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화 〉10화 - 방송 시작
"원래 얼굴 가리고 카페에 헤어스타일만 올리는걸로 10% 할인이 들어가는데요."
"혹시 얼굴 공개로 올릴 수 있게 허락 해주시면 오늘 시술비는 안받을게요."
"그리고 모델비로 많진 않지만 10만원도 현찰로 드릴게요."
거절이라도 당할까 속사포처럼 연달아 말을 내뱉는 디자이너씨를 보며
잠시 눈을 감고 생각했다.
"잠시만요 생각 좀 해볼게요."
내 사진이 미용실 홍보용으로 올라간다고 문제가 된다거나 손해보는건 없을것 같았다.
머리에 들어간 돈에 받을 10만원까지 합치면 30만원이 훌쩍 넘는 금액이었다.
돈이 아쉬운건 아니지만 아낄 수 있으면 아껴야지.이건 무조건 콜 해야돼.
이거는 개꿀이지!
"네, 좋아요 그렇게 할게요."
"감사합니다! 손님때문에 단발 대란 올지도 몰라요 호호~."
에이, 내가 연예인도 아니고 무슨 미용실 사진 하나 때문에 전국적으로 단발 대란까지 올려고.
미용실을 나서며 다음 목적지를 향해 바쁜 발길을 옮겼다.
도착한 곳은 네일아트샵 이었다.
"안녕하세요~."
익숙해졌는지 먼저 인사를 하며 문을 열고 들어갔다.
"이런데 처음 와 봤는데 네일 하고싶어서요."
"아, 그러시구나 이쪽으로 오세요~."
업종이 업종인지라 사장님이 상당히 친절했다.
사장님 혼자하는 작은 네일샵인데 실력이 상당하다고 들었다.
평일이고 아직 이른시간이라 예약없이 올 수 있었지.
바쁠땐 이런식의 방문은 택도 없는 곳이었다.
나는 어느샌가 샵들을 돌아다니며 케어받는걸 즐기고 있었다.
분명 목적이 있어서 하는 행위임에도 기분이 업 되는건 어쩔 수 없었다.
마음껏 돈 쓰고 다니는게 재미 없을리가 없잖아.
"설명 해드릴게요."
손톱도 서비스 종류가 무언가 머리만큼이나 복잡했다.
케어, 영양베이스, 오버레이 등 난생 처음 듣고 보는 일들이 내 손 끝에 일어났다.
"손이 정말 예쁘세요, 손톱도 너무 예쁘시고 큐티클도 하나도 없으신데 평소에 정리하시는거에요?"
"어머~ 정말 손 모델 하셔도 되겠다. 어쩜, 이렇게 새하얀 손에 흉터 하나 없어요?"
"손톱이 워낙 건강하셔서 결과물이 잘 나올것 같아요."
"패디큐어는 안하세요?"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칭찬과 질문공세에 이어,
발톱까지 영역을 확장하려는 그녀에게 거절의 의미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줬다.
"다음번에 또 관리 받으러 오세요~."
네일아트를 끝 마치고 입구까지 배웅을 해주는 친절한 사장님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거리로 나왔다.
머리 두 시간, 손톱 두 시간.
어느새 네 시간이나 잡아먹힌 시간을 보며
이것도 쉬운일이 아니구나 싶었다.
손톱은 10만원이나 들여서 했다.
비싼만큼 확실히 알록달록 반짝반짝 예쁘긴했다.
열시부터 시작했는데 벌써 두시였다.
슬슬 배가 고팠다.
사실 아까전부터 배고팠다.
음식점을 찾아 걷기를 얼마간.
마음에 드는 간판을 발견하고 들어갔다.
차분하고 아담한 일식집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인기척을 내며 잠시간 기다리니 주방에서 고개 숙이며 사람이 나오는게 보였다.
"지금 식사 되나요?"
"네, 어서오세요~"
"여기 메뉴판 있습니다."
메뉴판을 들여다 보며 뭘 먹을지 골랐다.
다 맛있어 보이네.
두개 먹을까?
"사케동이랑 텐동 주세요."
"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음식점에 들어오니 왠지 모르게 배가 더 고파져 애꿎은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비교적 조리시간이 더 짧고 간단한 사케동이 먼저 나왔다.
밥 위에 연어회와 함께 간장소스를 뿌려서 나오는 연어덮밥.
연어 위로 올려진 양파와 무순을 함께 집어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살살 녹았다.
밥도 한술 뜨자 입안에 훈기가 맴돌았다.
딸려 나온 된장국을 그릇째로 들고 맛 보았다.
후룹-
"오, 바지락이 들어있네?"
건더기로 들어 있는 근대와 팽이버섯, 느타리버섯 그리고 바지락을 건져 먹었다.
기본으로 나오는 국인데 상당히 공 들인 티가 났다.
밑반찬도 여느 동네 일식집 처럼 락교에 단무지 생강초절임으로 끝이 아니었다.
한입 크기로 정갈하게 잘려있는 아삭한 오이와 비트 무침이 있었다.
뭐에 무친건지 소스 색깔은 투명한데 시큼한 맛이 났다.
채소로 입맛을 돋우고 있으니 기다리던 텐동이 나왔다.
마찬가지로 밥 위에 간장소스를 뿌리고 튀김을 얹어나온 덮밥 이었다.
튀김은 새우, 단호박, 오징어, 가지, 꽈리고추, 달걀과 김이 올라와 있었다.
상당히 훌륭한 구성의 한 그릇 이었다.
튀김의 바삭한 식감과 깨끗한 기름에 튀겨져 감칠맛이 줄줄 흘러 넘치는 튀김들이었다.
오징어와 새우는 오동통하게 살이 올라있었고,
채소류는 바삭 촉촉하니 식감과 맛이 잘 살아있었다.
달걀은 한입 베어무니 반숙상태의 노른자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얼른 밥에 비벼서 야무지게 입으로 가져갔다.
두 그릇을 다 깨끗하게 비우고 계산을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영수증을 보니 텐동은 2만원 사케동은 1만8천원이었다.
"비싸서 맛있는 거였구나~."
가격대가 결코 저렴하지가 않은 음식점이었다.
2시면 때를 놓치긴 했지만 어쩐지 손님이 한명도 없더라니.
검소하게 살던 습관이 쉽게 고쳐지는건 아닌가보다.
그래도 맛있는걸 먹어서 기분은 좋았다.
근처의 옷가게에 들러 흰 블라우스를 하나 샀다.
아무래도 셔츠 종류를 입어야 할것 같았기 때문이다.
집에 도착하니 현관에 택배가 와 있었다.
총알택배가 빠르긴 빠르구만.
안으로 들고 들어와 포장을 뜯었다.
컴퓨터 그리고 방송용 카메라와 마이크였다.
설치용 조명도 여러개 샀다.
방송용 컴퓨터는 투컴이 기본이고 사양이 좋아야 한다기에 최고사양으로 두대를 샀다.
조립식이긴 하지만 업체에서 다 조립을 완성해서 보내준다.
조립비를 받긴 하지만.
컴퓨터 부가용품 까지 깡그리 한곳에서 구입했으니 수입이 짭짤했을거다.
용품들도 전부 고가의 물건들로 구입했다.
그렇다고 대책없이 비싼것만 골라산건 아니고 스테디셀러들 위주로 구매했다.
카메라도 이 미모를 최대한으로 담기 위해 상당한 고급 제품으로 구비했다.
화면은 의심의 여지가 필요 없는 조명빨이므로 조명도 검색해가며 여러개를 구매했다.
오늘 오전부터 어울리지 않게 머리도 하고 손톱도 하고 옷도 사고,
빨빨거리며 부지런히 돌아 다닌것은 다 이 순간을 위해서였다.
인터넷 방송 할꺼다.
아 물론 미모를 이용해서 인생 날먹하겠다는건 아니고!
돈 벌려고 하는게 아니라 이슈가 되기 위해서 하는 방송이었다.
일단 웬만한 영화배우들 조차 명함도 못 내밀게 하는 천상계의 외모를 지니고 있으니
캠만 켜도 시청자들이 우르르 몰려올테고.
그 상태에서 광역 어그로를 끌 예정이었다.
포탈에 대해서.
포탈은 아직 정체불명의 미확인 구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그에 대한 확실한 정보가 전무한 상태다.
나는 방송을 통해 각성몽을 꾸며 하얀방을 만난 사람들에게
그게 무엇인지 자각을 주며 사람을 모을 것이고,
블루 포탈이 되기 전에 미리 그 사실을 예견 함으로써
내 발언과 요구에 국민들의 공식적인 힘과 지지를 얻을 예정이다.
과연 이게 통할지 어떨지 잘 먹힐지는 아직은 모르겠지만,
권력이 없는 일개 평범한 시민의 입장에서 국가 비상사태에 조금이라도 간섭할 가능성이 있는 방법을 이것 말고는 도저히 모르겠다.
미친척하고 포탈에 나 혼자 뛰쳐 들어가거나 원작에서 파견될 사람들에 낑겨서 우격다짐으로 같이 들어가면
100퍼센트 확률로 무조건 개죽음이다.
거긴 전투원들이 들어가야 할 곳이지 책상물림들이 들어가선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포탈은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들어가는것에 더불어 후속 지원까지도 정확한 계획을 수립해 두고 진입해야 한다.
1차 진입에 포탈이 공략되는 경우는 없다.
2차, 3차 필요하면 더 많은 후속 지원이 들어갈 수도 있다.
당연히 후속 지원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만,
현실적으로 그게 어렵기 때문에 미리 조율을 해놓고 들어가는 것이다.
블루 포탈은 양방향 상호작용이 불가하기 때문에
안쪽의 상황이 어떤지, 공략에 대한 예후가 좋은지 아님 이미 전멸해버렸는지,
뒤이어지는 후속지원이 쓸모없이 휴지통에 쳐박힐지, 가뭄의 단비일지
바깥에서는 아무것도 알수가 없다.
국가 주요시설이 있는곳에 나타나서 정말 무조건 공략해내야 하는 포탈이라면,
모든 인력과 자원을 퍼부어서 수십차례의 공략대를 보내서라도 공략 해낼 수 있긴하다.
하지만 늘어나는 포탈에 비해 사람은 늘 부족하다.
그리고 대책없이 무조건 그 포탈을 공략해내겠다고 올인을 했다가 전원이 회생을 못 한다면 그땐 그야말로 끝장이다.
만약 방송을 이용한 일종의 예언자 코스프레와 언론플레이를 곁들인
이 작전이 성공한다 해도 나는 전혀 아무런 정보도 없는 포탈에 들어가야 한다.
첫번째 포탈의 난이도가 어떨지는 알 수가 없지만
쉽기보단 어렵다는게 맞지 않을까?
내 목숨이 걸린만큼 무조건 클리어 해야 하므로 가능한 모든것을 다 퍼붓게 만들거긴 하지만
만약 내 상상을 초월하는 난이도로 인해 공략을 실패하면 정말 그대로 모든게 끝이었다.
최초의 포탈 공략전은 목숨을 건 일생일대의 도박이나 다름이 없었다.
중압감이 무겁게 어깨를 짓눌렀다.
"얼른 움직이자. 시간이 그리 많진 않으니까."
여태까진 느긋하게 움직이긴 했지만
이제 방향성이 정해진 만큼 서둘러서 행동해야 했다.
책상에 컴퓨터 설치를 하고 카메라를 셋팅했다.
컴퓨터를 켜보니 돈이 좋긴 좋은지 방송용으로 쓸거라고 요구사항에 진상짓을 좀 했더니
정품 윈도우부터 시작해서 이것저것 프로그램들이 깔려 있었다.
조명도 설치하고 카메라 테스트도 마쳤다.
말도 안되게 예뻤다.
아마 개인방송 생태계가 폭발해버리지 않을까?
슬슬 긴장감을 끌어올리며 라이브 방송을 송출할 준비를 했다.
아까 느꼈던 중압감과는 조금은 다른 느낌의 긴장감이 엄습해왔다.
"막상 생방송하려니까 엄청 떨리네."
바짝 마른 입술에 혀로 입술을 핥고 그걸로도 부족해서 입술을 쭉 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