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9화 〉48화 - 포탈의 대칭성 (49/74)



〈 49화 〉48화 - 포탈의 대칭성

나는 조용히 눈을 떴다.
주변에서 알아챌 정도로 호들갑을 떨며 일어나지 않아 다행이었다.
가슴이 미친듯이 두방망이질을 쳤다.  몸이 젖어 축 늘어지는게 식은땀으로 범벅이었다.
입안이 바싹 마르는게 느껴져 황급히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앉은채로 천천히 심호흡을 이어가자 상태가 조금씩 진정이 되었다.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하루에도 수십번씩 후회를 했다. 설치지 말고 나중에 주인공한테 묻어나 갈걸.
지금 있는 사람들의 목숨만으로도 버거웠다. 언제가 될진 모르지만 앞으로 오게 될 사람들의 목숨까지 생각하니, 새삼 내가 벌인 일이 얼마나 무모한지 깨달았다.

 곳의 사람들을 그저 데이터조각 비슷하게 생각해 버리자니, 여기가 정말 소설 속이 맞는지 조차 확신이 서질 않았다. 원작을 토대로 예측하고 행동하고 있지만, 나는 그저 미래의 편린을 읽은 것이고 이 세상에서 나라는 존재가 바뀌어 버린것 뿐이라면? 여기가 정말 현실이라면? 내가 돌아갈 곳은 이제 없는거라면?
그럼 나는 어떻게 해야하지...?

"기상! 기상 하십시오!"

이윽고 기상을 알리는 소리에 침구를 정리하고 개울로 향해 세수를 했다.
철퍽철퍽 차가운 물로 얼굴을 강하게 마찰시키자 정신이 완전히 돌아왔다.

추가 보급이 없으니 뾰족한 방법이 떠오르지가 않았다.
캠프를 옮길 수도 없고 이미 이 캠프를 기준으로는 병력들이 시간내에 다녀올 수 있는 정찰지는 다 돌아봤다. 남은 방법이라고는 빠른 주력을 이용해서 초인들이 단독으로 멀리까지 내다보고 오는 것 외에는 없었다. 다음 캠프지를 물색해둘 순 있겠지만, 결국 교전은 피해야 하기에 별 의미가 없었다.

"오늘은 인원들 하루 휴식하는걸로 하죠. 정찰은 제가 혼자 다녀오겠습니다."

"예, 그동안 쉴 새 없이 정찰임무에 야간근무에 전투까지 치뤘으니 휴식이 필요할 때이기도 합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무슨  생기면 조명탄으로 신호해 주세요. 최대한 빨리 합류하겠습니다."

오전 회의를  마치고 단독 정찰 준비를 했다.
어제 저녁을 거하게 먹었으니 오늘 식사는 아침이 아니라 점심에 할 예정이었다.
해  무렵까지 돌아다닐 계획이었으므로 거추장 스러운 짐은 챙기지 않았다.
거리가 엄청나게 멀어질테니 무전기도 필요 없었다.

한소희가 따라붙었다. 장거리를 이동할테니 개인행동을 하기보단 둘이 함께 움직이는게 나아보였다.
단독군장에 탄약을 넉넉하게 챙기고 식량팩도 하나씩 챙겼다.

"가자."

"네, 언니"

어제 정찰을 했던 지형들이기 때문에 빠르게 지나쳤다.
크게 무거운 짐이 없는데다가 달리는데 걸리적 거리는 불편한 짐도 없으니 쏜살처럼 빠르게 달렸다.
중간중간 휴식을 취하며 두시간을 달리자 탐색되지 않은 처음보는 곳에 당도했다.
망원경으로 지평선을 바라보았으나 여전히 평원만 이어지고 있었다.

"도대체 이 풀밭이 얼마나 넓은건지 모르겠다."

"그러게요. 가도가도 끝이 없네요."

벌써 달린거리만 해도 서울의 면적을 한참은 넘어서는 수준이었다.
한쪽 방향으로만 계속 가는데도 이렇게 끝이 없으니 설마 규모가 몽골의 대 초원지대만큼 되는것일까?

"우리가 포탈에서 지금까지 거의 서쪽방향으로만 이동을 했단 말이지. 포탈에서 여기까지 직선거리가 아마 100킬로미터는 족히 움직였을거야."

"전체 행군을 30킬로미터 정도했고, 지금 우리가 70킬로미터는 이동했을테니 그정도 되겠네요."

"그 거리만해도 본대로 행군을 하려면 일주일은 잡아야하는 시간이야. 짐이 무거워서 이동속도도 느리고 휴식도 자주 해줘야하니까. 여긴 너무 거대해."
"어찌됐든 일단 가는데까지 가보자. 내 예감이지만 조금만 더 가면 끝이 보일 것 같거든."

두 시간여를 더 이동하자 초원의 끝에 다다를 수 있었다.
이 곳이 평범한 대지가 아니라는 것을 명백하게 외치고 있는 듯한 공허.
멀리선 관측이 불가능하고 손에 닿을 듯 가까이 다가와서야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은 아득한 우주공간이었다.

손을 뻗어서 휘저어보면 그저 허공과 같으나, 몸을 던져보면 어느새 다시 제 자리로 돌아와있는, 공간의 종식을 알리는 장소였다.

"여기가 끝이야. 150킬로미터 남짓이네."

"그걸 측정하는게 무슨 의미가 있나요?"

"응, 종착지를 발견하면 전체적인 크기를 가늠해볼 수 있어."
"포탈은 정중앙까진 아니어도 중심지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위치에 생성이 되거든. 그리고  곳의 구조는 대칭성을 가지고 있어."

"그러면, 면적이 2만 킬로미터 제곱을 훌쩍 넘네요...이게 도대체 얼마나 넓은거에요?"

"아이티정도 크기랄까? 그러니까, 우리나라의 사분의 일 크기의 면적이야."

"하,하...그럼 우리는 경기도랑 강원도를  뒤져보는거나 다름이 없네요?"

"그런 셈이지."

"그것도 직접 발로 뛰어서요? 그것도 마주치는 적들이랑 싸워가면서?"

"그렇지. 그래도 벌써 서쪽은 다 확인했잖아. 평야라서 어려울 것도 없고, 우리 주력이면 하루에 한 방향씩만 확인해도 금방 다 둘러 보겠는데?"

"직접 뛰어야 할 사람이 참 긍정적이시네요...이런식이면 각성자가 없으면 공략이 불가능한 수준이잖아요."

"가능은하지. 인적, 물적자원을 계속 퍼붓고 또 시간도 몇달을 투자해야 하겠지만."

"그게 불가능 한거죠. 포탈에 비해 적합자들이 부족하다면서요."

"그러니까 우리의 역할이 중요한거 아니겠어? 아무튼 대략적인 크기 파악이 되니까 그래도 마음이  놓인다. 오랜만의 소득이네. 여기서 도시락이나 까먹고 복귀하자."

바닥에 엉덩이를 철푸덕 깔고 앉아서 점심 식사를 했다. 한소희는 저 맛 없는 전투식량을 평온한 표정으로 먹고 있었다.

"먹을만 한가보네?"

"네, 그리 나쁘지 않아요. 끼니마다 먹을 수 있는게 어디에요."

혹시 못 먹고 자랐나? 외모에선 귀티가 줄줄 흐르는데. 한소희의 삶에 대해선 성인이 되고 일어나는 사건과 이어지는 그녀의 각성 시점부터 다뤄진다. 그리고  미래는 내가 지워버렸다. 그녀의 과거에 대해선 조금  가까워지면 알게 되겠지. 먼저 묻는건 실례니까 알아서 얘기 해줄때 까지 입 다물자.

식사를 마치고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지금부터 부지런히 달리면 해가 지기 전에 복귀할 수 있을터다.
나침반으로 방향을 잡으며 왔던 경로를 그대로 되짚어 가며 캠프방향으로 달렸다.

두 번째 휴식을 가지고 있을때, 저 멀리서 생겨나는 이변을 감지했다.
무언가 거무스름한 물체들이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황급히 망원경을 들어 정체를 확인했다.

괴수들이었다. 우릴 언제 발견해서 어디서부터 쫒아온건지 알  없었지만, 그나마 갑작스런 기습은 절대 불가능한 지형이라 다행이었다.
갑작스런 내 행동에 반응한 한소희도 이미 렌즈에 바짝 눈을 대고 다가오는 놈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치타와 같은 외형, 다만 머리에 자라난 뼈가 뿔처럼 솟아 있었다. 성인의 손바닥보다 조금 긴 길이였지만, 어찌되었든 저거에 뚫리면 골로 가는건 마찬가지다.

일반적인 치타의 능력을 아득하게 상회하는 놈들은 시속 140킬로미터에 육박하는 속도로 거리를 좁히고 있었다. 수십초면 지쳐야 할텐데, 여전히 기세가 등등한 놈들에겐 몇분은 거뜬해 보였다. 제로백이 고작 3초안에 이루어지는 달리기 위해 태어난 짐승을 모방한 저 괴수는 얼른 우리에게 단단한 뿔을 박아넣고 싶은지 미친듯이 달려왔다.

"백마리정도 되는것 같은데.음..."

"어떡해요, 언니? 너무 빠르게 가까워지고 있어요."

우리가 전력질주를 한다해도 놈들보다는 속도가 느리다. 따라잡히기 전에 놈들이 먼저 지칠지는 알 수가 없는 상황이기에 도주는 불가. 전투를 상정해서 사고회로를 가속시켰다.

가죽이 두텁긴 하지만 놈들의 맷집은 소총탄을 버티지 못하는 수준이다. 500미터부터 사격을 하면 놈들이 붙는데는 12초 정도가 소요될테고, 그 동안 연사를 하면 200발은 족히 쏠 수 있다.

"총검 장착해. 이놈들 우리가 처리하자. 빠른놈들이니 직선 공격만 조심하면 되니까 측면으로 회피기동하고."

한소희가 말 없이 다가와 내 옆에 나란히 섰다. 총열에 대검을 장착하고 차분하게 총구를 점검하며 탄창을 꽂아 넣는 그녀를 보니, 벌써부터 어엿한 전사의 향기가 풍겼다. 눈 앞에서 목숨이 오가는 두번의 전투는, 소녀를 전사로 만들어 버렸다.

개머리판을 어깨에 견착하고 조준경에 눈을 가져다 댔다. 놈들의 낮은 체고에 맞추어 한쪽 무릎을 꿇어 앉았다. 단단하게 움켜잡은 손아귀에서 손가락을 뽑아내 방아쇠에 얹었다. 손가락에 힘을 주자 모든 종류의 폭력을 압도하는, 오직 파괴만을 위해 만들어진 가장 원초적인 폭력의 형태가 세상 밖으로 뛰쳐나왔다.

투다다다다다다다당-

마치 빛이 쏘아지는 듯한 예광탄을 시작으로 탄환이 줄을 지어 공기를 찢어발기며 나아갔다.
오른쪽으론 탄피가 미친듯이 튀어 올랐다. 불꽃같은 연사가 끝남과 동시에 어떠한 지연도 없이 그대로 다음 탄창을 비워갔다.

괴수들이 빗발치는 총탄 세례에 무너져 내렸다. 의지를 잃은 몸뚱이는 관성에 의해 바닥을 길게 긁으며 흙먼지 속에서 뒹굴었다. 놈들의 일부가 좌우로 방향을 틀며 달렸다.

직선으로 달려오는 전방과 좌우로 찢어지며 굽이쳐 들어오는 측면.
즉각적으로 총구를 오른쪽으로 돌리며 사격을 이어갔다.

타다다다당-타당타당-

도트사이트에서 눈을 떨어뜨리며 일어섰다. 이제 조준은 필요없을 정도의 지근거리였다.
그대로 지향사격을 이어가며 있는 힘을 다해 땅을 박차며 다리를 움직였다.
먼저 도착한 정면의 괴수들이 바닥을 할퀴며 지나갔다.

스프링 같은 몸체를 이용한 제동과 동시에 이루어지는 급가속. 완전한 운동의 변환이 이루어지기 전에 탄환을 마구잡이로 갈겼다. 이어서 달라 붙는 우측의 녀석들은 그대로 나를 꿰뚫겠다는  온몸을 투포환 처럼 날리며 공격했다.

사방으로 찢어져서 공격하는 놈들의 숫자가 제대로 파악되지가 않았다.
그저 회피와 사격을 반복하며 착실하게 숫자를 줄여 갈 뿐이었다.

접근을 허락하기 전에 꽤 많은 수를 처치했음에도, 고작 십여마리가 들러 붙은것 만으로 놈들의 공격에 몸을 피하고 고작 한마리에게 잠시간의 사격이 허용되자 전투가 급속도로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이루어진 가속을 이용해 뿔로 찌르며 손톱으로 할퀴는 공격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집요하게 달라붙던 한놈을 총검으로 쑤셔버리고 그대로 방아쇠를 당겨서 몸에 바람구멍을 내주었다.
빠르게 뽑아 회수하려 했으나 등 뒤로 이어지는 날카로운 연격에 총을 놓으며 옆으로 구를  밖에 없었다.

무기를 잃은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놈들은 영리하게도 총을 회수하지 못하게 그쪽의 길목을 막으며 달려들었다. 바닥을 박차고 놈들을 뛰어 넘기에는 고양이과의 반응속도는 그 순간에 스프링 같은 점프를 뛰며 체공중인 내 동체를 갈기갈기 찢을 것이다.

측면으로 돌아 나가기엔 놈들은 나보다 더 빠르고, 그 수가 더 많았다. 근접한 놈들을 탄환을 박아서 격퇴하지 않으면 행동이 점점 제한된다. 한소희도 여유가 없어 보였다. 무기를 잃은 내 상황을 인지하였지만 당장 본인의 눈 앞의 적들에게 총을 쏠 시간도 부족했다.

달려드는 놈의 손톱을 피하며 그대로 옆구리에 주먹을 내 질렀다. 갈비뼈가 으깨지며 놈의 내장이 찢겨지는 감각이 선명하게  끝에 느껴졌다. 근접 사격 전투는 상당히 강력한 전투방법이다. 총구 방향만 잡아주고 손가락 한번 까딱하면 공격이 끝나기 때문에 빈틈이 거의 없다. 사실상 육체는 회피동작만 이루어지며 공격은 알아서 되는 수준이니까.

한번 더 회피를 하며 사격을 했어야 하는데, 다급한 순간이라 총검을 사용한게 실수였다. 공격 동작이 길어져 빈틈을 허용했기 때문에 그대로 무기를 잃었다.

마찬가지로 옆구리에 꽂아준 라이트훅은, 나에게 동작에서 나오는 필연적인 헛점을 생성했고.
공격 자세가 미처 회수되기도 전에 등을 훑고 지나가는 강렬한 뜨거움을 느꼈다.

촤악-

"악!"

난생 처음 느껴보는 화끈한 통증에 짧은 비명이 뒤따랐다.
강인한 초인의 육체이니 피륙의 상처로 그쳤지 평범한 육체였다면 그대로 발톱이 척추까지 파고들었을 것이다.

놈은 등을 긁으며 그대로 스쳐지나가고, 다음 녀석의 박치기를 피하며 턱주가리에 니킥을 꽂아주었다. 아래턱이 박살나며 놈의 머리통이 흔들거리는게 보였다. 이건 즉사다.

촤아악-

오른쪽 발바닥이 땅에 닿기도 전에 괴수의 발톱이 왼쪽 오금을 긁고 지나갔다.
내려온 오른다리로 지탱을 하긴 했지만, 근맥이 끊겨버린건지 왼다리에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다리가 접히는 연약한 관절부는 다른 부위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하기에 공격이 깊숙하게 파고든 듯 했다.

그대로 오른쪽 다리로 바닥을 박차며 땅바닥을 뒹굴었다. 서 있던 자리에 섬뜩한 발톱이 애꿎은 공기를 할퀴고 지나갔다.
몇 마리 남지도 않았는데. 총으로 쏴 재낄땐 수십여 마리도 눈 한번 깜박할때 죽일  있던 놈들이.
가까이 붙고도 한 호흡에 한 놈씩 정리가 가능하던 놈들이.
무기를 잃자  놈에  번씩 등가교환을 해야하는 지독한 놈들이 되어버렸다.

양팔로 상체를 일으키며 멀쩡한 다리로 바닥을 박차려 하였으나, 성치 않은 몸으로는 놈들의 속도전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왼쪽에서 얼굴을 할퀴어 오는 발톱과, 정면에서 찔러오는 뿔이 보였다. 찌르기는 피하고 발톱은 받아내야 했다. 황급히 양팔을 들어 올려 얼굴을 가로 막으며 몸을 비틀어 뿔을 피했다.
발톱이 팔뚝을 깊게 훑고 가고, 찌르기를 실패한 녀석도 스쳐가며 복부를 스치듯 긁고 갔다.

"크아아악!"

아직 남은 한놈이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등 뒤에서 공격을 시도하고 있을터였다.
예감에만 의존해 몸을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머리가 있던 자리를 놈의 치켜세운 대가리가 지나쳤다.

엎드린 등짝 위로 다시 한번 발톱이 할퀴고 지나가자 옆구리가 깊숙하게 파였다.
쉴  없이 몰아치는 공격에 바닥에서 벌레처럼 버르적거리는 수 밖에는 없었다.
그래도 마지막 발악으로 한 놈 정돈 데려갈 수 있을것 같았다.

죽기전엔 주마등이 보인다더니, 그런건 커녕 날 죽이려고 안달이  괴물새끼들만 한가득 보였다.
귓가를 멍하게 울리는 총소리만이 한소희가 아직 전투중이라는 사실을 알려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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