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화 〉2화 - 사라진 나
가장 먼저 전화한 번호는 원래의 내 번호였다.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
연월일이 모두 원래 몸으로 잠들기전과 같고 장소 또한 한국이었기에 일말의 기대를 했었으나 역시나 쉽게 가지는 않았다.
이후 전화를 걸어본 가족과 친구들은 내 이름을 대자 그게 누구냐고 모른다는 얘기를 했다. 나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검색을 위해 포털사이트에 들어가면서도 기묘한 감정에 휩싸였다.
모든것이 내가 알던 세상과 같았기 때문이다. 올라오는 뉴스 기사들과 군데군데 보이는 익숙한 광고창들, 종종 둘러보던 커뮤니티들의 분위기 조차도 판박이였다.
혹시나 싶어 역사를 검색해보니 그것도 같았고 근현대사부터 가장 최근에 있었던 일까지 모든게 동일했다.
얼마전 이직을 고민하던 회사의 구인글까지도 그대로였다.
그저 이 세상에서 나라는 사람이 사라지고, 나와 직접적으로 알고 있던 사람들에게서 나에 대한 기억이 사라져 버렸을 뿐이다.
사라졌다고 하긴 애매하다. 대체되었다 라고 표현하는게 더 정확할 것이다. 찾아본 친구의 SNS에 원래 내가 있어야 할 단체사진에 다른 얼굴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니던 회사를 검색해보니 사장도 모든것이 똑같았다.
아마도 이전의 날 기억하냐고 한다면 모른다고 하겠지.
도대체 이 세상은 무엇이며 원래의 나는 어디로 간것일까? 왜 나에게 이런일이 일어난 걸까?
이제 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걸까?
무수히 떠오르는 고민들에 미간이 있는대로 구겨졌다.
통장을 열어보니 상당히 많은 금액이 들어있었다.
보험사의 이름으로 들어온 거액들과 여타 입금내역을 보니 부모의 사고에 대한 보상금과 보험금 등 이런 저런 내용의 금액들 이었다.
또한 가지고 있던 모든 현금자산을 이 통장으로 모아 놓은듯 이체내역도 눈에 띄었다.
총액이 20억이 조금 넘는 금액이었다.
"보아하니 집도 자가인것 같은데 어린노무 자슥이 죽긴 왜 죽어! 어차피 방구석에만 있을 거면 이 돈이면 그냥 평생 놀고 먹어도 되겠구만......"
그럭저럭 아둥바둥 살아온 나였기에 그랬을까? 괜히 이미 떠나간 녀석에게 한마디 해주었다.
특별할것 없는 평범한 인생. 한마디로 요약하기 전혀 부담감이 없는 그저 그런 나날들.
그게 원래의 내 삶이었다.
무난한 성격, 평범한 대학, 남들 다니는 보통의 직장, 보편적인 취미활동, 두루뭉술한 가치관까지.
특출나게 노력하지도 않았고 남들보다 딱히 잘난점도 없었다.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살아왔고 흘러가는대로 살것이었다.
그러다보니 어느덧 서른.
자취방에서 출퇴근을 반복하며 집과 회사만을 반복하는 지루한 삶 속에서 잠들기 전 읽다가 자는 소설은 나름의 탈출구였다.
"그래 소설!"
그날 밤 잠들기전 나는 평소와 다른 행동을 유일하게 한가지 했다.
작가에게 장문의 쪽지를 보낸것!
손 끝에 불이라도 붙은듯 '던전 패스파인더'를 검색했다.
무언가 실마리를 잡았다고 생각했으나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어째서?"
다른 모든게 그대로인데 왜 이 소설만 없지?
위화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이건 무언가 이상했다.
이 소설이 지금 내가 겪는 이 괴상한 사건과 연관이 있는게 분명했다.
홀린듯 거실로 나가 텔레비전을 틀었다.
뉴스채널엔 긴급속보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긴급 속봅니다. 강원도 지역에 갑작스런 지진과 폭풍우가......해당 지역 인근 주민분들 께서는 긴급상황 대피요령에......현재 기상 이상현상은 전문가들이 파악중이며......지진의 강도는 약하니 건물안에서......"
아나운서와 파견기자가 주고받는 긴급 속보를 들으며 몇가지 키워드에 선명하게 귀에 박혔다.
"강원도, 지진, 폭풍우......강원도, 지진, 폭풍우......"
미친사람처럼 같은말을 되뇌이고 또 되뇌었다.
"아니야. 아닐꺼야. 안돼, 이럴 순 없어."
아직 확실하지 않다.
이상하긴 하지만 강원도에 자연재해가 올 수도 있는거잖아?
머리로는 끊임없이 부정하지만 이미 마음으로 반즈음은 확신하고 있었다.
뉴스채널을 고정해두고 하염없이 화면만 바라보던 나는 결국 화면 속에 기묘한 느낌을 주며 허공에 둥둥 떠 있는 검은구체가 등장하자 완전히 인정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내가 '던전 패스파인더'의 세상 속으로 들어와 버렸다는것을.
던전 패스파인더.
줄여서 던패의 세상은 정상적인 세상이 아니다.
애초에 저런 정체불명의 구슬이 나타나는것 부터 이상하잖아? 작가에게 결말 써내라고 욕 좀 했다고 이런 꼴을 당하다니.
내 꼴이 정말 너무 우스웠다.
확 죽어버릴까? 그럼 내 원래 내 몸으로 깨어나는거 아니야?
베란다에 나가 창문을 열고 난간을 내려다보니 15층 정도의 높이는 되는것 같았다.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이 얼굴을 때리고 지나갔다.
"오바야......"
꿈속의 꿈과 무의식을 흥미롭게 다뤄 재밌게 봤던 어떤 영화에서 주인공 일행이 림보라는 곳에 빠지게 되는 내용이 나온다.
그곳에 빠지면 꿈을 현실이라고 생각하고 살아가게 되는데 빠져나오려면 죽어야 한다.
당시 이곳이 림보라는 사실을 듣게 되는 인물은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나 이내 스스로의 머리에 총구를 들이대고 방아쇠를 당기는데,
막상 내가 비슷한 상황이 되니 도저히 스스로를 해할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건 영화잖아.
하아. 지금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상황속에 놓인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어떡하긴!
일단은 여기서 좀 지내보자. 영화 속 그 사람도 림보에서 다 늙어서 호호 할아버지가 될때까지 잘만 살았잖아? 심지어 조직의 보스같은걸로 잘 먹고 잘 살았잖아?
스스로를 합리화 하며 극단적인 모험은 하지 않기를 선택하는 나였다.
애초에 도전정신이 있거나 모험을 하는 성격이었으면 기존의 삶이 그렇게 무미건조하진 않았을거다.
나는 그저 상황에 순응하며 뭐든지 남들만큼만 하는 그런 사람이었으니까.
우우웅-우우웅-
핸드폰의 진동이 애처롭게 울었다.
화면을 바라보니 이민지라는 이름이 찍혀있었다.
이민지.
평생을 외로이 살았던 오복이의 유일한 친구.
특유의 착한 심성은 어릴적부터 빛이 나기 시작했으며 후에 재회한 후에는 빛이 날 정도로 착한 소녀로 자라있었다.
사실은 누군지도 모르는 사이인데 받기는 애매해서 조금 기다리자 전화가 더 이상 울리지 않았다.
얕게 한숨을 쉬기가 무섭게 메시지 몇개가 날아왔다.
>>'무슨일이야 연락도 안되고?'
>>'어제도 부재중 남겼는데 왜 전화 안해?'
>>'톡은 왜 안봐.'
>>'이거 보면 전화해.'
아차. 습관적으로 화면을 눌러 메시지를 확인해버렸다.
숫자 1이 사라짐과 동시에 바로 전화가 걸려왔다.
결국엔 한번 부딪혀야 할 일인것 같아 통화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야! 너 왜 이렇게 연락이 안돼! 무슨일 있는거 아니지?"
걱정이 묻어나오는 앙칼진 목소리. 아마도 이민지라는 친구는 이 친구에게 잔소리하는 엄마같은 포지션이었을까?
"너 지금 어디야? 집이야? 내가 지금 갈까?"
지금 찾아온다고? 뭐지? 이렇게 가까운 사이였나? 일기장엔 그저 자기를 유일하게 신경 써주는 사람이라는 말만 있었을 뿐인데. 안돼 나는 진짜 오복이가 아니라고! 무언가 알리바이가 필요했다.
"어, 아니야. 나 몸이 좀 안좋아서 혼자 쉬고싶어."
이렇게 말하면 되려나? 순간적으로 할말이 떠오르지 않아서 일단은 아프다는 핑계를 댔다.
"그래? 알겠어 그럼 푹 쉬고 괜찮아지면 연락 꼭 해."
띠릭.
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내 대답도 듣지않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뭐지? 걱정하는거 아니었나? 자기 할말만 하고 그냥 끊어버리다니.
이리저리 치이다보니 허기가 찾아왔다.
사실 눈 뜨자마자부터 공복감이 있긴 했는데 상황이 상황인지라 뭘 먹질 못한거지만.
이놈의 집구석엔 먹을게 하나도 없었다.
선반을 다 뒤져봐도 라면은 커녕 참치캔 하나도 없고 다 내다 버린건지 조미료통 조차 찾을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정수기를 사용하지 않았는지 정수기도 없으니 마실 물도 없었다.
냉장고는 얼마나 방치된건지 모를정도로 텅텅 비어있었다.
아무래도 이 자식 집에 있는 모든 살림살이를 내다 버린것 같다.
본인이 안하면 다른사람이 하게 될테니까.
가구나 가전제품을 버리지 않은건 무겁고 부피가 크니 귀찮아서인지 혹시 필요한 다른사람이 쓸까봐인지는 잘 모르겠다.
먹을것도 없고 나가서 사오기도 귀찮으니 결국엔 배달밖엔 없었다.
"졸라 매운 떡볶이 시켜야지."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런지 매운게 먹고싶었다.
배달앱을 켜보니 다행히 평소에 이용을 했었나보다.
등록된 주소지가 하나니까 그게 여기겠지? 현관을 열고 밖으로 나가보니 배달지에 써 있는 호수와 현관에 써있는 호수가 일치했다.
앱결제 비밀번호를 몰라서 만나서 결제하기로 음식을 시켰다.
이렇게 된 마당에 밥이 넘어가나 싶지만 어쩔수가 없었다. 적응하는 수 밖에는.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니까. 난 할 수 있다 아자아자!
돈도 많겠다 아무것도 안하고 놀고 먹으면 누군지는 몰라도 날 여기로 보낸 작자가 다시 되돌려 놓겠지 뭐.
무슨 의도로 날 여기 쳐박은진 모르겠으나 나는 정말 아무것도 안할꺼야!
나를 원래 세상으로 돌려놓으란 말이야.
눈 뜨자마자 한 가정의 충격적인 비사를 알게되며 내가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데!
이거 정신적 피해보상 요구할꺼야 암!
니가 뭘 원하는지는 대충 알것 같다만 절대로 니 뜻대로는 안 될꺼다.
내가 할 수 있는한 최대한의 뺑끼를 쳐 주마.
아, 몰라- 배 째 X발.
"나 다시 돌아갈래에에에!"
YOU MUST COME BACK HOME! 거칠은 인생속에~
바닥에 드러누운채 내 심정을 대변할 노래를 틀어놓고 영화대사를 목청껏 외치며 있는 대로 땡깡을 부렸다.
배달 음식을 시킨 후의 시간은 왜 이리도 더디게 가는지.
특히 더 길게 느껴지는 기다림의 시간을 보내던 중 벨을 누르며 현관을 쾅쾅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다.
"네 나가요~."
알겠으니 그만 두들기라는 의미로 크게 소리치며 현관을 향해 달렸다.
아니, 아무리 시간이 돈인 사람들이라지만 뭐가 저렇게 급해? 문짝 부서지겠다.
삐리릭-
도어락을 열면서 나는 무언가 싸~한 느낌을 받았다.
그러고보니 배달이요! 라는 소리를 못들었는데? 배달하는분이 다짜고짜 벨을 누르며 문을 쿵쾅 거리는일이 흔히 있었던가?
왜 불안한 예감은 늘 틀린적이 없는걸까.
우악스럽게 문을 잡아 뜯을듯이 열어재끼는 손길에 저항감 없이 무기력하게 열린 문 밖에는 난생 처음보는 여자가 서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