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0화 〉아버지와 아들 (40/164)



〈 40화 〉아버지와 아들

"핀."
"잘...모르겠어요. 떼거지로 있는데, 약 50은 가볍게 넘길 것 같아요."
핀은 지팡이를 튕기며 말했다. 릴로가 그 말에 머리를 쥐어 뜯으며 불만을 토해냈다.

"아니, 무슨 전장에 시체가 그렇게 많이 남아있어! 회수작업 하긴  거야?"
"나라가 하는 일이 그렇지. 언제나 찔끔 남는다고."
아스타가 그렇게 말하며 머리를 쓸어 넘겼다. 소니아는 이제 떨지는 않았지만, 아직 불안함이 남아 있는 듯했다.


"애초에 언데드라는게.. 시체들이 덤비는 거잖아? 어떻게 상대해야 돼?"
그 질문에 도르베가 어이가 없다는 듯 대답했다.

"영주님이 말했을 때 질문 없었잖아. 다 알고 있던 것 아닌가?"
그 말에 갤러한과 라드를 제외한 소금 부대원 전원이 고개를 돌렸다.

"난 안다고. "
나즈막히 말하는 라드의 말에 도르베가 얼굴을 싸맸다. 갤러한도 조금 놀라서 눈을 끔뻑였다.


"진짜 큰일이로군."

#


"...그 마법으로 깨어난 자들은  자의 몸을 탐한다고 했어. 그 시체들에게 죽으면 같은 언데드가 되고. 최악의 마법 중 하나다."
칼린은 그 설명을 들으며 전생에 좀비를 떠올렸다. 확실히 그런 힘을 가진 개인이 마음먹는다면 엄청난 일이 벌어질 것이다.

"보통은 술자의 명령이 없으면  자리에서 가만히 있다가 다시 시체로 돌아간다 지만.. 아무래도 그 전까지는 반 본능적으로 근처에 다가오는 살아있는 것들에게 무차별적인 공격을 한다고 해."
"이미 죽은 거라면 어떻게 죽이는데?"
"불로 태우거나 토막을 내서 활동을  하게 만든다. 일단 못 움직이게 만들고 잔류 마나가 완전히 고갈될 때까지 방치한다. 너네들 무슨 생각하면서 온 거냐?"
갤러한이 어이가 없다는 듯 가방을 내려 놓았다.


"방금 핀이 50은 그냥 넘을  같다고 했잖아.... 50이 넘는 수를 토막치라고?"
"하나하나 전투력은 없다고 봐도 좋아. 그리고 인당 다섯을 상대하는 거니까,. 아, 근데 나도 직접 상대 해 본 적은 없단 말이지.."
갤러한은 그렇게 말하며 가방을 계속 뒤져 보았다. 그리고 묘한 빛깔을 띄고 있는 액체가 담긴 유리병을 몇 개 꺼냈다.

"그래도, 방금 말한 것처럼, 한번 죽은 것들인데 또 죽이는게 힘들겠냐, 이 말이다. 작전을 사용하자고."
갤러한이 다음으로 꺼낸 것은 부싯돌이었다.


"언데드 무리 안으로 들어가서 직접 싸우는 것도 좋은 아이디어지. 그런데 그건 최후의 수단이다. 언데드라는  상당히 끈질길 테니까. 지금 우리가 사용할 방법을 앞으로의 언데드 사냥에 기본 수칙으로 정해 놓자고."
갤러한은 또 평범한 식탁보를 꺼냈다. 그는 그 식탁보를 나이프로 찢어서 조각낸 뒤 돌돌 말았다.


"핀, 화살은 몇 개지?"
"30발 가져왔어요."
"많이도 챙겨왔군. 5개만 꺼내봐."
갤러한은 핀에게서 화살을 건내 받았다. 그리고 뭉쳐 놓은 식탁보에 유리병 속 액체를 골고루 적셔 주며 스며 들게 했다. 칼린도 이제 그가 무엇을 하려고 하는 지 알 것 같았다.

"여기서 마을까지의 거리는 어느 정도지?"
"글쎄.. 1키로미터 정도는 될 거다."
도르베의 말에 갤러한은 조용히 화살들에 젖은 식탁보를 말았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턱을 몇 번 두들기다가 말했다.


"살짝 불안하군. 도르베, 칼린. 너네는 지금 도나로 뛰어 가서 영주에게 다음 날 아침까지 모든 마을 주민들을 통제하라고 전달해라. 아무도 아침 해가 뜨기 전에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하고, 모든 창문이나 문은 닫아 두도록 부탁해.
갤러한은 그렇게 말하며 마차 천장에 텐트와 함께 달려 있던 짐을 끌어내렸다. 안에는 라무르 마을에서도 입었던 방호복이 들어 있었다. 그걸 알아본 일부의 얼굴이 조금 꾸겨 졌다.

"우리의 지휘관님께 부탁해서 미리 실어 뒀었지. 어디를 가든 방호복이 있으면 안심할 수 있다니까."
그리고 방호복을 입으며 말했다.


"칼린하고 도르베를 제외한 전원은 방호복을 지금 착복한다. 실시."
 말에도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갤러한은 한  져주듯 덧붙였다.
"...방독면만 써도 좋아. 하지만 후회할 거다. 방호복을 다 입는  좋아."
아무도 그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모두가 방독면만을 챙겼고, 갤러한은 어이가 없다는 듯 남은 방호복들을 바라보았다.


"하... 마부 분들, 여기 방호복들 정리 부탁드립니다."
갤러한은 그렇게 말하고 젖은 화살들을 챙겼다. 그리고 전장 방향으로 등을 돌렸다.


"이번 계획 이름은 '불화살 5발'이다. 놈들이 통각을 느끼지 않는 것을 이용한 작전이지."


#

도르베와 칼린은 도나 영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허리에는 방독면을 달고 있었다.


"이게 먹힐까요?"
"돌아가 보면 알겠지."
도르베는 그렇게 말하며 계속 달렸다. 칼린은 그런 도르베를 바라보며,  빨리 달리지 않는 것이 조금 성가시게 느껴졌다.

'솔직히 방해다.'
그렇게 생각하다가, 자신이 어떤 생각을 했는지 자각하고 조금 정신을 차렸다. 하지만 새로운 시선으로 다시 보려고 해도, 갑자기 그에게 도르베가 장애물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냐, 칼린."
도르베는 계속해서 느껴지는 시선에 고개를 돌렸다. 칼린은 그런 그를 바라보며 여러 생각이 교차했다.


분명 도르베는 느린 것이 아니다. 아마 엄청난 속도로 뛰고 있는 것이리라. 그리고 칼린을 배려해서 마법으로 혼자서 빠르게 숲길을 지나는 선택지도 버렸다. 그는 자신을 친구라고 생각하며, 동료로서 배려해 주고 있었다.


"아뇨.. 아닙니다. 속도를 조금 높이죠."
칼린은 떠오른 모든 생각들을 떨쳐내려는 듯 달리는 속도를 조금 높였다. 요즘 들어 왠지 계속 머릿속이 멍해서 뭔가에 대한 확정이 힘들어 지고 있었다. 도르베는 칼린이 조금 이상하다고 느꼈다. 그러나 도르베도 칼린 못지 않게 혼란스러운 상태였기에, 그런 칼린의 모습을 신경 쓰지는 못했다.

3분후 그들은 영지에 도착했다.

"신원을 밝혀 주십시요."
"왕국 직속 전후 복구부대이다. 근방 전장에 위치한 언데드 토벌에 도나 영주의 협조가 필요하다."
도르베가 그렇게 말하며 부대의 브로치를 꺼내 보여주었다. 경비병은 그걸 확인하고서 경례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직접 성까지 안내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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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그게 최선입니까?"
도나의 영주는 아직 어려 보였다. 이제 막 15살 정도 되어 보이는 여성이었다.


"언데드를 처리하는 데에 불을 쓰는 것이 최선인 겁니까?"
불만족스러운 듯 그녀는 테이블을 박차고 일어났다. 그녀의 젊은 집사가 그녀를 앉히며 진정시켰다.


"영주님, 그게 최선입니다. 최선의 방법이에요."
"하지만... 하지만 거기에 있는 시체들은 모두 우리 나라를 위해 싸워온 병사들입니다! 모두가 나라를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고, 쥐꼬리만  대가로 싸워온 자들입니다!"
어린 영주는 그렇게 소리치고 집사의 품에 안겼다.

"...마지막에는 안식을 가질 한 줌 땅마저 가지지 못하고 전장에 묻혀 있던 자들입니다... 그들을 정말로 그저 태워버리는 겁니까..."
"...죄송합니다, 영주님의 오라버님도 아마 그 전장에 있을 것이기 때문에.."
집사는 울고 있는 영주를 껴 안으며 말했다. 도르베는 혹여 칼린이 이에 동조해서 다른 방법을 찾자고 할  같아서 그에게 고개를 돌렸다.


"지휘관님이 우리에게 주신 임무는 네크로맨서와 그의 언데드들을 사냥하는 것이었습니다."
칼린은  자리에 가만히 서서 말했다.

"죽은 자들에게 예를 갖추는 것은 우리 일이 아닌  같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만, 다른 납득갈 만한 대안을 내 주시지 못하신다면 지금 바로 통제명령을 부탁드립니다. 시체가 타면서 나는 연기는 유독하니까요."
단호한 거절이었다. 집사는 조금 칼린을 노려보았고, 영주는 얼굴을 더 깊게 파묻었다. 칼린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대기하고 있었다.

 3분 후, 영주는 고개를 들어 그녀의 위병을 불렀다. 그리고 전달사항을 말했다. 곧 마을에 봉쇄령이 떨어졌다.

도르베는  모습을 놀란 듯 바라보고 있었다. 칼린이 상냥함을 잃은 것 같지는 않았다. 동료들 사이에서 본 그는 여전히 상냥하고 무른 칼린이었다. 다만, 어딘가 바뀐  같았다. 도르베로서 그게 어떤 부분인지 정확히  수가 없었다.

"도르베!"
갑작스레 다가온 칼린을 보며 도르베는 깜짝 놀랐다. 한순간 검 근처로 손을 뻗기까지 했다. 칼린은 눈치채지 못했다.

"전달했으니까 돌아가죠."
도르베는 한 걸음 그에게서 떨어졌다. 그리고 고개를 돌리지 않으며 거리를 벌렸다.

"도르베씨?"
"...미안하군, 돌아가자."
그렇게 말하고 도르베는 등을 돌렸다. 칼린은 그런 그를 이상하게 생각하면서도 별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는 고개를 숙여 영주에게 인사하고 성을 나섰다.


#

칼린의 후각은 이미 도나 영지에서부터 타는 냄새를 감지해 내고 있었다. 방독면의 냄새도 만만치 않았지만, 시체가 타는 냄새보다는 나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그는 방독면을 미리 썼다. 그리고 저 멀리에서 부터 불기둥이 올라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눈에 확 띄는군."
도르베도 방독면을 쓰고 그 지점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부대원들의 그림자가 길게 뻗어 있었다. 일행 중에 소니아가 보이지 않았다.

"소니아는?"
도르베가 갤러한에게 다가가 질문했다. 갤러한은 묵묵히 불길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마차로 돌아갔어. 보고 있을 필요도 없고 말이야."
도르베도 고개를 돌려 그 장면을 바라보았다.

불길속에서 시체들이 그저 가만히 불타고 있었다. 서로 서 있는 자리에서 미동조차 하지 않으며 불이 옮겨붙고 있는 모습은 꽤 보기 역한 장면이었다. 간간히  시체들은 고개를 하늘로 들거나 여기저기로 돌리며, 마치 아무 일도 없는  멍청한 신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부패도는 시체마다 제각기 달라서 일부는 부풀어 오르던 것도 있었고, 벌써 여기저기 흰색 뼈가 드러난 것도 있었다. 그러나 어떤 시체도 그 존엄성을 유지하고 있는 형태는 없었다. 시체에 알을 까거나 파먹고 있던 파리들이 미처 도망치지 못해 높게 오른 불에 타 들어가는 소리가 티딕티딕, 하고 들려왔다.

"...눈이 안보이는 게 다행일 때도 있죠."
핀은 나즈막하게 그렇게 말했다.


"그 네크로맨서.. 용서하기 힘들더군. 저 사이에는 도나 영주의 오라버님도 있는 것 같더구나."
"전장에서 시체 되는  계급순서가 아니거든."
"저 시체들에게서는 군번줄조차 회수하지 못할 것이다. 맞지?"
"그렇지."
도르베 쪽으로 고개를 돌리던 갤러한은 칼린도 이 장면을 구경 중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칼린, 힘들면 마차로 돌아  있어. 아직 너에게는 벅찬 광경이다."
방독면의 렌즈부분에 불이 비쳐 서로의 눈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갤러한은 칼린의 표정 정도는 직접 보지 않아도   있었다.


"아뇨, 제대로 관찰하고 보고 해야죠."
칼린은  쉬듯 그렇게 대답했다. 갤러한은 그 말에 퍼뜩 정신이 차려져 칼린쪽을 바라보았다.

"...무슨 보고?"
"요나님께서 저에게 명령했어요. 제가 본 모든 것을 보고하라고.  모든 판단을 맡기라고."
 말에, 불길에 눈을 떼지 않은 사람은 칼린만 남게 되었다.


"저는 영주님 명령에만 따르면 돼요. 지금 제가 마차로 돌아 가면 그건 제 독단이잖아요?"

도르베는 그 말에 이해했다. 그가 느꼈던 감각이 무엇인지 알아낸 느낌이었다. 지금 칼린은 바뀌었다. 그의 나약한 면이 의존의 형태로 자라 난 것이다.
갤러한은 그 말에 경악했다. 칼린이 혼자서 라무르 마을에서 일어났던 일을 견디지 못할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나 몇 일간 그를 보면서 그가 잘 넘어갔다고 생각해 버렸다. 아니었다. 칼린은 벌써 곪아 터져 있었다.
이리하는 그 말에-

"이리하씨...?"
칼린의 얼굴에 주먹을 내질렀다.

"일어나."
칼린은 진심으로 당황했다. 다짜고짜 날아온  스윙은 생각보다 너무 아팠다.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칼린의 멱살을 이리하가 다시 쥐어 올렸다.

"잠-!"
말이 끝나기도 전에, 칼린은  대를  맞고 쓰러졌다. 칼린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갑자기 무슨 짓입니까, 이리하씨..."
이리하는 옆에 언데드들이 불타는 광경을 한번 돌아보았다. 그리고 칼린에게 다시 고개를 돌렸다.


"정말로 비등록 마법사를 상대하는 걸 망설이는  아니었어. 그냥 쫄보였구나."
"그게 무슨-"
말하는 와중에 이리하는 다시 한 번 칼린의 배를 걷어찼다. 칼린은 둔탁한 통증에 배를 감쌌다. 지금까지는 일부러 맞아주고 있었지만, 다음 타격까지 맞는 다면 진짜로 데미지가 될 것 같았다.

"모든 선택을 대리인한테 맡기는 건 무슨 기분이냐? 달달하지? 편하고?"
"그만.. 그만 하세요, 이리하씨."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되어도, 너에게 책임이 가는 일은 없지. 네가 죄책감을 느낄 필요도 없어지고. 그래서 그러고 있는 거 아니야."
"이리하, 그만해라."
갤러한이 그들 사이를 막아 섰다. 칼린에게 다가가던 이리하는 거기에 멈춰서 말을 이었다.


"넌 스스로 생각하는  포기한거야. 저 광경을 보면서 뭐? 제대로 관찰과 보고? 정신 빠진 새끼. 영주님 품 속이 그렇게 따뜻했냐?"
"그만 좀 해..."
"그 능력과 그 신념을 가지고도 그렇게 빠르게 세상에 굴복하는 거야? 실망이야, 칼린!"
"니가 나에 대해  아는데!!"
칼린도 결국 소리를 질렀다.


"니가 나에 대해  알면서 지껄이는 건데, 씨발!  맨얼굴도 모르잖아!"
그는 갤러한을 옆으로 밀어내며 다가갔다.

"세상 모두가 너처럼 강하지는 않아! 한번의 실수로 평생을 떠는 경우도 있는 거야! 모두가 너처럼 정면으로 극복할 수 있는  아니야!"
"처음부터 강한 사람이 어디 있냐, 병신! 남에게 자신의 선택을 넘기면서까지 책임을 피하고 싶냐? 그렇게 스스로를 묶을거야?"
"할 수만 있다면!!!"
절규하는 듯 칼린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내가 버틸 수만 있다면 죽을 때까지 스스로를 묶을 거야! 내가   실수를 죽을 때까지 후회하며 피할거야!  모든 걸 죽여가면서 평생 숨어 살거야...!
새된 목소리로 소리치던 그는 숨을 골랐다.
"근데, 근데 그건 안 되는 거잖아…! 전부, 전부 내가 이기적이라서,  버텨서 저지른 일들인데..."
이리하는 그런 그를 역겨운 듯 바라보다가, 갤러한에게 고개를 돌렸다.

"갤러한, 내일부터는 너네들과 마차를 같이 타겠어. 기분 나쁜 새끼는 참을 수 있어도 겁쟁이는  참아."
라드는 그 말에 웃으며 이리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이리하는 거기에 굳이 답하지 않고 고개를 숙인 칼린에게 다가갔다.

"이것도 영주한테 일러 바쳐라, 겁쟁아."
그리고 그를 지나쳐서 마차가 있는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칼린은  자리에서 가만히 있다가, 갤러한이 다가가려는 순간 발걸음을 옮겼다.

"야, 칼린.."
그가 발걸음을 옮긴 곳은 처음에 있던  자리였다. 그는 다시 언데드들이 불타는 것들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자리에 앉아 불타는 언데드들을 세기 시작한 칼린에게, 누구도 말을 걸지 않았다.


#

'화공(火攻)인가. 방호복을 부탁했을 때부터  계획이었군. 확실히 수완 좋은 떠돌이다.'
요나는 갤러한의 작전에 그런 평을 내렸다. 그리고 대답이 없는 칼린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무슨 일이냐.'
칼린은 거기에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몰라서 조금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요나, 오늘.. 오늘 제가 요나에게 따로 연락 보고를 하고 있다는 걸 밝혔어요."
전화기 너머가 조용했다. 칼린은 거기에 자그맣게 덧붙여 물었다.


"...들키면 안되는 거였을까요?"
'아니, 오히려  되었다. 이걸로 내부 첩자는  긴장하겠지. 애초에 비밀로 하라 한 적도 없을 것이다.'
요나는 그렇게 말했다.


'그거 외에 다른 것은?'
칼린은 오늘 있었던 일을 말하려고 했다. 영주에게는 모든 것을 말 해야 하니까. 하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무것도 없습니다. 영주님, 도나의 언데드 처리는 순조롭게 끝났습니다. 총 62구의 미회수 시체들이 전부 화장되었습니다."
'알았다. 시체의 뒤처리에 관해서는 왕국에 문의하겠다. 그리고 도나의 영주에게 소정의 보상금과 지원금 지급 요청에 대해 말해보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칼린, 누구도 믿지 마라. 나 이외에 모든 것을 의심해라. 네가 보는 건 인간이 보는 것과 다를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알겠지?'
"...네."
칼린은 전화기를 내려 놓았다. 언데드들이 불타는 방향을 바라보던 그는 동료들의 텐트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다가 그는 그 텐트조차 자신이 있을 곳은 아닌 것 같아, 그냥 숲길로 들어갔다. 어두운 숲길은 그에게 옛날을 떠올리게 했다.

그는 바위에 앉아 별을 바라보았다. 별의 위치를 하나하나 외우려는 듯 하염없이 하늘을 바라보던 그는, 어느새  끝에 해가 걸쳐질 때까지 그 자리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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