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0화 〉전후(戰後)복구부대 (20/164)



〈 20화 〉전후(戰後)복구부대

"여, 리쿠르트."
갤러한이 방에 들어가며 인사했다. 리쿠르트는 앉은 자세에서 책을 보고 있다가, 고개를 돌려 반갑게 인사했다.

"갤러한, 오늘도 와주셨군요."
그는 옆에 놓인 의자를 끌어 앉으며 리쿠르트에게 자루를 건냈다. 그 안에는 유리병이 하나 들어있었다.

"많이 좋아보여. 이건 괜히 산걸까?"
그가 가져온 것은 떠돌이 주술사에게서  포션이었다. 한병에 100생텀정도로 거래되는, 민간인은 구경도 하기 힘든 소모품이었다. 리쿠르트는 책을 놓고 놀라서 조심스럽게 두 손으로  포션을 받아냈다.

"맙소사. 직접 만드신 거에요?"
"엉? 그래야 감동하나? 아는 주술사한테 싸게 산건뎅.."
능글맞게 웃는 갤러한을 바라보던 리쿠르트는 거기에 미소로 응대했다. 갤러한은 그것만으로도 100생텀 값은 전부 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빨은 어때?"
리쿠르트는 그 질문에 대답 대신 입을 조금 벌리고 손가락으로 넓혔다. 안쪽에 여기저기 빠졌던 이빨들이 다시 가지런하게 채워져 있었다.


"요나가 왕도에서 직접 치의사들을 불러줘서 메워줬어요. 곧 있으면 다시 돌아다닐 수도 있을 거예요."
갤러한은 그렇게 말하며 사람좋게 웃는 그녀가 마음 아팠다. 자신을 그렇게 무자비하게 두들겨 팬 요나를 그렇게 쉽게 용서한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요나라고 부르는 건가.'
무엇보다 그녀를 그렇게 만들어 놓은 후에 응어리가 풀렸다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자신의 사랑의 친구이고 영주이기에 불손한 생각을 가지는 것은 해서는 안될 일이었지만, 그는 요나에 대해서는 정이 가지 않았다.


"갤러한. 그래서 말인데..."
"응?"
리쿠르트는 정말 미안하다는 듯 고개를 숙이고 말을  잇고 있었다. 그녀는 그렇게 망설이면 결국 뒤늦은 선택과 후회로 이어지게 될 것을 안다. 그래서 용기를 쥐어 짜냈다.

"당신은 떠돌이니까, 언제 여기를 떠날 지 모르니까."
그녀는 두려움과 아쉬움을 멋쩍은 표정으로 감추려고 했다. 그런 게 불가능 하단 것은 그녀와  둘다 잘 알고 있었다.

"이게 얼마나 민폐인지 알아요. 당신에게 저는 그저 한순간의 정착지겠지만-"
그녀는 포션을 조금 만지작거리다가 떠듬떠듬 말했다.


"금방 나을테니까, 제가 전부 나으면 다시 데이트하죠. 눈치 좋은 제자는 빼고 둘이서만."
마치 햇살처럼 웃으며 그렇게 말한 그녀를 보면서, 갤러한은 그녀가  말을 하기 위해 얼마나 용기를 냈는 지  수 있었다. 강한 사람이다. 분명 남의 짐덩이가 되고 싶지는 않으리라. 그런 그녀가 자신의 욕심을 타인에게 정면으로 드러낸 다는 것은 분명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래서 갤러한은 다음말을 꺼내는 것이 힘들었다.

"저기...리쿠르트."
"...역시 힘드실까요. 그러면 그냥 지나가는 여자의 넋두리 정도로 받아 넘겨 주세요."
그 목소리에서 리쿠르트는 이미 알 수 있었다. 그의 대답이 흔쾌한 승낙이 아닐 것이라는 것은 물보듯 훤했다. 그렇다면 적어도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에 짐이 되지는 않도록 확실하게 정리해야 했다.


"아니. 그게 아니라... 나 한동안은 벨카에 있게 될거야..."
"네?"


#


"갤러한씨 일행도 부대에 전원 참가하는 거군요."
"아. 이제 부대원은 너 포함 다섯명정도 모인거지. 소집기간은 삼주일정도가 남았고, 벌써 반은 채웠어. 순조롭군."
마차에서 칼린과 요나는 그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럼 왕도에서도 인재를 찾으실 건가요?"
"칼린, 귀여운 질문이구나. 왕도 거주자들이 뭐가 아쉬워서 이런 부대로 오겠니."
최근에 요나는 칼린에게 말투가 부드러워 졌다. 평소 군대에서 통용될 단어들과 말투를 사용하는 요나에게는 이질적인 일이었다.


칼린은 요나의 말에 잠깐 생각하다가 다시  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요나는 그가 약간 떨고 있는 것을 보았다.

"불안하니?"
그녀는 그의 불안함을 이해할 수 있었다. 마나 적성을 확인하고 윌레인의 국민으로서 등록되는 날이다. 갖가지 걱정이 떠오르리라.

물론 그 걱정의 원인을 요나만이 알고 있다는 것이 그녀에게는 상당한 쾌감이었다.


"잘... 잘 모르겠어요. 그렇게 검사하다가 제가 다르다는 것을 모두가 눈치채게 되면 어떡하죠? 아니면 제가 왕도에서 무슨 실수라도 하면 어쩌죠? 제가 이 세상에 정식으로 받아들여질 준비가 되어있나요?"
그런 칼린의 말에 요나는 잠깐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마나 적성의 확인은 단순한 마나양의 확인 작업이다. 그런 마법 능력을 가진 자들이 일하는 곳이야.  작업을 통해 자신의 마법 능력과 마나량이 확인되지 않으면 국민으로서 등록조차 되지 않아. 그런 필수적인 곳이면서 윌레인  전체를 통틀어도 7곳밖에 없지. 때문에 매해마다 찾아오는 사람들로 넘친단다. 마법은 언제 개방될지 모르는 거니까."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옆에 있는 담요를 끌어당겨 왔다.


"즉, 마나의 양과 마법적성정도만 확인하고,  이상은 확인할 겨를도 이유도 없다는 거다. 언제까지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외국인이 입대를 하려면 먼저 국민으로 등록이 되어야 하거든. 평생 숨어있을 수는 없으니까 말이야. 그렇지, 칼린?"
그리고 낮게 일어나서 칼린에게 담요를 덮어주었다.

"무엇보다도, 천지가 개벽할 확률로 일이 꼬이게 된다면, 그때는 내가 평생동안이라도 숨겨주마. 그러니까 안심하고 가만히 창 밖이나 구경하고 있으렴.  왕도의 건물들이 보일거다."
칼린은 담요를 받고  아래까지 끌어 올렸다. 그리고 그의 영주를 향해 한번 웃어 보이고서 창 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말대로 왕도의 건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가장 돋보이는 것은 높은 탑이었다. 솟아올라있는 탑은 주변의 모든 건물들 중 외롭게 홀로 서있었다. 그리고  탑을 중심으로 마치 풍경들이 아지랑이처럼 이글거리고 있었다.

그가 신기한 듯이 창 밖에서 고개를 못집어 넣고 있자, 요나는 그 뒷모습을 보고 조금 웃으며 질문했다.

"칼린, 저 건물이 뭐하는 건물같으냐?"
압도적인 청력 덕분에 그는 창 밖에서도 영주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는 바로 고개를 마차에 돌려놓고 떠올린 대로 말했다.

"도서관 아닐까요?"
그 말에 요나는 참을  없다는 듯 크게 웃었다. 한바탕 웃고 난 뒤 그녀는 눈을 비비며 말했다.

"아하, 아하하하... 웃어서 미안하군. 그렇지만 저기를 도서관으로 사용하는 것은 사서들에게 조금 너무하다고 생각하지 않나?"
생각의 짧음이 부끄러워 얼굴이 붉어졌지만, 동시에 요나가 웃는 것을 보게 돼서 꽤 만족스러워진 칼린이었다. 그래서 그는 한번  너스레를 떨었다.


"뭐, 날아다니는 마법을 가진 사람들만 일하는 그런 곳이라고 생각했죠, 저는."
요나는 그 농담조차 아닌 말이 뭐가 그렇게 웃긴지 다시 한참을 웃었다. 그리고 만족스러워 하는 칼린의 얼굴에 대고 말을 시작했다.

"저건 뭐, 그래. 왕도 안에서 마법 피해를 최소화시키는 결계탑이다. 윌레인 최초의 국왕의 마법이었지. 그의 마법은 주변의 마법화력을 저하시키거나 무력화시키는 것까지 가능했어. 그 능력을 기반으로 바로 저 곳, 저 지점으로 시작해서 정복활동을 벌였고, 윌레인 왕국이 탄생했지. 활발한 정복활동 중에도 그는 저 탑을 계속해서 쌓아 나갔었다. 여기저기에서 재료들을 가져오면서, 최상에는 마정석만으로 방을 만들었지.
그리고 자신의 후계자를 결정하자 마자, 그는 완공된 탑의 꼭대기, 즉 마정석의 방에 들어가서 자신의 마법을 사용했다. 약 세달정도 식음전폐를 하며 마법만 사용하던 그는 결국 그 안에서 죽었고, 마정석에는 그의 마법이 거의 완벽하게 등록되었지. 푸른색 막같은 것이 보일텐데, 그게 전부다 거기에서 나오는 결계인거다. 그의 마나 효율까지 등록돼서 최저의 마나소비로도 결계가 유지되지."
그 말에 칼린은 마정석이 무엇인지 물어보려고 하다가 이상한 점을 눈치챘다.

"푸른색 막이요?"
"? 그래."
그의 눈에는 그저 아지랑이같은 투명한 막이 보일 뿐이다. 특정한 색이 있는  보다는 비눗방울처럼 보였다.

"저에게는 그냥 아지랑이처럼 보이는데... 푸른색이라는 것이 그냥 투명하다는 건가요?"
그 말에 요나는 조금 심각한 표정을 짓고서는 마부에게 물었다.

"마부여, 왕도의 결계는 무슨색이지?"
그 질문에 마부는 무슨 질문이 그러냐는  고개를 돌려 영주를 바라보다가, 사투리가 섞인 억양으로 대답했다.

"거, 파란색 아닙니까?"
그 말에 마차 안은 조용해 졌다. 칼린은 다시한번 두려움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설마 도시에 들어가기도 전에 이런 차이를 느끼게 되어 버릴줄은 몰랐다. 하지만 요나는 그가 좌절하게 두지 않았다.

"넌 나랑 있다. 내가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어. 모든 것을 나에게 확인해 보고 행동해라. 내가 너를 인간으로 이끌어주마."
다시 멍해지려는 칼린의 어깨를 붙잡고 마치 정신을 되돌리려는  뚜렷한 목소리로 요나가 말했다.


칼린의 멍한 머리 속에서 그녀가 하는 말이 울리듯 퍼졌다. 조금씩 되뇌어지는 그 말은 강경했지만 따뜻했다.


"영주님은 저에게 왜 그렇게 잘 대해 주시는거죠?"
좌절한 듯 내뱉은  말에, 요나는 웃으며 답했다.

"멍청한 질문이다, '나의'괴물아."

#

왕도는 거대한 곳이었다. 크기도 크기지만, 거리의 규모가 그랬다. 사람들로 가득 차있었으며 넓은 도로에는 마차들이 여기저기로 가로질러 다녔고, 지브리 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날아다니는 기구들도 사이사이에 보였다.

신기한 듯 두리번거리는 칼린을 두고 영주는 마부에게 돈을 주고 있었다. 왕도까지 가는 비용으로 주기에는 과한 돈이었다.

"정말  한마디로 이만큼이나 주시는 겁니까?"
마부가 믿을 수 없다는  되묻자, 요나는  마부의 귀에 대고 작게 말했다.

"말 한마디는 천금같은 법이지... 작은 거짓말로 이정도의 보너스도 받을  있는 반면에-"
그리고 자신의 검자루로 마부의 배를 살짝 눌렀다.


"새어나가는 말 한마디로는 남은 평생을 잃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잠깐을 그렇게 있던 요나는 곧 마부에게서 떨어져 등을 돌렸다.


"영주로서의 조언이네. 그럼."
그리고 다시 칼린에게로 돌아갔다. 마부는 받은 돈자루를 가만히 지켜보다가, 아주 독한 술이 필요할  같다고 느끼고 빠르게 근처 술집을 찾아 들어갔다.

#

"여기가 마법 등록원인가요?"
요나와 칼린이 멈춰 선 곳은 거대한 황동색  앞이었다. 이곳 저곳에 구릿빛을 띄는 파이프들이 연결되어 있고, 위쪽에서는 계속해서 김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문 옆쪽에는 레버와 함께 간단한 다이얼이 달려 있었다.


"그래. 거기 레버를 당겨라."
칼린이 레버를 당기자, 김과 함께 4자리 수까지 있던 레버의 1의 자리수가 돌아갔다. 그리고 위에 있던 작은 틈새에서 다이얼의 번호가 인쇄된 종이가 나왔다.

동시에,  황동색의 문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다. 양 옆의 거대한 톱니바퀴가 돌아가면서 체인을 감아올리기 시작했다.  사이에 엮여있던 두꺼운 기둥들이 들어가면서 자동으로 문이 열렸다. 파이프의 틈에서 따뜻한 물이 조금씩 흘러  나왔다.

칼린은 감탄하며 번호가 적힌 종이를 뽑아냈다.


"번호표를 뽑으면 문이 열리는 거군요!"
"뭐, 그렇지."
"멋지네요!"
"그런가? 나는  모르겠군."
"근데 이거, 문 열리는 속도가 느린데 대기하는 사람이 많으면 어떻게 되는 건가요?"
"아. 사실 번호표랑 문은 따로 움직이는 거다. 손님이 많으면 문은 열어두고 번호표만 뽑아서 들어오게 해."
"멋지네요!"
"그런가?"
칼린의 감탄은 진심이었다. 전자식이 아닌 기계식 장치들이 그의 소년심을 자극했다. 왠지 텐션이 올라간 칼린을 보며 요나는 살짝 이해할  없다는 감각을 느꼈다.

시설의 안쪽도 문을 보는 곳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여기저기에 파이프가 이어져 있었으며, 프론트 데스크의 위쪽에는 거대하고 화려한 시계가 있었다. 총 13명이 가로로 늘어져 앉아있는 프론트는 각 한명마다 줄로 구간을 나눠두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자리마다 종이 4장이 돌아가면서 숫자를 바꾸는 식의, 점수판같은 대기번호 기계가 있었다.

"8번 손님."
칼린이었다. 요나와 칼린은 담당 프론트를 향해 걸어갔다.


"무슨일로 오셨습니까?"
"아, 마나 적성을 좀..."
"마지막으로 확인하신 것은 언제이십니까?"
"그게, 그.. 처음입니다."
직원은 미심쩍은 표정으로 안경을 고쳐쓴 후, 서랍에서 종이를 꺼냈다. 행동 방침에 대한 종이었다.


"에... 미등록 마법사 자진신고로 오신겁니까?"
"아뇨, 그게.."
"그는 전쟁중 제가 거둔 외국인입니다. 이번에 우리 부대에 넣고 싶어서 이렇게 적성을 확인하러 온 겁니다."
보다못한 요나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 직원은 요나에게 시선을 돌리고 다시 한 번 방침서를 확인했다.


"어.. 보호자분은 신원정보가?"
"요나, 벨카의 영주입니다."
 직원은 그말에 눈썹을 치켜올렸다.

"'벨카의 전차'요나 말입니까?"
"아, 그런 별명이 있었죠."
직원은 지침서를 옆으로 치우고 프론트의 길을 열었다.


"충성, 만나뵈어서 영광입니다. 당신은 우리 왕국의 자랑입니다."
180도 달라진 직원의 태도에 칼린이 당황해서 물었다.

"다른 거 확인 할 건 없나요? 아직 후드도 벗지 않았는데..."
"요나님의 동행인이라면 괜찮습니다. 안쪽에 검사원분들이 계시니 들어가서 바로 받으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요나는 그렇게 말하고서 칼린을 잡고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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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진 공간은  형태의 큰 홀이었다. 얼굴이 비칠정도로 깨끗한 대리석 바닥에, 비슷한 정도로 투명하고 깔끔하게 깎인 대리석 책상이 있었다. 그리고 그 맞은편에 안경쓴 남성이 앉아있었다.

"앉으시죠."
칼린은 그 말을 듣고 요나의 눈치를 보며 어색하게 앉았다. 맞은 편의 남성이 질문했다.

"이제부터 제가 하는 질문에 일체의 거짓이라도 있을 경우 '비등록 마법사 관련 규율'에 의거 처벌이 가능하며, 모든 대화는 녹음됩니다. 확인하셨습니까?"
전부 생소한 단어였지만, 요나의 눈치를 보며 어떻게든 대답할 수 있었다.


"네."
"최근 복용하신 약물중 도핑약, 마관확장제, 수면제 등의 약물이나 비등록 약물을 섭취하신 적이 있으십니까?"
"아니요."
"근 일주일 사이에 '다미스 산'이나 바다 수영을 간 적이 있습니까?"
"아니요."
"확인되었습니다. 그러면 바로 검사를 진행하겠습니다."
칼린이 뭐라고 대답 하기도 전에 자리에서 일어난 그 남자는, 칼린의 후드 위로 손을 올리고 눈을 감았다. 잠시 뒤, 그는 손을 떼고 서랍에서 먹지가 붙은 서류를 한장 꺼냈다.

"본 서류에 정보를 기재해 주세요."
"아, 그건 제가 하겠습니다."
요나가 칼린을 대신해 그의 정보를 기입하자,  남성은 서류가 잘 복사되었는지 확인하고 한장을 칼린에게 밀어 건내 주었다.


이후 서랍에서 작은 플라스틱 카드를 하나 꺼내 스티커를 붙인 그는,  카드도 칼린에게 밀어 건내 주었다.


"윌레인 왕국 마나 측정량 등급제를 기준으로, 칼린님의 마나량은 4등급에 해당됩니다. 이는 10명  4번째로 많은 마나량에 속하는 정도의 양입니다."
칼린은 조심스럽게 그 종이와 카드를 받았다.


"그 서류와 카드를 들고 가셔서 주민등록을 하시면 됩니다."
칼린은 모든 일이 너무 빠르게 지나가서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벙하게 서류와 카드를 들고있는 칼린을 가만히 보던 남자가 다시 말했다.

"이제 가셔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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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에 주민등록작업도 비슷한 절차로 이어졌다. 전쟁 직후라 몰려있는 대기순번을 약 2시간정도 기다리고서,  15분 정도의 과정을 거치고 서류가 발급되었다. 주민증은 일주일 후 배송된다는 말도 들었다.


"간단한 일이라고 말했지않느냐."
김이  새버린 칼린을 위로하듯 요나가 말했다.


"뭐, 다행이기는 하지만요.,."
칼린은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조금 떨궜다. 그 둘은 어색하게 서있다가,  다 그냥 돌아가기에는 아쉬워 하고 있음을 눈치챘다. 그리고 요나는 할일을 떠올리기 까지 했다.


"뭐, 시간도 남았다. 네가 왕도에서 인재를 찾겠느냐고 물었었지. 부대 홍보를 해보자꾸나."
"...어떻게요?"
요나는 조금 웃고서 칼린을 어딘가로 안내했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작은 상가형의 건물이었다.

"여기는 뭐하는 곳이죠?"
"뭐, 한번 봐라."
칼린이 그 문을 열자, 그 안에는 인쇄소가 있었다. 안은 인쇄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와 타자기의 소리로 소란스러웠다. 고무재질의 바닥에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 여기저기에서 타자기를 사용하는 모습이 칼린에게 익숙한 공장을 보는 듯 했다.


"여기서 직접 홍보물을 만들 수 있다."
그렇게 말하며 요나는 카운터에 돈을 내고 열쇠를 받아냈다.

그곳의 타자기들은 특이한 구조였는데, 자음과 모음이 도합 40개인 언어체계로 전상민이 알던 타자기보다 훨씬 오밀조밀하게 보였다. 자음과 모음은 양쪽으로 분리되어 따로 있었으며, 오른손으로 자음을 치고 왼손으로 모음을 치는 구조 같았다. 타자기의 앞에는 큰 철판이 있었는데, 작게 여러 구멍이 뚫려 있고 그 안에 작은 검정색 공들이 하나씩 들어 있었다.

요나가 타자기에 열쇠를 꽂아 넣자 그 공들이 전부 반바퀴 돌아 휜색이 되었다. 보아하니 그 공 하나하나에 글자가 적히며 글을 확인하는 형태인 듯 했다.


"홍보문구는 맡기마, 칼린."
흥분해서 그걸 바라보고 있던 칼린에게, 요나가 타자기를 넘겼다,


"절대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칼린은 자신이 인상깊게 봤던 구인광고글이 있다. 그걸 참고해서 글을 쓰기로 했다.


#


"부대원 구함. 위험한 여행, 많은 봉급, 끔찍한 작업들, 항시적인 위험, 안전복귀 장담 못함, 단 성공만 하면 명예를 얻고, 자신을 뛰어넘을 수 있음."
붉은 빛이 감도는 머리색의 여성이 술집 게시판에 달린 글을 보고 있었다.

"누가 구인을 이딴식으로 해."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들고있던 닭다리를 한입 베어 물었다.  때 뒤에서 떠돌이 네명정도가 말을 걸어 왔다.


"거기 누님, 질문하나 해도 될까?"
그녀는 뒤를 돌아 보았다. 머리색과 비슷한 붉은 빛이 감도는 눈빛. 망토 아래로 보이는 관절부가 노출된 경갑옷은 그녀가 전사는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물어봐바."
약간 낮은, 허스키한 목소리. 그녀의 당돌한 말투에 질문한 남성이 일행을 향해 한번 웃어보이고 말한다.


"글쎄, 내가 누님이 먹고있는 거랑 비슷한 음식을 주문했었단 말이야. 근데 기다려도 안나오길래 주인장한테 물어보니까, 붉은 머리를 한 눈나가 대신 받아갔다네? 머리색이 똑같길래 닭다리 도둑년이랑 아는 사람인가 하고 말걸어봤어."
그렇게 말하면서 그는 끼고있던 아대를 고쳐꼈다. 다른 떠돌이 일행들은 테이블에 앉아 웃고 있었다.


"...글쎄? 딱히 떠오르는 사람은 없네? 근데 분명 존나 멋진 눈나일  같은데 닭다리 하나정도는 잊고 넘기는게 좋을 것 같은걸?"
그녀는 닭다리를 계속 뜯어 먹으며 그렇게 말했다. 떠돌이 남성의 표정이 험해졌다. 그에 비해 테이블에 대기하던 한 남성의 표정이 급속도로 얼어갔다.

"야 무슨일인데."
그의 일행이 묻자, 표정이 얼어붙은 남자가 떠듬떠듬 대답했다.

"야, 우리 저새끼 데리고 튀어야돼."
"뭔데 병신아"
"저사람... 그거다. 혹시나 했는데 오른손가락이 6개에 붉은머리, 확실해."

떠돌이 남성이 붉은머리에게 덤벼들었다.


"저년, '붉은눈 아스타'야, 확실해,"
테이블에서 구경하고 있던 일행들이 단체로 사색이 되어 자신의 무모한 일행을 구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었다.

그녀는 그 자리에서 닭다리를 깨물어 부셨다. 그리고 뾰족하게 뜯긴 닭뼈를 덤벼드는 남성의 팔꿈치 안쪽에 박았다.


"아악!"
고통에 동작을 멈춘 남성의 무릎을 안쪽으로 차내 앉힌 그녀는 그상태로 그의 얼굴에 무릎을 박아 넣었다. 남성은 비명조차 못지르고 기절했다.


"붉은머리한 눈나가 너네들 것도 먹었니?"
그녀가 남은 일행에게 그렇게 묻자, 그들은 다친 동료를 데리고 술집을 나왔다. 그녀는 그 장면을 바라보다가, 손가락을 몇번 핥고 다시 광고문을 보았다.

"웃기긴 하네."
그리고 그걸 뜯어갔다.


'뭐, 일도 없었고. 광고 만든놈 얼굴이나 한번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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