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8화 〉뒷풀이(2)
욕실에서 다섯 번 정도 사정하고 나오자 어느새 저녁이 찾아왔다. 여름이 찾아온 발테르의 해는 지지 않았지만 느릿하게 평아 끝에 걸친 태양은 금방이라도 자취를 감출 것만 같았다.
“죄송합니다….”
마레이는 죄인처럼 고개를 푹 숙였다. 에르덴은 쿡쿡- 웃음을 터트리고 있었고, 옆에서는 이하운이 아무 말 없이 앉아있었다.
“이하운 잘못이니까 신경 쓰지 마.”
에르덴은 이하운에게 마레이의 잘못을 전가했다. 이하운은 시선을 돌린 채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할 말이 많아 보였지만 그녀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저녁을 조금 늦게 먹는 걸로 신경 쓸 필요는 없어요, 마레이. 자자, 음식이 식기 전에 어서 먹어요. 저도 이런 싸구… 흠흠. 길거리 식당에서 먹는 건 처음이니까요. 마레이가 먹는 방법을 알려줘야 해요.”
욕실에서 성욕을 참지 못하고 에르덴의 손으로 한 발, 입으로 두 발, 끈적이는 엉덩이 구멍에 세 번이나 정액을 쏟아붓고 나서야 두 사람은 씻을 수 있었다. 물론, 중간에도 페니스가 제멋대로 단단해져서 성녀님의 입으로 한 발 더 싸지르고 나니 저녁 시간이 지나 있었다.
덕분에 에르덴이 계획했던 저녁 레스토랑 예약은 취소가 되어있었고(성녀님의 이름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명의로 한 탓에 예약 시간에 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칼 같이 취소당했다.) 그렇다고 다시 예약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애매했기에 이름 모를 식당의 야외 테이블에서 세 명이 도란도란 앉게 되었다.
“이하운이 제대로 상대해줬으면, 욕실에서 그렇게 오랜 시간이 필요 없었을 텐데.”
“.....어이가 없네.”
이하운이 작게 한숨을 토해냈다. 그리고는 바로 옆에 앉아있는 소년을 흘깃 보았다. 오후 내내 자신에게 허리를 흔들며 임신하라고, 자신의 것이 되라고 속삭이고 권유하고 조롱하던 모습을 일절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자신이 기분 나쁜 꿈을 꾼 게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로 차이 나는 모습에 이하운은 말없이 포크로 파스타를 빙빙 돌렸다. 온몸에 배어서 잘 냄새가 빠지지 않는 정액 냄새만 아니었다면, 눈을 떴을 때, 정액 웅덩이에서덜덜 떤 채 일어나지 않았다면, 아직도 배 안에 남아서 팬티로 스며 나오는 정액 덩어리가 아니었다면 꿈이라 생각했을 텐데.
알 수 없는 기분이었다. 최악도, 최선도 아니었다. 차악도, 차선도 아니라 그냥 몽롱했다. 술을 진탕 마셔서 제대로 걸을 수 없을 때처럼. 아니, 그보다 더 몽롱했다. 좋은지도 싫은지도 스스로에게 답할 수 없었다.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었다. 일단 먹자, 먹고 한 숨자고 생각하자. 변하는 건 없으니까. 얼마나 격하게 씹질을 한 것인지 몸이 음식을 갈구하고 있었다. 우악스럽게 파스타를 입에 밀어 넣고.
“그래서, 마레이 자지는 합격점인 거네?”
“풋.. 켁.. 켁.. 컥… 쿨럭.. 쿨럭.. 켁.. 헥… 켁..!”
갑작스러운 에르덴의 말에 이하운은 사레가 들렸는지 몇 번이나 강하게 기침을 토해내며 가슴을 두드렸다.
“여, 여기 물이요! 이하운 선생님. 물!”
소년이 건네준 물을 받아마시고 나서야 이하운은 눈물을 찔끔 흘리며 거칠게 숨을 토해냈다.
“더럽게….”
네가 시작했잖아! 이하운은 목끝까지 차오르는 욕설을 폐부 끝에 꾹꾹 밀어 눌렀다. 소년이 건네준 유리잔을 보았다. 그러고 보니 반 쯤 남았던 물 같은데. 간접 키스를 한 걸까.
“이하운 선생님, 괜찮아요?”
“어, 어? 어? 아, 괜찮아. 괜찮아.”
주책이었다. 간접 키스라는 걸 신경 쓰다니. 자신답지 않았다. 그냥 오늘 일이 너무 충격적이어서 그런 거라 생각하기로 했다. 묘하게 반짝이는 소년의 입술이 부드러워 보였다.
“그래서~ 마레이 자지가 마음에 든 거지~?”
“크, 큰 소리로 말하지 마…!”
에르덴은 어린아이처럼 책상을 두드리며 빨리 말하라고 이하운을 재촉하고 있었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은 소란스러운 에르덴의 행동과 큰 목소리에도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마치 마법을 부린 것처럼.
“.....마법이구나.”
“내가 그정도도 신경 안 쓸 것 같아?”
에르덴은 음식에 손도 대지 않고 깍지를 낀 손가락에 턱을 괴며 웃고 있었다.
“그래서, 어땠어? 좋았어?”
“다, 닥쳐!”
이하운은 잔뜩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에르덴의 시선을 피했다. 뭐야, 잘했네. 마레이가 자신 없게 말하길래 추가적으로 뭔가 해야 하나 생각을 했는데, 자신이 없어도 알아서 잘하는 모습을 보니 섭섭하기도 하고, 즐겁기도 하고. 애매한 감정에 에르덴은 그저 음료만 홀짝였다.
“에르덴… 누나는 안 드세요?”
“농후한 단백질 쉐이크를 세 번이나 먹여줘서, 지금 배가 터질 것 같아. 식도까지 정액이 올라온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이하운은 또다시 음식을 먹다 거칠게 기침을 토해냈다
“이하운 선생님 괜찮아요?”
티슈를 뽑아 자신의 입가를 닦아주는마레이의 손길에 이하운은 아무 말 없이 턱을 내밀어 어리광을 부린다. 그리고 마레이의 손이 떨어지자 멍하니 소년을 바라보다, 잔뜩 붉어진 얼굴로 헛기침을 한다.
“에르덴과평소에도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거야….?”
“아뇨.. 그렇지는 않아요...”
평소에는 대부분 마레이가 떠들고 에르덴은 즐겁게 듣는 편이었다. 사소한 이야기라도 에르덴은 좋아했다. 길을 걷다 갑자기 보았던 예쁜 구름, 오늘 공부하면서 어려웠던 것도, 라벨라를 몇 번이나 범했는지, 친구들이랑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모두. 에르덴은 계속 이야기해달라고 하며 들어주기에 마레이는 신나서 이야기하는 게,섹스를 제외하고는. 아니. 섹스를하면서 이야기하는 게 평범한(?) 일상이었다.
이하운은 말없이 음식을 먹을 뿐이었다. 에르덴은 싱글벙글 웃으며 마레이와 이하운을 보고 있었고. 마레이는 묘하게 불편한 자리에 시선을 돌렸다. 야외에 있는 테이블이라 그런지 유리창너머로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였다.
토요일이라 그런지 태양이 진 이후에도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녔다. 학생들 무리, 나이를 짐작하기 힘든 앳된 커플들, 성인들, 그리고 중간중간 라벨라와 비슷한 복장을 란 감찰국 직원들.
.
그리고 로렌의 기사들.
기사?
마레이가 깜짝 놀라 몸을 일으키자, 이하운과 에르덴이 놀란 눈으로 소년을 지켜보았다. 마레이의 주변에는 어느새 반투명한 마법진이 소년을 보호하듯 빙글빙글 돌고 있있었고, 이하운은 몸을 낮추고 주변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야?”
계속 경계하는 이하운과 다르게 에르덴은 오직 마레이만 바라보고 있었다.
“로렌 님의 기사들이 계셔서….”
“아, 그 용의? 정말이네.”
에르덴은 조금 놀란 눈치였다. 이하운은 작게 한숨을 내쉬고 의자에 평범하게 앉았다.
“가끔 로렌, 그 성격 나쁜 용이 돌아다닐 때 몰래몰래 움직이는 녀석들이야. 인식 저해 마법이 걸려 있어서 보통사람은 찾기 힘든데. 요즘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네. 크사크루 자매였나? 나쁘지 않은 선생 등이야.”
에르덴은 조금 기뻐 보였다. 이하운은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멍하니 테이블에 있는 음식을 볼 뿐이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에르덴의 교회를 나오면서부터 그녀는 중간중간 영혼이 빠져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있길 반복했다.
“그리고…..”
에르덴은 마레이가 보는 데도 인상을 잔뜩 구긴 채 한 곳을 노려보고 있었다. 에르덴이 바라보는 곳에서 묘한 위화감이 느껴졌다. 이하운의 귀와 꼬리가 곤두서고 작게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숨기지 못했다.
-또각. 또각. 또각.
마치 시계추가 움직이듯 규칙적으로 들려오는 소리. 마레이는 저도 모르게 로렌을 떠올렸다. 굽이 부딪히는 소리,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저 멀리 보이는 인영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또각. 또각. 또각.
로렌이었다. 그녀가 다가오고 있었다. 성에서 입었던 이브닝드레스와는 거리가 먼, 노출이라고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검은색 정장, 그리고 오른쪽 어깨에 금색 실타래가 흔들리는 견장과 견장으로 반대 쪽에는 왼손을 완전히 가리는 붉은색 기다란 케이프.
“오랜만이구나.”
로렌은 마레이 옆에 있는 두 사람따위는 신경조차 쓰지 않는 듯 그렇게 마레이를 향해 무표정하게 말을 걸었다.
“아, 안녕하십니까….”
어제 뵈었는데, 오랜만이라고 할 수 있을까. 작은 의문이 들었지만, 마레이는 굳이 내색하지 않았다.
“라벨라는 어디 있느냐.”
“집에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흐응…. 보기 힘든 조합과 같이 다니고 있구나.”
로렌의 보라색 눈동자는 성녀와 수인족의 대전사를 가볍게 훑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마레이의 손을 잡아 이끌었다.
“로, 로렌 님?”
“아이가 돌아다니기에는 늦은시간이다. 집으로 돌아가자꾸나. 마치 시찰 중에 우연히 너를 만나게 되니, 다행이군.”
이하운이나 에르덴 따위는 신경조차 쓰지 않은 듯, 로렌은 마레이의 손목을 잡아 자신의 옆으로 이끌었다.
“총독,내가 마레이의 보호자인데? 라벨라 드 파웬에게도 허락 맡고 데려왔어.”
“....라벨라가?”
에르덴의 말에 로렌은 인상을잠시 찌푸리고는 마레이를 내려다보았다. 혹시 저 성녀가 거짓말을 하고 있으면 말하라는 듯한 눈초리였다.
“네… 허락해주셨어요.”
“그래도, 이 시간까지 밖에 있는 건 옳지 못하다. 집으로 데려다줄 터이니 따라오거라.”
이하운이 작게 한숨을 내쉬고 끼어들었다.
“로렌, 우리가 보호자라고 했잖아.”
“....네가 성녀의 편을 드는 날이 올 줄이야. 거기에 자궁이 돌아왔구나, 이하운.”
로렌은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이 오만한 총독도 이하운의 모습에 놀란 듯 보였다.
“쓸데 없는 짓을 했어, 에르덴 파벨.”
“성녀라고 불러주시지요. 총독님. 인간 사회에 있다면, 인간의 규칙을 따라야하지 않겠습니까. 파웬 가주님?”
로렌은 에르덴의 말을 대답하지도 않고 마레이를 끌어안듯이 잡아당겼다.
“라벨라가 허락을 했다고해도, 이 늦은 시간까지 아이를 밖에 내버려 두는 건 옳지 않다. 라벨라에게 말이라도 해둬야겠군.”
“노인네, 틀딱 같은 소리를 하기는…..”
에르덴의 목소리에 로렌의 입가에서는 아득- 하는 무서운 소리가 났다.
“마레이, 이 시간까지 밖을 돌아다니기에는 너는 아직 어리다. 알겠나?”
“네, 네?! 아.. 그게.. 그러니까… 네에…..”
로렌의 눈초리에 마레이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이 녹색용 앞에 서면 알 수 없는 감각에 몸에 힘이 빠진다. 마치 천적을 만난 짐승처럼.
“마차를 준비해라.”
로렌은 이견을 받지 않겠다는 듯이 제멋대로 굴었다. 마레이는 에르덴을 보았다. 에르덴은 이전에 한 번도 보지 못했을 정도로 무서운 얼굴로 로렌을 노려보고 있었다. 마레이는 살기 어린 그 모습에 저도 모르게 로렌의 뒤로 뒷걸음질 쳤다. 이하운은 한숨을 토해내고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총독, 날 자극하지 마세요.”
“자극할 일이 있나? 단지 해야 할 일을 할 뿐이지.”
“.......이 일, 내가 기억할 거야.”
“기억하게.”
로렌은 에르덴의 악에 받친 목소리에도 가볍게 무시하고 마레이의 손을 붙잡고 마차에 올랐다.
인공 키메라, 아니. 말의 형상을 한 생명의 모조품이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에르덴이 창밖에서 잔뜩 굳은 얼굴로 마레이를 향해 손을 흔들어 보였다. 마레이도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그제야 에르덴 작게 웃었다.
“어린아이가 늦은 시간에 돌아다니는 건 좋지 못해.”
로렌이 먼저 운을 떼었다.
자신이 그렇게까지 어린 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마레이였지만, 로렌의 목소리에 서린 중압감에 소년은 잘못을 저지른 것처럼 고개를 푹 숙였다.
“라벨라가 잘도 허락했군, 다른 사람도 아니라 성녀인데.”
“저, 라벨라…. 어머니와 에르덴 성녀 님의 사이가 좋지 못한가요?”
“서로 관심도 없을 터. 다만, 저 미치광이 성녀의 행실이 좋다고는 말할 수는 없으니, 라벨라가 용케도 허락했다 생각을 하는 거란다.”
로렌은 마레이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전신이 핥는 듯한 끈적한 시선에 마레이는 저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성적인 의미가 아니라, 정말로 포식자가 피식자의 피륙을 씹기 전에 보이는 차가운 눈동자.
“성녀에게 무슨 해코지를 당했느냐?”
“아뇨, 그렇지는 않습니다.”
에르덴이 자신에게 무엇이든 해줄려고하는 게 문제였지, 사정하고 싶다고 말해도 가학적인 미소를 지으며 조금만 참으라며 괴롭히는 것을 제외하고는 자신을 괴롭히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자신 대신에 이하운이 몹쓸 짓을 당하긴 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