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0화 〉기분나쁘고 위험한 (30/164)



〈 30화 〉기분나쁘고 위험한

마을의 부흥작업은 순조로웠다. 비록 5명이 술에 취해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했지만,  인원수는 늘었다. 그들은 복구작업을 마치는  사용될 시간을 약 일주일 정도로 예상했다.


그 날 작업으로 해낸 것은 길 한곳의 완벽한 개방, 누락되었던 시신 6구 발견이었다. 젊은 자치병력원 한명이 울며 자신의 친구의 시신에 붉은 동그라미를 그렸다.  시체의 오른팔은 끝내 찾지 못했다.

소금부대원 대부분이 술집에 가는 것을 거부했다. 륑게, 갤러한, 핀, 아스타, 릴로는 씻는 것도 거부하고 계단으로 기어가듯 올라가 방에 들어갔다.
소니아는 이 마을에도 은행이 있는 지 보고 오겠다며 성을 나왔다. 그래서 식사를 마치고도 식탁에 남아있던 것은 칼린과 라드, 도르베, 이리하 뿐이었다.

"음...세분은 저녁을 뭐하고 보내실 예정인가요?"
칼린의 질문에 누구도 대답하지 않았다. 도르베와 이리하는 그저 라드를 바라 볼 뿐이었다.


"내 얼굴에 뭐라도 묻었나?"
라드의 질문에는 이리하가 대답했다.

"너랑 같이 있는  피하고싶어서, 너 뭐하는 지 듣고 결정할라고."
"동감이다."
"쌀쌀맞네~"
라드는 그렇게 말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너무 그러지 말죠, 라드씨도 일단 자치병력분들에게 용서도 받으신 듯 하구요. 엠마씨는 일어나셨나요?"
칼린이 웃으며 그렇게 말하자 라드는 턱을 긁으며 대답했다.

"음, 사실 그걸 보러 갈 생각이긴 했었는데.. 혼자가면 좀 어색할 것 같단 말이지. 왜, 일어나기라도 하면 다시 덤벼들 거 아니야."
그리고 뺨을 일그러뜨리는 듯한  특유의 미소로 말했다.


"같이 가보지 않을래, 칼린군?"
 말에 이리하와 도르베가 반색을 띄우며 일어나려 했다. 칼린이라면 분명 그와 같이 갈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정말 죄송해요, 라드씨. 아직 라드씨랑 둘이서 어딜 갈 정도로 라드씨를 믿지는 않아요.."
그러나 에상과는 다르게 칼린은  담백한 말투로 라드의 제안을 거절했다.


"전 오늘 마리를 만나러 가려구요. 이리하씨랑 도르베씨도 할  없으시면 같이 가요. 도르베씨는 마리랑 따로 만나본 적 없으시죠?"
"음? 아, 뭐, 그렇지."
당황한 듯한 도르베를 두고 칼린이 먼저 식탁에서 일어났다. 재미있다는  칼린을 바라보던 라드가 말했다.

"이봐 칼린... '아직'인거지?"
"네. '아직'이에요."
그렇게 말하고 칼린은 이리하와 도르베를 데리고 식사실을 나왔다. 혼자남은 라드는 눈을 감고 의자에 기댔다.

"아-아, 외롭구만."


#

"여어!"
술집은 이른 시간에 벌써 사람이 꽤 모여 있었다. 대부분은 어제 봤던 사람들이었지만, 새로운 얼굴들도 조금 보였다.


"이봐! 구원부대가 왔어!"
중앙테이블에 있던 남자가 카운터를 향해 그렇게 소리질렀다. 카운터에는 여주인이 분주하게 잔을 닦고 있었다.

"어서와. 맥주면 되겠지?"
칼린은 카운터로 다가갔다. 여주인은 방금 닦은 잔을 일행들에게 건내주며 술병을 열었다.


"어제는 재미있는 일을 벌였더군. "
그녀는 빈 잔을 술로 채우며 그렇게 말했다. 먼저 잔을 받은 칼린이 그걸 가져오며 물었다.


"어제는 왜 안계셨었나요?"
그녀는 도르베의 술잔을 채우고서 고개를 로이의 시계쪽으로 돌렸다.

"뭐, 술을 파는 사람으로서 한심한 일이지만, 술에 졌었지. 딸한테 아버지가 죽었다는 소식을 전하고 나니 맨정신으로는 못버티겠어서."
시계에서 눈을 떼지 않으며 재주좋게 이리하의 잔까지 채운 그녀는 시계에 다가가며 말했다.

"하지만- 맨정신으로 못버틸 사람들은 마을에 나밖에 없는 것도 아니니까. 술집 문을 닫는 짓은 못하겠더군. 그래서 그냥 열어 뒀지."
칼린은 말을 끝내고 조용히 시계를 바라보고 있는 그녀에게 조용히 물어봤다.

"..극복하신 건가요?"
"아니. 아마 평생 극복할 수 없을지도 몰라."
그녀는 즉답했다.

"근데 오늘도 방안에서 술이나 마시려 하니까, 평소 우리 단골이던 주정뱅이놈들이 문을 두들기더군. 어제는 끝내주는 분위기였다고. 근데 하나가 아쉬웠다고. 내가 필요했다더라."
그녀는 카운터에 몸을 기대며 자신의 잔에도 술을 조금 따랐다.


"난...난 필요한 존재였다는 거지.  그걸 눈떴을 때 내 옆에서 자고있는 마리를 보고서 느끼지 못했던걸까."
칼린은 웃었다. 그냥, 웃음이 배시시 흘러나와서 웃었다. 그리고 가면을 들어올리고 술잔을 꺾었다.

"마리는 어디야?"
이리하가 그렇게 물었다. 대답은 근처 테이블의 취객이 했다.


"헛간을 다녀 온다고 하더라고. 간다고 한지  됐으니까  돌아올거야."
"아, 그런가?"
이리하가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려는 것을 도르베가 멈췄다.


"헛간은 왜?"
"몰라, 동물이랑 친구라도 먹었나보지. 그 나이 때 애들은 다 그렇지 않나?"
가볍게 뱉듯 나온 취객의 대답은 맞는 말처럼 들렸다. 도르베도 의문을 거두고 술을 마셨다.

"이 봐, 말 끝나기 무섭게 오네."
마리가 문을 열고 술집에 들어와, 칼린을 보고 그에게 달려왔다.

"칼린오빠! 이리하 언니!"
칼린은 팔을 벌리고 뛰어 온 그녀의 몸 여기저기에 붙어있는 밀짚들을 털어냈다.


"안녕, 별일 없었지?"
"아니! 엄청 큰일이 있었어!"
활기차게 나온 그 대답에 카운터에 있던 여주인도 나와서 마리에게 다가왔다.

"뭐야, 무슨 일인데? 엄마도 궁금하다."
시선이 모이게 되자 마리는 당황한 듯 뒤로 갔다가 자신의 입을 양 손으로 막았다.


"안돼. 비밀!"
칼린은 그런 마리가 그저 귀여워서 마구 쓰다듬었다. 여주인은 당황한 듯 머리를 긁으며 말했다.

"벌써 비밀이 생긴 건가... 너무 빠른데."
다들 굳이 파고 묻지는 않았다. 10살 여자아이의 비밀을 굳이 파고들려는 사람은 없었다. 마리는 계속 자신을 쓰다듬는 칼린의 손을 옆으로 치우고 도르베를 바라보았다.


"이 오빠는 누구야?"
도르베는 그 질문에 한  무릎을 꿇고 앉아 눈높이를 맞추었다.


"아라드 베일 반 도르베 라고 한다. 어제도 술집에 있었는데, 못봤었니?"
"응.. 칼린오빠 친구야?"
"그렇지! 칼린오빠의 친구란다."
마리는 그 말에 칼린에게 다가가 손짓을 했다. 칼린이 고개를 낮추자, 그의 귀에 작게 속삭였다.

"엄마가 남자랑 여자는 친구 못한다 했어. 조심해."
칼린은 자신이 했던 거짓말이 떠올랐다. 다행인 것은, 가면 덕분에 붉어진 얼굴을 보일 필요는 없었다.


"또 무슨이야기를 그렇게 해? 엄마한테만 알려줘."
"쉿! 이것도 비밀!"
"엥, 그것도?"
여주인이 당황하며 칼린을 바라보았다. 칼린은 남은 술을 전부 마시고 다시 가면을 내렸다.

"죄송해요. 이건 저도 비밀로 하는 걸로."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도르베를 뒤로하고 칼린은 속으로 머리를 싸맸다.

#


다음날 작업은 여느 때보다 높은 진척도를 보였다. 숙취에서 벗어난 소금부대원들은 평소처럼  좋은 효율을 내며 작업에 임했고, 복구작업에 참여하기 위해 모인 마을 사람의 수도 어제보다 늘어 이제 20명에 도달했다. 정찰대는 아침에 괴물의 근원을 찾는 작업을 위해 떠났고, 남은 자치병력들은 때로는 부대원들과 잡담도 나누며 무리없이 괴물을 잡아냈다. 모든 작업이 순풍을 만난 듯 진행되고 있었다.

  찾은 시체는 8구였다. 그리고 그 어떤 시체도 '미끼'로 사용되지 않았다. 이미 충분하다는 이유였다. 모든 시체는 가족관계 등을 확인하기 위해 안치소로 옮겨졌다.


"순조롭구만."
륑게가 칼린의 가까이로 가서 그렇게 말했다. 칼린은  날숨을 한번 뱉어내고 즐겁다는  대답했다.


"순조롭네요."

영주는 저녁식사에 복구작업에 참가했던 자원자들을 초대했다. 일부는 귀족과 식사를 한다는 사실 자체를 꺼렸기에 빠졌지만, 대부분이 다같이 하는 식사를 즐겼다.


식사를 끝마친 그들은 각자의 여가로 돌아갔다. 칼린은, 물론 술집으로 찾아갔다. 이번에는 팀 원생텀과 핀, 아스타가 같이 갔다.

술집에는 매일마다 사람이 늘고 있는 듯 했다. 그들은 거기서 소식을 서로 교환하기 시작했다. 새로 찾은 시체의 신원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자살한 사람을 추모하고, 잊을 뻔했던 인연을 서로 상기시켰다. 그 중심에는 밀짚 범벅이 되어있는 마리와 그걸 털어내고 있는 그녀의 어머니가 있었다.


여주인은 요리를 시작했다. 시험적으로 만드는 요리들은 거의 다 맛이 죽어있었지만, 그것마저도 꽤 훌륭한 술안줏거리가 되었다. 칼린은 그녀의 시범작을 맛보는 시험대가 되었다.


그 폐허에 다시 평화가 찾아오고 있었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마을의 긴 밤이 드디어 끝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나흘이 흘렀다.

#

"길었지만 해내셨네요, 라드씨."
작업을 하며 칼린이 라드에게 먼저 다가가 말했다. 전날, 드디어 엠마가 눈을 떴다. 라드는 해롤드와 같이 그녀를 찾아가 정식으로 사과했고, 그녀에게서 '나도 술취해서 실수가 있었던 것 같다'라는 대답을 받아냈다.

"이제 나를 좀 믿을 만 한가, 칼린?"
방독면 너머로 보이는 그의 눈은 웃고있었다. 칼린은 턱에 손을 갖다대고 생각하는 듯한 제스쳐를 보이고서 말했다.

"아직인것 같아요."
라드의 방독면에서 푸쉭,하고 소리가 났다. 아마 코웃음을  것이리라. 라드는 칼린에게 다가가 주먹을 내밀며 말했다.

"뭐, 적어도 넌  이야기를 들어주지. 계속 노력해볼게."
칼린은 그가 내민 주먹을 가볍게 톡 치고 등을 돌렸다. 처음에는 트러블메이커 같았던 라드까지 부대의 작업을 진지하게 해내고 있었다. 칼린은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이대로면 피의 비축분이 동나기 전에 작업을 끝마칠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해롤드의 정찰부대는 이번에도  진전은 없었다. 정찰을 진행한지 일주일밖에 안되었으니 기대할 것도 없었지만, 의심구역의 확인은 순조롭게 진행중이었다. 이제 남은 구역은 다섯개 안으로 좁혀졌다.

소금부대원들은 마을의 자치병력들과  우호적인 관계가 되었다. 부대원 안에서도 조금 꺼려지고 있는 라드조차 자치병력들과는 잘 어울려 다녔다. 칼린은 그런 라드를 보며 그도 조금씩 변해가고 있는 것 같다 느꼈다.

문제는 저녁, 술집에서 시작되었다.


#

"칼린언니, 할말이 있어."
여주인과 대화하고 있던 칼린에게, 마리가 다가와 바짓가랑이를 당겼다. 칼린이 고개를 숙이고 작게 말했다.


"오빠라고 하랬잖아."
"우리끼리는 안 숨겨도 되잖아. 근데 그게 중요한게 아니야."
그 어린 얼굴로 비장한 표정을 지어보려는 게 퍽 웃긴 모습이었기에 칼린은 웃음을 머금고 다가갔다.


"뭔데?"
그 질문에 마리는 주변을 조금 둘러보고서 손을 모으고 칼린에게만 들리도록 말을 전했다.


"칼린언니가 나한테 비밀을 말해줬으니까, 나도 칼린언니한테만 내 비밀을 보여줄게."
그렇게 말하고 마리가 칼린의 손을 잡아 끌었다.

"어디가니?"
그렇게 묻는 여주인에게 마리는 칼린을 끌고 가며
"비밀!"
이라고 소리치고 문을 나섰다. 얼빠진 표정으,로 그 장면을 바라보던 여주인은 조금 억울한 듯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엄마 진짜 화낸다??"

#


마리가 칼린을 끌고 간 곳은 헛간이었다. 사실 거기까지는 예상할 수 있었다.  몇일간 매일마다 어딘가에서 잔뜩 밀짚을 붙이고 왔으니까.


소금부대원들은 그 비밀이 무엇일지에 대해 이야기해본 적이 있다. 10생텀이 걸려있었고, 각자 자신이 생각하는 이유를 제시했다. 칼린이 제시한 것은 다친 말을 보살피고 있다는 설이었다. 물론 누구도 진지하게 알아볼 생각은 없었기에, 술자리의 농담정도로 넘어갔던 주제였다.


"와봐. 이 안에 있어."
계속 칼린을 안으로 끌고 가며 마리가 벽에 걸려 있던 등불을 꺼내기 위해 까치발을 들었다. 칼린은 마리 대신 그 등불을 집어들어 불을 붙이고 그녀의 손을 잡았다.


한뼘의 빛으로 어둠을 가르면서, 마리는 계속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헛간의 구석 짚더미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이쯤되면 다친 동물을 보살피고 있다는 것은 확정사항이었다. 말이어야 했다. 말이 아니라면 적어도 소나 강아지나 돼지는 아니어야 한다.

어둠속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울음소리가 없어 무슨 동물일지 예상할 수가 없었다. 다만 바닥이 쓸리는 듯한 소리는 뱀이 기어갈 때 나는 소리같았다.

칼린은 마리에게 등불을 건내주었다. 마리는  등불을 받아 밀짚의 한부분을 비추었다.


"오, 맙소사."
거기에 있던 것은, 똬리를 틀고있는 보라색 뱀이었다. 얼굴에는 눈 대신에 양 옆으로 뻗은 더듬이가 있었다. 그리고 입 안에는 인간과 비슷한 형태의 정렬된 치아가 있었다.


"나, 이애를 몰래 키우고 있어. 귀엽지!"
천연덕스럽게 그렇게 말하고 있는 마리와는 다르게 칼린은 전신의 피가 얼어붙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자연스럽게, 마리의 앞에 서서  팔을 내밀어 방어하는 자세를 취하게 되었다.

"마리, 네 친구, 아니.. '이것'은 키워도 될게 아니야.."
"무슨소리야?"
천진난만하게 묻는 마리를 뒤로 조금 밀어내면서, 칼린은 자신의 허리춤에서 소드브레이커를 꺼냈다. 마리가 경악하며 말렸다.


"뭐하는 짓이야, 칼린언니!"
"마리, 저건 살려두면 안돼!"
칼린이 조금 큰소리로 다그치자, 마리는 깜짝 놀라 울것같은 표정이 되었다.

"왜! 죽으려는 걸 힘들게 살린건데.."
울먹이며 그렇게 말하는 마리에게 칼린은 최대한 알기쉬운 설명을 떠올리려 노력했다.

"왜냐하면..저건 괴물이기 때문이야! 마리, 너에게 어떤 해를 끼칠지 몰라! 저건 시체를 파먹는 괴물이야! 기분나쁘고 위험한거야!"
"훌루는 기분나쁘고 위험하지 않아!"
마리가 어리광을 부리듯 소리질렀다. 그리고 칼린을 지나쳐서 괴물에게 다가갔다.

"잠깐, 마리!"
"칼린언니, 봐봐!"
마리는 천천히 그 괴물에게 다가가, 그 괴물을 껴안았다.  보라색 흉측한 것은 마리의 어깨에 자신의 목을 걸치고 몇번인가 더듬이를 흔들어 댔다.

"훌루는 위험한거 아니야! 기분나쁜 것도 아니야! 시체도 안먹어! 훌루는 우유랑 빵만 먹어!"
마리가 눈물을 머금고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괴물을 꽉 조여 안으며 덧붙였다.

"훌루는 내 친구야!"
"말도 안ㄷ-"
곧바로 반박하려던 칼린은 문득 자신이 방금 한 말들이 떠올랐다. 그건 언젠가 자신을 후벼팠던, 이 세계의 선포같은 말들이었다. 그제서야 칼린은 자신이 저 괴물과 다를 것이 없음을 떠올렸다. 자신도 그저 누군가의 상냥함에 기대서 목숨을 부지한 괴물이었다.

훌루를 막고있는 마리에게서 그는 요나를 떠올렸다. 그리고 자신과 같은 괴물을 받아 들이는 것이 얼마나 받아들여지기 힘든 일일지도 이해하게 되었다. 칼린은 자리에서 천천히 무릎을 꿇으며 앉아 등불을 내려 놓았다.

"칼린언니에게 비밀을 보여주는 게 아니었어! 믿었는데! 나도 칼린언니가 사실 공주님이란 거 말하고 다닐꺼야!"
그렇게 외치고 있는 마리를 보며, 칼린은 손으로 눈을 가렸다. 가면 아래로 반짝이는 것이 흘러 떨어졌다. 칼린은 알 수 있었다. 저 '훌루'는 자신이었다.

"...미안해, 마리. 언니가 생각이 짧았었나봐."
나즈막하게 말하는 칼린의 말에, 그제서야 안심한 듯 마리는 표정을 풀었다. 그리고 자신의 뺨을 괴물에게 비볐다.  괴물도 기분이 좋은 듯 더듬이를 흔들어 댔다.

"하지만, 네 친구는 언니의 동료들이 찾던 친구거든. 언니가 흥분해서 잘못봤었어."
칼린은 가면을 올려 눈가를 닦았다. 인간의 세계에서는 인간의 선택에 맡겨야 한다. 자신이 괴물이라는 것을 걸렸을 때와 똑같은 선택지가 나와야 한다.

"혹시 괜찮다면, 언니의 친구들을 데려와서 네 친구를 보여줘도 될까?"
칼린이 해야 할 것은, 그 선택지 중에서 가장 상냥한 결과를 고르도록 유도하는 것이었다.

#


"맙소사. 말도 안되는 일이야."
갤러한은 그렇게 말했다.


"지금 당장 죽여야 돼. 고민할 일조차 아니야. 칼린, 우리한테 이걸 대체 왜 보여주는 거야?"
갤러한은 어이가 없다는 듯 그렇게 말했다. 칼린은 가만히 듣고 있다가, 조용히 대답했다.

"갤러한, 저건 우유랑 빵만 먹고 살아남았대요. 마리하고 노는 것도 봤어요."
그 말에 갤러한은 또 시작이냐는 듯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멍청아! 일이 생기고 나면 늦는거라고 말 했잖아! 빵과 우유만 먹는, 사람이랑 같이 노는 괴물이라고? 대체 언제까지? 당장 내일, 저 튼튼한 이빨가지고 마리의 목을 물어 뜯어버리면 어떡할건데?"
칼린은 거기에 반박할 말은 없다. 그러나, 애초에 칼린이 말하려던 것은 다른 부분이었다.

"우리 임무중에는 괴물의 표본을 가져가는 것도 있었잖아요."
일행들의 표정이 굳었다. 아마 칼린이 무슨말을  지 알고 있어서 이다.

"우리가 마을을 떠날 때 까지만 조용히 넘어가요. 그리고 마을을 떠날 때, 마리에게 말해서 저걸 가지고 가죠."
칼린은 담담하게 말했다. 갤러한은 눈쌀을 조금 찌푸리며 말했다.


"...마리를 속이자고?"
"눈앞에서 저 괴물을 죽여버리는 것보단 좋다고 생각해요."
확실히 표본으로서는 완벽했다. 살아있었고, 적대심이 없으며, 아직 크기도 크지 않다. 그리고 누구도 상처받지 않는 결과이기도 했다. 하지만 갤러한은 마음속 어딘가가 캥기는 것을 떨칠 수 없었다.


"그게 네 상냥함인거냐, 칼린?"
칼린은  질문에 많은 대답들이 떠올랐다. 표본으로 보내는 괴물은 죽는다. 확실히 죽을 것이다. 그러나 마리는 그걸 모를 것이고, 그저 자신의 친구를 찾고있던 사람들에게 돌려주는 감각으로 끝날 것이다. 마리에게 그건 괴물이 아니라, 친구 '훌루'로서 남게 된다. 누구도 상처받지 않게 된다.

"괴물까지 배려하기에는 무리가 있으니까요."
칼린의 그 말에는, 어딘가 쥐어 짜낸듯 한 느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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