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4화 〉춘천행(6) (74/74)



〈 74화 〉춘천행(6)

샤워를 마치고 나온 우리는 자연스레 두 손을 맞잡았다.
포개진 손으로 느껴지는 소희의 체온이 기분 좋았다.

"갈까?"

"네, 오빠."

체크아웃을 마치고 소희가 가고 싶어 했던 장소에 도착했다.
나는 그녀의 사진을 많이 찍어주었다. 아주 많이.

"오빠! 땅에 누우면 어떡해요. 옷 더러워지는데⋯."

"괜찮아, 이래야 잘 나와. 있어 봐, 내가 아주 프로처럼 찍어줄 테니까."

찰칵-찰칵- 셔터를 눌러대는 소리가 메아리쳤다.

"여기 포토존이네, 저기 가서 점프 뛰어봐. 너무 높게 뛰지 말고. 사람들 놀라 자빠진다."

소희도 내심 싫진 않은지 폴짝폴짝 뛰며 포즈를 취했다.

"여기 들어가봐봐. 그렇지. 고개 살짝 뒤로 젖히고,  아래로 당기고. 살짝 측면으로 어깨 돌리고. 그렇지, 딱이야. 그대로 있어-"

차자자자잘칵- 좋은 구도를 놓칠까 꾹 누른 손가락에서 연사가 이어졌다.
예쁜 배경에 아름다운 피사체가 더해지자 사진 찍을 맛이 났다.

"한소희 양. 지금 기분이 어떠신가요?"

"너무 좋아요. 꽃향기도 좋고, 풍경도 너무 예쁘고, 하늘도 맑고 날씨도 좋고- 리포터님도 좋고⋯."

동영상 촬영을 하며 리포터처럼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그녀는  열성적인 데이트에 아이처럼 꺄르륵- 하며 좋아했다.

모든 게 처음인 그녀에게, 나는 모든 순간을 추억으로 남겨주고 싶었다.
나와의 추억이 언제 떠올려도 나쁜 기억이 아니길 바라기에.

그 누구도, 누군가에게 나쁜 기억으로 남고 싶진 않은 법이다.

산뜻했던 산책이 끝나고 출출한 배를 부여잡고 식당을 검색했다.
가까운 곳에 국밥집이 있길래 그곳으로 향했다.

"은근히 쌀쌀한데 따뜻한 국밥 한 그릇 먹을까?"

"좋아요."

가평은 잣이 특산물인가보다. 간판 메뉴인 가평 잣 소고기국밥을 시켜서 먹었다.
국밥은 종류를 가리지 않고 뜨끈하고 든든해서 좋았다.

"크- 속이 쫘~악 풀리는 기분이네."

"오빠, 그러니까 아저씨 같아요."

"음, 나 아재 맞는데?"

"아니에요! 그럼 내가 뭐가 돼. 힝⋯."

"아- 미안, 미안. 크큭. 그럼 어떻게 해야 오빠 같은 반응인 거야?"

"오우- 속이 풀린다-! 이런 느낌이랄까요?"

"아, 야- 그건 급식 말투 아니냐?"

"애초에 저 급식 끊은  얼마  됐는데요⋯?"

"그⋯렇⋯구, 나. 하하."

괜스레 식은땀이 삐질 흘러나왔다.
내가 뭐 큰 잘못한 건 아니잖아? 앙?
내가 너 좋아하면  되냐? 앙?!

괜히 민망해진 나는 화제를 돌렸다.

"저녁에 출근해야 하지?"

"네, 이제 출발해야 되요."

식사를 마치고 춘천역으로 향했다.
열차에 앉은 소희는 당연하다는 듯 내게 팔짱을 끼고 어깨에 고개를 묻었다.
볼을 쓰다듬어 주자 흐응- 하는 기분 좋은 소리를 냈다.

내가 사건에 그다지 깊게 개입하지 않은 지금, 앞으로의 포탈은 예정대로 열릴 거다.
차분히 생각을 정리하며 다음번에 공략할 포탈을 되짚어 보았다.
열차 바깥으론 봄날의 풍경이 겹쳐지듯 지나가고 있었다.

"항상 다치지 않게 조심히. 그게 제일 중요해. 알겠지?"

"오빠는 저를 너무 애 취급 하는 경향이 있어요- 잘할 테니 걱정 마세요."

나는 가게까지 한소희를 바래다주었다.
그녀는 현재 고깃집에서 알바를 하고 있는데, 뜨거운 숯불이 오가는 곳이라 자칫하면 화상을 입을 수도 있기에 조심하라는 말을 자주 하는 편이다.

"이따가 연락할게요. 졸리면 기다리지 말고 먼저 주무셔도 돼요."

"그래, 들어가. 늦겠다."

소희가 가게로 들어가고 나는 맞은편 2층에 있는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뜨거운 숯불을 옮기고 손님들의 고기를 구워주고.
바쁘게 움직이는 그녀를 한동안 지켜보았다.

저렇게 열심히 일하는데도 옆에서 뭉그적대는 저놈이랑 시급이 같다니.
남자 알바 한 놈이 자꾸만 소희의 근처를 맴돌았다.
다른 곳이나 치우지  소희가 치우려는 테이블에 같이 붙어서 하질 않나.

손님들도 소희가 지나가면 데구르르 눈알이 돌아갔고, 소희가 고기를 구워주는 테이블은 정말로 얼굴이 닳아 없어지는  아닐까 싶을 정도로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박스티와 앞치마로도 감추지 못하는 볼륨감을 핥듯이 감상하는 놈들도 많았다.

저런 미모의 종업원을 쳐다보는 건 나였어도 그랬을 테지만, 괜히 짜증이 났다.
그리고 소희와 처음 만났던 날에 나눴던 대화가 생각났다.

한소희의 자취방, 내가 사 온 주전부리와 간단한 술.

"얼마 전에 고등학교 졸업했다고 했지. 그럼 지금은 하고있는 일이 뭐야?"

"아, 바텐더 알바 하고 있어요. 근데 이제 그만두려구요."

"왜? 무슨 문제라도 생겼어?"

"사실 술만 따른다고 해도⋯사회적인 인식이 좋진 않잖아요. 제가 전문가도 아니고⋯분위기부터가 야릇한 가게였어요. 돈이 정말 궁했기도 했고, 사장님이 그런데 아니고 깔끔한 곳이라고 계속 그러셔서 시작했는데요⋯."

무슨 말이 나올지 뻔했다.
가게 분위기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 법이다.

"처음에는 평범한 유니폼을 입고 일했었는데, 시간이 갈수록 점점 짧은 스커트나 노출이 있는 상의를 권했어요. 손님들도 은근히 업무와는 상관없는 그런 요구를 해왔구요⋯."

"무슨 말인지 알겠네. 사장이 너보고 눈치 없다고 했지? 이쯤 봐줬으면 알아서 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식으로 말했을 테고. 사장 눈깔도 끈적거리는 게 엿 같았을 것이고?"

한소희는 대체 어떻게 그렇게 자세히 아냐는 듯 깜짝 놀란 토끼 눈이 되었다.

"어, 어떻게 아셨어요⋯?"

"생각보다 흔한 얘기야.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여자애들 데려다가 물장사하는 새끼들. 그런 거로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네. 똥 밟았다고 생각해. 앞으로 그런 곳에는 얼씬도 하지 말고. 세상에 이유 없이 돈 많이 주는 건 없어. 너도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잖아. 그래도 처음이니 실수할 수 있지. 또 그러지만 않으면 되는 거야."

어리고 경험이 없으면 누구나 실수를 한다.
물론 그녀도 완전히 모르진 않았겠지만, 어려운 가정환경을 겪으며 자랐고 지금 형편이 너무 좋지 않으니 정말 바(bar)에서만 일하면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지극히 희망적인 생각을 했을 테다.

"아, 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괜히 훈계질 한 것 같아서 미안하네. 그런 의도로 말한 건 아니야. 그냥 다른  다 걸러 듣고. 상처받지 말라고."

"네⋯!"

나도 모르게 꼰대질을 한 것 같아서 얼른 주워 담았다.
마음씨가 고운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와 함께 대답했다.

"그럼 이제 딴 일 알아보겠네?"

"네, 일단은 고깃집 아르바이트라도 하려구요. 당장 뭐라도  하면 생활비가 없어서요. 그리고 여유가 조금 생기면 간호학원에 등록해보려고 해요."

"취업하려고?"

"네, 제가 아는 게 별로 없어서⋯ 생각나는거라고는 회계 자격증 따서 경리로 들어가거나⋯ 간호조무사쪽 알아보려구요."

이제 갓 스무 살이  그녀가 품기엔, 너무나도 작은 꿈이었다.
현직 종사자들을 비하하는 게 아니다. 스무 살 땐 다들 더 큰 꿈을 꾸질 않나?
나만 해도 나름 알아주는 명문대에 메이저 과를 붙었던 스무 살 때는 내가 대단하게 잘 나갈 줄 알았었다.

비록 지금 처한 현실은 볼품이 없었지만, 그때 떠올리던 희망이 바래지는 건 아니었다.
젊음이라는 건 그런 거니까.
하지만 난 그녀가 걸어온 시간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하기에, 그녀의 목표가 작다는 것에 대해 한 마디도 보태지 않았다. 이 정도 친분에서 그건 명백한 실례다.

"소희야. 오늘 밤이 지나면, 너한테 큰 변화가 생길지도 몰라. 내가 도움을 줄  있으니까.  나한테 연락해야 해."

"네? 큰 변화요? 음, 알겠어요. 그런 일 있으면 연락드릴게요. 신선하네요. 신종 작업방식인가요?"

"뭐, 그렇게 생각해도 좋고. 어찌 됐든,  이만 가볼게. 문단속 잘하고. 다음에 또 보자."

"네. 오늘 정말 감사했어요 . 도와주신 것도 그렇고⋯고민 들어주신 것도 그렇고요."

"이 정도 가지고 뭘. 앞으로도  도움 필요하면 언제든 말해. 요즘 남는 게 시간이야. 물질적인 도움도 가능하니까 부담 가지지 말고. 아, 꼬시려고 그러는 건 아니야. 차용증 쓰고 빌려줄 거야."

"하하- 네에. 알겠어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그날 이후 한소희가 각성을 하며 초인이 되었고, 내 조언대로 그녀는 지체 없이 연락을 해왔다.
나는 약간의 예지 능력이 있다는 거짓말로 그녀를 속여넘겼다.

그리고 시간이 지난 지금, 한소희는 고깃집 알바를 하고 있었다.
어차피 그런 건 곧 때려치우게 될 텐데 미리 그만두는  낫지 않냐고 물었으나.
소희는 주어진 상황에 늘 최선을 다하고 싶다는 이야기로 날 설득했다.

이제 슬슬 일어나려던 참이었다.
내게로 다가오는 인영이 있었다.
작은 개인 카페라 사장이 늘 상주해있었는데, 바로 그녀였다.

"서비스에요. 한번 드셔보세요."

달콤해 보이는 수제 쿠키였다.
 근래에 몇  왔다고 단골 대접을 해주는 것 같았다.

"아, 감사합니다."

한입에 넣기엔 크기가 커서 반쪽을 베어 물었다.
바삭- 하고 들리는 소리와 혀끝에서 느껴지는 달콤함에 기분이 좋아졌다.
그때 문득 시선이 느껴져서 옆을 쳐다보니 여전히 그녀가  있었다.

입가에 살짝 미소가   웃음을 참는 듯 보였다.
X바. 너무 받자마자 바로 주둥이로 직행했나?
 구경했으면 가지. 무슨 볼일이라도 남은 건가.

"맛이 좀 어떠세요? 제가 직접 구운 거거든요."

오, 수제품을 들여온  아니라 리얼 핸드메이드였어?
피드백을 원해서 서 있는 거였구먼.

"맛있어요. 식감은 적당히 바삭하고, 딱 과하지 않게 달달하고. 씹다 보니 고소한 맛도 올라오는  아주 좋아요.  개 사 가고 싶네요."

"어머- 정말요?  좋게 말씀해 주시니 너무 감사드려요. 그렇지만 아쉽게도 상품이 아니네요."

"아~ 아직 준비가 덜 됐나 보네요? 제가 입맛이 까다롭진 않은 편이긴 해도, 이 정도면 맛으로는 팔아도 충분할 것 같네요."

"말씀을 참 예쁘게 하세요. 잠시,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평범하게 말한 것 같은데. 음. 말투가 부드럽다는 얘긴가?

잠시 후 다가온 그녀는 손에 쿠키를 한 봉지 들고 있었다.

"이거 가져가서 드세요."

"어, 어⋯네? 아니, 괜찮아요. 아까 주신 하나로 충분한데요."

"제가 드리고 싶어서 그래요⋯."

묘한 기류에 나는 그제야 그녀를 제대로 바라봤다.
앉아있던 나와 서 있던 그녀가 그대로 눈이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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