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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33화 〉용에게 배우는 것들 Ⅰ(2) (333/341)



〈 333화 〉용에게 배우는 것들 Ⅰ(2)

“...뮤아? 네뮤아?”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여기사를 퍼뜩 정신을 차렸다. 자신이 무슨 상상을  것인지. 얼굴에 열이 갑자기 오른다. 숨결이 잔뜩 달아오른  혹시나 라벨라에게 들키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눈치를 살폈다.

“죄송합니다.”
“어딜 보고 있던 거죠?”
“그, 그게...”
”후후, 마레이가 사랑스럽다고 그렇게보시면  됩니다? 네뮤아가 달라고 해도  되요.”

라벨라가 옅게 웃으며 마레이를 꽉 끌어안았다. 네뮤아는 차오르는 한숨을 겨우겨우 목 안으로 삼켜냈다. 어린 소년에게 눈을 뗄 수 없다니, 주책이었다. 네뮤아는 애꿎은 목을 긁적였다. 쇠가 긁히며 불쾌한 소리를 냈다.

마레이를 꽉 끌어안은 라벨라를 본 로렌은 피식 웃더니 메이드 복을 입은 엘프가 가져온 검을 집어 들었다. 청명한 소리와 함께 검집에서 새하얀 검신이 드러났다. 철과는 다른, 마치 눈을 뭉쳐 만든 것같은 하얀 검이었다.

또 다른 메이드가 두 손으로 자그마한 상자를 내밀었다. 그 안에는 검은색 머리끈이 놓여 있었다. 라벨라는 당연하다는 듯이 머리끈을 받아포니테일로 머리를 묶었다.

“라벨라.”

로렌의 라벨라를 불렀다.

“네뮤아, 검을.”

네뮤아가 패용하던 검을 건넸다.

“아기씨, 잠시 물러서지요. 위험하실 수도 있습니다.”
“네? 아, 네….”

여기사를 따라 거리를 벌리자, 라벨라가 검을 뽑아 들었다. 아무런 소리도 없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검붉은색 검신이 빛을 삼켜내고 있었다.

“라벨라님의 검술을 보신  있습니까?”
“조금은요.”

마레이가 학교에서 검을 배운다고 하자, 중간중간 자세를 점검해준다며 시범삼아 보여준 게 있었다. 물론, 몇 번 보고 나서 춤사위 같은 느낌에 잔뜩 흥분해버려서 마당에서 개처럼 교미해버려서 그 뒤의 진도를 못 나가고 있는 형편이었지만….

“네뮤아 경, 그런데 검의 색이…?”
“일반적인 금속은 아닙니다.  것은 남부 사령관이 황제에게 준 검이, 총독님에게, 그리고 저에게  경우라. 마계의 금속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하얀 검은 무엇인가요?”
“로렌 님의 검은, 루드기아스님의 등뼈로 만든 검입니다.”

루드기아스? 마레이는 익숙한 이름을   되새김질 하다, 마룡이라 불리던 용을 떠올렸다.

“마룡, 루드기아스 말하는 건가요?”
“예, 도련님에게는 마룡이라는 말이 익숙하시겠군요.”

네뮤아는 별다른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마룡 루드기아스라고 하면, 이하운과 연관이 깊은 괴물 중 하나였다. 분명 이하운의 자궁을....

“시작하려나 봅니다.”

네뮤아의 말대로 로렌과 라벨라는 서로를향해 검을 겨누고 있었다. 로렌은 웃고 있었고, 라벨라는 딱딱하게 굳은 표정이었다.

움직인다.

짧은 생각과 동시에 라벨라와 로렌은 다시 거리를 벌렸다.

“보셨습니까?”
“어, 그게. 움직이는 느낌은 있었는데….”

네뮤아는 총독과 아가씨의 대련보다는 옆에 있는 마레이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무재(武 才)는 조금 떨어지는 편인가. 조금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라벨라 드 파웬처럼 만능까지는 바라지 않았지만, 아쉬운 것은 아쉬운 것이었다.

“두 번? 세 번…. 정도 흐릿하게...”
“오……!”

네뮤아는 저도 모르게 감탄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마레이를 꼼꼼히 살펴보았다. 마리 드 파웬과 똑 닮은 검은 머리카락, 눈동자. 여자아이처럼 가느다란 선, 그리고 반짝이는 눈동자가 아름다운 소년이었다.

흐려진다고 해도, 악마의 피는 여전히 소년의 혈관을 타고 흐르고 있었다.

“정확히는 두 번 검을 섞었고, 세 번째에서는 총독님의 검을 막지 못한다고 판단해서 아가씨께서 물러섰습니다.”
“그런가요.”

마레이는 아무렇지도 않게 서로를 향해 검을 겨누고 있는 로렌과 라벨라를 번갈아 보았다. 마주 보고 서 있으면 나이 차이가 있어보이는 언니와 여동생처럼 보이는 두 사람.

“아기씨께서는 검에 관심이 있습니까?”
“아, 네… 조금이지만….”
“혹시 누군가에게 배우고 있거나 하시는지요?”

네뮤아의 목소리가 조금 들떠있었다.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있어요.”
“그런가요….”

낮아지는 목소리 톤에 마레이는 네뮤아를 바라보았다. 투구 너머로 보이는 파란눈동자는 올곧이 자신을 담아내고 있었다. 얼굴의 윤곽을 살펴볼  없었지만,무척이나 매력적인 사람일 것 같았다.

라벨라와 로렌의 대결은 몇 번 더 ‘움직였다’라는 생각과 동시에 끝이 났다.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았지만 라벨라의 이마에는 땀이 흐르고 있었다. 격하게 움직였구나, 짧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가문의 검술이라고 기억은 제대로 하고 있구나.”
“잊어버리기가 힘드니까요.”

라벨라의 대답에 로렌은 옅게 웃었다. 마레이는 멍하니 로렌을 바라보았다. 저렇게도 웃을 수 있구나. 무표정하게 있는 것보다, 인상을 쓰는 것보다 웃는 것이 훨씬 아름다웠다.

“다음은 마레이다.”

로렌이 자신을 내려보고 있었다. 대련을 해야 하는 걸까. 마레이는 주변을 살펴보았다. 진검을 만진 적은 없는데. 누구에게 달라고 해야 하지.

“예? 아, 그게.. 그러니까… 네, 네뮤아 경. 혹시, 검을...”

로렌이 고개를 저었다. 네뮤아가 한발 물러섰다. 라벨라가 다가오려하자, 로렌이 또다시 고개를 저었다. 라벨라는 무어라 말하고 싶은지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뒤로 물러났다. 로렌의 보라빛 눈동자가 마레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네 검을 쓰거라.”
“제... 검 말입니까.”

마레이에게는 검이 없었다. 아니, 하나 있었다. 목에 걸린 아델기우스가 진동하는 게 느껴졌다. 로렌은 여전히 자신을 보고 있었다. 마레이는 목걸이를 조심스레 풀어 나무 막대를 들었다.

“깨어나라, 아델기우스.”

손에 검이 들렸다. 검은색 도신이 주변의 빛을 머금기 시작했다. 아니, 주변을 전부 차단하고 있었다. 마치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존재하면 안 된다는 것처럼. 마치 풍경화에 검은 물감을 칠한 것처럼 검은색 검신은 이질적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라벨라에게 검을 배웠나?”
“....조금이지만, 배웠습니다.”

로렌의 초록빛 눈썹이 슬그머니 가늘어졌다.

“가문의 검은?”
“배우지 못했습니다.”
“그래.”

로렌은 다시 무표정하게 마레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것도 모른 다라, 처음부터 가르쳐야 하겠군.”

로렌은 왜인지 만족스러워 보이는 얼굴로 마레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수 없는 감각에 마레이는 조심스레 고개를 숙였다. 라벨라의 할머니이지만, 자신과는 완전히 남이나 다름없는 존재가 자신에게 보이는 관심이 부담스러웠다.

그 관심이 어느 방향성을 가지고 있는지조차 알  없기에 더더욱.

“우리 가문의 검술은 기존에 존재했던 마리타 가문의 검법을, 용사님께서 재정립해서 만든 검법이다. 수많은 고위 마족뿐만 아니라, 마왕까지 베어낸 검이니 배울 때에는 언제나 경건한 마음으로 펼칠 수 있도록 하거라.”

눈치를 살피는 마레이의 모습에는 관심이 없는 것인지, 로렌은 곧장 용사님의 검법이라며 간단한 동작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몸으로 직접 따라 해봤을 때, 무엇인가 대단히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그와 동시에 터져 나오는 비명을 참아냈다. 다만 검이 허공에서 회전하다 땅에 박혀 들었다.

“검을 놓치다니...”

로렌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마레이는 삐걱거리는 관절과 근육의 비명을 이겨내지 못하고검을 놓쳐버렸다. 다시 검을 쥐려고 했지만,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만, 그만. 그만.”

로렌의 목소리가 비수처럼 마레이의 가슴을 찔렀다.

“한심할 정도군.”

로렌이 마레이를 싸늘한 눈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마레이는 이유 모를 죄책감인지, 열등감인지 모를 감정에 입술을 깨물었다.

“할머님. 마레이는...”
“듣고 싶지 않다. 역시 제 피는 못 속이는구나.”

자신을 노려보는 로렌의 눈동자에서 마레이는 그녀가 지켜보고 있는 건 자신이 아니란 걸 깨달았다. 죽일 듯, 잡아먹을  그렇게 노려보는 보랏빛 눈동자는 자신이 아닌  뒤를 보고 있었다.

마리 드 파웬도 아니고, 더 뒤에. 더 뒤에는 무엇이 있는 걸까. 마레이는 로렌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이름 모를 여성이 담겨 있었다. 뿔과 날개, 그리고 꼬리까지.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아니, 사람이라도 불러야 할까. 마치 악마 같은….

“마레이 괜찮아요?

라벨라가 어느새 달려와 마레이를 부축하고 있었다.

“저는 괜찮아요.”

라벨라의 태도에 로렌은 언짢은 듯 고개를 돌렸다. 위협적으로 반짝이는 눈동자에서 마레이는 이상하게도 열등감을 엿보았다. 안타까웠다. 무엇이 그녀를 그렇게 불안하게 한 것일까. 두렵게 한 것일까.

아델기우스가 바닥에 꽂혀 있었다. 아무렇지 않게 땅에 박혀들 정도로 존재자체가 위협적인 검이었다. 로렌의 독설에도 화가 나거나 하지 않았다. 그녀의 적의가, 공격성이 자신을 향하지 않았다고 확신하기 때문일까. 알 수 없었다.

달라붙어 괜찮냐고 몇 번이나 묻는 라벨라를 슬며시 밀어냈다. 마레이는 바닥에 떨어진 아델기우스를 꽉 움켜쥐었다.

“...가능성은 있군.”

로렌은 여전히 마레이를 내려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웃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만족한 듯이, 마치 기대했다는 듯이. 로렌은 도대체 자신을 통해 누구를 보고 있는 것일까. 그녀의 보랏빛 눈동자에는 자신이 비추고 있었지만, 다른 사람을 담고 있었다.

“다시 한번 해보거라.”

마레이는 느릿하게. 검을 놓치지 않을 정도로 검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빠르게 움직이면 근육이 비명을 질렀고, 뼈에서 불길한 소리가 울려 퍼진다. 사람의 몸으로 펼칠 수 있는 검술인가 생각이 들 정도로 버거웠다.

“조금  천천히.”

로렌의 목소리를 따라 더더욱 검을 천천히 움직였다. 어린아이가 글자를 한 획씩 써 내려가듯 천천히. 검이 자연스레 움직이다, 거짓말처럼 방향을 바꾸며 움직여야 했다. 그에 따른 몸에 가해지는 부하를 견뎌내야만 했다. 아주 느릿하게, 마치 맹인이 길을 더듬어 가듯 그렇게 천천히 움직여야 반동을 버텨낼  있었다.

로렌은아무런 말도 없었다. 라벨라 또한 아무런 말도 없었다. 그렇게 검을 움직였다. 이건 검법이 아니었다. 그저 검을 지정된 위치에 천천히 움직일 뿐이었다. 그렇게 로렌이 보여주었던 동작을 끝냈을 때, 마레이는 주저앉았다.

“.....나쁘지 않군.”

로렌은 짧은 말을 남기고 총독성으로 되돌아가 버렸다. 네뮤아와 라벨라, 그리고 마레이만 남긴 채. 아주 자연스레 걸음을 옮기는 탓에 마레이는 멍하니 멀어지는 로렌의 등을 보았다. 다른 사람들은 익숙하다는 듯이 멀어지는 로렌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잘했어요, 마레이.”

라벨라가 무릎을 잔뜩 구부려 주저앉은 마레이와 눈을 맞추었다.

“잘…  건가요?”
“처음치고는 무척 잘했어요. 그렇지요 네뮤아 경?”
“아기씨께서는 꽤 소질이 있으시군요.”

라벨라는 마레이의 겨드랑이 사이로 손을 넣어 일으켰다.

“할머니도 흡족해하신 것 같아요.”
“.....총독께서는 칭찬에는 서투른 분이시니까요.”

마레이는 자신의 손에 들려있는 아델기우스를 보았다. 공간이 비틀린 듯한 완벽한 검은색의 검이 부르르 떨리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아기씨는 정말 그분을 닮으셨습니다.”

라벨라가 잠시 일이 생겨서 통화를 하러 간 사이에 여기사가 갑작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그분이요….?”
“용사님 말입니다. 정말 똑같이 닮으셨네요.”
“.....? 네뮤아 경은 마치 증조부님을  것처럼말씀하시는군요.”

네뮤아는 고개를 저었다.

“용족 사이에서는 유명한 인간이었으니까요.”
“용족이요? 네뮤아 경은 혹시…?”
“아닙니다. 저는 반쪽짜리 용입니다. 용이라 불릴 힘도 자격도 없는 반 편입니다. 아, 그렇다고 용사를  적이 있을 정도로 나이가 많지도 않습니다.”

네뮤아는 자신답지 않게 사족을 붙였다는 생각에 저도 모르게 입을 달싹였다. 나이 이야기는 왜 꺼내는 것인지. 어린 소년에게... 자신도 참 주책이었다.

“그러면 어떻게, 제가 증조부님과 닮았다고 확신을 하시는 건가요?”
“다른 존재의 기억이 있습니다. 단편적이지만, 아버님의 기억을 물려받았거든요.”
“아, 그런가요….”

기억을 물려받는다니,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드래곤의 마법이라면 그럴 수 있다생각이 들었다.

“총독께서는 아기씨를 미워하지 않습니다.”

네뮤아는 로렌에 대해 변명을 하고 있었다. 마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 말 없이 마레이의 표정을 살피던 여기사는 옅게 웃고는 마레이를 손을 조심스레 붙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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