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화 〉3화 - 그 여자의 사정
"야!"
소리치며 거칠게 밀고 들어오는 몸짓에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치며 물러났다.
쾅-삐리릭-
문이 닫히고 잠기는동안 그녀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그저 날 노려보기만 하였다.
나 또한 그리하였다.
귀염상이라고 할수 있는 얼굴이었다.
좀 더 상세히 설명하자면 동그란눈, 길쭉하게 삐져나온 속눈썹 다듬지 않은 눈썹과 그리 높지않는 콧대와 동그란 콧망울 그리고 앙다문 입술까지.
어깨에 닿을듯 말듯한 웨이브 진 중단발에 동글동글한 얼굴형과 합쳐놓으니 흡사 다람쥐를 닮은것 같았다.
"뭘 그렇게 뚫어지게봐? 사람 무안하게."
민망한지 헛기침을 하며 먼저 시선을 피한것은 그녀쪽 이었다.
너무 대놓고 감상을 했나? 사실 소설속에 나오는 인물치고는 너무 평범한 외모였다.
그래서 더 뚫어지게 관찰한 감이 없지않아 있었다.
평범한 나와 그녀와 외모만큼이나 지금 내 주변을 둘러싼 이 세상이, 정말로 현실이라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언제까지 현관에 세워둘꺼야?"
그녀는 퉁명스럽게 내뱉으면서도 연신 내 상태를 흘깃거리며 살폈다.
아무래도 이전의 내가 걱정을 많이 끼쳤나보다.
몸 주인이 눈치가 없었던건지 내가 도끼병에 걸린건지 모르겠지만, 아무리 소꿉친구라지만 그래도 이성친군데 연락 좀 안된다고 이렇게 한달음에 찾아오나?
하긴 고작 몇달 전에 충격적인 사건으로 부모를 여의긴 했으니,
어릴적부터 심성이 유달리 착한 그녀였으니 만큼 이렇게 찾아오는것이 과한반응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괜히 넘겨짚지 말고 일단은 이 상황부터 모면하는게 우선이다.
"어, 그래 미안. 들어와."
자연스럽게 그녀를 거실 쇼파에 앉혔다.
뉴스채널을 틀어둔 티비는 여전히 홀로 떠들고 있었다.
"너 뉴스같은거 잘 안보잖아?"
그랬나보다. 뭐라고 변명하지?
"전대미문의 신기한 현상이 일어났다길래 궁금해서 보고있었어."
전국을 강타한 미확인 검은 구체에 대한 얘기로 핑계를 댔다. 이건 아무리 뉴스를 안보는 사람이어도 한번즈음은 관심가져 볼만한 일이 아닌가.
"그러게 저게 도대체 무슨일일까?"
그녀 또한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리며 내 의견에 동조해주었다.
그러면서도 연신 나와 집을 번갈아가며 흘깃거리는게 무언가 알아 챌까 싶어 불안했다.
띵동-
"배달이요~."
딱 좋은 타이밍에 구세주가 왔다.
"감사합니다 맛있게 드세요~."
음식을 받아들고 주방의 식탁으로 향하자 그녀가 번개같이 따라붙었다.
"떡볶이 시켰어? 나 밥 안먹은건 또 어떻게 알고."
능글맞은 웃음을 흘리며 식탁위에 올린 봉지를 해체하는 그녀는 기분이 좋아보였다.
'저런 성격이었나? 괜히 긴장했네.'
걱정을 한 가득 안고 와서는 이리저리 날카롭게 둘러보길래 꼬투리라도 잡힐까 긴장했더니
저렇게 순진한 모습을 보니 걱정 안해도 될것 같았다.
순식간에 밥상이 차려지고 잘먹겠습니다~ 라는 그녀의 인사소리와 함께 나도 나무젓가락을 들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매운 떡볶이를 쉴 새 없이 입으로 가져갔다.
맛 중에 가장 무섭다는 '알고있는 그 맛' 이었다.
세상은 변했어도 너는 그대로구나. 앞으로도 그 자리에 있어다오.
그녀 또한 떡볶이를 좋아하는지 내 템포에 크게 밀리지 않는 속도로 떡볶이를 해치웠다.
"떡볶이 맛있어?"
"응, 맛있어."
별 생각없이 묻는 말에 대답을 하며 배를 채워가는데 집중하고 있을 무렵,
양이 다 찼는지 그녀가 먼저 젓가락을 내려놓았고 내가 먹는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기 시작했다.
'다 먹었으면 일어나지 왜 또 이렇게 뚫어져라 쳐다보는거야 부담스럽게?'
'이보세요, 남 밥 먹는거 그렇게 쳐다보면 상대방이 체할수도 있다고요.'
표정으로 티나지 않게 속으로만 거친 불만을 표출하며 남은 음식을 마저 꾸역꾸역 처리했다.
내가 멀쩡한것도 확인했고 밥도 먹었으니 이제 그만 가라고 할 참이었다.
"복아."
나지막히 울리는 목소리에 고개를 번뜩 들어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
하이텐션이던 아까와는 명백히 다른 낮게 깔리는 저음이었다.
분명히 맵고 뜨거운 음식을 먹으며 열이 났음에도 나는 왠지 소름이 돋는것을 느꼈다.
"너 매운거 못 먹잖아."
명백히 취조하는듯한 말투.
"아, 그냥 갑자기 먹고싶어서- 잘 못먹지만 오늘 한번 도전해본거지!"
누가봐도 당황한게 역력해보이는 말투와 표정으로 변명을 해보았으나 그녀는 어떠한 표정 변화나 억양의 차이가 없이 예의 그 목소리와 울림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복아."
그 부름에 나는 어떻게든 놀리려던 입을 닫았고 동시에 표정도 굳어갔다.
"너 떡볶이도 안먹잖아?"
"말투도 생전 처음들어보는 말투네."
"행동거지도 평소같지 않고 어색하고."
"안하던 행동들과 처음보는 말투와 표정......뭔가 이상해."
그녀의 입에서 줄줄이 나열되는 사실들에 등골에서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곧이어 펑-하고 터질 폭탄에 대비하여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도대체 무슨일이야? 아니, 너, 누구야? 내가 아는 복이가 맞아?"
정확하게 내 정체를 의심하는 발언.
어찌보면 공포스러울수도 있는 상황속에서도 그녀는 자기의 의구심을 해결하기 위해 당당하게 물음을 던졌다.
그 말을 듣고도 아무반응이 없는 나를 보며 드러나는 그녀의 표정은 두려움 보다는 분노에 가까운 무언가였다.
금방이라도 터질듯이 붉어진 얼굴.
움찔거리며 어찌할 바를 모르는 방황하는 얼굴 근육들.
지금 그녀의 머릿속은 엄청난 혼란으로 어지러울 것이다.
"따라와."
나는 긴말하지 않고 그녀를 방으로 불러들였다.
최대한 침착을 유지하며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어지러울 정도로 머리를 핑핑 굴렸다.
한걸음 한걸음이 천근같이 무거웠다.
내가 너무 안일했다.
오랜 친구와 맞닥뜨리면 당연히 달라진 점을 눈치 챌테고 제대로된 사고를 가진 인간이라면,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라도 수상한점을 눈치 챌게 뻔한것을. 왜 아무일 없이 유야무야 넘길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여긴 엄연한 하나의 세상이자 현실이다.
어깨가 허전해서 달아놓은것 같은 머리를 가진 사람만 잔뜩 나오는 그런 곳이 아니란 말이다.
방문을 열며 부르자 그녀는 이제서야 이 공간이 두 사람만이 있는 공간이며 지금 상황이 꽤나 위험할수도 있다는것을 인지한듯,
흠칫 긴장하였으나 이내 무언가 결심한듯 숨을 크게 내쉬며 방으로 들어왔다.
방으로 들어와 두리번 거리는 그녀의 눈에 처음 들어온건 뚜껑이 열린채로 널부러진 약통이었다.
"이게 무슨......"
당황한듯 약통을 집어올리며 말끝을 흐리는 그녀에게 말 없이 쪽지를 내밀었다.
그 내용을 읽으며 그녀는 풍이라도 맞은듯 어깨를 파르르 떨었다.
그녀의 옆모습은 상당히 위태로워 보였다.
"약을 먹고 잤는데, 깨어난 후로 기억이 깡그리 날아갔어."
이게 내가 머리 짜내가며 생각한 알리바이였다.
밥을 다 먹고 추궁을 당하기 시작해서 이 방까지 걸어오는 길지 않은 시간동안 최선을 다해낸 결과물 이었다.
상대방이 납득하든 하지않든 나에겐 더이상 빠져나갈 구멍이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사실은 다른사람이라고 말할 순 없지 않는가.
그런 괴이한 일을 알게된다면 경찰에 신고를하든 언론에 제보를 하든 정신병원에 쳐넣으려고 하든 일이 꼬일게 분명했다.
"너어......."
뭐라 말하려했으나 고개를 털며 입을 굳게 다무는 그녀는 눈물이 가득 고인 투명한 눈으로 나와 눈을 맞추었다.
그 눈빛속엔 여러가지 감정이 담겨있었다. 의심, 실망, 분노, 안도 여러가지 감정이 뒤섞인 그 눈망울을 바라보며 나는 일말의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수 없었다.
"일단은 믿어줄게. 그리고 다시는 이런짓 하지마."
참았던 감정이 쏟아지는지 이내 그녀의 볼을 타고 한줄기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미안해. 그리고 믿어줘서 고마워 나도 지금 너무 혼란스러워."
그녀는 이어지는 내 말에 굳게 쌓아두었던 제방이 무너지기라도 한듯 그 자리에 무너져 앉으며 오열하였다.
그 애처로운 모습을 지켜보고만 있을 순 없었던 나는 한쪽 무릎을 꿇고 그녀의 어깨를 안아주었다.
잠시간의 토닥거림이 이어지자 그녀는 눈물을 멈추고 감정을 추슬렀다.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거야?"
"응 전혀, 내 이름도 기억이 안나서 신분증 보고 겨우 알았어."
그녀는 알겠다는 듯 미약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긴 한숨을 내쉬더니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이만 가 볼게 무슨 일 생기면 꼭 연락줘야해?"
"그래 들어가 걱정 말고."
병원에 가서 정밀검사를 받겠다는 약속을 수차례나 하고서야 그녀는 문 밖을 나섰다.
속은건지 속아준건지는 몰라도 멀쩡한 사람에게 거짓말을 치고 그 사람의 순수한 감정을 가지고 놀았다는 생각에 가슴 한켠이 납덩이라도 올린듯 무거워졌다.
그녀가 내게 가지는 감정은 결코 평범한 친구사이의 감정이 아니었다.
아무리 눈치가 없어도 모를수가 없었다.
분명 오랫동안 간직해온 그런 소중한 마음이 느껴졌다.
이 녀석은 마음의 상처가 깊어 타인의 감정을 눈치챌 여력이 없었던건지, 아니면 알고도 모른척 했던건지 알수가 없다.
일기에 있는 그녀에 대한 이야기는 그저 자신을 유일하게 신경써줬다는 말밖에는 없었으니까.
"이게 도대체 뭐하는 짓이냐."
낯선곳에서 눈뜬지 고작 몇시간이 흘렀을 뿐이지만 그에 비해 정신적인 피로감이 상당했다.
상황에 시달리고 사연에 시달리고 사람에 시달리고.
낮잠이나 좀 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아는가 자고 일어나면 원래대로 돌아가있을지.
정신적으로 지쳐서 그런지 침대에 누우니 해가 중천에 떠있음에도 이내 수마가 몰려왔다.
"어? 뭐지? 자각몽인가?"
정신이 들은 그곳은 온통 하얀색 일색의 공간이었다.
좁은 방 같기도 했고 무한히 펼쳐진 공간 같기도 했다.
분명 내 다리가 바닥을 딛고 있으나 바닥 아래로 펼쳐진 공간이 텅 비어있어 공중에 떠있는 것만 같았다.
어디를 둘러봐도 거리감각이 무뎌지는 백색의 공간이었다.
걸어도 보고 뛰어도 보았으나 가까워지거나 멀어지는 느낌조차 들지 않아서 이질감이 굉장했다.
그리고 꿈속인것 같은데 어찌 이리도 자각이 명확하고 숨은 왜 차오른단 말인가.
더 달려보고 싶었지만 턱 끝까지 차오른 숨결때문에 그러지도 못하였다.
잠시 앉아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는데 불현듯 온몸이 불타는 듯한 통증이 덮쳐왔다.
"끄아아악!"
끔찍한 고통에 나는 온몸을 구워지는 벌레처럼 뒤틀며 괴성을 질러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