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화 〉낯선 도시에서
"나오셨습니까."
방 문에서 나오는 칼린에게 정중하게 인사한 것은 영주의 노집사, 알레프였다. 칼린은 반사적으로 자신의 드러난 팔부분을 가리며 대답했다.
"안녕하세요, 무슨 일이신 가요?"
노집사는 그렇게 묻는 칼린에게 최고의 웃음을 보이며 답변했다.
"오늘은 성에 귀빈분이 오시는 날입니다. 칼린님과 같은 마차를 타고 오신 대상인 에테롬경이 찾아오십니다. 칼린님을 보고 싶어 하시구요."
그렇게 말하며 그는 들고있던 옷을 칼린에게 건내 주었다.
"때문에 오늘은 예복을 입으시고 식사에 참여하시라는 영주님의 명령입니다. 옷만 전해드리고 떠날 생각이었는데, 평소에도 이렇게 빨리 일어나시는 줄 몰랐군요. 실책입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고서 칼린을 쳐다보다가 얼굴을 찡그리며 말을 이었다.
"그나저나 심한 몰골이군요. 아름다운 얼굴에 다크 서클이 생겨버렸네요. 성의 생활이 안 맞으신건가요?"
칼린이 채 대답하기 전에 노집사는 손가락을 들어 그의 말을 멈추고 시종을 불렀다.
"그의 다크 서클을 가릴 화장을 해놔라."
그 말에 크게 동요한 칼린은 반쯤 항의하듯이
"저는 남자인데요?"
하고 외쳐버렸다. 노집사는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잠깐 바라보다가 말했다.
"실례지만 저는 리쿠르트님처럼 다른 나라의 문화에 해박하지 않습니다. 다만 오늘의 식사는 무척 중요한 것이고, 칼린님의 초췌한 인상은 그걸 망쳐버릴 수도 있습니다. 벨카의 인상을 결정하는 일이 될 수도 있어요. 칼린님의 '고향'에 남자가 화장하면 죽는다는 철의 규칙같은 것이 없다면 부디 한번만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말한 알레프는 시종이 오자 등을 돌리고 자리를 떴다. 칼린은 망연자실하게 그의 등을 바라보고 있다가,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시종들에게 옷만 갈아입고 문을 열겠다고 하고 방에 들어갔다.
에테롬은 이미 성 안에 들어와 있었다. 해가 지기 전에 돌아갈 계획을 짜 놓은 그는 일찍 성에 와서 영주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요나의 말 한마디, 성의 편의 하나가 벨카의 인상을 결정하게 될 것이다.
"정말이지, 벨카는 아름다운 도시였습니다. 이곳 저곳을 다 돌아 보았지만 일주일로는 도저히 부족하더군요!"
"과찬이십니다. 땅만 넓을 뿐이죠."
요나가 그렇게 말하며 에테롬의 담배에 불을 붙여주었다. 에테롬은 담배를 피며 말을 이었다.
"주민들도 표정에 생기가 살아있더군요. 마치 이곳만 전쟁을 겪지 않은 곳 같아요. 몇 번이고 자랑하신 수도 시스템은 정말 자랑할 이유가 있었습니다. 누가 개발한 방법이죠?"
"제 조부님께서 직접 개발하신 방식입니다. 아, 공법은 죄송하지만.."
"아뇨, 괜찮습니다! 그걸 물어볼 수는 없죠!"
둘의 대화는 꽤 잘 풀리고 있었다. 에테롬은 이 도시에 상당히 만족스러웠고, 요나는 이 만남에 상당한 준비를 했기 때문이다.
"실례합니다."
대화가 진행되는 중 영주실에 집사가 들어왔다. 그리고는 영주에게만 들리도록 작게 말을 전했다.
"주방에서 요리가 끝났다고 합니다. 그리고 칼린에게 예복 전달을 마쳤습니다."
그녀는 그 말을 듣고 꼬고 있던 다리를 풀며 말했다.
"조찬준비가 끝났다 하네요, 자세한 이야기는 식사 중에 하는 것 어떻습니까? 칼린도 식탁에 참여할 것입니다."
그 이름을 듣자 상인은 흥분을 숨기지 않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말 기대되네요!"
이세계에서 고기는 귀족도 먹기 힘들 정도로 귀한 자원이 아니다. 가끔 평민들도 즐길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은 된다. 다만 요나가 식사에 사치를 들이는 것을 싫어하는 탓에, 평소 그녀의 식탁은 보통 야채수프나 버섯류의 음식이 많이 나온다.
하지만 에테롬과의 식사에 그런 상을 차린다면, '벨카는 귀빈에게도 제대로 된 식사를 대접하지 못할 정도로 가난하다'등의 소문이 퍼질 수도 있다. 그래서 오늘의 요리는 겉보기에 화려한 육류가 주를 이루고 있었다.
"정말 굉장한 향기가 풍겨오네요. 무슨 요리가 나오는지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알레프의 부탁에 그녀가 준비한 식사를 요나가 하나씩 설명해 주고 있던 때였다. 예복을 입은 칼린이 식사자리에 도착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며 최대한의 예를 갖추며 인사했다. 그 모습에 잠깐 식탁에 정적이 흘렀다.
"맙소사, 정말로 아름다워졌군요. 숲에서 알몸으로 뛰쳐나왔을 때도 그랬지만, 정말로."
반정도는 탄식하며 에테롬이 그렇게 말했다. 요나는 그 말에 대답할 수 없었다.
'저 정도로 아름다웠는가.'
칼린을 계속 마주하면서 요나는 그에게 슬슬 익숙해져 간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어림도 없었다. 경계심을 지우고 제대로 마주하게 된 그는 다시 그녀의 머릿속을 뒤흔들었다.
'총명하고 검에 재능도 있다. 나는 정말 그를-'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그녀는 강제로 생각을 멈추고 정신을 차렸다.
"앉아라, 칼린. 너가 배운 것들을 보여 드리렴."
그렇게 부드럽게 말한 요나는 에테롬이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만 눈을 돌려 칼린과 눈을 마주하는 것을 피했다.
"말도 하고, 예법도 익혔군요! 단 일주일만에! 대본이라도 준 겁니까?"
그 말에 칼린이 대답했다.
"주워 주신 에테롬님의 은혜 덕분에 조금 배웠습니다. 대본같은 것은 따로 받지 못했네요."
완벽한 '대답'에 상인은 또 한번 놀랐다.
"정말 팔방미인이란 이런데 두고 하는 말이로군요. 일주일만에 이정도까지 회화를 할 수 있을 줄은."
그 말에 칼린은 옅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요, 배운 터가 좋았을 뿐입니다."
에테롬은 칼린이 같은 언어형식을 사용하는 타국출신자라고 생각이 들어서 몇가지 언어로 말을 걸어 보았다. 다만 칼린이 그걸 알 리가 없으므로 그저 일관되게
"무능한 탓에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맙소사, 진짜로 야생아가 이렇게 빠르게 사회화되었단 겁니까? 매일마다 와서 봤으면 좋았을텐데!"
에테롬은 그 결과에 경악을 숨기지 않았다. 분명 사교계에 던져 놓기만 해도 큰 파장이 일 것이다. 요나가 말한대로 칼린은 괴물이었다.
이윽고 식사가 도착했다. 식탁의 분위기도 무르익었고 완벽한 상황이다. 요나는 그렇게 판단하며 냅킨을 펼치다가 불안요소를 발견했다.
칼린의 표정이 심각하게 굳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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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린은 지금이 자신이 받은 은혜를 갚기 가장 좋은 상황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때문에 가장 완벽한 타이밍에 나와서 가장 완벽한 대사와 행동을 고르며 자신이 받은 교육의 질과 이 성에서 받은 대우 등을 어필하고 있었다,
문제는 잠시 후 도착한 식사에 있었다. 지난 일주일간, 칼린은 육류를 접해본 적이 없다. 때문에 지금 그가 육류를 접하면 어떻게 될지 모르고 있었다.
그의 정신은 상당히 피폐해져 있었고, 그가 결심한 선택은 그의 목을 조르는 괴로운 선택이었다. 그 상황에서 칼린이 고기를 보며 그가 죽여온 동물들을 연상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이상한 일은 아니다.
"안돼, 지금은 안돼."
그는 혼자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조용히 뱉었다. 서둘러서 다른 생각을 해보려고 했지만 이미 늦었었다. 그의 생각이 정신을 침식하기 시작하며, 시야가 일그러져갔다.
'뭐가 안된다는 거야, 칼린.'
고기에서 발굽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여러가지로 뒤틀리며 섞이고 꼬인, 그가 인생에서 봐온 그 어떤 형태보다도 불경해 보이는 것들로 서서히 모습을 바꿔갔다.
'언제까지 피할 생각이었어? 칼린.'
여기저기로 툭 불어나온 눈알을 뒤룩뒤룩 굴리며 '고기'가 말했다. 칼린은 숨을 가다듬는데 실패해서 과호흡증상을 일으키고 있었다.
'넌 이곳에서 환영받지 못해, 전상민."
점점 뚜렷해지는 환각과 환청에, 칼린은 그만 토해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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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는 정신을 잃을 것 같았다.
식사가 나오기 바로 전까지 모든 것이 완벽했다. 사실, 칼린이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전날 저녁먹은 것까지 토해낼 기세로 토하지만 않았다면 완벽하게 끝났을 것이다. 요나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그녀의 노집사를 쳐다보았지만, 노집사도 적지 않게 당황한 것을 보고 모두의 예상밖의 일이 일어났다고 눈치챘다.
그녀는 상인 쪽을 바라보았다. 에테롬은 당황하면서도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노집사와 함께 칼린을 부축하며 일으켜 세웠다.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겁니까, 요나경!"
상인이 그렇게 외쳐도 요나는 할 말이 없었다. 정말 그녀도 영문을 몰랐기 때문이다.
"모릅니다, 에테롬경! 저도 이런 그는 처음 본단 말입니다!"
그렇게 대답하며 뒤늦게 요나가 칼린을 향해 뛰어갔다. 칼린은 자신의 주변에 사람들이 모인 것을 보고 조금 정신을 차렸다.
"칼린공, 괜찮으십니까? 아프신 겁니까?"
상인이 다급하게 그렇게 물었다. 그 질문에 요나의 얼굴이 한순간 하얘졌다.
만약 그가 계속 아파왔고 그걸 방치한 결과가 이것이라면, 벨카의 영주가 '맡아'둔 사람 하나 제대로 간수하지 못하는 무능한 사람이라고 알려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분명 그의 인상은 계속해서 안 좋아지고 있었다. 자신의 안심을 위해 계속해서 칼린을 몰아붙이고 있던 요나는 그걸 알면서도 무시하며 접촉을 진행해왔다.
'완벽한 실책, 자업자득이다.'
그녀가 그렇게 생각하면서 포기하듯 머리를 감쌌을 때였다.
"죄송합니다, 너무 긴장해 버렸나봐요."
천연덕스럽게 말하는 칼린의 목소리가 모두에게 퍼졌다.
"긴장이요?"
에테롬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되묻자 칼린이 물 흐르듯 대답했다.
"사실 전날부터 내일 상인님이 오실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아직 밖을 모르기에 상인님에게 많은 이야기를 듣는 것이 기대돼서 잠도 자지 못했습니다. 근데 막상 상황이 다가 오니 말도 조금 빠르고 상황을 쫓는 거에만 벅차 져서.. 그래서 이런 실수를 한 것 같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 말에 에테롬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잠깐 멍하니 있다가, 조금 웃으며 말했다.
"이렇게 얇은 몸으로도 밤까지 설치며 기다려 줬다고 하는데, 이 정도 실수로 화내지 않습니다. 다만 지금은 주무시는 것이 먼저일 것 같군요."
그 광경을 영주와 집사는 숨죽여 보고 있었다.
칼린이 한 말 중에 진실은 없었다. 상인이 올 것이라는 사실은 칼린이 겁먹을까봐 일부러 당일 아침에 말을 전달했다. 그리고 방금 대화한 수준을 봤을 때 칼린이 대화를 따라잡지 못했다는 것도 이상하다. 무엇보다, 그는 얇은 몸을 가진 나약한 사람이 아니다. 국가 영웅 요나와의 대련을 따라가고 있는 재능을 가진 이다.
그는 놀라울 정도로 거짓말에 능했다. 다행인건 칼린이 이 상황을 완전히 이해하고 있다는 것과 요나를 적대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제가 칼린을 방으로 옮겨드려도 될까요?"
"아, 물론입니다. 알레프. 방까지 안내해 드려라."
"알겠습니다."
집사와 상인이 그를 방으로 옮기는 것을 보면서 칼린은 식탁 자리에 쓰러지듯 앉았다.
"살았다.."
그녀는 담배생각이 간절했지만 식사 전에 피는 것은 예의가 아니기에 참아냈다.
이후 상인과의 대화는 정상적으로 진행되었다. 비록 자리에 칼린은 없게 되었지만 그의 일주일간의 사회화 결과에 만족한 에테롬이 계속해서 대화를 이끌었다. 그는 칼린의 가정교사를 보고 싶었지만, 요나는 일부러 리쿠르트를 숨겨두고 있었기에 그건 힘들 것 같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그리고 왕도의 기술과 상인이 사갈 것들에 대해 거래의 시간을 가진 후, 점심을 먹고 상인은 돌아갔다.
"뭐, 한가할 때 다시 칼린을 보러 오겠습니다. 이정도면 교육이 오래 걸리지는 않겠군요."
그 말을 하며 마차로 돌아가는 에테롬을 자신의 사병으로 마중 보내고, 요나는 성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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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린은 절대 안정을 취하라는 이유로 방 안에 갇혀 있었다. 오늘의 수업을 통짜로 빠지게 되었으므로, 자신의 스승이 이 사실을 알고 있을 지 걱정하는 중이었다.
"들어가마."
노크도 없는 그저 통보하는 듯한 소리. 문이 열리고 요나가 칼린의 방에 들어왔다.
"몸은 좀 어떻지?"
침대 근처로 의자를 하나 끌어오며 요나가 물었다. 칼린은 자신이 오늘 보인 치태에 대한 규탄을 듣게 될 것이라고 생각해 조금 풀이 죽었다. 잘 해보겠다고 마음먹은 지 하루만에 일어난 일이니 그럴 법도 하다.
"정말 죄송합니다. 귀한 손님의 대접을 망쳤습니다."
"몸이 어떠냐고 물었다."
단호하게 묻는 요나에게 칼린은 조금 어물쩡댔다.
"몸은 괜찮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런가, 다행이군."
그녀는 자신이 가져온 의자에 앉으며 말을 이었다.
"오늘은 큰 빚을 졌다. 그 상황을 정말 잘 넘겨줬어."
"아뇨, 제 상태가 안 좋아서 일어난 문제이니-"
"네 상태는 내가 관리해야 했다. 나날이 안색이 나빠지는 걸 알면서도 평소 일과를 구르게 했지. 명백한 나의 실책이다. 미안하군."
영주는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적어도 이세계에선 군주의 사죄는 무게가 무겁다.
칼린은 거기에서 무작정 부정하는 것도 영주의 사과를 가볍게 여기는 것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때문에 아예 대화 주제를 바꾸기로 했다.
"오늘은 그러면 하루 종일 방에만 있나요? 교육도 없이?"
"그래. 전염병일지도 모르니까 식사를 옮길 시종들만 방을 지나다닐 것이다. 리쿠르트에게는 집사가 말을 전달해 놓았을 테니 걱정하지 말고."
그렇게 말한 요나는 잠깐 생각하다가 다음 말을 이었다.
"..우리 윌레인 왕국은 완벽하게 투항한 포로에게 잔인한 처사는... 보통 하지 않는다. 특히 귀족의 자재라면 그것이 망국출신일 지라도 그에 걸맞는 대접을 해 준다. 뭐, 아무래도 지금 처럼은 무리지만 말이야."
주머니에서 담배를 하나 꺼낸 그녀는 잠깐 일어나 방에서 등불을 찾아낸 뒤 담배에 불을 붙였다.
"네 사정은 잘 모르지만 알 수 있다. 너가 그저 숲에서 구르던 방랑 걸인이 아닌 것 쯤은 알 수 있어. 그걸 숨기려고 하는 것도 안다."
요나가 담배를 피우며 말했다.
"칼린, 너가 원한다면 내가 너를 난민으로서 우리 국가에 받아들여 줄 수 있다. 가축처럼 팔리는 것이 아니라, 난민으로서 정식으로 우리 국가에 들어오는 것이다. 이름도 너가 원하는 이름으로 바꿔서 말이야. 평민으로서 시작해서 다시 우리 성으로 사용인으로서 들어와라."
칼린은 그 말을 듣고 잠깐 정말로 기쁜 듯 웃었다. 그러나 잠시 뒤 원래 표정으로 돌아가며 물었다.
"그러면 상인분과 거래는 어떻게 되는 거지요?"
"어디까지나 비형식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거래니까. 관계는 조금 바뀌겠다만, 그걸 사유로 거래가 진행되지 않을 것도 없다."
거짓말이었다. 왕도의 상인의 눈 밖에 나서 그렇게 가볍게 넘어갈 리가 없다. 수도 도시지역의 영주라면 모를까, 지금의 벨카는 너무 작고 낙후되어 있다. 요나는 이렇게 말하면서도 자신이 왜 이런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조금 혼란스러웠다.
반면 칼린은 정말 좋았다. 이런 제안이 들어온 것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정식 시민으로서 등록되어 마을을 다닌다면 정착도 가능해 질 지도 모르고, 많은 것을 접하며 돌아갈 방법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된다. 그는 자신이 괴물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남의 피를 빨아먹지 않으면 안되는 모기같은 놈이라고 자각하고 있었다. 그런 은혜를 입고서 나중에 흡혈욕구를 못 참고 일을 터트리면 은인의 등에 칼을 꽂는 일이 되어버린다.
"제안은 정말 감사하지만 괜찮습니다."
그 말에 요나는 당황했다. 스스로 말하고도 후회하던 제안이었다. 칼린의 반응을 봤을 때 무조건 받아들일 줄 알았던 제안이다. 다음으로 이어질 말은 분명 '정말 감사합니다'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그래야 했다.
"우리 성에서 일하는 것이 싫은 건가? 갖가지 복리후생도-"
"아니요, 그게 아닙니다 영주님."
눈이 둥그래져 있는 요나에게 칼린이 말했다.
"더이상 영주님께 민폐를 부릴 수 없습니다. 제가 받은 은혜를 조금이라도 갚아야죠. 저를 계속 받아들여 주신다면 언젠가는 화를 입을 겁니다."
그렇게 말하며 칼린은 솟구쳐 오르는 두려움을 누르며 말을 이었다.
"저는 괴물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