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화 〉42화 - 포탈 진입
처음 느껴진 감각은 온 몸이 한 점으로 수렴하는 느낌이었다.
이후 기묘한 부유감이 뒤따라오며 잠시간 잠에 든 것처럼 온 세상이 암전되는 기분이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의식이 빠르게 어딘가로 날아가는 감각과 함께 머리에 전기라도 오른 듯 지끈지끈 아파왔다. 정신을 차려보니 아까전의 걷던 자세 그대로 생판 다른 곳에 서 있었다.
뒤를 돌아보니 그 자리에 블루포탈이 있었다. 다만 흐르는 물을 형상화한 듯한 아까와는 다르게 흐름이 멈춰 있었다. 이어서 작은 점 하나가 허공에 나타나더니 이내 공간을 밀어내며 사람의 형체를 갖췄다.
나도 저런식으로 등장한건가.
두 번째로 들어온 한소희도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살폈다. 소희의 바로 옆에 점이 하나 또 생겼다.
강한 반발력에 의해 밀려나던 그녀는 균형을 잃고 넘어지기 전에 조금 옆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포탈에서 거리를 좀 벌리고 차례차례 입장하는 인원들을 불러 모았다.
입장에 가속이 붙었는지 점들이 생겨나고 크기를 불려 사람의 형체를 갖추는 속도가 빨라졌다.
고개를 돌려 주변을 둘러 보았다.
잡초가 무성한 넓은 평야였다. 녹색의 쭉 뻗은 대지를 보자 가슴이 탁 트이는 기분이었다.
지평선의 끝자락에는 무성한 나무들이 눈에 띄었다. 아무래도 저 숲을 통과해야 될 것 같았다.
지대의 차이를 생각해보면 숲이 아니라 산 일지도 몰랐다.
일단 거대한 평야지대를 먼저 지나야했다. 지금은 시야에 아무것도 안 보이지만 지대의 차이가 있으니 막상 다가서면 어떤것이 튀어 나올지 몰랐다.
공략인원들이 진입을 전부 마쳤는지 작전 지휘관이 다가왔다.
"팀장님, 전원 진입 완료 했습니다."
내 직책은 공략팀장이었다. 병력의 지휘권이 있는건 아니지만, 군인들의 전술 교본에 없는 적들을 상대하는 만큼 유사시 내 판단에 의존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일단은 앞으로 전진하겠습니다. 시야가 좋으니 기습 당할 일은 없을테니 적당히 사주경계를 하며 진행해보죠."
분대별로 줄을 세우고 좌우 두 줄로 나눠서 전술행군의 형태를 취하고 전진을 시작했다.
새로운 환경에 떨어진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완연한 긴장감이 팽팽하게 느껴졌다.
군장이 너무 무거워서 행군속도가 굉장히 느렸다.
끌어 모을 수 있는 적합자는 다 모아서 들어온 상황에, 재보급이 얼마나 들어올지 모르기에 딱히 방법이 없었다.
한시간의 행군 후 이어지는 휴식시간에 나는 지휘관을 찾아갔다.
"이대로면 전투는 시작 해보기도 전에 전력손실이 심하게 날 것 같은데요."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숙달된 전투원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병력들이 더 많은 상황이고 과도한 긴장감으로 인해 체력소모가 예상보다 더 빠릅니다."
"이곳의 규모도 파악이 안됐고, 우리만으로 공략을 해야하는게 아니니까 천천히 한번 해보죠. 베이스 캠프를 설치하고 정찰대를 운용하는게 낫겠습니다."
"괜찮겠습니까? 정찰대가 적을 조우했을때의 상황이 위험할 텐데요."
"조명탄을 먼저 쏘고 도주하며 견제하는 방식의 교전만 취하도록 해야지요. 지원병력과 합류만 하면 어떻게든 될 겁니다."
"알겠습니다. 적들에 대해서는 팀장님이 잘 아시니 그렇게 하지요."
휴식자리에 그대로 베이스캠프가 마련됐다.
대형천막을 챙겨오진 않았으므로 캠프라 해도 딱히 특별한건 없었다.
그저 병력들이 군장을 풀어 전투에 필요없는 보급품들을 내려놓고 그 곳을 중심으로 둥글게 진형을 이룬것 정도였다.
병력 구성은 35개의 단일 분대로 구성된 기존 군의 편제와는 조금 다른 형태였다.
현대전과는 다른 양상의 전투가 펼쳐지기에 소대장이나 중대장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최고 지휘자에게 정찰 명령을 받은 20개의 분대가 각기 다른 방향으로 흩어졌다.
베이스캠프를 중심으로 동심원을 이루며 퍼져나가는 형태였다.
무거운 박격포는 내가 들고 가방에 잔뜩 들어있는 예비탄환들도 한소희가 최대한 많이 짊어졌다.
전투원들이 지쳐서 싸우지 못하는 경우를 방지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한 시간정도 이동을 하고 휴식을 명했다.
"탁 트인 평야라 걸어도 걸어도 끝이 없네."
"뭐가 나올 것 같지도 않아요. 고개만 돌리면 다 보이는데요."
"그러게. 그냥 천천히라도 전체 부대원이 저기 보이는 나무쪽으로 다가갈걸 그랬나?"
이 방법이 효과가 전혀 없다면 처음에 하려던 대로 진형 전체가 이동을 하는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속도를 현저히 줄이면 피로도 관리도 될테니까.
한 시간을 더 이동하였으나 별 다른 소득이 없었다.
두 시간의 정찰과 두 시간의 복귀를 상정한 작전이었고 휴식시간과 변수를 감안하여 5시간 내에 캠프로 복귀 해야했기 때문에, 이제 되돌아갈 시간이었다.
복귀 명령을 내리려던 그때였다.
"티, 팀장님!"
분대원이 창백한 목소리로 날 불렀다. 그의 시선에 맞추어 고개를 돌리니 괴물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사족보행. 아직 거리가 꽤 먼데도 느껴지는 육중한 덩치. 곰 형태의 괴수였다. 두 발로 일어서면 체고가 3미터는 될 터였다. 두터운 가죽 위로 깃털이 삐죽 솟아있는 놈들의 대가리는 조류의 그것이었다. 주둥이 대신 부리가 달려있는 얼굴에서 역겨움이 느껴졌다.
다행히 놈들 정도면 상식 외의 괴물은 아니다. 그러나 그 수가 꽤 많다는게 문제였다.
200여 마리는 넘어보였는데, 나도 첫 전투인지라 저 숫자가 버거운지 어떨지 가늠이 안 됐다.
일단은 작전대로 교전을 하는게 좋아보였다.
"무전병! 현재상황 본부에 무전 때려!"
등 뒤에 리튬전지를 채워넣은 ST-912KA을 메고있던 통신병이 다급하게 무전을 했다.
"박격포! 조명탄 한 발 위로 날려!"
병사들의 이름을 못 불러줘서 약간 미안했지만 아직 외우지 못한걸 어쩌겠나.
박격포로 쏘아 올린 조명탄이 하늘을 가르고 몰려오는 적들은 아직 3킬로미터 정도의 거리가 있었다.
포로 쏘아올린 조명탄은 엄청나게 밝았다. 대낮임에도 확연하게 눈에 띄었다.
최대한 베이스캠프 방향으로 빠지며 교전해야했다. 무전으로 상황을 알리고 조명탄으로 위치를 알렸으니 할 수 있는 연락 조치는 모두 취한 셈이었다.
인근 정찰 분대의 지원은 분대장의 판단에 맡기고, 캠프에선 무조건 지원을 나올것이다.
현재 제한된 탄환으로 싸워야 하는 만큼 화력투사를 신중하게 가해야 했다.
포병이 계산기와 보조장비로 포각을 계산하기 시작했고 남은 분대원들은 개인 화기를 점검하며 아직 소총 사거리에 들지 않은 적을 기다리며 폭약을 준비하며 보조를 거들었다.
신형박격포에 적용된 신형탄인 K247 MAPAM 포탄이 장전되고 발사 대기를 알려왔다.
"성형파편탄 발사 준비 됐습니다!"
원래라면 편각이니 사각이니 몇 번포가 준비 완료됐니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보고를 하겠지만, 나는 그런건 생략시켰다. 훈련이 아니라 실전이었고, 내가 들어봐야 알아 듣지도 못할 말이기 때문이다.
"쏴!"
피유웅-
찢어지는 소음과 함께 포탄이 하늘 높이 날아 올랐다.
최대 사거리 6000미터나 되는 괴물같은 녀석이 눈 앞의 적들을 말살하기 위해 허공를 가르며 나아갔다.
솟아오르던 포탄이 이내 추락하는 새처럼 수직으로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다가오는 괴수들의 머리위로 떨어지던 포탄은 지면과의 거리가 가까워지자 접근신관이 작동하며 공중에서 폭발했다. 정확하게 적들의 몸통 부근이었다.
콰아앙-
대지를 울리는 폭음과 함께 인간의 집요한 폭력성을 그대로 압축해 놓은 듯한 파편들이 공간을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꾸어엉~." "끼에엑~."
살상반경 60미터에 달하는, 인마살상에 특화된 포탄의 공격에 일순간 적들의 진형에 구멍이 뻥 뚫렸다.
십여마리가 그 자리에서 단말마와 함께 바닥에 드러누웠다.
"한발 더 쏴주고 빠진다."
"성형파편탄~ 장저언!"
분당 30발까지도 연사가 되는 무기로 고작 두발을 쏘는게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포탄은 부피가 크고 무거워서 그리 많이 챙겨오지 못 했으니 아껴야했다.
괴수들의 처절한 울부짖음을 뒤로 한 채 장비를 챙겨 캠프쪽으로 이동을 했다.
두 차례의 포격이 있었음에도 녀석들의 머릿수는 여전히 많았고, 분대 개인화기 화력으로는 둘러싸이게 될게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노력이 무색하게도 거리는 점점 좁혀 들었다.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우리와 다르게 괴물들은 자신의 몸뚱이만 이끌고 따라붙고 있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우리보다 걷는 속도도 더 빠르다. 아마 더 가까워지면 전력질주를 해서 달라붙으려고 할 것이다.
"최대한 빨리 거리를 벌린다!"
어떻게든 지원병력이랑 최대한 거리를 좁힌 후 교전을 시작해야 했다.
거리는 점점 더 좁혀졌고 대원들은 지쳐 가기 시작했다. 현재 벌려진 거리는 1킬로미터 남짓이었다.
소총의 유효사거리는 600미터정도는 되었지만, 그건 인간의 피륙을 기준으로 상정된 것이고 놈들은 인간이 아니다. 더 가까운 거리에서 사격을 해야 유효한 타격을 줄 수 있었다.
"대열 갖춰! 놈들이 붙을때까지 체력을 비축하고 이백미터 안쪽으로 접근하면 일제 사격한다!"
"전원 착검!"
총검을 장착했지만, 초인이 아니고서야 저런 괴물들한테 이걸로 과연 저항이나 할 수 있을까 싶었다.
두개꼴을 정확하게 찔러 들어가지 않는 이상 무력화가 불가능 할 터였다.
움직이는 생명체의 머리를 찌르는건 상당히 어렵다. 아마도 대원들이 대검 찌르기를 한다면 몸들의 몸통에 박힌 후 후려치는 발톱에 몸이 찢길 것이다.
최악의 상황이었다.
"가져온 포탄들 전부 쏴 버려!"
이젠 남은 탄수를 따져가며 싸울 상황이 아니었다.
두시간 거리를 나온 탓에 캠프와의 거리가 꽤 멀었고, 빠르게 뒤로 빠졌다지만 아무리 빨라도 지원까지 30분은 걸릴 터였다. 그리고 30분은 전투시간으로는 차고 넘쳤다.
지원이 오기전에 승부가 날 것이다.
"장저언~발사!"
펑-펑-쎄에엥-
순식간에 5발의 포탄이 날아갔다.
고폭탄이 거대한 폭발을 일으키며 적들을 화기와 압력으로 뭉개버렸고,
파편탄이 날카로운 파편을 흩뿌리며 놈들의 강인한 육신을 산산조각 냈다.
공중에서 백린탄이 터지며 대지에 불꽃의 비를 흠뻑 적셨다.
일견 아름다워 보이기까지 하는 새빨간 꽃비를 맞는 녀석들은 고통스러운 괴성과 함께 온몸이 녹아내리며 불타올랐다.
포격으로 순식간에 막심한 피해를 입었으나, 놈들은 포기하지 않고 다가왔고 이내 그 거리가 300미터 안쪽으로 다가왔다. 놈들은 빠르게 걷던 자세에서 이제 더이상 비축할 체력은 필요 없다는 듯이 양발을 높게 치켜 올리며 강하게 대지를 박차며 전력 질주를 했다.
"기관총수! 사격해!"
투다다다다다다다다다당-
200발들이 탄띠를 꽂은 K15 경기관총이 거치된 지지대에서 불을 뿜었다.
분당 발사속도 1000발에 육박하는 지원화기의 총구가 미친듯이 요동쳤다.
강선을 타고 회전하며 발사되는 총알의 탄속은 음속의 3배.
무게가 겨우 4그램밖에 되지않는 탄두는 어마어마한 속도에 의해 막대한 파괴력을 가지게 되고, 적에게 피격하는 순간 끔찍한 수준의 관통력을 자랑하며 육체를 파고 든다. 관통중에 몸속에서의 굽힘력을 견디지 못한 탄피 홈이 산산조각나며 날카로운 파편이 되어 깊은 내상을 입힌다.
그럼에도 놈들은 강인한 생명력을 자랑하며 거리를 좁혀왔다.
조준 사격을 지시 할 상황도 아니었다. 가진 모든 탄을 소비하더라도 닥치는대로 쏴야 했다.
"전워어어언! 사격 개시이이이!"
도트사이트에 눈을 가져다대며 200미터 전방의 적들에게로 무차별 사격을 가했다.
초인적인 신체능력으로 연사를 하면서도 최대한 머리를 조준하며 사격했다.
순식간에 탄창 하나가 비워지고, 물 흐르듯 뻗어나간 손이 총알이 가득 차 있는 새로운 탄알집을 들어 올려 소총에 삽입했다.
쉬익- 철컥-
노리쇠 뭉치를 누르자 쇳덩이의 마찰음과 함께 노리쇠가 탄환을 물고 약실로 들어갔다.
타다다다다당- 타다다다당- 타당- 탕-
열명의 인원이 전방의 적들을 향해 미친듯이 총탄을 퍼 부었다.
순식간에 전열부터 무너지는 괴수들이었지만, 화력이 부족했다. 한 발에 한 놈씩 쓰러지는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대원들이 마구잡이로 탄약을 퍼붓는 통에 한 놈한테 한 탄창이 다 들어가는 경우도 있었다.
치명상 몇 발이면 몇 걸음을 떼기도 전에 죽을텐데, 쓰러지기 전의 그 몇초 동안 수십발의 탄환을 몸으로 받아내는 놈들때문에 순식간에 탄약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조준 사격해! 제대로 맞췄다 싶으면 다른놈을 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교전을 이어가자 놈들이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왔다.
"뒤로 달려! 거리를 최대한 벌리고 조준 사격해라!"
이대로라면 전부 죽게 생겼기에 후퇴를 명령했다. 어떻게든 혼자서 시간을 끌어야했다.
나를 제외한 9명 모두가 사격을 멈추고 등을 돌려서 전력을 다해 달려 나갔다.
그 화망속에서 어떻게 버틴건지 고작 한쪽 팔에만 총상을 입은 놈이 지척까지 다가왔다.
"꾸어엉!"
놈이 달려오는 자세 그대로 상체를 반쯤 일으키며 갈퀴같은 손톱을 나에게 휘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