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2화 〉31화 - 애써 감춰왔던 진실 (32/74)



〈 32화 〉31화 - 애써 감춰왔던 진실

내 계정도 아닌데 충동적으로 탈퇴를 시도하다니, 이건 정말로 일종의 질병이다.
솟구치는 분노가 나를 잡아먹어 버린다. 아직도 손이 벌벌 떨렸다.

"아까 한판 더 하자고  사람 나와. 나 지금 손발이 벌벌 떨려. 너무 화가 나서 진정이 안돼."


[저는 몰라요]


[저 아니에요]

[무빙무빙!!! 피해라 큰게 온다!!!]


[ㅋㅋㅋㅋ범인 찾아내!]

[누구야! 그만한다고 했는데 찐막 하자고한놈 누구야~!]


[범인 반갈죽 위기 ㅋㅋㅋㅋㅋ]

[시이발ㅋㅋㅋ두판연속 트롤 당하고  떠는거봐 엌ㅋㅋㅋㅋ]


[바짓가랑이잡고늘어짐님이 10,000원 후원 하셨습니다!]
'미안해 복아'


"지금 그게 미안하다는 사람 태도야? 응? 나 지금 감정이 주체가 안된다니까?"

[???:만원으로 사과를해?]

[만원 뭐냐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ㅋㅋ 아까 많이 쐈잖아 ㅋㅋㅋㅋㅋㅋ]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엌ㅋㅋㅋㅋㅋㅋ]


[바짓가랑이잡고늘어짐님이 100,000원 후원 하셨습니다!]
'벼룩의 간을 빼먹어라! 독한...ㄴ...'

"이번만 특별히 용서해준다."

[ㅋㅋㅋ끝말을 차마 뱉지 못하는 슬픈 동물이여...]


[눈물젖은 후원금ㅋㅋㅋㅋㅋㅋㅋ]


[아니 근데 저렇게 삥 뜯어도 됌?ㅋㅋㅋㅋ]

[아 수금하는거라고~ 수금하는거 첨봐? 이정도면 약하게 하는거야]

[ㅋㅋㅋ수금  역겹게 하는놈들 엄청 많은데 못봤구만?ㅋㅋㅋㅋ]

"부담되는데 분위기때문에 후원한거면 개인 쪽지로 말해주고."

[봤지 봤찌?? 이게 복이라구~~]

[님들 지금  보이시나요?? 모니터에서 하얗게 빛이 나는데]

[복이!복이!복이!복이!복이!복이!복이!복이!복이!복이!복이!복이!복이!복이!복이!]

"아무튼 약속대로 게임은 여기까지만 할게."

게임 방송을 했더니, 토크방송을 할때는 더 이상 유입되지 않던 시청자들이 더 늘어났다.
원래 내 방송을 보던 사람들은 내가 게임을 해도 여전히 방송을 찾아와주었고,
얼굴만 띄워놓는 걸로는 오지 않았던 사람들이 게임이라는 매개를 통해 들어오게 된 것이다.
앞으로도 여러 종류의 주제로 방송을 하며 다양한 시청자들을 끌어 모아야겠다.

"저번에도 얘기했었는데, 오늘 내 방송 처음보는 사람들도 있을테니까. 다시 한번 말할게."


"잠들었을때 아무것도 없는 새하얀 방에 있는 꿈 꾸는 사람들 있으면 얘기 좀 해줄래?"

[복이 아직도 그 꿈 꾸는거야?]


[병원에서는 뭐래??? 병원 가봤어?]

[별 생각없엇는데  말 듣고보니까 오늘 그런  꾼거같아]


첫날과는 다르게 채팅과 후원으로 증상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불면증환자님이 30,000원 후원 하셨습니다!]
'나 비슷한 증세가 있는거 같아'

"정확하게 증상이 어때? 지금 말한 사람들  천천히 채팅으로 말해봐 내가 다 볼테니까."


[무료로 대화해주는 복이?? 이건 귀하군요 ㄷㄷㄷㄷ]


[삥을 안 뜯는다니 ㄷㄷㄷ]


[이 얘기 나올땐 진지해지니 처신들 잘하라고!]

매니저가 관련되지 않은 채팅들은 잠시 자제해 달라고 공지했고, 시청자들은  따라줬다.
평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의 내 말투와 표정에서 풍기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내가 불면증이 되게 심해서  일환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어]
[잠에 못들어서 환각을 보는줄 알았는데 확실하게 잠은 잤더라고]
[꿈속에서 마치 깨어있는것 같은 느낌을 받았어]

"나랑 정확하게 증세가 일치하네. 또 다른 사람들도 다 얘기해줘"

[나도 처음엔 그냥 개꿈인줄 알았는데]
[같은 꿈을 이틀 연달아 꾸니까 좀 이상하다고 느꼈어]
[근데 복이 너가 방송에서 얘기하니까 보통일이 아닌것 같다는 느낌이 들더라고]


여러 사람들의 증언이 이어졌다. 딱히 비밀이 없으니 분위기를 틈타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있을수도 있지만, 상관없었다. 이 일련의 사건에 대한 공론화를 시키는게 목적이었으니까.

"사실 나는 그 이상한 꿈에 시달린지 벌써 일주일이 넘었어."
"아마 여러분들도 저처럼 계속 이어질 확률이 있어요. 병원에서도 모른다고 하고, 수면검사를 해봐도 뇌파에도 이상이 없다고 하니까. 어떻게 방법이 없어요."

[정말 여러사람들이 같은 꿈을 꾸고 있다고?]

[영화에나 나올일 아니야?? 이게 조작이 아니라 진짜야??]

[몬가...무서운일이 일어나나봐 나 지금 소름돋았어]


[공포영화 보는것 같다...왜케 분위기가 무서워 기분이 이상해]


"그렇다고 무서워할 일은 아니니까 겁먹지 마시고요. 일단  꿈을 꾸는 분들은 다들 본인이 그렇다는걸 인지하고 계시면 될  같아요. 걱정되면 병원도 가 보시구요."

"그리고 주변에도  물어봐 주세요. 제 방송 안보는 분들이 훨씬 많으니까. 그분들도 이번일에 대해 다 알았으면 좋겠어요."

"3명만 다리를 거치면 한국인들 끼리는 다 아는 사이라던데, 다들 주변에 얘기해서 같은 증상을 호소하는 분들을 찾아주시고, 너무 걱정하지 않게 잘 위로해주세요. 이거 막상 겪으면 정말 힘들거든요."


[오케이 주변에 물어봐봄]


[당장 나부터가 겪고있으니 참...나도 수소문해볼게]


[근데 본인만 그런걸수도 있는데 어떻게 다른사람도 그렇냐고 물어볼 생각을 했음?]

"아, 그건  친구도 같은 증세를 겪고 있어서요. 이렇게 특이한 같은 증상을 호소하는게 흔한일도 아니고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해서 방송에서 많은 사람들한테 물어보고 싶다고 생각을 한거에요."


[간호순누나님이 300,000원 후원 하셨습니다!]
'아프지마 복아'

"간호순누나님, 고마워요."

"오늘 방송은 여기까지 할게요."

걱정 반 아쉬움 반인 시청자들과 작별인사를 나누고 방송을 종료했다.

《제목 : 오늘 복이 방송 본사람??》


나 존나 소름돋았네
어젯밤 꿈이 복이가 얘기하는  의식이 멀쩡한채 하얀방에 있는 꿈이었거든?
이제 계속  꿈만 꾼다고?? 시발 그거면 존나 싫은데

 ㄹㅇ임??
ㄴ  씨바 나도 그런데 이거 진짜 실화냐? 무슨  같은거 걸린거야?
ㄴ 복이말론 병원에서도 정확히 뭔지 모른다던데 무슨일이고 이거
ㄴ 뭐임??? 전염병 같은거임 이거??
ㄴ 나도 같은일 벌어짐...이거 보통일 아닌듯
ㄴ 니들  몰카하는거 아니고 진짜라고??

거실로 나와 진기한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 뚜르르-

"여보세요."


"기한씨 접니다."

"네, 복이씨."

"방금 방송 끝냈는데요. 저랑 같은 증세를 호소하는 사람들이 여럿 나왔어요."

"정말입니까...결국 일이 그렇게 되어버리는거군요."


"네, 우리가 할일은 조금이라도 더 빠르게 공론화 시켜서 대중들의 관심과 우려를 얻는 일입니다."


"알겠습니다. 새로운 증인들까지 나온 마당에 밍기적거리고 있을 수는 없겠네요. 바로 기사 쓰겠습니다."

통화를 마치자 문자가 한통 왔다.
편집자 선정우였다.

>> 오늘 방송도 수고하셨습니다. 게임에도 조예가 있으셨군요. 방송 하이라이트는 파트별로 분류해서 업로드 하도록 하겠습니다.

<< 네, 감사합니다. 영상 잘 부탁드릴게요.

"후아~ 오늘 하루도 어찌어찌 지나보냈네. 이게 잘하는 짓인가 모르겠다. 다음주에 뒈질수도 있는데 게임이나 하고 자빠지고."


오전부터 저녁까지 쉴 새 없이 이어지는 방송 일정 덕분에, 솔직히 말하면 하루종일 정신이 하나도 없다.
그래서 방송을 하는동안은 머릿속이 복잡하지 않아서 좋았다.
하지만 이렇게 모든 방송이 끝나고 나면, 소위 말하는 현자타임이라는 것이 찾아왔다.

밀물이 파도치듯 쏟아져 들어오는 부정적인 생각들, 이러고 있을게 아니라 당장에라도 청와대 앞으로 나가서 1인 시위라도 해야 하는건가 싶은 충동들.
지금 내가 차곡차곡 하고 있는 이 빌드업이, 사실은 자기만족에 불과한 유흥거리에 불과한게 아닌가 싶은 다소 비관적인 생각까지.

그냥 사람들 앞에서 괴력으로 차력쇼라도 벌이고, 내가 사실 초능력잔데 지금 지구 멸망까지 카운트가 얼마 남지 않았다고 난리를 쳐댔으면, 언론의 관심을 얼마나 끌 수 있었을까?


과연 국가권력은 내 말을 귀 기울여 들어주었을까? 아니면 정신병자로 내몰아 억제하고 구속하려 하였을까. 세상은 유일한 이레귤러인 나를 동등한 인간으로 인정을 해주었을까? 그렇지 않으면 인류역사상 처음 나타난 진짜 초인의 육체를 산채로 부수고 찢어가며 실험하려 하였을까.

내가 하는 모든 행동들에 확신이 없었다. 그래서 더 불안하고 두려웠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을 걷고 있는 기분은 여지껏 겪어보지 못한 실로 끔찍한 무언가였다.

하지만 난  빌어먹을 곳에서 탈출하고 싶고, 그러기 위해선 원작과는 다른 무언가를 보여줘야 한다고 스스로 결론을 냈다. 이미 호랑이 등에 올라탄 형국이다. 내 브레이크는 이미 고장났으며, 최악의 경우 별 다른 준비 없이 포탈에 뛰어들 각오까지 해뒀다. 최초 포탈에 입장할 기회는 이번뿐이기 때문이다.

내가 방송을 하는것은, 가진 목적을 이루기 위해 사람들의 관심이 필요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나' 라는 존재가 깨끗하게 사라진 이 세상에서.
비록 모습은 달라졌을 지언정, 또 다른 '내'가 엄연히 존재 했음을 알리고 기록하는 행위이기도 했다.

'엄마 보고싶네.'


나는 독립을 한지 오래였다.
떨어져 사는 아들래미들이 으레 그렇듯이 나 또한 그다지 살가운 자식은 아니었다.
명절에나 봬러 가고, 용돈이나 조금 보내드리고.
어머니란 언제나 그곳에 있어주시는 분이니까.
그렇게 이기적으로 생각했었다.

 발치서 볼 수도 없는 너무 늦은시간 이기에, 아버지에게 가기로 했다.
무작정 밖으로 나가 택시를 잡아 탔다.

"파주로 가주세요."

도착지를 미리 정하고 부른 콜택시였기에 먼 거리에도 두말 않고 출발했다.
지금 사는곳도 수도권 인근이었으므로 목적지엔 그리 오래걸리지 않아 도착을 했다.

살아생전에 나무를 좋아하시던 아버지는 내가 고등학생때 돌아가셨다.
본인이 배우지 못한 한으로 자식이 꼭 대학에 가길 바라셨던, 가족을 먹여살리기 위해 힘든일도 마다 않고 하시던 인정 많던 아버지였다.


수능 당일 답안지를 눈물로 적시지 않으려고 얼마나 참았었는지.
원하던 대학의 합격 통지서를 받고 바닥에 주저 앉은채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그토록 자랑하고 싶었던 사람이 이미 곁에 없었기에.

슬픔은 시간이 지나면 희석되지만, 그리움은 갈수록  짙어진다.
시간의 향취가 듬뿍 묻은 그리움은, 가슴속 깊은 곳에 남아 앞으로 살아갈 삶에 은은한 향기를 풍긴다.


푸르른 나무를 좋아하셨던 아버지가 편히 쉬시길 바라는 마음에 수목장을 해드렸었다.
늦은 시간이라 수목장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담을 훌쩍 넘어 들어갔다.

기일이면 찾아오곤 했었기에 익숙한 공간이었다.
기억을 되짚어 발걸음을 행하니 늘 그곳에 있던 묘비가 하나 보였다.


이름도, 생년과 사망도 내가 알고 있는 그대로였다.
나는 묘비 앞에 조용히 무릎을 꿇고 앉았다.

"아빠......"


불러도 대답없는 그 이름.
어릴적 크고 단단해 보였던 아버지의 등은,  갈수록 별게 아니게 되었고.
우리 아버지가 슈퍼맨이 아니라는걸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없는 반항을 했다.
그래, 특별할 것 없는 흔하디 흔한 자식새끼였다.
그렇게 평범한 부자 사이는 평범하게 흘러갔다. 영원하리라 착각했던 그 시간이 깨져버렸을 때.
아버지는 나만의 슈퍼맨 이었다는걸 깨달았지만, 이미 늦어버린 일이었다.

천천히 묘비를 향해 손을 뻗어갔다.
그립고 또 그리운  이름.
그토록 그리워함에도 어느새 기억속의 얼굴조차 희미해지고,
아련하게 울리는 목소리만이 까마득한 과거에 머물고 있었다.
시간이란 그런것이다.
기쁜일도 슬픈일도 모두 시간이란 모래에 흔적도 없이 파묻혀 버린다.
문득 떠오른 그리움에 아무리 파헤쳐 봐도, 그 원형은 온데간데 없고 풍화된 잔해만 찾아  뿐이다.

이곳에도 아들이 있으신가요? 저처럼 말을 지지리도 안 듣던가요?
어떻게, 여기선 아픈데 없이 행복하게 사셨나요?
나무는 여전히 좋아하셨었나 보네요.
이곳에 계신 아버지도, 여전히 제 아버지가 맞으신가요?

결국에 닿지 못하고  곳을 잃은 손이 허공을 헤매고, 그동안 애써 외면해 왔던 서러움이 폭발했다.

나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다.
목숨을  투쟁을 해본적도, 시한부 판정을 받은적도 없으며.
당장 죽을지도 모르는 전쟁에 뛰어들만큼 강인한 정신을 가진 전사도 아니다.
살면서 생명의 위협을 받아본 적이 없었던 나에게,
정말로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끊임없는 좌절과 공포를 불러왔다.


그래봤자 소설 속이라고 마음을 다 잡으며 침착한척 해왔지만,
나를 제외한 모든것이 그대로인 세상이다.

정말로, 이곳이, 소설 속이, 맞긴 한걸까?

"으어어엉."
"나 무서워요."
"아빠, 나 좀 구해주세요. 여기서 꺼내주세요."

정제되지 않은 거칠은 울부짖음이 밤 하늘을 타고 멀리 퍼져나갔다.
한 인간의 영혼이 고통과 두려움에 몸서리치는 소리에,
별들도 달도 그저 침묵만을 고수했을 뿐이다.


한참을 몸부림 치듯 울며 소리치던 나는,
결국 그 자리에 잠이 들듯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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