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화 〉기분나쁘고 위험한
저녁이 되고, 그들의 마차는 야영을 위해 잠깐 멈추게 되었다. 칼린의 마차에서 내리는 일행들은 전부 조용했다. 그중에서 도르베와 칼린은 표정까지 굳어 있었다.
륑게는 그 모습을 보고 아스타를 바라보았다. 아스타는 어쩔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들에게 다가, 도르베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표정 풀어라, 씹새야!"
"...네년이.."
"꼴받냐? 씹새야!"
아스타는 그 긴시간을 마차안에 있었는데도 멀쩡해 보였다. 아니, 오히려 펄펄 날고 있었다. 그녀는 이제 도르베의 주변을 돌면서 노래까지 부르고 있었다.
"씹-새, 씹새! 씹새는 누구냐-."
도르베는 끓는 속을 삭히며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 심호흡하다가, 고개를 들고 눈을 감으며 말했다.
"천박한 년이 뭐라고 하던지는 신경쓰지 않는다. 칼린이 반말에 어색해서 나온 실수였을 뿐이야. 그걸로 꼬투리를 잡다니, 보기보다 어른스럽지 못하군."
"네, 저는 어른스럽지 못한 천박한 년이었구여- 씹새는 너구여- 이악물고 무시중인 것도 너구여-."
"저 진짜 그게 비속어인 줄 몰랐어요!"
칼린은 억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륑게와 핀은 가만히 앉아 상황을 바라보고 있었다.
"야 핀, 너도 지금 상황이 음.. 보인다고 물어봐야되냐 느껴지냐 물어봐야 되냐?"
륑게의 질문에 핀은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느껴진다.. 쪽이 가깝네요. 뭔상황인지 전부 파악되고 있기는 해요."
"그러면 난 도르베가 못참고 아스타한테 선빵친다에 5생텀 건다."
"? 전 도르베가 아스타를 무시하고 칼린과 어디 숨는다에 10생텀 걸죠. 받아요?"
"10생텀 딜."
그런 대화를 나누고 그 둘은 그저 조용히 그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잠시 뒤 륑게가 입을 열었다.
"10생텀 내놔."
#
륑게는 내기로 벌어낸 10생텀을 흔들며 마부에게 다가갔다.
"다른 마차는 왜이리 안오죠? 바로 뒤였던 것 같은데."
마부는 뒤통수를 긁으며 말했다.
"아니, 중간까지는 분명히 잘 따라오고 있었는데요- 갑자기 멈추더니 먼저 가라고 했거든요, 거기 마부가. 마차안에 일터졌다고."
륑게가 그 말에 조금 당황해서 물었다.
"아니, 왜 그걸 이제 말하시는 거지?"
"그... 어차피 길은 둘다 외우고 다니니까... 헤맬일도 없을테니 한 5분정도 거리에서 계속 따라오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마부가 겁먹은 듯 몸을 움츠리다가, 멀리서 오고있는 마차를 보며 소리질렀다.
"지금 오고 있네요!"
멀리에서 그들의 마차가 보였다. 딱히 별일이 생긴 것 같지는 않았다. 말도 전부다 있었고, 겉보기에 마차도 별 손상이 보이지 않았다.
마차가 멈추고, 문이 열리며 다들 나왔다.
"오셨군요, 갤러한!"
칼린이 도르베와 아스타의 사이에서 적당히 힘조절하며 그들을 말리면서 인사했다. 그러면서 칼린은 갤러한이 이 장면을 보고 폭소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갤러한?"
그러나 갤러한은 굳은 표정으로 텐트를 치기 위해 칼린을 지나쳤다. 아스타도 그에게서 뭔가 이상한 것을 느끼고, 아직 씩씩대고 있는 도르베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뭔 일 있었어, 갤러한?"
갤러한은 아스타의 질문에 가만히 있다가, 조용하게 말했다.
"저기 백발의 미친년이나 끔찍한 미역머리한테 물어보지 그래."
그렇게 말하고 갤러한은 다시 자신의 텐트에 못을 박기 시작했다. 아직 마차 근처에 있던 륑게는 핀의 얼굴이 새하얗게 된 것을 눈치챘다.
"무슨 일이야, 핀?"
륑게가 묻자, 핀이 떠듬떠듬 말했다.
"마차...반대편이.."
륑게는 무슨 소리인가 싶어 원래 있던 마차의 우측부에서 반대쪽인 좌측부로 돌아가 보았다.
마차의 한면이 통째로 날아가 있었다.
#
그들의 마차는 상당히 조용했다. 앞 마차와 붙으면 앞의 마차에서 나는 떠들썩한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앞 마차에 비해 여기는 너무 조용하구만. 우리도 친목좀 해보자구, 어때?"
라드가 한 말에 누구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래도 상관 없다는 듯 라드는 한명씩 바라보며 혼잣말하기 시작했다.
"뭐, 갤러한과 릴로는... 옛날부터 친했으니 넘어 가자구. 거기..소니아씨? 가는 길 심심한데 나랑 대화나 할까?"
위치상 라드의 옆에있던 소니아에게 그 화살이 돌아갔다. 소니아는 사실 라드가 그들과 무슨 관계인지 모르기에 간단하게 잡담을 나눌 의향은 있었다. 그러나 맞은편에 앉은 갤러한이 그녀에게 노싸인을 보냈다.
"나 참, 빡빡한 리더구만. 일행의 친구까지 관리하는 거냐?"
그렇게 말하고서, 그는 시선을 갤러한 옆에 앉은 이리하에게로 돌렸다.
"지난번에는 거절당했지만, 이번에 또 기회가 온 것 같군. 나랑 대화나 좀 할까?"
이리하는 그저 꼿꼿한 자세로 앉아서, 당당히 정면을 보고있는 눈에 살짝 웃고있는 입이라는 읽기 힘든 표정으로 가만히 있었다. 갤러한도 라드도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몰랐다.
"...이리하양은 나를 꺼려하지만, 난 우리가 꽤 비슷하다고 생각하거든. 서로 가볍게 이야기만 나누면 많이 친해질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때?"
이리하는 그제서야 라드를 향해 고개를 조금 돌리고, 그 표정 그대로 말했다.
"내가? 너랑?"
자신에게 관심을 가진 상대를 자극하는 것은 아주 쉽다. 라드는 그 말에 허리를 숙이며 대답했다.
"아아, 그렇지. 예를 들어... '누군가에게는 엄-청나게 미움받는 점'같은 거.. 말야. 이해하나?"
그는 그렇게 말하고, 자신의 늘어진 미역머리를 한번 쓸어 넘겼다. 말하고자 하는 것은 명백했다.
"마차 안에서 소란피울 생각-"
갤러한이 그렇게 말하려는 순간, 이리하가 팔을 뻗어서 그의 말을 멈추었다. 그리고 말했다.
"마부씨, 잠깐 멈춰주실 수 있나요?"
"예? 무슨일이시죠? 조금 힘들 것 같은데..."
"에, 그럼 이대로도 괜찮아요."
"잠깐, 뭐가-"
그렇게 말하는 마부를 뒤로하고, 이리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라드를 향해 다가갔다.
"어이쿠, 한대 칠라고? 부대에 미련이 없나보지?"
라드는 그렇게 말하며 소매 안에서 밧줄을 조금 늘렸다. 그리고 즉각적인 반응을 할 준비를 했다.
예상하지 못한 것은 이리하의 실력이었다.
살짝 구부정하게 앉은 자세에서, 이리하는 허리를 조금 돌렸다가 빠르게 손바닥을 휘둘렀다. 라드조차 앉은 자세에서는 대처가 안될 정도로 빠른 공격이었다.
그리고 그 공격은 라드의 옆, 즉 벽에 닿았다. 큰 소리가 울리고 마차가 조금 흔들렸다.
그 공격으로 라드가 기대고 있던 벽- 즉 마차의 왼쪽부가 완전히 날아갔다. 이리하는 그 자세 그대로 라드를 내려다 보며 말했다.
"그 말투 내가 좆같다고 했지. 또 시비털었으니까 벌이야. 넌 마차 안에서 좀 추워야겠어."
그렇게 말하고 그녀는 다른 일행들의 시선속에서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러다가 깜빡 잊은것을 기억해 낸 것처럼, 소니아를 바라보며 자신의 무릎을 톡톡 쳤다.
"소니아씨는 특별히 잘못 안했으니까 여기 와서 앉아."
#
"저녁이 되자 날이 너무 추워져서 한쪽 면이 뚫린 상태로는 도저히 못버티겠더라고. 그래서 속도를 계속 낮추다가 늦었지."
갤러한은 그렇게 이야기를 끝맺었다. 칼린은 그의 텐트작업을 돕는 조건으로 무슨일이 있었는지 들을 수 있었다. 슬슬 텐트작업을 끝마친 그들은 기지개를 피며 손을 털었다.
"그래서 이제 어떡하실 거예요?"
그 말에 갤러한은 조금 생각하다가 말했다.
"인원을 6대 4로 배분해서 나누자구. 라드 저 씨발놈은 특수조치가 필요해. 이리하, 아스타, 륑게는 라드랑 절대 같이 타면 안되고. 소니아랑 너도 라드랑 대화하게 될 것 같아서 좀 쫄려. 난 라드를 존나 싫어하지만 참을수는 있고, 릴로는 라드를 그렇게 막 좆같아하지는 않으니까 견딜 수 있어. 핀은... 안지 얼마 안됐지만 라드한테 시비털것같지는 않아. 대화해보니까 어떻든?"
"아, 네. 확실히 엄청 온화하신 분이셨어요."
"그래. 내생각에는 그 도르베라는 꼬맹이도 라드랑 붙이면 얼마안가 한놈 관짝 끌 것 같다. 그러니까 인원배분은 나, 라드, 릴로, 핀으로 마차 하나, 나머지 애들로 마차 하나. 이렇게 하자."
그렇게 말하는 갤러한을 보며 칼린이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저, 그건 알겠는데, 제가 물어본 건 저 벽뚫린 마차를 어떻게 할지에 관한 거였어요..."
"아, 그건 어떻게 할 필요도 없지. 너네 6명이 타고 갈꺼다."
"에엑?"
"'에엑?'이 아니라, 이쪽은 폭탄을 끌고 가는 거라고. 6명이면 오밀조밀해서 따뜻할텐데 잘 뭉쳐서 버텨봐."
그 말에 칼린은 눈썹을 팔자로 만들고 조금 생각하다가, 한숨을 쉬며 찬성표를 던졌다. 갤러한은 그걸 보고 웃으며 칼린의 어깨를 쳤다.
"넌 어째 가면쓰고도 표정이 보이냐. 행동이 하나하나 커서 그런가."
그렇게 말하고 갤러한은 자신의 텐트로 들어갔다. 칼린도 몸을 풀고 모닥불 앞에 쪼그려 앉았다. 그러자 옆에 도르베가 다가왔다.
"괜찮을까?"
"아, 네. 앉으세요."
칼린은 그렇게 말하며 살짝 자리를 옮겼다. 도르베는 가볍게 감사인사를 하며 자리에 앉았다.
"점심때는 정말 죄송해요. 제가 아는 반말들은 전부 갤러한씨 일행들에게 배운거거든요."
"뭐, 신경쓰지 않는다. 네 잘못이 아니니까. 단 반말은 이번에 나에게서 새로 배우고 사용하자."
도르베가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칼린도 웃으며 자신의 자루를 꺼냈다. 자루 안에는 육포가 조금 들어 있었다.
"먹을 수 있어요?"
"아, 좋아하지."
도르베는 육포를 씹으며 모닥불을 바라 보았다. 분명 입맛이 까다로울 것이라 생각했던 칼린은 조금 놀랐다.
"내 입맛이 까다로울 줄 알았지?"
마치 마음을 읽은 듯 도르베가 그렇게 말했다. 칼린은 허겁지겁 놓칠 뻔한 육포를 고쳐쥐고 대답했다.
"아, 뭐.. 조금은? 그렇게 생각도? 했죠?"
그런 반응을 보며 조금 웃은 도르베는 다시 육포를 씹었다.
"..사실 철 들었을 때부터 그렇게 고급요리는 입에 대본 적도 없어. 서서히 생활수준에 맞는 요리로 격이 떨어지다가, 군에 들어갈 때 쯤엔 우리집은 딱딱한 호밀빵에 야채감자 수프가 일상이었지."
모닥불을 바라보던 그가 가만히 자신의 옛 동료들을 회상했다.
"부대에서 보급식을 받아 먹으면서 우리 집사정도 막 나쁘지는 않았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고 말이야. 라무르 마을에 도착하면 알겠지만, '소형 도시'와 '마을'의 격차는 상당해. 작은 마을 영주는 끼니가 도시의 평민과 비슷한 수준이지. 거기의 백성들은 어떨 것 같나?"
그렇게 말하며 그는 자신이 쥐고 있는 육포를 흔들어 보았다.
"이 육포도 떠돌이들이나 도시인들, 상인들에게는 그저 이동식이지. 한번에 움직이는 돈의 단위가 다르니까. 하지만, 부대에 있을 때에는 내 부대원들이 주방에서 훔쳐오는 특식이었어. 거기 조리사는 언제나 우리 부대원이 육포를 조금씩 베어 훔쳐가는 것을 알면서도 눈감아 주고는 했지."
그러고 조금 가만히 있던 도르베는 마지막 육포 조각을 입에 던져 넣으며 말했다.
"...그래서 난 육포를 좋아한다. 구구절절한 말을 해서 미안하군."
칼린은 그런 도르베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시건방진 동생처럼 느껴지다가도 간간이 어른의 얼굴이 보인다. 그러나 그런 얼굴을 하기에는 너무 앳된 나이였다.
"담배도 좋아하시나요?"
칼린은 백마디 말 대신에 한개피의 담배를 꺼냈다. 이 세계에서 운이 좋아 전쟁의 여파를 받지 않은 소형 도시의 영주에게 거두어진 칼린이 그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단 한마디도 없었기 때문이다.
"속보이는 배려군."
도르베는 그렇게 말하며 그가 내민 담배를 받았다. 다만 말하는 것에 비해 그의 표정은 많이 풀려 있었다.
"나도 그거 좋아하는데."
그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이리하가 있었다. 그녀는 둘 사이에 비집고 들어가 칼린에게 말을 걸었다.
"나도 담배랑 육포 좋아해."
칼린에게 이리하는 요주의 인물이다. 일행중 누구도 모르는 뉴페이스이자, 꽤 굉장한 실력자이며, 안내키면 마차의 일면을 부수는 변덕스러움도 있다.
"하나씩 가져가세요."
칼린은 그렇게 말하며 육포와 담배를 건냈다. 그걸 받으려는 것을 도르베가 막았다.
"그렇게 베풀고 다니면 네가 먹을 게 없어질거다."
"자기는 이미 먹었다고 쩨쩨하게 구네?"
이리하의 말에 도르베가 잠깐 굳었다. 그리고 조심스레 물었다.
"언제부터 우리를 보고 있었지?"
"칼린이 육포 건내 줄 때부터. 빨간머리 언니야랑 같이 보고 있었어. 아, 이건 비밀. 내가 말했다고 하지마."
도르베가 뒤늦게 뒤를 돌아보았지만, 이미 아무도 없었다.
"칼린, 넌 꽤 좋은 놈 같아. 말투가 싹싹해."
"네? 감사합니다."
이리하의 말에 칼린이 당황하며 그렇게 답했다.
"근데 병신같은 가면때문에 별로 신뢰가 안가긴 해. 살짝 말투도 범생이같고."
그렇게 말하며 육표를 채갔다. 그리고 모닥불에서 작은 불을 꺼내 담뱃불을 붙이고 뒤돌았다.
"쨌든 이건 고마워. 나도 이제 들어감."
그렇게 말하고 그녀는 자신의 텐트로 돌아갔다.
"이 시간에도 전신갑옷을 입고 계시네요."
"내말이. 이 부대 안에서도 가장 이상한 사람인 것 같다."
둘은 그런 대화를 하고 얌전하게 모닥불을 보다가, 도르베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육포 먹으려면 가면 벗어야 되잖아? 자리를 비켜주지."
"아, 네. 죄송하네요."
떠나는 도르베에게 그렇게 말하고, 칼린은 가면을 올려 육포를 집어먹었다.
#
아침에 갤러한이 말한 인원으로 재분배한 일행은 무탈하게 라무르에 도착했다.
도르베의 말대로, 라무르는 벨카와 많은 것이 달랐다.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을 정도의 차이였는데, 칼린에게는 그 둘이 '근대'와 '중세'의 차이라고 느껴졌다.
넓게 펼쳐진 평야에 자리잡은 이 마을에는 어디를 둘러봐도 2층 이상의 건물은 없었고, 포장되어 있지 않은 땅은 발걸음마다 황색 먼지를 일으켰다.
"어서 오세요, 소금부대원 분들이 맞으시죠?"
마을의 입구까지 내려와 자신들을 반기는 것은 그 마을의 영주였다. 다만 허름하고 정돈되어있지 않은 겉모습이 다른 주민들과 달라보이지 않았다.
"먼길 수고 많으셨습니다. 자, 얼른 성으로 들어 오시지요."
촌장은 그렇게 말하며 마차에서 내린 일행들을 안내했다.
마을은 그렇게 마구 부셔진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적어도 칼린이 보기에는 그냥 가난하게만 보였다.
"피해가 심하진 않았나봐요."
칼린이 옆에서 걷고있던 소니아에게 그렇게 말하자, 소니아는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음... 적군이 여기까지 들어오지는 못했었거든.. 지금 가는 성 너머가 우리가 일할 곳이라고 보면 돼."
그렇게 말하고서 소니아는 조금 생각하다가 말을 덧붙였다.
"그.. 칼린은 전장은 처음일테니까. 좀 각오해두고 있으라고."
#
성에 도착한 그들은 식탁에 앉아 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렇게 바로 와주셔서 얼마나 감사한 지 모릅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큰 대접은 못해드리지만, 너그럽게 봐주시면 좋겠군요."
영주는 피곤해 보이는 중년 남성이었다. 머리 정리는 평소에도 안하는 사람처럼 보였고, 마지막으로 씻은게 언제인지 근처에 앉은 사람에게는 그에게서 나는 묘한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떨고있는 손에는 검지와 중지 사이에 담배자국이 짙게 남아있었다.
"고생이 많으신가 봅니다. 안색이 많이 안좋으시네요."
도르베가 영주에게 그렇게 말했다. 영주는 손수건으로 계속 식은땀이 나는 이마를 닦으며 답했다.
"네, 뭐. 지금 상황이 말이 아니기는 하죠. 빈말로라도 좋은 상황이라고는 못말하겠네요. 그래도 이렇게 부대원분들이 와주셔서 정말 안심입니다."
"기대에 부응하겠습니다!"
답한것은 이리하였다. 때마침 요리가 왔다. 정말 조촐하긴 했지만, 맛이 나쁜것은 아니었다.
"지금 정확한 사정을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갤러한이 밥을 먹으며 질문하자, 영주는 깎지 않아 까끌하게 자란 턱수염을 만지며 말했다.
"뭐, 마을의 반은 성 뒤에 있어 지킬 수 있었지만, 반댓편은 완전히 망가져 버렸습니다. 전쟁으로 마을 인구가 줄어든 것 때문에 사람 살 집이 부족한 일은 안벌어 졌지만.. 성의 앞쪽으로 가보시면 완전 참사현장입니다. 거기에 마을 안에 괴물들이 출몰하기 시작했구요."
괴물이라는 것은 그렇게 여기저기에서 막 출몰하는 것이 아니다. 마을 안까지 괴물들이 들어온 다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지금까지는 마을의 자치부대에서 괴물들을 처리해 왔지만, 그와 동시에 마을을 복구하기는 무리가 있는 것 같더군요. 때문에 전사자들의 유해나 전쟁의 잔해들도 아직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습니다."
그 말에 소니아도 숟가락을 놓고 질문했다.
"혹시 지금 출몰하고 있는 괴물들 종을 말해주실 수 있을까요?"
영주는 그 부분이 골치라는 듯 머리를 잡으며 말했다.
"그게 말이죠, 단 한종이 계속해서 침입해 옵니다만- 그게 무슨 종인지 모르겠습니다. 적어도 제가 알아본 바로는 신종이에요."
"한마리가 계속 덤벼오는 겁니까?"
"아뇨, 동일종이 계속해서 여기저기에서 출몰하고 있습니다."
그 말에 갤러한의 표정이 굳어졌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나름 여러마리의 괴물들을 직접 접하고 사냥해온 그였지만, 한 종류가 계속해서 마을에 출몰한다는 이야기는 들어 본 적도 없다. 생각보다 귀찮은 일이 될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 괴물의 공격성은?"
륑게의 질문이었다.
"그게.. 공격은 해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하나 제거하는 것은 어렵지 않아요."
칼린은 그 말에 가면을 코까지만 올리고 밥을먹고 있다가 숟가락을 놓쳤다.
"공격도 해오지 않으면 왜 괴물로 분류하고 죽이고 있는 거죠?"
칼린의 질문에는 약간의 억울함이 묻어나와 있었다. 철없는 질문이었지만, 칼린의 사정을 알고 있다면 그 심정이 조금은 이해가 될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것들이 전부 기분나쁘고 위험하거든."
그 대답은 영주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일행중 한명이 말한 것도 아니었다.
"눈 대신 더듬이가 달린, 보라색 뱀같이 생긴 것들이야. 가만히 두면 어느샌가 땅에서 기어 나와서 시체를 뜯어먹고 있지."
어느순간 성의 식사실에 쳐들어온 남자는, 전생의 전상민같은 사람이었다. 단단해 보이는 덩치에 장신, 뺨에 있는 흉터가 인상적인 남자였다. 그의 뒤로 장정들이 우르르 몰려 들어왔다.
"송장의 살점을 뜯어먹고 있는 것들을 그냥 방치해 두면 그것들과 공생이라도 가능할까? 아니, 언젠가 우리 주민들의 살점을 뜯어먹으러 올거다."
그는 칼린의 뒤까지 와서 그의 잔을 뻇어 물을 마셨다. 그리고 입을 한번 닦으며 말했다.
"나라에서 보내주는 범생이들이 그렇지. 애초에 믿은 적도 없다. 시체만 치우고 적당히 꺼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