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화 〉프롤로그 (1/164)



〈 1화 〉프롤로그

전상민은 딱히 생에 애착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감성이 지나치게 예민한 점은 있어도, 다르게 말하자면 생각이 깊고 배려를 잘해서 좋은 친구도 많았다. 험악하다고 할  있는 외모를 가졌지만, 그걸 무기로 삼아 경호원이라는 직장도 가졌다.

 해에 한번은 여행을 갔고, 여러번의 연애를 겪으며 그 중 한번은 진짜 사랑을 배우기도 했다.


가치 있는 인생을 살아왔으며, 그도 그걸 알고 있기에 그의 인생을 아꼈다.

그러나 그는 그가 살아온 인생만큼 건강한 정신을 가진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아끼는 자신의 인생이었기에, 종결권도 자신이 가지기를 원했다. 천천히 늙어가며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인생을 사는 것 보다는, 차라리 영웅적인 희생을 계기로 단명하는 것을 원했다. 그럴 일이 생기지 않는다면, 적어도 자신이 죽는 방법을 선택해서 스스로 끝내고 싶었다.


때문에 슬그머니 자살을 생각하기 시작한 30대 중반에, 전상민에게는 선물과도 같은 상황이 일어났다. 무단횡단을 시도하던 노인을 피해 핸들을 잘못 꺾은 승용차가, 인도에 있던 아이를 박으려 하는 상황이었다.


그에게는 그 순간이 마치 느리게 재생하는 영상처럼 보였다. 그의 마음속 파멸욕구가 그의 자각보다 빠르게 움직였고, 그는 아이를 구하고 승용차에 깔렸다. 하반신은 완전히 박살 났고 흘러내린 피가 도로를 적셨다. 그렇게 그는 유언조차 남기지 못하고 즉사했다.


...그랬을 것이라고, 전상민은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나무 아래에서 눈을 떴다. 그의 시야에 가장 먼저 보인 것은 나뭇가지처럼 가늘고 길게 뻗은 다리였다. 석고같은 하얀색이었다. 늠름한 세번째 다리도.


그는 잠깐동안 멍하니 앉아 있다가, 자신의 상황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했다. 그렇게 결심하고 몸을 움직여 봤다가, 그 자작나무 가지같은 다리가 자신의 것이었다는 데에 적지 않게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생전에 키190에 몸무게 100키로에 육박하는 거인 체형이었기 때문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시선은 자연스럽게 그의 팔로 이어졌다. 팔씨름으로는 져 본적이 없는 그의 자랑스러운 전완근도 사라져 있었다. 그는 상황에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개씨발"
나즈막히 터져나온 목소리가 자신의 예전 것과는 다른 미성임을 깨달았을 때, 그의 두려움이 정점을 찍었다. 무슨 연유로 이렇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그는 자신이 지금 자신의 중학생 시절보다 빈약한 몸뚱이를 하고 알몸으로 숲 속에 조난되어 있다고 파악했다.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숲의 동물들을 자극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숨소리조차 꺼려졌다.

전상민은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먼저 침착하고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자리에 다시 앉았다. 전생에 해왔던 궂은 일들은 그가 빠르게 침착해지는 데 도움이 됐다.

40분정도간 그가 앉아서 혼자 생각한 가능성은
1. 여기는 천국이다.
2. 여기는 지옥이다.
3. 난 지금 뇌사 상태이며 꿈을 꾸고 있다.


 정도였다. 다만 꿈을 꾸고 있다면 감각이 느껴질 수 없기에, 그는 3번은 아닐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의 희망사항이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그가 떠올린 것은, 어렸을 적에 봤던 공포영화였다. 어떤 여자아이가 죽음으로서 동화속 이세계로 가는 열쇠를 얻는 영화였다. 그는 자신이 모종의 이유로 자신이 살던 곳과는 다른 세계에 와있을 가능성도 떠올렸다, 다만 여기 앉아서 혼자 생각하기에는 모든 게 억측일 뿐이라고 판단했기에, 그는 일단 움직이기로 했다.

먼저 그는 바람을 따라서 바로 근처에 있던 강을 찾았다. 그는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모르는 이상, 강을 중점으로 조사를 진행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갈증이 느껴지기 시작한 그는, 강물을 마시기 위해 다가갔다가 문득 어느 가능성이 떠올랐다.


'강물이 독이라면,'
그는 그 물이 마실 수 있는 물인지 알 방법이 없었다. 스스로도 지나친 경계라고 판단했지만, 아무것도 확정되지 않은 장소라면 당연한 경계 수준이라고도 생각했다.

그가 고민하고 있을 때, 작은 무엇인가가 그의 근처를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자세히 보니 그것은 다리가 여섯개 달린 도마뱀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그것은 전상민의 근처를 경계하듯 크게 피해 가서는 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그는 동물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자신이 살던 세계엔 다리가 6개달린 도마뱀은 있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때문에 여기가 자신이 살던 곳이 아니라고 확정할 수 있었다. 그리고 살아있는 생물의 피에는 독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도 떠올랐다. 짧은 생각이었고 문득 떠오른 아이디어 였지만, 지금 그가 그게 진실일지 확인할 수단은 없었다. 그는 그 도마뱀을 잡았다.


"미안하다."
혼잣말을 하며  도마뱀을 죽이려던 찰나에 그것과 눈이 마주쳐 버렸다. 원래 그는 벌래조차 죽일 수 없는 사람이었다. 이제 와서 도마뱀을 아무렇지도 않게 죽일  있을  없다.


그는 자신의 상황에 맞게 행동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그치다가, 이윽고 자신이 결코 그 도마뱀을 죽이지 못할 것을 알고 그것을 풀어 줬다. 다리가 여섯개나 달린 그것은 마치 뱀처럼 빠르게 기어가더니 사라졌다. 그는 그것이 자신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 까지 빤히 쳐다보다가, 이윽고 강물을 마셔 보기로 결심했다.

강물을 마시기 위해 상체를 굽히자, 수면에 그의 얼굴이 비쳤다. 검은색 단발의, 그가 지금껏  적 없는 미인이 비치고 있었다.

그는 그것을 자신이라고 인식하지 못해서 한참을 바라보다가,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물을 마시고 뭍에 올라간 그는, 더이상 자신이 살아오고 아꼈던 자기자신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참아왔던 것이 터져 넘쳐서 울기 시작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그가 울면서도 소리를 참느라 고개를 파묻고 끅끅대다가 얼굴을 들어올렸을 때였다. 이세계의 노을이 지고 있었다. 강 너머의 숲은 사이사이로 주홍을 흩뿌렸으며, 강은 불타듯이 강렬하게 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울고 있던 것조차 잊고 풍경에 압도되었다. 그리고는 자신이 살던 세상의 숲속 노을도 이렇게 아름다웠는지 떠올리려고 했다. 그렇게 풍경에 감회 되어 조금은 정신을 차린 그는, 해가 지기 전에 불을 피워 놔야 된다는 생각에 서둘러 근처 숲에서 마른 장작과 나뭇잎들을 조달했다. 서투른 솜씨로 나뭇가지를 열심히 비벼대던 그는 약 1시간정도 후 에야 불을 붙일  있었다.


해가 완전히 떨어지자 숲은 검정이 되었다. 전상민은 가만히 장작 앞에 앉아 나무가 타 들어가며 내는 소리에 빠져 있었다. 하늘을 보니, 그가 이제껏 봐온 모든 별들을 합친 것보다 많은 별과 둥그렇게 뜬 두개의 달이 보였다. 그가 어렸을 적 아버지와 캠프를 갔을  본 별보다도 많았다. 그 때는 라면이 있었는데, 하고 생각하니 배가 고파졌다.

그는 이 순간에도 배가 고픈 자신을 자조하다가, 자신이 원래 살던 세계의 모두가 떠오르기 시작해서 다시 흐느꼈다. 울다가 지친 그는 차가운 자갈 위에 누워서 앞으로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이 거점에서의 최종 목표를 무엇으로 할지 따위를 생각하며 천천히 잠들었다.


그의 이세계에서의 첫날이, 그렇게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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