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3화 〉52화 - 부서진 희망 (53/74)



〈 53화 〉52화 - 부서진 희망

부아아아아앙-투두두두두두두웅-

전투기소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거대한 소음을 내며 빠른 속도로 날아 다가오는 놈들은.
황충(蝗蟲)이었다. 로커스트라고 부르기도 하는 이 끔찍한 놈들은, 날개가 길어지고 뒷다리가 짧아지는 신체변화를 겪으며 고작 6센치미터의 몸체를 가지고도 수십억 마리가 몰려다니며 닥치는대로 작물을 먹어치우는 살아있는 자연재해다. 기록상 12조 5천억 마리의 무리를 지은 적도 있었다. 괜히 과거 사람들이 요괴라고 부른게 아닌 흉악무도한 놈들이다.

그런 놈들이 팔뚝만 하게 몸체를 불린 채 부대 진영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이젠 작물이 아니라 인간을 산채로 뜯어먹을 터였다.
황급히 쌍안경으로 주변을 둘러 보았다. 불행 중 다행인지 양동은 아닌듯했다.

"전부 화망 구축해! 십자포화 한다!"

다급하게 좌우로 부대원을 나누며 놈들이 날아오는 방향에 사선이 겹치도록 만들었다.
끔찍한 일이었다. 포탄과 사격으로 숫자를 얼마나 줄일 수 있을까? 비행체 들이라 접근 속도가 엄청나게 빨랐다. 더군다나 군집이 거대할  단일개체의 크기는 작았기에 일정  이하로 줄어들면 허공을 가르는 탄환이 많을 터였다.

거대한 곤충의 군집체는 그 숫자를 가늠할 수 조차 없었다. 그저 빈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빽빽하게 메꿔져 있음이 확인될 뿐이었다. 저걸  묶어둘 정도의 능력이라면 모를까, 현재로서 한소희의 초능력은 도움이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펑-피잉-씨이잉-

박격포들이 연기를 뿜으며 포탄을 쏘아냈다.
놈들의 접근속도를 고려해 예측사격이 이루어졌고, 포탄이 터질때마다 군집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으나, 이내 흔적도 없이 메워지는 끔찍한 악몽이 반복되었다.

놈들의 맷집이 약하니만큼 포탄 한방에 엄청난 양의 메뚜기를 처리했으나, 그 수가 너무 많은게 문제였다.

"전원 착검! 준비된 사수부터 사격 개시하라아아!"

투다다다다다다다당- 따르르르르르르르르륵-

예광탄의 빗줄기가 별똥별처럼 쏟아져 내렸다.
허공을 가르는 탄환은 목표물은 필요도 없다는 듯이 아무렇게나 쏘아져 나갔고, 걸리적 거리는 메뚜기들을 본인의 힘이 다 할 때까지 뚫고 나아갔다.

어두운 붉은빛을 띄는 덩어리는 마치 총알을 빨아들이는 거대한 하수구 같았다.
분명히 탄환 한발에 수십 마리씩은 우습게 죽어나갈터인데, 수백 명이 십자포화의 탄환세례를 퍼붓는데도 그 크기가 줄지 않는것 처럼 보였다.

붉은 재앙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마치 피할 수 없는 운명처럼. 겸허히 받아들이라고 말하는 듯했다.
극도의 공포심에 거대한 붉은 눈동자가 우리를 주시하며 다가오는 환각이 보이기 시작했다.

놈들이 휩쓸고 지나가면 모든것이 끝이다.
부대는 괴멸적 타격을 입을 것이고, 나 또한 위험하다.
벌레 따위가  몸에 상처 입힐 순 없겠지만, 해치워도 해치워도 끊임 없이 온몸에 들러 붙는다면 과연 언제까지 버틸  있을까? 차라리 죽기를 기도하는게 나을지도 모른다.

최선을 다해 공격을 가했지만, 분명히 유의미한 타격을 입혔음에도 놈들의 숫자는 상당했다. 아직도 그 수를 다 헤아릴 수 없을 지경이었으니까.

이내 붉은 물결이 부대원들을 뒤덮었다.

"끄아아악! 크어억."
"비켜! 악! 아아악!"
"꺽..."

놈들 개개인의 전투력은 나약하지만 전신에 들러붙어 갉아댄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병사들은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며 저항해 봤으나 깔아뭉개 죽이면 그 만큼이 다시 달라 붙었다.
필사적으로 급소를 보호하며 있는 힘껏 온몸을 휘두르며 저항해 봐도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으아아! 살려줘!"
"어억! 엄마...아악...꺼커억."
"X발! 다 뒤져! 어억..."

투다다당-

고통에  이겨 총질을 마구 해대는 병사들까지 생겨났다. 총알에 메뚜기들도 휩쓸려 나갔지만, 얼굴이 벌레로 뒤덮인 탓에 시야도 없이 마구 쏴 갈겨버린 오인 사격에 아군들이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죽어나갔다.

나는 달라 붙은 채 아가리를 오물거리며 내 몸을 갉아먹으려는 놈들을 그대로 몸과 팔뚝으로 꾹 눌러 죽였다. 진액이 터져나오며 온몸이 끈적하게 범벅이 되었다.
놈들을 눌러죽여 교차한  위로 곧바로 다시 놈들이 달라 붙었다. 팔을 거칠게 털어내며 대검을 마구잡이로 휘둘렀다. 아무렇게나 휘둘러도  마리씩 칼날에 걸리며 베어졌다.

얼굴에 달라붙으면 그대로 주먹으로 얼굴을 후려치고, 손으로 잡아 움켜쥐며 떼어냈다.
놈들은 얼굴과 주먹 사이에서 박살이 나고, 손아귀에서 뭉개지며 몸을 파다닥 떨었다.
구토감이 치밀었다. 그대로 토를 하며 싸움을 이어갔다.
내 입에서 울컥거리며 줄줄 흘러 나오는 토사물과 놈들의 끈적한 체액이 분간이 가지 않았다.

그 질긴 군복이 어느새  찢겨 알몸이 그대로 드러나는 지경에 이르렀다.
부끄러움 따위는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옷이 찢기면 생살과 내장을 파먹히며 죽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얼굴이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물어 뜯긴 채 간헐적으로 몸을 움찔거릴 뿐인 병사의 눈알에 대가리를 박아넣은 채 쩌적거리는 곤충의 아가리를 보니 분노가 머리 끝까지 솟아 올랐다.

이런 개 같은 메뚜기 새끼들한테 죽으라고 데려온 사람들이 아니다.
이 빌어먹을 X발놈들이 개체수를 다 채우고 있었던 거다.
이 넓은 지형에 이상하리만큼 괴수가 없더라니.

천적도 이런 천적이 없었다.
강인한 육체를 가진 거대 괴수가 위험하리라 생각했으나 단단한 착각이었다.
제 아무리 강한 괴수여 봤자 대전차 미사일로 대갈통을 뚫어 버리면 뒤지지 않고 배길 수가 없다.

그래서 대비책으로 챙겨온 현궁이거늘. 이런 상황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병사들은 실시간으로 끔찍한 고통속에서 죽어가고 있었고, 나는 그저 주변의 황충들을 학살하는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게 없었다.

역시, 나는 무력하다.
지난 악몽들은 공포심과 불안감에서  착각이 아니라,
나라는 인간이 만들어  참사를 미리 보여줬을 뿐이다.

자책, 자책, 또 자책감이 뒤따랐다.
나만 아니었으면, 이 사람들은 오늘 죽지 않았을텐데.
그대로 일상을 이어 나갔겠지. 나는 지독하리만큼 이기적인 악마다.
내 자리를 찾기 위해, 아무것도 확실한게 없으면서, 수 많은 사람들을 지옥으로 끌고 들어왔다.

"언니! 정신차려요! 정신차리라고오오!"

놈들의 공격에 저항도 없이 눈을 감고 가만히  있자, 한소희가 거칠게 온몸을 부딪히며 다가왔다.
그녀는 온힘을 다해 내게 달려들었는데, 두 몸체의 강한 충돌에 맞부딪친 벌레들이 낑기며 터져나갔다.

"뭐하는거에요 지금!  가만히 있어! 왜! 미쳤어요?"

투다다당-

이제는 총포음이 자주 들려왔다. 아직 생존해 있는 자들이 어떻게든 살기 위해 발악하는 소리였다.
이를 악 문 한소희의 양 손가락에서 희미한 푸른빛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그녀가 주먹을 꽉 쥐자, 그 빛은 이내 주먹 전체를 감싸고 천천히 팔을 타고 올라갔다.
팔 전체가 눈부시도록 밝은 푸른 빛으로 뒤덮힌 그녀가 팔을 들어올려 얼굴에 붙은 놈들을 뭉갰다.

반개했던 그녀의 재능이, 완전히 개화했다.

부릅   눈에는 생기가 없었다.
그녀의 눈과 코, 귓구멍에서 피가 줄줄 흘러나왔다.

"커헉!"

입에서 검붉은색 피를 토해내며 그녀는 고개를 좌에서 우로 돌리며 시야를 확보했다.
한소희는 혈액과 내장조각이 섞인 각혈을 할 정도로 초능력을 끌어오고 있었다.

양쪽 팔에서 대지를 향해 두꺼운 빛줄기가 뻗어 내려가고.
셀  없이 많은 분열을 거듭하며 나아갔다.

촤자자작―

세상이 그대로 멈춰버렸다.
수 많은 괴수들을, 수 많은 푸른 빛 덩쿨들이 옭아맸다.

한소의의 능력은 발동 시와 사용이 완전히 끝난 후에 대가를 치른다.
발현의 대가는 치뤘으니, 속박이 진행되는 동안은 리바운드가 없다.

나는 양팔을 늘어뜨린 채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그녀를 한번 바라보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하지 못했다. 못난 나는 그럴 자격이 없었으니까.

투다다당- 촤악-

그저 그녀의 능력이 끝나기 전에, 살아남은 병력들과 함께 최대한 많은 놈들을 처리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을 뿐이었다.
허공이나 바닥에 가만히 멈춰있는 놈들을 처리하는건 너무나도 손쉬운 일이었다.
얼마 되지 않는 생존 인원들 임에도 순식간에 그 많던 괴수 잔당들을 처리했다.
점차 희미해지는 넝쿨색에 따라 더욱 서두르며 학살을 감행했다.

빛의 넝쿨이 사라지고,  자리에 그대로 쓰러지는 한소희를 안으며 받아냈다.

"어, 언니...내, 내가...여, 열심히 해, 했으니까...그런 표정 짓지 말아요. 언니도 열심히 했잖아...요..."

"소희야! 소희야!"

새어나온 피로 인해 온 얼굴이 피범벅인 그녀는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혹시라도   못될까  흔들지도 못하고 그저 내 품에 안긴 그녀를 소리쳐 부르는 것 밖엔 할 수 없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  끝에서 뚝뚝 떨어졌다.
의식이 없음에도 그녀의 코와 귀에선 계속해서 선혈이 흘러나왔다.

"어어...어떡해. 소희야...아아...아아악!"

머리를 마구 쥐어 뜯으며 비명을 질러댔다. 손아귀에 잡힌 머리털이 뭉텅이로 뽑혀져 나왔다.
그때, 무언가가 감싸는 느낌과 함께 어깨에 닿는 체온이 느껴졌다.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익히 알고있는 얼굴이었다.

"팀장님, 소희씨 힘들겠습니다."

"아, 무배씨. 미안해, 소희야...시끄러웠지..."

포반장 이무배가 알몸이나 다름없는 나와 소희에게 판초를 덮어주며 내 어깨에 손을 올린 것이다.
위로하듯 올려진 손에는 손가락이 하나 없었다.

"죄송합니다.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네요..."

조심스레 한소희를 안아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상황이 아주  좋습니다. 부대가 괴멸적 타격을 입었습니다."
"생존 인원 50명이 채 안 되는 상황입니다. 분대장급 인원들은 전멸했습니다."

"하..."

최악의 상황에 저도 모르게 탄식이 흘러 나왔다.
300명이 넘는 인원이 거대 메뚜기 떼에 처참하게 갈려나간 상태였다.
한소희를 텐트 안에 눕혀놓고 생존자들을 규합했다.

모두 상태가 좋지 않았다. 온몸에 뜯긴 상처는 물론이요, 상처가 깊어 출혈이 멈추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러다 부상이 악화되어 당장에 사망자가 더 나올 판국이었다.
손가락 등 신체의 일부를 잃거나 눈이나  그리고 귀를 잃은 인원들도 심심찮게 보였다.
그들이 이 열악한 환경 속에서 감염을 이겨내고 회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한소희의 상태도 아주 좋지 않았다. 몸이 고열로 들끓었으며 끊임없이 피와 진물을 쏟아냈다.
원작에서  정도로 초능력을 끌어쓰는 연출은 나온적도 없다.
말이 아포칼립스 헌터물이지 실상은 가벼운 하렘물이었기 때문에 주인공놈은 승승장구했기 때문이다. 장담하는데 그놈이 소설에서 연출된 것처럼 포탈에서 행동한다면 무조건 뒤진다.

끔찍한 현실이 되버린 포탈은, 그야말로 인세에 강림한 지옥이었다.
주인공이 지 능력 믿고 깝죽대면서 여자나 후리는 그런곳이 절대로 아니었다.
나는 원작만 믿고 경솔하게 포탈 공략에 뛰어든 것을 가슴에 한이 맺힐 정도로 후회했다.

살아남은 자들은 베테랑이고 초짜고 상관이 없었다. 너나 할  없이 모두 사이좋게 죽어나갔다.
전투력이 약한 여군들은 단 한명의 생존자만이 남았을 뿐이었다.
이 지옥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은 개인의 능력 덕도 있었겠지만, 운이 좋았다고 봐야 했다.

 마저도 당장 심대한 부상이 없는 자들은 고작 스무 명 남짓이었다.
더 이상 전투 속행이 불가능한, 군사적 전멸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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