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3화 〉62화 -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 (63/74)



〈 63화 〉62화 -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
"언니,  몰래 무슨 짓 했죠?"

"응? 아니야. 여기서 그럴게 어딨다고."

"... 흐응? 뭔가 이상한데. 다~ 냄새가 납니다. 나쁜 짓 했죠?"

"아니라니깐? 내가 그럴 일이 뭐가 있겠냐구."

"어허! 조사하면 다 나와요? 저를 아주 호구로 보나 본데...!"

"자, 잠깐. 타임! 왜 이래 정말? 너답지 않게?"

"예에? 나다운 게 뭔데요! 정말 수상하네? 안 하던 말까지 하면서...?"

목적지에 도착하고 주둔지가 만들어지는 동안, 한소희는 집요하게 나를 추궁했다.
내가 계속 모르쇠로 일관하며 잡아떼자, 그녀는 타겟을 옮겼다.
고개를 휙휙 돌려 임보람을 찾은 것이다.

경상자긴 해도 어쨌든 양팔을 못 쓰는 부상자인 그녀는 작업에서 열외됐는데, 바닥에 앉아 무릎을 가슴쪽으로 바짝 끌어당기고 있었다. 얼굴이 한껏 붉어진 게 부상 때문은 아닌듯했다.

"언니... 설마... 아까 저분이랑 같이 나갔다가 돌아왔죠? 그런 거 아니죠?"

"... 그런 거라니?"

"아니죠? 아니라고 해요 빨리. 나 진짜 실망할 것 같으니까. 질색이야 정말. 응?"

"그, 그럼. 아니야! 언니도 동성끼리 그러는거 싫어해! 아니, 혐오한다고!"

"휴, 이사 가야 되나 생각했잖아요. 정말 아니죠? 나 바보 아니에요. 언니 저번에 나 화장실 쓸  뒤에서 훔쳐본 것도 다 알아요. 혹시나 해서 지금까지 샤워도 안 했잖아요."

다시 한번 느끼지만,  눈치 진짜 빠르다.
그래서 안 씻은 거였냐... 나 때문에?

"우리 처음 만났을 때, 언니가 했던 말도 있고... 평소에 절 보는 언니 눈빛도 그렇고. 아끼는 동생을 볼 때가 더 많지만, 뭔가 미묘할 때가 있단 말이에요?"

진퇴양난, 아니, 사면초가다.
이런 사람한테는 괜히 거짓말 치면 나중에 후폭풍이 감당이 안 된다.

"그런게 아니라, 내가 그냥 나르시즘도 심하고! 또 예쁘거나 그런걸 보면 좀 사족을  쓰는 경향이 있어. 나 맨날 거울에 비친 내 몸 보고 감탄하고 그래. 너도 그래서  훔쳐봤다 그래. 미안하다! 이성적으로 느끼고 그런건 아니야. 응, 믿어줘. 나 동성애자 아니라고오!"

"알겠어요. 믿어드릴게요. 언니 화장실에서 맨몸으로 거울 보는 것도 알고 있어요. 물소리도 안 들리고 갈아입을 옷도 안으로 안 들고 갔으면서 나오지도 않잖아요."

이쯤 되면 무섭다.
한소희, 너 대체  하는 년이냐.
내가 니 손바닥 위에서 놀아나고 있었던 거냐...!

"소희야, 나 네가 무섭다."

"네에, 실컷 무서워하세요. 어물쩍 넘어가지 말고 결론 말씀하시죠. 그래서 언니 마음은 다 알겠는데, 그래서 보람 씨랑 무슨 일 있었어요."

나는 그냥 사실대로 말했다. 너무 자세하게는 말  하고, 약 발라주다가 가슴을 떡 주무르듯 주물렀다고 말했다.

"저분이 그쪽 성향이었구나. 그러면 일전에 당한 일이 더 안됐네요..."

"이제 속이 시원하니? 명탐정이네 아주."

"네, 역시  촉은 틀리는 법이 없다니까요? 무슨 이유든 언니가 즐기는 건 좋은데, 날 속이지 마요. 절대로. 용서 안 해."

"알겠어. 근데 속인 건 아니지 않냐? 먼저 말할 일도 아니잖아."

"그러니까, 이 정도로 넘어가는 거예요."

존나 무서웠다.
 이런 사람이었니?
그냥  넘어가면 어떻게 되는 거지? 넝쿨로 묶어놓고 마구 두들겨 패려나...

곧이어 진지 공사가 시작되기에 농땡이는 그만 피우고 도우러 갔다.
한소희와 나는 인간 굴착기가 됐다. 어째 병력들은  싸우는 것보다 작업을 잘 하는 우리에게 더 환호하는 듯했다.

시간이 많이 늦어서 씻지도 못하고 취침시간이 시작되었다.
한소희가 나를 관찰하려는 듯 빤히 쳐다보기에 진땀이 절로 났다.
불편한 기색을 숨기며 억지로 잠을 청했다.

"기상~ 기상하십시오!"

아침을 알리는 소리에 눈을 뜨고 주변을 대충 정리했다.
눈 뜨자마자 같이 누워자던 총을 확인하고, 탄창들이 잘 있나 보는게 너무나 익숙했다.
이제 전투복을 벗고 자라면 오히려 어색할  같았다.

개울에서 세면이 시작됐다. 한소희도 오늘은 저녁에 샤워를 하겠다고 했다.
그동안 나 때문에 참았다니 참으로 미안했다. 나는 그냥 네가 더러운 줄 알았어.

"으아악!"

그때 비명소리가 들렸다.
황급히 소리의 근원지로 고개를 돌리니, 병사 하나가 무언가에 손이 꽉 물린 상태였다.
다급하게 달려가며 보니, 그 정체는 팔뚝만  물고기였다.

가까이 가보니, 메기였다.
성체 메기의 이빨은 뾰족하고 날카로워 무언가를 물고 늘어지기에 매우 적합하다.
메기에게 물렸으니 손이 많이 다쳤을거다.

얼른 메기의 머리를 주먹으로 내리쳐 기절시키고 아가리를 잡아 벌렸다.
근데 무언가 이상했다. 물린 손이 거의 잘리기 직전이었기 때문이다.
피부가 찢긴 건 물론이요, 근육이 끊어지고 뼈까지 끊기기 직전이었다.

메기가 치악력이 강하긴 하지만, 아무리 이가 날카로워도 피륙을 찢는 정도에 그친다.
물고 흔들었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메기의 이빨을 다시 쳐다봤다. 일반적인 물고기의 이빨이 아니었다.
이 녀석, 괴수였다.

"물고기형 괴수다! 전부 물러나!"

힘껏 소리쳤으나, 이미 늦어버렸다.
수면 위로 작게는 30센티미터에서 크게는 1미터에 육박하는 메기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튀어 올랐다.
한소희와 내가 다급하게 능력을 발현했으나, 넓은 물가 전역에서 나타난 놈들의 숫자가 너무 많았다.

방심했다. 지난번의 개울에는 이런 일이 없었다.
이번 개울이 더 넓고 깊기에 물고기 괴수가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건 튀어오를 때의 공격만 어떻게든 피했으면, 놈들은 바닥에서 퉁퉁 튀는것 말고는 딱히 움직이지 못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바닥을 구르듯이 필사적으로 도망을 쳤다.
문제는 물려버린 인원들이었다.

"끄아아악!"

그 사람들도 몸에 메기를 주렁주렁 매달고도 필사적으로 물가를 벗어났다.
대기하고 있던 인원들이 진입해 그대로 총을  갈겨 바닥에서 버둥거리던 메기들을 학살했다.

투다다다당-

미쳐 헤어나오지 못한 인원들은 나와 한소희가 달려들어서 구해냈다.
그들이 구해진 자리는 이내 총알이 날아들어 정리가 됐다.

"커허허허억."

이 사람은 최초에 팔뚝을 물리고 그대로 넘어지는 바람에, 다른 놈들이 버둥거리며 달라붙어 허벅지와 어깨까지 물린 심각한 상태였다. 상하로 붙잡은 아가리를 그대로 찢어발기며 놈들을 제거했지만, 이미 외상과 출혈이 상당했다.

다리쪽의 출혈이 심상치 않아 들여다보니, 아무래도 허벅지의 대동맥이 끊긴 것 같았다.
생존이 어려울 것 같았다. 다른 인원을 불러 지혈을 시켜두고 다른 사람들을 마저 구했다.

구출과 괴수의 처리가 끝나고 그에게 돌아오니 이미 눈을 감은 뒤였다.
교대로 씻기에 개울가에 있던 인원이 그리 많지는 않았으나, 물가에 있던 인원 거의 전부가 공격을 당했다. 튀어 오른 괴수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운이 좋아 괴수에 의한 부상이 전무한 인원은 고작 세 명.
한 군데라도 물리거나, 도주하며 바닥을 뒹굴어 상처를 입은 인원들이 열여덟 명.
사망자  명이었다.

개울가에 씻기 위해 나와있던 25명이 거의 전부가 피해를 입은 상황이었다.
그나마 둘이 몸을 던지며 초능력을 사용했기에 피해가 이 정도였다.

물고기 따위의 공격이 두렵지 않은 나와 소희가 개울의 수면을 한참을 첨벙거렸으나 더 이상 나오는 놈은 없었다. 물리면 다치겠지만, 수면에서 튀어오르는 뻔한 공격에 당할만큼 어수룩하진 않다.

놈들의 인간에 대한 공격성은 자제할 수 있는게 아니었음으로, 이제 물고기 괴수는 더 없다고 봐야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현재 상황의 얘기였다. 언제든 상류나 하류에서 헤엄쳐 올 수도 있기에, 물은 우리 둘이 전담해서 떠다 줘야 할 상황이었다.

한소희가 구출한 부상자 중에 김준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그를 찾아갔다.
구출을 했다는건 곧 물렸다는 얘기고, 십중팔구 중상일 터다.

"아, 오 팀장님. 오셨습니까?"

그는 고통스러운 듯 식은땀을 쉴 새 없이 흘리며 억지 미소를 지어보였다.
나는 말없이 그의 옆에 다소곳하게 앉았다.
감겨있는 붕대를 향해 시선을 돌리니 한쪽 손목이 없었다.
입술이 꽉 다물어졌다.

"김준 씨... 손목이..."

"이거요? 하하, 이제 의사 되긴 글렀네요."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고, 나는 묵묵하게 들어주었다.

"아버지가 가슴에 종양이 생겼었습니다. 수술로 제거가 가능한 부위여서, 대학병원에서 수술을 받게 되었죠. 그때 자신감있게 자기가 꼭 살려낼테니, 아버지의 살고자하는 마음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용기를 주던 의사선생님이 계셨습니다."

"늦은 나이에 의대에 가겠다는 생각을 한건 그때부터였습니다. 의대에 들어가는 데만도  번의 수능을 치고, 들어가서도 장학금은커녕 공부를 따라가기도 벅찼습니다. 원래도 가정형편이 좋은 편이 아니었는데, 제가 나이먹고 공부하겠다고 비싼 학비에 교재비에 돈을 물 쓰듯 써대니 빚이 늘어만 갔어요."

"그런데 포탈 공략에 지원하면, 선금만 1억에 추가적인 보상도 준다고 하더군요. 제가 지원한 보급대는 전투에 차출되거나 위험한 임무도 없는 순수 보급대라고 했습니다. 위험한 상황에만 노출되는 보급 파병은 무사히 다녀온 사람들이  되잖아요. 여기도 그럴 거라 생각했습니다.팀장님 원망하는건 아닙니다. 상황이 이런데 계약 운운하고 있을 순 없다는  잘 알고 있습니다."

"사람을 살리고, 누군가의 귀감이 되는 흉부외과의가 되고 싶었는데, 인생은 참 원하는대로 되지 않네요."

"...... 죄송합니다."

나는 그저 미안하다는 말 밖에 하지 못했다.

"이제 좀 쉬고 싶네요. 제 얘기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의 점잖은 축객령에 나는 조용히 자리를 벗어났다.
부상 인원이 많아, 오전은 개인정비 시간을 가지기로 하였다.

태양이 가장 뜨겁게 내리쬐는 오후였다.
부상이 악화되어 추가로 두 명이 사망자 명단에 들어갔다.
김준은 눈을 뜨지 않았다.
또 다시 이별이었다.

퍽- 퍽- 팍- 팍-

"언니..."

신경질적인 삽질에 한소희가 나를 걱정스레 바라보았다.
김준을 묻어주며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매장이 끝나고 소희가 다시 다가와 말을 붙였다.

"괜찮아요?"

"아니, 하나도 안 괜찮아."

"언니......"

"소희야, 미안한데. 나  안아줄래?"

"네..."

나는 한소희의 품에 안겨서 서럽게 울었다.
 서러운 통곡소리가 적막한 주둔지 전체에 울려 퍼졌다.

그들은 죽음을 받아들일 각오가 되어있지 않았다.
인원 부족을 명분으로 보급 대원들을 전투에 이용하는 게 과연 잘하는 짓일까?
애초에 죽을 수도 있다는 걸 알고 들어온 사람들이랑은 약간의 차이가 있었단 말이다.
나는 그 작은 차이가 상황에 의해 바뀌어도 되는 거라고 판단했지만, 그게 과연 맞았던 걸까?

설령 우리가 다 죽고 나서 그들이 몰살당하더라도, 그들을 방관자의 위치에 놔두었어야 했을까?
내가 지금 이곳에서 힘과 권력을 가졌기에 잘못된 판단을 내 아집으로 밀어붙이는걸까.

 모든 의문과 자책이 터뜨린 감정은, 소희의 어깨가 눈물로 깊게 젖어들 때까지 지속되었다.
헤어짐. 이별. 나는 이 말들이 싫어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