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8화 〉기분나쁘고 위험한 (28/164)



〈 28화 〉기분나쁘고 위험한

"...당신은 정신이 나갔어. 이제 표식이 있는 사체는 건드리지 않도록 하지."
갤러한은 그를 보며 그렇게 내뱉고 작업을 재개하기 위해 발걸음을 돌렸다. 동시에 소금부대원 전원이 다시 자신의 작업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칼린을 제외하고.


칼린은 그 자리에서 발을 뗄 수 없었다. 광기에 압도당했다. 저 남자가 뿜어내는 독기가 칼린에게 짓누르듯 다가왔다. 그에게는 더이상 해롤드가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발이 묶인 듯 움직이지 못하며 가만히 자신이 회수했던 시체가 괴물의 미끼가 되는 것을 바라보던 칼린은 문득 이게 전부 무슨 의미인가에 대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자신의 가슴 주머니에 그의 유품이 담겨있는 것이 떠올랐다.


그는 그 시계를 꺼내 한 번 바라보고 자신의 앞에 서 있는 광인을 바라 보았다. 이대로 가지고 있을 수는 없었다.

"저에게 용기를 주세요."
그는 그 시계를 쥐고 나즈막히 말하고 나서, 해롤드를 향해 걸어갔다.

"칼린! 기다려!"
도르베가 그를 막으려 했지만, 칼린은 침착하게 말했다.

"이것만 전달해 주고 올게요."
갤러한은 멀리서 칼린이 해롤드에게 다가가는 것을 보고 짧게 혀를 찼다.

"저 멍청이가-"
그는 옮기던 발걸음을 멈추고 다시 해롤드 방향으로 다가갔다.

"그의 유품이예요."
칼린은 그렇게 말하며 해롤드를 향해 자신이 가지고 있던 회중시계를 보여주었다. 해롤드는 망연자실하게 서있다가 칼린의 말에 고개를 돌렸다.


"...어디있던 거냐?"
그의 목소리는 사람보다는 짐승의 것이었다. 칼린은 조금만 방심을 풀면 그와 같은 시야를 가지게 될 것 같아 정신을 바짝 붙잡았다.


"그의 시신에서.."
가만히 그 이야기를 듣던 해롤드는 그 시계를 받아 쥐었다. 그리고 한번 펼쳐 보고 다시 칼린에게 던져 주었다.

"..마을의 뒤쪽으로 가면 술집이 하나 있다. 여관 겸용이 아닌 일반 술집이야. 거기에는 젊은 여주인이 있어... 딸과 함께 일하고 있지."
그는 머리를  쓸어 넘기고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눈물이 멈추지 않고 있었다.


"그녀는 이제 과부야. 그녀에게 당신의 남편은 내가 '미끼'로 사용할 거라고 전해줘."
그렇게 말한 그는 허리춤에 있던 작은 캔을 열고 안에 담긴 술을 마셨다. 목을 울리며 반정도는 흘리면서, 반정도를 한번에 마신 그는 나머지 반을 시체들에 뿌려주었다.

#

수리작업은 5시까지 이어졌다. 식사시간 30분씩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작업에 사용했고, 16구의 시체를 발견했다. 부대원은 자치병력들이 있는 곳은 피해다니며 최대한 마주하는 일을 줄였다.

방호복을 벗고 샤워를 끝마친 그들은 영주와 식사자리를 가지고 다같이 그 술집에 가기로 했다.


마을의 뒤편은 부서진 곳이 거의 없었지만, 분위기는 비슷했다. 거리에 앉아 가만히 하늘만 바라보는 사람들은 시체와 분간이 가지 않았다. 얼굴에 검댕이 잔뜩 묻어있는 아이들이 여기저기에 떠돌아 다녔다. 그 아이들은 얼굴만 벌써 어른의 것이 되어 있었다.

"꺅!"
날카로운 비명에 고개를 돌려보면, 라드가  아이의 손목을 붙잡아 들어올리고 있었다. 겁에 질린 아이를  팔로 들어 올리며 라드가 끔찍한 미소를 지었다.


"지갑이 없어서 당황했나?"
그런 말을 하며 라드는  아이의 손목을 부수려고 했다. 적어도 칼린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칼린은 그에게 달려가 그의 손목을 붙잡았다.


"...칼린, 손목을 잘못잡은 것 같군. 자, 화내지 않을테니 꼬맹이의 반대손목을 부숴줘."
"그 손을 놓으세요."
라드는 손목을 조금 움직여 보려고 했다가 꼼짝도 하지 않는 것에 조금 놀랐다. 그리고 그 아이의 손목을 풀어줬다. 아이는 재빠르게 일행들의 사이로 지나갔다.

"무슨 짓을 하려 한 거죠?"
칼린은 아직 라드의 손목을 풀지 않았다. 라드는 그런 칼린을 보며 침착하게 답했다.

"맞춰봐."
가만히 그를 바라보던 칼린은 그의 손목을 거칠게 놓았다. 라드는 자신의 손목을 잡고 몇번 흔들어 보았다.

"악력이 상당한걸, 칼린. 꼼짝도 못했었어. 대단해. 부대원의 수준이 전반적으로 상당히 높군."
칼린이 등을 돌려 다시 길을 가려 하자 라드가 막아섰다.

"이봐, 나쁘게 생각하지 말라고. 훈육이었을 뿐이야. 진짜 손목을 비틀어 버릴 생각은 없었어."
 말이 칼린을 자극했다.


"전쟁이 끝나고 힘들어하는 아이를 상대로 그렇게까지 엄격해야 했나요?"
라드는 그 말에 눈이 휘둥그래졌다. 물론 진짜 놀란것 보다는 칼린을 조롱하기 위해 만든 표정이었다.


"이봐, 지갑을 털릴 뻔한 건 나라구. 겁만 주고 넘어가려고 한건데 그런 반응은 너무하군."
"당신은-"
"혹시 왕국에서 소매치기범을 잡으면 무슨 형벌이 이뤄지는 지 아나?"
라드가 칼린의 말을 끊으며 한걸음 다가왔다.

"손가락을 하나씩 자르거든. 법에는 아이도 어른도 없지."
그렇게 말하며 칼린의 눈앞에서 자신의 새끼손가락을 몇번 까닥거리던 그는 병자처럼 웃었다.


"그를 그냥 보냈으면 그아이는 어떻게 자랄까? 어쩌면 소매치기라는  쉬운 거라고 생각할 지도 몰라. 짬좀 있어보이는 모험가의 지갑쓰리를 성공했으니까 말이야. 뭐, 지갑은 없었지만. 요는, 난 그 아이의 미래까지 생각하며 일부러 마음을 강하게 먹었다는 거다."
라드가 칼린을 지나쳐 가며 말했다.

"내 대응에 문제가 없었다는 건, 다른 부대원들 모두가 나에게 관여하지 않았다는 것만 봐도 알  있겠지. 상냥함은 방금 그 친구에게 약이 못돼."
칼린은 부대원들을 돌아 보았다. 몇몇은 불편한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정말 말릴 생각은 없어 보였다.


"칼린, 네 상냥함은 누군가에게는 구원이겠지만, 이런 곳에서는 그저 독일 뿐이야. 그걸로는 누구도 구할 수 없지."
전부 정론이었다. 어쩌면 자신이 틀린 것이었을 지도 모르지만, 칼린은 그 소매치기범을 보낸것에 대한 후회는 없었다. 다만 반박하지 못하고 있는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그럼 이제 분위기 그만 조지고 술집으로 가보자구. 유품은 상냥한 칼린이 직접 전해주고 말이야."
그렇게 말하며 앞장서는 라드를 칼린이 말없이 따라갔다.

#


술집은 생각보다 성황중이어서, 안에는 손님이 가득했다. 하지만 그게 떠들썩 하다는 뜻은 아니었다.


"어서 오세요."
카운터를 맡고 있는 것은 흑발에 눈을 가로지르는 큰 흉터가  있는 여성이었다. 눈에는 피곤함과 체념이 깊게 박혀 있었다. 술집의 모두가 같은 표정이기에 칼린은 대략의 분위기를 읽을 수 있었다.

"아..안녕하세요. 이번에 마을에 일하러 온 소금부대입니다."
소니아가 억지로 웃으며 그녀에게 인사했다. 그리고 자신의 브로치를 보여줬다. 그녀는 카운터 안에서 브로치를 천천히 보다가, 잔을 몇개 꺼내 나눠주었다.


"뭐, 음식은 못해드려요. 그건 내 남편 일이었거든. 술은 원하는 만큼 드리지."
그녀가 남편의 이야기를 하자 칼린의 가슴이 조여왔다. 그는 주머니에 있는 시계를 만지작거리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저기.. 당신의 남편에 관한 이야기입니다만.."
"죽었죠?"
그녀는 뒤에서 술을 꺼내 잔들에 따르며 그렇게 말했다. 칼린은 아무말 없이 그 잔을 받았다.


"알아요. 그양반이 싸움이 특기는 아니었거든. 곡괭이로  상대한다고 설칠때 부터 저한테는 죽은 사람이었어요."
담담하게 말하는 그녀에게 칼린은 말없이 주머니에 있던 시계를 건내주었다. 그녀는 죽은 눈으로 그 시계를 바라보다가, 카운터에 그것을 매달았다.


"이딴걸 찾아 챙길 시간이 있었다면 도망쳤어야지. 병신같은게."
그녀가 시계를 보며 말한 탓에 칼린은 그 말을 하는 그녀의 표정은  수 없었다.

"어디에 묻혔나요?"
담배를 꺼내며 묻는 그녀에게 칼린은 한가지 더 말할 것이 있었다.

"그..당신의 남편은.."
칼린은 말을 잇지 못했다. 조용히 그런 칼린을 보고 그녀는 뭔가 알아차린 듯 했다.

"'미끼'가 되었군요."
숨길 수 없었다. 그렇다고 자신의 입으로 말하는 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조용히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그녀는 고개를 돌렸다. 잠깐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던 그녀는 흐르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돈은 받지 않아요. 자리는 카운터에 앉아서 마시면 돼요. 전.. 저는.."
말을  끝내지 못하고, 그녀는 끝내 얼굴을 보이지 않은  카운터 안쪽에 있던 문으로 들어갔다.


이윽고 술집 안에는 즐겁게 대화하며 건배하는 소금부대원과, 방 안쪽에서 들려오는 흐느껴 우는 소리와, 어느쪽에도 끼지 못하고 그저 취하려고 술을 마시는 칼린이 있었다.


#


술을 마시다가 잠깐 밖으로 나온 라드는 그의 코트 안에서 얇고 길게 뻗은 죽통을 꺼냈다.  안에 있는 흰 종이에 라드는 그의 깃털펜으로 근황보고서를 썼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순조로웠다. 예민하고 과거가 있는 대원, 자신과 과거가 있는 대원, 지나치게 감성적인 대원. 내분을 만들기는 쉬워 보였다.

그는 작성한 보고서를 죽통에 넣고 마나를 흘려 넣었다. 그러자 안에 있던 종이가 사라졌다. 상회의 마도구였다.

"거기, 잠깐 이리 와봐."
작업을 끝마친 라드를 주정뱅이 세명정도가 불렀다.

"너, 왕도에서 온 부대원이라매,  씨발놈아."
가운데에 있던 살찐 주정뱅이가 그렇게 말하며 다가와 그의 멱살을 쥐었다.


"술집에서 너네가 너무 시끄러워서 술맛을 조졌다고. 알아?"
라드는 귀찮은  고개를 돌렸다가, 그의 가슴팍을 보고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거기 그 꼴사나운 그림을 보니, 너도 그 자경단원?"
라드는 자치병력의 마크를 가리키며 그렇게 말했다. 세 주정뱅이들은 자치병력들이었다.


"알고 있으면 말이 빠르지."
뚱뚱한 남자 옆에 있던 근육질의 여자가 검을 꺼냈다. 그리고 그에게 들이 밀었다.

"너네는 술값도 안낸다매? 그  주고가야겠어."
라드는 비져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양 손을 들어올렸다. 일이 바보같을 정도로 쉽게 풀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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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린의 몸은 술에 상당히 강하다. 쉽게 취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그저 잔이 빌 때마다 계속 채우는 작업을 반복하고만 있었다.


떠들썩해지고 있는 자신의 일행들을 보며, 그들도 어쩌면 다른 방향으로 미친 것이라고 생각했다. 칼린은 지금  분위기를 버티는 것만으로도 한계에 도달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칼린은 저 멀리에서 술을 옮기고 있는, 약 10살정도 되어보이는 어린 여자아이를 보았다. 그리고 해롤드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거기에는 젊은 여주인이 있어... 딸과 함께 일하고 있지'
그 어린아이가 주인의 딸이라는 건 그냥 봐도 알  있었다. 눈매와 머리색은 그녀를 똑 닮았다. 칼린은 그 아이를 자신의 쪽으로 불렀다.

"친구 이름이 뭐니?"
최대한 상냥하게 물어본 질문에도 아이는 대답을 꺼려했다. 그 반응을 보고 칼린은 자신이 가면을 아직도 반정도 올려 쓰고 있다는 것이 떠올랐다. 그는 조금 생각하다가 자신의 부대원들쪽을 바라보았다. 누구도 이쪽에 주목하고 있지 않았다.


칼린은 가면을 완전히 올리고 아이를 바라보았다.


"오빠 나쁜사람은 아니거든. 잠깐 대화할 수 있을까?"
그는 왠지 아이를 속이는 기분이 들어 마음속이 찔렸지만, 그 방법이 효과는 좋았다. 아이는 눈을 반짝이며 칼린의 얼굴을 한번 만져보고 귓속말했다.


"사실은 공주님이야?"
칼린은 다시 가면을 덮어쓰고 능숙하게 거짓말했다.


"맞아. 사실 공주님인데  때문에 정체를 숨기느라 가면을 쓰고 있거든. 비밀로 해줄거지?"
떨어질  고개를 붕붕 흔드는 아이를 보며 칼린은 묘한 기분을 느꼈다. 그는 한번 목을 가다듬고 다시 질문했다.

"그래서, 친구 이름은?"
"마리!"
"마리구나! 이름 되게 이쁘네?"
칼린은 아이를 쓰다듬으며 그렇게 말했다. 그 때 갤러한이 다급히 끼어들며 말을 걸었다.

"야, 칼린! 아스타랑 도르베 또 싸운다! 도르베좀.."
그렇게 말하던 갤러한은 마리를 보고 말을 멈췄다. 갤러한도  여자애가 술집 주인의 딸이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안녕, 꼬마야! 이름이 뭐야?"
마리가 쭈뼛대며 칼린의 뒤에 숨자 칼린이 웃으며 마리를 앞으로 내밀었다.


"오빠 친구니까 걱정할 거 없어."
"칼린은 공주님인데 왜 오ㅃ-"
그는 마리의 입을 막으며 작게 그건 우리 둘만의 비밀이라고 했다. 마리는 납득하고 갤러한에게 고개를 돌렸다.


"마리야! 아저씨는 칼린어..오빠 친구야?"
"오빠는 갤러한 오빠야. 아저씨가 아니라 오빠야."
칼린을 데리러 간 갤러한이 안돌아 오자 일행이 하나 둘 씩 칼린과 갤러한이 있는 곳으로 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으아, 애는 질색이야."
라고 하며 다시 싸움 구경을 간 륑게를 제외한 모두가 마리를 둘러쌌다.

그 날의 술자리는 결국 술취한 어른 여섯명이서 10살짜리 여자아이를 둘러싸고 노는 것으로 끝났다.


#


새로운 해가 떴다. 부대원들은 숙취를 떨쳐내고 일하고 있었다. 다급하게 모두를 부르는 핀의 목소리가 들린 것은 칼린이 불타버린 옷가지들을 치우고 있을 때였다.

"라드씨가!"
그 이름만으로도 충분했다. 모든 부대원이 그가 있는곳으로 모였다.


"또 뭡니까, 해롤드씨!"
먼저 가있던 갤러한이 라드와 해롤드 사이를 중재하고 있었다.


"뭐냐고? 뭐냐고 물었냐?"
해롤드는 침까지 흘리고 있었다. 어떻게 봐도 정상이 아닌 상태였다.


"저기 저 씨발놈이 우리 자치병력 단원 셋을 두들겨 팼어. 셋중 하나는 아직도 눈을 못뜨고 있어! 저! 저 씨발놈이!"
되는대로 욕설을 뱉으며 그는 다시 라드에게 덤벼들려고 했다. 라드는 양팔을 벌리며 도발중이었다.

"라드, 왜 그랬냐?"
해롤드를 막으면서 갤러한이 물었다.

"이봐, 난 시비걸린 거라구. 한명은 칼을 들고 나를 협박했어. '술값을 내라'...던가? 이봐, 아직 못일어난 거 여자쪽 맞지? 조금 근육질인."
라드가 건들대며 해롤드에게 다가갔다. 해롤드는 눈을 너무 크게 떠서 눈알이 흘러 나올 것 같았다.

"아마 일주일은 걸리지 않을까? 꽤 큰소리로 울었었는데..."
뭔가가 끊어지는 듯한 소리가 해롤드에게서 났다. 갤러한은 분명 들었다. 그래서 해롤드에게서 두걸음 정도 물러났다.

"-뭐가 구원병력이냐. 뭐가 전후 복구부대냐! 나라에서 보내준 것들이 정규군조차도 아닌 떠돌이 떨거지들이니 이런 일이 생기는 거다!"
해롤트의 얼굴이 터질 것 같았다. 그는 허벅지에 걸려있던 양날 손도끼를 꺼내 쥐었다.

"네 얼굴가죽을 뜯어 엠마의 병문안 선물로 보내겠다."
"위-, 무서워라~"
라드도 팔에서 밧줄을 늘어뜨렸다.


칼린이 싸움을 말리려 뛰어가려 하자, 릴로가 그걸 잡았다.

"뭐해요, 릴로! 말리지 않으면 싸울거예요!"
그러나 릴로는 막은 팔을 치우지 않았다. 그리고 칼린에게 말했다.


"진정해, 칼린. 이미 싸움은 말릴 수 없다. 휘말릴거야."
"그래도-"
"그리고 라드가 정말 '우리 편'으로서 군에 들어온 거라면, 저 해롤드를 죽이지는 않을 거야."
칼린은 릴로를 바라보고 라드를 바라보았다.

"만약..만약 라드가 다친다면요?"
릴로는 그 말에 칼린을 보고 웃었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그 말과 거의 동시에 해롤드가 라드에게 덤벼들었다. 라드는 대각선으로 오는 참격을 피하고 가볍게 해롤드의 발을 걸었다.

"우윽!"
그리고 중심이 앞으로 모인 해롤드의 허리를 팔꿈치로 내리 찍었다. 그대로 떨어지는 해롤드의 목에 밧줄이 감겼다.

"후욱!"
해롤드는 라드의 밧줄에 목이 매인 상태가 되었다. 라드는  상태로 해롤드의 정강이를 발바닥으로 밀어 넘어뜨리고  위에 앉았다.

"일단 진정하자구, 형씨. 나 쫄았단 말이야."
싸움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라드는 해롤드의 목을 죈 줄의 길이를 천천히 줄여나갔다. 해롤드의 얼굴이 하얘져갔다.

"그만!"
보다못한 칼린이 소리지르자, 라드는 줄을 완전히 풀었다. 해롤드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목을 붙잡았다. 칼린은 그에게로 달려가 상태를 확인했다.

"나도 걱정좀 해줘, 칼린. 도끼에 썰릴 뻔했단 말이야."
"입좀 닥쳐요!"
그렇게 일갈하고 칼린은 자신이 가져온 물을 조금 흘려주었다. 해롤드는 혈색이 조금씩 돌아오며  물을 손으로 치웠다.


"전부, 전부다 똑같은 새끼들 뿐이야. 너네새끼들을 믿을 생각 없어! 내 친구들을 조져놓은 것도 전부 계획해 둔거 아냐? 힘으로는 어떻게 못할 거라고 경고하는 거냐?"
"아니, 먼저 시비털어놓고 그러면 억울하지.."
이리하가 껴서 말했다. 해롤드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아무것도 안하고 우릴 버렸다가, 우리 마을에 흙발로 들어와서, 우리 마을의 공짜술을 마시며 안주로는 '그 촌놈새끼들을 두들겨 팬 이야기좀 들어봐'같은 이야기를 나눴겠지! 다 알고 있어, 씨발! 너네가 여기서 무사히 돌아갈 수 있을  같아?"
일행의 주변에 자치병력원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모두 무장하고 있었다.


칼린은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든 상황을 완화시키는 것이 정답임을 알고 있다. 폭력으로 해결볼  있는 일이 아니었다. 칼린은 이 상황을 수습할 정도로 유한 사람을 돌아 보았다.


"젠장, 귀찮아 지겠군."
그런말을 하며 칼을 뽑고 있는 갤러한이었다. 그제서야 알았다. 이 땅에서 인간의 목숨은 괴물의 미끼정도의 가치 뿐이다. 쓰잘대기 없는 감성으로 움직이는 것은 부대원 안에서도 자신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거리를 좁혀오는 자치병력원들과 거리를 두면서 칼린은 어제 일을 떠올렸다. 라드가 말했던, 상냥함이 도움이 안될거라는 말이었다. 어쩌면 그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목숨이 위험한 순간에도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분명 어느정도는 정답인 말이다.

그럼에도 칼린은 포기할 수 없었다.

"어제는 마리와 이야기 해봤어요!"
칼린이 갑작스레 내뱉은 말에 모두가 발을 멈추었다. 일부 부대원은 저새끼가 갑자기 무슨말을 하냐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로이의 딸 마리, 나이 10살, 대화하다 보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아이였어요!"
칼린은 멈추지 않고 이야기 했다.  술 더떠서 그는 등에 맨 검을 떨어뜨렸다.

"그 아이가 살 곳을 만들고 있는 거잖아요, 우리!"
"...칼린, 지랄말고 무기들어.."
갤러한이 옆에서 작게 속삭이는 것에 칼린이 소리를 질렀다.


"갤러한! 여기서 우리가 이 사람들을 전부 쓰러뜨리면  다음은 뭔데요? 여기의 참사랑 이 사람들 시체도 같이 치울겁니까? 그러려고 왔어요?  아무도 이성적인 대화를 나눠 볼 생각을 안하는 거죠? 딱 그정도로만 상냥해 지는 게 전장에서는 죄인가요?"
칼린이 해롤드에게 고개를 돌렸다.

"우린 별로 국가의 간부직같은 것도 아니에요. 그냥, 그냥 도우러 온 여러분과 같은 윌레인의 국민일 뿐이예요! 마을이 어떻게 버텨왔는지는 모르지만, 젠장할! 도우러 온거라구요!"
일촉측발이었던 분위기가 조금씩 누그러지는 것이 보였다. 다음으로 검을 버린 것은 도르베였다.

"... 마리는 좋은 애였던가?"
해롤드는 그렇게 물었다.


"이런 분위기속에 살기에는 지나치게 좋은 애예요."
칼린의 즉답에 해롤드가 다가왔다. 손도끼를 놓지 않은 상태였다.

"이런 씹-"
그를 막아서려는 륑게를 칼린이 치웠다. 해롤드가 칼린의 바로 앞까지 왔다. 손도끼가 닿는 범위였다.

"넌..넌 여기에 어울리지 않는군."
그의 입술이 기묘한 움직임을 띄며 꿈틀거렸다. 도끼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다음으로 보인 것은 그가 힘껏 도끼를 휘두르는 것이었다.


그 도끼는 원형을 그리며 날아가 땅에 꽂혔다.

"고맙다."
그 일그러진 입술이 만들어 낸 것은 미소였다. 한 순간 칼린에게 그는 정상인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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