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화 〉낯선 도시에서
방 안에 정적이 이어졌다.
요나는 그가 칼린에게 무슨 말을 해왔는지 기억한다. 처음 주웠을 때부터 칼린을 괴물이라 부르고 남창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전에 한 말들은 경계심에 어쩔 수 없이 한 말들이다. 너는 불확실한 요소가 많았으니까. 불확실하면서도 빛나서 어쩔 수 없는 경계였다. 신경 쓰고 있었다면 미안하지만, 역시 세상에 너같은 괴물은 없어."
요나가 담배를 털어내며 평정을 가장하면서 말했다. 그러나 그녀의 목소리는 조금 떨리고 있었다.
반면 칼린은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언어를 알기도 전에 들은 말들을 기억할 리가 없다.
"저는 영주님이 저에게 했던 말이 뭔지 모릅니다. 그냥 제가 괴물이라서 꺼낸 말일 뿐이에요."
그렇게 말하고 칼린은 이불 아래로 주먹을 쥐었다.
"그저 제가 팔리고도 도움이 되는 놈이었다고 기억될 수 있다면 좋겠네요."
그리고 가볍게 진담을 섞은 농담을 뱉었다.
"고기를 못 먹는 다는 것도 같이 기억해 주시면 고맙고요."
"그게 무슨-"
요나가 말을 하려 할 때 방에 노크소리가 울렸다.
"영주님, 작업자 분들이 도착하셨습니다. 홀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요나는 피던 담배를 탁자 위 재떨이에 비벼서 껐다. 그러며 잠깐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래서, 토한 거는 고기 때문에 그런 것이었냐?"
"네."
시원할 정도의 즉답에 요나는 잠깐 정면을 보다가 털털한 웃음을 지으며 방문을 열었다.
"대화는 즐거웠다. 내일 대련도 기대하도록 하지."
그런 말을 남기고 요나는 방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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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까지가 점심에 칼린의 방에서 일어났던 일이다. 요나는 그 후 수세식 화장실과 설치 개요 및 보급화 계획을 하고 저녁을 먹은 뒤 이제 막 영주실에 들어왔다.
"알레프."
"네, 영주님."
작업중에 그녀가 집사에게 먼저 말을 거는 일은 드물다.
"너는 괴물에 대한 이야기를 잘 아는가?"
특히 이런 사담의 경우는 그녀가 성인이 된 이후로 아마도 처음해보는 것이다. 노집사는 그녀의 오락성 질문에 최고의 대답을 하기 위해 열심히 머리를 굴려보았다.
"...집사가 되기 전 떠돌이 친구들이 조금 있었습니다. 그 친구들이 모험을 다니며 말해준 게 몇가지 있죠. 궁금하신 거라도?"
요나는 확인하던 서류를 잠깐 내려놓고 그녀의 노집사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질문했다.
"고기를 못 먹는 괴물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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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린은 자신의 선택이 맞았는 지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다. 정확히 하자면, 자신의 선택은 맞았지만 그걸 후회하지 않을지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침대 아래에서 그의 스승에게 받은 담배 케이스를 꺼냈다. 안에는 담배 15개비가 가지런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내일부터 그는 인문학 및 기본 상식 등을 배우게 된다. 그 말은 이번 교육을 마치면 그는 어엿한 사회의 일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넌 기회를 줘도 못 잡는 병신이로군.'
그의 침대위를 떠다니는 환각들이 그를 조롱했다. 칼린은 담배케이스를 돌려가며 바라보다가 거기에서 벌떡 일어나 등불로 다가갔다.
담배에 불을 붙인 그는 이 선택을 후회해선 안된다고 자신을 부추겼다. 천천히 담배를 머금으며 이것이야말로 그의 족쇄가 되어야 한다고 마음먹었다. 그가 담배연기를 환각에 내뱉자, 연기에 흘러 녹아내리듯 사라져 갔다.
'백날 혼자 그래봐라, 아둔하고 가여운 것. 이세계의 그 누구도 너를 긍정해주지 않을 거야.'
그런 환청이 방 안에 울리듯 퍼졌다. 칼린은 비웃음을 머금고 그 담배를 마저 핀 후 재떨이에 불을 비벼 껐다. 그리고 입 안에 손을 넣었다.
그의 예상대로 날카로운 송곳니가 만져졌다. 짧은 심호흡을 하고, 그는 '해야 할 일'에 들어갔다.
방 안에 소리없이 비명이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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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쿠르트는 그녀의 제자에 대한 걱정으로 하룻동안 진정할 수 없었다. 전날 저녁에 요나의 집사에게서 내일은 대련도 오전수업도 없을 테니 방 '안에서만' 대기해 달라는 부탁을 받지 않나, 그러더니 정오 즈음에는 방으로 찾아와 칼린의 상태가 안 좋으니 오늘 수업은 없을 것이라고 일방적인 통보를 받았다.
리쿠르트도 칼린의 안색이 나날이 안 좋아 지던 것을 알고 있다. 단 수업도 못들을 정도로 악화되었다니 걱정돼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혹여 자신이 준 담배가 원인이라도 된다면 그녀는 자신을 용서하지 못할 것이다. 무엇보다 걱정되는 것은 요나였다. 자신을 교사로 고용하고서 계속해서 칼린에게 독단적인 행위를 가하고 있었다.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오전 중에 밖에 못 나오게 한 이유는 이제와서 어찌되든 상관없었다. 반역자의 딸이라는 오명을 달고 다니며 학교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아오던 그녀에게, 총명하고 순종적이었던 칼린은 빠르게 그녀의 총애를 얻었다. 요컨데, 칼린은 그녀의 애제자였다.
그렇기에 신경이 쓰였다. 자신의 제자가 어떤 상황인지는 알아야 겠다고 느꼈다. 지금 요나에게는 자신에 대한 존중이 없었다.
무슨 소식이라도 오기를 기다리던 리쿠르트는 저녁이 되자 충분히 기다렸다고 판단하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녀는 마지막 남은 인내심으로 칼린의 방을 바로 들어가기 전에 영주의 방으로 갔다.
"...리고 극남...으로 가면 나무만...거인도 있..는군요"
문 뒤쪽에서 작게 들려오는 집사의 목소리에 영주가 지금 있다는 것을 파악한 리쿠르트는 망설이지 않고 문에 노크했다.
"급한일이 아니라면 돌아가라. 오늘 저녁은 바쁘군."
"리쿠르트입니다. 칼린을 만나고 싶습니다. 허락해 주신다면 바로 지나가겠습니다."
그 말에 문 너머로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들어와라."
그리고 출입의 허가가 떨어졌다.
"리쿠르트, 칼린은 지금 상태가 안 좋다고 전해줬을 텐데. 큰 병이 아니니 내일부터 다시 수업을 듣겠지만 오늘은 절대 안정을 요구한다. 용건은 그게 다인가?"
요나의 폭력적으로 일방적인 대답이 돌아왔다. 리쿠르트는 잠깐 어이가 없어 할말을 잃었다가, 이윽고 분노했다.
"저는 그의 스승입니다! 전날 저녁에 일방적으로 내일 오전 수업이 진행되지 않을 것이라고 하며 저를 죄인처럼 방에 가둔 것도 참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상태가 안 좋다고 통보하고 그걸로 넘기라구요?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들어야 겠습니다. 말 해주시지 않는다면 칼린에게 직접 들어야 겠습니다!"
그녀의 분노는 칼린 때문만은 아니다.. 헌신짝처럼 버려진 그녀의 아버지에 대한, 요나의 잘못이 아님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생기는 감정과, 이젠 너무나 바뀌어 버린 그녀에 대한 실망감이 섞인 분노였다. 이 성에 왔었을 때부터 느껴오던 그 응어리가, 존중 없는 통보로 인해 폭발했다.
요나는 그 장면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고서 말했다.
"리쿠르트, 네 아버지는 내가 아는 모든 교사 중 최고의 스승이었다."
갑작스럽게 들어오는 아버지의 칭찬이 그녀의 가슴 안에 꽂혔다. 방금의 분노에서 요나가 자신의 부당한 분노까지 읽은 것을 눈치채고 느낀 수치심과, 그럼에도 듣고 싶었던 말을 들을 수 있었다는 승리감이 섞인 감각이었다. 그런 그녀를 살피며 요나가 말을 이었다.
"그래서 난 너를 가정교사로 채용했다. 넌 나의 훌륭한 벗이었고 스승이기도 했다. 너라면 네 아버지를 뛰어넘는 가정교사가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리쿠르트의 마음이 풀리고 있었다. 사실은 믿고 있었다. 그녀의 직책때문에 철옹성을 지은 것이지, 요나라는 인물의 본질은 바뀌지 않은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리쿠르트의 가족이 힘든 시기를 겪고 있을 때에도 단 한번 연락조차 없던 것은 다른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렇다면-"
"-하지만 실수였다. 넌 네 아버지의 발 끝조차 도달하지 못 하는군."
그런 순간에 마치 선포라도 하듯 냉엄한 말이 떨어졌다."
"감정에 휘둘려서 거짓보고를 해왔지. 다른 사람도 아닌 네가 칼린의 이상한 점을 눈치채지 못했을 리 없다. 분명 교육 첫날부터 그가 어느 정도의 교양이 있는 외국인이라는 것은 눈치챘을 것이다. 하지만 너는 '냉혹한'나를 경계해서, 제자를 지켜 보이겠다는 알량한 정의감을 핑계로 나에게 저항하려고 했다. 보고는 교사의 업무가 아니다, 뭐 이딴 식으로 스스로를 정당화 했었겠지. 내 말이 틀렸나?"
요나는 한마디 한마디에 힘을 주며 확실하게 말하고 있었다. 군인 출신인 그녀의 말은 무게를 가진 듯 리쿠르트의 정신에 하나하나 확실히 파고들어갔다.
"넌 총명하고 똑똑하다. 문제는 나도 그걸 안다는 거지. 어리석은 리쿠르트, 도대체 언제까지 나를 속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 너는 내가 칼린에 대한 것을 알게 되도 그저 '리쿠르트는 몰랐겠지'하고 넘어갈 것이라고 생각한 거냐? 난 한때 네 가족이었다."
리쿠르트는 당황해서 패닉 상태에 빠졌다. 그녀의 손발이 약하게 떨리고 있었고 눈빛은 허공을 돌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 점, 감정에 치우친다는 그 점 때문에 나는 너에게 오늘 있던 일을 알려주지 않을 것이다. 칼린에게 직접 듣고 싶다면 들어라. 단 내가 너에게 알리지 않은 '사실'들이 칼린의 수업을 방해한다고 판단되면, 나는 너를 자르고 다른 교사를 찾아보겠다. 너만큼 잘 가르치는 자는 몰라도, 너보다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본분에 충실한 자는 쉽게 구할 수 있지. 전부 이해했다면 방을 나가도록."
그 말을 마지막으로 방안에 긴 침묵이 흘렀다.
리쿠르트는 하고 싶은 말이 너무나도 많았다. 다만 입이라는 좁은 입구에 껴서 단 하나도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이윽고 그녀는 떠오른 그 모든 말로도 자신을 정당화시킬 수 없음을 알았다.
그녀는 얼굴을 푹 숙이고 끌려가듯 영주실 밖으로 나왔다. 비틀거리며 방으로 돌아가는 중 칼린의 방이 보였다.
그의 방 안에서는 낮은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상처입은 짐승이 죽어가며 내는 소리 같았다. 그 소리를 듣고서 리쿠르트는, 적어도 칼린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만큼은 진짜였다고 판단하고 방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그러다가 떠올랐다. 자신이 지금 방에 들어가서 모든 이야기를 듣는다면, 자신은 그의 가정교사로 남을 수 있을까 라는 것이. 그의 모든 걸 알게 된 후에도 수업을 유지하지 못한다면, 나날이 버티기에 급급했던 그 때로 돌아간다. 성 밖으로 쫓겨나 재능도 의욕도 없으면서 건방진 귀족의 자제들에게 돌아가게 된다.
애제자의 성장조차 보지 못하고 그저 무관계한 인간이 되어 버린다.
모든 것이 영주에 대한 반발심으로 생겨난 감정이라고 해도, 그를 걱정하는 그녀의 마음은 진짜였다. 그리고 분명히 그녀는 자신의 유능한 제자를 아꼈다. 그러나 그녀는 계속해서 신음이 새어나오는 방문에서 등을 돌렸다. 머릿속으로 셀 수없이 '그는 오늘은 안정을 취해야 한다'라고 되뇌면서.
"추악한 스승을 용서해주세요, 칼린."
마치 회계하듯 혼잣말을 내뱉으며 리쿠르트는 어두운 복도를 달려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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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거인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해봐라, 알레프."
요나의 목소리가 영주실의 침묵을 깼다.
"그 전에 하실 말씀은, 영주님?"
요나는 알레프를 노려보다가, 이길수 없다는 듯 한숨을 뱉으며 말했다.
"좋아, 나도 감정적이었다. 인정하지. 다만 후회하지 않는다. 강약의 차이었을 뿐, 해야 할 말을 했을 뿐이야. 나에게 불만을 품고 있고 날 속여오던 여자고, 그 유능함을 높이 사 가벼운 질책으로 넘어가 준 것이다. 이 정도면 충분히 가볍지 않았나?"
"뭐 때문에 그렇게 화나셨던 겁니까?"
요나가 변명하듯 늘어놓는 말에, 노집사는 질문 하나로 답했다. 그녀는 손가락으로 책상을 신경질적으로 두드리며 생각하다가 말했다.
"...하루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내가 지쳐서 신경질 적인 게 불만인 건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저 물어봤을 뿐입니다."
"흥이 떨어졌다. 괴물이야기는 그만 듣도록 하지."
그러고 업무를 재개한 그녀는, 1분정도 뒤 고개를 들어올리며 집사에게 질문했다.
"그러고 보니 내일부터 칼린의 상식과 인문학수업이 시작 되는군. 내가 맞나?"
"맞습니다."
"수업시간을 7시간정도로 줄여라. 스케쥴 배분은 리쿠르트에게 맡기고. 줄인 시간은 나와의 대련 및 우리 도시를 경험하는 시간으로 쓰게 될 것이다."
"그를 보내는 시간이 늦춰질 텐데요?"
"프, 이제 와서? 칼린도 성 밖이 어떤 지는 알아 두는 게 좋다. 어디로 팔릴지 모르니까 말이야. 나도 그에게서 배울 것은 전부 배워 두고 싶고."
요나는 능력 있는 자를 높이 산다. 왜 자신을 괴물이라고 하며 도시를 떠나려는 지는 모르지만, 자신이 갈고 닦으면 분명 공장 한개정도와는 비교도 안될 인력이 될 것이다. 성격도 온건하고 눈치도 빠르다. 그래서 그런 계획을 냈다. 그가 직접 도시를 경험해 본다면 생각을 바꿀지도 모르니까.
집사는 요나가 다른 계획을 설계중인 것을 간파했으나, 주군의 뜻에 이견은 낼 수 있을 지언정 무작정 부정은 할 수 없는 법이다. 아직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는 이상 그걸 캐묻고 싶지는 않았다.
"알겠습니다, 주인님. 내일 아침에 리쿠르트씨에게 전하겠습니다."
"그럼."
그 말을 마지막으로 요나는 다시 업무에 집중했다. 각자의 밤이 깊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