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8화 〉37화 - 니가 있어야 할 곳 (38/74)



〈 38화 〉37화 - 니가 있어야 할 곳

본가에 온 것은 상당히 오랜만이었다.
가뜩이나 명절에만 오는데, 이번 설에는 건너 뛰는 바람에 족히 6개월은 훌쩍 넘은  했다.
독립전까지 평생을 살았던 동네이니 만큼  곳의 지리는 익숙했다.

잠시 집터를 바라보다 발걸음을 돌려 어머니가 일하는 식당으로 향했다.
어릴땐 식당에서 일하는 어머니가 참 창피했었다. 가게 사장도 아니고 그냥 식당아줌마였으니까.

초등학생때 운동회에 엄마가 오는게 창피하니까 오지 말라고 했던 적이 있었다.
어차피 오라고 해도 일하느냐고 못 올테니 그냥 어깃장을 놓은거였다.
그 날 어머니는 바쁜 와중에도 잠시간 짬을 내어 학교에 찾아왔었다.

창피하니 오지말라고 했던 아들에게 혹여나 밉보일까 학교 안으로 들어오지도 못하고 교문 밖에서 나를 불렀더랬다. 급히 나온 듯 왼손에 돌돌 말은  구겨쥔 앞치마와 오른손에 들린 초코바.

더운 날씨에 벌써 녹아버린 과자를 내밀며 저번부터 먹고 싶어 했는데 못 사줘서 미안하다고 말하시던 어머니를. 나는  쪽팔리니까 빨리 가라고 소리지르며 외면했을까? 그리고 어이하여 그토록 먹고 싶었던 초코바를 화장실 쓰레기통에 던져 버렸을까.
왜 헐레벌떡 뛰어와 땀에 젖은 이마와 티내지 않으려 가다듬는 거친 숨소리는 알지 못 했을까.

여느때와 같이 열심히 일하시는 어머니가 두 눈에 담겼다.
엄마의 하나뿐인 아들일때의 내 두 눈에는 다른것들이 가득 차 있어 어머니가 들어 올 틈이 없었다.

이제서야 두  가득 담아보는 어머니는 내 기억속의 모습보다 조금  늙고 야위어있었다.
소리쳐 부르고 싶었으나, 지금의 나는 어머니께 아무것도 아니다.
보아야 할때 보지 않았고 불러야 할때 부르지 않았던 죗값을 치르는것 같았다.

애써 떨리는 손을 추스르며 가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어서오세요~."

"순대국밥 주세요."

음식이 금방 나오고 나는 티나지 않게 일하는 어머니를 훔쳐보았다.

딸랑딸랑-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어머니의 얼굴에 꽃이 폈다.

"어머~ 아들 연락도 없이 어쩐일이야?"

"지나가는길에 잠깐 들렀어. 이거 보약인데 챙겨 드시라고."

홀린 듯 고개를 돌려 목소리의 주인공을 쳐다 보았다.
처음보는 얼굴이었다.
아침부터 찾아와 보약을 한첩 쥐어주고 가는 아들이라니, 나와는 달리 아주 효자인 아들이었다.
정말 잠깐 들른것 인지 물건만 전달하고는 금방 자리를 떴다.

저 자린  자리야.
내가 있어야 할 곳이라고.
생판 처음보는 저 자식이 아니라!
내가 엄마 아들인데...나 못 알아보는거야?
내가 진짜 엄마 아들래미라고오!

양쪽 볼을 타고 주르륵 눈물이 흘렀다.
틀어막기라도 하려는 듯 국물에 말아진 밥을 입안 가득 퍼 넣었다.

"젊은 아가씨가 무슨일이 있었길래 아침부터 울어요 울기는."

걱정 가득한 목소리에 손님들한테 오지랖 좀 부리지말라고 질책하던 내가 떠올랐다.
어머니는 정이 많으신 분이다. 나같은 무미건조한 인간이  나왔는지 모를 만큼.

"이걸로 좀 닦아요."

건네지는 손수건은 내가 첫 알바비를 받은 기념으로 사드렸던 선물이었다.
낡았지만 관리가 잘 되어 있었다. 이게 도대체 왜 여깄단 말인가.
겉잡을  없이 소용돌이 치는 감정에 들고 있던 숟가락 마저 놓쳐버리며 큰 소리로 울었다.

"엉엉...미안해...미안...죄송해요......"

처음보는 처자가 와락 안겨들며 통곡을 하는데도 어머니는 그저 담담하게 등을 두드려줄 뿐이었다.
감정이 조금 진정되고 갑자기 폐를 끼쳐 죄송하다는 사과를 하고 자리를 나섰다.

"아가씨, 무슨일인지는 모르지만 힘내요. 또래인 아들이 있어서 그런가 오늘 처음보는데도 내 딸 같네."

"네, 다음에  올게요."

감정을 전부 토해내고 가게를 나서는 내 눈빛에는 진득한 독기가 감돌았다.
내가 살아온,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해왔던 삶의 소중함을 알게되었고,
언제나 곁에 있었음에도 놓치고 있었던 소중한 인연을 깨닫게 되었다.

이 모든걸 잃고나서야 비로소   있었다.

나는 영혼을 팔아서라도 내가 있던 곳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 곳이 내 자리고, 마땅히 내가 있어야 할 곳이기에.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방송국 관계자에게 연락이 왔다.
바로 전화를 건걸 보니  중 한사람의 끗발이 통한 모양이었다. 오늘  뉴스에서 생방송으로 인터뷰를 가질  이라고 했다. 오갈 질문에 대한 내용은 메일로 보내줄테니 확인해 보라고 말했다.

간식거리를 사들고 동물병원에 들러 진미령을 만났다.

"뭘 이런걸 다 사오셨어요~ 잘 먹을게요."

 수술을 마친 강아지는 상처 회복에 전념하고 있었다. 그래도 이제 그때처럼 고통스러워 보이진 않았다.

"저 강아지는 회복이 끝나면 어떻게 되나요?"

"입양희망자가 나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유기견보호소로 가겠죠."

그녀가 넌지시 나를 바라보며 얘기했다.

"저도 그러고 싶은데...사정상 반려동물을 키울 여건이 안되요."

허구한날 전장을 전전할 나한테 키워진다면 주인이 없는거나 마찬가지다.

"걱정마세요. 데려가는 사람이 없으면 제가 키울테니까요."

내가 굉장히 곤란해 하자 안심하라는 듯 말하는 그녀를 보며 나는 고마운 감정을 느꼈다.

"고맙습니다. 종종 들러서 간식 먹고 가도 되죠?"

"그럼요. 언제든지 환영이에요."

집에서 간단하게 밥을 챙겨먹고 뉴스를 틀었더니 내가 도화선에 불을 붙인 탓인지,
한동안 시들했던 흑구에 대한 보도로 가득했다.  방송화면이 편집되어 삽입되기도 했다.
수 많은 기사들과 보도까지 이어지자 개인방송 때와는 차원이 다른 관심이 쏟아졌다.

처음으로 내 이름이 실시간 검색어까지 올랐으니, 역시 인터넷 방송이 아무리 날고 기어도 아직은 정규방송에는 안되나보다. 하지만 계획대로 정규방송으로 나아가는 받침대로는  역할을 충실하게 해줬다. 아무것도 가진게 없는 일반인 신분의 내가 세간의 관심을 받기 위한 방도로 인방을 선택한건 다행히 틀린 선택은 아니었나 보다.

후드티를 입고 뉴스에 나오긴 체면이 좀 깎이는 것 같아서, 명품 양장점에 들렀다.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겉모습이 그럴싸해 보이는데서 오는 이점은 사라지지 않는다.
바지로  여자 정장을 풀 세트로 빼 입자 귀티가 줄줄 흘렀다.

시간이 쏜살같이 흐르고 어느새 뉴스에선 내 차례가 다가왔다.
스튜디오에는 수십 대의 카메라와 수십 명의 사람들이 이 곳에 집중하고 있었는데,
부담감이 상당했다. 자리에 앉자 앵커가 멘트를 시작했다.

"예, 지금까지 보도된 일련의 이상현상에 대해서 조금  짚어볼 텐데요. 오늘은 예언가를 자칭하는 특이한 분이 스튜디오에 직접 나와주셨습니다. 인터넷 방송인인 오복 씨 입니다. 어서오십시오."

"안녕하세요."

"오늘 그, 오복 씨의 말씀이 하루종일 굉장히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다시  번  자리에서 말씀해 주실수 있겠습니까?"

"네, 우선은 저를 포함하여 많은 분들이 겪고 있는 현상이 있는데요. 잠에 들면 하얀색 방에 있는 꿈을 꾸는 것 입니다."

"예, 제가 알기로도 많은 분들이 동일한 증세를 호소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특이하게도 그 꿈에서 지금 연구중에 있는 흑색 구체를 봤습니다."

"꿈 속에서 보았단 말씀이시죠?"

"네, 그리고 구체의 색깔이 푸른색으로 변하였고 제가 손가락을 대보자 그 안으로 끌려들어갔구요."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 안에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관찰자의 입장으로 그저 위에서 지켜볼 뿐이었습니다.
그곳에는 인간에게 적대적인 괴생명체들이 가득했고, 사람들이 쉼 없이 죽어나갔습니다."

"단순히 악몽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저도 그렇다고 치부하고 싶었지만, 제게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체격에 맞지 않는 괴력을 얻은 것이죠. 저는 그곳에서 무력하게 죽어나갈 인간을 위한 긍정적인 변화라고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괴력이요? 어느정도를 말씀하시는 건지 확인이 가능하겠습니까?"

미리 준비 된 두툼한 철근이 촬영중인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철근을 양손으로 붙잡아 그리 어렵지 않게 휘어 버리며 말을 이어갔다.

"지금 이건 조작된 소품이 아닙니다. 사람 힘으론 구부릴 수 없는 진짜 철근입니다."

철근이 둥글게 휘다 못해 아예 반으로 접히자 앵커조차 놀란듯 눈을 부릅떴다.
나는 그걸로 부족해 철근을 양손으로  쥐고 비틀며 당겼다.

끼기긱-

쇳덩이가 비명을 질렀다. 걸레처럼 쥐어짜이며 천천히 엿가락처럼 늘어지는 철근에 모두가 숨소리 조차 크게 내지 않았다. 소성변형을 일으키다 이어코 한계점에 다다라 뚝 끊어져버리는 소리에 일대가 벼락이라도 맞은  조용해졌다.

"국민여러분께 호소합니다. 지금 크나 큰 재앙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서둘러 대응하지 않으면 끔찍한 비극을 맞게 될 것 입니다. 제가 본 지옥속으로 중무장한 군대를 투입해야 합니다. 이건 인류의 생존이 달린 커다란 전쟁입니다. 부디 외면하지 말아주세요."

내 인터뷰가 마지막 코너였기에, 앵커는 클로징 멘트를 마치고 내게 말을 걸었다.

"오늘 하신 말씀과 보여주신 모습들 정말입니까?"

"눈 앞에서 보셨잖아요. 소품은 방송국 측에서 준비 했지 않습니까. 그리고 여기가 거짓말을 쳐도 되는 자리인가요?"

"안타깝지만 어떤 심각한 문제에도 본인의 출세욕심에 거짓부렁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긴,  바닥에서 먹고 사는 사람이면 인간에게 질려버릴 법도 하다.
내 기억속에만 해도 순간의 관심을 위해서 새빨간 거짓말을 치는 정신병자들이 두손으로도 손가락이 모자랐으니까.

"정말입니다. 지금 제가 의심을 받는다 해도 기껏해야 며칠안에 진실을 알게 될 겁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거든요."

집으로 향하며 인터넷을 켜보니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아마도 내일이면 사이비 종말론자들이 거리로 뛰쳐 나올터였다.
아직은 피켓이나 들고 있는 수준이겠지만, 정말로 블루포탈이 등장하고 사람들이 안으로 들어가면
더 과격한 움직임을 보일 것이다. 레드포탈이라도 나타나면 총기소유가 가능한 국가에는 지옥도가 펼쳐진다. 골치아픈 일들이 많이 일어날테지만,  마저도 내가 생존을 했을때나 걱정할 일이다.

집에 도착해서 샤워를 하고 소파에 몸을 기댔다.
내가 할 수 있는건 다 했다. 이제 연락을 기다리는 수 밖에 없다.
내일 모레면 푸른색으로 포탈 입구가 열릴터였다.
최대한 끌어봤자 붉게 변하기까지 기껏해야 3일의 유예가 있을뿐이다.

내가 뉴스에 나오자 연락이 온 몇 안되는 지인들에게 대답을 해주며 휴식을 취했다.
앞으로 국가기관에서  연락이나 기다리며 얌전히 집에 박혀있어도 됐지만,
어느새 방송에 진심이 되어버린 나는 내일 방송을 준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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