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9화 〉뒷풀이(3)
마레이를 관찰하듯 보던 로렌은 품 안에서 담배를 하나 꺼내 물고 불을 붙였다. 슬며시 흘러나오는 담배 연기가 무척이나 독했다.
“콜록.. 콜록...”
로렌이 마차 벽면에 급하게 담배 끝을 비벼 끄고 마차의 창문을 열었다. 그리고 곧장 꽤 강한 바람이 마차 안을 헤집다가 거짓말처럼 창문을 향해 빠져나가고 잠잠해졌다.
로렌은 아무런 말도 없었다. 마레이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가만히 앉아있었다. 다그닥. 다그닥. 창문을 열어 두니, 말의 발소리가 들렸다. 저걸, 말이라고 불러도 될지 모르겠지만.
“발테르의 생활은 즐거운 게냐.”
로렌은 마차 밖을 보고 있었다.
“......네.”
그래, 로렌은 짧게 대답하고 다시 마차 밖을 보고만 있었다. 그녀와 대화가 잘 이어지지 않았다. 질문에는 단답으로 밖에 대답할 것밖에 없었다. 대답을 길게 한다고 그녀가 좋아할 것 같지도 않았다.
“배우고 싶은 게 있느냐.”
“딱히 없습니다.”
로렌이 흘깃 마레이를 훑고 지나갔다. 자신의 몸뚱이보다 몇 배는 큰, 파충류 특유의 그 눈동자가 자신을 보는 착각이 들었다. 마레이는 저도 모르게 헛숨을 들이켰다. 괴물. 로렌은 괴물이었다. 란에게서 본 늑대를 닮은, 여우를 닮은 생물보다는 작았지만, 신성하지도 아름답지도 않았다.
파괴적이고, 흉포하고, 탐욕스러운 괴물이었다. 마레이는 제 앞에 있는 로렌을 보면서 자신도 모르게 마차의 구석으로 몸을 슬며시 움직였다.
“중앙에 앉아라.”
“....네.”
마레이는 숨을 천천히 토해냈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심호흡하는 것조차 로렌의 눈치를 살펴야 했다. 불편했다.
“너는 누구의 핏줄이지, 마레이 드 파엔.”
로렌의 물음에 마레이는 그녀가 무슨 질문을 하는 것인지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다. 어머니를 이야기하는 걸까.
“너는 누구의 핏줄인지 물었다. 마레이 드 파.웬.”
“용사의 핏줄입니다.”
로렌은 작게 웃었다. 아니, 웃은 걸까. 다시 그녀를 보았다. 무표정했다. 그녀를 읽을 수 없었다. 로렌은 여전히 무표정하게 마레이를 보고 있었다.
“너는 용사님의 후계다. 이걸 잊지 마라.”
“명심… 하겠습니다.”
용사, 이름은 많이 들어보았다. 하지만 마레이는 용사라는 사람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다. 라벨라조차도 그저 자신의 할아버지구나 하는 수준의 인식만 있었고, 마레이에게 용사에 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용사라는주제에 대해서 대화를 피하는 거나 하지는 않았다. 수백 년전의 용사라는 인물이 존재했고, 마왕을 물리쳤다. 그리고 마리타 가문을 나와, 파웬가를 세웠다. 그의 옆에는 로렌이 있었다.
그게 전부였다. 사람들이 용사를 그리워하기에는 세상이 너무 변하고 있었다. 사람들의 관심은 전설이나 이야기가 아니라 내일과 미래를 향했다. 과거를 회상할 정도로 절망스럽지 않았다. 로렌은 또다시 아무런 말이 없었다.
창문 너머로 인공 생명체, 아니 인공의 무엇인가가 다그닥- 다그닥- 소리를 내며 말의 흉내 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더 많이 배우거라.”
“........알겠습니다.”
“무엇을?”
로렌의 물음에 마레이는 주먹을 꽉 쥐었다. 그저 반사적으로 나온 대답이었다. 더 많이 배우라니, 그저 애매모호한 표현이었다. 그저 열심히 공부해라 정도로 생각했지만, 로렌이 되묻자 그녀가 말한 의도를 알 수 없었다.
“파웬이라는, 용사의 후예라는 이름을 부끄럽게 하지 마라.”
“명심… 하겠습니다.”
마레이의 대답에 로렌은 마레이를 내려다 볼 뿐이었다. 그녀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혹시 혼나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지만, 로렌은 그저 담담하게 말을 이어나갈 뿐이었다.
“유약하군. 날 봐라, 마레이 드 파웬.”
로렌은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마레이는 조심스레 고개를 들어 로렌을 보았다. 차마 그녀와 시선을 마주할 용기가 없었다. 그녀의 입술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코를 보았다. 아름답다.
“내 눈을 마주 보라고 했다. 마레이.”
마레이는 잔뜩 떨리는 시야를 다잡고 로렌의 눈을 보았다. 라벨라를 닮은 보라색 눈동자. 하지만 그 속은 심연 같은 어둠뿐이라바라보는 것만으로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은 두려운 인력이 담겨 있었다.
시선을 피하려 하자, 로렌이 마레이의 턱을 붙잡았다. 그리고 눈을 맞추었다. 숨결이 피부에 닿을 때, 피부가 얼어붙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자연스레 그녀의 눈동자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다. 자안의 눈동자 속에는 어둠이 꿈틀거리고있었다.
끈적할 정도로 점성을 가진 어둠 속에서 무엇인가 움직이고 있었다. 그 안에서 거대한 용이 몸을 일으키고, 마레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소년은 숨을 쉬는 것조차 잊어버리고자신 앞에 서 있는 거대한 용을 보았다.
두려웠다. 혐오스러웠다. 저건 공포의 표상이었다. 신성하지도, 아름답지도 않았다. 그저 끔찍하고 토악질 나오는 폭력과 악몽의 형체였다.
마레이는 저도 모르게 입을 틀어막았다. 토악질이 나올 것 같았다. 턱을 붙잡은 로렌의 손을 밀어내려 했지만, 얼마나 꽉 잡은 것인지 밀어낼 수 없었다. 양손으로 로렌을 팔을 잡았다. 어둠 속에서 기지개를 핀 용이 크게 포효하고 마레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내뿜는 가벼운 숨결에 마레이는 주저앉았다. 두려움에 바보처럼 입을 벌리고 침을 질질 흘리고 있었다. 그런 소년을 향해 용은 입을 끝까지 벌려 소년의 몸을 집어 삼켰.
“라벨라 이상으로 소질이 있군.”
로렌의 목소리에 마레이는 깨어났다. 용은어디 있지. 그 커다란드래곤. 자신을 짓이기던 이빨, 온통 검은색뿐이었던 그림자의 세상, 그 모든 건 꿈처럼 사라져 있었다.
로렌의 손이 마레이의 턱을 놓은 상태였다. 마레이는 로렌의 손목을 두 손으로 잔뜩 움켜쥔 채, 폐부 밑바닥까지 가라앉은 숨을 길게 토해냈다. 그리고 오랫동안 숨을 참아온 사람처럼 거칠게 숨을 허덕였다.
로렌은 마레이가 제 팔목을 꽉 붙잡고 있음에도 뿌리치거나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몇십 초간 숨을 헐떡이던 마레이가 자신이 로렌의 손목을 움켜잡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황급하게 놓으며 죄송하다고 말해도 화를 내지도 않았다.
그저 자신의 손목을 멍하니 볼 뿐이었다. 그리고는 마레이를 보지도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너는 마리의 아이다.”
“네.”
“너는 라벨라의 아이가 아니다.”
“예…..”
로렌의 말에 마레이는 쉽게 수긍했다. 틀린 말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이상하리 만큼 분했다.
“라벨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
“좋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어머니입니다.”
“.....어머니라.”
로렌은 창틀을 손가락 끝으로 몇 번 두드렸다. ‘어머니.’라는 단어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그리고는 눈을 감고 무엇인가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다. 채, 10초도 되지 않은 시간이었다.
“지금은…. 그것도 좋겠군.”
그 말을 끝으로 마차가 멈추었다. 익숙한 거리가 보였다. 라벨라의, 아니. 우리 집 앞이었다.
“데려다주셔서 감사합니다.”
마레이는 로렌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마차 문을 나섰다.
“가지고 싶은 게 있다면 말이다…..”
로렌의 목소리에 마레이는 고개를 돌렸다.
“가지고 싶다면 가져보거라. 네 힘으로.”
마레이는 로렌을 보았다. 로렌은 마레이를 보고 있지 않았다. 그저 반대편 창밖을 보고 있었다. 그녀가 자신에게 하고싶은 말인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에게 하고 싶었던 말인지 알 수 없었다.
마레이는 로렌을 보았다. 라벨라의 할머니는커녕 언니라고 하는 게 어울리는 모습. 농익다 못해 손에 쥐면 과즙이 터져 나올 것 같은. 에르덴의 표현을 빌린다면 몇 번이나 임신시키고 싶은 음란한 몸.
“제힘으로 가질 수 없는 건 어떻게 해야 하나요.”
“탐욕스럽게 먹어 치워라. 지식이든, 힘이든, 라벨라처럼. 그렇게 강해져야겠지.”
마레이는 로렌을 보았다. 자신이 그녀를 대상으로 말하는 걸 알았다면 저렇게 말할 수 있을까. 마레이와 시선을 마주치지도 않는 그녀는 고독해 보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녀가 쓸쓸해 보인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 고독이라는 것마저 그녀를 매력을 더하는 데 쓰일 뿐이었다.
“마지막으로, 누구에게도 마음을 주지 마라.”
“....라벨라 어머니도 말입니까.”
로렌이 고개를 돌렸다. 마레이를 보았다. 검은 눈동자를 보더니 슬며시 웃었다. 오늘 처음으로 웃는 것일지도 몰랐다.
“흐음…. 마레이 드 파웬, 처음으로 제안하지. 내 양자로 들어올 생각이 있느냐?”
“예?”
마레이가 버릇없이 되물었음에도 로렌은 화를 내지 않았다. 차분하게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
“내 양자로 들어올 생각이 있냐 물었다.”
“제안은 감사합니다, 괜찮습니다.”
로렌의 눈에는 처음으로 감정이 맴돌았다. 그게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어째서?”
“저에게는 라벨라가 있으니까요.”
로렌은 입을 가렸다. 그리고 작게, 너무나도 작게 웃음소리를 냈다.
“다음에도 같은 질문을 하지. 잠시 이리 다시 오거라.”
로렌의 말에 마레이는 다시 마차 안으로 들어갔다.
“내 옆에 앉거라.”
“예.”
로렌의 옆에 앉았다. 그녀에게서는 지독하리 만큼 달콤한 냄새가 났다. 코끝이아릴 정도로 달콤해서 정신마저 녹아내릴 것 같았다. 이게무슨 향일까. 멍하니 로렌을 보았다. 그녀의 입술이 무척이나 야릇해 보였다.
멍하니 자신을 보는 마레이의 턱을 붙잡은 로렌은 소녀의턱을이리저리 움직여 얼굴을 꼼꼼히 살폈다.
“쯧… 시간이 너무 늦었구나. 라벨라에게 돌아가보거라.”
마레이는 다시 로렌에게 인사를 하고 마차 밖으로 나왔다.
“마레이.”
로렌이 또다시 마레이를 불렀다. 이유모를 불안감에 마레이는 마차 안에 앉아있는 로렌을 보았다. 로렌은 마레이를 보고 있었다.
“뭐, 가지고 싶은 것이 있느냐.”
로렌은 자신의 머리카락을 빙빙 꼬며 이야기했다. 마레이를 보고 있었지만, 보고 있지 않았다. 마레이도 로렌의 시선을 보며 자신도 스스로 이해 못할 느낌을 받았다.
붉은 케이프 안쪽에 흘깃 보이는 정장이 보였다. 그리고 라벨라의 모습을 떠올리고, 전날에 보았던 이브닝드레스 사이로 드러난 그녀의 몸을 떠올렸다. 로렌을 가지고 싶다. 욕심이 들었다. 하지만 내뱉을 수 없었다.
마레이는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그렇군. 주말을 잘 보내도록.”
마차의 문이 닫혔다. 그와 동시에 마레이는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누군가가 마레이를 부축했다. 겨드랑이 사이로 딱딱한 감촉이 느껴졌다. 갑주를 입은 사람이었다. 로렌의 기사라고 했었지.
“공자님, 괜찮으신지요.”
“........감사합니다.”
투구 사이로 미성이 흘러나왔다. 이프리트보다 큰 키에 마레이는 저도 모르게 남자라고 생각했버렸는데, 기사님에게 죄송한 이야기였다.
“공자님, 잠시만 기다려 주실 수 있으십니까?”
“아, 네?”
기사의 제안에 마레이는 되물었다.
“총독님의 선물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양이 꽤 많다 보니….”
기사는 제 뺨을 긁었다. 완전 무장을 한 덕에 두꺼워 보이는 건틀릿으로 투구를 긁었다. 옅은 쇳소리가 났다. 왜인지 그녀가 부끄러워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겠습니다, 양이 얼마나 많나요?”
“저 정도입니다만….”
기사님이 천천히 다가오는 트럭을 가리켰다.
“.....정말이요?”
마레이가 떨떠름하게 지켜보자 기사가 시선을 피했다. 멍하니 다가오는 대형 트럭을 보면서 마레이는 전날에 성가대에서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 “총독 비서실에서 이번에 대량으로 물건을 사 갔다고 하더라고. 마레이는 뭐 알고 있는 거 있어?”
“이런저런 물건을너무 대량으로 사가더라고. 곰 인형, 장난감 이런 건 보육원이나 시설 같은 데에 뿌린다고 하는데, 보석이나 냉병기 수집품 같은 걸 잔뜩 사가니까… 예산을 털기에는 아직 연말도 아니고.. 혹시 아는 게 있나 해서?”』
“비서실 사람들이 엄선해서 고른 물건들입니다. 공자께서 무엇을 좋아하는지 몰라 넉넉하게 사두었다는데, 불편하시면 돌려보내겠습니다.”
“아뇨, 아뇨…. 로렌님의 선물이니 받겠습니다. 거절하는 건 예의가 아니니까요.”
솔직히 말하면 부담스러웠다. 기사는 다행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공자님이 거절하셨으면 이번 책임자의 목이 날아갔을지도 모릅니다.”
“저, 정말이요?”
“물리적인 의미는 아닙니다. 옷을 벗는다는 표현이 맞겠지요.”
기사의 목소리에는 장난기라고는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더욱 섬뜩하게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