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8화 〉에필로그 (18/164)



〈 18화 〉에필로그

"슬슬 30분이 되어간다. 위병이 지금까지 안 온 것도 기적이야."
륑게가 그렇게 말하며 짐을 둘러멨다. 릴로는 이미 말 위에 있었고, 소니아도 다시 말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가만히 서서 기다리는 것은 갤러한 뿐이었다.

"야 잠깐만."
소니아가 귀에 손을 대며 모두를 조용히 시켰다. 그녀의 마법은 개인간 통신 마법으로, 연결된 상대와 1대1통화가 가능했다. 지금 그녀와 연결되어 있는 것은 그들이 숙박했던 여관의 주인이었다.


소니아는 귀에 손을 대고 작게 대화하다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모두를 돌아 보았다.

"마을의 위병들이 물러가고 있다는데... 오해가 있었다고, 추적령을 전부 해제한다고 방송 중이래."
그렇게 말하고서 소니아가 갤러한의 눈치를 보았다. 갤러한은 씹는 담배를 꺼내 물었다. 지금이 그의 선택의 시간이었다.

'칼린, 잡혔는가.'
성으로 돌아가서 거기 있을 둘을, 힘들다면 리쿠르트 한명이라도 구하러  지, 이대로 도망칠 지의 선택지다.


한쪽은 무모하고 얻는 것도 없다. 오히려 실패했을 때 잃을 것만 있다. 반대쪽은 똑같이 얻는 것은 없지만, 잃는 것도 없고 편하다. 어느 쪽이 똑똑한 선택일지는 뻔하다.


"얘들아!"
그는 그렇게 말하며 일행을 돌아보았다.


"다녀올게."
내가 똑똑했으면 떠돌이는 하지 않았겠지.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자신의 선택을 굳혔다.

#


리쿠르트는 성의 지하 감옥에 있었다. 교육직에 임하는 그녀는 고통에 익숙한 편은 아니었다. 그녀는 차가운 지하감옥의 바닥에서 여기저기 욱신거려오는 아픔에 몸부림치고 있었다.

그렇게 괴로워하는 그녀의 귀에 누군가의 발걸음이 울려왔다. 뒤이어 간수의 경례소리도 들려왔다. 그녀는 자신에게 영주가 찾아왔음을 알아채고 흠칫 떨었다. 하지만 더이상 겁쟁이로 남지 않겠다는 각오를 떠올리며 그녀를 마주했다.

한쪽 눈의 붓기 때문에 잘 보이는 않았지만, 영주는 약 1시간 전보다 수척해 보였다. 표정은 평소와 같은 무표정이었지만 더이상 광기와 착각될 정도의 분노는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 기분이 좋아 보이기도 했다.


그녀의 양 뒤에는 전신을 덮은 로브를 입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초승달 모양으로 웃음짓는 것처럼 뚫린 입가를 철사로 엮어 이어 놓은 듯한 가면을 끼고 있었다.  틈새 옆으로 우겨 넣었다가 빠져나온 듯한 정화통이 있는 것을 보면, 방독면의 일종인 듯했다.


리쿠르트는 그 복장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알고 있다. 요나가 데리고 온 것은 의사들이었다.


요나의 신호에 의사들은 감방으로 들어가 리쿠르트의 몸을 여기저기 살펴보다가, 먼저 갈비뼈에 손을 댔다. 그들의 손에서 빛이 나옴에 따라 몸의 통증이 서서히 약해졌다.

"진통마법이다. 아프지는 않겠지만, 움직이지 않는 것을 추천하지."
뒤이어 여기저기에 손이 닿으며 진통마법을 받고 있는 리쿠르트에게, 감방 너머의 요나가 그렇게 말했다.


어느정도 전신에 마법을 받고 나자 리쿠르트는 다시 움직일  있었다. 입의 안쪽이 부어 올라 발음은 제대로 나오지 않았지만 말도 할 수 있었다. 리쿠르트는 요나를 물어보며 쏘아 내듯 말했다.


"왜효?"
요나는 그 말에 먼저 의사들을 감방 밖으로 나오게 했다. 그리고 그들이 나오자 다시 감방을 닫으려던 간수를 저지했다. 즉, 문을 열어 두었다.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는 리쿠르트에게 요나가 말했다.


"긴장하지 마라."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가슴께에 있던 담배를 꺼냈다. 칼린이 그녀에게 선물한 그것이었다. 리쿠르트도 알아볼 수 있었다. 그녀는 그 안에 있던 시가담배를 꺼내 기요틴으로 끝을 조금 잘라내고 불을 붙였다.

"정말 잘 골랐어."
리쿠르트에게는 그것이 칼린의 스승에 대한 비꼬기라고 생각했다. 그 발끈한 듯한 표정에, 요나는 옅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  담배를 말하는 거다. 정말 칼린이 고른건가?"
이미 요나가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이상, 말 안 하는 것도 의미가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리쿠르트는 굳이 침묵을 유지했다. 그저 요나가 꼴 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이다. 그 반응을 뒤집은 것은 다음에 요나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칼린을 다시 잡았다, 리쿠르트."
튕기듯 일어나려는 리쿠르트를 말리듯 한 손을 뻗은 그녀는 다시 말을 이었다.


"너를 구하러 돌아왔을 때 잡았다. 걱정마라. 그와는 대화만 나누었다."
요나는 당당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리쿠르트가 들어가 있는 감방에 들어갔다.


"그가 돌아온 것도, 그와 대화를 나눠본 것도 네 덕이 컸다. 언젠가 네가 말했었지. 위험을 수반하지 않는 일이라면, 언제나 대화를 우선으로 해야 한다고. 어리석은 나는 이제야 그 뜻을 이해해버렸구나."
어정쩡한 자세로 서있던 리쿠르트의 자세에 맞추듯, 요나는 한쪽 무릎을 꿇고 말했다.

"나 또한 그를 잃는 것이 두려웠다. 너에게 못할 짓을 해버렸군. 민간인에게 폭력이라니, 영주 실격감이다. 이런 나를 용서해 주겠나?"
어안이 벙벙해져 그 장면을 보고 있던 그녀가 떠듬떠듬 말했다.


"저와 갱러한에게 어헌 책임도 물지 안흔다는 말슴이십니가?"
"그래. 그를 잡기 위해 마지막으로 사용하게 되었던 것은, 역시 네놈의 지혜더구나."
"카힌은 어떠해 됩니가?"
"그는 팔지 않을 것이다. 좋은 스승의 곁에서  많은 것을 경험하면서, 우리 성의 인재로서 키울 것이야."
그렇게 말한 요나는 리쿠르트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다시 한번 그의 스승이 되어 주겠나?”

리쿠르트는 자신이 너무 맞아서 꿈을 꾸고 있는 것이라고 착각했다. 일이 너무 좋게 풀리고 있었다. 갤러한과 자신은 영주를 적대하지 않게 되었고, 칼린은 팔리지 않게 되었다. 무엇보다-
그녀가 어렸을 때 보았던 그 요나가 돌아온 것처럼 느껴졌다.

그녀의 눈에 눈물이 한 방울씩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부어오른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요나는 자신의 손수건으로 닦아주었다.


"미안하구나, 리쿠르트. 나의 부족함이 너를 얼마나 상처 입혔느냐."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팔을 벌려 리쿠르트를 껴안았다. 리쿠르트는 그 품에 안겨 하염없이 울었다. 많은 말을 했지만, 부어 터진 입 안에서 옹알이정도로 바뀌어 가며 전달되지 못했다. 그러나 리쿠르트도 굳이 들어 주길 바라며 말하고 있지는 않았다. 그저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토해내고 있었다.

그리고 맞은편을 바라보는 요나의 얼굴은 얼어붙은 듯한 무표정이었다. 그녀가 칼린을 붙잡기 위해서는 세가지 요소가 필요했다. 그가 아끼는 사람들, 그를 이해해주는 사람, 그가 있을 장소였다. 단지 그것 때문에 벌이고 있는 촌극이었다.

'남은 건 갤러한과 떠돌이 놈들인가.'
칼린은 분명 그들을 해치지 말아 달라고 했다. 요나는 전혀 그들을 해코지할 생각이 없다. 오히려 그들과의 관계를 완만히 해야 한다. 칼린이 그들에게서 이상한 소리를 듣지 못하도록. 뒷 처리는 칼린이 완전히 요나의 것이 된 후에 해도 늦지 않는다.


"그만 울거라, 리쿠르트. 사랑하는 이를 그렇게 만날 수는 없지 않겠느냐. 여기 의사들이 네 상처에 적절한 조치를 취해 줄 것이다. 치료가 끝나고 침실로 올라가면,  곳으로 갤러한도 보내겠다."
서럽게도 우는 리쿠르트를 보며 요나는 다정한 목소리로 그렇게 이야기했다. 그리고 갤러한을 마주하기 위해 성을 나섰다.


#


갤러한이 요나를 마주한 것은 성의 정문 앞이었다. 설마 그녀가 성 밖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줄은 몰랐기에 갤러한은 역시 함정이 맞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런 방법이나 쓰고 말이야, 전쟁영웅 칭호는 지략으로 얻었나 보군."
가볍게 도발하며 갤러한은 그 주변을 살펴보았지만, 매복의 흔적이 보이지는 않았다. 요나는 혼자 나와 있었다.


"매복이 없는지 전부 확인했다면, 네 동료들 좀 치워주지 그래? 특히  친구 손바닥은 너무 밝게 빛나서 저격에는 재능이 없어 보이는군."
요나는 그렇게 말했다. 갤러한은 자신의 숨은 일행들이 볼 수 있게 손을 높이 들어 올렸다.


"뭐, 칼린은 나에게 잡혔다. 리쿠르트를 구하려 달려가는 것을 내가 잡았지. 난 사실 그가  곁으로 돌아오기만 하면, 너네 따위는 어찌되든 상관없다."
"영주에게 반항한 것인데도?"
"그 정도는 나의 오래된 벗, 리쿠르트의 연인이라는 점을 봐서 봐주도록 하지."
갤러한은 움찔했다. 그녀가 리쿠르트를 친구라고 부른 것과, 자신의 일행들조차 모르고 있던 것을 먼저 알고 있어서 였다.


"그런 점에서  연인 리쿠르트에게 심한 짓을 해 버렸다. 정말 미안하군. 다만 용서는 그녀 본인에게 받겠다."
담담하게 말을 잇는 요나에게 적의가 없음을 느낀 갤러한이 말투를 다시 바꿨다.


"그녀를 만날  있습니까??"
"물론, 하고싶은 말도 있고 말이지. 부디 다른 친구들도 같이 들어오겠나?"
그녀가 등지고 있는 성은 불길하게 빛나고 있었다. 다만 해를 입히고 싶었다면, 아직 사교파티가 진행중인  안으로 부르지는 않을 것이다. 갤러한의 신호에 이곳 저곳에 숨어있던 셋이 천천히 무기를 집어넣으며 나왔다.


"진짜 꼬셨냐? 대단하다."
릴로가 태평한 소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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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가 안내한 곳은 리쿠르트의 방이었다. 침실에는 얼굴의 반과 여기저기에 붕대가 감겨 있는 처참한 상태의 리쿠르트가 앉아 있었다. 그걸 본 갤러한은 앞서 있는 요나를 제치고 거기로 달려갔다.

"야혹 모지켜서 미안해요, 개러한."
그렇게 말하는 리쿠르트의 손을 잡으며 갤러한은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그는 그저  손을 꽉 쥐고 있다가, 평소처럼 익살스러운 표정을 만들어 보려고 했다. 어딘가가 일그러져 이상한 얼굴이 되었다.

"얼굴은 하나도 안 다쳤네. 여전히 이뻐."
그렇게 말한 갤러한은 그녀의 볼에 가볍게 키스했다. 그리고 할 수 있는 최대의 상냥함을 담은 미소를 보여주고, 고개를 돌렸다. 그 얼굴에 드러난 것은 요나에 대한 적의였다.

"무기를 잡아본 적도 없는 사람에게 어디까지 손을 대신 겁니까."
요나는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난 비이성적이었고 실수를 저질렀지. 하지만 그녀는 저런 만신창이가 되면서도 칼린을 위한 최고의 선택을 했었다. 오히려 군인보다도 강한 정신이었어. 그녀를 얕보지 않았으면 좋겠군."
"하지만.."
"그리고 내가 받을 것은 그녀의 용서 뿐이다. 네놈은 나에게 그저 계약을 위반하고 칼린을 도망치게 도와준 떠돌이일 뿐이야. 네가 그녀와 다시 만날  있는 것이 그녀에 대한 나의 속죄라고 생각해라."
그 말에 갤러한은  말이 없어졌다. 조용해진 갤러한에게 요나가 덧붙였다.

"나에게 화낼 시간에 너의 애인과  시간을 가지거라. 리쿠르트도 그걸 바랄 거다. 대화는 내일 하는 것이 좋겠군."
그 말을 남겨두고 그녀는 다시 발걸음을 사교장으로 옮겼다. 바빴지만, 왕에게 영지를 더 하사 받았을  보다도 기분이 좋았다.

#


요나가 사교장에 돌아와서 본 것은, 그의 노집사가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잘 넘기고 있는 장면이었다. 그녀는 잠시만 더 자리를 노집사에게 맡기기로 하고 조세핀을 찾아 다녔다.

"오, 영주님! 표정을 보니 잘 넘어간 것 같군요! 춤은 즐거우셨나요?"
"정말 굉장했습니다. 조세핀, 그것보다도 당신에게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조세핀은 잠깐 그녀의 눈치를 보았다. 창백해진 안색에 상당히 다급해 보였지만, 기분은 정말 좋아 보였다.


"무슨 일이죠?"
요나가 조세핀의 양 어깨를 붙잡고 말했다.

"전후 복구 부대 지휘, 제가 맡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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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린은 침대에 앉아 요나와의 대화를 회상 중이었다. 그는 이제 요나가 거두었고, 그녀의 아래에 있기 위한 몇 가지 조건이 붙었다.

1.모든 일은 요나에게 보고한다. 신체의 변화나 마법이 각성한 경우도 포함한다.
2.요나 이외의 다른 사람들에게는 비밀로 한다. 다른 사람들도 알게 될 경우 그들과 적대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고, 말이 퍼진다면 그녀의 영지 전체가 낙인이 찍힐 수도 있기 때문이다.
3.흡혈은 매일 저녁 요나에게만 한다. 이성을 놓지 않는 선을 유지하며 매일마다 요나의 피를 적정량만큼 마신다. 이는 그의 정체를 아는 사람이 요나 밖에 없으니 당연한 일이다.
4.그의 정신병도 숨기도록 한다. 말이 퍼지면 정신병자를 감싸고 도는 영주에 대한 악평이 퍼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5.오늘 한 모든 대화의 내용은 비밀로 하고, 요나가 임의로 한 거짓말들에 말을 맞춰야 한다.


칼린에게는 전혀 어려운 조건같지 않았다. 사실상 전부 참아오며 홀로 버텨왔던 그에게는 모든 항목이 포상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이제 흡혈도 가능하고, 말할 대상도 생겼으며, 자신의 모든 것을 알아주는 사람도 있다.


일이 이렇게 흘러 가게 될 줄은 예상도 못했기에 칼린은 아직도 어안이 벙벙했다. 그는 그저 요나의 조건들을 하나하나 되새기며 멍하게 있었다.


그의 방에 노크소리가 들려온 것은  때였다. 방을 열고 들어온 것은 갤러한이었다.


"여, 멀쩡해 보이는 구만."
갤러한은 그렇게 말하며 칼린의 옆에 앉았다. 그제서야 칼린은 자신이 한 일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할 기회가 생겼다. 그는 두고 온 것이 있다며 억지를 부리고 자신을 탈출시킨 갤러한과 리쿠르트의 노력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그러고 멋대로 화해해 버려서 마치 그 둘을 웃음거리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장밀 죄송해요, 갤러한."
그가 고개를 떨구며 사과하는 것을 본 갤러한은 한번 한숨을 쉬고서 그의 뒤통수를 쓰다듬었다.


"리쿠르트를 구하려다가 잡혔다면서. 고맙다."
잠깐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던 칼린은 다섯 번째 조건이 떠올랐다. 요나의 임의의 거짓말이란 아마 이것을 뜻하는 것이다.

하지 않은 짓으로 칭찬을 받는 것은 해서는 안될 일이다. 칼린은 입을 열었지만, 다시 혼자가 되는 것이 두려워 말이 나오지는 않았다. 그는 홀로 너무 오래 버텨왔다.


때문에 같잖은 도덕적인 잣대보다 두려움이 먼저 움직였다. 그래서 벌어진 입에서는 그가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역겨운 기만이 나왔다.

"당연한 거니까요."
갤러한은 그렇게 말하는 칼린을 바라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널 달빛 아래에서 보는 건 위험하군. 바람피는 느낌이 든단 말이지."
습관적으로 엉덩이를 털던 그는 문을 나서며 다정하게 말했다.

"뭐라고 설득했는지는 몰라도 결과가 최악은 아니야. 잘해줬다. 다만 리쿠르트가 조금 다쳤으니까, 진정되면 그녀를 만나러 가줘. 너를 기다리고 있으니까."
그리고 그는 문을 닫았다. 다시 혼자 남은 방 안에서 칼린은 씁쓸하게 웃으며 혼잣말했다.


"전부 역겨운 제 잘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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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었던 축제의 밤이 끝났다. 객들은 제각기 갈 길을 갔고, 취했거나 돌아갈 여건이 못되는 객들은 성의 빈 방을 잡기 위해 올라갔다. 요나도 모든 뒷정리를 끝내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하룻동안 수고한 그의 노집사를 일찍 방으로 돌려보낸 그녀는 방에 혼자였다. 그녀는 저녁동안 그녀의 각오가 되어준 정복을 벗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평소와는 다르게 작업대가 아닌 침대로 향했다.

'드디어 나의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그녀가 떠올린 것은 칼린이었다.


칼린은 괴물이었다. 그리고 이방인이었다. 처음 봤을 때 부터 그녀는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그녀의 괴물이었다.


'그 돼지새끼에게 뺏기지 않을, 온전한 나만의 것이다.'
피를 많이 빨려서 그런지 그녀는 어지러웠다. 상당한 빈혈 상태에서도 그녀가 모든 작업을 끝마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한 그녀의 정신력 덕분이었다. 물론 지금 느끼고 있는 미칠 듯 한 고양감도 큰 도움이 되었다.

'누구에게도 넘기지 않을 나의 것이다.'
침대에 누워 있으면 천장이 빙빙 도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의 현기증에도 그녀의 고양감은 식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녀를 더욱 흥분시키고 있었다.

'아, 칼린. 불쌍하고 외로운 괴물아.'
그 흥분을 배출해야 했다. 지금 당장 칼린의 방으로 쳐들어가 그가 누구의 것인지 뇌리에 박아주고 싶었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달 아래에서 그녀는 이성을 벗어 던졌다. 내일부터는 모든 것이 바뀌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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