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화 〉1화 - 그 남자의 사정 (2/74)



〈 2화 〉1화 - 그 남자의 사정
"아, 개운하다~."


샤워를 마치고 나온 나는 익숙하게 1인용 침대에 걸터앉으며 핸드폰을 집어들었다.


꾸준히 챙겨보는 소설 '던전 패스파인더' 의 업로드 시간이  다가오기 때문이다.

딱히 독자가 많지는 않았지만 작가가 성실하게 연재를 이어가기에 쭉 따라간 작품이었다.

어느덧 소설 근간을 이루는 주요 떡밥들이 다 풀리고 결말만을 앞둔 상황속에서 마지막화가 업로드 되었다.

"드디어 마지막화네 나름 연재 따라가며 봤는데 아쉽다."

챙겨 보던 소설이 끝난다는 아쉬움과 몇 안되는 독자들을 데리고 기어코 완결까지 완료해낸 작가에 대한 고마움이 마음속에 차올랐다.


길게 호흡하며 마지막화를 누르자 예상과는 다른 화면이 나타났다.

"어라? 이게 뭐야?"

'작가입니다. 부득이한 사정으로 연재를 중단합니다. 그 동안 찾아와 주신 독자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연재를 재개할 일은 없을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순간적으로 어이가 없어서 말문이 턱 하고 막혔다.
'마지막화 한편만 쓰면 되는거 아닌가?'
'대체 무슨 사정이길래? 그러면 나중에라도 결말 올려주면 되잖아 연중이라니? 재개도 없다니?'


고마웠던 마음은 이미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처음으로 작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작가님 무슨 사정인지는 모르겠으나 나중에라도 좋으니 결말은 올려주세요.'

여태껏 한번도 댓글을 남기거나 작가에게 메시지를 보낸적 없었으나 조회수가 워낙 안나와 수익 걱정이 되어서
집필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라고 소정의 후원금도 보낸적이 있기에 이 요구가 그리 부당한 행동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나는 그저 결말을 보고 싶을뿐이 아닌가?


희한하게 답장이 칼같이 날아왔다.
'죄송합니다 번복은 없습니다 앞으로 쪽지도 보내지 말아주십시오.'

이상하게 화가 났다. 업로드 될때 마다 챙겨보긴 했으나 그리 애정이 있는 글은 아니었거늘 어째서 이렇게 화가 나는 걸까?
단호박도 정도가 있지 너무한거 아닌가? 아니 그냥 안보면 그만이지 더러워서 안본다 그깟 결말 궁금하지도 않았어!
내면의 목소리와 싸우던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작가에게 장문의 메시지를 보냈다.

'아니 작가님 너무하시네 지금 당장 어려우면 나중에라도 써달라는게 그리 어려운 요구인가요? 작가님은 본인 작품에 애정도 없어요?
그 동안 써온게 아깝지도 않으신가 한편만 더 쓰면 되잖아요! 그게 뭐가 그렇게 어렵다고.....(중략)
하~ 쓰다보니까 흥분해서 말이 길어졌는데 지우기도 뭣하고 그냥 보냅니다. 아니면 결말 어떻게 나는지 알려주기라도 하세요 나 미치는  보고싶지 않으면!'

의식과 감정의 흐름대로 꽉꽉 채워 쓴 쪽지는 흡사 어린아이가 고집을 부리는것과 같은 결과물이 나와버렸지만
어찌됐든 이미 전송을 눌렀기에 후회한들 내 손을 떠난 뒤였다.


"아까는 칼답하더니 이번에는 씹네."
혼자서 불타올랐다는 생각에 푸념과 한숨이 동시에 나왔다.


어느새 깊은 새벽, 나는 답장을 기다리며 잠이 들었다.
그게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도 모르는채로.


밀려오는 아침햇살에 게슴츠레 눈이 떠졌다.
이상했다. 이렇게 밝아지기전에 알람이 울어야하는데.


"아, 진짜 미치겠네 알람이  안울린거야 지각하게 생겼네."

그러고보니 손바닥만한 내 자취방엔 암막커튼이 쳐져 있을지라 햇빛이 들어올 일이 없다.
기묘한 위화감에 상체를 벌떡 일으켜 세웠다. 늘 머리맡에 두고 자던 핸드폰이 없었다.


고개를 돌려가며 찾아보니 발치에 핸드폰이 있었다. 일단은 무릎 걸음으로 핸드폰을 집어들었다.
완전히 일어나 둘러보니 방의 풍경이 생소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여긴 내 방이 아니었다.
핸드폰 기종도 내것과 달랐다.

검은 화면속을 들여다보는 얼굴은 평생 내가 봐온 그것과는 명백히 다른사람의 것이었다.

"......"
욕지기가 치밀었다. 이게 무슨일이지? 꿈인가? 꿈속의 꿈? 무슨 상황이지?
손등을 꼬집어보고 뺨을 강하게 후려쳤다.
삐-이. 귓가에 선명히 울리는 이명과 뺨의 얼얼한 통증 그리고 따끔하게 붉어진 손등 피부를 보며 나는 휘청이며 이마를 짚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일이야?"
대답이 들려올 리 없는 질문을 크게 되뇌이며 성큼성큼 걸어가 방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 눈에 들어오는 을씨년스러운 거실의 풍경. 한동안 사람의 온기가 닿지 않은 티가 났다.

거실과 각 방들의 먼지 쌓인 가구들과 가전제품들, 방 세칸의 32평대 아파트로 추정되는 이 공간은 이상하리만큼 온기가 없었다.
정신을 좀 차리고 이 몸이 깨어난 그 방으로 다시 돌아가자 이 곳도 침대 하나와 책상 하나 그리고 붙박이 옷장하나가 전부였다.


무언가 사람사는 냄새가 하나도 나지 않았다.


특이할것 없는 침대를 바라보다 시선을 돌려보니 책상위에 올라와 있는 물건들이 눈에 띄었다.
통장 하나, 인주 하나, 뚜껑 열린 약통 몇개와 정체불명의 쪽지 한장.

얼굴에 핏기가 싹 가셨다.
손을 덜덜 떨며 홀린듯 종이를 들어 올렸다. 눈동자는 굶주리기라도 했다는듯 어느새 글씨를 쫒고 있었다.
볼펜이 없었던건지 컴퓨터용 사인펜으로 쓴 글씨는 읽는 사람을 배려라도 해 주듯 공들여 쓴 티가 물씬 풍기는 정자로 쓴 한글이었다.


'시체 치워주셔서 감사합니다. 민폐 끼쳐서 죄송합니다.
통장에 있는 돈은 전부 좋은곳에 기부해 주세요.'


"청년의 자살기도라니......"
꿈인지 현실인지도 모를 이 공간속에서 맞닥뜨린 상황에 나는 다리가 풀린채 바닥에 주저앉았다.
정신을 다잡고 책상위의 약병을 집어 들었다. 확인해보니 얼마간 모은것으로 추정되는 수면제였다.

아마도 이 방의 주인은 이걸 한번에 전부 삼키고 자살기도를 한것일테지.
어찌된 일인지는 몰라도 내가 이러고 있는걸 보면 이 친구의 마지막 시도는 성공한걸로 보인다.

끔직한 사건현장을 목격한것 같은 기분에 심장이 거칠게 방망이질을 쳤다.

지문을 인식해 핸드폰을 열어보니 통화내역과 메신저에 있는 사람들이 아주 단조로웠다.
인간관계가 단촐한 것을 넘어서서 사회에서 고립된 수준이었다.사진첩을 들어가보니 별다른 사진도 없었다.


내가 처한 상황에 대한 정보가 너무 부족했다.

손을 뻗어 책상에 딸린 서랍을 열었다. 안에는 지갑과 일기장이 하나 들어있었다.
지갑을 열어보니 신분증과 카드 몇장이 들어있었다.

신분증을 먼저 꺼내어 살펴보았다.
"이름 오 복. 올해로 스물 다섯살, 성이 오씨고 이름은 외자구나."

스물 다섯이면 한창때의 청년인데 어찌하여 극단적인 선택을 하였을까?
그 해답은 아마도 일기장에 있을 것이다. 지체없이 평범한 디자인의 일기장을 펼쳐보았다.

표지가 2020인걸 보니 지난해의 일기인것 같았다.
나는 홀린듯  사람이 걸어온 지난 한해 동안의 행적을 읽어갔다.


일기장의 마지막장을 덮으며 깊은 한숨이 절로 쉬어졌다. 일단 일기는 작년 한해의 일기장이 아니었다.
그 동안의 자신의 삶에 대해 고백하고 후회하고 그리워하기도 하는 일종의 회고록.
누군가가 자신의 삶을, 나아가 자신의 마지막 선택을 이해해 주길 바라는 길고 긴 유언장이었다.

기구하다면 기구하고 흔하다면 흔한 사연이었다. 사회 기사면에는 그리 드물지 않게 올라오는 이야기 들이었으니까.
나중에 성장한 케이스라 지금은 건장한 체격에 남자다운 얼굴은 가진 훤칠한 남성이지만 어릴적엔 상당히 왜소했다고 한다.



직업군인인 아버지의 밑에서 자라며 엄격한 가정환경을 강요받았고 어머니 또한 오복씨를 그리 사랑으로 키운건 아니었다고 한다.
상대방의 입장은 들어보지 못했으니 전적으로 이 기록에 의존할수 밖에 없긴 하지만 아무튼 그랬다고 한다.

장교였던 부친의 근무지가 주기적으로 바뀌며 이사를 자주 다녔고 원래도 그리 사교성이 좋지 않았던지라 잦은 전학과 소심한 성격이 겹쳐 학창시절 거의 전부를 따돌림을 당했다고 한다.
유일한 친구라곤 초등생 시절 자신을 챙겨주었던 고향친구이자 고등학생이 되며 수도권으로 이사를 오며 다시 재회하게 된 마음씨 착한 친구 하나뿐이었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거쳐 성인이 되었고 도망치듯 입대를 했다고 한다.
과거를 딛고 잘해보려 했으나 평범한 사람이 가도 극한의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대한민국 육군에서 마음의 상처가 있는 스무살 풋내기가 적응하기는 여간 어려웠을 것이다.
역시나 군대에서도 관심병사 였으며 군생활 또한 정말 힘들게 마치고 전역을 했다.

전역 후 대학진학도 취직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방구석에 쳐박혀 히키코모리로 살기를 몇년째,
같은 부대에서 근무중인 영관장교였던 부친과 부사관이던 모친은 사령실에서 당직근무를 서던 중 총기를 탈취한 어느 병사의 총기 난사 사건에 휘말려 피해자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는 세상이 미웠다. 누군가의 악의로 인해 자신의 인생은 이토록 망가졌는데.
부모의 인생 또한 누군가의 악의와 분노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였기에 그는  세상을 저주했다.


그들과 똑같이 무고한 타인을 향해 끓어오르는 감정을 해소한다면 그들과 같아진다는 생각에 미련한 이 친구는 결국 스스로 끝을 내기로 마음을 먹은것이다.

"......"
죽음을 결심한 그 순간까지도 방치되어 부패할 자신의 시신을 치워줄 사람에게 감사와 사과를 전하던 스물 다섯의 어린 영혼에게 고개를 숙여 위로와 애도를 표했다.
복(福) 이라는 이름에 맞지 않는 불행한 삶을 살은 몸의 원주인이 너무 안타까웠다.

하지만 이제 내가 살아가야할 몸이기도 하기에 언제까지고 감정에 매몰되어 있을  없었다.


한달음에 화장실로 달려가 찬물로 세수를 했다.
그걸로도 부족해 머리통에 차가운 물을 한참을 뿌리고서야 처박았던 고개를 들었다.
거울을 쳐다보며 천천히 호흡을 정돈했다.

"일단은 이것 저것 확인 좀 해봐야겠다."

이내 핸드폰을 집어들고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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