔어. 그래서 '겁쟁이 도르베'다."
아스타는 손가락으로 동전을 돌리며 듣다가 그 말에 그 동전을 떨궈 버렸다. 도르베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 동전을 주웠다.

"나한테 결사대는 많이 무겁다는 거다. 이번이 두번째니까 말이야."
그는 살짝 고개를 올려 아스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당황했는지 머리에 손을 올리고 눈을 감고 있었다.

"신선한 반응이군."
"내가 할 말이 없잖냐..."
"굳이 위로할 것도 없다. 이제 나가."
아스타는 그대로 몸을 앞뒤로 흔들며 생각하다가 소리쳤다.


"너도 보험에 들어라!"
"뭐?"
당황한 도르베를 밀어내며, 아스타가 그를 올라탄 형태가 되었다.


"우리도   많이 넣어서 죽기 억울한 금액 만들어  테니까, 빼지 말고 넣으라고."
"이..일단 거기서 비켜! 비키고 말해라! 오해받으면 어쩌려는 거냐!"
"얼라리, 이런 일에는 진짜 어리게 반응하네?"
도르베는 아스타를 치우기 위해 양 팔을 뻗었지만, 재미있는 것을 발견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아스타에게 양 팔을 제압당했다.

"야, 보험 참가하면 풀어 줄게. 아직 인당 250생텀일  넣어두는 게 좋아? 금액은 계속 오를 거라고."
능글맞게 웃으며 아스타는 말했다.


"우린 아무도 안 죽을 거거든."
도르베는 그런 아스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에게서 놀랄 정도로 색기가 느껴지지 않는 다는 사실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스타도 그런 그를 보며 웃었다.

"그걸 너가 정하는 거냐. 대단하군."
"뭐, 사실 라드는 죽으면 좋겠기는 한데..."
도르베는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그리고 그를 따라 조금 뒤로 빠진 아스타와 눈을 마주하며 말했다.

"좋지. 맞춰주마. 내일 아침에 내도록 하지."
아스타는 그 말에 선을 풀었다. 그리고 조금씩 뒤로 빠져나왔다.


"그래. 그럼 죽상  풀라고. 놀리는 맛이 없잖아."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다가 발에 닿아 쓰러질 뻔한 등불을 잡아냈다.


"고맙다. 신세를 졌군."
그리고 그 때 등 뒤에서 들려온 말에 잠깐 멈췄다가, 돌아보며 웃어 보였다.

사실 그녀가 묻고 싶었던 것은 그게 아니었다. 그녀가 묻고 싶었던 것은, 임무 출발  날에 그가 비명처럼 질러 대던 잠꼬대에 관한 것이었다. 옆방에 있던 그녀가 듣고 찾아 올 정도로 비통한 꿈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도르베에게 자신과 비슷한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는 다른 것이었다.

그래도 언젠가는 그 이야기도 할 수 있게 되리라.


#


이틀 밤이 지나고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야 그들은 두번째 목적지에 도착했다. 이데라는 소규모 영지였다. 영주의  빠른 대처 덕분에 전후 복구가 성공적으로 진행되어서, 다른 전장 근처 영지들에 비해  멀쩡한 마을이었다.

"여기는 왔었던 곳인데 말이야.."
갤러한은 그렇게 말했다.


"우리가 칼린,  만나기 전까지 전장에서 청소부일을 했다고 했잖아? 그렇게 돌면서 지나간 자리 중 하나거든. 그러니까 여기엔 언데드가 별로 없을 거야. 쉽게 지나가겠군."
갤러한의 말에 핀이 미심쩍게 바라보자, 륑게가 끼어서 변호했다.

"정말로, 완전 깔끔하게 청소해냈었다고. 군번줄도.."
륑게는 거기까지 말하고서 얼굴이 하얘졌다.

"뭐야, 갑자기 왜 그래?"
갤러한은 그렇게 말하다가 같은 것이 떠올랐는지 륑게와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가 급하게 릴로와 소니아에게 달려가 말을 전하자, 그 둘도 비슷한 표정이 되었다.

"나...난 그러면 마을을 좀 들를게. 기름이 다 떨어졌어."
"난 아대좀 사러 갈게!"
"난 너클!"
각자의 이유를 대며 한 명씩 마을로 뛰어간 팀 원생텀은 소니아만 남게 되었다.

"나..난..."
소니아는 머뭇거리다가 일단 급한 일이 먼저라고 생각해 아무 말이나 뱉고 자리를 피했다.


"난 그냥 달리고 올게!"
남은 인원들은 마차 앞에서 멍하니 그들이 뛰어 들어가는 것을 보고 있었다.

"무슨 일일까요?"
"바보들 생각을 어떻게 알겠나."
칼린의 말에 도르베는 가볍게 대답했다.

"갤러한씨는 기름이 떨어졌으니 그렇다고 쳐도, 다른 분들은 좀 수상하긴 하네요.."
핀은 농담을 섞어서 그렇게 말했지만, 사실 이른 아침에 언데드 소각작업을 벌일 수는 없는 노릇인지라, 딱히 누구도 깊게는 생각하지 않았다. 요컨데 이데의 영주에게 보고하기 전 자유시간이라는 것이었다. 개인이 무엇을 하든 상관없었다.


"나도 잠시 마을을  둘러보고 오지."
라드도 그렇게 말하며 마을로 발을 향했다. 남은 다섯의 어색한 침묵 속에서 칼린도 일어났다.

"전 이데의 영주님을 뵈러 갔다 오겠습니다."
칼린은 그렇게 말하며 일행들을 둘러보았다. 물론 이리하는 최대한 빠르게 시선을 지나쳤다. 그에게 지금 가장 거북한 것이 그녀였다. 다행인건, 이리하가 그의 말을 무시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뭔가 말야, 첫번째 언데드 소각이 뭐, 가볍게 진행되지는 않았지만, 솔직히 쉽게 끝났잖아? 위기감이 갑자기 사라진 느낌이네.."
아스타의 말에 핀이 공감했다.

"그러니까요.  운 좋게 갤러한씨 일행분들...아니 팀 원생텀 분들이 미리 작업도 했던 곳이라니까, 언데드 규모도 도나에 비해 훨신 적을 거고, 전장하고 거리도 더 멀리 떨어져 있으니까.."
핀은 활짝 웃으며 말했다.


"두번째는 지역은 진짜 얻어먹었네요."
.
.
.
"...대충 봐도 100이에요. 말도 안돼..."
핀은 감지 결과를 믿을 수 없어서 작게 말했다. 그의 뒤에는 주위의 시선을 억지로 무시하며 방호복을 입는 팀 원생텀이 있었다.


"입이 원수지, 입이 원수야..."
작전을 위한 근처 고지를 찾으며, 핀은 얼굴을 싸매고 말했다.

#


사냥꾼은 숨 가쁘게 뛰고 있었다. 산의 내리막을 달리는 것은 별로 현명한 생각이 아니라는 것은 알았지만, 그렇다고 거기서 발을 멈추는 것은 멈청한 생각일 것이다.

"씨발, 씨발!"
사냥꾼의 뒤로 곰이 쫓아오고 있었다. 미간을 노렸던 화살이었다. 갑자기 날아온 파리만 아니었다면 분명 제대로 적중했으리라. 그 파리 때문에, 지금 그는 팔에 화살이 꽂혀 분노한 곰에게 쫓기고 있다.

사냥꾼은 미끄러지듯 내리막을 이동하며 계속 추가로 화살을 날릴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러나 흥분한 곰은 사냥꾼처럼 요리조리 길을  필요도 없었다. 그 곰은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을 부수며 내려오고 있었다.


그는 쓰러진 나무 뒤로 숨었다. 살짝 쌀쌀해진 날씨 때문에 흐르는 땀이 차갑게 몸에 달라 붙어 왔다. 그는 이마에 맨 띠를 좀 더 들어 올려 앞머리를 완전히 올리고, 그 곰의 위치를 파악하려고 했다. 사냥꾼은 그 곰이 그대로 직진해서 내려올 것이라 생각했기에 활을 장전하며 나무에서 몸을 반절 정도 드러냈다.

그러나 그의 예상과는 다른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 곰은 자신을 기준으로 오른쪽을, 두 발로 서서 바라보고 있었다. 갑자기 미동조차  하게  곰을 보며 사냥꾼은 지금이 사냥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전에, 산에서 모험을 캐는 사람으로서 호기심이 동했다. 그는 낙엽이 스치는 소리를 줄이기 위해 바닥에 몸을 최대한 펼치며 몸의 방향을 오른쪽으로 돌렸다.


거기에는 그가 산에서 본 것 중에서, 아니, 일생을 통틀어서 봐온  중에서 가장 기묘한 것이 있었다.


목이 부러져 머리가 반대방향으로 달랑거리는 순록이 산길을 내려가고 있었다. 이맘때면 영역 다툼 때문에 저런 식으로 죽은 순록의 시체들이 종종 발견되기는 한다. 하지만 그 중 어떤 것도 움직이지는 않았다.

그 순록의 등 위에는 후드를 깊게 눌러쓰고 있는 듯한 인형(人型)이 하나 있었다. 후드 밖으로까지 길게 뻗어 나온 수염이 그것이 노인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사냥꾼은 자신과 50미터도 안되는 거리에 있는 곰에 대한 것을 완전히 잊어버렸다.  따위는 이제  산에서 문제조차 되지 않는다. 저기 '저것'이야말로 이 산에서 가장 불길하고 위험한 것이다.


곰도 그것을 느꼈다. 애처롭게 울며 뒤로 슬금슬금 기어가던 곰은, 이윽고 짧은 생각을 고쳤는지 다시 앞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조금씩 속도를 붙이기 시작한 곰은 마침내 달리기 시작했다.

사냥꾼에게도 찬스였다. 곰이 '저것'을 덮칠 때를 노려 화살을 쏘면 된다. 그러면 이 산에서 저 불길한 것을 배제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며 사냥꾼은 활의 시위를 당겼다.


그리고, 구름 한 점 없이 아름답게 젖어 들어가고 있던 하늘에서, 예고도 없이 곰에게 낙뢰가 떨어졌다.


사냥꾼은 그 소리에 놀라서 화살을 놓쳤다. 그의 왼쪽 귀에서 피가 나기 시작했다. 그가 비명을 참을  있던 것은 순수한 운이었다.

숨쉬는 것조차 잊어 사냥꾼의 얼굴이 파란색으로 되어갔다. 고개를 돌리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리고 시선 정면에는, 그 자리에서  팔을 곰 쪽으로 겨누고 가만히 순록을 타고 앉아있는 노인이 있었다.


그 노인은 천천히 팔을 내렸다. 그리고 고개를 돌렸다. 눌러쓴 후드는 노인의 시선을 완전히 가리고 있었지만, 사냥꾼은 확실하게 알  있었다. 그 노인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인생에서 가장  30초가 흘러갔다. 노인이 다시 움직이며 마침내 시야에서 벗어났는데도, 그 사냥꾼은 한동안 움직일 수 없었다.


그가 하인킬에 도착할 때 까지, 앞으로 약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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