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화 〉낯선 도시에서 (9/164)



〈 9화 〉낯선 도시에서

"괜찮으세요, 선생님?"
칼린의 걱정하는 듯한 목소리에 리쿠르트가 정신을 되찾았다. 그녀는 자신이 잠깐 멍해 있었다는 것을 알아채고 부끄러움에 얼버무리듯 대답했다.


"아, 죄송합니다, 칼린. 실례지만 어디까지 했었죠?"
"책을 피시더니 갑자기 멈추셔서 저도 잘..."
"아, 네!"


리쿠르트가 무안함을 감추듯 책을 보고서 말했다.

"첫 수업은 마법에 대해 이야기해보죠. 칼린은 마법에 대해 얼마나 아시나요?"
칼린은 생소한 단어를 나름대로 이리저리 생각해보며 떠올리려고 하다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아 솔직하게 대답했다.

"잘 모르겠습니다."
그녀는 그 말을 듣고 잠깐 고민하다가 말했다.

"그러면 마법의 개념부터 설명해 드릴게요. 들으시면서 모르는 단어가 있으시면 바로 말해주세요."
그리고 그녀는 허리를 곧게 피고 말을 시작했다.


"이 세상에 모든 것은 그 반대가 있어요. 상호로 존재하기에 모든 것이 존재하는 것이지요. 어둠이 있기에 빛이 있고, 침묵이 있기에 소음이 있고, 혼돈이 있기에 질서가 있어요. 그렇다면 이치의 반대 극점에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책을 덮었다.


"저는 방금 물리적인 방식으로 이 책을 덮었습니다. 이치에 맞죠. 칼린, 이 책이 다시 펴지는 경우는 뭐가 있을까요? 떠오르는 대로 말해보세요."
칼린은 조금 생각해보다가, 책으로 손을 뻗어 피면서 대답했다.

"...누군가를 시켜서 피거나, 직접 피거나, 바닥에 떨어뜨려 펴지게 만들거나, 강한 바람이 불어 펴질수도 있고... 방법은 무수히 많지 않을까요?"
 대답에 리쿠르트는 만족한듯 책을 다시 자기 쪽으로 끌어오고 말을 시작했다.


"맞아요. 그게 이치에만 맞는 것이라면, 어떤 방식으로든 이 책을 필 수 있겠죠. 어떤 방식으로든 물리적 자극이 닿으면  책은 펴질  있을 거에요. 하지만-"
그녀는 의자를 뒤로 뽑아 책상에서 조금 떨어진  양손을 마치 책을 쥔 듯한 자세로 바꿨다.

"제가 여기에서 그저 제 의지만으로  책을 펼치는 것은 가능할까요, 칼린?"
이상한 질문이었다. 칼린은 이 문답이 철학 쪽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솔직한 대답을 했다.

"..불가능하겠죠. 이치에 맞지 않으니까요."
리쿠르트는 그 말에 도발적인 표정을 짓고서, 한번 '정말로 그럴까요?'라고 말 하고는,  양손으로 마치 책을 피는 듯한 행동을 했다.

그러나 책은 그대로 있었다.

"맞아요, 칼린. 떨어진 장소에서 의지만으로 책을 핀다는 것은 이치에 어긋난 일이죠.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에요."
그렇게 말하고 그녀는 다시 의자를 끌어 앉아, 그녀가 가져온 가방에서 직사각형의 자그마한 함을 두개 꺼냈다. 그리고 하나의 뚜껑을 열고 거기에 그녀의 안경을 집어넣은 뒤 다시 닫았다.

"그렇다면 칼린, 제가 특별한 장치도 속임수도 없이 뚜껑을 열지 않고  함에 들어있는 안경을 반대쪽 함에 옮길 방법은 있을까요?"
그녀는 그렇게 질문하며 함 두개를 칼린 쪽으로 밀어서 건내 주었다. 칼린은  함을 여기저기 살펴보며 골똘히 생각해 보았지만 정답이 나오지 않았다. 리쿠르트는 그 모습을 조금 즐겁게 바라보다가 말했다.

"어떤가요, 칼린?"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합니다."
"왜죠?"
"저는 미숙해서 잘 모르겠지만, 닫힌 함끼리 물건을 옮기는  이치에서 벗어나는 일이니까요,.."
칼린은 조금 기죽어서 말했다. 일일이 반응이 좋은 그의 태도 덕분에 리쿠르트는 조금 고양되었다. 정말 가르치는 보람이 있는 학생이다.


"아뇨, 칼린의 말이 맞습니다. 서로 떨어져 있는 닫힌 함들 사이로 물건을 옮기는 것은 이치를 거스르죠."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안경이 없는 쪽의 함을 칼린에게 건내 주었다. 그리고 안경이 들어있는 함에 손을 얹었다.

"하지만 불가능은 아니랍니다."
그리고 그녀의 손 안쪽에서 흰색의 빛이 새어 나왔다가 사라졌다. 그 모습을 보며 어리둥절하고 있는 칼린에게 리쿠르트가 말했다.

"그 함을 열어보세요."
 안에는 안경이 들어있었다. 입을 다물지 못하는 칼린에게, 리쿠르트는 조금 우쭐한 기분으로 설명을 시작했다.

"이치의 극점에는 마법이 존재합니다. 불가, 불능을 실현해내는 힘이지요. 그렇다면 우리는 모두 전능한 걸까요? "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아직도 놀라서 굳어 있는 칼린을 향해 가볍게 손가락을 튕겨서 집중시켰다.

"정답은 '아니다'입니다. 만약 그랬다면 저는 책을 필 수 있었겠죠. 하지만, 저는 책은 필수 없습니다. 이것이 마법의 첫번째 한계, 다양성입니다. 개개인은 각자 다른 고유의 마법을 가지죠. 아예 마법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도 있고요. 심지어 같은 마법에 화력이 다를 수도 있고, 범위가 다를 수도 있고, 효율이 다른 경우도 있습니다만- 이건 세번째 한계를 설명할 때 말해 드릴게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안경이 들어있던 함을 다시 가방에 집어넣고 말했다.


"제 마법은 제 신체 일부가 들어가거나 접착된 함끼리 연결시키는 마법입니다. 그 함은 선물로 드릴 게요."
칼린이 들고 있던 함을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그녀의 말에 놀라서 함을 떨구자, 그녀는 살짝 웃으며 말했다.


"걱정 마세요, 신체 일부라고 해도 머리카락, 손톱,  한방울로도 가능한 거니까. 단 함의 크기에 비례하는 크기의 신체부위가 필요하고, 연동시키는 함은 서로 같은 부위를 사용해야해요. 이 함같은 경우에는 제 머리카락을 붙여서 만들었답니다."
 말을 들은 칼린이 함을 살펴보자, 확실히 뚜껑에 머리카락이 한 올 붙어있었다.


"그러면,  함은 영원히 연동되는 걸까요? 만약 책을 필수 있는 염동력을 지닌 사람이라면, 책을 공중에 영원히 띄어 두는 것이 가능할까요? 이것도 정답은 '아니다'입니다. 이게 바로 마법의 두번째 한계, 마나 량입니다. 마나에 대해서는 전에 설명드렸죠?"
"아, 네. 확실히 영주님이 왜 그렇게 강한  물으면서..."
리쿠르트는 요나의 이야기가 나오자 반사적으로 얼굴을 찡그렸다가, 그녀의 제자가 눈치채기 전에 평소의 미소로 표정을 되돌렸다.


"맞아요. 그 때 말한 것처럼, 양의 차이는 있지만 모든 생물은 마나를 지니고 태어나죠.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도 마나는 존재해요. 마법은 이 마나를 소비하면서 이뤄집니다. 저같은 경우에는 함에 주기적으로 마나를 충전하죠. 염동력같은 경우에는 책을 띄우는 동안 계속 마나를 소비하면서, 마나가 다 떨어지면 책은 떨어지게 되는 겁니다."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덮여 있던 책을 다시 폈다.

"세번째 마법의 한계는 마나 효율이에요. 알기 쉬운 예시를 하나 들어보죠. 칼린에게 가보로 내려지는 검이 있다고 칩시다. 칼린이 그 검을 6살에 자유자재로 휘두를  있을까요?"
"... 불가능합니다."
"왜죠?"
"6살이면 검을 휘두를 정도로 성장하지 못했으니까요."


"맞아요. 다른 말로 수행능력의 부족인 거죠, 아직 충분히 근육이 성장하지 못했고, 검을 다루는 법도 모르기 때문이에요. '6살에게는 과분한 힘'이라고  수도 있겠지요. 마법도 똑같답니다. 각각의 고유 마법 수행에 필요한 마나량은 전부 달라요. 그 마법을 수행하기 위한 기초 마나량은 필요한 거에요. 하지만 마나도 근육과 같아서 성장과 수행으로 그 양을 늘리는 게 가능하죠. 보통은 정신수양을 하지만, 결국 마나도 심장 옆의 마관이라는 장기에서 생성되는 것이기 때문에 코어운동으로도 성장시킬 수 있어요."
그 말을 들은 칼린은 의문점이 생겨 스승의 말을 멈추고 질문했다.

"잠깐만요, 선생님. 자신의 마나량을 측정도 할 수 없고 마법 수행에 필요한 마나량도 제각각이라면, 자신의 고유마법이 무엇인지는 어떻게 아나요?"
그 질문에 리쿠르트는 상당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칼린은 눈까지 동그래진 스승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혹시 제가 이상한 질문을 한 건가요?"
"네-. 정말 이상한 질문이네요. 가끔 칼린을 보면 단순한 상식의 부재가 아니란  느껴요. 마치 어딘가, 다른 개념을 가진 세계에서 온 듯한, 정말 기본적인 곳에서 어긋나고 있다는 느낌이-"
그녀는 칼린에 대해 알고 싶었다. 그녀의 애제자가 어디에서 왔는지, 어쩌다가 요나를 만난건지, 어제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저녁에 그렇게 앓는 소리를  정도로 아팠던 그가 어떻게 아침에 요나의 대련을 따라잡을 정도로 빠르게 나았는지, 수업시간이 줄어들게  이유에 대해 들은 말이 있는지 전부 궁금했다. 무엇을 당하고 있어서 매일마다 그렇게 눈에 띄게 수척해지며 괴로워하는  궁금했다.

그러나 그녀의 입 밖으로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에 대해 아는 것이  시간을 사라지게 할 까봐 두려웠다. 자신의 감정에 치우치게 되어 애제자를 놓치게 될 것이 두려웠다. 그를 제자로서 아끼지만, 그 뿐이다. 다시  번 감정에 치우친 실수로 일을 망칠 수는 없었다. 그 빌어먹을 학교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때문에 그녀는 나오지 않는 말을 뱉어 보려 몇 번 입을 뻐끔거리다가, 고개를 숙이고 눈에 띄게 당황하고 있는 제자의 질문에 얌전히 대답해줬다.

"...마법을 수행할 수 있을 정도의 마나가 있다면 알게 돼요. 동물적인 감이라고도 할 수 있겠죠. 그냥 어쩐지 모르게, 나는 이걸   있겠다. 라고 눈치채게 되는 거예요. 일반적인 마법이라면 13~14세정도때 깨닫게 된다고 하는 군요."
그렇게 말하는 그녀에게서는 왠지 모르게 자조하는 분위기가 있어서 칼린은 조심스럽게 그녀의 상태를 걱정했다.

"괜찮으신가요? 역시 오늘 상태가 안 좋으신 것 같은데 이쯤 하시고 쉬시는게-"
그 말에 리쿠르트의 속이 요동쳤다.


"-안 됩니다."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위압적일 정도로 단호하게 말을 뱉고서는, 그녀는 지금 자신이 칼린을 걱정시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녀는 더이상 이 수업시간을 빼앗기고 싶지 않았다.


"아, 아니, 수업시간이 줄어들었으니까요. 가르칠  아직 많은데 벌써 쉬어 가며 할 순 없죠. 그리고 저는 정말 괜찮아요, 칼린. 제자를 걱정시키다니  길이 머네요."
칼린은 그 말을 듣고서 그의 스승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선생님이 괜찮다고 하시면 따르겠다며 다시 조용해졌다. 리쿠르트는 그의 반응에서 그가 요나에게 수업시간을 줄인 이유를 들었는지 알아낼 수가 없었다. 그녀는 무거워진 마음을 안고 수업을 재개했다.


#

점심을 먹고 나서, 칼린은 바뀐 계획에 따라 요나와 성채를 나왔다. 둘은 일단 마을의 중심 홀에 갔다.

요나는 일단 그를 밖으로 데리고 나왔지만 특별히 어디로 갈지 계획을 짜 두지는 않았다. 에테롬에게 그랬던 것처럼 마차를 타고 가볍게 둘러보는 방식으로 할까 생각했다가, 어쨌든 명분에 맞게 사회경험은 시켜야 한다는 생각에 일부러 걸어서 나온 것이었다. 좋든 나쁘든 영주와 미인의 조합은 눈에 띄었기에 그 둘은 광장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어색하게 서있었다.


그러나 적어도 칼린은 상당히 신나 있었다. 처음 접하는 벨카는 그의 예상보다 깔끔하고 북적였다. 마치 그가 살던 시대의 중세를 보고 있는 듯한 건축 양식과 마차들이 그를 고양시켰다. 다만 사람들의 시선은 익숙하지가 않아서 여기저기 둘러보는 시선에 위축된 것이 느껴졌다.

요나는 고민하다가 결정을 내리고 칼린을 불렀다.

"칼린, 우리는 오늘 같이 여관에 가볼 것이다."
칼린의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


"'그 나라를 알고 싶다면,  나라의 떠돌이들과 친해져라'. 그런 말이 있다, 칼린."
묘하게 쫄아 있는 칼린을 보며 요나가 먼저 말을 걸었다.

"떠돌이요?"
칼린이 되묻자, 이제야 좀 대화가 가능하겠다 판단한 요나가 즉답했다.


"그래, 떠돌이. 말 그대로, 어딘가에 정착하지 않고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면서 의뢰를 받아먹으며 살아가지. 왕국에서도 용병처럼 쓰기도 한다."
걸음을 이어가며 그녀는 계속 말했다.

"그들은 여기저기에서 가장 빠르게 정보를 얻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전화가 나오기 전까지는 전보로도 쓰였지. 소속된 곳이 없어 보통 중립이라는 것도 장점이었다. 그럼 칼린, 떠돌이들은 마을에 도착하면 숙박을 어디에서 취할까?"
"..그래서 여관에 가는 거군요."
"그래."
칼린은 오해하기 쉬운 말투라고 속으로 불평했다. 전에 했던 농담도 그렇고, 분명 엄한일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바짝 쫄아 있던 것이다.


"여기가 홀에 가장 가까운 여관이다. 상점, 무기 정비소 등이 전부 근처에 몰려 있으니, 떠돌이들이 이 도시에서 가장 선호하는 곳이지."
그렇게 말하고서 요나는 문을 박차고 열었다.


"주인장은 있는가."
손님이 들어오는 소리에 주방에서 나온 여관 주인의 얼굴이 굳었다. 자영업자에게 나랏일을 하는 높은 사람이 찾아온다면, 그건 보통은 좋은 일이 아닌 것이다.

"영주님을 뵙습니다."
주인장은 그가 아는 최대한의 존댓말과 예법을 사용해 요나를 반겼다.


"고개를 들어라."
허락이 떨어지자 주인장은 고개를 들어올렸고, 그 상태로 또 한번 굳었다.

영주의 뒤를 따라온 사람은 마치 이세상 사람이 아닌 듯 했다. 마치 아름다움이라는 글자가 형상화되어 나타난 듯한 형태였다. 얇고 길게 황금비율로 뻗어진 몸에 고급 흑단처럼 떨어지는 머릿결도 그렇지만, 성별과 종을 초월한듯이 아름다운 얼굴이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검은색 정장으로 대비되어 더욱 부각되는 백색 피부는 그를 더더욱 인형같은 걸로만 보이게 만들었다.

적당히 잘생긴 남성이 같이 들어왔다면 영주의 정부정도로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천박한 것을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의 미인이었다.

주인장이 정신을  차리고 있자, 요나는 조금 성가시다는  혀를 차며 정신차리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제서야 주인장은 정신을 차리고 떠듬떠듬 말을 이어갔다.

"여..영주님. 그 뒤에 계신ㅂ.분은 일행 분이십니까?"
"아. 숙박때문에  것은 아니다."
"그럼 그, 무슨 일로.."
"지금 여기에 머물고 있는 사람이 있나?"
주인장은  말에 칼린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며 뒷걸음질 치다가, 손을 더듬거리며 명부를 찾아 잡아 올렸다,

"지, 지금은  명정도가 머물고 있습니다. 다같이 왔으니 전부 일행일겁니다."
"잘됐군. 그들을 아래로 불러와라."
"아, 넵!"
날아가듯 뛰는 주인장의 등을 바라보며, 요나가 불평하듯 칼린에게 말했다.


"진지하게, 다음에 나올 때에는 후드를 쓰고 나오도록. 눈에 띄겠지만  얼굴보다는 낫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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