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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5화 〉다크 엘프, 그리고 검사(4) (265/341)



〈 265화 〉다크 엘프, 그리고 검사(4)

제자, 마법사에게 제자라는 건 후계자라는 말이 더 정확할지도 몰랐다.

그렇기에 제자라는 건 마법사들이 말년에 와서야 생기는 것이었다. 거기에 제국이 일반인에게 마법을 공개하면서, 마법사의 제자라는 말은 원로  인간들의 입에서나 나올 무거운 말이었다.

물론 엘프들에게는 아직도 익숙한 그런 것이었지만….

“일리엔 교수의 제자라고 했지? 요즘 뭘 배우고 있어?”

일리엔 교수와 대화를 한 지 꽤 되었다. 외부라 그래서 자신이 피한다는 말이 정확하겠지만, 세달 전에 엘븐하임에서 만났을 때만 해도 제자의 ‘제’자도 꺼내지않은 사람이었다. 그래도 현장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의 입장이니까 자신이 생각한 제자의 뜻과, 일리엔이 말하는 제자의 의미가 다를 수도 있었다. 그걸 확인하고 싶었다.

“원소 마법이랑… 일리엔 교수님의 스승님들에 관한 이야기요? 계파에서 내려오는 마법이 있다... 아, 이건 비밀인데...”

마레이는 놀란 듯 이체르를 올려다보았다. 잔뜩 겁먹은 듯한 표정이었다. 일리엔의 스승이누구인지 알고 있는 이체르에게는 자신이 생각한 제자가 맞다는 확신을 할 수 있었다. 물론  스승이라는 작자가 무척이나 괴팍한 사람이었고, 무슨 마법을 쓸 수 있는 지는 몰랐지만. 일리엔은 자신에게 그 ‘계파의 마법’이라는 걸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눈치를 살펴보면 이드리엔에게도 말하지 않은 건 마찬가지였다.

“못 들은 걸로 할게. 궁금하지도 않아. 실례거든. 뭐, 정상적인 마법사의 제자들은 각자의 비기가 있으니까.  실수를 한 건 아니야. 그 내용물만 말하지 않으면 돼.”
“네…!”

마레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모습을 본 이체르는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어리숙하네. 때가 묻지 않은 것 같아서 왜인지 마음에 들었다. 소년에게서 묘하게 좋은 냄새가 났다. 일리엔 교수가 믿는 아이라,  나긋나긋한 사람에게 놀란 모습을 좀 보여주고 싶어졌다. 좋은 제자를 들인 것 같아 부러웠다. 누구는 아직도 수 련중인데, 혼자 완성되어 있는 것처럼 행동하니 부럽기도 했다. 물론, 그런 자부심을 부릴 정도로 성과를 내고 있는 사람이니까 이해도 되지만 말이야.

“그런데.. 이체르 교수님, 장갑 안 불편하세요?”
“불편해.”

마레이의 시선에 이체르는 자신의 손을 보았다. 하얀 장갑과 로브로 온몸을 꽁꽁 가리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이제는 익숙하다 보니 별 신경 쓰고 있지는 않았다. 이 호기심 많은 꼬맹이는 자신의 정체가 궁금한 것 같았다. 벌써 짐작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이 종족이라 그래.”
“네에….”

말을 길게 늘어뜨리는 소년의 검은 눈동자에서는 여전히 호기심으로 가득  있었다. 실망한 듯 고개를 숙이는 모습이 왜인지 자신이 잘못한 것 같은 느낌도 주는 신기한 소년.  번쯤은 더 속아도 되겠지.

“잘 봐.”

이체르는 로브를 걷어 올렸다. 손목을 덮고 있을 거라 생각했던 장갑은 팔을 완전히 감싸고 있는 하얀색 롱 장갑이었다. 그리고 아주 느릿하게 장갑의 중간 부분을 잡아당겼다.

“우아…..”

하얀 장갑이 조금씩밀려 나오면서 갈색 피부가 눈에 들어온다. 아니, 갈색이라고 부를 수도 없었다. 밀크 초콜릿에 하얀우유를 가득 부어 만들어낸 달콤해 보이는 색깔의 피부였으니까.

“난 다크 엘프야.”
“아, 네….? 다크 엘프요?”

다크 엘프(dark elf)라고 하기에 검은 피부의 엘프를 떠올렸는데, 이러면 다크(dark)가 아니라 밀크 초콜릿 엘프(milk chocolate elf)라 부르는 게 옳은가 생각도 들었다. 맨들맨들해보이는 팔뚝은 무척이나 가늘었는데, 병약하다거나 말라보이기보다는 건강하다는 느낌을 준다.

“별로 놀란 기색은아니네. 짐작하고 있었어?”
“아뇨, 그게… 다크 엘프(dark elf)라고 하길래 조금  까맣게…. 까맣다고 생각해서. 다른 종족이라고….”

마레이의 말에 이체르는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얼마나 웃긴 것인지 고개를 숙인 채 끅끅 소리를 내며 웃었다. 그리고는 곧장 얼굴을 가리던 로브를 걷어 올렸다. 풍성한 검은 머리카락이 로브 안으로 이어져 있었다.

“다크 엘프에 대해서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토파츠색 눈동자는 묘하게 즐거워보였다. 마레이는 멍하니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긴 앞머리가 귀 뒤로 넘겨져 있었지만, 워낙 길어서 그런지 한쪽 눈을 가리고 있었다.

“놀랐어?”
“아, 네. 뭐….”

마레이는 서둘러 고개를 끄덕였다. 에르덴을 비롯해서 가지각색의 미모의 여인들에게 충분히 높아진 소년의 미적 기준에 충족할 정도로 이체르는 아름다웠다. 특히 밀크 초콜릿에 우유를 잔뜩 넣은 것 같이 부드럽고도 달콤해 보이는 피부에 눈을 뗄  없었다.

이체르는 무엇인가 기다리는 듯 보였다. 등받이에 등을 기대고 팔짱을 낀 채로 마레이를 보며 묘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마레이는 여기서 뭐라고 말해야 할지 생각해보았지만, 딱히 무슨 말을 해야 될지 알 수 없었다.

“그, 저… 아름다워요.”
“....응?”

이체르의 눈동자가 커졌다. 그리고 뭐가 그리 우스운지 입을 꽉 다문채 웃음소리를 내었다. 오똑한 코 끝에서 짧은 숨이 연속적으로 이어졌다.

“아, 고마워. 고마워.”

이체르는 한  눈을 감은 채, 마레이를 향해 손을 대충 휘저었다. 왜인지 그녀는 기분이 좋아보였다. 이 말을 하는  맞았나보다. 마레이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넌 좋은 아이네. 응, 착한 아이야. 이제야 알겠어. 일리엔 교수님이 왜 너를 제자로 들였는지.”

이체르는 갑작스럽게 마레이를 칭찬하기 시작했다.얼굴이 저절로 붉어질 정도로 칭찬하는 그녀의 말에 볼을 긁적이며 이체르의 시선을 피했다.

“네? 아, 감사합니다.”
“감상은 그게 끝?”
“아… 그게, 그러니까.”

이체르는 뭘 원하고 있는 걸까. 흔들거리는 그녀의 발끝이 보였다. 더 칭찬해달라는 것일까. 마레이는 묘하게 이체르에 대해서 알 수 없었다. 이드리엔이나 자신의 여인들의 마음은 이제 알 수 있을  같은데, 역시 남에 대해서는 여전히 애매모한 느낌만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그러니까, 솔직하게 이야기하자.

“엄청… 예뻐요. 까, 깜짝 놀랄 정도로요!!”

자신도 모르게 큰 소리로 말해버려서 마레이는 수치스러움에 얼굴을 붉게 물들였다. 이체르의 표정이 어떨지 몰라서 고개를 푹 숙여버렸다.

“흉하지 않아? 이 갈색 피부. 엘프랑 닮았는데도 까맣잖아?”
“까맣다고 보기보다는 건강해 보이는데…..”

이체르는 자기 자신에게 불만이 많아 보였다. 아니 자신의 종족에 대해서 불만스러워 보였다.  갈색 껍질을 벗어내고, 일리엔 같이 하얀 피부를 갖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마레이에게 있어서 이체르 발렌타인라는 존재는 무척이나 건강해 보이고 달콤해 보이는 육체를 가진 멋진 여인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팔짱을  손위로 묵직하게 내려앉은 게 가슴이라는 건 너무나도  알고 있었다. 한 입 베어 물면 달콤한 맛이  것 같았다. 저 안은 어떤 기분일까. 속살도 같은 색깔일까. 그런 천박한 생각에 마레이는 애써 이체르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마레이의 생각을 아는 것인지, 모르는 것인지 이체르는 쿡쿡 웃어버렸다. 마침 오전 수업을 끝났음을 알리는 종이 쳤다.

“자, 수업이 끝났네. 가도 좋아.”

마레이는 꾸벅 인사를 하고 짐을 챙겼다. 이체르에게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서 묘하게 서두르다 책을 떨어뜨렸다. 이체르는 책을 주워주고 두꺼운 책을 마레이의 가방 안에 넣어 주기까지 했다.

“감사합니다. 저는 이만...”
“마레이 드 파웬.”

문을 나서려는데 뒤에서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마레이는 이체르를 보았다.

“예?”
“다음 주에도 올 거니?”

갑작스러운 이체르의 질문에 마레이는 놀란  문 안으로 되돌아왔다.

“예? 다음 주에는 수업 안 하나요…?”
“아니, 아니야. 다음 주에는 조금 느긋하게  테니까. 복습은 열심히 하렴.”

이체르는 뭐가 그리 좋은지 손가락으로 입을 가리며 작게 웃었다. 그리고 고개를 좌우로 저은 뒤, 개운한 듯 등받이에 기대 기지개를 켰다. 마레이는 다시 한번 그녀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필리아와 약속장소로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다들, 너처럼 상관없으면 좋겠지만 말이야…..”

이체르의 중얼거림이 아무도 없는 강의실 안에서 사라졌다. 수업이 끝났음에도 이체르는 문너머를 한동안 멍하니 보고 있었다.


“이체르의 수업이라고…? 괜찮아?”

필리아는 떨떠름한 눈빛으로 마레이를 훑어보았다. 이체르 발렌타인의 수업을 들은 것치고는 혈색이 정상적이었다. 눈빛도 흐리멍텅하지 않았다.

“네? 아, 네. 괜찮아요.”

고개를 끄덕이는 마레이의 모습에 필리아는 턱을 쓰다듬으며 작게 끙- 소리를 냈다. 영혼이 빠져나간 표정이라면 그러려니 하겠다만,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느긋하게 걷고 있는 모습에 오히려 걱정이 될 뿐이었다.

“이거 몇으로 보여….?”

필리아는 손으로 브이- 자를 그리며 마레이앞에서 흔들어 보였다.

“두, 개요?”
“그럼 이건?”

한 개요. 마레이의 대답에 필리아는알 수 없다는 듯이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니, 이제는 마주 보고 있었다. 자신보다 조금 작았는데, 벌써 키가 비슷하다니 조금 억울한 마음도 들었다. 아니, 이게아니라.

“정말 괜찮은 거 맞아? 수업 시간에 졸거나  생각했어?”
“아뇨, 잘 들었어요. 정말이에요.”

필리아는 눈을 게스츠름하게 뜨고 마레이의 얼굴을 보고 있었다. 마레이의 말을 온전히 수긍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흐음…. 믿어.”
“네?”

갑작스레 믿는다고 말하는 흡혈귀 공주님의 말에 마레이는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믿는다고, 수업 열심히 들었다는 거. 네가 말하니. 아니. 너니까 믿어. 그래, 이 말이 정확할 것 같아.”

은보라빛 머리카락이 바람에 따라 살랑거렸지만, 그녀의 붉은 눈동자는 온전히 마레이만을 보고 있었다. 엘프를 닮은 길쭉한 귀는 붉게 물들어 있었다.

“아, 감사해요. 필리아 고마워요… 읏.. 아니, 이게 아니라 리아. 고마워요!”
“후후, 별 말씀을 다 하시는 군요, 파웬공자.”

필리아는 치마의  끝을 슬쩍 잡아 들어 올리며, 귀족식 예법에 따라 인사를 건넸다. 당황한 마레이가 예법에 따라 인사를 하자 필리아는 하하. 웃어버렸다.

“장난이야, 장난. 마레이가 이렇게 반응을 해주니까 자꾸 장난을 치고 싶어져.”
“윽…. 봐주세요, 리아.”

마레이는 뺨을 긁적이며 필리아의 시선을 피했다. 치맛자락을 꾹 움켜쥔 그녀의 손이 보였다. 부끄러운 말을 쉴 새 없이 내뱉는 필리아의 모습에 마레이는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치, 칭찬하면 필리아는 안 부끄러워요….?”
“흐음.. 어떨까...”

필리아는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리고 뒤를 돌아 마레이를 보며 눈부실 정도로 환하게 웃었다.

“엄청, 엄청 부끄러워. 내가 이런 말을 할 수 있다는 것도 놀랍고, 너무 부끄러운데. 하고 싶어.”

부끄럽다고 직접적으로 밝히는 필리아의 말에 마레이는 그제서야 필리아의 모습을 온연히 담아낼 수 있었다. 치마를  잡고 있는 손은 긴장으로 약간씩 덜리고 있었고, 그녀는 귀뿐만 아니라 얼굴까지 붉게 물들어 있었다.

힘들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마레이는 필리아에게 빠르게 다가가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미지근한 온기, 언제나 대단하다고 느끼는 필리아도  명의 소녀였고, 지금 이 순간 노력하고 있다라는 생각이 들자, 사랑스러워서 참을 수가 없었다.

“고마워요. 저도 부, 부끄럽지만 칭찬을 잔뜩, 잔뜩  테니까요…”
“아하하핫. 그게 뭐야. 칭찬 교환이야?”

필리아는 손을 뿌리치는 대신 시선을 피하고 웃고만 있었다. 입안에서 웅얼거리듯 나오는 자그마한 목소리가 잔뜩 떨렸다. 다른 한 손으로 어깨까지 내려오는 은보라빛 머리카락을 빙글빙글 돌리고 있었다.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뭐… 나쁜 기분은 아니네.”

엘프를 닮은, 뾰족한 귀가 슬그머니 파닥거리는 걸 보면 정말로 싫은 기색은 아니었다. 오히려 좋아하는 같다고 말하면 필리아가 화를 낼  같다. 그녀에게서 달짝지근한 좋은 냄새가 나고 있었다.

이쪽의 눈치를 살피듯, 힐끔힐끔 보는 붉은 눈동자도, 새하얀 뺨도, 무엇인가 말하고 싶어하는 분홍빛 입술도, 가날픈 목도, 쇄골이 희미하게 보이는 분홍빛 원피스도, 원피스 밑으로 보이는하얀 스타킹도, 검은 구두도. 전부. 아니, 이것보다는

달콤한 향기, 그리고 온몸에서 흘러나오는 것 같은 달콤한 체향. 너무나도 익숙하고  질리지 않는 암컷의 농밀한 체향. 그 냄새를 맡자 더이상 참을  없었다. 다행이도 주변의 인기척은 없었다.

“뭘 그렇게 두리번거리는.. 꺄앗..?!”

마레이는 필리아의 팔을 이끌었다.필리아는 놀란 듯 작게 소리를 질렀지만,  잡힌 팔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다. 손목에서 쿵쾅쿵쾅 거리는 심장의 맥동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수풀로 그녀를 억지로 밀어 넣었다.

잔뜩 상기된 볼과 눈망울 끝에 고인 눈물에 곧장 넘어진 그녀 위로 올라탔다. 긴장한 듯 잔뜩 움츠리는 소녀의 몸. 라벨라등과 다르게 풍만하고 완숙한 매력과 반대로 풋풋한 느낌과 자신의 또래에게서 느낄  있는 두근거림이 좋았다.

“마, 마레이… 이건...”

당황한 듯 말을 더듬는 흡혈귀 공주님은. 이제 곧 무슨 일이 벌어질지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같았다. 이런 모습을 이드리엔이 보면 뭐라고 말할까.

“음란한 아이네요, 필리아는.”

필리아의 두 눈이 커졌다. 그리고 더욱더 얼굴을 붉히며 마레이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고개를 돌려버렸다. 이드리엔,  주제도 모르는 육변기 암캐의 교육이 도움이 되는구나.

마레이는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는, 라벨라가 은연중에 세뇌해버린 이드리엔의 평가를 아무렇지도 않게. 아니, 무의식적으로 생각해, 자신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도 인지하지 못한 채, 자신 아래에 깔려있는 매력적인 소녀의 모습에 입맛을 다신다.

“몰라… 그렇게 보지 말라고….”

온몸을 끈적하게 핥는 듯한 시선, 잔뜩 떨리는 허벅지 사이에서는 쾌락에 잔뜩 각인된 육체가 제 스스로 준비를 하고 있었고. 필리아도 그걸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기에, 자신 위에올라탄 소년의 눈을 제대로  수가 없었다. 오히려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상대방이 일방적으로 리드 해주길 원하고 있었다.

아주  된 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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