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화 〉춘천행(2)
"앞으로 저런게 많이 생겨난다니, 정말 종말이 오는걸까요?"
"어떻게든 막아봐야지."
변이된 게이트를 육안으로 봤으니 목적은 달성했다.
애초에 딱히 거창한 이유가 있어서 온 건 아니었다.
"기왕에 왔으니 구경이나 좀 할까?"
"네, 좋아요!"
"너 반응이 좋다? 어디 가고 싶은 데라도 있었나 본데?"
"당연하죠!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세요? 먼저 남이섬이랑 자라섬부터 보구요⋯그리고 또⋯아침고요수목원⋯."
끊임없이 나열되는 목록을 듣자 벌써 머리가 지끈거렸다.
계속 뛰어다니면 너무 눈에 띄기 때문에 얌전히 택시를 불렀다.
아직은 대놓고 드러내기엔 조금은 어려운 점이 있었다.
그렇다고 꼭꼭 숨길 이유도 없지만.
그녀는 강원도에 놀러 온 것 자체가 처음이라고 했다.
바람 쐬러 간다고 하면 만만한 게 가평, 청평, 춘천으로 이어지는 강원도 삼 형제 아니던가?
강원도가 문제가 아니라 애초에 휴양을 온 것 자체가 처음이라고 말하는 그녀에게, 나는 최대한 티 나지 않게 태연한 척을 할 뿐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추억을 만들어주기 위해 그저 조용히 이것저것 예약을 알아봤다.
배를 타고 들어가는 줄 알고 있던 그녀는 집라인을 탄다고 하자 뛸 듯이 기뻐했다.
"어머! 이거 꼭 타보고 싶었는데. 너무 비싸서 포기했는데 괜찮아요 오빠?"
"오늘 하루 기분 내는 건데 뭘. 너 알바비 들어오면 한턱 쏴."
"물론이죠~ 혹시 번지점프도 예약해두신 건 아니죠? 그건 좀⋯무서워서 싫어요."
"그럴 것 같아서 집라인만 해놨어. 저건 나도 무섭다 야."
"아, 진짜 기대된다. 너무 재밌을 것 같아요."
"나도 처음 타봐서 기대되네. 1분 조금 넘게 탄다던데 4만 원은 좀 창렬이긴 하다."
"오빠, 그런 말도 알아요?"
"이거 옛날부터 있던 말이거든? 참 내."
차례가 다가오고 기구에 탑승했다.
가림막이 열리고 줄에 몸을 맡긴 채 잠시 대기하니 무전을 주고받던 직원이 출발을 알렸다.
"카운트하겠습니다. 쓰리, 투, 원 씽!"
쉬이이익- 하는 마찰음과 함께 와이어에 매달린 채 미끄러져 나갔다.
생각보다 속도감이 느껴졌다.
"이야호오!"
나보다 조금 앞서서 가는 그녀가 기쁨의 환호성을 내질렀다.
눈앞의 자그마한 섬을 향해 나아가며 마치 하늘에서 호수로 뛰어드는 느낌을 받았다.
이윽고 섬에 진입하자 좌우로 길게 뻗은 나무 사이를 내지르는 쾌감이 등골을 타고 솟아올랐다.
정글 속 타잔이 된 기분이었다.
워어워어어~ 하고 타잔 특유의 함성을 지르고 싶었으나, 체면 때문에 차마 그러지 못했다.
"워어~워어~워어!"
어차피 뒤통수만 보이는 그녀가 대신해 줄 것임을 예상하기도 했다.
"오빠는 바-아보-오-"
"소희는 더 바-보!"
안 하는 사람이 없다는 외치기 놀이도 했다.
이내 우리를 받아낼 준비를 하는 직원들이 가까워져 오자 아쉬움이 밀려들었다.
놀이에는 늘 끝이 있는 법이다.
"감사합니다!"
그녀는 늘 예의가 바르다.
하이텐션으로 감사하다 외치는 그녀와는 다르게 나는 그저 가볍게 고개만 끄덕이며 내렸다.
한달음에 쪼르륵 달려온 그녀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큰 소리로 떠들었다.
"너무너무 재밌어요! 아, 진짜 또 타고 싶다. 근데 4만 원은 너무 비싸요. 2만 원으로 줄여야 해. 음? 근데 2만 원도 비싼 돈인데? 그럼 만원? 그건 너무 싸네⋯잉⋯."
시시각각 표정이 변화하는 그녀를 보며 가볍게 입 맞추고 싶다는 충동이 강하게 들었으나, 고개를 흔들며 얼른 정신을 차렸다.
그녀 개인의 성장과정과 첫 만남의 강렬함으로 인해 그녀는 나에게 약간의 의존증이 있다.
그런 그녀와 내가 연인 관계로 발전한다면, 필시 상처를 주고 말리라.
나는 그리 좋은 사람이 아니었으므로.
"섬 구경이나 하자. 저기 팸플릿 있나 보다."
그녀가 챙겨온 지도를 펼쳐 들어 코스를 골랐다.
"아무래도 처음 와봤으니까. 추천 코스로 가면서 한 바퀴 다 돌아보고 싶어요. 그래도 괜찮을까요?"
"그럼, 나도 걷는 거 좋아해."
"헤헷. 호수 위에 뜬 섬이라니 너무 낭만적이지 않아요? 그러고 보니 여기 그거 촬영지잖아요."
"오, 네가 그것도 알아?"
"듄상아, 듄상아- 너 듄상이 맞지이?"
"크흡- 그게 뭐야. 여주인공이 보면 기겁을 하겠네. 큭."
시대를 풍미했던 드라마라 그런지, 보지도 않았을 텐데도 성대모사를 곧잘 했다.
물론 나는 본방송을 봤다. 이는 곧 그녀와 나의 나이 차이가 자그마치 열 살이란 얘기고, 오빠가 아닌 아저씨라 불러도 할 말이 없는 이유이기도 했다.
"소희야, 너 생일이 몇월이지?"
"5월이요."
저 드라마가 이제 갓 스무 살인 소희보다 먼저 태어나고, 먼저 종영했다.
그 사실을 깨달은 나는 정신이 아득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너랑 그 드라마랑 동갑이라는 거 알고 있니⋯."
"네에에?"
"심지어 1월에 시작해서 3월에 끝났어⋯."
"헉⋯."
그녀 또한 약간 충격을 받은 듯했다.
"그러면 저 드라마를 보고 자란 오빠는⋯? 오빠⋯라고 하는 게 맞긴 한 건가요?"
이제 와 말하지만, 나는 엄청나게 동안이다.
지금도 민증이 없으면 맥주 한 캔도 사지 못하니까.
어려 보이는 게 마냥 좋은 건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듯, 이득을 보는 것보단 손해를 보는걸 더 잘 기억하기 때문에.
어려 보이는 외모는, 나이순으로 서열을 매기는 한국 땅에서는 어딜 가든 무시를 당하고 시작하는 일종의 핸디캡이나 다름이 없다. 사회적으로 명백한 약점이다. 최종 면접에서 어려 보인다는 이유로 경쟁자에게 밀린 적도 있으니 이쯤 하면 얼마나 내가 동안에 맺힌 게 많을지 감이 오는가.
물론 장점도 명확하다.
당장 스물 여덟 살 때 스물 한 살의 예쁘고 몸매 좋은 무용과 여대생을 사귀는 게 가능할 정도로 나이에 구애받지 않는 연애가 가능하다는 점.
"그럼 아저씨라고 부를래? 네가 그러고 싶으면 그렇게 해."
"아니에요, 오빠라고 할게요. 아저씨가 더 이상해요. 안 어울리잖아요."
섬을 다 구경하자 점심때가 약간 지나있었다.
"배고프지?"
"네, 밥 먹으러 가요."
"춘천 하면 닭갈비지. 어때? 콜?"
"콜!"
"철판 닭갈비는 먹어봤을 테고, 숯불은 먹어봤어?"
먹어보지 않았다며 기대의 눈빛을 보내는 귀여운 그녀를 일별하며, 가장 유명한 가게로 목적지를 설정하고 택시를 불렀다.
가장 유명한 맛집이 제일 맛있는 집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도 자주 놀러 다녀본 사람이 아닌지라 숨겨진 맛집 같은 건 모른다.
그냥 유명한 곳으로 가는 편이었다. 그러면 적어도 후회는 없었다.
도로를 달리는 풍경 속에 벚나무가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다.
떨어지는 꽃잎이 바람에 흩날려 유리창에 부딪혀 왔다.
차를 감싸 안는 것처럼 보이는 꽃잎의 향연이 마치 요정의 세계에 온 것 같았다.
"너무 예뻐요. 꽃비가 내리는 것 같아요. 아, 진짜루 힐링 된다."
나는 말 없이 그녀가 좋아하는 신나는 분위기의 최신곡을 틀어줬다.
어깨춤을 추며 휴가를 만끽하는 생기 넘치는 그녀를 보니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음악과 함께 드라이브를 즐기다 보니, 어느덧 닭갈비 집에 도착했다.
역시나 때가 지났음에도 인파로 북적거렸다.
다행히 대기시간이 필요하진 않았다.
자리에 앉자 점원이 다가왔다.
휴양지의 유명 맛집답게 어린 직원임에도 상당히 불친절했다.
"여기요-!"
"네, 주문하시나요."
"이거 두 가지 맛 섞어서 시킬 수도 있나요?"
간장 맛과 양념 맛을 2인분씩 시키고 막국수도 하나 시켰다.
"오빠, 4인분이나 시키면 어떡해요! 남기면 아까운데⋯."
"닭갈비는 죄다 양이 병아리 눈물만큼이야. 이게 2인분이라고 생각해."
숯이 올라오고 초벌된 고기가 나오자 한소희는 내 선택이 옳았음을 인정해주었다.
"2인분이면 이거 절반이란 얘기죠 ? 너무하네, 그걸 어떻게 두 사람 코에 붙여요?"
"식당이 다 그렇지, 뭐. 인분 옆에 그램수 있잖아 그래서."
"작게 써있잖아요!"
그녀와 고깃집과 인분의 합리성에 대해 얘기하며 숯불에 고기를 익혔다.
지글지글 익어가는 고기에서 풍겨오는 양념 냄새가 식욕을 자극했다.
양념 발린 껍데기가 바짝 익으며 쫄깃한 모양새를 갖춰가기 시작했다.
때맞춰 나온 막국수를 그릇에 덜어주었다.
익은 고기를 그릇에 올려주자 후루룹- 소리와 함께 음식들이 흡입되기 시작했다.
소희는 먹성이 참 좋았다. 마구 먹는 것 같은데도 얼굴이나 입에 묻히는 법이 없고.
음식으로 꽉 찬 볼이 오물거리는 모습조차 예뻤다.
내가 그녀에게 느끼는 감정이 단순한 우정인지, 함께 사선을 뛰어넘으며 솟아난 전우애인지.
그것도 아니면 사랑인지. 아직은 확신이 서질 않았다.
어찌 되었든 나만 기억하는 감정에 대해서 그녀에게 강요할 생각은 없었다.
나는 아직은 지금 이대로가 좋았다.
"우와! 진짜 맛있어요. 와, 진짜."
"많이 먹어."
"오빠도 드세요."
"먹고 있어. 원래 굽는 사람이 집게로 바로바로 집어먹어서 제일 많이 먹는 거 모르는구나?"
"아앗? 그런 거였어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녀는 어느새 손수 쌈을 싸서 내게 건넸다.
슬쩍 눈이 내 입가를 스치는 걸 보니 손과 입중에 어디로 향해야 할지 고민하는 기색이기에.
얼른 손을 내밀어 그 고민을 덜어주었다.
"맛있다."
"제가 싸주니까 더 맛있죠?"
"응, 더 맛있어."
"치이⋯."
내가 딴지를 걸지 않자 도리어 본인이 더 민망해했다.
움찔거리는 그녀의 코와 입술이 유독 더 눈에 띄었다.
식사를 마치고 그녀의 버킷리스트들을 구경하다 보니 해가 떨어졌다.
아쉬운 표정의 그녀는 내가 꺼낸 말을 듣자 두 눈이 토끼처럼 동그래졌다.
"느, 네, 네에? 뭐라구요⋯?"
"숙소 예약해놨다고."
찰싹찰싹- 팔뚝이 유린당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미쳤어! 미쳤어- 응큼해!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예요 정말로! 네에?"
"아니- 그런 게 아니고."
찰싹찰싹- 이젠 따가운 걸 넘어서서 통증이 오고 있었다. 어쩌면 피멍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아니긴 뭐가 아니에요옷! 이럴려고 좋은데 보여주고 맛있는 거 먹인 거에요? 흥, 어림도 없어요! 이 늑대! 양심도 없지- 도둑도 아니야! 왕도둑, 날강도오-"
"아우- 아파! 그만 때려. 그럼 취소한다?"
"그⋯그러면 위약금 무는 거 아니에요⋯?"
"당일 예약에 당일 취소니까. 위약금이 아니라 그냥 돈 통째로 떼이는 거지."
그녀는 눈을 감더니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 사이 옷을 젖혀 팔뚝을 들여다보니 시뻘겋게 부어올라 있었다.
아, X발⋯. 어쩐지 존나 아프더라.
미약한 한숨을 내쉬며 그녀의 목소리가 기어들어 가며 흘러나왔다.
"그⋯그, 그럼. 그냥 가요⋯."
여기서 집에 가자는 거지? 라고 되물으면 그건 의사소통에 중대한 문제가 있는 인간이니 치료를 받길 권장한다.
나는 고개도 들지 못하는 그녀를 뒤로 한 채 택시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