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화 〉5화 - 각성몽
이제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흑구가 포탈로 바뀌면 조사팀이 진입하고 영영 되돌아오지 못할것이다.
그렇다면 푸른색 구체 일명 '포탈'로 들어간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소설에서 그 사람들에 이야기에 대해서 다뤄주진 않지만 전원이 사망했을 거라는건 확실하다.
포탈로 들어가면 다른 공간으로 전이되게 되는데 그곳이 정확히 어디인지는 아무도 밝혀내지 못한다.
그저 교수니 전문가니 하는자들의 이론과 가설에 입각한 추측들만이 가득할 뿐이다.
포탈은 직경 2미터즈음의 구체로 딱히 입구의 방향이 정해져 있는게 아니다.
허공에 떠있는 구체이니만큼 어느 방면으로 접촉하든 진입이 가능하다.
접촉하는 순간 강한 인력에 의해 빨아들여지기에 고개를 넣어본다거나 신체 일부를 넣어볼 수 없고,
물체를 쥐고 간접 접촉을 시도하면 그 물체에서 손을 떼지 못하고 같이 빨려들어간다.
빨려들어가는 속도는 순간 형체가 일그러질 정도의 속도로 절단을 포함한 일체의 방해공작이 불가능하다.
튼튼한 와이어로 묶고 접촉을 시도한적도 있지만 허리가 두토막날지도 모른단 예상과는 다르게 몸에 감긴채 포탈에 닿은 와이어줄이 일정량은 따라가고 지지대와 엮인 줄은 끊겼다.
포탈 너머의 세상은 주인공이 진입하고 나서야 서술이 되는데 미지의 세상인 그곳에 있는 생명체들은 차마 떠올리기가 싫다.
어찌됐든 내가 어떻게 특별함을 얻었느냐?
그 해답은 아까 꿈꾸었던 백색의 공간에 있다.
'각성몽'
나중엔 편하게 하얀방이라고 불리는 그곳은 잠을 잘때면 늘 나타나는 세상이다.
후에 포탈 입장 여부를 두고 조사를 통해서 밝혀지는 사실이지만 이 꿈을 꾸게되면 일종의 각성을 하게되고 포탈에 들어갈 수 있게된다.
각성몽을 꾼 사람들중에서도 특별한 존재들이 있는데 그들은 첫번째 각성몽을 꿀때 엄청난 고통에 시달린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사망자 또한 심심치않게 나오는데 하얀방에서의 고통을 이겨내지 못하고 끝내 정신이 붕괴되며 죽어버리는 것이다.
정확히는 뇌사 상태에 빠져 식물인간이 된다.
그리고 나는 아까전에 분명히 그 과정을 견뎌냈다.
단순히 끔찍한 악몽을 꿨다고 생각했었는데 각성의 과정이었던 것이다.
일어났을때 몸이 가벼웠던 이유도 설명이된다.
고통을 동반한 하얀방을 이겨낸 사람의 신체는 일종의 재구성을 겪으며 평범한 인간을 초월하는 신체능력을 얻기 때문이다.
물론 맨몸으로 총탄을 튕겨내거나 음속으로 움직인다거나 그런정도는 아니다.
그저 더 강하고 튼튼한 뼈와 관절, 강력한 근육과 질긴 피부 등 신체를 이루는 근간들이 크게 강화되는 것으로 말 그대로 인간종을 초월하는 초인이 된다.
잔병치레도 없으며 각종 전염병과 바이러스 따위는 자체 면역으로 튕겨내며 반응속도와 인지속도 또한 대단한 수준에 이르른다.
에너지 효율 또한 인간의 그것을 아득히 초월하기에 먹고 마시는것을 절제하고도 꽤 오랫동안 버틸 수 있다.
그야말로 전천후 인간병기 그 자체가 되버리는 셈이다.
또한 적대적인 포탈 너머의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위기상황이 오면 초능력을 각성하는데 이게 가장 핵심이다.
그리 다양한 능력은 없지만 포탈 너머의 인류에게 필요한 능력들이 발현된걸로 추정된다.
아직 내 초능력을 알순 없지만 뭐가 됐든 생기면 다 쓸모가 있기 때문에 큰 걱정은 없다.
주먹에 힘을 불끈 쥐며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허공에 주먹을 내질러 보았다.
왼발을 반보 앞으로 가며 오른발로 바닥을 밀며 생기는 마찰을 그대로 다리를 타고 허리로 올린다.
허리를 뒤틀며 꽈배기처럼 꼬이는 등근육을 타고 올라가 모든 운동에너지를 어깨로 안착하며 그대로 팔을 쭉 뻗는다.
팡-
깔끔한 오른손 스트레이트.
터질듯이 쥔 주먹엔 힘이 넘쳐흐르고 아까 들이쉰 호흡은 아직도 내뱉지 않았다.
아마 이 상태로 호흡없이도 10분은 버틸수 있을것이다.
내 폐는 더이상 평범한 인간의 그것이 아니니까.
프리다이빙 선수들은 평범한 인간임에도 훈련을 통해 5분가량을 물속에서 버틸 수 있다.
나 또한 이 폐에 적응을 하고 초인적인 폐호흡으로 몸에 산소를 축적하는 법에 익숙해지면,
격렬한 운동을 동반하면서도 20분정도는 무호흡으로 버틸수 있을거다.
새삼 괴물이 된것 같았지만 진짜 괴물들은 이런 우리를 손쉽게 찢어버린다.
인간의 몸에는 제대로된 흉기가 없다. 기껏해야 날카롭게 곧추 세운 손톱? 치아?
접근하기전에 먼저 맞아 죽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하지만 놈들의 손톱은 맹수의 그것보다도 더 날카롭고 가죽과 껍질은 질기고 단단하다.
그 생명력 또한 징그러울 정도로 질겨 몸에 바람 구멍 하나만 뚫려도 무력화 되는 인간과 다르게 멀쩡한 부분보다 그렇지 못한 부분이 많아야 그 한 많은 삶이 종식되며,
놈들도 뇌는 중요한지 머리통을 날려버리면 한번에 무력화가 가능하긴 하다만 당연스럽게도 약점은 최우선 순위로 철저하게 보호한다.
"그래그래, 포탈 공략 까짓거! 내가 해주마."
생각을 정리한 나는 마음을 굳게 먹었다.
작가놈아 니놈이 못낸 결말 내가 내줄테니 모든게 끝나면 꼭 원래의 내 몸으로 돌려다오.
마이 브라더.
헤어진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보고싶네?
잠시만 안녕.
그리 길진 않을거야 잊지말고 나를 꼭 기다려줘.
그때 익숙한 욕구가 찾아왔다.
그러고보니 오늘 화장실을 한번도 이용하지 않았다.
화장실에 들어가 변기를 보니 한숨과 욕이 절로 나왔다.
"하아 개X발 진짜, 진짜로? 진짜?"
평생을 스탠드 업! 이었거늘......
하긴 요즘엔 남자들도 튀는것 때문에 앉아서들 소변 본댔어 하핫!
애써 웃음지으며 변기에 앉았다.
쪼르륵-
시원한 배뇨감과 함께 밀려오는 수치심이 얼굴을 붉게 달아올렸다.
통한의 눈물 한줄기가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위아래로 울어버렸다.
내친김에 샤워를 하려고 보니 화장실에 수건도 없고 아무것도 없었다.
"어휴 X발. 진짜 도대체 살림살이를 왜 다 내다버린거야 정말."
차후에 이 집에 찾아올 누군가를 편하게 해주려 했던것 같은데 정작 찾아온 그 누군가는 덕분에 엄청나게 불편해졌다.
"이대로 나갈순 없는데......"
이 복장으로 외출은 절대 불가능.
방에 옷장을 열어보니 다행히 봄가을용 외투가 하나 있었다.
원래 허리까지 내려오는 옷인것 같은데 바뀐 몸에 비하면 사이즈가 큰지라 엉덩이를 살짝 가려서 더욱 좋았다.
지갑을 챙겨들고 밖으로 나갔다.
신발도 없어서 하나 있던 실내용 슬리퍼를 신고 나왔다.
염병~
바깥 공기를 쐬니 새삼스럽게 헛웃음이 새어나왔다.
내가 처한 상황이 너무나 엿 같았다.
이런 빅엿을 먹다니.
그냥 시키는대로 할껄, 괜히 개기다가 여자의 몸이 되니까 너무 서러웠다.
"담배나 피자~"
편의점에 들어가 익숙하게 담배를 주문하니 알바가 홀린듯한 얼굴로 물었다.
"신분증 좀 보여주세요."
지갑에서 신분증을 꺼내어 보여줬다.
놈의 시선은 내 손이 아닌 얼굴에 고정되어 있었다.
외투로 몸을 꽁꽁싸매서 몸매를 훑어보지 않은게 천만 다행이었다.
그랬으면 참지 못하고 아구창을 돌려버렸을지도 모른다.
점점 다가오는 녀석의 손이 카드를 든 내 손에 닿을것 같아 한걸음 물러나며 카드를 카운터에 탁! 소리가 나게 내려놨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듯 큼큼 헛기침을 하며 신분증을 집어들었다.
"본인 맞으세요?"
"네."
"저기 손님......이러시면 곤란해요 남자 신분증을 가지고와서 본인이라뇨."
아 맞다. 이제 고작 넘어온지 하루도 안된 참이다.
어차피 내 몸이 아닌지라 어색하기에 신분증에서 문제가 생길거란 생각을 잠시 망각했다.
민망한 표정으로 신분증을 받아들고 바깥으로 나왔다.
그래도 방법이 있지.
어딜가나 만사태평에 근무태만인 친구들이 있는 법이거든.
인근 편의점을 세곳째 돌때쯤 내 얼굴에 정신이 팔려 신분증을 달라는 말도 하지않고 담배를 내미는 알바를 발견했다.
담배를 전부 지 손에 쥐고 주겠다는건지 뭔지 담배 전체를 손으로 감싼채로 내밀기에 카운터에 내려달라고 요구했다.
속보이는놈. 어떻게 손 한번 닿아볼려고! 어림도 없지! 디펜스!
왜저럴까 싶었지만, 음. 혹시 나였어도 저랬을려나? 잘 모르겠다.
이 정도로 예쁜 여자는 실제로 본적이 없기 때문에 이성을 잃은 놈들의 심정이 이해가 가지 않는건 아니었다.
"이제 옷사러 가야하는데."
시계를보니 저녁 여덟시.
옷가게가 어디있는지도 모르겠고 검색해봤자 여자옷도 잘 모르니 일단 그냥 대형마트로 가야겠다.
거기가면 왠만한거 다 있을테니까.
일단 담배부터 한대 피자.
어디 담배필 곳이 없나 흡연실을 찾던중 골목길에 풍겨나오는 담배연기와 몇명의 사람들이 보였다.
저기가 이 동네 사람들 담배피는덴가? 인천 부평에 가면 상가 뒷길에 모르는 사람들 수십명이 모여 담배를 피고있는 진 풍경을 볼수 있는데.
그곳의 축소판 같았다.
저벅 저벅-
그곳에 있던 불량청소년들은 커다란 자켓을 입은채 실내화를 신고 위풍당당하게 걸어오는 여자를 보았다.
그 여자는 이곳을 힐끗 보더니 담배를 하나 꺼내들어서 물었다.
'교복 입고 밖에서 대놓고 담배를 피네 에라이 이 쉑기들'
모르는 핏덩이들에게 훈계질을 하는 성격은 아니었으므로 그냥 내 볼일만 보고 가려고했다.
"컥."
"콜록, 콜록 콜록 콜록."
"케헤엑~."
오늘 하루 참 힘들었기에 한입 쭈욱 빨았는데 담배 한대가 필터까지 그냥 쭉 빨려들어갔다.
강화된 폐활량을 생각치 않고 힘껏 빨아들인 탓이었다.
더군다나 이 몸은 담배에 길들여지지 않은 몸뚱이였다.
격렬한 반응이 찾아오자 담배를 피던 비행청소년들이 말을 붙여왔다.
"뭐야 누나 담배 처음 펴?"
킥킥거리며 다가온 녀석은 머리를 노랗게 염색하고 눈썹에 피어씽이 있는 교복남이었다.
저 대가리로 학교는 어떻게 다니는거지? 두발 자유화인가? 피어씽도 된다고?
허 참 자유분방한 학교생활이구만.
"아이고, 강제로 담배 끊게 생겼네."
"야, 니들 담배 필요하지? 이거 펴라."
"워워, 고마워라 공짜로 받긴 좀 섭한데?"
"아, 돈주게? 그럼 오천원 줘. 니들 담배 구하기도 힘들테니 이정도면 거저다."
"크큭~ 아, 이 누나 되게 재밌는 누나네 키킥."
이 어린노무새끼는 뭐가 그렇게 웃긴지 약이라도 빨은것 마냥 끽끽거리며 괴상한 웃음소리로 쪼갰다.
뭐라고 한마디 쏘아 붙이려던 그때 일련의 무리가 골목으로 들어왔다.
새로운 등장인물들은 총 네명이었는데 앞선놈들과 행색이 비슷한 세명은 일행으로 보이고 뒤에 있는 왜소한 녀석은 딱봐도 끌려온 거였다.
척척 큰 보폭으로 다가온 놈들은 어느새 여러명이서 내 도주로를 막는 형상이 되었고 끌려온 학생은 내 옆에 세워졌다.
"야, 오늘 돈 못 가져오면 어떡한다고 했냐?"
짝-
별안간 날아온 손바닥이 학생의 뺨을 후려쳤다.
"흑, 잘못했어."
"얼굴 한번 만져준거 가지고 왜이래 친구끼리?"
오, 있는 힘껏 귀빵망이를 후려쳐놓고 만져준거다?
이새끼들 단순하게 일탈을 하는 불량학생이 아니라 개 양아치 새끼들이었네?
분노가 치밀었다.
음? 나는 살면서 이런일을 현장에서 목격한적이 없긴 하지만서도...
실제로 미성년자 폭행사건의 기사를 보면 화가 나긴 했었지만서도......
지금 드는 분노는 좀 과한감이 있었다.
눈앞의 기세등등한 양아치 녀석의 모가지를 비틀어버리고 싶을 지경 이었으니까.
이 격렬한 감정은 도대체?
아 그렇구나. 복이. 너구나. 너 괴롭힘 당했었지.
그래 형이 대신 혼내줄게.
"누나가 혼내줄게."
피해 학생을 등 뒤로 보내며
가볍게 휘두른 손바닥이 건들거리는 녀석의 얼굴을 한번 만져주고 갔다.
결과는 전혀 가볍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