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화 〉53화 - 보내지 못한 마음
부상자들은 휴식을 취하고, 비교적 수월하게 거동이 가능한 생존자들과 함께 전사자들을 수습했다.
시신들은 대부분 얼굴을 식별할 수가 없는 상태였다. 가슴이 미어졌다.
예외없이 배가 찢기고 내장이 파먹힌 사람들을 보며 차오른 눈물이 뿌옇게 시야를 흐렸다.
흐르는 눈물을 닦아낼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유품을 챙기고 시신들을 매장했다.
들고가던 시신에 걸쳐진 넝마처럼 찢긴 옷에 남아있는 이름표가 눈에 들어왔다.
최진수.
데이트를 약속했던 병사였다.
올해로 스물한 살 이라고 했었다.
공부를 잘하는 편도 아니었고, 집에 부담이 될까봐 대학교 대신 군대 지원을 빨리 했다고 했다.
전역 후 일자리를 구해서 부모님한테 보탬이 되고 싶어하는 건실한 대한민국의 젊은 청년이었다.
미녀를 보고 얼굴을 붉히고, 순수한 마음에 데이트를 하고 싶어 하는 심성이 여리고 어린 그런 친구였다.
"끄윽...끅, 진수야...같이 살아 돌아가기로 했잖아...어어엉...흐어어엉..."
"데이트 해준다고 했잖아...응? 일어나봐 제발...!"
"어머니 호강 시켜드린다고 했잖아아악! 진수야아...미안해...미안해...미안해...미안, 미안......"
서러움이 북받쳐 올랐다. 눈물 콧물을 다 쏟으며 망가진 그의 몸을 끌어안고 울었다.
스물한 살의 가난한 젊은이에게, 일억이라는 돈은 목숨을 걸어볼 만한 금액이었던 걸까?
회식 자리에서 교류한 사람들 중에, 잘난 집안에서 태어났거나 먹고 살기 풍족한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
다들 사정이 있어서 이 사지로 걸어 들어온 것이다.
고위직이나 자산가의 자녀거나, 그들 본인들은 포탈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나중에 그들이 하안뱡의 고통에 시달리다 포탈을 필요로 할 때에도, 들어와서 포탈 옆에 진이나 치고 있겠지, 위험한 공략에는 참여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죄가 있는건 아니다. 오히려 내 의도대로 움직여주고, 지지해주고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알고 있다. 엄한 곳에 화풀이 한다는 것을. 하지만 나에겐 이 분노의 화살을 향할 곳이 필요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당장에 무너져 버릴것 같았기에.
나는 스스로 모든 것을 책임지지 못하는 나약한 존재였으므로.
전사자들의 수습이 끝났다. 공략에 성공한다면 유해를 유족에게 전달할 수 있을것이다.
이젠 그들을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나에겐 지상 과제가 되었다.
시종일관 침울한 표정을 하고 있는 내게 이무배가 다가왔다.
"손이 이리되어서, 군인연금에 장애혜택까지 받게 됐으니 노후 걱정은 없게 되었네요."
"농담도 참...저 괜찮으니까 그렇게 풀어주지 않으셔도 되요. 위로는 고맙게 받을게요."
사지 멀쩡하게 살아남은 내가 정작 위로 받아야 할 사람에게 되려 위로를 받고 있다니.
모순도 이런 웃기는 모순이 없었다.
완성되지 못한 부족한 사람은, 어딜가나 늘 이런 취급이나 받을 뿐이다.
"주님께서 팀장님을 중히 쓰시려고 이리 담금질을 하시나 봅니다. 절대로 좌절하지 마시고 시련을 이겨내십시오. 그게 먼저 간 사람들을 위하는 길입니다."
종교인이었구나. 나는 특정종교에 호감도 없지만 악감정도 없는 편이었다.
어딜가나 불순분자들은 있기 마련이었기에, 일부를 보고 전체를 까내리지는 않았다.
"저는 무교인걸요."
"사실 저도 믿음이 강한 신자는 아닙니다. 지금 이 지옥같은 현실 속에서 신이라도 붙들지 않으면 견디기가 어려울 뿐이죠."
"복이씨. 스스로가 나약하다고 느껴지겠지만, 이겨내세요. 당신 탓이 아닙니다. 누구도 당신을 원망하지 않았을 겁니다."
"정말...정말 그랬을까요?"
"저 때문에 수 많은 사람들이 죽고...소희도 저렇게 되고...앞으로 더 죽어 나갈텐데...제가 멋대로 일어나도 되는거에요? 주저 앉아 머리를 땅에 처박고 사죄해야 하는거 아닐까요...?"
"본인만의 방식으로 그 빚을 갚으면 됩니다. 하지만 쓰러진 채 망가지는건 틀린 방법입니다. 적어도 저는 그렇습니다. 만일 제가 먼저 주님 곁으로 간다면, 당신이 나 대신 수많은 사람들을 위해 싸워주십시오."
"네...네. 꼭,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래도 죽진 마세요. 살아계셔도 열심히 할 테니까요."
"허허, 물론이지요. 제 딸아이 때문이라도 쉽게는 못 갑니다."
무너진 마음속에 주춧돌이 하나 올려졌다.
자그마한 이 돌맹이는, 그 어떤 풍파와 고난에도 결코 흔들리지 않고 기둥을 받칠 터였다.
작지만 무엇보다도 단단한 주춧돌 위로 기둥이 올려졌다.
곧게 솟은 이 기둥은, 세상을 향해 힘껏 외치듯 시원스레 뻗어나갔다.
절대로 꺾이지 않을, 굳센 의지로 벼려낸 마음이었다.
"딸아이가 이제 유치원에 막 들어가는데, 얼마나 예쁘냐면요."
"아, 안 돼. 안 봐요. 나가서 보여줘요 나가서."
"에이~ 그러지말고 한번 보라니까? 정말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 같다니까요."
"이 아저씨가 왜 이래에~ 안 본다구요! 안 봐요. 사람 살려!"
그가 딸아이의 사진을 보여주려고 품을 뒤지자 나는 다급하게 거절하며 자리를 피했다.
매장이 끝나자 물자 정리가 시작되었다.
주인 잃은 총기들이 사방에 넘쳐났다. 다음 보급 대원들한테 쥐여줘야 할지도 몰랐다.
총 쏠 줄 모르는 남자는 없는 게 장점이라는 생각이 들면 드디어 내가 미친 걸까?
화기들을 한쪽으로 모으고 탄약과 식량을 분류해서 쌓아 두기 시작했다.
미친 메뚜기들은 가방을 뜯고 들어가 식량도 상당 부분 먹어치웠다.
그럼에도 남은 사람이 얼마 없어서 식량이 부족하진 않겠다는 생각이 먼저 드는걸 보니,
나는 미쳐버린 게 분명했다.
정리가 끝나고 한소희의 곁에 앉았다.
이마에 잔뜩 맺힌 식은땀을 닦아내고, 흐르는 진물과 핏물도 닦아내었다.
혈색이 없어 창백한 피부가 시리도록 가슴을 때렸다.
손을 잡아보니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나는 말없이 소희의 손을 붙잡은 채 그녀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그렇게나 사람이 죽어나갔어도 산 사람은 밥은 먹어야하는게 인간의 숙명이다.
느껴지는 허기에 정말이지 뱃가죽을 열고 손을 집어넣어 위장을 뽑아내고 싶었다.
식사를 마치고 간호를 이어갔다. 한소희뿐 아니라 다른 부상자들도 몇 명 맡아서 관리했다.
살아남은 유일한 여군이 간호장교인지라, 그녀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
이리저리 뛰며 고생한 그녀가 없었으면 부상자 관리가 훨씬 힘들었을 터다.
부상이 심한 사람들을 부상이 덜 한 사람들이 간호를 하는, 명백한 패잔병들의 군대였다.
분명히 전투에선 승리하였음에도, 패배의식을 떨쳐내기가 힘들었다.
괴수와의 전투는 이겼지만, 포탈과의 전쟁에선 졌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앞으로 이틀은 더 있어야 보급대가 도착할 것이었다.
그때까지 어떠한 전투도 없어야 잔존 인원들의 생존이 가능했다.
하지만 하늘은 우리 편이 아닌듯했다.
밤중에 억수같이 비가 내렸다.
세상이 떠내려갈 듯 퍼붓는 빗줄기에 부상자들을 우의로 감싸주며 원망스러운 하늘을 쳐다보았다.
왜 하필 오늘 이런 비가 내리는지. 가뜩이나 몸이 약해진 부상자들은 떨어진 기온과 미처 막아내지 못한 빗줄기에 급속도로 체온을 잃어갔다.
나는 소희의 텐트 안으로 들어가 그녀를 꼭 끌어안아 체온을 나눠주었다.
그렇게 모든 인원들이 뜬 눈으로 새벽을 지새웠다.
한소희는 동이 트도록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폭우가 잠잠해지고 흐린 날씨 속에 추적추적 계속해서 비가 내렸다.
나는 참으려면 며칠 밤을 새고도 거뜬했기에, 다른 인원들을 교대로 재웠다.
밤 사이 내린 폭우로 인해 몸 상태가 악화되었는지 오전에 사망자가 나왔다.
부상이 가장 심한 사람이었다.
그를 매장지로 옮기며 살펴보니, 오른쪽 팔은 근육이 거의 다 파 먹혀서 뼈가 드러났고, 안구 하나가 완전히 적출 됐는지 눈구멍이 텅 비어있었다. 손가락과 귀도 성한 곳이 없었다.
얼마나 아팠을까. 밤새도록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천천히 죽어가는 자신을 느끼며 얼마나 슬펐을까.
그를 간호한 사람에게 들은 바로는 가볍게 움직이는것과 의사소통이 가능했으나, 죽기전까지도 먼저 말을 꺼내지는 않았다고 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말이 없었던 걸까? 아무리 과묵한 사람도 죽기 전엔 말이 많아진다던데.
조용히 애도를 표하며, 그의 유품을 챙겼다. 부인의 사진이 들어있는 로켓 목걸이였다.
그 안에 작게 접힌 종이가 하나 들어있었다.
아픈 와중에 익숙지 않은 왼손으로 쓴 탓에 삐뚤빼뚤한 글씨였다.
'여보⋯사랑해⋯'
보내지 못한 마음이 담긴 편지는, 끝내 부치지 못한 편지가 되었다.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 이 슬픔에 고장난 눈물샘이 또 멋대로 흘러내렸다.
고작 일주일도 되지 않는 시간이었다. 이 사람들이 숨 쉬던 시간들과 오늘의 차이는.
뜨거운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 내렸지만, 나는 소리내어 울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그에게 예를 다해 보내주며, 마음속에 세워둔 기둥을 바라볼 뿐이었다.
어느새 비가 그치고 하늘이 맑게 개었다.
정리를 마치고 주둔지로 돌아가 소희의 상태를 살폈다.
내가 없어도 간호는 잘 이루어지고 있었는지, 다소 불규칙하지만 숨소리가 잘 이어지고 있었다.
이마에 펄펄 끓는 열은 여전하고 그에 반해 몸은 소스라치게 차가웠지만, 이겨내리라 믿었다.
그때였다.
한소희가 갑자기 가슴을 덜컥하며 발작을 일으키더니 숨을 쉬질 않았다.
"간호장교님! 혜진씨! 여기요!"
"심정지입니다! CPR 시작하겠습니다. 인공호흡 시작 해주세요."
자다 깨서 부리나케 달려온 그녀는 한소희의 상태를 살펴보더니 심폐소생술을 시작했다.
숙련자인 그녀가 체외 심장 마사지를 시작하고 내가 인공 호흡을 했다.
입가에 숨을 불어넣고 가슴 쪽을 바라보자 그녀는 당황한 듯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이게 무슨? 흉부 압박이 전혀 되지 않아요!"
"제, 제가 할게요!"
"가슴 뼈의 아래쪽 이분의 일 지점을 강하고 빠르게 압박하세요!"
예비군 훈련때 배우는 구급법도, 각종 매체에서 알려주는 심폐소생술 방법도 다 새햐앟게 잊어버렸다.
그저 옆에서 지시 하는대로 기계처럼 되뇌며 움직일 뿐이었다.
"제발, 제발 소희야! 숨 쉬어! 제바알!"
심정지가 일어나면 발생 직후 5분이 골든타임이다.
그 이후부터는 조직 속 산소가 소모되며 손상이 일어나고, 10분이 넘어가면 뇌 손상이 극심해 회복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다.
다행히 심정지가 일어나는 그 순간에 발견을 했기에 빠른 조치가 이루어졌다.
하지만 5분이 다 되어가도록 한소희는 숨을 쉬지 않았다.
"소희야 제발...이렇게 가면 안돼..."
심폐소생술 시행 시간이 10분이 넘어가자 간호장교는 그만하라고 말렸으나 나는 멈추지 않았다.
"아직 아니에요. 저만 해도 숨을 수십 분을 참을 수 있어요. 조직 손상도 회복할 수 있을겁니다. 아직 손상률이 높지도 않을 수도 있어요. 체내의 산소가 평범한 사람보다 더 많을테니까.아직 더 해봐야 해요."
내 말을 들은 그녀는 말 없이 한소희의 상태를 살피며 내 템포에 맞춰 심폐소생술을 이어갔다.
그리고 기적처럼 그녀의 심장박동과 호흡이 돌아왔다.
"고마워. 이겨내줘서 고마워 소희야..."
"후우...다행이네요. 아까전에 멈추자고 해서 죄송합니다. 제가 잘 몰라서 그랬어요."
"아닙니다. 도와주신 덕분에 살은걸요. 혜진씨가 사과하실 일 아니에요."
그때 이무배가 다급하게 다가왔다.
"팀장님, 저기 좀 보십시오."
"네?"
그의 손끝을 따라 시선을 이동하자, 하늘을 뒤덮은 새들이 이쪽으로 맹렬히 날아오고 있었다.
활짝 펼친 날개의 길이가 10미터가 넘어가는 거대한 독수리였다.
맹금류 특유의 크고 날카로운 발톱과 기형적인 부리가 창처럼 길고 뾰족하게 튀어 나온 괴수였다.
다가오는 악마의 날개들은 그 규모가 수천 마리는 되어보였다.
이 빌어먹을 포탈은, 오늘 우리를 전부 죽일 작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