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화 〉7화 - 베란다 잠입 작전
계산대에서 습관적으로 핸드폰을 열어보니 톡이 하나 와 있었다.
>>'복이 누나, 오늘 정말 감사합니다! ^^ 언젠가 이 빚을 꼭 갚을게요. 진심이에요!'
짜아식- 그래 그 마음으로 아픔을 이겨내라.
왠지 모르게 뿌듯한 기분을 느끼며 양손 가득 비닐과 종이봉투를 들고서 집으로 향했다.
후드티에 청바지 그리고 깔끔한 스니커즈. 전형적인 대충 입은 패션이었다.
아참, 속옷도 제대로 입었다.
브래지어는 예전에 여자친구가 입던 기억을 떠 올리며 입었다. 패드를 등에 대며 입고 후크를 앞쪽에서 채우고, 다시 앞으로 돌리면서 위로 올리고...뭐 아무튼! 그리 어렵진 않았다.
여자친구는 AA컵이었지만 나는 D컵이어서 그저 가리개 같았던 그때와는 달리 정말 감싸안으며 집어넣어야 한다는게 차이점이랄까.
어색하니까 위에는 입지말까 하다가 나중에 많이 거슬리면 그때 가서 다시 생각해 보기로 했다.
한국은 아직 사회통념상 입고 다니는게 맞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기도 하고, 이 바스트로 속옷 없이 다니면 파괴력이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에 곤란하기도 했다.
"점점 더 멀어져간다~ 머물러있는 청춘인줄 알았는데~"
노래를 흥얼거리며 걷다보니 금방 집 근처에 도착했다.
늘 가는길은 멀게 느껴지는데 돌아오는길은 짧게만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띵-
엘리베이터를 내리고 현관에 다다르자 무언가 잘못됐음을 느꼈다.
"X발, 현관 비밀번호 모르잖아?"
신축 아파트는 아닌지라 1층 로비에서부터 막히진 않았으나 현관 비밀번호를 모른다는게 문제였다.
집 안에서 문을 열어주기만 하다가 별 생각없이 아예 외출을 해버린게 문제였다.
일단 봉지들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어떡하지?"
열쇠공을 불러야하나? 문 따달라고? 한번도 이용 안해봤는데 어떤식으로 하는거지?
뭔가 막 경찰 불러서 내 거주지가 맞는지 확인시켜야하고 그런거 아니야? 그럼 곤란한데.
아니 신분상으론 내가 오복이가 맞긴하다만...여자가 된것도 있고...
실제로 내가 오복이가 아니라 무언가 문제가 생길수도 있고.
으아아아!
문짝을 부숴버릴까?
손잡이를 부숴서 뽑아버리고 안으로 팔을 넣으면...도어락 버튼 누를수 있지 않을까?
아니야 오바야.
진정해.
왜 이렇게 폭력적으로 변한거야 응? 뭐든지 힘으로 해결하려는 방식은 옳지 않아.
내가 힘이 쌔긴 하지만 이 문짝을 아귀힘으로 부술 수 있는지도 사실 확신이 없고 말이지.
그렇다고 두들겨서 부수면 분명히 동네사람들이 다 튀어나올테고.
휘이잉-
복도의 열린 창문으로 찬 바람이 들어왔다.
"그래, 창문!"
베란다 창문으로 들어가자!
공용 창문으로 다가서자 지상을 향해 아찔하게 뻗은 아파트 외부가 보였다.
여긴 15층. 떨어지면 죽을까? 내 몸이 얼마나 튼튼하지?
15층에서 사람이 떨어지면 바닥에 닿을때 충격량이 얼마나 되더라?
벨리플라잉 자세로 떨어지면서 공기저항을 최대한 많이 받으며......
바닥에 닿을때는 슈퍼히어로 랜딩으로...... 안돼 무서워.
휘잉-
옆을 바라보니 뭔가 애매했다.
여기서 저 베란타 틀까지 측면으로 뛰기가 애매했다.
딱히 잡고 갈것도 없었고 말이다.
옆이 아니라 위에서 아래로 내려와야겠다.
최고층인 18층으로 올라갔다.
옥상문이 잠겨있었지만 CCTV가 없는것을 확인하고 자물쇠를 잡아 뜯어버렸다.
강철자물쇠가 아니라 플라스틱 자물쇠로 묶어놔서 더 수월했다.
끼이익-
녹슨 철문을 열고 올라가니 휑한 옥상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여기서 각층의 베란다 창틀을 잡으며 15층까지 한층씩 내려갈꺼다.
에어컨 실외기도 거뜬히 지지하는 구조물이니까 가벼운 내 몸무게 쯤은 견뎌주겠지?
"후우~ 제발, 떨어지면 어찌될지 나도 몰라."
아 그냥 문 따 달라고 사람 부를까? 그게 쉽게 가는 길 일지도 몰라.
왜 고작 내 집에 들어가는일에 목숨을 걸어야 하지?
에라, 모르겠다!
"가즈아아아아~"
휙 하고 뛰어내린 나는 급히 손을 뻗어 18층의 난간을 붙잡았다.
거실에 불이 켜져있었다.
들키기전에 빠르게 손을 놓으며 중력에 몸을 맡겼다.
탁-
17층.
다행히 아무도 없는것 같다.
"오케이, 생각보다 안정적이야 큰 문제없겠어."
철창은 생각보다 튼튼하게 잘 버텨주었고 나는 한층을 더 내려가기 위해 매달린 손을 놓았다.
성공이 눈앞에 있는듯하여 기분이 한껏 고양되었다.
16층에서 한 남성과 눈을 마주치기 전까진.
16층의 그 아저씨는 베란다에 나와 창문을 열고 담배를 피고 있었다.
아마도 잠들기전 가지는 편안한 휴식시간 이었겠지.
그런데 갑자기 위에서 사람이 쑥 내려오더니 덜렁거리며 자기 집 창틀에 매달리는걸 보았을때 무슨 심정이었을까?
어쨌든 한마디로 정의하긴 힘들겠지.
"어억!"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흠칫 뒷걸음질 치는 윗집 아저씨를 보며 나는 자연스러운척 말을 건넸다.
"아저씨, 단지내에서 흡연 금지인거 몰라요?"
"어, 어, 예에?"
"저 아랫층 사는데 문이 고장나서요, 창문으로 들어가는겁니다. 수상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망했다. 대체 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는거냐 나는.
그냥 아무말 없이 휙 내려갈걸 그랬나?
그럼 득달같이 창틀에 달려들어서 내가 아래층 창문을 열고 들어가는걸 보겠지.
그리곤 분명히 경찰을 부를테고.
하아.
그래 이렇게라도 핑계를 대는게 낫겠다.
올라와서 해명하면 되지.
"이따가 해명하러 올라올테니까, 경찰 부르지 마세요. 저 이상한사람 아닙니다!"
어버버 거리는 아저씨를 남겨두고 나는 재차 손을 놓았다.
드디어 대망의 15층.
홈 스위트 홈.
아아 드디어 도착했다.
즐거운 우리집.
문이 잠겨있었으면 창문을 깨고 들어가야하는 최악의 상황이 나올뻔했는데
다행히도 잠금장치는 풀려있었다.
매달린채 바깥에서 한팔을 이용해 창문을 열었다.
슬쩍 위를 쳐다보니 윗집 아재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자기가 보고 있는걸 믿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드디어 집으로 들어왔다.
도둑놈처럼 창문으로 들어오긴 했지만 15층 아파트 창문으로 들어오는 도둑은 없겠지 아마도...?
현관을 열어 물건들을 들여놓고 도어락 비밀번호를 바꿨다.
불행 중 다행인지 지난 비밀번호를 요구하진 않고 바로 변경이 가능했다.
음식은 냉장고에 넣어두고 옷들은 일단 쇼핑백 째로 텅 빈 옷장에 넣었다.
윗집 아재의 머릿속 회로에서 무슨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얼른 윗층에 가야할 참이었다.
터벅 터벅 오르는 발걸음이 정말이지 무거웠다.
내가 미친짓을 하긴했지만 뭐 범죄를 저지른것도 아니고 응?
이렇게 쫄릴건 없잖아.
그래 당당해지자.
띵동-
벨을 누르자 철커덕 하며 문이 열렸다.
"일단 들어오시죠..."
말 끝을 흐리며 집 안으로 안내를 받았다.
위험할지도 모르는데 그냥 집 안으로 들이다니 왜 이렇게 조심성이 없는거야, 뭐지?
내가 가냘픈 여자라서 그런가? 15층 창문에 매달려서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피지컬인걸 봤는데?
어찌됐든 남의 집이니 만큼 실례합니다를 외치며 현관을 닫으니 일전의 아저씨가 날 쳐다보고 있었다.
쫄 필요없어 죄 지은것도 아닌데! 할말 딱 하고 집에 들어가자.
"그게 말이죠 엇?"
아저씨의 뒤로 보이는 익숙한 실루엣 아까 삥 뜯기던 그놈이었다. 이름이 뭐였더라.
"엇, 누나!"
녀석이 반갑게 아는척을 하며 다가왔다.
"아는 사람이니?"
"네, 친한 동네 누나에요."
언제부터 친했다고 짜식이? 그래도 지금은 그렇게 말해줘서 고맙다. 곤란한 참이었거든.
"하하, 안녕하세요 아래층사는 오 복이라고 합니다. 이름이 외자에요."
"그러시군요. 인사가 늦었습니다, 진기한 입니다. 방금의 그 일은?"
"제가 몸 쓰는거에 좀 자신이 있어서요. 현관문이 고장났는데 그 방법 밖엔 생각이 안나더라 말이죠."
"그냥 업체를 부르시면 될게 아닙니까."
"그것도 그렇네요, 하핫, 저도 후회하고 있습니다."
대충 얼버무리자 더 이상 자기가 참견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듯 더 물어보진 않았다.
자기 아들과 알고 있는 사이라고 한것도 의심을 덜어낸 주요 이유인듯 했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편안한 밤 되십쇼~."
내 집에 들어가려다가 범죄자 취급이나 당하고 이게 무슨 일이다냐 지친다 지쳐.
방으로 돌아와 새로 산 옷들을 꺼내어 옷장에 깔끔하게 정리했다.
그대로 온몸을 던지듯 침대에 풀썩 누웠다.
씻고 자야되는데.
"아 X발, 욕실용품 안 샀네."
시계를 보니 밤 11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마트 문도 닫았을테고 이건 그냥 편의점에서 사자.
정말 짜증났지만 뜨끈하게 샤워도 하고 싶었기에 다시 몸을 일으켜 신발을 신었다.
진기한은 꽤나 인정받는 신문사의 사회부 기자였다.
힘든 사회부 기자 생활, 그 중에서도 3D로 통하는, 취재를 위해 경찰서를 들락거리는 사건부 기자였다.
본인이 유능한 사회부 기자이면서 아들이 학교폭력에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건 꽤나 중죄였지만 원래 등잔 밑이 어둡다지 않나.
편부가정이지만 용돈을 넉넉히 주고있기에 그걸로 됐다고 생각하는 전형적인 워커홀릭 아버지였다.
실제로 아들은 사고 한번 친적없이 착실하게 학창생활을 이어가고 있고 말이다.
그런 그의 촉이 말하고 있었다.
아래층 저 사람에게 뭔가 있다고.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외모야 차치해 두더라도 어떻게 사람이 아파트 난간에서 액션영화를 찍듯이 그렇게 날아다닐 수 있단 말인가?
새까맣다고 해도 될 법한 진한 다크서클 위로 수상한 이웃의 떡밥을 문 기자의 눈빛이 번뜩였다.
한편 편의점에 들러 욕실에서 쓸 물건들을 사온 나는 그것들을 화장실 선반에 채워넣었다.
"이제 좀 사람 사는곳 같네."
내친김에 샤워까지 해버려야지.
뜨거운 물을 틀고 옷을 벗었다.
뜨거운 물이 몸에 닿자 나른한 콧소리가 새어나왔다.
흐응~
아~ 좋다.
욕조도 있으니까 그냥 아예 뜨-끈하게 담가버려야겠다.
욕조에 물을 채우는동안 자연스레 거울을 바라보았다.
"다시 봐도 정말 미쳤다 미쳤어."
남성성을 잃은 우울감이고 뭐고 보면 볼수록 감탄 밖에 나오지 않는 육체미 였다.
여성스러움의 끝판왕을 달리는 굴곡진 라인과 그 사이로 돋보이는 날렵한 근육들.
약 빨은 선수들처럼 우락부락한 근육이 아니라 정말 탄력 넘치는 딱 보기좋은 근육이었다.
신이 심혈을 기울여 빚은 조각상의 몸매가 이러할까?
이 세상 모든 아름다움을 모아서 그려낸 얼굴이 이러할까?
가까이서 봐도 예쁘고 멀리서 봐도 예뻤다.
가만히 있으면 도도해 보이고 웃으면 천사같았다.
하다못해 힘껏 찡그려도 예뻐보였다.
전완근부터 이두근까지 팔뚝을 쭉 훑어 만져보니 피부결이 매끄럽다 못해 손에 착착 감겨들어왔다.
난생 처음 만져보는 쫀득한 살결이었다.
여자 몸에 대해 모르는게 아니거늘.
이건 뭐 정말 차원이 다른 무언가였다.
결국 고개를 아래로 내린 나는 금단의 선을 넘기 직전까지 다가갔다.
이 크기에 이 질감, 이 탄력, 완벽한 모양까지 그야말로 수밀도형의 근본이라고 할 수 있겠다.
화룡점정이라, 그 마무리 조차 그야말로 흠 잡을곳 없이 완벽하였다.
허리는 또 어찌나 잘록하고 복근은 매끈한지, 허리에서 시작되어 육덕진 둔부를 거쳐
근육으로 다져진 허벅지로 이어지는 라인은 그야말로 신선이 타고노는 미끄럼틀 같았다.
보기 모난곳 하나없이 일직선으로 쭉 뻗은 다리 라인 마저도 환상적이었다.
어느새 욕조에 물이 가득차고 입욕제를 풀어 넣고 욕조에 몸을 담궜다.
찰랑 찰랑- 촤아악-
몸이 들어가자 욕조에서 넘치는 물을 바라보며 생각에 빠졌다.
지금 좋아할때가 아니야 이 미친놈아!
생각과는 다르게 몸은 솔직했는지 이성을 찾으라는 뇌의 격렬한 거부반응에도 불구하고 뜨거운 심장이 시키는대로 손이 움직였다.
"하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