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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5화 〉54화 - 불꽃처럼 타오르리라 (55/74)



〈 55화 〉54화 - 불꽃처럼 타오르리라

 이런 빌어먹을 일이 연달아 일어나는 걸까.
분명 우리가 먼저 괴수들을 찾아다니고 있었는데.
언젠가부터 공격받는 입장이 되어버렸다.

의식이 없는 한소희로부터 떨어진 곳에서 전투를 치를까 하다가, 그랬다가 오히려 지키지도 못하고 허망하게 죽을까봐 재고했다. 어차피 전투원들은 공격 당하는 순간에 죽는것이나 다름없고,  지경이 되면 누워있는 사람도 죽은 목숨인건 마찬가지다.

"사냥하듯 공중에서 내리찍을 겁니다. 낚아채 가거나 부리로 찌를 테니, 최대한 개인별 거리를 벌리고 교전하겠습니다."

"예!"

마흔일곱 명의 생존자들이 널찍하게 거리를 벌리고 무장을 점검했다.
소총과 기관총으로 단단히 채비했지만, 놈들은 거대해 보이는 덩치에 비해 유효타격 범위가 작다.
날개를 쏘는걸론 죽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워낙에 수가 많으니 대충쏴도 어떤놈이 맞든 머리나 몸통을 맞출 순 있겠지만, 소수라도 지상에 닿는 순간 우리는 끝장이다.

최후를 직감했는지 다들 표정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마지막 통솔자 역할을 하고있던 내가 입을 열었다.

"여러분과 함께해서 영광이었습니다."

나는 가슴에 빗겨 맨 소총과 양손에는 기관총을 한정씩 들고 있었다.
사람에 비해 무장이 넘쳐나는 상황이라 다른 사람들도 기관총으로 무장하고 탄환을 잔뜩 장전 시켜놓은 소총들을  자루씩 거꾸로 땅에 꽂아두었다. 탄창을 갈아끼는 것보다 발치의 새로운 총을 들어 올리는 게 빠르기 때문이다. 참호 안에 들어가는 인원도, 그렇지 않은 인원도 있었다.

"죽는것 처럼 말하지 마쇼! 죽어서라도 살아돌아갈라니까!"

"크크. 그것도 맞네! 팀장님 건배사 다시 치십시오!"

"술자리도 아니고 뭔 건배사야?"

"키킥. 그럼 뭐라고 해야 하지?"

최후의 순간에 사람들은 오히려 긴장을 풀려는 듯 농을 놨다.
나는 입가에 처연한 미소를 띄우며 다시 크게 외쳤다.

"개 X 같은 세상아! 덤벼라! 내가 다 씹어먹어 줄테니까!"

"으아아! 내가 다 조져버릴라니까!"

"새대가리들 다 찢어 죽이고 돌아간드아!"

내가 악다구니를 쓰며 외치자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처절하도록 투쟁을 외쳤다.
하늘은 뒤덮은 날개를 보니, 마치 거대한 발바닥이 다가오는것 같았다.
인간에게 밟히는 개미가  기분이었다.
우린 총이 있으니 총알개미인가? 총알개미한테 물리면 얼마나 아픈지 똑똑히 보여줄테다.

"어이~ 팀장 씨, 마지막이니까 말하는건데 나보다 한참 어린 당신한테 꽤나 감명 받았어.  똑같이 힘든데도 혼자서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보기가 참 기꺼웠다니까. 함께해서 영광이었수. 아까 어깃장 놓은  이걸로 봐주슈."

"살아남아야 봐주지요! 죽어버리면 절대 용서 안 할테니까 그리 알아요!"

"크크큭. 젊은 처자가 기세가  매섭구만. 내 최선을 다해보리다."

놈들이 사거리까지 다가왔다. 아직 상공에 떠 있지만 어차피 다 쓰지도 못 할 탄환이다.

"죽어어어!"

투다다다다다다두다다다다다- 타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당다다다당타다다당-

양손의 기관총에서 순식간에 400발의 탄환이 쏟아져 나아갔다.
기관총 하나를 던져버리고 재빨리 바닥에 잔뜩 늘어놓았던 탄띠를 삽입하며 사격을 이어갔다.
놈들은 대각선으로 공중에서 지상을 향해 빠른 속도로 하강하기 시작했다.

그물 모양으로 넓게 포진한 인원들이 하늘을 향해 삶의 마지막 불꽃을 찬란하게 불태웠다.
  없이 불을 뿜어내는 총구는 시뻘겋게 달아오르며 푸르른 창공을 향해 거세게 저항했다.

목숨을 도외시하고 이어간 사격에 엄청난 수의 독수리들이 추락했지만, 결국엔 지상에 닿았다.
하늘에서 내려온 사신이 지상에 강림했다.

"끄아아악!"
"꺽!"

활강하는 관성에 더해 억센 발톱으로 어깨를 꽉 쥐자 상체가 그대로 찢겨졌다.
창날 같은 부리로 거칠게 내리꽂자 두부처럼 몸이 꿰뚫리며 자지러졌다.
여기저기서 끔찍한 비명과, 그 단말마 조차 내지르지 못하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보였다.

"끼에엑!"

괴성을 내며 날 노리고 내려오는 놈에게 탄환을 박아주었다.
놈의 뒤에 겹치듯 따라붙은 놈을 피하며 바닥을 굴렀다.
구르는 자리를 노리고 부리를 내리꽂는 놈이 있기에 몸을 뒤틀어 피하며 그대로 대가리를 걷어 찼다.
 익은 수박처럼 퍽하고 터져버리는 새대가리를 뒤로한 채 놈들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그때 바닥에서 움직이지 않는 한소희를 노리는 놈이 보였다.
시간이 없어 바닥을 살짝 파내고 엄폐물로 잘 가려놨는데, 전투 중에 굴러다닌 놈들의 시체가 장막을 벗겨낸 듯했다.

타다당-타다다당-

다가서는 놈에게 총알을 퍼부으며 한소희의 옆에 바짝 붙었다.
소희를 노리고 내려오는 날카로운 부리를 걷어차며 궤도를 비틀었다.
그대로 몸통에 탄환을 박아주며 옆으로 한걸음 비켜서자 꽉 쥐어진 발톱이 허공을 지나갔다.
그리고 연달아 뒤쪽에서 날아온 놈이 기어코 내 어깨를 잡아 쥐었다.

한번 잡은 먹이는 절대 놓치지 않는다는 독수리의 억센 아귀힘이 어깨를 찢을 듯 파고들었다.
총을 수직으로 향하여 놈의 아랫배에 바람구멍을 잔뜩 뚫어줬다.
곧바로 여섯 마리가 여러 방향에서 동시에 찔러오는 공격에 결국 허벅지를 관통 당했다.
오른손의 총을 전방위의 놈들에게 난사하며 허벅지에 매달린 놈의 머리통을 후려쳐 터뜨려 버리고 부리를 뽑아냈다.

놈들은 공격이 실패하고 그대로 바닥에 부딪히는 것도 아랑곳 하지 않고 자폭하듯 육탄 공격을 감행했다. 지독할 정도의 악의가 느껴졌다.

"헉...헉..."

상처를 입기 시작하자 체력이 빠르게 소모되기 시작했다.
놈들은 아직도 엄청난 숫자가 남은 채, 하늘을 선회하며 차례로 내려와 공격을 감행했다.

이미 총성은 어디에서도 들리지 않았다.
내가 당기는 방아쇠만이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를 냈을 뿐이다.

'정말로 모두 죽은거야...?'

이대로 나도 죽고, 소희도 죽겠지.

숨 돌릴 틈도 없이 괴수들의 공세가 이어졌다.
미친듯이 오른손의 방아쇠를 당기며, 왼손에 쥔 대검과 총 끝에 매달린 총검을 휘둘렀다.

"커헉!"

발톱이 스치듯 등판을 훑고 지나가고, 방아쇠를 당겼다.
부리가 땅과 함께 발등을 찍어버리고, 검을 그러쥔 왼팔을 휘둘렀다.
거세게 움켜쥐는 손아귀를 피했으나, 그대로 몸통으로 부딪히며 바닥을 뒹굴었다.
모가지를 잡아 비틀며 일어나자 다른 놈이 창날을 쑤셔왔다.
몸을 뒤틀며 피했으나, 사각에서 동시에 같은 공격이 이루어졌다.
복부를 관통 당하고, 그대로 주먹을 내리쳤다.

죽음의 향기가 물씬 풍겨왔다.

뽑아낸 부리를 놈의 몸통에 꽂아 넣으며 방아쇠를 당겼다.
탄창을 교체하려고 뻗은 손등이 발톱에 붙들렸다.
손아귀가 통째로 찢어질  벌어졌지만, 그대로 총 끝에 매달린 총검으로 목덜미를 쑤셔줬다.
덜렁 거리는 왼손으로 다시 탄환을 채우고, 눈에 보이는 놈들을 향해 마구잡이로 발사했다.

남은 적들은 수백 마리를 가뿐히 상회했고, 나는 적들에게 둘러싸인 채 혼자였다.
지상에 내려 앉은  공격하는 놈들과, 공중에서 활강해 내려오며 매섭게 후려치는 놈들의 틈바구니에서 생존이라는 단어는 이미 멀찌감치 멀어진 후였다.

심각한 상처들을 주렁주렁 매달고도, 전투를 위해 개조된 육체는 성능이 많이 저하되지 않았다.
옆구리에 박힌 대갈통을 부수자, 위쪽에서 머리 지척까지 다가온 발톱이 느껴졌다.
완전히 피하기엔 늦었다. 고개를 뒤틀며 전방으로 총알 세례를 퍼부었다.
억센 아귀가 머리를 꽉 붙들었다.
방탄을 부수고 두피를 파고들며 두개골을 부수려 들었지만, 안타깝게도 실패했다.
그리고 실패의 대가는 매서운 총탄이었다.

투다다당-
놈의 비대한 몸뚱이에 아래에서 위로 예쁘게 길을 내줬다.

머리에서 줄줄 흘러내린 피가 얼굴을 붉게 적셨다.
피가 흘러내리는  찰나의 시간도 허락하지 않으려는 듯 공세가 이어졌다.
몸에 뚫린 여러 개의 구멍에서 피와 조각난 내장이 울컥거리며 흘렀다.

끊임없이 주변을 뒤덮은 놈들의 숫자를 줄여나갔지만, 그런 발악 따위 소용없다는  계속해서 빈 자리를 메웠다.

내밀은 부리가 정확하게 눈을 향해 찔러 왔고, 고개를 꺾어 피하려니 내려오는 발톱에 그대로 얼굴이 쥐어 찢길 판이었다. 발톱을 향해 총을 갈기고, 손을 뻗어 부리를 붙잡았다. 그대로 뇌까지 뚫리는건 막았지만, 한쪽 눈에 파고든 부리가 끔찍한 통증을 자아냈다.

놈을 죽여버리고 거칠게 부리를 뽑아내자 곤죽이  안구가 주욱 딸려나왔다.

고개를 돌리자 허공에서 세 마리, 지상에서 네 마리가 다각도에서 동시 공격을 뻗어왔다.
 뒤로 연이은 시간차 공격을 하려는 놈들도 눈에 보였다.
여태까지 저런 무자비한 공격을 용케도 버텨왔지만 이번에는 끝이 날 것 같았다.

'소희야 미안해. 여러분 죄송합니다.'
'엄마...보고싶어요 엄마.'

놈들의 공격을 온 몸으로 받아내며 마지막 발악을 하려는 그 순간.

시간이 찰나로 쪼개졌다.
세상이 아주 느리게 움직이는 기분이 들었다.
나를 둘러싼 모든 공간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집요하게 노리던 교묘한 사각을 이용한 공격들이 분명하게 보였다.

두근- 두근-

요동치는 심장이 느껴졌다.
폭발 직전의 활화산처럼 거세고 웅장하게 울려댔다.

투쿵-투쿵-

심장의 박동에 따라 온몸에 전율이 일며 전능감이 치솟았다.
멈춰버린 듯 느려진 세상 속에서 내 심장만이 터질 듯 고동치고 있었다.

머리 위가 검은 안개로 물들기 시작했다.
이내 형태를 갖춘 검게 빛나는 링은 머리 위에 살짝 얹어졌다.
삼지창 처럼 솟은 앞부분이 마치 왕관을 연상시켰다.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듯한 전능감.
놈들의 위치가 내 머릿속에 입력됐다.

중력 집속―

모두 내 앞에 무릎을 꿇어라.
왕께서 납시었으니, 고개를 처박고 두려움에 떨어라.
경배하라. 경배하라. 그의 자비를 구하라.

드넓은 대지도.
높디높은 창공도.
지금 이 순간.
모두가 그의 권역일지니.
이 땅에 만왕의 왕이 강림했노라.

하늘을 향해 손을 뻗었다.
마치 하늘에 닿으려는 것처럼.
움켜쥔 손이 천천히 아래로 향했다.
최후를 선고하는 왕처럼.

 발로  있던 놈들도, 두 날개로 날아다니던 놈들도.
모든 적들이 검은 안개에 휩싸여 아래로 곤두박질 쳤다.
한 순간에 남아있던 모든 거대 독수리들이 바닥에 처박히며 피떡이 되었다.

나는 비틀거리며 무릎을 꿇었다.
이내 얼굴부터 바닥에 닿으며 그대로 고꾸라졌다.
전투가 끝났다는 생각에 온몸의 긴장이 풀리자 움직이기가 힘들었다.
겨우 고개를 들어 한소희에게로 꿈지럭거리며 기어갔다.

"소희야......"

애처롭게 이름을 부르며 그녀의 위로 포개듯 쓰러졌다.
고요한 전장에는 두 사람의 숨소리만이 적막하게 흐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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