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화 〉기분나쁘고 위험한
"형씨는 누구?"
이리하가 밥을 먹으며 그렇게 물었다. 갑자기 쳐들어온 그 남자는 의자 하나를 잡아 끌고 식탁에 합류했다. 그리고 손짓으로 나머지 장정들에게 나가라는 수신호를 보냈다.
"뭐, 이 마을의 자치병력이라고 해 두지. 오기 전에 이야기는 들었을 텐데?"
그렇게 말하며 그는 식탁의 음식을 손으로 집어 먹었다. 손에 묻어있던 검댕과 묘한 액체들이 음식에 묻었다. 칼린은 그 장면을 보고 식사를 포기하고 가면을 다시 내려 썼다. 하지만 다른 일행은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누가 저 걸뱅이에게 숫가락좀 주시겠습니까?"
도르베는 칼린이 다시 가면을 내린 것을 보고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그는 자신의 손가락을 하나씩 빨며 일부러 추접한 소리를 내고 말했다.
"이야, 미안하군, 도련님. '진짜 마을을 지키'고 있으면 위생을 신경쓸 겨를이 없거든. 배고파서 막 손이 간다니까? 혹시 왕국에서 보낸 깍쟁이들은 이런것도 일일히 신경쓰는 타입인가?"
"음. 일과 여가의 분류조차 되지 않은 짐승들도 각자만의 위생 관리 철칙과 방법은 있다. 네가 부족한 시간을 탓하며 넘긴것은 위생관리가 아니라 학문이겠군."
그 말에 그는 하던 행동을 멈추고 도르베를 바라 보았다. 살짝 충혈되어 있던 눈이 커지고, 동공이 줄어들었다. 누가 봐도 흥분한 상태였다.
"우리가 이렇게 씻을 여유도 없이 바쁜것은 전부 너네때문이지. 세금은 있는대로 받아쳐먹고서 우리 마을을 버리려고 했어. 그걸 우리끼리 지켜냈고. 이런 우리 모습을 보면서 조금도 반성이 안되나?"
그 말에 도르베는 진심으로 당황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즉답했다.
"이해가 안가는군. 내가 왜 더럽고 천박한 네놈을 보며 거기에 책임감을 느껴야 하지?"
그는 가만히 손을 테이블 아래로 내렸다. 그의 허벅지에 손도끼가 걸려 있다는 것은 모두 알고 있었다. 도르베도 냅킨으로 입을 한번 닦은 후 전투태세를 숨기려고 하지 않았다.
"그만!"
사람을 한순간 멈추게 하는 기개가 담겨있는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를 낸 것은 중앙의 작고 마른 영주였다.
"해롤드, 지금음 어디까지나 우리가 지원을 요청한 상황이라는 것을 잊지마라. 이 방에서 꺼져."
그 남자는 영주의 말에 손도끼에서 손을 뗐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보아하니 너네들 전부 정규 군인도 아니잖아. 급조된 팀 같군. 차라리 잘됐어. 괜히 우리일에 끼지 말고 적당히 시체치우고 군번줄이나 가져가. 그리고 꺼져."
그렇게 말한 그는 수프에 가래침을 뱉고 새끼손가락으로 몇번 휘저었다. 그리고 식탁보로 손을 닦은 뒤 자신의 동료들이 있는 밖으로 나갔다.
"저런 망나니에게 마을의 치안을 맡기고 있던 겁니까?"
도르베가 검을 거두며 그렇게 묻자 영주는 부끄럽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저 망나니가 제 아들입니다."
도르베는 할 말을 잃고 몇번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치다가, 곧 머리숙여 사과했다.
"아니요, 망나니가 맞습니다. 사과하실 것 없어요. 전쟁 이후로 완전히 바뀌어 버렸어요."
그렇게 말하고서 영주는 자기 머리를 좀 감싸다가 스푼을 내렸다.
"구구절절한 영지사정까지 이야기하지는 않겠지만, 아무튼 상황은 대략 파악하셨으리라 믿습니다. 부디 못난 아들놈이 시비를 걸어와도 그냥 무시하고 지나쳐 주시고, 최대한 같이 일하는 것은 피해주세요. 정말 죄송합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남은 일행들은 조용히 그 장면을 보다가, 다시 별 저항감 없이 수프를 떠먹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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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린은 식사를 끝마치고 혼자 성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성의 최상층에서 바깥을 보고 싶었다. 어느덧 해가 지기 시작해서 붉은 태양이 보라색과 섞여 갔다.
그가 성의 꼭대기에 도착하자 강하게 불어오는 바람이 머리 사이를 훑고 지나갔다. 거기에는 칼린이 단 한번도 보지 못한 풍경이 있었다.
보랏빛으로 뜬 하늘에 지고있는 해와 뜨고있는 두개의 달이 동시에 보이고 있었다. 강렬하게 녹아드는 듯한, 자연에서 볼 수 있는 최고의 색배합이었다. 그 광경에 칼린은 누군가에게 잡혀 끌리듯 발걸음을 옮겼다.
그는 하늘에서 눈을 떼지 못하겠어서 성벽에 손을 대고 떠듬떠듬 걸어 나갔다. 벽에서도 손을 떼버리면 그 때는 정말 저 하늘에 붕 떠버릴 것 같았다. 그가 차라리 그것도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다가, 성벽에서 흠을 만지게 되었다.
그는 그제서야 정면을 보았다. 그 성채는 여기저기 상처 투성이었다. 긁히고 그을리고 무너진 바리케이드가 보였다. 여기저기에 나있는 흠집은 아직도 거기에 걸려있는 갈고리줄이 보이는 듯 했다.
성 밖은 더 가관이었다. 격렬한 항쟁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죽어버린 땅은 불길한 검은 빛깔로 묘한 윤기를 내고 있었고, 여기저기 패이고 깎인 자국들이 흉터처럼 박혀있었다. 방금 전까지 예찬하던 하늘은 땅과 같이 보니 터무니없이 불안한 빛깔이었다.
"성채안의 시체를 전부 치우는 데까지 이주일이 걸렸었습니다."
어느샌가 다가온 영주가 칼린의 옆으로 와서 말했다.
"그중에는 해롤드의 동생도 있었지요. 하반신은 못찾았습니다."
그는 담담하게 말하며 바람을 맞고 있었다.
"여기서는 안보이지만, 저 문을 따라 나가면 마을의 앞면이 보일겁니다. 여기에는 그저 흔적만이 남아있지만, 그곳은 아직 그때의 참사 그대로입니다. 여기저기에 시체가 쌓여있고, 여기저기에는 괴물들이 나와 그 시체를 뜯어먹지요. 무너진 마을의 잔해들을 치우다 보면 아이의 작은 꼬까신도 찾을 수 있을 것이고, 상냥한 어머니가 사용했던 국자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자상한 아버지가 가족을 지키기 위해 무리한 흔적도 발견하시게 될겁니다."
그는 거기까지 말하고 말을 멈췄다. 달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쩌면 당신의 말이 맞을지도 모르죠... 제가 당신을 뭐라고 부르면 될까요?"
칼린은 굳이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지금 그 영주를 마주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냥 칼린이라고 불러주시면 됩니다."
"네, 칼린. 어쩌면 당신의 말대로, 저항조차 하지 않는 그 괴물들을 죽이는 게 이상해 보일수도 있어요. 그것들을 죽이는 것은 정말 간단하죠. 시체를 뜯어먹으려고 나온 그것들은 사람을 공격할 생각조차 하지 않아요. 한번 찍으면 죽어버리고, 따로 마법을 쓰는 것도 못봤어요. 그게 괴물이 맞는지 조차 의심되고는 합니다. 어쩌면 우리가 그냥 희귀한 동물들을 대량으로 죽이고 있을지도요."
칼린은 가슴이 저릿했다. 그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일지 이미 알고 있었다. 다만 그 말을 그렇게나 담담한 목소리로 하는 것이 가슴아프게 느껴졌다.
"그래도..그래도 그 시체는 제 마을 주민들입니다. 제 이웃이었습니다. 설령 그것이 국가에서 키우는 희귀생물들이라고 해도, 그것들과 공존할 수 있을 정도의 마음의 여유는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것들이 무저항한 아기의 형태를 띠고 있더라도 전 죽이라고 명하겠습니다."
이런 말이 담담히 나오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수라를 지나와야 할까. 칼린은 등 뒤의 피곤한 인상의 남성이 어깨에 짊어진 것에 대해 생각해 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뭐, 괴물의 처리는 우리에게 맡기시면 됩니다. 어린아이들도 상대할 수 있을 만한 것이니까요. 부디 이번에는 못난 제 아들놈의 말대로, 사체처리와 피해 복구에 집중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영주는 그렇게 말하고서 조용히 돌아갔다. 칼린은 하늘의 색이 완전히 바뀔 때까지 그저 바라보다가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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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는 머릿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감각에 펜을 떨궜다.
'여보세요? 영주님?'
펜을 주우며 그 목소리가 소니아의 것이라고 깨달은 그녀는 신기한 감각이라고 생각하며 말했다.
"아, 들린다. 처음 느끼는 감각이라 당황했군. 보고해라."
'네, 라무르마을에 도착했습니다. 보고받은 사항 전달드립니다.'
소니아는 그렇게 말하고 영주에게 들었던 것을 그대로 전달했다. 요나는 잠깐 머리를 잡다가 이 위기를 기회로 바꿀 방법이 떠올랐다.
"분명 처음보는 괴물이라고 했다고?"
'아, 네.'
"그렇다면 복귀할 때 그 생물 표본을 하나 가지고 돌아와라. 죽었든 살았든 최대한 멀쩡한 상태로."
연구소에 제출하면 꽤 돈이 될 것이다. 괴물이라는 미지는 가치가 높다.
'아 네, 알겠습니다. 마을에 협력을 요청할까요?'
요나는 조금 고민하다가 말했다.
"반발이 심할거다. 너네들끼리 비밀로 진행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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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 되자 그들은 마을로 나갔다. 영주의 제안대로 최대한 경갑옷에 위생복을 입고 장갑과 방독면을 착용했다. 역병이 돌지도 모른다는 이유였다.
그래서 경갑옷을 거절한 이리하를 제외한 나머지는 같은 의상이 되었다.
"이 참에 이걸 유니폼으로 할까?"
갤러한의 악취미적인 농담에 그 누구도 반응하지 않았다.
"그러면.. 안내하겠습니다."
칼린은 어제 봤던 그 길을 지나고 있었다. 정체모를 수분을 가득 먹은 땅이 진흙처럼 빠져들어갔다. 장화가 없었다면 지나기 성가셨으리라.
성문은 한짝이 무너져 그 틈새로 하늘이 보였다. 더이상 문의 역할도 못해주는 그것을 영주는 굳이 밀어서 열어냈다.
방독면의 좁은 시야 사이로 폐허가 된 마을이 보였다. 죽음이 휘파람을 부는 듯한 바람소리가 불탄 나무를 거치며 칼린에게 들려왔다. 한 때 건물이었던 것들의 잔해들은 가는 길을 방해했다. 표지판에는 아직도 조금 불씨가 남아 있어서 새벽의 푸르름 사이에서 눈을 자극해 왔다.
눈 앞의 풍경에는 움직임 하나 보이지 않아서, 칼린은 아이러니하게도 그 안에서 평화를 보았다.
"자, 그러면 길에 얹어져 있는 잔해들과 아직 회수되지 않은 시체들의 처리를 부탁드릴게요."
영주는 그렇게 말하고 성으로 돌아갔다. 부대원들은 서로를 바라 보다가 2명씩 조를 짜서 5조로 나누어 활동하기로 했다.
"그럼 가자꾸나, 칼린."
칼린은 도르베와 같은 조로 활동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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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보니-"
도르베가 돌을 치우다가 칼린에게 말을 걸었다.
"어제 네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요나경의 명령이 들어왔다. 이곳 영주가 말한 괴물 하나를 샘플로 가져오라더군."
칼린은 그 말에 탁자 잔해를 치우며 대답했다.
"자치병력분들이 싫어하지 않을까요?"
도르베는 한번 코웃음을 치고 대답헀다.
"지들끼리 만든 자경단이다. 어떤 권한도 없어. 그래도 몰래 가져오라고 명령이 떨어지긴 했지."
칼린은 조금 생각해보았다. 어제 영주의 말을 듣고 나니 쉽게 수긍하는 것이 힘들었다.
"뭐, 깊게 생각하지 말자구. 우린 그저 우리의 영주님 말만 따르면 되는 거니까."
도르베의 정론에 칼린은 짧은 긍정으로 답했다.
"아, 도르베. 계단이 무너져서 그러는 데 위층으로 올라가게 도와주실 수 있나요?"
칼린의 부탁에 도르베는 문제 없다는 듯 한 손으로 나무 잔해를 수레에 옮기면서 다른 손을 그 방향으로 돌렸다. 잠깐 빛이 나는 듯 하더니 칼린의 눈앞에 투명한 발판이 생겼다.
"고마워요. 내려갈때도 부탁할게요."
칼린은 그렇게 말하고 발판을 딛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올라가는 그의 시야에 가장먼저 들어온 것은, 수납장에 기대고 있는 남성의 시체였다.
칼린은 한 순간 균형을 잃고 넘어질 뻔했다가, 그의 우월한 운동능력으로 어떻게든 버텨냈다. 그리고 그 시체에게 다가갔다.
흰색 셔츠에 갈색 조끼. 셔츠의 목부분에는 피가 흥건했다. 수납장에 올려둔 손으로 쥔 것은 곡괭이였지만, 군번줄은 보이지 않았다. 반대쪽 손은 주먹을 꼭 쥐고 있었다.
칼린은 그의 주먹을 펼쳐 보았다. 그가 쥐고 있던 것은 작은 회중시계였다.
칼린은 그걸 꺼내 펼쳐보았다. 시계에는 '사랑하고, 앞으로도 사랑할 로이에게.'라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아찔해지는 정신을 붙잡으며 칼린은 그 시계를 다시 그의 손에 쥐어주었다. 그리고 그가 느끼고 있는 모든 감정을 눌러내며 최대한 멀쩡한 목소리를 내면서 전달했다.
"도르베.. 위층에서 회수되지 않은 시신 한구를 발견했어요."
"..들고 내려올 수 있겠어?"
칼린은 그 시체를 보며 잠깐 생각하다가, 그의 손에 있던 시계를 주머니에 집어 넣었다. 그를 찾고 있을 사람에게 전달해야 할 물품이었다. 그리고 그의 시체를 옮기는 것은 할 수 있냐 없냐의 문제가 아니었다.
"해야 되는 일이죠."
침통함을 감추며 칼린은 그 시체를 짊어 졌다. 죽은 자의 무게가 칼린에게는 실제보다 더 무겁게 느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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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은 고된 일이었다. 너무 큰 잔해의 경우에는 곡괭이 등으로 잘게 부숴서 옮겨야 했고, 수레가 가득차면 성 앞에서 대기하고 있는 영주의 운송조에게 옮겨 주었다. 시체는 전용 수레에 옮겨 시신을 모아두는 곳에 임시로 나열했다.
땀이 흘러 내려서 눈을 찔러도 방독면을 벗을 수는 없었다. 공기가 얼마나 유독할지는 굳이 맡아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다른 조는 몰라도, 도르베와 칼린의 조는 상당히 조용하게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작업한지 두시간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성문에서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해롤드의 자치병력들이었다. 그들은 일하고 있는 왕국의 병사들을 보더니 사색이 되어 시체를 모아둔 곳으로 달려갔다.
"이..이런 씨발.."
해롤드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리고 가까이에 있던 갤러한을 불러 세웠다.
"뭔데."
갤러한은 륑게와 같은 조였다. 수레를 옮기다가 멈추고 구경하기 시작한 륑게를 두고, 해롤드가 갤러한의 멱살을 쥐었다.
"'미끼'까지 회수하면 어쩌자는 거냐, 외부인 새끼들이!"
갤러한은 거칠게 그의 손을 뿌리치고 시체쪽을 한번 보았다가 말했다.
"야, 내가 상상하는 그건 아니라고 말해줘라."
해롤드는 떡진 머리를 거칠게 긁으며 화를 주저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시체를 하나 가리키며 말했다.
"우리가 병신이라서 바닥에 대놓고 앉아있는 시체들을 방치한 줄 알아? 괴물들은 시체에 끌려서 온다고, 이 빌어먹을 새끼들아! 일부러 구역별로 한구씩 방치해 두고 있던 건데, 그걸 회수해?"
조용했던 폐허에 큰소리가 나니, 자동적으로 부대원들이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해롤드의 말을 이해한 부대원들은 제각각의 반응을 보였다.
"이런 미친...진심으로 하는 말이냐?"
갤러한의 질린듯한 말에 해롤드의 얼굴에 표정이 사라져 갔다. 단 눈은 튀어나올 듯 크게 뜨고 갤러한을 응시하고 있었다.
"진심? 진심이냐고?"
그렇게 말하며 해롤드는 안치되어 있던 시신들의 천을 하나씩 벗겨내기 시작했다.
"여기! 식별용으로! 옷에다가 마크를 그려둔게 안보였나?! 이 큰 동그라미 표식을 대체 뭐라고 생각한..!"
그는 그렇게 말하며 시체를 덮은 천을 하나씩 치우다가 갑자기 말을 멈추었다. 그리고 무릎을 꿇었다.
"...오, 로이..."
그는 기어가듯 한 시체에 다가가 썩어들어가기 시작한 그 시체의 팔과 다리를 주물러보기 시작했다.
"로이.. 너도... 너도 죽었던 거냐.. 제발...어떻게 네가..."
그렇게 말하며 그는 그 시체를 끌어 안았다. 끌어안긴 시체의 팔이 힘없이 떨어졌다. 해롤드는 그 시체를 잡고 빨개질대로 빨개진 눈을 감지도 않으며 소리쳤다.
"로이...! 이런 씨발! 로이! 이 개새끼야! 제발! 팔좀 들어보란 말이다!!"
그는 갑작스럽게 오열하기 시작했다. 하얗게 질려서 파리가 꼬이는 그의 이마에 키스한 그는 눈물을 흘리며 단단해서 잡히지도 않는 흙바닥을 긁었다.
"...완전히 미쳐버렸군."
갤러한이 냉정한 눈으로 그렇게 말했다. 해롤드는 거기에 답장하지 않았다. 격렬함이 지나가자 그에게 남은 것은 죽음같은 고요함이었다.
"... 얘들아. '미끼'를 되돌려 놓고 와라. 구역별 위치는 기억하겠지."
그의 뒤에 서있던, 몇몇은 같이 울고있던 사람들에게 해롤드가 조용하게 말했다. 그리고 허리춤에 있던 단검을 꺼내 자신의 손바닥을 갈라 그가 쥐고있던 시체의 위에 크게 동그라미를 그렸다.
"...로이의 시체는 B구역에 적당히 배치해놔라. 얘는 달을 좋아했으니까.."
그렇게 말한 해롤드는 그 시체를 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은 시체를 덮은 흰색천을 하나씩 던지며 표식이 있는 시체들을 옮기기 시작했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그들을 보며 갤러한은 말리고싶은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비통함보다는 광기가 느껴지는 장면이었다.
"...미끼로 쓰이는 것은, 자치병력에 자원한 사람들의 가족과 친구들로 한정된다. 그를 미끼로 사용하는 것을 허락한 사람의 피로 표식을 만들지."
소금부대원 전원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누구도 그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떠오르고 있는 해때문에 생긴 역광과 그의 위치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미쳤다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신경안써. 외부인의 시선은 좆도 신경안써."
어느샌가 그의 말은 소금부대 전원에게 하는 말인지 자기 스스로에게 하는 말인지 알 수 없게 되었다. 태양을 등진 그에게 바람이 불어왔다. 그는 마치 넝마를 두른 허수아비같아 보였다.
"우린 어떤 방식으로든 살아남을꺼야. 이 마을을 지켜낼꺼야. 미쳐버리는 게 차라리 쉬워."
어둠에 적응한 일행들은 그의 표정을 그제서야 볼 수 있었다. 한껏 찡그린 두 눈은 충혈되고 이리저리 핏줄이 터져 있었다. 아직 그의 두 눈에서 눈물이 반짝이며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입은 이빨이 보이도록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