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0화 〉낯선 도시에서 (10/164)



〈 10화 〉낯선 도시에서

"도대체 갑자기 뭐냐고.."
갤러한은 그가 애용하는 씹는 담배를 꺼내며 불평했다. 그와 동료들은 약 이주일간의 방랑을 끝내고 어제 아침에야 녹초가 되어 벨카에 도착한 것이었다. 오랜만에 씻은 그들은 여관의 술을 거덜 낼 각오로 붓고 마시다가 편안한 침대에 누워 다음날 저녁까지 뻗을 계획을 짜고 있었다. 아무도 점심에 얼굴이 흙빛이 되어있는 여관주인이 방으로 쳐들어와 '영주와 말도 못할 미인이 당신들을 찾습니다'라고 말할 줄 몰랐다.

"아, 씨발.. 숙취..."
헝클어진 곱슬머리를 긁으며 이 지방의 사람보다 약간 구릿빛을 띈 피부의 여성이 말했다. 그녀는 흘러내려간 런닝을 잡아 올리며 말을 이었다.


"소니아, 뭔 상황이야?"
그녀가 그렇게 묻자, 소니아라 불린 키 작은 여성이 금발을 찰랑이며 분주하게 옷을 갈아입으면서 대답했다.


"옷이나 빨리 입어, 빡대가리 년아! 영주 호출이야!"
"뭔 시발.. 영주가 해가 중천인데 우리를 왜 찾아..."
그렇게 말하며 머리를 긁던 그녀는, 갑작스레 사색이 되면서 소리쳤다.


"이런 씨발, 륑게  어제 귀족한테 도박으로 큰 탕 땄다고 했지! 너 그거 영주한테 뜯은 거 아니야?"
 말에 이미 옷을 다 챙겨 입은 갤러한도 반색이 되어 돌아봤다.

"뭐? 륑게  좆같은 놈아, 너 나한테는 어제는 도박 안 했다고 했잖아!"
패닉은 전염되어서, 이리저리 발을 구르며 옷을 슬슬 다 입어가던 소니아도 날카롭게 소리질렀다.

"씨발놈아! 어쩐지 돈을 갚더니 영주랑 도박으로 딴 거였어??"
 말에 침대에 다리만 걸치고 바닥에 누워있던, 얇고 튼튼해 보이는 몸을 한 더벅머리 남자가 고개만 들어올려 대답했다.


"거, 진정들 하쇼. 전부 릴로가 한 추측성 발언이잖아? 왜 다들 그걸로 패닉이 오고 그러냐.."
갤러한은 그쪽으로 다가가 그 뻗은 청년의 멱살을 쥐어 세웠다.

"야, 그러면 너 영주한테서 한탕 크게   아니지?? 아니, 그냥 어제 도박은  했다고 해주라. 제발."
륑게는 거기에 눈을 피하다가 굴복하듯 대답했다.


"야, 나 진짜 어젯밤이 기억이 안나, 미안한데. 릴로, 내가 어제 도박을 했던가?"
구릿빛 여성이 너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하하! 내가 어떻게 아냐, 븅신! 너 술 먹더니 잠깐 화장실 다녀온다 하고 갑자기 돈다발 들고 나한테 와서 귀족 털었다고 자랑한 건 기억난다! 하하!시발! 내가 너 언젠가  터질 줄 알았다!"
그 말에 갤러한은 사색이 되어서 륑게의 양 어깨를 붙잡고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야, 륑게! 도박한걸로 까는 건 살아남아서  테니까, 잘 떠올려봐! 여자, 남자였는지 정도도 기억안 나냐?"
"흔들지마, 토할것같..읍"
"하, 씨발!"

륑게를 밀어내고 갤러한은 급하게 짐을 싸기 시작했다.
"다들 가만있지말고 옷 입어! 창문으로 뜨면 눈치 못 챌지도 몰라! 도망쳐서 다시는 여기 오지 말자! 그리고 륑게, 넌 씨발 살아남으면 내가 죽여 버릴거야!"


"아, 그러시면 곤란합니다!"
문 뒤에서 주인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주인장! 있었어?"
"문 앞에서 대기중이었습니다. 좋은 날이네요, 릴로양. 륑게씨는 괜찮으신가요? 방안에 토하지는 말아주세요."
"아... 어떻게든 참았어."


일상적인 대화가 퍼지기 시작하자 갤러한은 미칠 것 같았다. 그가 창틀에 발을 디디자 문 밖에 구원의 소리가 들려왔다.

"아, 갤러한씨! 그리고 영주님이 여러분을 잡거나 꾸짖으려고 부른 것 같지는 않습니다! 우리 여관에 누가 머무르는지도 모르고 계셨어요. 그냥 떠돌이면 아무 상관 없는  같던데요?"
갤러한은 창틀을 넘어갈 마지막 한발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시끄럽던 방안이 조용해졌다가, 륑게가 토해내 듯 말했다.


"....내가 말했지..."


#

"뭔가의 의뢰일까?"
계단을 내려가며, 소니아가 조심스럽게 갤러한에게 물어보았다.

"낸들 알겠냐, 부르니까 가는 거지. 그래도 지금 돈은 많이 있으니까 위험한 건 같으면 바로 발 빼자."
갤러한이 이주일간 방랑한 것은 국가의 의뢰를 받아서 였다. 전쟁 후에 현장을 복구하는 작업 등을 하면서 얻은 돈은 그들에게는 꽤 큰돈이었다.

"뭐, 너무 긴장하지는 말자고. 그냥 모험가를 찾고만 있었던 거리면 긴장할 필요는 없잖아? 미인도 같이 있다니까 그냥 즐기자고."
갤러한이 자신의 동료들을 안심시키듯 말했다.

"물론, 넌 이일 끝나면 뒤졌다, 륑게."
"아잉,-"

그런 이야기를 하며 그들은 1층에 도착했다. 그리고 자신을 부른 영주와 미인을 마주하게 되었다.

여관주인이 정신을 놓은 것이 이해가 가는 외모였다. 많은 곳을 돌아다니며 많은 사람을 만난 그들이지만, 그 정도의 미인은 본적이 없었다. 아니, 미인이라는 감각과는 달랐다. 그들은 아름다운 외모에서 감탄과 동시에 다른 감각도 떠올랐다.

떠돌이들은 보통 감에 의존한다. 노련한 떠돌이 일수록 이런 성향이 강하다. 위험한 상황에서 그들을 구하는 것은 보통 감이었기 때문이다. 지각보다도 빠르게, 갤러한은 바지 밑단 아래에서 단검을 꺼냈다. 다른 동료들도 숙취를 떨쳐내고 빠르게 각자의 전투 자세를 취했다. 조금의 움직임이라도 보이면 바로 공격하기 위해서 였다.


"정체를 밝혀라!"
갤러한이 소리쳤다. 지금 그는 방 안에서 얼빠져 있던 그와는 다른 사람이라고 해도 좋았다. 급변한 분위기에 여관주인은 당황해 카운터 뒤로 쪼그려 숨었다.


"좋은 기세로군."
그 안에서 처음 입을 연 것은 요나였다.


"나의  안에서, 나의 손님에게 검을 겨누다니. 목숨을 아끼는 자가 단 하나도 없구나."
그 말에, 모두가 정신을 차렸다. 자기도 모르게 전투태세를 가했던 것에 얼이 빠진 갤러한을 소니아가 릴로와 함께 머리를 눌렀다. 륑게도 급하게 고개를 숙였다.


"무례함을 용서해주십시오! 영주님을 뵙습니다!"
마치 소니아가 외친 그 말을 신호로 한 것처럼, 그들은 얼굴색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영주가 적대를 가지지도 않은 상태에서 먼저 영주의 객을 적대하다니 지방에 따라서는 목이 사라질 수도 있는 일이다.


영주는 불만족스럽다는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다가, 당황한 칼린을 보고 생각을 바꿨다.

"앉아라. 부탁할 것이 있어서 불렀다."


#

"모험 이야기를 해달라굽쇼?"
갤러한이 그렇게 말하자, 영주는 얼굴을 조금 찡그리며 대답했다.

"두번은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에게가 아니라  뒤에 있는 그에게 말을 해주면 된다."
머리가 조금 돌아가기 시작한 갤러한은 그 뒤에 사람을 다시한번 보았다. 이성을 차리고 다시  그는 자기도 모르게 추파를 걸어 볼 정도로 아름다웠다.

"여, 아가씨. 남자경험은 있나?"
"그는 남자다. 자중하도록."
"오, 그럼 여자경험은 있나?"
대화에 끼어든 릴로를 요나가 매섭게 노려보자, 릴로는 입을 막고 다시 얌전해졌다.

"최근에 거두게 되었지. 세상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어. 견문이 넓은 떠돌이들이라면 가장 좋은 선생이  것이라 판단했다. 부탁하지."
갤러한은 그 말을 듣지 못했다. 다른 생각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저게 남자라고?'


그러다가 문득 조용해  것을 느끼고 상황을 수습하듯 답했다.

"저, 그런데, 몹시 송구합니다만.."
"말해라."
갤러한은 손을 들어 검지와 엄지를 비비며 자그맣게 말했다.


"저희가 아무래도 떠돌이인지라.. 밑천 없는 일을 하면 굶어 죽지 말입니다. 오늘  한시간정도로 교육을 마치실 것이 아니라면 그.. 보수가 좀..."
요나는 그 말에 조금 생각했다. 방금 전에 보인 그들의 반응을 생각하면, 그들은 다들 꽤나 실력자이다. 아마 여러가지 위기를 겪어왔을. 그녀는 그렇게 판단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갤러한을 따로 불렀다.

"떠돌이가 된지 얼마나 지났지?"
"저는 한 10년정도 굴렀고... 동료들 경력까지 합산해서 평균재면  8년 될 겁니다."
"일주일마다 300생텀(한화로 약 60만원)을 주지. 정오를 기준으로 2시간의 수업에 점심식사를 제공하고, 성의 편의도 제공하마. 어떤가?"
떠돌이의 평균 의뢰보수로는 말도 안되게 적은 돈이지만, 일의 위험부담에 비하면 굉장히 큰 금액이다. 거기에 성의 편의시설 및 공짜 점심은 그의 마음을 움직였다.


"아, 정확히 무슨 일을 해야 되는 겁니까? 그냥 도련님에게 이야기만 해드리면 되나?"
그 말에 요나가 갤러한의 뒷통수를 잡으며 말했다.

"거기서 부터가 중요하다. 최대한 위기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해. 무서웠고 떨렸던 이야기를 중점으로 해서 그가 도시 밖을 겁내게 만들어라. 그리고 너네  누구든 그에게 추파를 던진다면 바로 도시에서 추방시키겠다. 이해했나?"
갤러한은 매섭게 자신을 노려보는 요나에게서 눈을 피하며 발을 뒤로 빼려 헀으나, 단단하게 잡힌 뒤통수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도, 동료들과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

"개꿀인데?"
륑게의 말에 갤러한이 얼굴을 싸맸다.

"생각 좀 하고 말해.."
"생각이고 자시고, 애초에 우리 한달정도는 이번에 번 돈으로 여기 머물 생각이었잖아? 금액은 적지만 하루 두시간 도련님 겁주는 일이면, 이만한 소일거리가 또 어딨어?"
그건 확실히 그랬다. 조건도 사실 어려운 건 아니다.

"나도  일은 찬성이야. 여기 머물 동안 소일거리로 하면 되겠네."
릴로도 찬성표를 들었다. 대답하지 않은 것은 소니아 뿐이었다.

"난 반대야."
소니아의 말에 모두가 요동치자, 소니아는 손가락을 들어올려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내고 말을 시작헀다.


"이 여관이 4인 일주일에 120생텀이야. 주에 2시간일하면서 300생텀을 받는다면 나태해지지 않을 자신 있어? 거기에서 2시간 떠들기만 하면, 매주마다 여관 숙박을 갱신하는 것도 된다고. "
마치 힐난하는 듯한 소니아의 말에 릴로와 갤러한은 조금 반성했다.

"너네도 알겠지만, 난 빠르게 돈을 벌어서 어딘가에 정착할거야. 이런 곳에서 소일거리로 발이 묶이게 될 것 같다면 단호히 거절하겠어. 혼자서라도 큰 탕을 찾아 다닐거야."
그렇게 말하고 소니아는 얼굴을 굳혔다. 갤러한이 무슨 말을 하려고 하자 가만히 있던 륑게가 그를 말리고 말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어쩔  없지, 소니아. 떠돌이들에게는 얼마 없을 매일마다 씻을 수 있는 기회였는데."
"...매일마다 씻어?"
"뭐, 영주의 성의 편의시설을 전부 사용 가능한 건데, 씻는 것도 안되겠어? 하지만 기왕 없던 일이 된거 슬프게 계속 말하지 말자구. 다들 소니아의 말에 동의하지?"
릴로와 갤러한이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소니아는 그 말에도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 그리고 당당하게 자신과 동료들의 결정을 영주에게 전하러 갔다.

#

"반가워, 도련님. 난 갤러한, 순서대로 륑게, 릴로, 소니아야. 도련님은 이름이 뭐지?"
원탁에 앉은 여섯은 앞으로의 '상식수업'진행을 위해 자기소개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칼린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떠돌이들은 여러지방을 떠돌아다니기에 갖가지 지방의 사투리들이 섞인 말투를 사용했다. 그리고 아무래도 거칠게 살아왔기에 말이 상당히 빠르고 거칠었다.


하지만 칼린은 귀족의 성에 거두어져 사투리 하나 없는, 왕도의 정규 '귀족단어'들만 익혀왔다. 요컨데, '안녕'보다 '평안하시옵니까'를 먼저 익힌 것이다. 즉, 그들이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당황한 칼린을 보며 요나가 대신 설명했다.

"칼린은 아직 우리 말에 초보이다. 평민이 쓰는 단어나 말투에 익숙하지 않을 테니, 그 부분도 가르쳐 주길 바란다."
"아, 그럼요! 영주님! 가르쳐 드리고 말구요! 나, 소니아! 나머지 사람들, 순서대로 갤러한, 륑게, 릴로.  이름은?"
알아듣기 쉽게 큰 목소리로 생글생글 웃으며 말해주는 소니아를 나머지 동료들은 조금 질린 눈으로 쳐다보았다. 단 칼린이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있게 말한 것은 확실했다.


"저는 칼린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그 이름에 륑게는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기 위해 숨을 참았다. 소니아는 눈웃음이 풀리며 '네?'라고 되물었고, 릴로가 '진짜 '칼린'이었다면 여비를 다 털어서 울때까지...'라고 하는 것을 갤러한이 막았다.

소니아와 갤러한이 조금 환멸하는 눈으로 영주를 돌아보았다. 영주는 눈으로 '쓸데없는 소리는 하지 마라'라는 신호를 확실히 보낼  알았다. 둘은 상황의 어색함을 없애기 위해 거의 동시에 맥주잔을 들었다.


"칼린을 위해 건배!"
""""건배!""""
륑게는 웃음을 참느라 건배를 복창하지는 못했다.

#

"사람 이름이 칼린이라니! 어떻게 사람 이름이 칼린이지??"
그 둘을 보내고도 륑게는 방안에서  이야기만 했다.

"별로 특이한 이름도 아닌 것 같은데,  이름이 륑게라는 놈도 봤거든."
소니아가 그렇게 비꼬자 륑게가 받아 치듯 말했다.

"그래? 이름 뜻이 남창인 애는 만나본 적 있어?"
그러면서 그는 계속 실성한  웃었다. 다들 굳이 말 안하고 있었지만 같은 의견이긴 했다.


"영주가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아. 내 뒤통수를 잡고 말할 때 눈을 봤어. 제정신이 아닌 사람의 눈이야. 애초에 둘은 무슨 관계인거지? 부탁하는 거 보면 아빠와 딸이던데."
갤러한의 말에 소니아가 대답했다.


"매일 밥 주고 씻겨주고 주마다 300생텀이야.  영주가 레즈비언이라고 해도 존중하겠어."
그렇게 말하며 릴로와 하이파이브를 했다.

"그래서, 내일 정오부터 성으로 다니면 되는 거야?"
"정오'까지'성으로 가면 되는 거야. 실수없이 해내자고."
"왜 그렇게 쫄아 있어, 갤러한? 진짜 모험은 처음인가보지?"
"입 닥쳐, 릴로."
넷은 이런저런 계획을 나누면서, 한 시간씩 교대해가며 그와 대화하는 시간을 가지기로 정했다. 그리고 앞으로의 성공을 위해 여느 떠돌이가 그렇듯 아침이 오지 않을 것처럼 마셨다.

#

"점심시간 후 2시간 정도 그들에게 상식을 배울 거다. 어디로 가게 될지 모르니 넓은 시각을 가져야 겠지."
돌아가면서 요나가 뒤따라오는 칼린에게 그렇게 말했다. 칼린은 이 세상을 알아가는 것 같아 기뻤지만, 동시에 너무 큰 빚을 지는 것 같아 두려웠다.

"정말 감사합니다, 영주님."
그렇게 말하는 칼린의 목소리에 요나는 다시 미묘한 저릿함을 느꼈다. 잠깐 발걸음을 멈춘 그녀는 조금 생각하다가, 근처 노점에서 사과를 두개 사서 돌아왔다.

"하나 먹어라."
한개를 던져준 그녀는 다시 아무  없이 앞서갔다. 칼린은 바뀌어 가는 것이 보이는 그녀의 태도에 조금 어리둥절 하면서도 맛있게 받아 먹으며 그녀를 따라갔다.

#

"떠돌이들에게 수업을 듣게 되었다구요?"
저녁 수업  칼린의 말을 듣던 리쿠르트가 놀란 듯이 되물었다.


"ㄴ.네... 영주님께서 진짜 상식을 알기 위해서는 떠돌이들에게 배워야 한다고.."
갑작스럽게  큰 목소리에 조금 위축된 칼린이 그렇게 말하자, 리쿠르트는 반사적으로 '도대체 왜죠?'라고 물으려는 것을 참았다.


리쿠르트는 요나가 칼린을 완전히 거둔 것이라고 생각했다. 성 안의 사용인으로 키울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면 떠돌이들에게 배울 것은 없다.


'사용인이 아니라 병사로 키울 생각인건가?'
이것도 말이 되지 않는다. 외국인을 병사로 들이기 위해서는 왕국의 공무원에게 허가를 받아내야 한다. 그 둘은 왕국으로 간 적도 없고 성에 조세핀이 있을 때에도 따라 만나게 한 적이 없다. 애초에 요나는 칼린을 경계하고 있었다. 그걸 알았기에 리쿠르트는 칼린에 대해 말을 아꼈던 것이다.

'아니면 혹시..'
만약 요나가 칼린을 팔려고 하고 있는 것이라면 모든 의문이 해결된다. 팔아 치우기 전에 어디로 가든 기본은 수행할  있을 정도로 교육하는 것이라면 다양한 수업과 떠돌이의 수업도 설명된다. 리쿠르트에게 숨기는 것이 그것이라면, 그녀가 칼린을 보내지 않기 위해 일부러 수업을 더디게 진행하게 될 일을 경계해 여러가지 숨기고 있다는 판단도  수 있다.

가설일 뿐이지만 만약 그렇다면 큰일이다. 어떤 증거도 없지만, 그렇게 생각한 것만으로 불안감이 커져갔다. 그녀는 칼린이나 요나에게 자신의 예상이 틀렸다는 확답을 받고 싶었다.


'안돼.'
그러다가 그녀는 생각을 바꿨다. 지금은 때가 아니란 것을 알고 있다. 갑작스럽게 떠오른 증거도 없는 말을 해봤자 요나는 들어주지도 않을 것이다. 조금 더 상황을 보며 확실한 증거를 기다려야 했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그녀는 정상적으로 수업을 진행했다. 칼린은 오늘따라 이상한 스승의 모습이 걱정되었지만, 리쿠르트가 괜찮다고  이상 더 캐물어  수도 없었기에 그저 얌전히 수업에 따랐다.

#


칼린은 그 날 저녁도 여느 때처럼 침대에 앉아 송곳니를 뽑아냈다. 벌써 6개나 모인 송곳니를 보고 있던 그는 창밖으로 화장품통의 내용물을 던지고 그 안에 송곳니를 넣어뒀다. 성 안에 버려두면 누군가 찾아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반, 매일 저녁 이걸 보며 각오를 새로 다지자는 생각이 반이었다.

익숙하게 양 볼에 휴지를 쑤셔 넣은 그는 담배를 꺼내 물었다.

'괴물새끼가 마치 제 세상인 것 마냥 행동하는 군.'
"미안하게 됐어."
그리고 마치 하루를 끝내는 관례인 것 마냥 스스로를 저주하며 잠들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