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6화 〉45화 - 진혼곡 (46/74)



〈 46화 〉45화 - 진혼곡

시속 30킬로미터의 속도로 달려나가니 거센 바람이 귓가를 스치고 지나갔다.
마라토너들의 세계권 기록이 시속 20킬로미터인걸 감안하면 그리 빠르게 달리는건 아니었다.
아무리 연비가 좋은 육체이지만 군장의 무게도 있으니 체력 안배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나침반을 확인하며 정확하게 서쪽 방향으로만 달려나갔다. 뒤따라오는 본대도 그리할 터였다.
한시간을 넘게 달렸으나 드넓은 초원만 펼쳐져 있을 뿐이었다. 여기까지만 해도 천천히 움직이는 본대와 함께 움직였으면 오늘내에 도착하지도 못할 거리였다.

여기서 직선방향으로 더 나아가 봤자 너무 먼거리가 될 뿐이기에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향을 북쪽으로 잡고 다시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한 시간을 체 달리지 않고서 얇게 흐르는 물줄기를 발견했다.

역시 혼자서 정찰을 한게 옳았다. 다만 문제가 조금 있었다.
희미하게 보일 정도로 먼 곳에 군집해 있는 생명체들이 보였기 때문이다.
조금 더 접근 해볼까 고민해 보았으나 그러다가 발각이라도 되면 오히려 골치가 아프기 때문에 기각했다.

"여기는 알파, 본부 응답하라. 오버"

응답이 없었다. 무전기의 통달거리가 약8킬로미터 이므로 거리가 너무 멀어서 전파가 닿지 않는것 같았다. 장애물이 없이 탁 트인곳이니 더 멀리까지 통신이 가능할테니 조금만 붙으면 될 것이다.
본부가 있을 방향으로 아까보다  빠르게 달렸다.

"여기는 알파, 본부 응답하라. 오버."

"여긴 본부 카피되었다. 이상."

"북서쪽 방향에서 수원 발견. 오버."

"수신완료. 방향 전환 하겠다. 스탠바이 할건가? 이상."

"합류하겠다. 오버."

슬슬 피로감이 몰려오며 조금 힘들긴 했지만 이대로 가면 한시간 안에 본대와 합류 할 수 있을 거다.
적당한 속도로 달리던 도중 다급한 무전이 날아왔다.

"알파, 여기는 본부 카피되나? 이상."

"카피되었다. 무슨일인가? 오버."

"전방에 적 다수 발견. 교전하겠다. 합류에 주의하라. 이상."

"라져."

하늘 위로 조명탄이 날아올랐다. 정확한 위치를 파악했으니 빠르게 합류해야 했다.
본대 전체의 화력은 굉장히 강하기 때문에  하나 붙는다고 뭐가 달라지겠냐마는, 그래도 불안한 마음이 드는건 어쩔 수가 없었다.

정신없이 달려서 거리가 가까워지자 흐릿하던 전투의 소음이 선명하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아무렇게나 질러 들어갔다간 폭격에 피해를 입을 수도 있으므로 빙 돌아서 본대쪽으로 붙어야했다.

투다다다다다다- 콰앙-
슈우웅- 펑- 삐이이익- 퍼엉-

본대쪽에 합류해서 교전지를 확인해보니 어디서 기어나온건지 수천 마리는 되 보이는 괴수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좌우로 갈라진 흉측한 주둥이를 달고 있는 개들이 빠른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고, 덩치가 큰 괴수는 좀  먼거리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다 자란 대형견 크기의 괴수가 가까이 붙기가 무섭게 기관총 세례에 쓸려나갔다.

"전방에 차려포오오오!"

"전 포대 발사!"

"발사! 두울~셋!"

탄착지점을 정렬한 포대에서 효력사가 이어졌다. 포병대는 전장의 신이라더니, 실로 엄청난 광경이었다.
그런 박격포의 분전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수의 괴수들은 끊임없이 밀려들었다.

포탄을 아끼지 않고 난사한 덕에 엄청난 피해를 입혔지만, 포격에서 살아남은 거대 괴수가 지근거리까지 붙어 버렸다.

코뿔소와 비슷한 체형을 가진 녀석은 그 덩치가 두배는 커다랬다. 광택이 흐르는 가죽은 두터움과 동시에 매끈하고 단단하기까지 했다.

티디디디딩-

불똥을 튀기며 탄환이 튕겨나갔다. 저 단단한 외피의 곡선을 타고 충격량을 흘려버리자 총알이 제대로 박히지 않고  비껴나가고 있었다. 직격하면 강판도 뚫어버리는 소총탄의 위력을 잠시나마 흘려내는건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그래봤자 잠시일 뿐이다. 다각도에서 쏘아지는 총알은 결국 놈의 외피를 파고 들어 뚫어버렸고, 거대한 덩치만큼이나 많은 탄환을 몸에 박아넣은 녀석은 먼지를 일으키며 바닥을 긁었다.

하지만 이제 시작이었다. 저런놈들 수십이 뭉쳐서 달려들면 개인화기 수준으로는 저지가 어려웠다.
사격은 일정 거리가 벌어져서 화망을 형성했을때 무지막지한 위력을 발휘한다.
놈들과의 거리가 0이 되는 순간, 아군은 거짓말처럼 무력하게 쓸려 나갈것이다.

무지막지한 화력투사에 잔챙이들은 다 쓸려나가고 거대 괴수들만이 남았다. 그 마저도 얼마 남지 않았다. 놈들이 기어코 아군이 휘말리는 거리에 까지 들어와 포탄을 사용할 수 없는 상황.

"발사! 쏴아아아!"

"전부 쏟아부어!"

투다다다다다다- 타다다다다다다다다당-

기관총과 소총이 미친듯한 포화를 퍼부었다.
전투가 시작되고 정말로 생사가 갈리는 순간은 지금에서야 찾아온 것이다.
완전히 붙지 못한 놈들은 어떠한 위협도 되지 않는다. 쏴서 죽여버리면 되니까.
하지만  마리라도 붙는 순간 피해가 얼마나 가중될지 알 수가 없다.

아군과 함께 쏴버릴 수 있는 냉혈한이라면 모를까, 일차적으로 사격전선이 멈춰버리고.
거대한 덩치의 괴수가 날뛰면 순식간에 주변이 초토화가 된다.

결국  지경이 오면 놈의 근처에 있는 사람은  죽는다는 판단하에 사격을 가하게 되는데, 그런 일이 전선 곳곳에서 일어나 버리면 그냥 끝이다. 최종적으로 승리하더라도 피해를 감당할 수가 없다.
우리에겐 완벽한 승리가 아니면 오직 패배만이 있을 뿐이었다.

기어코 강철코뿔소 한마리가 포화를 뚫고 내 바로 앞까지 붙었다.
온몸에 총탄을 박아 넣고서도 질긴 생명력으로 접근 해내고 만 것이다.
놈이 그대로 마지막 힘을 짜내며 나에게 대가리를 들이밀었다.

"피해!"

근처에 있는 인원들에게 경고하며 땅을 박차 옆으로 몸을 날렸다.
잠시간의 체공시간 동안 놈의 눈망울이 보였다. 지독하리만큼 선명하게 느껴지는 악의.
놈들은 우릴 죽이고 싶어한다. 우리를 침략자라고 생각하는 걸까?

그대로 허공에서 당긴 방아쇠는 착실하게 총구를 불태우며 금속 탄환을 뱉어냈고, 정확하게 놈의 눈알을 파고들었다.

타다다당-타당-

5발의 총탄을 한점에 박아넣는 기예를 선보인 나는, 다리가 땅에 닿자마자 그대로 바닥을 구르며 자리를 벗어났다. 그 자리를 곧바로  다른 강철코뿔소가 밟고 지나갔다.

"똥구멍은 물렁하겠지!"

등을 보인 녀석의 항문을 조준하고 그대로 총구에서 불을 뿜어냈다. 견착되어 딱 붙은 총은 강력한 근력에 의해 진정한 무반동총을 재현해냈다. 덩치가 커서 거기도 큼지막하니 눈에 띄었다. 그대로 한 탄창을  비워 버렸다. 45발을 쏴 재끼는데 3초도 채 걸리지 않는 가공할 연사였다.

탄환이 눈알을 뚫고 들어가 뇌를 헤집어버린 놈은 그대로 즉사했고, 뒷구멍에 총알을 잔뜩 먹은 녀석은 내장이  터져버렸는지 두어걸음 걷고는 철퍼덕 땅에 대가리를 처박았다.

"끄아악!"
"꺽."

내가 두마리나 맡았음에도 결국 피해가 나오기 시작했다. 코뿔소에게 받히거나 짓밟힌 대원들이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납작해지거나 짧은 단말마와 함께 죽어나갔다.

남은 적은  마리.
대원들은 최대한 거리를 벌리려 했지만, 피해자가 속출하고 있었다. 날뛰는 놈들을 가까이서 저지할 방법이 없기에 그저 동료를 희생양 삼아 거리를 벌리고 그 틈에 사격을 가하는 소모전을 하고 있었다.

"소희야! 한놈 맡아!"

나는 전선 앞쪽에 나와있던 한소희에게 소리치며 한놈을 향해 몸을 날렸다.
남아있는 놈들 이미 다 정상적인 상태는 아니었다. 그랬다면 대원들이 거리를 벌리든지 말든지 순식간에 따라 잡아서 전부 다 밟아버렸을테니.

놈들은 온몸에서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자신의 생명을 모두 불태울때 까지 공격을 감행했다.
나는 총을 쏴 갈기며 한놈의 측면으로 붙었다. 놈이 알아차리고 고개를 강하게 털며 내쪽으로 휘둘렀다.

투다다다다당-

회피 기동과 함께 이루어진 사격에 놈의 눈꺼풀이 터져나가며 눈알의 체액이 허공으로 비산했다.
지금은 비어버린 눈알이 있던 구멍에 그대로 총알을 더 박아넣어 줬다. 머리통을 완전히 곤죽으로 만들 작정이었다.

퍼버버벅-

피륙이 터져나가는 소리와 함께 놈이 완전히 움직임을 멈췄다.
비슷한 순간에 다른쪽도 정리가 되었다. 소희가 관심을  사이 수십명의 조준사격으로 뱃가죽이 찢기며 한놈이 끝장이 났고, 가장 큰 피해를 입힌 남은 한놈은 무차별 난사에 아군들의 시체와 함께 벌집이 되어버렸다.

전투의 흥분이 가라앉자 끔찍한 전황이 드러났다.
수 많은 사상자가 나왔다.
내가 방향 전환을 지시하고 일어난 일에 책임감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너무 성급했다. 내 이동속도라면 북서쪽의 경로도 완전히 탐색을 하고 본대의 진행 방향을 결정하는게 맞았다.

목적지만 정한 채 그대로 진로를 틀게 한것은 명백한 내 실책이었다.
수십킬로미터를 이동하는 동안 아무런 위험이 없었기에  근방엔 위험이 없을거라 생각하다니.
스스로가 한심했다.

고개를 돌려보니 아직 살아있는 아군을 향해 사격을 가한 인원들의 표정이 눈에 띄게 침울했다.
어차피 코뿔소에게 눈 깜짝할 사이에 죽을 운명이었지만, 그래도 자기 손으로 끝장을 낸건 결코 유쾌한 일은 아닐터였다.

전후 정리를 시작했다. 인원을 체크하고 남은 전투 물자를 확인했다.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하는건지, 전투로 인한 부상자는 전무했다.
놈들에게 공격당한 인원들이 전부 죽었다는 얘기에 나는 웃지도 울지도 못했다.
사상자중에 사망자만 집계되는게 말이나 되는 통계치란 말인가.

총지휘 분대장이 전사했다. 청천벽력같은 소식이었다. 얼마전까지 나랑 무전을 하지 않았나...

"후우...X발..."

"언니......"

용맹하게 싸우다 전사를 한 전우들은 모두, 불과 몇시간 전까지 멀쩡하게 살아있었다.
모든게 내가 잘못된 판단과 지시를 내린 탓이었다. 나같은 얼치기가 지휘에 관여하면 안되는 거였다.

"나 때문이야. 내가 확인도 안하고 그대로 북서쪽으로 방향을 틀어서 올라오라고 하는 바람에..."

"아니에요, 언니. 대장님도 교전을 염두에 두고 전투대형으로 움직일걸 지시하셨어요."
"언니에게 척후 정찰을 지시 할수도 있었는데 그러지 않은거에요."

"그랬겠지. 나는 보고했을 뿐이고 결정은 총분대장이 했지. 그렇다 해도 내 잘못이 옅어지는건 아니야. 내게도 큰 책임이 있어."

"너무 자책하지마세요..."

나는 정말로 최선을 다했다. 잘 해보려고 정말로 열심히 했다.
근데 잘 해보려다가 일이 꼬였을때 오는 스트레스가 감당하기 참 버거웠다.

어느새 정리를 전부 마치고 보고인원이 다가왔다.

"팀장님. 사망인원 92명 입니다. 그리고 8명은 정신적 충격으로 상태가 아주 안좋습니다."

고작 한번의 전투로 군대의 1/4이 날아갔다.
분명히 350여명이 완전무장을 하고 단단히 준비를 한 채 들어왔다.
 병력만으로도 공략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알고 있는 초창기 포탈의 난이도에 빗대면 그랬어야 했다.

"일단 보급대가  시간이 됐으니, 상태가 안좋은 여덟 명은 인솔팀 둘 붙여서 포탈 쪽으로 보내세요."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해 지기전에 캠프 위치를 물가로 옮길테니 이동준비 얼른 마무리 합시다."

"네, 팀장님. 완료되는 대로 보고드리겠습니다."

일단 멘탈이 나간 인원들은 지원부대에 붙이는걸로 했다.
후발대는 우리가 온 경로를 그대로 따라올테니 전투상황이 없을거라는 판단에서였다.
놈들은  정찰이   새로운 곳에서 나타났기 때문이다. 만약  추측까지 틀리면 진짜 나가 뒤져야했다.

빈 탄창에 탄환을 채우고, 화기를 점검하고 전사자들의 유해를 수습하고 보급품을 재 점검했다.
군대에서  점검 시킬때 두번씩 시키는거 엿 같았는데, 실전상황이 되니 알아서 더블체크를 하고 있었다.

"이동한다!"

전장의 아픔을 뒤로한 채, 행군을 시작했다.
남겨진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가, 떠난 사람들을 위한 진혼곡이 되어 대지를 떨어 울렸다.
하늘은 슬프지 않은지 눈물을 흘려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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