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2화 〉전후(戰後)복구부대 (22/164)



〈 22화 〉전후(戰後)복구부대

"칼린, 선물이 있다."


요나가 훈련을 마치고 같이 성으로 들어가며 불쑥 말을 꺼냈다.


"선물이요?"
요나는 대답 대신 따라오라는 제스쳐를 취했다. 그를 데리고 간 곳은 영주실이었다.


요나는 그녀의 서랍에서 가면을 꺼냈다. 아무 장식도 없는, 눈구멍 두개만 뚫려있는 흰색 가면이었다.

칼린은 그녀에게서 그 가면을 받아 여기저기 둘러 보았다. 뒤쪽에 연결되어 있는 조절장치를 돌려서 스트랩을 조이는 형태였고, 안에는 쿠셔닝이 잘 되어 있어 눌리지 않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생각보다 단단한 재질이었다. 생긴 것에 비해 상당한 정성을 쏟은 듯한 가면이었다.

"이게  가면이죠?"
하지만 그 재질이 어떻든 가면은 가면이다. 갑작스레 누군가에게 선물로 주기에는 사용할 범위가 적기도 하고, 대충 시장에서 골라서 주워왔다기에는 품질이 너무 뛰어났다. 아마 따로 주문제작한 제품이리라.

"알다시피, 내일이 부대원 예비소집일이다."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입고있던 겉옷을 벗어 던졌다. 칼린은 그 모습에 조금 눈을 피했다.

"네 외견은 눈에 띄니까 말이다."
벌레들이 꼬이면 곤란하다.
"같은 부대원들이 추파를 던져대면 곤란하지 않겠느냐."
방충망 정도는 쳐둬야 하는 것 아니겠느냐.


"그러면.. 부대 내에서는 이 가면을 쓰고 다닐까요?"
칼린은 자신의 외견에 대해 생각해  적이 그렇게 많지 않다. 자신의 바뀐 외모를 마주하는 것이 쓸쓸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해서 거울을 피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종종 자신의 외모가 어떤지 주변의 시선으로 깨닫는 경우는 많았다. 그래서인지 그 제안에 곧바로 수긍했다.

"되도록이면 성 안이 아닐 경우에는 항상 쓰고 다니거라. 숨쉬기 불편하거나 시야가 좁아진다거나, 그런 것은 걱정 안해도 좋다. 쿠셔닝을 해서 보이지 않겠지만, 그 가면의 뒷쪽에 주술문장이 박혀 있거든."
그 말에 칼린은 그 가면을  번 써 보았다. 확실히 안쓴 것과  차이가 느껴지지 않았다.


"마법 이외의 수단으로는 그 가면에 금조차 가지 않을 것이다. 얼굴에 나는 상처를 막는 용도로도 사용할 수 있겠지. 유용하게 사용하렴."
칼린은 그 가면이 꽤 마음에 들었다. 그는 가면을 벗지 않고 요나에게 감사인사를 한 후 방을 나섰다.  모습을 웃으며 바라보던 요나는 샤워를 하기 위해 샤워실로 들어갔다.

#


평소처럼 책을 읽으며 침대에 앉아있는 리쿠르트의 방에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갤러한은 이미 왔다 갔다. 아마 갤러한이 두고온 것이 있어 돌아온 것이라고 생각한 그녀는 미소를 머금고 다시 책을 내려 놓았다.

"들어오세요."
 말에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정장에 가면을 쓰고 있는 괴한이었다. 리쿠르트는 비명조차 못지를 정도로 놀라 옆에 있던 꽃병을 집어 들었다.


"잠깐! 잠깐 잠깐 잠깐 잠까아아안!"
가면 너머로 다급하게 말하는 목소리는 익숙한 것이었다. 아직 꽃병을 내려놓지 않고 있는 리쿠르트를 향해, 괴한이 가면을 벗으며 말했다.


"저예요, 칼린이에요, 선생님!"


#


"오랜만에 찾아오셔서 하는 게 그런 장난이라니, 선생님은 아직 환자라구요."
"죄송합니다.."
칼린은 자신을 변호할 말을 찾지 못하고 그저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질책을 듣고 있었다. 진심으로 반성하는 듯한 칼린을 보며 리쿠르트는 계속 화낼수가 없어서 조금 웃었다. 이런 점은 갤러한과 조금 닮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그렇다고 해서 문안을 와준 학생에게 계속 화만  정도로 엄격한 선생님은 아니랍니다, 저도."
"아, 감사합니다!"
표정이 확 밝아지는 칼린을 보며, 그의 상태가 많이 좋아 졌다는 것을 알  있었다. 아직 다크서클은 조금 남아 있었지만 그에게서 느껴지던 묘한 절박함이 보이지 않게  듯 했다.


"그  이후 처음이네요, 칼린. 건강해 보여 다행이에요. 근데 그 가면은 뭐였나요?"
묻고싶은 것이 많은 리쿠르트였지만, 일단 가면으로 주제를 시작하기로 했다.

"아, 갤러한씨가 부대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해주셨지요?"
"네. 뭐...자세한건 요나에게서 들었지만 말이에요. 확실히 칼린도 그 부대에 참여하기로 했었죠?"
리쿠르트는 간간이 자신의 방에 찾아오는 요나에게서 상황설명을 듣고 있었다. 요나는 매번 올 때 마다 사죄와 함께 꽃병의 물을 갈아주고, 칼린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고는 했다.

갑자기 말을 멈춘 칼린을 돌아보니, 그는 조금 놀란 표정으로 리쿠르트를 바라보고 있었다.

"요나라고 부르시네요?"
"..네? 뭔가 이상한가요?"
리쿠르트의 질문에 칼린이 손까지 휘저으며 대답했다.


"아, 아니, 이상할 건 아니고.. 그냥 리쿠르트 선생님은 항상 '영주'나 '영주님'이라고만 부르면서, 영주님을 되게 안좋게 봤던 기억이 있어서요.."
확실히 그랬었다. 도구처럼 쓰이고 버려진 자신의 가족 사정에 절망하고, 바뀌어버린 요나의 모습에 실망해서 그녀를 이름으로 부르는  조차 꺼려하던 때였다. 그러나 호칭을 바꾼것은 그녀도 자각하면서 바꾼것이 아니었다.


"요나랑 선생님이 화해를 했거든요."
그녀는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칼린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생각해 보면 이것도 칼린 덕분이네요. 정말 고마워요, 칼린. 무슨 말을 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신이 그녀를 다시 인간으로 만들었어요."
칼린은 그게 무슨말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가끔씩 갤러한의 말에서도 느끼던, 자신이 하지 않은 일로 칭찬을 받게 되는 감각. 제일 괴로운 것은 부정조차 못한 다는 것이었다. 그는 이런 일이 생길 때 마다 요나가 대체 그들에게 무슨 거짓말을 한 건지 궁금해 지고는 했다.

"그래서 가면은 뭔가요?"
씁쓸하게 웃으며 가만히 있는 칼린에게 리쿠르트가 되물었다. 칼린은 짧게 '아'하고 소리낸 뒤 다시 말했다.


"네, 그 부대가 내일 예비소집이거든요. 부대원들을 처음으로 만나게 될텐데, 제 외모가 눈에  테니 이 가면을 쓰고 나가시라고.."
그 말을 들은 리쿠르트는 칼린을 천천히 뜯어보고 말했다.


"뭐, 납득은 가는 이유네요."
그렇게 말하고 둘은 동시에 살짝 웃었다.

"그나저나, 칼린은 예비소집 바로 전날까지 저를 만나러 와주시지 않으셨군요. 조금 서운한걸요."
리쿠르트 딴에는 농담으로 한 말이지만, 칼린이 가장 신경쓰던 일 중 하나였다.


훈련을 하면서도 사이 쉬는 시간마다 칼린은 리쿠르트를 만나러 가려고 했었다. 하지만 상태가 안좋으니 아직 만나러 가지 말라는 요나의 만류에 매번 일자를 미루고 있었던 것이다. 출입이 가능했던 것은 의원들과 연인인 갤러한 뿐이었기에, 칼린은 갤러한에게서 소식을 전해 듣는 것으로 버티고 있었다.

이것은 요나가 자신이 얼마나 리쿠르트를 두들겨 팼는지 칼린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서 조작한 일이었다. 갤러한에게도 칼린이 자신때문에 리쿠르트가 그만큼 다친것을 알면 자책할 것이라는 이유로 비밀로 넘겨달라고 말했었다. 갤러한은 그 말을 요나가 하는 것이 심하게 불만족스러웠지만, 어쨌든 받아들였다. 그래서 칼린은 리쿠르트가 얼마나 심하게 당했는지도 모르고 지내왔다.


"갤러한과 둘만의 시간을 가지게 해달라고 요나가.."
칼린이 적당히 에둘러서 말했다. 그리고 그 선택지는 정답이었다. 리쿠르트는 웃으며 칼린의 어깨를 두어번정도 찰싹 때렸다. 이런저런 일이 있었지만, 참으로 오랜만에 선생과 제자가 다시 만나게 되었다. 둘은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누며 쉬는 시간을 보냈다.

#


예비소집은 성의 객실에서 진행되었다. 가장 먼저 도착한 것은 갤러한 일행이었다.

"...난 너네 말고 다른 사람들 껴서 일하는 건 처음인데."
소니아가 그렇게 대화를 열었다.

"뭔가말이야,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우리 넷이 뭉쳐있으려면 우리 넷끼리의 팀명같은 게 필요하지 않을까?"
"..굳이?"
의문을 꺼낸 것은 릴로였다.

"아니, 이 부대는 길어봐야 뭐..1년? 2년?활동할텐데, 우리는 계속 같이 다닐 거 아냐? 그 정도의 선은 구분해 놓는 게 맞는 것 같은데."
릴로도 그 말에 천천히 그 필요성을 생각해 보았다. 사실 파티가 결성된지 6년이 되어가는데도 특별히 팀이름같은게 없었다. 만들어 두는 게 손해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팀릴로?"
"기각."
"사(四)나이들?"
"기각."
"..팀꼴통."
"기각."
뚜렷한 아이디어가 나오고 있지 않았다. 그런 판도를 바꾼 것은, 대충 듣고 있던 갤러한이 한 말이었다.


"팀 원생텀."
"뭐?"
"팀 원생텀. 싸게싸게 다한다고 해서 1생텀. 이거면 앞으로도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야, 무슨.."
"꽤 괜찮지 않아?"
"난 이 주제를 끝낼 수 있다면 뭐든 좋아."
갤러한이 던진 이름이 의외로 과반수의 표를 받게 되었다. 그리하여 팀'원생텀'이 만들어졌다.

"갤러한씨, 센스 좋네요."
들어오며 그런 말을 한 것은 핀이었다. 원생텀이 그를 반겼다.


"여, 붙을  알았다고. 영주가 뭐라하던가?"
"누구처럼 비웃는 짓은 하지 않고, 만나뵙자 마자 능력을 보이라 해서 쉽게 들어왔지요."
"그래서 그날  샀잖아, 핀! 좀 봐달라구."
너스레를 떠는 갤러한을 향해 웃어 보이며, 핀이 빈 자리에 앉았다.


"부대 인원수는   건가요?"
"뭐, 영주님 말로는 그렇다는데."
"혹시 다른 부대원에 대해 들으신 것 있나요? 아직 다섯명이나 남았는데."
"음..한명은 우리 친구..면서 제자같은 거거든. 칼린이라고."
"칼린? 오호? 어떤 분이신가요?"
륑게가 꺼낸 말에 핀이 흥미를 가지자, 릴로가 입을 열었다.

"음청 예뻐. 묘하게 좋은 향기도 나고. 강한 건 솔직히 실력을 본적이 없어서 모르겠는데, 움직이는 거 보면 무슨 훈련을 받긴 한  같더라. 진짜로, 걔를 보면 눈이 뜨일지도 몰라, 핀!"
"오, 그정도 인가요? 꼭 인사를 드려야 겠네요."
"핳하! 너로는 어림도 없어!"
"그런 아름다우신 분들은 장님에게 더 끌릴 수도 있다구요. 우리가 보는 것은 외면이 아니라 내면이니까.."
"그러면 굳이 이쁜 사람을 만날 필요 없는 것 아니야?"
"보석은 과시하기 위함이고, 등불은 남에게 자신을 보이기 위함이라.  그런 것 아니겠어요?"
핀의 자신감 넘치는 발언에 다들 웃음을 참았다. 그리고 핀에게 칼린이 남자라는 사실을 숨기기로 결정하는 데에는 눈빛교환조차 필요 없었다.

"근데 그러면 갤러한씨 일해..원생텀분들 모두 나머지 4분에 대해서는 전혀 못들으신 건가요?"
"뭐, 그렇지. 갤러한은 뭔가 들었을지도? 우리중에 가장 성을 많이 들락거렸으니까."
"아니, 나도 들은게 없어."
다섯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문이 열렸다. 들어온 것은 푸른 머리와 눈을 한, 아직 앳된 기가 남아있는 청년이었다.키는 조금 작은 편이었지만 얼굴은 꽤나 수려한 인상이었다. 허리춤에는 레이피어와 망고쉬를 장비하고 있었다.

방 안을 한번 둘러본 그는 원생텀과 핀이 모여있는 자리에서 최대한 떨어져 앉았다. 그들은 갑작스러운 객에 하던말을 멈췄다.


"..방금 들어오신 분이 칼린이라는 분이신가요?"
"아니? 우리도 모르는 애야. 아직 어려보이는데."
"뭐, 잘생기긴 했네. 얼굴은 합격."
"무기선택 한 거 보면 귀족같은데, 인사나 먼저 해볼까?"
"귀족이라기에는.. 장비선택이 조금 싸구려 아냐?"
"몰락귀족인가보지! 이러고 있을 시간에 통성명이라도  두자고!"
갤러한이 그렇게 말하고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저기,  갤러한이라고 하는ㄷ-"
"꺼져라. 방금 만난 생판 남을 가십거리 주제로 삼는 천박한 자들과 가까워지고 싶지 않군."
갤러한은 그 자세 그대로 뒤돌아 테이블에 돌아왔다. 그리고 말했다.

"몰락귀족이 확실하네, 저새끼는."
"어떻게 아십니까?"
"배배꼬인 말투, 경계심, 대놓고 꼽주는 오만함. 저건 몰락해서 성질버린 귀족이 확실해."
"뭐, 혼자있고 싶은 가 본데 존중해 주자구."
불만스러운 듯 말하는 갤러한과 사람좋은 말을 하는 릴로를 보며 소니아는 머리를 싸맸다.

"이거 벌써 망한  같은데.. 무슨 부대가 이렇게 개성이 쩔어주냐."
"내말이, 다음에 오는 놈은 막 무서운 새끼면 어떡하지?"
륑게가 의자에 기대며 그렇게 말했다.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문이 거세게 발로 걷어 차이며 열렸다. 방 안에 모든 사람, 즉 도르베까지 고개를 돌려 문을 바라 보았다.

붉은 머리와 눈, 마치 도르베의 인상을 그대로 뒤집은 듯한 사람이었다.  키에 노출부가 많은 갑옷, 매서운 인상을 하고 있는 여성이었다. 그녀의 삼백안에서는 위압감이 마치 불길처럼 일렁이고 있었다.

"저, 저거.."
갤러한이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금 들어온 그녀도 방 안을 한번 훑다가 마주한 갤러한을 보고, 그 일행들을 하나씩 확인한 후 반가운 듯 웃음을 지었다.

"이야~ 갤러한 아냐!"
"야! 라진! 살아있었냐!"
갤러한을 따라서, 다른 원생텀의 일원들도 하나씩 일어나며 아는 척을 하기 시작했다.
"뭐야, 너 전쟁때 부터 소식이 뜸하길래 죽은줄 알았어!"
"미친년 이거 갑옷은 그대로네."
"'꼬맹이 아스타'가 이렇게 컸다고?"
원생텀은 의자를 하나 끌어와 그녀를 합석시켰다.

"당신이 칼린이신가요?"
그 질문에 아스타는 멍하니 그를 바라보다가 릴로에게 물었다.

"여기 다짜고짜 사람한테 남창이냐 묻는 장님은 너네 친구?"
"야, 그냥 장님이 아니야. 아, 그리고 너한테 딱히 남창이냐 물어본 것도 아니고.."
릴로가 그렇게 말하며 핀에게 다가갔다.


"핀, 이쪽은 아스타 라진이야. 옛날에 한번 우리랑 같이 다녔었지. 아스타, 이쪽은 핀이야. 장님인데 마법인지 자기개발인지, 눈감고도 네 빤쓰 갯수까지 맞출수도 있는 놈이지. 아, 그러고 보니 아스타 너는 소니아는 모르겠구나?"
핀과 가볍게 서로 인사한 후, 아스타는 소니아쪽을 돌아 보았다.

소니아는 아스타와 헤어진 후에 만나게  일행이다. 그래서 소니아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와서 조금 알지만, 아스타는 소니아에 대해 잘 모른다.


"반가워요. 이야기는 많이 들었어요."
"뭐라고 이야기하든?"
"술버릇이 굉장하다고..."
"핫하! 똑바로 소개해 줬구만. 아스타다, 잘부탁해."
"자, 뉴페이스랑 인사는 그쯤하고-"
륑게가 둘의 악수하는  위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어떻게 살아왔는지 이야기나 들어볼까?"
아무것도 모르는 핀을 제외한 모두가 그녀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그녀는 분위기를 읽고 의자에 기대서 말했다.

"뭐, 쉽게는 못살았지. 나랏님 말 따라서 탈영병 잡는 일이나 시체처리, 미등록 마법사들 잡아 죽이고 다녔어. 그러고 다니니까 '붉은눈' 아스타라는 별명도 생겼고."
그녀의 말에 뒷쪽에서 덜컹, 하는 소리가 울렸다. 도르베가  소리였다.

"저놈은 누구야?"
"우리도 몰라. 혼자있고 싶어 하는  같으니까 괜히 건드리지 말자고."
릴로의 말에 아스타도 한번 뒤를 돌아보고는 별 관심 없다는 듯 넘겼다.


"이야, 그런데 너네도  부대에 지원을 넣었을 줄이야.  웃긴 모집서보고 온거 맞지?"
"무슨 지원서, 우린 그냥 갤러한이 넣어서 딸려 왔어."
"뭐야, 그래? 갤러한, 넌 지원서보고 넣은 거 맞지?"
"...사실 이 영지에 머물고 있었는데, 영주가 제안해 와서 말이야. 개설멤버같은거지."
아스타가 놀라며 말했다.


"와, 그럼 여기서 그 모집서를 본 사람이 없다고? 진짜 걸작인데, 그걸 놓치네 너네!  그거 만든새끼 얼굴 보고싶어서 왔다니까?"
그 말에 뒤에서 한번  덜컹소리가 났다.

"뭐야, 저새끼 조금 성가시네.."
"우리 이야기 듣고 있는 거 아니냐?"
그런 이야기를 하는  한명이  들어왔다.


전신을 가리는 너덜거리는 하이넥 코트, 한번 젖은 듯한 구불거리는 장발, 깎지 않은 수염에 전체적으로 색이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마치 알몸으로 불길함만을 걸치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그런 느낌은 아니었지만, 그 존재 자체가 악운같이 느껴졌다. 차갑고 축축한 파충류가  위를 지나갈 때 느끼는 본능적인 거부감- 그걸 형상화 시킨듯한 남자였다.


"...라드. 네가 여기에 왜 왔지?"
갤러한은 적의를 숨기지 않으며 물었다. 그러자 그는 갈라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있었나, 갤러한. 오랜만이군."
그리고 륑게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반인반마(半人半馬)'륑게. 아직 다들 같이 다니나 보군."
륑게는 조용히 그의 시선을 받고 있었다. 겉으로는 침착해 보였지만 꽉 쥐고 있는 왼손에서 빛이 조금씩 흘러 나오고 있었다.

"뭐, 딱히 너네를 쫓아 오거나 한 것은 아니다. 우리 일은 그 때로 끝난 거야. 서로 마음 가지지 말자구. 이제는 같은 부대니까 잘 지내 보지."
그는 그렇게 말하며 마르고 길게 뻗은 손을 내밀었다. 갤러한은 검을 가까이에 대며  걸음 물러났다.


"네 악수를 받으라니, 날 머저리로 보는 건가? 라드."
라드는 살짝 웃으며 손을 거두었다. 그리고 뒷걸음으로 근처 의자에 앉아 말했다.


"이봐, 이제 적도 아닌데 그러지 말자구. 그때는 우리 이해관계가 안맞아서 부딪혔을 뿐이지, 내가 나쁜새끼여서 그랬던 게 아니야."
그리고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아니면 나같은 선량한 떠돌이는 안끼워주고 저기 범죄자 년이랑만 노는 이유라도 있나?"
그 말에 갤러한은 바로 단검을 던지려 했으나, 아스타가 막아섰다. 그리고 앉아있는 그를 향해 다가갔다.

"...내가 널 아나?"
"모르겠는걸, 명함필요해?"
"나에 대해서 어떻게 알지?"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걸? 범죄자년 이야기라면, 내가 귀신이 보인다고  해줬던가?"
"...원하는 대답이 없는 혓바닥은 필요가 없지. 네 그 생각덮개랑 작별인사할 준비 해라."
"아이코, 진짜 무섭네, 이거."
둘 사이에 분위기가 짙어졌다. 그리고 그 사이에 당당히 끼어드는 사람이 있었다.

"미치겠군. 범죄자에 장님까지 있는 부대라니. 다음에 들어올 자는 말하는 코끼리라도 되나? 길을 비켜, 나가야 겠다."
도르베였다. 그런 그의 말에 아스타의 목에 핏대가 섰다.


"어이 오빠야, 얼굴이 타입이 아니었으면 이미 쥐어터졌을 건데, 얌전히 자리로 돌아가."
"말이 안통하는군. 힘으로 뚫고 지나가야 하는가?"
그렇게 말하며 검을 뽑는 그를 보며, 앉아있던 라드가 말했다.

"오, 생각보다 '겁쟁이'는 아니신걸?"
도르베의 표정도 바꼈다. 반대쪽손에도 검을 잡아 교차시키며 그는 전투분비를 끝냈다.

"부대가 쾌적해 지겠군. 사실 10명이 너무 많다 생각했어."
"오빠야, 지금 빼면 살려 줄게."
"둘다 왜이리 나를 싫어하는 지 몰라."
셋이 대치하고 있었다. 갤러한과 륑게는 아스타를 지원할 준비를 끝내고 있었고, 릴로와 소니아, 핀은 휘말리지 않게 테이블 뒤로 숨어 있었다.  때 였다.

"셋 다 그만두세요."
머리속에 직접 울리는 듯한 깔끔한 목소리였다.

"방금 말한 사람이 칼린.."
릴로가 핀에게 말을 하며 그 목소리의 방향으로 돌아 보았다. 거기에는 가면을 쓴 정장입은 남자가 있었다.

"..일껄?"
"껄, 이요?"
되묻는 핀을 누르고 릴로는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같은 부대가 될 분들입니다. 에비소집부터 분쟁이 일어나다니, 말도 안돼요. 다들 다시 자리로 착석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말하는 오빠야는 누구지?"
아스타의 질문에 가면 쓴 남자가 말했다.


"이 부대에 요나님의 지시로 참여하게 된 칼린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 드립니다."
"그 가면은 뭐냐?"
어이가 없어서 긴장감도 잃은 륑게가 질문했다. 칼린은 조금 부끄러운 듯 가면 위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영주님이 얼굴을 가릴 필요가 있을 것 같다고..."
"아.."
원생텀 전원이 그런 소리를 냈다. 확실히 그럴 필요가 있을 것 같긴 했다.

아스타는 누그러진 상황에 검을 잡은 손을 풀고 등을 돌려 일행에게 돌아갔다. 도르베는 그런 그녀의 뒷통수를 노려보다가, 고개를 돌려 칼린을 마주했다.
"반갑다. 모집문을 보고 이 부대에 참가하게  아라드 베일  도르베라고 한다. 당신은 여기 모인 천박한 자들과는 다른  같군."

도르베가 그렇게 말하며 칼린에게 손을 내밀었다. 팀 생텀과 핀, 아스타가 어이가 없다는 듯 그를 쳐다 보았다. 칼린은 악수를 받으며 대답했다.


"반갑습니다, 칼린이라고 합니다. 그 모집문은 제가 만들었습니다."
"그런가! 그럴 것 같았다! 칼린, 좋은 이름이군! 부디 편하게 말을 놓았으면 좋겠네."
"네가  모집문을 만든 놈이라고?"
아스타가 반응하여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할 때,  방문이 열렸다. 이번에 들어온 것은 요나였다.

"제군들, 착석해 주겠나. 슬슬 시간이니까 말이야. 인원은 전부 모였나?"
착석하고 있는 그들을 보며 인원수를 재던 요나는 한명이 부족한 것을 깨달았다.


"아직 한명이 안왔나. 뭐, 그럼 일단 예비모집을-"
"잠깐!"
문이 열리며 마지막 인원이 들어왔다. 은빛 단발에 검은 눈, 전신 갑옷을 입고 있는 여성이었다. 내리쳐진 눈매에 눈물점이 매혹적으로 보였다. 그녀는 잠깐 문에 손을 대고 숨을 고르다가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그리고 늠름한 미소로 영주를 돌아보며 덧붙였다.

"성이 넓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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