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0화 〉39화 - 주인공 파티의 그녀 (40/74)



〈 40화 〉39화 - 주인공 파티의 그녀

방송을 종료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기다리던 연락이 왔다.
생각보다 훨씬 빠른 속도였다. 내일 포탈이 바뀌고 나서 연락이  줄 알았는데.

그는 본인을 행정안전부 재난안전관리본부 소속의 재난대응정책관이라고 했다.
졸지에 살아생전 마주친적도 없는 고위 공무원을 만나러 가게 생겼다.
집에 도착해 간단히 씻고 옷을 갈아 입은 뒤 청사가 있는 세종시로 향했다.

세종 청사에 도착하니 안내자가 따라 붙었다. 그를 따라 재난대응과의 사무실로 향했다.

'원래 이렇게 사람이 붙던가? 아닐텐데.'

안내 받은  앞에서 노크 후 문을 열고 들어가니, 중년의 남성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 뒤로  명이 기립해 있었다.

"이쪽으로 앉으시죠."

맞은편에 자리를 안내 받고 나자 그의 등 뒤로 두명이 서고, 내  뒤로 두명이 섰다.
경찰복을 입고 있는걸 보니, 외청인 경찰청의 무력을 끌어 온 것 같았다.

"손님을 불러놓고 이게 무슨 압박입니까. 민주주의 국가에서 이래도 됩니까?"

난생 처음 겪어보는  뒤에서의 위협에 민주주의 타령이 절로 나왔다.

"법적으로 문제  건 없습니다. 재난 상황에 대응하는게 저희의 일이니 말이죠. 지금 당신은 매우 위험한 불순분자이고, 필요하다면 위법을 저지를 각오까지 되어 있습니다."

위기감을 느낄거란 생각을 하지 않고 온게 잘못이었다.
일단 언론의 관심만 끌면 국가기관이 내게 접촉해서  풀릴거라 생각했는데,
그들이 날 적대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이럴거면 내일 만나자고 할걸 그랬다.
그랬으면 적어도 내가 사기꾼은 아닌게 증명이 됐으니 분위기가 조금은 달랐을 테니까.

우리 둘을 둘러싼 네명의 위치는 절묘했다. 각자의 위치에서 허리춤에 찬 총기를 꺼내어 발사하면 사각이 없었으니까. 그렇지만 이들은 내가 얼마나 빠르고 강력한지 알지 못했다. 관통력이 약한 권총으로 무장했으니 한명을 제압하고 그걸 방패 삼으면 충분히 벗어  수 있는 위협이었다.
하지만 난 그렇게 하지 않았다. 여기서 무력으로 저항하는건 하책 중에서도 최하책이었다.
나는 국가와 척을 져서는 안됐다. 국가 권력이 건재한 지금, 그들의 협조와 협력을 얻어내야 했다.

"무의미한 압박은 여기까지만 하시죠. 저는 국가와 적대할 생각이 없습니다."

"귀하의 뜻은 잘 알겠습니다. 다만 제 신변보호를 위한 경호인으로  자리에 있는건 어쩔 수 없겠습니다.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러죠."

다행히 간단한 시험의 일환이었던  같다. 배후의 압박에 민감하게 반응할 정도로 공격적이라면 위험할 가능성이 다분했으니까.

"귀하에 대한 조사 자료는  읽어 보았습니다. 상당히 흥미롭더군요.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어째서 이런 일을 벌인거죠?"

"꼭 필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 주장에 대한 근거가 부족합니다. 꿈 속에서 미래를 봤다고 했지만 증명된건 아무것도 없지요. 설령 흑색의 구체가 푸른색으로 변한다 한들 마찬가지 입니다."
"당신이 괴이한 능력을 가졌다고 해서 입에서 나오는 말이 모두 진실이라는 법이 없잖습니까?"

정론이었다. 나에 대한 믿음이 있는게 이상했다. 그와 나는 아무 관계도 아니며, 내가 세계 평화를 위한다고 부르짖은들 의심하는게 당연했다. 나는 끊임없이 결백을 증명해내야 하는 자리에 위치해 있었다.

"제 말이 진실이라는것은 스스로 증명해 내겠습니다. 내일이면 정체불명의 물체는 파랗게 변할 것이고, 게걸스러울만큼 사람을 잡아 먹을겁니다. 조사를 위해 들어가는 사람은 모두 죽겠죠."
"그곳은 조사를 해야 하는곳이 아닙니다. 싸워서 쟁취해야 하는 곳이죠. 제가 직접 그 곳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입장은  죽음이라고 말해놓고서 직접 들어가겠다는 얘기를 꺼내자 그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들어가면 죽는곳에 제 발로 가겠다고 하는 이유가 뭡니까?"

"이미 그곳을 간접적으로 경험한 제가 가야지만이 그나마 생환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확실치도 않는 일에 목숨을 걸겠다, 이 말씀 입니까?"

목숨을 건 도박은 흔치 않다. 하물며 자신의 안위와 당장 상관도 없는 일에 목숨을 걸겠다니,
그의 목소리에 다시 의심이 깃들이 시작했다.

"장자의 호접지몽을 들어보셨겠지요?"

"예, 알고 있습니다."

"꿈 속에서  시간의 흐름을 느꼈습니다. 한 사람의 일생에 비견될 만큼 긴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꿈이 너무나 생생한지라 어느새 꿈이라는 사실도 잊은채로 지나갔죠. 사실 저는 끔찍한 전쟁의 형상만을 본 것이 아닙니다. 훨씬 더  곳까지 보고 왔습니다."

앞에 있던 찻잔을 들어 올렸다. 아직 김이 올라오는 커피를 천천히 손등에 부었다.
감각까지 둔해지는건 아니기에 뜨거운 감각은 분명히 있었지만, 피부는 상처 입지 않았다.
그대로 빈 잔을 양 손바닥으로 뭉갰다. 유리 깨지는 소리가 들리고 그 조각들을 다시 한번 손아귀에 넣은 채 주먹을 꽉 쥐었다. 손바닥을 펴 바닥으로 내리자 작게 조각난 유리파편이 후두둑 떨어졌다.
손바닥엔 작은 생채기 하나 없었다.

얼어붙은 고요속에서 경호원들이 바짝 긴장하여 침을 꿀꺽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그곳에서 바라본 세상은 아비규환이었습니다. 그리고 현재로선 이런 능력을 얻은것은 저 뿐인걸로 추정되고 있죠. 앞으로 더 늘어날 겁니다. 하지만 지금은 저 뿐이죠. 무언가 이유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혹시 그 비극을 앞서 막는게 제게 주어진 사명이 아닐까 했던겁니다."

"그뿐입니다. 제가 위험을 감수하고서 전면에 나선 이유는요."

그는 잠시 생각을 하는  미간을 구기며 눈을 감았다. 왼손 검지를 뻗어 구겨진 미간을 피려는 듯 문지르는걸 보니 고치고 싶은 습관인  했다.

"그래서 원하시는게 뭡니까?"

"국방부와 검경의 적극적인 협조입니다. 저는 국가단위의 무력과 행정력 지원을 원합니다."

"그건 여기서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안건의 진위 여부를 알아보기 위해서 절 여기로 부른거 아닙니까?"

"맞습니다. 상부에서 토의 후 다시 연락드리죠."

"명심하셔야 합니다. 위에도  알리세요. 시간제한은 최대 3일이라고. 어쩌면 그보다 짧을수도 있어요."

등을 돌려 자리를 나섰다. 이젠 정말 결전의 순간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나는 종교는 없었지만  손 모아 기도를 했다.
어쩌면 우린 무언가에 기대지 않으면 살아갈  없는 나약한 존재일지도 몰랐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지금은 집에 들어가기가 싫었다. 차를 돌려 유흥가가 크게 형성된 동네에 내렸다.
막상 혼자 술집에 들어가긴 민망해서 편의점에서 간단하게 안주거리에 소주랑 맥주를 골라 집었다.
계산대에 생필품 몇가지를 먼저 올려두고 기다리는 손님이 있었다. 엄청난 미녀였다.
지금  몸과 비교해도 다른 매력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우위를 정하기가 힘들 정도였다.

170센치미터는 되보이는 늘씬한 기럭지에 길쭉하게 뻗은 팔다리.
반팔티에 돌핀팬츠를 대충 걸치고 나왔음에도 빛이 나는 몸매의 유려한 곡선.
비컵정도 되보이는 살짝 볼륨감 있는 가슴에 전체적으로 얇은 몸매가 슬렌더한 매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렸다. 포니테일로 묶은 머리는 갈색으로 염색이  있었는데, 마음껏 잡아 당기고 싶은 가학심을 충동질 했다.

인기척이 느껴지자 창고에서 나온 직원이 계산을 시작했다.

"아, 잠시만요. 먼저 하세요."

그녀는 더 살게 있는지 다시 진열대 쪽으로 걸어갔고, 내 물건들을 먼저 계산했다.
물건을 챙겨 들고 편의점 파라솔 아래의 의자에 앉았다. 봉지를 뜯어 육포를 꺼내고 종이컵에 소맥을 말았다. 한잔 들이키고 육포를 질겅거리며 씹고 있자니, 어디선가 꺼림칙한 시선이 느껴졌다.

두리번두리번 고개를 돌려가며 시선의 근원지를 찾아 보았으나 딱히 보이는건 없었다.
착각이겠거니 하고 재차 술과 안주를 탐했다.
그리고 편의점에서 장신의 슬렌더 미녀가 나왔다. 그리고 내 감각에 예의 그 시선이 다시 느껴졌다.
나를 향한 시선이 아니라 저 여자를 향한 시선이었던 것이다.

그녀가 봉투에 한손 가득 물건을 들고 걸어가는 방향을 보니, 인근의 원룸촌쪽 이었다.
뒤이어 약간의 거리를 두고 모자부터 신발까지 온통 검은색 일색인 남자가 따라 붙었다.

'이것 봐라?'

삐뚜름하게 한쪽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나도 그대로 술상을 내버려두고 두 사람을 놓치지 않도록 시야에 두며 따라 붙었다.

스토커인가? 아니면 아예 작정하고 범죄를 저지르려는 놈?
혹시 아는 사람일수도 있으므로 섣불리 참견하진 않았다. 남자에게서 음침한 분위기가 감돌긴 했지만 둘이 어떤 사이인지 모르는데 먼저 끼어들기엔 애매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빌라로 들어갔고 곧이어 그놈도 따라 붙었다. 여자는 입구에서 비밀번호를 치고 들어갔는데, 문이 닫히고 여자가 1층을 벗어나자마자 남자도 똑같은 번호를 치고 들어갔다.
동거하는건가? 같은 호수랑 비밀번호를 공유하는거면...
괜히 따라왔다 싶어서 뒤돌아 가려고 했으나, 남자가 급히 뛰어올라가는게 보였다.

직감적으로 느껴지는 불안감에, 얼른 걸음을 내달려 방금 두번이나 보았던 번호를 그대로 치고 건물안으로 들어섰다. 한 층당 2개의 호실이 있는 빌라에는 적막함이 감돌았다. 계단을 따라 위로 올라가 보았다. 3층까지 복도에 불이 켜져 있는걸 보니 여기가 그 여자의 집인것 같았다. 사람은 놓쳤지만 아직 센서등이 꺼지기 전에 따라 붙은 까닭이다.

조용히 현관에 귀를 가져다 댔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양쪽  현관으로 빛이 새어나오지도 않았고 별다른 소음이 없었다. 뭔가 이상했다. 방금전에 사람이 들어갔으면 생활 소음이 들리는게 당연한  아닌가? 문득 남의 일에 이렇게까지 하는게 맞는가 괜히 오지랖 부리다가 문제 생기는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직감이 맹렬히 요동치고 있었다. 결코 그냥 넘어가지 말라고.

쿵-쿵-쿵-

왼쪽 집의 현관문을 두들겼다. 연이어 오른쪽 집의 현관문도 두들겼다.
다시 귀를 가져다 댔다. 눈을 감으며 청각에 집중했다. 강화된 청각이 미세한 소리마저도 잡아낼 것이다.

"쉬이..."
"흐...윽..."

아무 소리도 못내게 종용하는 쉬잇하는 입바람 소리와 억눌린 신음이 미약하게 흘러나왔다.
차라리 연기를 하며 떠들었더라면 속아 넘어갔을 수도 있겠지만, 방금 사람이 둘이나 들어갔는데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게 훨씬 이상한 법이다.

그대로 현관문 고리를 향해 온힘을 다한 발차기를 연달아 내질렀다.

콰앙-콰앙-

두번을 냅다 걷어차자 문고리가 박살이 나며 떨어져 나갔다.
잔해를 손으로 밀어내며 현관 안쪽으로 팔을 집어넣었다. 꺾어 넣은 팔이 순식간에 잠금장치를 해제했다. 그대로 잡아 당기자 문이 열렸다.

어두운 방 안에는 남녀의 실루엣이 비쳤는데, 벽에 바짝 몰린 여성이 흉기를 든 남성에게 위협당하고 있었다. 이미 티셔츠와 바지는 갈기갈기 찢겨서 넝마처럼 몸에 걸쳐져 있었다. 내가 올라오기 까지 고작 수십여 초도 지나지 않았는데 말이다.

저벅-저벅-
딸깍-

태연하게 걸어 들어가 방의 형광등을 켰다.
놈은 문을 부수고 들어온 정체불명의 인간에게 극심한 두려움을 느끼는 듯 했다.
두 사람이 너무 바짝 붙어있었기 때문에 성급하게 다가갈 수가 없었고,
이미 그녀는 놈에게 인질이나 다름 없이 붙들려 있었다.

"넌 또 뭐야! X발년 이제보니 존나게 예쁘네. 흐흐. 기다려 이년 죽이고 너도 죽여줄테니까."

"흐윽...살려주세요...시키는대로 다 할게요..."

그녀는 놈에게 애원하며 목숨을 구걸했다. 내 머리가 팽팽 돌았다.
단단하거나 뾰족한걸 머리통에 집어 던지면 놈은 눈 깜짝할 사이에 비명횡사 할 것이다.
피하고 자시고  것도 없다. 인지하는 순간 이미 늦었을테니.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 자력구제를 하겠다고 놈을 죽이면 안된다.
대한민국 형법상 자구행위는 원칙적으로 금지이기 때문이다.
지금 살인이라도 저질러서 유치장에 갇히기라도 하면 포탈공략에 지장을 받는다.
 여자에겐 미안하지만, 오늘 처음  사람이 내게 그정도의 가치는 없다.

"야, 잠깐만."

놈은 나를 노려볼뿐 대답을 하진 않았다. 나는 태연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놈이 눈치채지 못하게 그녀에게 눈짓을 하는것도 잊지 않았다.

"나도 저 여자한테 관심있어. 너만 재미 보게  순 없지. 응? 좋은거 같이해야지."

놈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비웃음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미친년 아니야? 문은 대체 어떻게 한거지?  개, 컥!"

그가 잠시 대답을 하며 틈을 보이자 목에 칼날이 올려져 있음에도 그녀는 주저 없이 팔꿈치로 놈의 명치를 가격했다. 동시에 그녀는 내쪽으로 내달렸는데,  믿고 하기엔 상당히 위험한 행동이었다. 괴한이 불시에 복부를 얻어 맞았어도 회복하고 날붙이를 등 뒤에 쑤셔박는 행동이 더 빠르기 때문이다. 남녀의 신체능력에는  정도의 차이가 있다. 더군다나 놈은 공격하는 입장이고 여자는 충격으로 심신이 약해진 상태이기에  차이가 더 부각되는 것이다.

역시나 놈은 별 다른 타격도 받지 않은 듯 금세 그녀의 머리채를 붙잡으려 손을 뻗었지만,
나는 이미 그녀가 팔을 들어올리는 순간부터 움직이고 있었다. 갑자기 눈 앞에 나타났다고 해도 좋을만큼의 재빠른 속도였다.

놈이 쥐어잡으려던 머리채 대신에 내 주먹이 마중을 나갔다.
손모가지가 통째로 날아가는 참사를 내지 않기 위해 힘 조절에 각별히 신경을 썼다.

우드득-

"끄아악!"

주먹에 닿는 손가락이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놈이 비명을 지르며 역수로 쥐고 있던 식칼을 내리 찍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