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95화 〉길고 긴 금요일(4) (295/341)



〈 295화 〉길고 긴 금요일(4)

“그래도 내전을 생각하기에는 좀 이르지 않을까?”
“필리아 공녀가 왕좌를 그렇게 쉽게 넘길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워낙 지지자도 많고, 이번에는...”

또다시 마레이에게 시선이 집중이 되었다.

“저는 아무것도 몰라요.”
“미안, 미안. 모이면 이런 이야기라서...”
“아뇨, 오히려 궁금해요. 사정은 알고 있는데, 자세히는 몰라서.”

성가대 사람들은 슬쩍 마레이를 눈치를 보다, 순진무구한 눈망울을 보고 떨떠름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계속해나갔다.

“아스모스 공왕 자체는 제대로 하는 일이 없으니까, 내부에서는 꽤나 골머리를 썩는 모양이야. 덕분에 아스모스는 공국 내부가 아니라 외부의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 같더라.  동북부 8연합과 붙는  그렇게 좋은 모양새는 아닌데.”
“동북부 8연합이요?”
“소문에 의하면 북부나 시그마 제국에 무기를 밀거래하는 모양이야. 요즘 이교도나 왕정복권 반란들이 중간중간에 터지다보니 감찰국에서도 알면서도 어쩔 수 없는  같고. 아니면 밀거래로 넘어가는 무기들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한 것일지도 모르고.”
“다른 공녀는뭐 하고 지낸 데?”
“뭐 언제나 같지, 사람들 피해 다니고, 동물들이랑 어울리고. 필리아 공녀가 덕분에 골치 아픈 모양이야, 경쟁자지만 혈육이라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그쪽 원로원을 지지 세력으로 두고 싶은 것인지 계속 감싸고 도는 것 같더라.”
“리아의 동생 이야기인가요?”
“말도 더듬더듬 거리고, 음침하고, 소심하고…  욕하는 게 아니라. 그냥 평가가 그런 거야. 2학년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는 것 같더라고. 필리아 공녀는 방치하는 것인지, 아니면 지켜주려고 내버려 두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필리아에게 드문드문 동생의 이야기를 듣고는 했다.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는데, 이런 식으로 듣게 된다니 유감이긴 했다.

“지켜주려고 왕따당하는 걸 내버려 둔다고요?”
“추측이야. 지켜주려는  아니었으면 대공 위도 관심 없는 막내를 자신 곁에 두지는 않았겠지. 나라면 공국에 내버려둔 채로 아스모스랑 싸우게 만들었을거야.”

섬뜩한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하는 성가대원을 보면서 마레이는 이 사람들이 귀족이구나라는 걸 다시 깨달아버렸다. 익숙해지지 않은 이야기들이었다.

“좀 씁쓸한 이야기지만, 가주가 사람 역할을 못하면 대부분 그렇잖아? 나도 여기로 유폐된 거든!”

성가 대원중  명이 호탕하게 웃으며 환호성을 질렀다.

“저 친구는 가무스  지에라고 지에가문의 삼남이야. 첫째 형이랑 둘째 형이 치고박고 싸우다 보니 가주는 손을 쓸 수 없는 상태였고, 막내는 그냥 공무원이나 학자를 하라고 여기에 보냈거든.”
“그 영감탱이가 알아서 유산을 챙겨준다고하니까, 괜찮아~! 괜찮아~!”

가무스  지에는 갈색 손을 이리저리 흔들며 웃었다. 정말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면 호탕한 사람이었다. 남부지역에서 온 사람인 것인지 까무잡잡한 피부와 하얀 성가대 복장 위로 슬며시 근육의 윤곽이 드러났다.

“근데 아스모스는 무슨 생각으로 그런 병신 띨띨이를 후계자로 내세운 거야? 알브라함의 귀족의 첩을 추행했다가 난리가 났다는 소문 들었어?”
“신문사는 틀어막았다는데, 대공도 아니고, 후계자도 아닌 놈이 개짓거리하는데 눈에 뵈는 게 어디 있어. 재판하겠다고 길길이 날뛰고 있다던데?”
“와, 소문 빠르다. 나 오늘 새벽에 아버님이 연락해서 알려줬는데. 발테르에서 사고를 치면 다리몽둥이를 부서버리겠다고 윽박지르셨다니까?”

마법이 상용화되면서 정보의 교류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빨라지고 있었다. 물론, 어젯밤부터 오늘 아침까지 허리를 열심히 흔들기만 한 마레이로서는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나는 필리아 공녀에게 배팅 중이야. 아스모스건, 원로원이건 나머지는 투자만 해도 손해 볼 것 같거든.”
“뭐 여기 있는 사람들은 다 비슷한 결론이긴 해. 투자를 한 이상 원금도 못 찾을 것 같은 두 사람보다는 원금 이상으로는 무조건 챙겨줄  같은 필리아 공녀의 편이거든. 경계할 필요는 없어. 틀니 딱-딱- 거리는 늙은이들이나 왕의 선택이다, 집안의 선택이다 하면서 헛짓거리하는 거지.”

가무스는 치아를 부딪히며 인공치아를 부딪힐  날법한 소리를 흉내 냈다. 다들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필리아의 평가가 좋다보니, 왜인지 우쭐해지는 감각에 마레이는 최대한 무표정하게 앉아있기 위해 노력했다.

“강요하는 건 아니야. 우리도 필리아 공녀와 친해지고 싶은데, 워낙 바쁜 사람이다 보니 얼굴 보기도 힘들거든. 얼굴을 보더라도 대부분은  관련이라서. 여기 학생회 사람들도 꽤 되거든.”
“놀랍게도 가무스, 저녀석도 학생회야. 성가대원 중에 몇몇이 샤샤 선배에게 납치되어서 말이야.”

길리아가 어깨를 으쓱였다.

“반에서도 그렇게 잘 좀 지내봐라,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고지식한 반장이라더라! 길리아 마리타님, 역시 군인이 되실 분이라 그런지 아주 메뉴얼대로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반장이니까 지킬  전부 지켜야지. 모범이 되니까. 가무스 너야말로 감찰국에 가는  목표인 주제에 그렇게 설렁설렁 살 거야?”

가무스라는 남성과 길리아는 무척이나 친해 보였다.

“두 사람 친구인가요?”
“마레이, 여기 대부분은 친구야. 비슷한 처지이기도 하고.”
“비슷한 처지는 무슨…. 샤샤 선배 아니었으면 이런 딱딱한 여자애랑 말도  했어!”

길리아의 말에 가무스가 툴툴거렸다.

“이런 이야기는 별로니까, 다른 이야기나 하자. 길리아, 북부 전선 관련된 정보 있지?  토해봐.”
“파후 장군이 몇 주째 전선을 비우고 있다고 하더라. 줄리아 선생님은 별다른 말씀은 없었고. 아마 파후 공작가 후계문제로 본가로 간 것 같은데. 줄리아 선생님이 공작위에 관심을 가지는  같더라고.”
“작위 같은 거 귀찮다고 하시던 분이?”
“뭐, 비밀은 아니라고 하셨으니 말을 하자면.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작위가 필요할  같다라고 하시더라고. 개인사인 것 같아서더 묻지는 않았어.”

길리아는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그녀는 여전히 줄리아를 어려워하는 것 같았다. 아니, 대부분 학생들이 그녀를 어려워한다는 말이 정확할지도 몰랐다.

“그리고, 나보다는 마레이가  알걸? 개인 과외를 받고 있으니까.”
“네? 네? 저는 들은  없어서...”

줄리아에게 딱히 들은 이야기는 없었다. 에르덴과 요즘같이 다니는 것 같았는데, 아마  사람의 모종의 이야기가 있었을지도 몰랐다. 기회가 된다면 침대에서 진실을 토해내게 하면 될 일이었다.

“아, 줄리아 선생님과 과외는 어때? 워게임 같은 거 자주 해?”
“그냥 지도를 보는 법이나 제국의 대전략 같은 걸 배우고 있어요. 군인에는 뜻이 없다고 말씀을 드렸기도 했고….”
“흐응~.”

길리아는 묘하게 만족스러운 눈치였다.

“드워프 왕국 물건들의 값이 오르고 있는데, 상인들의 장난질이야? 아니면 무슨 문제가 생긴 거야?”
“성벽올리고 성벽 밖 중계소에서 거래하는 놈들의 사정을 어떻게 알아? 상인이 장난을 친 거겠지. 드워프 왕국에 문제가 생기면 단순히 가격이 오른 걸로 끝나지는 않을 껄? 슈바펜 장군이 가만히 있을 리도 없고.”

성가대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제는 따라 갈 수가 없었다.

“동북부 8국 연합에서 사건사고가  터지고 있는 모양인데, 신문에는 아무런 이야기도 없네? 무시류나 식량을 좀 사둘까?”
“알브라함이 예술품으로 꽤 유명했잖아? 이번에 망나니 때문에 언급되다보면 자연스레 시장에 물건들이 풀릴 것 같은데. 미리 사두는 건 어때? 용돈쯤으로 차익은 나올 것 같은데?”
“수인족의 아란치니가 대규모 사냥대회를 열었다고 하는데, 그러면 남부군 소요 물품 관련해서 투자하는  낫지 않아”?”

학생들 사이에서 투자 이야기가 나올 즈음에서 마레이는 동떨어진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걸 보면 이 아이들도 귀족이라는 걸 다시금 깨닫게 된다. 아는 게 없는 마레이로서는 그들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라는 일련의 과정의 연속이었다.

솔직히 노트에 적어서 다시 복기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왜인지 너무 눈에 띄어 버리는 것도 좋은 처세술은 아닌 것 같았다.

“마레이는 이런 이야기가 좀 그런가?”
“아뇨. 재미있네요. 저는 투자 같은 건 해본 적이 없어서…. 돈도 없고요.”

다행이도 사람들은 이상한 사람을 보거나 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에이, 발테르 총독령  년 세수가 얼마인데~.”

물론, 돈이 없다는 말도 믿는 눈치가 아니었다. 가끔 에르덴이나 다른 여인들이 몰래몰래 찔러주는 용돈을 생각하면 꽤나 많이 받는 편이었지만, 라벨라에게 순수하게 받는 용돈은 넉넉하기는커녕 조금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저녁 식사는 언제나 집에서 먹을 수 있도록 하는 의도가 느껴질 때도 가끔 있을 정도니까. 거기에 로렌이 얼마를 벌고, 라벨라가 얼마를 벌던 자신과는 크게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부족한 것도 딱히 없었고.

이야기는 흐지부지 끝났다. 성가대 뒤풀이라 학교생활 이야기를 할 줄 알았는데, 전부 미래와 돈에 관련된 이야기라서 그런지 마레이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경청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아는 분야도 없었고, 잘 아는 거라고 해봤자, 자신의 암컷들의 성감대나 비밀스러운 특징들뿐이라서 더더욱 말할 수가 없었기도 했고.

“재미없었지?”

길리아의 물음에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재미있긴 했었다. 다만, 대부분은 듣고만 있었기에 다른 사람이 불편하지 않았을까 걱정이 들었다.

“처음 듣는 이야기라서 신기했어요. 다들 열심히 사는구나 생각도 들었고….”
“그걸 재미없다고 하지.”

길리아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단호한 그녀의 모습에 이상하게 웃음이 나왔다.

“성가대 재미있어?”
“아, 네. 다들 재미있어요.”

흐음. 길리아가 짧게 앓는 소리를 냈다.

“뭐, 네가 재미있다면 상관없겠지. 난 슬슬 사관학교 준비하는 애들 모임이 있어서 먼저 가볼게. 즐거운 주말 보내~!”

보면 볼수록 밝은 소녀였다. 첫 만남에서 반 아이들에게 자신을 괴롭히지 말라고 딱딱하게 말하던 모습이 잘 그려지지 않았다. 스테인글라스 사이로 빛이 스며들고 있었다. 바로 전까지 소란스러웠던 성당 안은 거짓말처럼 침묵으로 가득 차 있었다.

“드디어 혼자가 됐네.”

성가대 연습 내내 보이지 않았던 샤샤가 갑작스레 나타났다. 마치 처음부터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 마치 그림자에서 솟아난 것처럼 마레이의 옆에 앉아있었다.

“선배….? 언제 오셨어요?”
“처음부터 있었어. 저것 때문에 계속 숨어있었다고.”

샤샤가 스테인글라스 앞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이프리트를 가리켰다.

“아, 정령이에요. 오늘 저랑 계약한 정령. 이프리트에요!”

이프리트는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 고개를 번쩍 들고 고개를 좌우로 움직여 주변을 살펴보고, 마레이에게로 날아와 어깨에 앉았다.

“이프리트….”

샤샤가 길게 한숨을 토해냈다.

“역시 이름으로는 별로인가요? 정령왕님의 이름이라고 하는데, 저는 이 아이의 이름을 이프리트라고들어서.”
“.....불의 정령왕 이프리트.”
“네?”
“아니, 너에게 한 말은 아니야. 이프리트, 장난은 그만 치시죠. 그런 모습으로 이 아이에게 왜 접근한 건지 설명 좀 해주시겠습니까?”

-흐음~. 역시 천족의 아이 눈을 속이는 건 무리일려나~?

어디서인가 여성 특유의 목소리가 들렸다.누군가찾아온가 싶어서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성당 안에는 자신과 샤샤 그리고 이프리트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이프리트… 네가 말한 거야?”
-네가라니. 무엄해! 내가 누구인지 알고 그러는 거야?

짐짓화를 내는 듯한 목소리가 들리고, 이프리트가 날개를 퍼덕이며 마레이 앞에서 천천히 날갯짓을 했다. 그리고 곧장 불이 크게 일렁인다. 갑작스레 2m는 넘어 보이는 불덩어리가 튀어나오자 마레이는 깜짝 놀라 뒷걸음질 치는데, 불덩이 속에서 손이 뻗어나와 마레이를 꽉 붙잡았다.

“아, 뜨, 뜨….? 안… 뜨거워?”
“꼬맹이는 겁도 많네. 쯧쯧...”

불덩어리 속에서 들렸던 목소리가 선명하게 귓가를 간지럽혔다. 가느다란 팔과는 다르게 우악스러운 힘이 마레이를 끌어당겼다. 그리고 곧장 느껴지는 물컹함. 본능적으로 마레이는 이게 가슴이라는걸 알아채버렸다.

“내 새로운 계약자니까,. 눈독 들이지 마. 천족 꼬맹이. 녹색용이 거슬리긴 하지만, 뭐  정도면 외모도 합격이고, 마음에 들었어.”

라벨라보다 커 보이는 키의 여성. 아니, 이프리트는 마레이를 꽉 끌어안은 채 작게 흥얼거렸다. 타닥타닥- 소리가 장작이 타는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힌다.

처음보는 여성이 자신을 꽉 끌어안고 있는데도, 이상하게 너무나도 편안해서 밀어낼  없었다. 사심이야 없을 리는 없었지만, 야릇한 감각보다는 눈이 저절로 감기는 따스한 온기에 마레이는 이프리트를 밀어내지도, 끌어안지도 못한 채 어쩡정하게  있었다.

“이런 곳에서 뵙다니 놀랍군요. 그래도 당신 같은 분이….”
“용사 녀석 로렌이나 리리스랑 천년해로 할 것처럼 굴다가 그렇게 급사할  누가 알았어? 결국은 지금 이 시대에와서는 이녀석하고 라벨라 그 얄미운 꼬맹이만 남았잖아.”

이프리트가 작게 한숨을 토해냈다.

“그 악독한 계집애는 내가 불러 달라고 때를 써도 무시하고!!뭐, 이렇게 착하고 귀여운 애가 나타났으니 뭐 됐어~! 아휴,  귀여운 것. 이 누나가 사랑하는 거 알지~?”

이프리트는 마레이를 꽉 끌어안은 채로 몸을 좌우로 기울이며 웃음을 터트렸다.

“마레이, 괜찮아?”
“네에.. 괜찮아요.. 숨 쉬는 게 조금 어렵지만...”

위화감이 들었다. 뭐라 표현해야 될지 모르겠지만, 비슷한 느낌을 찾는다면 뭔가 가방을 하나 더 매고 있는 것 같았다.

“역시 피는…..”

샤샤는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어깨를 으쓱이고 작게 한숨을 토해냈다.

“귀찮은  붙어버렸네, 마레이.”

천사의 날개를 달고 있는 샤샤와는 정반대로 붉은 깃털이 이글거리는 날개를 달고 있는 여성.

“우리 불의 천사님은 정령왕에게 못 하는 말이 없네…? 귀찮은 것이라고 부르면 섭섭해.”
“하아…..”

이프리트와 샤샤는 꽤나 친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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