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화 〉43화 - 첫 번째 승리
괴수의 강력한 근육에서 쥐어짜지는 일격은 매서웠다.
일순간 풍압이 일어날 정도의 강격의 범위에서 벗어나기 위해 뒤쪽으로 바닥을 박차며 뛰어 올랐다.
찰나의 체공시간 동안 이어진 사격에 놈의 머리통에 총알이 깊숙하게 박혀 들어갔다.
한마리.
바닥에 착지하기가 무섭게 옆에서 다시 휘둘러지는 손톱에 잽싸게 몸을 날리며 옆으로 몸을 구르며 방아쇠를 당겼다.
투다다당-
점사로 3발의 사격이 이어지고, 괴수는 머리통에 탄환이 박혀들어가며 무너져 내렸다.
이걸로 두마리.
타앙- 타앙-
거리를 벌린 인원들이 조준사격을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난사를 하면 나까지 휘말리기 때문에 신중하게 쏘는듯 간헐적인 사격이 이어졌다.
놈들에게 사방이 가로 막힌 위기상황이었다. 아무리 나라도 전방위에서 들어오는 공격을 피할 순 없다.
그때 한 녀석이 나를 콕 찍어 버리려는지 주둥아리를 들이밀었고 체고가 낮아진 녀석의 얼굴을 밟고 그대로 포위망 바깥으로 뛰어올랐다.
투다다다다다다다다-
길게 이어지는 사격 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나를 포기하고 본대쪽으로 붙는 무리가 있었다.
"빠져! 빠지면서 응수해!"
타다다당- 투다다당-
"흐으으읍."
깊게 숨을 들이 마시자 폐에 신선한 산소가 가득 차 올랐다.
혈관이 수축하며 근육이 한계치까지 쥐어 짜졌다. 그대로 대원들의 도주로를 따라 바닥을 차 올렸다.
달리면서 좌우로 같은 수평 선상에 있는 괴수들의 머리통에 총탄을 박아주었다.
달리던 관성을 앞쪽으로 실으며 온몸의 힘을 한점에 집중시켰다.
그대로 뛰어들어 가장 뒤처진 대원의 등 뒤까지 따라붙은 괴수의 뒤통수에 대검을 박아 넣었다.
이걸로 본대쪽으로 붙은놈들은 모두 정리가 됐다.
까드득-
칼을 비틀어 꺼내자 두개골이 으깨지며 뇌간이 묻어 나왔다.
분명히 나를 둘러싸고 있었는데, 내가 순식간에 그 포위망에서 벗어나버리자 놈들과의 거리가 적당히 벌어져 있었다. 그래봤자 금방이면 당도할 거리지만 그거면 충분했다. 대원들이 대열 정비를 마쳤기 때문이다.
"머리통 조준해서 쏴!"
타앙-따다당탕-
격렬한 전투 끝에 남은 숫자는 고작 십여 마리 남짓이었다.
최후의 사격공세가 이어지고 당당히 발을 딛고 땅 위에 서 있는 승자는 우리였다.
살아남았다는 환희와 밀려드는 승리감이 가슴을 가득 채웠다.
하지만 승리감도 잠시, 이내 회의감이 찾아왔다.
지금은 피해 없이 승리하였지만, 줄에서 떨어지면 그대로 끝인 아슬아슬한 줄타기였다.
내가 미끼가 되지 않았으면 대원들은 전멸했을테니까.
"다들 잘했다. 혹시 부상자 있나?"
생사가 오가는 전투를 겪었으니 근육이 놀라거나 발목을 살짝 접질린걸 제외하면 큰 부상자는 없었다.
"소희야, 좀 어때?"
"괜찮아요. 언니야말로 큰일날 뻔했잖아요. 그렇게 무모하게 뛰어드시면..."
"그게 우리가 해야할 일이야. 니가 이 역할을 해야 할 수도 있어."
"네..."
미끼를 자처하는게 당연한 의무라는 대화가 오고가자 대원들의 눈빛에 약간의 존경심이 어렸다.
"곧 지원대가 올테니까 여기서 좀 쉬자. 각자 물자 상황 체크해봐."
"저는 탄알집 하나 남았습니다."
"한 사람이 한번에 취합해서 알려줘."
"취합 보고드립니다. 박격포탄은 다 썼습니다. 소총탄도 200발도 안 남았습니다."
두당 스무발을 쏘면 끝난단 얘기다. 남은 탄약이 결코 많다고는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6000발로 시작해서 거의 다 소모했단 얘기니까.
이런식으로 소모가 심한 전투가 자주 일어난다면 재보급까지 탄약소모량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후우~ 발사된 조명탄은 더 없는거 보니 우리만 전투를 치뤘나보네."
앉아서 조금 쉬고 있으니 캠프에서 보낸 지원이 도착했다.
2개 분대가 우리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전투소음이 있을때는 부리나케 달려 왔겠지만,
상황이 종료된 지금은 체력을 안배하며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팀장님, 괜찮으십니까? 전투는 끝난겁니까."
"아, 김 분대장님. 현재 조우한 적은 전멸 시켰습니다. 전투가 이제 막 끝난지라, 확인사살은 못했으나 아마도 생존개체는 없을겁니다."
지원조는 전투가 또 일어나는 만일의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가져온 탄약을 우리와 나눴다.
현장을 조금 살펴보고 3개 분대가 복귀를 시작했다.
"곰과 비슷한 큰 짐승들이던데 어떻게 피해 없이 섬멸했습니까? 규모가 이백마리는 몰려왔다고 들었는데요."
"한끗 차이였습니다. 발견과 동시에 지원요청과 후퇴를 시도했고, 결국 따라잡히기에 유효사거리에 닿자마자 일제히 맹공을 퍼부었는데도 결국엔 뚫렸습니다. 둘러싸일 위기였는데, 운 좋게 제가 놈들의 주의를 끌 수 있어서 다시 거리를 벌리는데 성공했습니다."
객기를 부리지 않고 작전대로 했음에도 상당히 위험했음을 어필했다.
다른 부대에서 무장의 화력을 믿고 무리한 교전을 하지 않길 바랄 뿐이었다.
저 멀리 캠프가 보이기 시작했다.
한숨을 깊게 내쉬며 잔뜩 쌓인 긴장을 풀었다. 다행히 복귀중에 추가적인 전투가 일어나지는 않았다.
전투에 대한 복기를 하는동안, 다른것보다 박격포의 운용이 핵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포탄으로 피해를 가중시키지 못했으면 근거리에서 맞닥드린 물량을 감당하지 못했을 것이다.
고개를 돌려 박격포 담당을 쳐다 봤다. 슬쩍 눈을 내려 이름표를 확인했다.
"무배씨는 원래 주특기가 포병이셨나 보네요?"
현재 내 전시계급이 대위이고 공략대에서도 팀장을 맡고 있지만, 진짜 직업군인도 아니고 당장 급박한 전투상황도 아닌데 굳이 나보다 나이가 한참 위인 사람에게 반말을 찍찍 쌀 필요는 없었다.
"예, 포반장 이었습니다."
나는 그의 가슴팍의 중사 계급장을 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원래 포를 잘 운용하는 사람이었네.
"덕분에 오늘 전투가 피해 없이 끝났어요. 한발이라도 적이 밀집한 중심지에 안 떨어졌으면 그 약간의 차이로 병사들이 죽어 나갔겠죠. 정말 대단하십니다."
"과찬이십니다. 몸으로 부딪혀 괴수들을 붙잡아 두신 분께 듣기엔 민망합니다."
보병화력의 끝판왕이라는 81밀리미터 박격포는 탁 트인 평야에서 정말 사기적인 성능이었다.
신형이라 더 가볍고 더 강력하고 계산에 필요한 각종 보조장비까지 딸려있는 녀석이라 아주 유용했다.
하지만 숲으로 진입하면 더 이상 쓸모가 없는 녀석이기도 했다. 곡사화기의 특성상 산악전은 매우 취약하기 때문이다.
캠프에는 따로 지휘막사도 없어서 분대장들은 그냥 캠프에서 조금 떨어진 공터에 둥글게 모여 앉았다.
총지휘관에게 전투상황을 상세히 보고하고 앞으로의 향방에 대해 논의 했다.
"평야에서는 박격포로 미리 개체 수를 줄이고 소총으로 화망을 형성해 일제 사격을 하기가 용이해서 전투에 큰 어려움이 없겠습니다만, 나무가 울창한 곳에 들어서면 괴수들이 감당이 안될 듯 합니다."
"그렇다고 벌목을 하면서 들어 갈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습니까?"
"숲의 규모가 어느정도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럴 순 없죠. 차라리 모두 불태워 버리는것도 고려를 해봐야 할듯 합니다."
"오늘 전투가 있었던 괴수들 말고 다른 종도 있습니까?"
"사전 브리핑 때 배부된 자료에 있듯이 괴수의 종류는 무척이나 다양합니다. 여기에 어떤 종류가 있을지는 저도 장담하지 못해요."
"일단 물가를 먼저 찾아야합니다. 급수를 적게 챙겨온 탓에 금방 떨어질 겁니다."
분대장들이 시시각각 의견을 교환했다. 얼핏보면 사공이 35명이나 되는 바다는 안가고 산으로 가는 배로 보였지만, 군권을 위임받은 총지휘관과 공략팀장이자 첫 전투를 완벽한 승리로 장식한 나의 발언권이 가장 강했기에 얼추 균형을 맞추며 돌아갔다.
군사적인 부분은 그가, 괴수에 대한 부분은 내가 대답하며 서로간의 의견을 수렴했다.
결론적으로 현 체계를 유지하되 정찰조의 규모를 무리당 3개 분대로 늘리고,
평야를 먼저 탐색 하고 지원이 오면 숲으로 진입하기로 했다.
회의가 끝나고 식사시간이 다가왔다. 가방에서 특전식량을 하나 꺼내서 뜯었다.
"밥 먹자~ 소희야~."
부르는 소리에 소희가 식량팩을 챙겨들고 옆으로 다가와 앉았다.
"전투식량 안 먹어봤지?"
"언니는 드셔보셨어요?"
"아, 나는 아는 사람중에 직업군인이 있어서 한번 먹을 기회가 있었어."
"그렇구나. 저는 언니가 군인 출신인줄 알았어요. 군인분들 통솔하는게 전혀 어색함이 없으셔서."
육군병장 만기전역 경력이 있어서 그래. 하하... 전차병이어서 고생 깨나 했지. 개 같은 무한궤도.
포탈에서의 첫 번째 식사를 시작했다. 이거는 뭘 어떻게 먹어도 맛이 없다.
그냥 손에 잡히는대로 봉지 하나씩 조지면 될 것 같았다.
먼저 햄을 까서 한입 물었다. 존나게 짰다. 그래도 고기라고 그나마 먹을만 했다.
나는 맛있는걸 먼저 먹는 타입이라 초코바와 땅콩강정을 입에 넣었다.
엄청나게 달았지만 먹을만 했다. 당연히 시중에 상품으로 나온 초코바와 강정을 생각하면 안된다.
걔넨 맛있는거고, 이거는 어떻게 그냥 먹을만 할 뿐이다. 밖이었으면 바로 쓰레기통에 넣었다.
이제 진정한 전투식량이라고 불러야 할 놈들이 튀어 나올 차례였다.
고열량압착식과 팥분말압착식. 얘넨 그냥 벽돌이다. 단단하기도 졸라게 단단하고, 맛은 정말 드럽게 없다. 지방결착제로 만들어져서 상당한 고열량을 제공하지만, 기름기가 줄줄 흐르는 벽돌의 맛은 예상하는 그대로다. 땅콩크림을 뿌려서 억지로 입에 쑤셔넣고 이온음료를 마셨다.
20그램이 들어있는 이온음료는 원래 200밀리리터 정도의 물에 희석해서 먹는건데 귀찮아서 그냥 마셨다. 코가 찡할 정도로 달았다. 그리고 단맛의 여파가 끝나고 물을 따로 마셨다. 그냥 섞어 마실걸...
뜯어서 입에 넣으면 끝인 오직 효율성만을 생각한 전투식량이니 만큼 식사시간은 순식간에 끝이 났다.
해가 지기전에 정찰을 마저 이어가야 했으므로 캠프에서 쉬고있던 15개의 분대가 5팀으로 갈라져 임무 수행을 나갔다. 지평선을 바라보며 텐트에 앉아 잠시 멍을 때렸다.
그때 근처에 앉아있던 소희가 다가와 귓속말을 했다.
"언니, 저 화장실이 가고 싶은데요."
공략대 350명 중에 여자는 꼴랑 14명이었다. 그 중에 아직 생리현상을 해결한 여자는 없었다.
신호가 오지 않은건지 다들 눈치만 보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음, 이걸 어떡하면 좋을까?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리 떨어지는건 위험하고 어차피 탁 트여있어서 어중간하게 떨어지면 다 보인다.
"따라와."
일단 야전삽과 판초우의를 챙겨들고 앞장 섰다.
한소희가 화장실 타령을 하니까 나까지 마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