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6화 〉55화 - 양아치
남궁율현은 이번 보급대의 책임자였다.
백여 명의 사람들 중 유일하게 직업 군인이었기 때문이다.
병사들을 더해도 군인들이 열명 밖에 되지 않았다.
완전히 보급만을 위한 편성이었고, 군인 10인을 제외한 인원들은 기본적인 무장조차 없었다.
보급품만 바리바리 싸들고 온 것이다.
이전엔 전투원만 보내고 이번엔 보급품만 보내고.
상부에서 짠 계획이지만, 그냥 반반씩 섞어보내면 안되는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에 대한 이의제기나 항명은 하지 않았다. 그는 가늘고 길게 가고 싶었기에.
이번에도 도박 빚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들어온 거였다.
그리고 이번 2차 보급대는 순전히 보급만을 위한 부대로서 별로 위험하지도 않다고 했고.
사사건건 불평불만을 쏟아내는 민간인들을 통제하는게 힘에 부쳤지만, 그래도 명령권을 가졌고, 실질적 무력인 총을 들고있는건 이쪽이라 그런지 영 말을 안 듣진 않았다.
이번일만 잘 해내면 다음엔 분명히 딸 것이었다.
저번에도 촉이 왔었는데. 어이없게 잃었다.
이번에 받은 자금으로 한따까리 제대로 하고 나면, 콧대 높던 혜수년을 배 아래에 깔을 작정이었다.
왕창 따면 빚도 갚고, 그거 뿔린 걸로 보기만해도 아랫도리가 불끈 솟아 오르는 꼴릿한 향기를 풍기고 다니는 혜수를 원 없이 따먹을 터였다. 명품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년이니까. 분명히 대줄거다.
도박때문에 불명예 전역을 할 뻔 했으면서도, 싹싹 빌어 상부로 보고 되지 않고 대대장 선에서 겨우 무마시킨것도 잊은 채. 그는 공략 보상금으로 새로운 도박판에 뛰어들 생각과, 그 동안 군침만 흘리던 남자들 홀리는 꽃뱀과 놀아날 생각 뿐이었다.
보급대중에 마음에 드는 예쁜여자가 하나 있었다.
자꾸 눈에 들어오는게 왠지 주변을 알짱거리며 꼬리를 치는것 같았다.
'X발 걸레같은년. 몰래 끌고가서 확 따먹어 버려야하나? 대주고 싶어서 안달이 난 것 같은데 말이야.'
표식을 따라 움직였으나, 행군속도는 굼뱅이처럼 느렸다.
날씨는 쾌청하고 시원한 바람이 부는게 딱 좋았음에도, 무거운 짐덩이를 매달은 사람들은 긴 거리를 움직이려고 하지 않았다.
책임자가 엄격했다면, 대가를 받고 들어온 만큼 투덜댈지언정 다들 제대로 했겠지만.
문제는 책임자란 놈이 정신 빠진 놈이었다는데 있었다.
주둔지와의 거리가 얼마 되지 않음에도, 세월아 네월아 기어가는것엔 이유가 있었다.
마음에 찍어둔 여자를 자빠뜨리기 위해서였다.
본대와 합류하면 어려울테니 그전에 서둘러 닦아 치울 예정이었다.
고작 두시간을 이동하고, 이 곳에서 하루 휴식을 하겠다고 지시를 내렸다.
베이스캠프까지 최선을 다해 이동해도 꼬박 열시간은 넘게 걸리는 거리였다.
지금 같이 굼뱅이같은 속도로 간다면 이틀은 걸릴텐데, 심지어 두시간밖에 움직이지 않았다.
이 따위로 한다면 한달이 걸려야 당도할 터였다. 하지만 그도 그럴 생각은 없었다.
그러다 후발대한테 따라 잡히기라도 하면 나가서 문제가 생기니까.
오늘 하루만 여유를 부릴 예정이었다.
즐거운 만찬을 즐길거니까.
'예쁘장하게 생겨가지고 빨통도 큼지막 하든데. 고년 참 맛나겠다. 떡대가 좀 있고 허리가 통짜에 엉덩이가 없는게 아쉽구만.'
"여기서 하룻밤 나야하니까 근처 정찰을 다녀오겠습니다. 병사 둘에 스무명씩 붙도록 하겠습니다. 한두 명 모자라거나 넘치는건 대충 맞추세요."
차례대로 정찰을 보내고 마지막 조만 남은 상황에 그는 그 곳에 있던 여자를 따로 불러내어 말했다.
"보람씨는 몸이 안좋아 보이는데 캠프에서 쉬시죠."
"네? 저 괜찮은데요."
"얼굴이 안좋아 보입니다. 제가 책임자니 제 말 들으세요. 저에겐 인원들을 관리할 의무가 있습니다."
"네, 네에...알겠습니다."
그리고 본인은 본부를 지키겠다는 핑계로 나가지 않았다. 여태까지 보여준 모습이 있으니 사람들은 그러려니 했다. 어차피 정찰을 나간 사람들도 얼마간 걷다가 캠프가 보이지 않을때 즈음엔 자리 깔고 쉬다가 들어올 작정이었다.
사람들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수작이 시작됐다.
"보람씨, 저한테 관심있으신가요?"
"네? 갑자기 그게 무슨소리세요?"
그는 화들짝 놀라는 그녀의 반응엔 아랑곳 하지 않고 능글맞게 말을 이어갔다.
"에이~ 왜 이러실까? 제 주변을 맴돌았잖아요. 신경 좀 써달라는거 아니었어요?"
"그런적 없어요...무슨소리를 하시는지 모르겠어요. 저, 저도 정찰대를 따라 나가겠어요."
그는 대번에 표정이 흉신악살처럼 변하며 그녀의 멱살을 틀어 쥐었다.
"이년이 미쳤나? 꼬리칠땐 언제고 이제와서 발뺌을 해? 죽고싶어?"
턱에 총구를 들이대며 윽박지르자 그녀는 주저앉으며 눈물을 뚝뚝 흘렀다.
"잘못했어요. 살, 살려주세요."
"살고 싶으면 잘해야지? 응? 잘하자. 잘할 수 있지?"
"머, 뭐...뭘요?"
"알잖아. 왜이래? 설마 남자 경험 없어? 그런 음탕한 젖통을 달고서 그딴 거짓말을 치진 않겠지?"
"흐...흐윽...왜 이러세요 도대체..."
"이 X발년이! 니가 날 꼬셨잖아! 아니야? 아니라고 말해봐! 대가리에 구멍을 내줄테니까!"
거칠게 상의를 벗기자 입이 닳도록 지껄이던 그 커다란 가슴이 튀어나왔다.
"뽀얗고 탱탱하니 아주 그냥 끝내주는구만. 크으. 잘먹겠습니다."
놈은 자신의 흔적을 남기겠다고 피임도 없이 그대로 그녀의 내부에 정을 토해냈고.
이후 아랫도리가 잘 기능하지 않자, 여자 탓을 하며 그녀의 몸에 도구를 이용해 끔찍한 학대를 저질렀다.
총구와 총검손잡이가 애꿎은 아군을 유린했다.
정찰대가 돌아오기까지 두세 시간을 끊임없이 능욕당한 죄 없는 그녀는.
철저하게 입막음 까지 당한 뒤에 험한 일을 당한 얼굴을 들킬세라 텐트 안으로 숨겼다.
그녀는 텐트 안에서 고개도 내밀지 않고 죽은 듯이 지냈고, 그날 밤을 지내고 부대는 다시 이동을 시작했다. 이동 중 한 여인의 얼굴이 매우 안 좋았지만, 여자의 몸으로 미지의 환경에서 잠자리까지 불편했으니 그런가 보다라고 사람들은 생각했다. 남을 신경 써주기엔 자신들도 힘들고 지쳤다.
"빨리빨리 이동합시다! 후발대한테 따라잡히고 싶어요? 그러면 나가서 추가정산은 없을겁니다. 어차피 도착만하면 우리는 쭉 쉬니까, 조금만 무리하자고요!"
동이 트자마자 다급하게 이동을 시작했다. 다음 보급이 오전중에 들어올테니 빠르게 움직여야 했다. 이러다 진짜 따라잡히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무거운 짐을 메고 있었지만, 돈 얘기가 나오니 다들 끙끙 앓으면서도 빠른 속도를 유지했다. 그도 그럴게 전부 돈 때문에 들어온 사람들이기에.
어제는 분명 즐거웠지만, 이제와보니 조금 후회가 됐다. 후발대는 군인들인데 혹시라도 따라잡히는게 아닐까 그의 마음은 한 없이 초조 해지기 시작했다.
그때 행군진형에 소요가 생겼다.
"무슨 일입니까?"
"여기 보람씨가 다리에 힘이 풀려서 못 일어나겠다는데요?"
그는 짜증이 섞인 눈으로 그녀를 내려다 보았다.
그와 눈이 마주친 그녀는 눈물이 그렁그렁해지더니 이내 흐르기까지 했으나, 사람들은 그녀가 심약하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조금만...쉬었다 가면 안 될까요?"
"지금 그럴 시간 없다는거 몰라요? 어제 충분히 쉬었잖아! 당신때문에 여깄는 사람들 다 손해보면 책임질거야? 어?"
대중들은 침묵했다.
급박한 일정에 인성검사나 별다른 안전장치도 없이 포탈 속으로 사람을 밀어넣은 결과였다.
어쩔 수가 없었다. 공략팀장이 보급과의 전쟁이 될테니, 싸움은 전투원들이 최선을 다 할테니 보급만큼은 절대로 모자라지 않게 해달라고 신신당부를 했기 때문이다.
전대미문의 현상에 전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상태에서 국가권력은 무거운 엉덩이를 들어 정말로 사력을 다해서 지원을 하고 있었다. 최초의 선례를 성공으로 남기고 싶다는 욕망으로, 그리고 역사에 자신의 이름을 깊게 새기기 위해서. 또한 한국이 성공해낸 공략을 다른 나라에서 성공하지 못한다면, 국격이 오르는 셈이기 때문이다.
"운다고 될 일이 아니라고! 분위기 파악 안되요? 얼른 일어나세요. 아니면 놓고 갈테니 여기서 조금 기다리시든가! 후발대랑 합류하세요."
"일어...날게요..."
그녀는 안간힘을 쓰며 바닥을 짚고 겨우 몸을 일으켰다.
제대로 걸을 수나 있을까 싶은 상태였다. 다른 여자들도 몸 상태가 안좋긴 마찬가지 였으나, 보급대장의 행동을 보고 완전히 체념했다. 힘든 티 내봤자 남는게 하나도 없음을 깨달았을 뿐이다.
남자라고 체력이 다 좋은것도 아니었다.
운동과는 담 쌓고 술에 쩌든 저질 몸뚱이를 가진 남자들도 입에서 단내가 나고 죽을 맛이었다.
보급대장이 추가금 운운하는 통에 꾹 참으며 가고 있을 뿐이었다.
어깨 신경이 가방끈에 눌려 팔이 저리고 발바닥이 다 망가지도록 걸은 끝에 보급대 인원들은 베이스 캠프에 도착을 했다.
붉게 지는 석양에 비친 풍경은 그들이 상상했던 것과는 백만리는 떨어져 있는 광경이었다.
초목으로 푸르던 대지는 시체의 산으로 뒤덮여 있었고 말라 비틀어진 핏자국으로 가득했다.
갈기갈기 찢긴 인간이었던 무언가를 발견한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구토를 했다.
'개X발! 이게 뭐야? 위험하지 않다더니 다 개소리였잖아! 이게 어떻게 된거야? 부대가 전멸한건가?'
휴식 시간마다 무전을 시도했음에도 답신이 없길래 거리가 멀어서 그런줄 알았더니, 부대가 전멸했기 때문이었다니!
캠프의 규모를 보니 이 곳이 본대가 머물던 곳이 확실했다. 죽어있는 괴물들의 숫자를 보니 전멸이 납득이 되는 수준이었다. 얼핏 보기에도 수천 마리가 넘어보였으니까. 거기에 날개달린 녀석들 이었으니 대응이 더 어려웠을터다.
인간의 시신이 수백 구가 나올거라 생각했으나 얼마 되지 않는것에 의아함을 느낄 때 즈음,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시신 두 구를 발견했다.
가까이 다가가보자 둘다 여자였는데 한쪽은 온몸이 넝마가 되서 피딱지로 범벅이었고, 한쪽은 상처 하나 없었다.
"허업!"
그는 하마터면 비명을 지르며 꼴사납게 뒤로 넘어질 뻔했다.
너무 놀라서 비명 대신 헛바람을 삼키길 다행이었다.
가슴이 오르락내리락 하는게 숨을 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말라붙은 피에 범벅된 쪽은 징그러워서 오래 쳐다보지도 않았다.
멀쩡한 여자를 천천히 살펴보자 말도 안되는 미인이었다.
이런건 난생 처음이었다. 예전에 본 유명 영화배우도 비교가 안되는 수준이었다.
그는 고개를 돌려 주변을 한번 살펴본 뒤 자신에게 쏠린 시선이 없다는걸 확인하고는 그녀의 뺨을 살짝 쓸어보았다.
'피부가 어떻게 이렇게 곱지? 크으. 이년을 또 어떻게 요리하면 좋을까? 크크큭. 난 행운아야.'
그리고 그녀의 상의 윗단추를 풀어내리고 열린 옷틈으로 손을 넣어 가슴을 만지려던 그때였다.
"야, 씨뱅아 지금 뭐하냐?"
피딱지녀가 어느새 상체를 일으켜 앉은 채 자신을 바라보며 말을 했다.
죽다 살아난 상처투성이인 계집이 감히 자신에게 반말에 욕설을 퍼부었지만, 평소 성격이라면 약자에게 적반하장으로 난리를 쳤을 그가, 서슬퍼런 기세에 눌러 어버버거리며 핑계를 댈 뿐이었다.
"그,그, 그...심장 박동을 확인하려고."
"지랄."
별안간 하늘에 별이 반짝이는 기분이 들었고 그의 의식에 아득한 어둠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