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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0화 〉59화 - 합류 (60/74)



〈 60화 〉59화 - 합류

목청껏 돌아오라 외쳤지만, 누구도 뒤 돌아보는 사람이 없었다.
도망가는 사람들을 구태여 붙잡아 두들겨 패거나 하진 않았다.
짜증 날 정도로 빠른 치타 놈들이 붙기까지 20초도 남지 않았기에 낭비할 시간이 없었다.

"전원! 사격 개시!"

드르르르르르륵- 투다다다다다당- 따다다당따당타당-

스무 명도 되지 않는 남은 인원들에게 사격 명령을 내렸다.
군인들을 빼면 민간인은 열 명도 되지 않는 그야말로 처참한 군기였다.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았다. 저 맹렬한 속도를 보면, 여기서 도망쳐봤자 금방 따라잡힌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걸까? 화망을 형성하면 저깟 놈들 붙기도 전에 쓸어버릴 수 있다는 걸 몰라서 도망친 걸까?

소총과 기관총이 쉴 새 없이 총알을 토해냈다.
개체수가 적던 치타들이 모조리 쓸려 나갔으나, 문제는 뒤의 개새끼들이었다.
뒤늦게 이뤄진 박격포 사격으로 피해를 가중시키긴 했으나, 아직도  숫자가 수백여 마리는 되었다.

전투원들이 제자리만 지키고 있었어도, 놈들의 징그러운 얼굴이 자세히 보이기도 전에 처리가 가능했을 약한 괴수들이었다.

용감하게 맞서 싸운 이들을 절대로 희생 시킬 수 없었다.
하지만 현재 인원의 화력으로 놈들의 숫자를 줄여봤자, 최소한 수십에서 백여 마리가 달라 붙을거다.
현재로선 그 누구의 생존도 보장할 수가 없었다.

다시   초능력을 무리하게 운용해서라도 지켜내고 싶었지만, 불과 얼마전에 혹사한 터라 능력이 말을 듣지 않았다. 슬쩍 한소희를 쳐다보니 마찬가지인 듯했다.

그때였다.
십자 형태로 우리의 화망을 감싸 안는 예광탄이 빗발친 것은.

투르르르르륵- 따라라라락- 투두다다당-

기적처럼 놈들의 오른쪽에서 나타난 후속부대가 일제사격을 더해온 것이다.
전방과 측면에서 이루어지는 불꽃같은 십자포화에, 좌우로 찢어지는 징그러운 주둥아리에서 침을 질질 흘리며 달려오던 괴수들이 추풍낙엽처럼 무너져 내렸다.

"깨갱!"

일반적인 중형에서 대형견 크기의 다양한 덩치를 가진 놈들은, 우리에게 도달하기까지 고작 몇 미터를 앞두고 고개를 바닥에 처박았다.

고개를 돌려 전투원들의 상태를 살폈다. 다친데는 없겠지만, 죽음이 지척까지 다가오는 심리적 압박은 결코 만만한게 아닐테니.

"다들 괜찮으십니까?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전투는 끝났으니 쉬어도 좋습니다."

부대원들은 대답도 제대로 하지 못하며 안도의 한숨과 함께 그대로 바닥에 주저 않았다.
보급대장인 김준 또한 마찬가지였는데, 표정만큼은 엄청나게 살벌했다. 아마도 화가 많이 났을거다.
그게 자기 자신에게든, 도주한 사람들에게든.

이내 전투지원을 했던 부대가 다가왔다.

"괜찮으십니까? 3차 보급 대장 장인하 대위입니다."

"하아~ 장 대위님. 정말로 나이스 타이밍입니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어요."

"운이 좋았습니다. 혹시 공략팀장인 오 대위님 맞으십니까?"

"아이고,  정신 좀 봐. 소개를 들어놓고  소리만 늘어놨네요. 예, 제가 맞습니다."

"합류전 교신을 했을 때는 총원이 백팔 명이라고 들었는데요. 전투로 인한 사상자가 나온 건 아닌 것 같습니다만..."

나는 말없이 뒤쪽을 바라보았다.
그도 내 시선을 따라 고개를 움직였다.
쭈뼛거리며 진영으로 돌아오는 80여 명의 인원들을 보며, 장 대위는 표정을 굳혔다.
그때 김준이 다가왔다.

"충성! 현재 임시로 2차 보급대장을 맡고 있는 병장 김준 입니다."

"음, 그래. 남궁 하사에게는 무슨 일이 생긴건가?"

"그게......"

김준이 말끝을 흐리자 장 대위의 표정에 의아함이 깃들었다.
내가 나설 타이밍이다.

"곡절이 조금 깁니다. 이따가 제가 말씀드리죠. 기존 보급대장은 현재 부재 상태입니다."
"일단 여장을 좀 푸시고 인원들 정비하고 회의 시작하도록 하죠."

"알겠습니다."

최우선으로 끝까지 싸운 전투원들과 함께 무기들을 수거했다.
우리가 다급하게 움직이자 새로온 보급대원들도 군장만 내려놓고는 회수를 도왔다.
말은 안했지만 눈치로 안 것이다. 도망자들이 무장을 하면 골치아프다는 것을.

순식간에 이루어진 회수 조치에 민간인 몇 명이 구시렁거리며 불만을 토로했지만, 달려들어서 총을 챙기려고 한다거나 하는 돌발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다. 새로운 보급대의 덕분인 듯했다.
우리만으로 통제를 하려고 했으면 정말 최악의 상황이 나왔을지도 모른다.

남는 무기를 한 곳에 쌓아두고 그 주위를 보급대원들이 둘러 싸고 감시했다.
장 대위와 함께  전투원들은 총 78명이었는데, 전부 군인들이었다.

"바깥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별 다를건 없습니다. 여전히 하루에 한 번씩 공략팀이 투입되고, 세간의 관심은 더 늘어났습니다."

"한 가지 말씀드릴 중요한 사실이 있어요. 이 곳과 바깥의 시간의 흐름이 다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상황을 보고 드리자면..."

진행된 공략도와 전투에 대한 피해 보고가 이어졌다.
북쪽과 서쪽의 탐색이 끝났으며, 앞으로는 동쪽과 남쪽만 이루어지면 되며, 동쪽도 오늘 거의 다 탐색을 했으니, 실질적으로 남쪽으로만 향하면 된다는 이야기였다. 기존의 공략대가 전멸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그의 표정이 깊숙하게 가라 앉았다.

"생각보다 훨씬 더 위험한 곳이었군요. 더군다나 아까전의 전투에서 도망친 인원들을 생각하면... 고작 백여 명으로 전투를 치뤄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 아닙니까."

"네... 상황이 좋지는 않네요. 팔십 명이나 되는 인원들이 방아쇠만 당겨줘도 도움이 많이 될텐데. 하지만 또 도망치지 말라는 법도 없고, 뒤통수가 근질거려서 저 사람들에게 무기를 쥐어줄 순 없을 것 같아요."

"아, 기존의 보급 대장 일은 어떻게 된 겁니까?"

사건의 전말을 듣고 난 그는, 확인이 필요하다는  피해자인 임보람을 만나고 싶어했다.
그녀에겐 잊고 싶은 사건을 끄집어내는 일이었지만, 나는 허락할 수 밖에 없었다.
그의 입장에선 어찌 되었든 보급대장이 살해 당한 사건이니 확실하게 하고 싶을  있기 때문이다.

"임보람 씨? 안녕하십니까. 장인하 대위라고 합니다."

"네, 네? 네... 어쩐 일로?"

"실례라는걸 알지만, 일전에 있었던 일에 대해서 증언을 받고 싶어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임보람은 깜짝 놀라며 황급히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말하기 싫은 티가 역력했다. 이미 그때의 기억이 떠오른  몸을 떨기 시작했다.
장인하를 바라보니 그녀의 격한 반응을 보고 표정이 언짢았지만, 의지를 굽히진 않았다.

"미안해요. 이 분에겐 중요한 일이에요. 잔인한 부탁이지만, 얘기해 주셔야  것 같아요. 보람 씨, 정말 죄송합니다."

내가 고개를 꾸벅 숙이자, 장인하는 아예 허리를 구십도로 꺾었다.

"정말 면목 없습니다. 저와 같은 자리에 있던 간부가 살해 당했단 얘기는 제 신변과도 직관 되는지라 사정을 듣긴 했어도 본인에게 꼭 확인을 받고 싶습니다. 상황이 그러니 한 번만 이해해 주십시오."

임보람은 어느새 차오른 눈물을 글썽이며, 더듬거리며 이야기를 꺼냈다.
공개적인 자리에서 대충 들었던 이야기보다 훨씬 상세한 사실들이 흘러나왔다.
나는 발작하듯 떨고있는 그녀의 손을 말없이 잡아주었다.

이야기가 끝나고, 장인하는 나에게도 사과를 했다. 그리고 그는 다른 인원들에게도 교차 확인을 했다.
 만남에 이루어진 김준 병장과 나와의 실랑이부터, 살해 현장을 목격한 사람을 찾아다녔다.
저렇게까지 필사적인걸 보면 프래깅이 무섭긴 무서운가보다. 하긴, 상관살해는 유구한  뒤의 공포였으니.

그리고 임보람이 나를 찾아왔다.

"오 팀장님,  손목 다시..."

그녀는 자신의 풀렸던 구속을 다시 해달라고 요구했다.
탄약 보조병 역할을 맡았던 그녀는 다가올 전투 상황에 일시적으로 구속이 풀렸었는데, 재차 묶어달라고  찾아온 것이다.

"더 이상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김준 병장도 보람 씨를 믿으니까 그대로 둔  아니겠어요?"

 비련한 여인은, 도망치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그녀에게 면죄부를 줄 작정이었다.
그깟 쓰레기 하나 죽인 게 바깥에서는 죄일지언정, 여기선 아니었다.

"네... 감사합니다."

"오늘 정말 수고 많았어요. 손도 성치 않은데. 불편한  있으면 저한테 꼭 말해주세요."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용감한 여자였다.
괴생명체가 달려드는 상황에 다른 사람들이 다 도망치고 있는데도 도망가지 않았다는 것은, 보통 강단으로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내 자리로 돌아가보니 한소희는 많이 피곤했는지, 이미 잠이 들어 있었다.
머리에 부하를 주는 능력이라 그런지 정신 소모가 특히 심한것 같았다.

모닥불을 바라보며 잠시 쉬고 있자니, 전형적인 조폭 같은 행색을 한 사람이 다가왔다.
덥지도 않은데 굳이  달라 붙는 반팔을 입고선 본인의 덩치와 팔뚝을 가득 메운 문신을 자랑했다.

"이보쇼, 팀장 양반. 아까전에  그랬기로서니, 이렇게 차별 대우하면 쓰나?"

"그게 무슨 소리죠?"

"다 알면서 모른체하는 거 보소? 총도 다 뺏어버리고, 노골적으로 경계하는데 기분이 나쁘지 않겄소?"

"기분? 기분이 나쁘다고요?"

"예에, 기분. 우리가 뭐 배신자도 아니고  때문에 이렇게 감정을 상하게 하는지 모르겄소."

"전투 상황에 아군을 내팽개치고 도망쳤잖아요? 지원군이 없었으면 다 죽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니까 앞으로  하겠다고 하잖소. 앞전의 일은 사과 할라니까."

"사과는 받겠으나, 무장은 안 됩니다. 이에 대해 번복은 없습니다."

"허허, 아주 꼬장꼬장한 양반이었네. 그럼 우리가 가지는 불만에 대해선 이의 없는거지요?"

"우리의 불만이요? 지금 본인이 공동체를 대변하기라도 한다는 얘깁니까?"

"거참, 내가 민간인들 대표인데 몰랐습니까? 허허이~."

어느새 근처로 다가와 서있는 김준을 쳐다보니 그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 깡패새끼가 무리를 주도하고 있다고? X발 말세네 진짜.

"구체적으로 어떤 불만을 말하는건데요?"

"아니, 뭐, 워낙에 괘씸한 행동을 하니까. 우리가  생각을 할 수도 있는거고."

너무 어이가 없어서 화도 나지 않았다.
 인간들이 정말 다 미쳐버린 건가? 이 돼지 새끼 혼자 오버 하는건지 정말 합의가 돼서 이러는건지.
보급품을 짊어질 사람들은 꼭 필요하다. 저 많은 짐을 어쩌란 말인가.

굳이 짐 문제가 아니었어도  죽여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지만, 해달라는 대로 총을 쥐어주는건 더더욱  될 일이었다. 지금도 이 지랄하는 데 무기를 가지면 정말 사달이 날 확률이 높았다.

겁쟁이들. 그들을 평가하는 데는 한 마디면 충분했다.
괴수에게서 도망치고, 지금은 이런 저급한 양아치 뒤에 숨어서 떡고물을 바라고 있다.

"야."

"머, 뭐? 뭣이라? 야아?"

"그래, 야. 이 돼지 새끼야. 힘 좀 쓰냐? 니 비대한 몸뚱아리는 근육질이 아니라 살덩어리라고 하는거야."

"이 X벌년이! 미쳤나! 잘난 상판대기 믿고 개기는거야?"

그는 겁도 없이 나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정말로 혼신을 다한 풀스윙이었다.
평범한 여자가 맞았으면 그대로 얼굴뼈가 함몰될 정도였다. 망설임이 없는걸 보니 평소에 여자도 때리는 놈이 확실했다.

내가 누군지 모르는건가?
그대로 날아오는 주먹을 손바닥으로 붙잡았다.

"가위 바위 보 하자고? 내가 이겼네?"

주먹은 보자기에 안되는 법이다.
손아귀를 움켜쥐자 덩치는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몸을 미꾸라지처럼 비틀었다.

"으히, 헤어억!"

손을 망가뜨릴 생각은 없었다. 실금 정도는 가겠지만.
주먹이 비틀리는 고통에 그의 하반신이 점점 굽혀지며 결국 바닥에 무릎까지 꿇게 되자, 붙잡은 손을 놔주었다.

때아닌 소란에 이목이 집중됐지만 다들 침묵으로 일관할 뿐이었다.
손을 부여잡고 자리로 돌아가는 덩치를 바라보는 탈주자들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것은 분명 기대감에서 오는 실망이었다. 정말로 전부 공범이었다.

나는 그들의 처우에 대한 마음을 독하게 먹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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