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화 〉6화 - 금태양은 참교육 해야지 (7/74)



〈 7화 〉6화 - 금태양은 참교육 해야지

쩌억-


뺨이 맞는소리 치고는 과하리만큼 묵직한 소리가 허공에 울려퍼졌다.

나름대로 힘 조절은 혼신의 힘을 다해 한거다.
진짜 풀스윙으로 갈겼으면 저놈 목뼈가  하고 부러졌을테니까.


허공에서 두어바퀴를 돌며 아크로바틱 쇼를 선사한 피어씽노랑머리-
줄여서 피노.
바닥에 쓰러진 피노는 몇차례 몸을 부르르 떨더니 정신을 잃었다.

설마 뒤진건 아니겠지......
정말 힘 조절 열심히 했는데.
약하게 때리려다가 정말 터치수준의 타격만 들어가면 화만 돋울것 같아서 어느정도 힘을 실으면서 몸이 망가지지 않게만 하려고 노력했단 말이다.

죽으면 안돼 피노! 제발 힘을  피노야. 나는 이대로 감옥에 쳐 박힐순 없어-


"어,. 어! 깡철아!"

녀석이 대장이었나? 놈들은 당황한듯 혼비백산하며 피노를 깨우려고 흔들며 안간힘을 썼다.
불행 중 다행이다.
피노가 꼬붕이었으면 저놈들이 '덤벼' 를 외치며 단체로 달려들수도 있지 않은가.

"동작 그만!"

음산하게 깔리는 중저음톤의 낮은 목소리.

"힉."


순식간에 눈 앞에서 펼쳐진 트리플악셀을 봤기 때문일까?
쓰러진 녀석을 제외하고도 7명이나 되는데도 녀석들은 머릿수를 믿고 내게 저항하기보단 흠칫 놀라며 겁을 집어먹는 모습을 보였다.


'피노가 졸라 쌘놈이었나?'
왠지 모르게 피노가 한방에 맛탱이가 간 덕분에 일이 쉬워진것 같았다.


"전부 이쪽 벽에 붙어."
"일렬로 벽에 등 딱 대!"
"뒤 돌아."
"벽 보고서! 바짝붙어!"

7명 모두 벽에 코를 바짝 붙이고 꼿꼿하게 섰다.


"이대로 머리통을 벽에다가 박아넣어줄까?"
"앙? 원하면 말해 당장이라도 인간 장식물로 만들어줄테니."

쾅-


사람이 벽을 치는거라곤 믿을수 없는 소리가 들렸다.
호기심을 참지 못한 한놈이 고개를 돌려 옆쪽을 바라보자 벽에 살짝 금이 가있었다.


후두둑-


벽을 살짝 뭉개며 손에 묻은 석회질이 떨어져나왔다.
손을 툭툭 털자 양아치들은 사시나무 떨듯 온몸을 떨어댔다.


"앞으로 힘 없는 애들 괴롭히지마라. 오늘부터 내가  동네 순찰돌꺼야 걸리면 그땐 오늘처럼 그냥 안넘어가.
자신있으면 니들 패거리를 더 데려오든 깡패를 부르든 알아서 해봐라 전부 개 박살내 버릴테니까."


이빨을 더 털은만큼 더 강렬한 임팩트의 무력시위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흡을 깊게 들이마셨다.


쾅-빠-직-


주먹이 벽을 깊게 파고들었다. 손을 빼내자 녀석들 전부가 동공지진을 일으키며 날 쳐다보고 있었다.

"분명히 경고했다. 앞으로  동네에 얼씬도 하지말고 나한테 복수할 생각은 더더욱 하지마라 죽기싫으면."

"대답."

"네...네엣!"

호두깎기 인형처럼 고개를 격하게 끄덕이며 내지르는,
기합이 잔뜩 들어간 우렁찬 대답을 들으며 피해학생을 데리고 골목을 벗어났다.


이걸로 괜찮을까?
너무 급발진 한것 같다.

아니야, 저놈들 나한테 찝적거렸잖아.
감히 내가 누군줄알고-

"친구야."

"네엣?"


"긴장풀고 형 나쁜사람 아니니까."

"형...이요?"

불렀을땐 잔뜩 쫄아있던 놈이 형이라니까 말대꾸 하는거 보소?
하긴 누가봐도 여자인 모습으로 형형 거리는것도 이상하긴 하지.

잠깐만...나 아까전에  입으로 누나 어쩌고 하지 않았나? 오우 쒯. 왜그랬지.

"아무튼, 너는 어쩌다 저런놈들이랑 엮었어? 위험하게시리 교복보니 같은 학굔가보네?"

"네...어쩌다보니 그렇게 됐어요...오늘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보다 너 괜찮은거냐? 오늘일 때문에 쟤들이  더 괴롭히는거 아니냐?"

빤히 바라보며 묻자 녀석은 습관처럼 얼굴을  숙이며 대답했다.


"아니에요, 저래보여도 손을 심하게 대거나 하진 않아요."

듣던 중 다행이다. 진짜 뉴스에 나올정도로 개막장인 미친놈들은 아니었나보다.
하긴 그런 인간말종들 이었으면 눈깔 뒤집혀서 나한테 덤벼들었겠지. 그런놈들은 뇌가 없는 새끼들이니까.

"그래, 나는 이제 가볼테니까. 어여 집에 들어가."

손을 흔들며 이별을 고하자 녀석이 급히 발걸음을 맞춰왔다.

"누, 누나!"


대답없이 쳐다보자 고개를 숙이며 잠시 고민하는듯 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시선은 여전히 바닥을 향하고 있었다.


"아까 이동네 순찰하신다고 하셨죠? 저  근방에서 또 괴롭힘 당할수도 있으니까. 연락처 좀 알려주세요."


아니, 이놈이 물에서 건져올렸더니 보따리 내놓으라고 하네?

"얌마, 그거는 그냥 허세부린거지. 내가 시간이 남아도냐? 양아치들 때문에 동네 순찰이나 돌게?"

녀석은 애처로울정도로 빌며 말했다.

"오랫동안 괴롭힘 당했었는데 살면서 오늘 처음으로 남에게 도움을 받았어요. 부탁드릴게요 누나 제발요..."


아, 이러면 또 우리 복이 생각이 나잖아. 이거 완전히 나가린데......

"이름이 뭐냐."

"진중기입니다!"


"번호 찍어라."


"누나 성함은...?"


"복이 누나라 불러라."

"네! 보기 누나."

"복, 이."

부드럽게 부르니 뭔가 기분이 더러워 한자씩 끊어 말하자 그제야 정확한 발음으로 불렀다.
괴롭힘 당하며 자란 친구라 그런지 이런 미인을 앞에 두고도 시종일관 시선을 아래로 깔아내렸다.
이쁘장한 못된년들이 괴롭혔을게 뻔하다.
아마 원래의 복이도 그런 경험들 때문에 민지의 마음을 모른체 한게 아닐까?

그러고보니 소꿉친구 이민지.
이 불쌍한 여인은 어찌해야 하나?


오랫동안 간직해온 첫사랑이 여자가 되어버렸다는걸 알면 인당수에 몸이라도 던지는거 아닌가 모르겠다.
정말 어떡하지? 기억을 잃었다고 얼버무린게 고작 오늘 있었던 일이다.


근데 뜬금없이 여자가 되어버렸다.
그것도 외모적으로 모든것을 가진 슈퍼 핫 다이나마이트 큐티 프리티 섹시 고져스걸로 말이다.

숨을까? 겉모습도 바뀌었으니 연락처 바꾸고 이사하고 그냥 잠수타버리면 영영 못찾을텐데.
아니아니, 그럴  없지 그건 너무 비정한 행동이잖아.



나는 어찌됐든 이 몸에서 빠져나가는게 목적이다.
내가 나가면 다시 남자가 되는지도 복이 녀석이 살아날지 아님 원하던대로 그대로 죽어버리는지 결과는 모르지만,
원주인의 의중을 모르는 상태에서 내 맘대로 유일하다고 해도 좋은 소중한 인연을 끊어 버릴 순 없다.
그렇다고 지금의 모습을 공개해 버릴수도 없으니 당분간 메시지로만 연락하며 최대한 만남을 피해보는 수밖에는.


걷다보니 어느덧 마트에 도착했다.
집에서 가장 가까웠던 홈마이나스 마트였다.

맞은편에 경쟁사인 디마트도 있었지만 그 길 하나 건너는것 조차 싫었다.
현재 꼬라지가 너무 흉하기에 얼른 옷을 사입고 정상인으로 변신하고 싶었다.

호옴~마이나스 마이나스~ 행복이 넘쳐~
홈~마이나스 마이나스 가격이 내려~

익숙하게 흘러나오는 마트의 광고곡에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긍정적인 의미의 미소는 아니었다.

모든게 똑같은데 나만 바뀐 세상이라니 참 지독하잖은가.

1층은 식품코너.

들러야 할 곳이지만 일단 옷 먼저.
터덜터덜 걸어가 무빙워크를 타고 2층으로 올라갔다.

애초에 이 동네 마트는 처음 와봐서 초행인데다가 여자옷이 어딨는지도 몰라서 여성복 코너를 찾아 2층 의류코너를 잠시동안 헤매였다.

얼마간 걸었을까, 전시된 여자옷이 눈에 띄었다.
쭈뼛거리며 가까이 다가가니 점원이 말을 붙였다.

"어서오세요.  찾으시는거 있으세요?"

"음, 네, 평상복이 좀 필요해서요."

"이쪽에 이런건 어떠세요?"


점원이 추천해주는 옷은 평상복이라기엔 너무 여성스러웠다.


"후드티에 청바지를 사려구요."

"네, 그럼 이쪽으로 오세요오."


생글생글 웃는 점원은 왠지 기분이 좋아보였다.
여자들도 예쁜 여자를 보면 좋아한다는걸 알게된건 나중의 일이었다.

같은 디자인 다른 색상의 후드티 세개와 청바지 세개를 샀다.
안에 받쳐 입을 무지티도 여섯개 샀다.
이건 집에서도 입어야 하니 조금 더 넉넉하게 샀다.


돈이라도 있어서 다행이었다.
이 상황에 돈까지 없었으면 진짜 지금보다 훨씬 더 답이 없을게 분명했다.

그러고보니 복이는 남은 재산을 기부하길 원했지.
어차피  싸들고 죽을것도 아니고 여기서 자리 깔고 영영 살것도 아니다.
너무 많은 돈은 필요도 없으니 기부도 천천히 알아보고 해야겠다.

"저기, 속옷 매장은 어디인가요?"


안내받은 속옷매장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젊은 직원이 있었는데 역시나 근처를 기웃거리자 인사를 해왔다.
아까 옷가게에서 쭈뼛거린게 생각나서 당당하게 들어가려고 했는데 마음처럼 잘 안됐다.

"속옷 사려고 하는데요."


"네에- 따로 찾는 제품 있으세요?"

"아뇨, 그냥 디자인 무난하고 일상생활 할때 입는걸로 편한거 추천해주세요."


"그럼 이 제품 어떠세요? 위아래 세트로 나온 상품이고 와이어가...모아주면서 잡아주고..."

이런 저런 설명을 듣는둥 마는둥 하며 그냥 그걸로 몇세트 달라고 했다.

"손님, 죄송하지만 사이즈가 어떻게 되세요?"

문득 깨달았다. 사이즈를 모른다는걸.

"저 어릴적부터 투병생활이 길었어서  사이즈 같은걸 잘 몰라요, 속옷도 오늘 처음사는거에요."

어째 거짓말만 자꾸 늘어나는것 같다. 이제는 표정도 안바뀌고 거짓말을 당당하게 치고 있었다.
점원은 짐짓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눈썹이 아래로 축 쳐졌다.


"그러셨구나, 지금이라도 이렇게 건강해지셔서 정말 다행이에요. 제가 사이즈 측정 도와드릴게요."

이게 여자의 공감능력이라는 건가? 친절히 응대해야할 손님이긴 하다만 생판 처음보는 사람에게 깊은 동정심을 느끼고 위로의 말까지 전하다니.
그냥 이 사람이 마음씨가 고운건가?


탈의실로 들어가 사이즈 측정을 하는데 줄자를 든 채로 나를 포옹하듯이 안아오는 여직원의 몸짓에 상당히 곤혹을 치뤘었다.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예쁘장한 여직원이 안아주는데 어느 남자가 싫어하겠나.


교환 환불은 2주내에 가능하며 택을 제거하면 안된다는 뻔하디 뻔한 안내를 들으며 계산을 마쳤다.

쓰리사이즈 36-24-36.
바스트사이즈 70 D.
그야말로 신이 내린 몸매였다.

눈대중으로 봤을때도 진즉에 알아보긴 했지만 실측정을 해보니 이건 뭐 상상 이상이었다.
이 얼굴에 이 몸매라니.
아~ 인방으로 인생 날먹 마렵다.

1층으로 내려가 카트에 의류 쇼핑백들을 싣고 식료품 장을 보러 출발했다.

자취경력이 길지만 딱히 거창하게 음식을 해먹는 타입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요리에 관심이 없는것도 아니라 하면 또 곧 잘 했다.
손만 대면 다 태워먹거나 레시피를 보고 해도 못 먹을 맛이 난다거나 그런건 결코 아니다.

하지만 굳이 레토르트를 사먹는 이유는 오로지 효용성의 문제 때문이었다.
혼자 살면서 음식을 해먹기도 나쁘고,  시간도 부족한데 장을 보고 음식을 하는데 소비할 시간이 아까웠을 뿐이다.

늘 배달만 시켜먹을순 없으니 주전부리할 과자와 음료수들, 한동안 먹을 레토르트 음식들을 카트에 차곡차곡 담아 넣었다.
요즘엔 간편 1인식이 꽤 잘나와서 나름대로 먹을만 하다.
가격도 비싼제품도 있지만 나름 합리적인 제품도 많고.

아 그러고보니 돈 아낄 필요없지.
평소에 가격대가 창렬이라 못먹었던 음식 위주로 다시 담았다.
괜스레 기분이 좋아졌다.

"이게 바로 소확행인가?"


아직도 살게 많았다. 마트는  좋은곳이다. 없는게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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